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축구 안 배웠다면 거리서 돌 던졌을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 요르단 북부 자타리 사막 ‘시리아 난민캠프’를 가다

캠프의 축구장에 모인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다. 출석률이 매우 낮은 학교와 함께 축구장은 ‘어른들의 전쟁’에 상처받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아이들에게 전쟁에 관한 기억을 묻는 것은 캠프의 금기사항이었다. 자타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캠프의 축구장에 모인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다. 출석률이 매우 낮은 학교와 함께 축구장은 ‘어른들의 전쟁’에 상처받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아이들에게 전쟁에 관한 기억을 묻는 것은 캠프의 금기사항이었다. 자타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마무드(가명·24) 씨의 꿈은 시리아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처음 시작된 남부 다라의 한 축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내전이 본격화하자 그는 축구장을 벗어나 총을 쥔 반군이 됐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요르단 북부 자타리 난민캠프에서 만난 그는 이제 난민으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작은 축구공을 통해 전쟁의 공포를 잊고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의 꿈을 묻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싸우러 나갈 것”이라고 했다.

캠프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자타리의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 이달 29일로 설치 1주년을 맞는 캠프 입구에는 전차와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배치돼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9km² 면적에 난민 12만 명을 수용한 이 캠프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캠프 중 최대 규모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관리하는 전 세계 난민캠프 중 소말리아 난민을 위한 케냐 다다브 캠프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자타리 캠프는 시리아와의 국경에서 불과 12km 거리에 있다. 정부군이 공세를 강화하자 캠프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말도 떠돈다. 그러나 캠프 외곽에 만든 축구장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축구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마무드 알오마리 씨(50)는 “축구가 없다면 아이들은 거리에서 경찰이나 구호단체 직원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싸우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5월 문을 연 5개의 축구장은 한국 개신교 방송사인 극동방송(이사장 김장환 목사)이 10만 달러(약 1억1335만 원)를 후원해 조성된 것이다.

캠프 곳곳에는 후원 국가의 국기가 붙어 있는 주거용 컨테이너 하우스(카라반) 1만6000여 채가 들어서 있다. 카라반 쿠리, 즉 코리아촌도 있다. 극동방송이 카라반 400채 등 20억 원을 기부한 것을 계기로 한국 정부와 SK그룹에서 1700채의 카라반을 지원했다.

UNHCR 직원들과 함께 카라반 쿠리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였다. 난민들의 고함이 터졌다. “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느냐.” “위험해서 딸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 히잡 차림의 한 여성은 젖먹이를 보여주며 “생후 9개월까지는 우유를 주지만 그 이상은 주지 않는다. 채소라도 갈아 먹이고 싶지만 살 돈이 없다”고 했다. 기자를 자신의 카라반으로 안내한 27세 남성은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죽음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여기는 온통 사람으로 꽉 찬 감옥 같다”고 했다.

이처럼 캠프는 비좁고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UNHCR 직원들의 표현을 빌리면 ‘캠프 샹젤리제’의 출현이다. 아랍어로 ‘두칸’, 즉 작은 가게들이 메인 출입구로부터 ㄱ자 형태로 약 3km에 걸쳐 빼곡하게 들어섰다.

난민들이 바람막이 용도로 지급받은 양철판과 나무판자를 붙여 만든 6.61m² 남짓한 가게들이 이젠 3000개가 넘어섰다. 과일이나 빵, 과자뿐만 아니라 그릇과 가구, 심지어 가전제품까지 팔고 있다. 특히 아부 무함마드라는 난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은 명소로 알려져 있다. UNHCR 직원은 “무함마드의 한 달 매출이 1만 달러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며 “음식이 괜찮다. 배고프면 한번 가 보라”고 권유했다. 샹젤리제가 활성화되자 요르단인의 보증을 받아 캠프 외부에 거주하던 난민들이 돈벌이를 위해 다시 캠프로 들어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캠프는 한낮에도 왁자지껄한 시장통의 활기를 보이지만 전쟁의 공포와 분노는 계속되고 있다. 새로 캠프에 도착한 난민들이 고향 얘기를 전하면 그 뉴스는 ‘전염병’처럼 번져 캠프를 무겁게 짓누른다. 누군가는 다시 총을 잡기 위해 캠프를 떠나 국경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고향의 남은 가족을 데려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물건을 사러 떠난다.

캠프 소장 킬리안 토비아스 클라인슈미트 씨(50·독일)는 “난민이 올해 말까지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며 “1992년 설치된 다다브 캠프를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운영하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고 말했다.

자타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시리아 내전#시리아 난민캠프#축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