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 신부 악셀로드, 청각장애 박민서 신부와 ‘침묵의 대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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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 키워드는 격려”

“희망을 놓지 않으면 기적이 다가옵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성당의 한국가톨릭사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선 키릴 악셀로드 신부(왼쪽)와 박민서 신부. 악셀로드 신부는 박 신부의 수화를 손으로 더듬어 뜻을 확인한 뒤
 다시 수화로 답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사진 아래의 수화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 기적이 다가옵니다’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희망을 놓지 않으면 기적이 다가옵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성당의 한국가톨릭사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선 키릴 악셀로드 신부(왼쪽)와 박민서 신부. 악셀로드 신부는 박 신부의 수화를 손으로 더듬어 뜻을 확인한 뒤 다시 수화로 답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사진 아래의 수화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 기적이 다가옵니다’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것은 침묵의 대화였다. 가끔 “으으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변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의 손을 만지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없는 존경과 신뢰를 표시했다.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성당.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시청각장애인 가톨릭 사제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71·남아프리카공화국)와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신부인 박민서 신부(45·가톨릭농아선교회)를 함께 만났다. 소리뿐 아니라 빛까지 잃은 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구의 신부는 그나마 앞을 볼 수 있는 박 신부의 부축을 받았다.

어느 순간, 박 신부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두 살 때 홍역으로 청각을 잃은 뒤 가톨릭 사제의 꿈을 꾸던 시절부터 그에게 악셀로드 신부는 같은 길을 걸어온 오랜 동지이자 스승이었다.

악셀로드 신부는 영국 미국 홍콩 등 8개국 수화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상대의 수화를 촉각으로 인식한다. 이날 인터뷰는 기자가 질문하면 최연숙 수녀(순교복자회)가 중국 광둥어로 옮기고, 악셀로드 신부는 수화 통역자인 시몬 찬 씨(홍콩)의 손을 만져 질문을 파악한 뒤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악셀로드 신부의 수화 답변은 찬 씨가 광둥어로 옮기고 최 수녀가 다시 우리말로 옮겼다.

어느새 이들의 대화는 1997년 가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농아전문대학 갤러뎃대에서 처음 만난 시점으로 거슬러 가 있었다.

“그해 박 신부를 만나는 순간 희망과 흥분을 함께 느꼈어요. 박 신부가 한국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큰일을 할 것으로 예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기적입니다.”(악셀로드 신부)

“신부님은 겸손하고 평화로운 분이었습니다. 그 뒤 신부님이 남은 시력마저 다 잃었다는 소식에 제 가슴이 무너졌어요.”(박 신부)

세 살 때 선천성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악셀로드 신부는 1970년 사제가 된 뒤 세계 각지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목 활동을 펼쳐 왔다. 1980년 시각과 청각 장애를 모두 갖는 어셔증후군 판정을 받은 뒤 2000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자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러나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고 여기자 인생이라는 긴 계단은 새로운 ‘문’을 보여 줬습니다.”(악셀로드 신부)

박 신부는 힘든 미국 유학생활 끝에 2004년 뉴욕 성요한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도중에 논문심사 탈락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10년간 준비한 석사 논문이 탈락하자 ‘이제 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이마저도 못하면서 장애가 있는 내가 어떻게 신부가 될 수 있겠느냐는 절망감이었죠. 신부님을 보면서 나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박 신부)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어머니는 정통 유대교 신자이면서도 가톨릭을 선택한 저의 길을 축복했죠. 항상 제 의견을 존중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난 가톨릭 랍비’라고 할 정도로 관용을 갖게 됐습니다.”(악셀로드 신부)

“중학생 시절 일반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의 입을 뚫어져라 보며 ‘나는 왜 여기 있나’며 속으로 울었죠. 그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강해져라, 너는 할 수 있다’고 하셨죠.”(박 신부)

악셀로드 신부는 자신의 인생을 이끈 최고의 키워드로 “인커리지먼트(encouragement·격려)”를, 박 신부는 “다 함께”를 각각 꼽았다.

강연 참석을 위해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일어난 뒤 기자를 잡은 악셀로드 신부의 손에는 따뜻함과 평온함이 가득했다. 그의 강연 제목은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였다. 그랬다.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은 있었지만 포기는 없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시청각장애신부#청각장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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