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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예순 가까운 나이에 군대 가는 꿈을 꿔 속으로 별일도 다 있다 싶었죠. 그런데 이번에 군종 교구를 맡고 보니 그게 헛꿈은 아니었나 봅니다. 허허.” 25일 전국 군부대에 있는 400여 개의 포교당을 책임지는 대한불교조계종 군종교구장으로 취임한 정우 스님(본명 이정근·61). 취임 하루 전인 24일 서울 용산동 국방부 원광사에서 만난 스님은 “사병으로 꼬박 34개월 13일 근무했다”고 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에도 복무 일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다시 군대 가라’는 말이 두렵기는 승속(僧俗)이 다를 바 없나 보다. “40년 만에 재입대한 느낌이에요. 포교 일선에 선 군 법사스님들을 위한 울타리와 그늘이 되겠습니다. 군 포교당과 지역 사찰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노력도 하고요.” 군 복무 이전 출가한 스님은 1973년 26사단에 사병으로 입대했다. 어느 날 중대장이 개신교 모임에 참석하는 이정근 이등병을 불러 세웠다. “신상기록을 보니 스님인데 왜 개신교 모임에 참석하나?” “불교 모임이 따로 없고,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종교의 근본 이치는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 이등병은 중대장 배려로 불교 교리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사단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부대 내에 황룡사와 호국 일월사가 들어섰다. 군승(軍僧)도 아닌 ‘사병 스님’의 노력으로 군 포교당이 창건된 것은 조계종에서 전설로 통한다. 그때 사단장이 수경사령관으로 1980년 신군부의 12·12쿠데타에 저항한 장태완이다. 두 사람은 사병과 사단장으로 만나 형제 또는 부자 같은 인연을 이어왔다. “12·12쿠데타 뒤 그분이 어려울 때 서울 중부시장에서 영광굴비를 사들고 위로 방문을 했습니다. 나중에 정치도 했지만 장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정의로운 분이었죠. 3년 전 작고했을 때 사십구재를 제가 진행했죠.” 총무원 총무부장과 3보(三寶) 사찰인 통도사 주지를 지냈고, 도심 포교의 선구 역할을 한 스님의 위상을 감안할 때 군종교구장을 맡은 것은 의외다. 더구나 종단의 정당 격인 ‘종책’ 모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주류이기에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여러 생각 없었어요. 총무원에서 찾아와 여러 후보 중 저를 적임자로 생각한다고 해서 흔쾌히 교구장을 맡았습니다.” 내친김에 10월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스님의 암묵적인 지지를 얻기 위한 종단 주류의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 “전 종단에만 속해 누구에게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습니다. 출가자는 어디에 살든 종단 종지를 따라야 하고, 공동체 일원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군인 복무지침 같은 저의 ‘스님 복무지침’에 따른 것이죠. 하하.” 스님은 총무원장 후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여러 스님들이 중지를 모아 좋은 선택을 할 것”이라며 “사회적 기준이 높아졌다. 이제는 시비에 휩싸이지 않고 종단 스님은 물론 국민들까지 존경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을 모실 것으로 본다”고 했다. 서울 양재동 구룡사의 스님 거처인 구룡산방 효자손 얘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구룡산방에 등 긁는 효자손이 있어요. 며칠 전 뉴욕에 출장 갔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게 없어요. 있을 때는 몰랐는데 정말 아쉽더군요. 모름지기 세상살이는 서로 서로의 효자손이 되도록 사는 게 최고입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마음을 알면 바로 부처요, 한 생각 놓으면 그 자리가 불국토입니다.” 지난달 금정총림(범어사) 최고 어른인 방장(方丈)으로 추대된 지유 스님(82)의 말이다. 스님은 18세 때인 1949년 뛰어난 법문으로 유명한 ‘설법 제일’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선방 수행에 이어 1970년 봉암사, 1975년 범어사 주지를 지냈다. 이후 수행에 전념하면서 언론 인터뷰는 극구 사양했지만 불자들과의 만남에서는 선(禪)과 교(敎)의 정수가 담긴 촌철의 법문을 아끼지 않았다. 2개월여의 인터뷰 요청 끝에 10일 범어사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범어사에서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방장 스님의 별명은 ‘갱두(羹頭) 조실’. 절에서 국을 끓이는 소임을 맡은 최고 어른이라?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곧잘 공양간에 들어간다는 스님이 직접 만든 국과 자장면, 카레는 스님들 사이에선 꼭 맛봐야 할 ‘사중일미(寺中一味)’라 한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지유 스님이 커피와 스키 마니아라는 얘기도 들었다. 선승이 커피를 마시고, 스키까지 즐기신다니? 스님의 거처인 원효암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염천에 비지땀을 흘리며 산에 오른 지 40여 분 만에 암자가 수수한 자태를 드러냈다. 이곳은 지유 스님의 은사인 동산 스님에 이어 사형인 성철 스님의 수행처이기도 했다. 스님께 삼배한 뒤 말씀을 청하면서 커피 맛을 보고 싶다고 했다. 스님은 커피 대신 미소와 함께 “고생했다”며 선풍기 옆자리를 권했다. ―커피를 즐기고 스키도 탄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여름 바다에서 수영도 곧잘 했는데, 못 한 지 오래됐어.” ―커피는 어떻게…. “1970년대 작설차나 보이차는 값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어. 값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커피를 먹게 됐지. 먹다 보니 나중에는 관심이 생겨 커피콩도 볶게 됐지. 빈말인지 몰라도 (내가 만든 커피) 맛이 괜찮다고 하데…. 하하.” ―스키는…. “한번은 천마산에서 리프트를 탔는데 정말 호강스럽구나 싶어. 어릴 때 일본에서 타던 대나무 스키가 생각나서 예순하나에 타게 됐어.”(일본에서 태어난 스님은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커피나 스키, 수행자와는 어쩐지…. “스키 타고 커피 마시면 이상한 중으로 여기는 게 바로 선입견이야. 공부(수행)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신도와 제자들, 수십 명이 함께 탈 때도 있어.” ―눕지 않고 수행하는 수십 년의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고 계신데요. “몸이 아프거나 피곤할 때 가끔 누워. 잠깐 졸기는 하지만 잠자기 위해 일부러 눕는 법은 없지. 그러나 장좌불와에 큰 의미를 둘 필요 없어. 좋은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고 사람마다 수행 방법이 다르니까.” ―선이 어렵다고 합니다. “어렵다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없고, 쉽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쉬운 게 없어. 잡념이 없다면 법당서 예불하고, 운동하고, 부엌에서 일하는 게 모양만 바뀔 뿐 다를 게 없지. 거울은 텅텅 비었기에 모든 것을 그대로 비추는 거야.” 스님은 꺼내기 쉽지 않은 질문을 자문자답했다. “‘무엇을 깨달았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깨달은 것이 없다고 할 것이야. 다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내가 숨쉬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지금’으로 살아가야지.” ―조계종이 10월 총무원장 선거로 도박과 관련한 폭로가 나오는 등 벌써 시끄럽습니다. “다른 업(業)을 가진 사람들처럼 중도 사람이라서 그중엔 사고뭉치도 있어. 공부해도 안 되니 뜻을 다른 것에 둔 게지. 그래도 반야의 지혜로 탐욕과 어리석음을 이겨내고, 깨닫겠다는 출가의 초심(初心)을 되새겨야지.” ―불자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괴로움과 고통은 무엇인가? 수행자든 일반인이든 모두 털어버려야지. 달마 조사를 찾아온 혜가가 번민을 얘기하자 조사께서는 그걸 가져오라고 했어. 어찌 실체가 없는 것을 가져올 수 있겠나?”부산=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방송통신위원회 ▽국장급 △방송정책국장 정종기 △이용자정책〃 오남석 △서울대 고용휴직 김준상 ◇한국환경공단 △홍보실장 김영기 △경영관리처장 김종철 △검사진단처장 오승현 △수도권지역본부 환경관리처장 고광휴 △충청지역본부 환경관리처장 정찬윤 △대구경북지사장 배병조 △기획조정처 경영평가팀장 박재영 △재무관리처 재무회계팀장 현해문 ◇한국산업인력공단 △전문자격출제실장 박계영 △응용공학팀장 김재해 △기업지원〃 임승묵 △건설환경기준〃 홍정혁}
경북 포항시 오어사 주지를 지낸 장주 스님이 8일 포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단 지도층 인사의 도박 비리 사실을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 접수시켰다고 주장했다. 장주 스님은 이 자리에서 조계종 총무원 고위 간부를 포함한 본사 주지급 스님 11명의 실명을 공개한 뒤 “나도 이들과 도박을 함께했다. 이들은 지난 수년간 전국을 돌며 한 판에 최소 300만 원에서 1000만 원의 판돈을 걸고 상습적으로 카드 도박을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 스님은 도박빚을 갚기 위해 절 소유의 100억 원대 땅을 종단 승인 없이 40억 원에 판 뒤 해외로 도피했지만 종단 대의기구인 중앙종회는 이들의 영향력을 의식해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장주 스님은 2003년 중앙종회 수석부의장을 지냈으며 올해 5월 불국사 말사인 오어사 주지에서 물러났다. 이에 대해 조계종은 “종단 주변에 떠도는 도박 관련 유언비어는 종단의 (다른) 제적승이 이미 수차례 사법기관에 제소했으나 모두 각하 처리됐고 무고죄로 수사 중인 내용”이라며 “장주 스님이 음해성 주장을 하는 것은 오어사 주지에 연임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회자되고 있다. 법적으로 엄중 대응하겠다”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야구 모자를 쓰면 영화감독 ‘키엔체 노르부’, 가사(袈裟)를 걸치면 ‘종사르 키엔체 린포체’. 웃음이 한없이 착해 보이는 52세의 이 부탄 사람만큼 흥미롭고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 있을까? 티베트 불교에서 린포체는 위대한 인물의 환생자이자 영적 스승을 가리킨다. 그는 7세 때 티베트 불교 수호의 핵심 인물이자 개혁가였던 잠양 키엔체 왕포의 세 번째 환생으로 판명돼 뭇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이후 불교 수행자로 교육받던 그는 영국에서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리틀 부다’의 고문을 맡아 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1999년 그의 영화 데뷔작 ‘컵’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작품은 부탄 최초의 장편영화이자 티베트어로 만들어진 첫 영화였다. 그해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을 받았고,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도 초청됐다. 8월 2∼4일 방한하는 그를 e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그는 방한 기간 인터넷 방송인 유나방송에 출연하고 서울 봉은사와 상도선원에서 법회도 연다. ―종사르 키엔체 린포체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종사르는 사람이 아닌 사원 이름이고, 키엔체는 대승불교의 기둥인 지혜와 자비를 말한다. 하지만 내게 그런 성품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개를 부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웃음) ―환생 개념은 낯설다. “환생이 없으면 윤회도 없으니 모든 불자들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개념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이유는 시공 속에서 계속되는 고통의 환영을 끊기 위한 것이다.” ―티베트 불교와 한국, 중국 불교의 차이점은… “같은 대승불교로 궁극적으로 차이는 많지 않다. 모두 반야바라밀경 같은 훌륭한 경전을 공경한다.” ―베르톨루치를 당신의 영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나. “당시 나는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불교 수행자였고, 그는 이미 거장이었다. 마치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대학교수를 만나는 것과 같았다. 무엇을 배웠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내게 영화에 입문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당신에게 불교와 영화는 어떤 관계인가. “영화는 티베트 불교를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그 언어를 바르게 쓴다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티베트와 인도 등에 있는 종사르 사원 네 곳의 책임자로 2000여 명의 스님을 지도하고 있다. 수행센터 ‘싯다르타의 의도’와 복지단체 ‘연꽃 활동’을 설립해 수행자와 가난한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뛰어난 수행자이자 영화감독과 배우, 베스트셀러 저자다. 무엇을 가장 잘하나. “연기를 제일 잘한다. 특히 삶에서의 연기가 베스트다.FF” ―방한 중 계획을 소개해 달라. “꼭 김치를 먹을 거다.” ―이탈리아 배우이자 감독인 로베르토 베니니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으로 영화 제목인 “Life is Beautiful(인생은 아름답다)”이라고 외쳤다. 당신은 어떤가. “Life is Inexpressible(인생은 표현할 수 없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의외로 린포체의 결혼에 대한 제한이 없다. 종사르 린포체도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여자 친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e메일 인터뷰였지만 마치 마주앉아 차 한잔 나누는 것처럼 그의 뛰어난 유머 감각과 삶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6일 찾은 사해(死海) 북쪽 10km 지점의 요르단 강. 성서와 각종 역사 기록을 통해 요단강으로 더 잘 알려진 강이다. 이 강과 인근 베다니 예수 세례 터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종교적 의미 때문에 세계 각국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선지자 엘리야가 요르단 강을 건너 하늘로 올려졌다는 구약성서의 이야기 때문에 ‘요단강을 건넌다’는 말은 죽거나 천국으로 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날도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등 다양한 종파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찬송가를 부르는가 하면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 세례 의식도 진행됐다. 불과 폭 10m 안팎의 흙탕물 강은 볼품은 없지만 깊은 역사성으로 자연스럽게 순례객들에게 종교적인 영감을 준다. 경건한 분위기를 깨는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다. 요르단 강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재학 중이라고 밝힌 미국인 켈리 톰슨 씨(여·20)는 “가톨릭 신자로 예수님 세례 터는 매우 특별한 장소”라며 “성경에 언급된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행인 60대 여성은 “요르단 강은 영적인 기운이 가득한 곳이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며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로번 군(18)은 인구의 92%가 이슬람교 신자인 요르단에서는 보기 드문 개신교 신자다. 요르단에서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등 범(汎)기독교 신자는 5% 안팎이다. 4년 전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그는 “비교적 다른 종교에 관용적인 요르단의 분위기 때문에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과 달리 종교 간 갈등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다니 인근의 도시 마다바는 이슬람 국가 요르단에서 ‘기독교의 섬’처럼 존재하는 지역이다. 요르단 정부는 십자군 시절부터 기독교 영향이 강했던 이 지역에 기독교 신자들의 이주와 거주를 장려했다. 시내에는 이슬람 사원뿐 아니라 성당과 교회들의 십자가가 눈에 띈다. 이슬람 사원에서 만난 바샤르 이브라힘 아미라 씨(32)는 기도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뜻의 무아딘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그는 사원을 관리하면서 오전 4시부터 하루 다섯 차례 하나님을 칭송하는 육성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유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대학에서 꾸란을 전공한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 집에서 섬기기를 꿈꿨다”며 “최근 젊은 사람들이 신앙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보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마다바 지역의 사원을 담당하는 공무원인 말리크 압둘 하디 아샤칸바 씨(36)는 요르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내전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라는 종교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라며 “내전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종교를 끌어들여 정치를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베다니·마다바=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마무드(가명·24) 씨의 꿈은 시리아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처음 시작된 남부 다라의 한 축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내전이 본격화하자 그는 축구장을 벗어나 총을 쥔 반군이 됐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요르단 북부 자타리 난민캠프에서 만난 그는 이제 난민으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작은 축구공을 통해 전쟁의 공포를 잊고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의 꿈을 묻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싸우러 나갈 것”이라고 했다. 캠프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자타리의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 이달 29일로 설치 1주년을 맞는 캠프 입구에는 전차와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배치돼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9km² 면적에 난민 12만 명을 수용한 이 캠프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캠프 중 최대 규모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관리하는 전 세계 난민캠프 중 소말리아 난민을 위한 케냐 다다브 캠프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자타리 캠프는 시리아와의 국경에서 불과 12km 거리에 있다. 정부군이 공세를 강화하자 캠프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말도 떠돈다. 그러나 캠프 외곽에 만든 축구장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축구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마무드 알오마리 씨(50)는 “축구가 없다면 아이들은 거리에서 경찰이나 구호단체 직원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싸우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5월 문을 연 5개의 축구장은 한국 개신교 방송사인 극동방송(이사장 김장환 목사)이 10만 달러(약 1억1335만 원)를 후원해 조성된 것이다. 캠프 곳곳에는 후원 국가의 국기가 붙어 있는 주거용 컨테이너 하우스(카라반) 1만6000여 채가 들어서 있다. 카라반 쿠리, 즉 코리아촌도 있다. 극동방송이 카라반 400채 등 20억 원을 기부한 것을 계기로 한국 정부와 SK그룹에서 1700채의 카라반을 지원했다. UNHCR 직원들과 함께 카라반 쿠리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였다. 난민들의 고함이 터졌다. “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느냐.” “위험해서 딸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 히잡 차림의 한 여성은 젖먹이를 보여주며 “생후 9개월까지는 우유를 주지만 그 이상은 주지 않는다. 채소라도 갈아 먹이고 싶지만 살 돈이 없다”고 했다. 기자를 자신의 카라반으로 안내한 27세 남성은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죽음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여기는 온통 사람으로 꽉 찬 감옥 같다”고 했다. 이처럼 캠프는 비좁고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UNHCR 직원들의 표현을 빌리면 ‘캠프 샹젤리제’의 출현이다. 아랍어로 ‘두칸’, 즉 작은 가게들이 메인 출입구로부터 ㄱ자 형태로 약 3km에 걸쳐 빼곡하게 들어섰다. 난민들이 바람막이 용도로 지급받은 양철판과 나무판자를 붙여 만든 6.61m² 남짓한 가게들이 이젠 3000개가 넘어섰다. 과일이나 빵, 과자뿐만 아니라 그릇과 가구, 심지어 가전제품까지 팔고 있다. 특히 아부 무함마드라는 난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은 명소로 알려져 있다. UNHCR 직원은 “무함마드의 한 달 매출이 1만 달러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며 “음식이 괜찮다. 배고프면 한번 가 보라”고 권유했다. 샹젤리제가 활성화되자 요르단인의 보증을 받아 캠프 외부에 거주하던 난민들이 돈벌이를 위해 다시 캠프로 들어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캠프는 한낮에도 왁자지껄한 시장통의 활기를 보이지만 전쟁의 공포와 분노는 계속되고 있다. 새로 캠프에 도착한 난민들이 고향 얘기를 전하면 그 뉴스는 ‘전염병’처럼 번져 캠프를 무겁게 짓누른다. 누군가는 다시 총을 잡기 위해 캠프를 떠나 국경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고향의 남은 가족을 데려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물건을 사러 떠난다. 캠프 소장 킬리안 토비아스 클라인슈미트 씨(50·독일)는 “난민이 올해 말까지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며 “1992년 설치된 다다브 캠프를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운영하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고 말했다.자타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욕 억수로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욕을 먹는 게 당연하죠.”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준비위원장인 김삼환 목사(68·명성교회 담임목사). 20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에서 만난 그는 ‘뭐 하러 WCC를 맡아 고생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하며 웃었다. 기존 교회건물 옆에 들어선 7000석 규모의 새 건물이 너무 크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안팎의 사정은 있지만, 그래도 또 욕을 먹어야죠”라고 했다. 1월 김 목사가 주도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WCC 공동선언문은 발표 직후부터 거센 논란을 불러와 파기됐다. “공동선언문과 관련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고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10월 총회는 교단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의 환영과 축복 속에 치러질 것입니다.” 왜 이렇게 WCC에 집착할까? “이 대회는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에서 열리는 만큼 우리 민족을 위한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고, 갈라진 교회의 일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환경문제는 국내외에서 각국 정부와 종교, 사회단체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건설적인 제안이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110개국 349개 교단이 가입돼 있는 WCC는 세계 개신교회의 일치와 연대라는 목표 아래 7년마다 총회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는 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등 4개 교단이 가입해 있고, 아시아에서 총회가 개최되는 것은 1961년 제3차 인도 뉴델리 총회에 이어 두 번째다. 김 목사는 “WCC는 신학적으로 다양한 입장을 지닌 교단과 단체들이 참여한다”며 “이들이 서로 차이가 있지만 토론하고 결정하고 일치하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WCC 총회의 한국 유치는 ‘민주주의의 꽃’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대두한 갑과 을의 문제에 대해선 “크리스천 기업인은 많은데 빌 게이츠처럼 통 큰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는 분은 드물다”며 “갑과 을, 양측이 서로 공격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평생 을로 살아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민영교도소로는 처음으로 2010년 문을 연 소망교도소와 관련한 소식도 전했다. 그는 이 교도소의 설립과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소망교도소 출소자의 재범률이 1%대로 4∼5% 수준인 다른 교도소에 비해 큰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교도소를 하다 보니까 죄를 달리 보게 됐습니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선) 특히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지원과 교육이 절실합니다. 어려서 엄마 아빠와 수박 한 통 같이 나눠 먹은 기억도 없고, 아파도 혼자서 끙끙 앓던 이들이 어떻게 세상의 따뜻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그것은 침묵의 대화였다. 가끔 “으으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변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의 손을 만지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없는 존경과 신뢰를 표시했다.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성당.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시청각장애인 가톨릭 사제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71·남아프리카공화국)와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신부인 박민서 신부(45·가톨릭농아선교회)를 함께 만났다. 소리뿐 아니라 빛까지 잃은 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구의 신부는 그나마 앞을 볼 수 있는 박 신부의 부축을 받았다. 어느 순간, 박 신부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두 살 때 홍역으로 청각을 잃은 뒤 가톨릭 사제의 꿈을 꾸던 시절부터 그에게 악셀로드 신부는 같은 길을 걸어온 오랜 동지이자 스승이었다. 악셀로드 신부는 영국 미국 홍콩 등 8개국 수화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상대의 수화를 촉각으로 인식한다. 이날 인터뷰는 기자가 질문하면 최연숙 수녀(순교복자회)가 중국 광둥어로 옮기고, 악셀로드 신부는 수화 통역자인 시몬 찬 씨(홍콩)의 손을 만져 질문을 파악한 뒤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악셀로드 신부의 수화 답변은 찬 씨가 광둥어로 옮기고 최 수녀가 다시 우리말로 옮겼다. 어느새 이들의 대화는 1997년 가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농아전문대학 갤러뎃대에서 처음 만난 시점으로 거슬러 가 있었다. “그해 박 신부를 만나는 순간 희망과 흥분을 함께 느꼈어요. 박 신부가 한국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큰일을 할 것으로 예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기적입니다.”(악셀로드 신부) “신부님은 겸손하고 평화로운 분이었습니다. 그 뒤 신부님이 남은 시력마저 다 잃었다는 소식에 제 가슴이 무너졌어요.”(박 신부) 세 살 때 선천성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악셀로드 신부는 1970년 사제가 된 뒤 세계 각지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목 활동을 펼쳐 왔다. 1980년 시각과 청각 장애를 모두 갖는 어셔증후군 판정을 받은 뒤 2000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자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러나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고 여기자 인생이라는 긴 계단은 새로운 ‘문’을 보여 줬습니다.”(악셀로드 신부) 박 신부는 힘든 미국 유학생활 끝에 2004년 뉴욕 성요한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도중에 논문심사 탈락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10년간 준비한 석사 논문이 탈락하자 ‘이제 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이마저도 못하면서 장애가 있는 내가 어떻게 신부가 될 수 있겠느냐는 절망감이었죠. 신부님을 보면서 나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박 신부)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어머니는 정통 유대교 신자이면서도 가톨릭을 선택한 저의 길을 축복했죠. 항상 제 의견을 존중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난 가톨릭 랍비’라고 할 정도로 관용을 갖게 됐습니다.”(악셀로드 신부) “중학생 시절 일반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의 입을 뚫어져라 보며 ‘나는 왜 여기 있나’며 속으로 울었죠. 그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강해져라, 너는 할 수 있다’고 하셨죠.”(박 신부) 악셀로드 신부는 자신의 인생을 이끈 최고의 키워드로 “인커리지먼트(encouragement·격려)”를, 박 신부는 “다 함께”를 각각 꼽았다. 강연 참석을 위해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일어난 뒤 기자를 잡은 악셀로드 신부의 손에는 따뜻함과 평온함이 가득했다. 그의 강연 제목은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였다. 그랬다.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은 있었지만 포기는 없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며칠 전 한 상가에 갔는데 ‘힐링’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물건들이 여럿 보이더군요.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어요.” 2003년 출가자의 수행 여정을 그린 KBS 다큐멘터리 ‘선객’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일묵 스님(제따와나 선원장·사진). 이제 유행가 제목처럼 된 ‘힐링’이라는 단어에 질렸다면서 “그건 잠시 고통을 잊는 ‘진통제’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 진통제 아닌 근본적 치유법은 무엇일까? “자기 집 자랑처럼 들려 민망하지만 부처님은 시종 그 해답을 얘기하셨죠. 무엇 때문에 고(苦), 괴로움이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불교는 바로 마음을 닦는 마음공부죠.” 스님의 책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다섯 비구에게 전했다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등 팔정도(八正道)를 다뤘다. 왜 팔정도가 ‘이해하고 내려놓는’ 마음공부의 핵심이 되는가를 알기 쉽게 풀이했다. 스님은 제따와나 선원을 찾는 20, 30대 젊은 수행자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자존감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자신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봐도 예쁜데 예쁘지 않다고 하고, 잘났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고, 허허. 장점이 아닌 약점만 보는 거죠. 마음의 평안은 비교의 우열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모두 귀하게 여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스님은 1996년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을 밟다 출가했다.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진리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 뒤 또 다른 진리를 찾기 위해 출가한 지도 17년이 흘렀다. “수학이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는다는 점에서 불교와 비슷한 점이 있죠. 그러나 논리적으로 답이 나오는 수학과, 삶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답을 찾아 나가야 하는 인생을 비교하기는 어렵죠.” 사회 현상과 접목해 불교를 더욱 쉽게 풀이한 책을 준비하고 있는 스님의 꿈은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갖춘 명상센터의 건립이다.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나 미얀마의 파욱명상센터처럼 공동체 생활을 하며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수행공간이 필요합니다. 종교에 관계없이 지친 사람들이 며칠이라도 묵으면서 행복의 새로운 기준을 배울 수 있는 곳이죠.” 왜 출가했느냐는 질문은 질릴 만도 하다. 그래서 무례하지만 ‘출가 잘한 것 같으냐’고 물었다. “정말 잘했죠. 난 스님 생활이 맞아요.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내가) 출가할 때 ‘무슨 짓이냐’고 했는데 이제는 다들 부러워해요.(웃음)”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CTS, 1만 교회 앱 무료 제작 특별모금방송CTS기독교TV(회장 감경철)는 1만 교회 앱 무료 제작과 아동·청소년용 프로그램 개발 등 미디어 목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특별모금방송을 27일 처음 방송한다. 14일에는 조용기 김삼환 목사 등 운영이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CTS 뉴미디어 방송선교 비전선포 감사예배’를 개최했다. 02-6333-1003■ 조계종 국제포교사회 기초불교영어강좌 모집조계종 국제포교사회는 7월 6일부터 9월 14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 전법회관 교육관에서 제30기 기초불교영어강좌를 진행한다. 강의는 불교기본교리와 불교문화를 영어로 배우게 된다. 강좌 이수자에게는 국제포교사 자격고시 최종 면접에서 가산점을 부여한다. 수강료는 5만∼10만 원, 02-722-2206}

10월 종단을 대표하는 총무원장 선거를 앞둔 대한불교조계종이 어수선하다. 몇몇 스님이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개혁을 명분으로 한 흑색선전과 폭로 위협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주 스님(경주사암연합회장)은 최근 한 불교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총무원장 직선제, 멸빈자 대사면, 재가자를 포함한 중앙종회 구성을 9월까지 종단이 수용하지 않으면 원로의원을 포함한 지도층 인사의 비리를 폭로하고 조계사에서 분신, 열반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혁되지 않는다면 30년 전 대전 버스터미널 근처 ○○여관에서 처녀를 겁탈해 임신시킨 모 스님의 일을 폭로하겠다. 지난해 백양사 도박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고 서울시내 호텔뿐만 아니라 마카오, 라스베이거스 등 원정 도박이 만연하고 있다”고 했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설조 스님(전 불국사 주지)은 12일 “원로회의 추대 과정에서 매표 행위가 있었다”며 승랍(출가 햇수) 미달자의 원로 선출과 선거 부정 등을 이유로 원로회의의 해체를 주장했다. 그는 또 교단 사정에 밝은 이들의 추정이라며 “원로의원 가운데 세속법과 교단 규범을 등진 이들이 8, 9명으로 전체 원로의원 25명의 3분의 1에 이른다”고 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대립각을 세워온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은 “총무원장이 부도덕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출마한다면 어쩔 수 없이 대항마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선거철만 되면 돈과 성(性), 부정선거와 관련한 폭로들이 쏟아지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종단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들은 지나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총무원장 선거뿐만 아니라 원로회의와 중앙종회 의원 등 각종 선거 과정이 세속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치러지는 종단의 구조적 문제점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총무원장은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 80여 명을 비롯해 24개 교구에서 10명씩 뽑는 선거인단 240명을 합해 320여 명의 간선제로 선출된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학창 시절 역사 수업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배울 때 시험을 의식해서인지 방향에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무용총 수렵도는 활로 사슴의 목을 겨냥한 기마무사와 정밀하게 묘사된 마차의 바퀴살까지 생생하다. 그런데 한쪽의 큰 나무는 벽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컸는데도 기억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도시와 취락의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처럼 간과하기 쉬운 나무와 풍경을 통해 옛 건축의 정신을 다시 보라고 권유한다. 저자에 따르면 벽화의 나무와 산은 수렵도가 묘사하는 자연을 크게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다. 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중심목이며, 나무를 숭배하는 우리 민족의 숭목(崇木) 사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8강과 하나의 보론(補論)으로 구성돼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도산서원, 관동지방, 경북 봉화 닭실마을의 예를 들어 나무를 포함한 자연과 인간, 건축의 관계를 살폈다. 퇴계 이황은 서원 주변을 단순한 외부 환경이나 풍경으로 본 것이 아니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퇴계가 서원 건축 과정에서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은 대학자의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퇴계는 서원이 완공되기도 전에 서원과 관련한 시를 지은 것을 두고 “장자가 이른바 계란을 보고서 닭을 구한 것과 같다”며 후회했다. 보론은 도시학자인 저자의 현재적 고민을 담고 있다. 전통을 간직한 도시들이 역사중심도시와 경제중심도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려면 자연에 더욱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스님들은 앞으로 고급 호텔에 묵거나 고급차를 탈 수 없다. 개인 명의의 부동산도 소유해서는 안 되고, 질병과 요양 등의 이유 외에는 육식을 금지한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스님들이 지켜야 할 규율을 담은 ‘승가 청규(僧伽 淸規)’ 제안서를 4일 발표했다. 선원(禪院)과 총림(叢林) 등 특정 분야 청규는 있었지만 종단의 모든 스님이 지켜야 할 청규 제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청규안은 지난해 도박 추문을 계기로 추진돼 왔으며 종무회의 의결과 종정 스님 보고 등의 절차를 거친 뒤 확정될 예정이다. 청규안은 수행, 생명, 평화, 나눔, 문화의 5대 분야로 나뉘었다. 대부분 원론적 내용을 담았지만 문화 분야는 △의식주 △소유와 소비 △의례와 의식 △소임과 실천 등으로 세분해 출가자가 지켜야 할 자세를 정리했다. 의복생활은 비싼 옷감을 피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멋을 부리지 말도록 했다. 운동과 공동으로 노동할 때를 빼면 속복(俗服) 착용을 금지하고, 고가의 구두 등산화 운동화 등을 착용하지 않도록 했다. 식생활에서는 고급 음식점을 이용하지 않고, 고급 차와 고가의 음식도 금지했다. 주거는 크고 화려한 주거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아파트나 단독주택 형태의 토굴(암자)에 거주하지 않도록 했다. 청규안은 경제적 영역에서는 비교적 엄격한 규정을 도입했다. 스님과 신도의 사적인 금전 거래를 금지하고, 비싼 장비를 구입하거나 고액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레포츠를 삼가도록 했다. 경력에 따른 자동차 이용 기준도 제안했다. 승랍(스님이 된 햇수) 10년 미만은 공용차 사용을 권유하고, 10년 이상인 말사 주지는 배기량 1000cc, 20년 이상은 2000cc, 25년 이상이거나 본사 주지 등은 3000cc 이하의 승용차를 이용하도록 했다. 사회 활동 분야에서는 정당 가입과 선거 관련 소임을 맡지 않고, 특정 정당 지지 발언과 행위를 금지했다. 종단쇄신위원회는 청규안을 의결하면서 “도박과 유흥주점 출입, 음주 등의 무절제한 막행막식(莫行莫食) 행위는 종법 등을 통해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결의 내용을 별도 안으로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번 안은 종법에 규정하지 않아 강제성이 없는 권고안 형태이기 때문에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음주에 대한 권고 사항도 빠져 있다. 종단 일각에서는 “이번 청규안을 보면 스님들이 그동안 이런 내용조차 지키지 않았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특히 승랍에 따른 자동차 기준은 사회적 잣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국제개발구호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월주 스님(사진)이 미얀마 정부가 주는 최고 작위 ‘사타마 조디카다자’를 7일 받는다. 스님은 현지 학교 건립과 우물 파기 등을 통해 미얀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어서 오이소.” 대구 사투리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푸른 눈의 할머니다. 지난달 29일 찾은 대구 수성구 황금동 가톨릭푸름터(옛 가톨릭여자기술원) 초대 원장이자 고문인 수산나 메리 영거 씨(77).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이지만 이제 ‘대구 할머니’가 됐다. 그는 1959년 화물선을 타고 5주간의 항해 끝에 한국 땅을 밟았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23세의 여성. 그의 호칭은 세월 따라 바뀌었다. 처음 ‘언니’ ‘누나’에서 ‘원장님’, 다시 한국 이름 ‘양 수산나 할머니’로. 》 ○ “하느님 때문에 시집 안 갔지.” 수녀도 아니면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다. 영거 씨는 옥실리움(auxilium·사도직 협조자)의 일원이다. 가톨릭에서 사도직 협조자는 특정 교구에 소속돼 독신으로 살며 주교를 도와 교회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명문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영국 외교차관을 지낸 노동당 관료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집에서 ‘수지’로 불리던 그는 고교 때 성경을 접한 뒤 가톨릭 신자가 됐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완전히 그리스도에게만 속할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수녀가 되고 싶어 수녀회 문도 두드렸지만 해외 봉사할 기회를 주는 곳은 없더군요.” 그는 소녀처럼 웃으며 러브스토리도 공개했다. 자신에게 맞는 수녀회를 찾지 못하자 프랑스인 의사와 약혼해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가기로 약속한 것. 하지만 그 무렵 먼 나라 한국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한국 유학생의 특강을 들었어요. 그가 전하는 한국의 가톨릭 역사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웠어요. 가난한 나라의 작은 교회, 그러나 믿음을 위해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기 교회를 연상시켰어요.” 그는 당시 대구대교구장인 서정길 대주교의 도움으로 마리아 하이센베르거(하 마리아·한국SOS어린이마을 설립자)와 한국에 왔다. ○ “김수환 추기경은 가장 좋아하는 사제” 영거 씨는 대구, 아니 가난한 한국에서 절대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청소년들을 도우면서 1962년에는 서 대주교의 권유로 불우한 여성들에게 양재와 미용 등을 가르치는 가톨릭여자기술원을 설립했다. “‘우리 대구’ 엉망이었어요. 길에 6·25 때 생긴 포탄 구멍 그대로 있었어요. 구두 닦는 아이들을 씻기기 위해 옷을 벗기면 이가 후드득 떨어졌죠.” 서 대주교의 소개로 프랑스에서 만난 신부 김수환과의 인연도 계속됐다. “김 추기경은 ‘my favorite priest(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제)’였어요. 대구교구에 있다가 마산교구장이 됐는데 기술원을 찾아 많은 도움을 줬어요. 그분은 가난한 사람과 항상 가까이 있었고, 신자 아닌 분들도 사랑했어요. 이런 말은 뭐 하지만, 김 추기경은 ‘직통’으로 하느님께 가셨을 겁니다.(웃음)” 이제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된 푸름터는 그의 분신이다. “요즘 헤어디자이너 과정을 모집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기 바랍니다.” 1973년부터 여성 사도직 협조자 교육을 위해 프랑스 루르드로 간 그는 매년 한국을 오가며 대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2004년 은퇴한 뒤 그의 선택은 당연히 한국 귀국이었다. 2011년 대구 명예시민이 됐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태어난 영국은 친정, 대구는 시댁, 프랑스는 연금이 나오니까 직장이죠. 호호”대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4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낡은 3층 건물. 입구의 한쪽 기둥에 작은 동판이 있다.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야고보서 3장 18절)… 정권 탄압에 항거하여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된 곳이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운동의 산실로 이를 기념한다.’ 향린교회다. 이 교회는 5월 17일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5·17, 숫자가 주는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공교롭다. 1953년 안병무 박사(1922∼1996) 등 10여 명이 설립한 이 교회의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일까. 교회라지만 외부에 십자가도 없다. 동판은 어쩌면 예수의 사랑을 사회적으로 실천한 향린교회의 또 다른 상징이다. 60주년 기념행사에 이어 최근 교회사를 정리한 ‘자유인의 교회-향린교회를 말하다’를 출간한 향린교회 사람들을 만났다. 3대 담임목사인 조헌정 목사(59)와 한문덕 부목사(40), 교회 60년사 편집위원들인 안정연 권사(67)와 이규성(51) 정수미 집사(37)가 함께했다.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조 목사=향린은 안병무 박사 등 당시 30대 초반 10여 명의 믿음 공동체로 출발했다. ‘밥도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기도도 함께 하면서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자’는 마음이 밴 교회다. ▽이 집사=(향린을) 35년 다녔으니 최고참인 것 같다. ▽정 집사=중간에 많이 빠졌죠.(웃음) ▽이 집사=유학도 가고 그러긴 했다. 향린이 항상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일반적 교회의 성장 논리를 따르다 위기를 맞은 적도 있다. ▽안 권사=60년 환갑이야 옛날 얘기지. 교회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닌가 싶다. 저는 다른 교회에서 ‘불나방’처럼 찾아왔다. 세상에 눈 감고, 복만 달라고 기도하는 일부 교회들과 달리 바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 집사=예배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에 정말 놀랐다. ‘자유인으로 살라’는 홍근수 목사(2대 담임목사)의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향린의 국악예배는 유명하다. ▽한 부목사=징은 물론이고 가야금 해금 대금 장구 등이 사용된다. 1995년 국악선교회 예향이 창단되면서 본격화했다. 이제 일부러 국악예배를 보러 오는 분들도 있다. ▽조 목사=예배 중에 흥이 난 교인의 ‘얼쑤’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억지로 ‘아멘’ 하면 뭐 하겠나. 자유롭지 않으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서 ‘국악예배와 영성’을 주제로 국악예배도 보여주고 토론도 한다. ―향린교회는 분가선교(分家宣敎)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 부목사=1993년 창립 40주년 선언에서 성인 500명이 넘으면 교회를 분가할 것을 선언했다. 이후 강남향린과 섬돌향린교회가 분가했고, 다시 강남향린에서 들꽃향린교회가 나왔다. ▽조 목사=교회 공동체를 ‘가족’이라고 하는데 몇 년 지나도 이름도 모르면 무슨 가족인가? ▽이 집사=이 교회가 웃긴다. 다른 교회는 교인들이 교회에 안 나오면 찾아오고 난리다. 그런데 향린은 와도 반겨주지도 않고, 가도 잡지도 않는다. 허허.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논란도 많다. ▽조 목사=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갈릴리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로 치면 조선을 떠나 옌볜을 주무대로 했다. 갈릴리는 반항정신이 강했고 어업 등으로 경제적 기반도 갖춰져 있는 변화의 중심이었다. 예수는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는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그냥 ‘벽’이라고 했다. ▽안 권사=박정희 정권 시절 가족의 고통이 있었다. 여기에 신앙이 접목됐고 교회가 지탱해줘 용기백배했다. 개인과 사회 구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동심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 집사=죽어 천국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주부이자 아이 엄마로 사회활동과 선교에 투신하느냐의 문제는 계속 고민으로 남는다. ―교회 내부도 민주적인가. ▽이 집사=담임목사가 큰 소리로 ‘따라와라’ 하면 신자들이 거부하기 힘들다. 향린의 경우 역대 담임목사들이 스스로 내려왔기에 민주화가 가능했다. 그래서 평신자 설교도 가능했다. ▽정 집사=아직 부족하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아니, 목사님 낀 편이 이긴다.(웃음) ▽조 목사=나라가 잘되어야 교회도 산다. 예수는 사랑과 관용, 회개를 얘기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했다. 한 민족인데 그걸 실천하지 못해서야 되겠나? 우리는 분열과 갈등으로 물이 뜨거워지고 있는데 스스로만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처지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4·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多崎)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제)가 7월 초 국내에 출간된다. 국내판 판권 계약을 맺은 민음사는 27일 “작품에 등장한 주요 상징을 가장 잘 반영하는 동시에 이미 판권을 확보한 ‘노르웨이의 숲’과 연계한 출판 및 프로모션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선인세로 1억5000만엔(약 16억6000만 원) 이상을 제시하고도 떨어진 출판사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민음사는 “하루키 측과의 계약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0년 세 권으로 완간된 ‘1Q84’는 12억 원대로 당시 외국서적의 국내 판권 선인세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하루키가 3년 만에 내놓은 이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 6일 만에 100만 부를 발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청년출가학교’가 6월 30일 문을 연다. 이 프로그램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출가수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 길을 안내하기 위한 것으로 전남 해남군 미황사에서 8박 9일간 진행된다. 금강(미황사 주지) 가섭(교육원 교육국장) 원영(조계종 교수아사리) 도법(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정목 스님(유나방송 진행자)과 조한혜정(연세대) 조성택 교수(고려대), 강신주 박사(철학자)가 지도교수로 참여한다. 프로그램은 오전 4시에 일과를 시작해 예불과 108배, 참선, 산행과 상담 등으로 구성돼 있다. 23일까지 신청을 받아 20대 남녀 40명을 선발한다. 02-2011-1812}

열두 제자, 아니 열두 스님이 1000일간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무문관 천일결사(無門關 千日結社)’에 들어갔다. 대구의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하안거 결제(24일)를 맞아 이곳 회주인 우학 스님 등 12명이 동시에 무문관 수행을 시작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수행은 외부에서 문을 걸어 잠가 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식사는 하루 한 끼만 각 방의 작은 투입구로 들어간다. 무문관 수행은 1964년 정영, 제선 스님이 부처의 6년 설산 수행을 본받아 도봉산 천축사에 무문관을 세우면서 수행의 아이콘이 됐다. 스님 100여 명이 이곳에서 6년간 수행에 들어갔지만 기한을 제대로 채운 스님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대관음사는 “스님 12명의 무문관 수행정진은 초유의 일로 용맹정진 수행의 큰 틀을 잡는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며 “스님들은 성불(成佛)이라는 거창한 허울보다 마음을 청정하게 닦겠다는 겸손한 자세로 수행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학 스님은 ‘천일 무문관 청정결사문’에서 “공심(空心)으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중생이다 보니 수행력이 부족하다. 무문관 안에서 참선하면서 신도님들을 위해 기도 축원하겠다”고 밝혔다. 스님 12명의 무문관 수행은 대관음사의 감포 도량에 있는 무일선원에서 진행되며 우학 스님을 뺀 나머지 스님들은 전국에서 모집됐다. 대관음사는 “신도 전체가 이번 결사를 후원하고 있다”며 “이 결사의 성과에 따라 제2, 제3의 결사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