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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조금만 더 빨리 달릴 수 없을까요.” 5월 프랑스 중서부 낭트에서 열린 한국 관련 문화행사 ‘한국의 봄’ 취재차 특파원단이 파리에서 전세버스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의 예상 소요 시간인 4시간보다 1시간 30분가량 여유롭게 출발했지만 가는 길은 더디기만 했다.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프랑스 고속도로의 최고 제한속도는 시속 130km. 그러나 이 전세버스는 제일 마지막 4차로에서 시속 100km로 변함없이 달리고 있었다. 1∼3차로에서 승용차들이 연신 추월했지만 4차로를 달리는 버스들은 똑같은 간격으로 줄지어 달렸다. 버스 운전사에게 조심스레 독촉을 했지만 단호히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프랑스 전세버스는 시속 100km를 넘지 않도록 속도제한기가 장착돼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운전사는 승객들에게 언제 휴게실에서 쉴 것인지를 물어봤다. 그는 45분 이상 쉬어야 한다고 답했다. 프랑스는 4시간 30분 이상 연속 운전을 할 수 없으며 그 사이 45분을 반드시 쉬어야 한다. 졸음이 오거나 지나친 피로로 운전기사의 건강을 해칠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승객들은 휴게실에서 10분 만에 볼일을 마쳤지만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운전사는 그 사이 맨손체조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휴게소에서 조금만 미리 출발할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고 했다. 휴식시간이 모두 기록되기 때문이다. 휴게소에 도착해 시동이 꺼지는 순간부터 시동이 켜지는 시간까지 모든 기록이 남는다. 규정 시간을 어길 경우 운전사가 처벌을 받는다. 미국도 의무 휴식 제도를 엄격히 지킨다. 버스는 10시간, 화물차는 11시간 연속 운전 후 각각 최소한 8시간, 10시간을 쉬어야 한다. 미국 교통부 산하 연방운수차량안전국(FMCSA)은 사고 횟수에 따라 위험도가 높은 업체들을 따로 관리한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교통 선진국의 경우 운전자 개인별로 운행카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디지털운행기록계를 관리하고 있다”며 “차량별 관리만 가능한 국내 디지털운행기록계도 시스템 개발을 통해 개인별 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정성택 기자}
인천의 한 마트 주차장에서 일곱 살 남자 어린이가 차량에 치여 숨졌다. 이런 마트 주차장이나 아파트 단지 도로는 수많은 차량이 오가지만 현행법상 도로가 아니다. 한 해 발생하는 교통사고 10건 중 4건이 바로 이런 ‘도로 외 구역’에서 발생한다. 6일 인천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58분경 인천 중구의 한 마트 야외주차장에서 A 씨(42)가 운전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B 군(7)을 들이받았다. A 씨는 B 군을 전·후진하면서 두 번이나 치었다. B 군은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주차장이 비포장이라 웅덩이 같은 곳에 들어간 줄 알았다. 아이를 치었는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B 군은 부모의 가게가 근처에 있어 자주 이 주차장에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추가 조사와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거쳐 A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사고 현장은 차량이 다니는 곳이지만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분류돼 있지 않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도 마찬가지다. 사유지에 만든 시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로 외 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나도 공식 교통사고 통계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아파트 단지가 늘면서 교통사고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 도로 외 구역(37.1%)이다. 다음으로 이면도로(29.8%), 지방도(19.9%) 순이다. 도로 외 구역의 교통사고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어린이와 노인이다. 그런데도 규정이 없는 탓에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안전대책은 없다. 도로 외 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내면 일반 도로에서와 똑같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정성택 neone@donga.com·서형석 기자}

경찰이 이르면 연내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IID·Ignition Interlocking Device)’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가급적 올해 안에 법을 고친 뒤 준비기간을 거쳐 1, 2년 후 본격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는 술을 마시면 아예 운전을 못 하도록 차량 시동을 제한하는 장치다. 일반 운전자보다 음주운전 전력자의 재범을 막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음주운전자의 전자발찌’로 평가받는다. 경찰청 관계자는 “상습 음주운전자를 대상으로 시동잠금장치를 부착한 자동차만 운전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는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기와 자동차의 시동 관련 장치를 연동한 것이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음주측정기를 차량에 설치한 것으로 보면 된다. 운전자가 술을 마시지 않은 게 확인돼야 시동이 걸린다. 시행 대상은 여러 차례 적발된 상습 음주운전자다. 면허 취소 기간 만료 전 운전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시동잠금장치가 부착된 차량만 운전해야 하는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하는 것이다. 또는 △취소 기간이 끝난 뒤 시동잠금장치를 반드시 달아야만 운전이 가능하거나 △예방적 차원에서 버스 등 대형 차량에 부착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음주운전 22만3654건 중 7.7%가 4회 이상 적발된 상습 음주운전이었다. 2013년에는 5.6%였다. 같은 기간 전체 음주운전이 약 2만3000건 줄었지만 4회 이상 상습 운전자는 오히려 늘었다. 또 2009년 이후 음주운전 면허취소자 중 33.9%(8만8625명)가 무면허 운전으로 적발됐다.정성택 neone@donga.com·서형석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3호터널 앞. 한참을 멈춰 서있는 외제차 안에 30대 남성이 잠들어 있었다. 힙합 듀오 ‘리쌍’의 멤버 길(본명 길성준·39)이었다. 경찰은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다. 면허 취소 수치인 0.165%였다. 앞서 그는 2014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 이듬해 사면을 받고서 또 음주운전을 한 것이다. 배우 윤제문(47)은 지난해 3번째 음주운전에 적발됐다. 이들은 사과했지만 반복된 음주운전을 향한 시선은 싸늘했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IID·Ignition Interlocking Device)’는 이런 상습 음주운전자를 대상으로 한다.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음주운전은 조금씩 줄고 있지만 상습 음주운전은 늘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폐해도 심각하다. 하지만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처벌을 받아도 운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음주운전 근절을 개인의 의지에만 맡기기보다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게 경찰과 교통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음주운전도 ‘전자발찌’처럼 통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도입은 조건부 운전면허제 시행으로 이어진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된 운전자 가운데 생계 등의 이유가 인정되면 일정 기간 후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는 것이다. 이때 조건이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다. 운전면허증에는 조건부 내용이 표기된다. 원래 예정된 면허 취소나 정지 기간이 끝나도 1, 2년 더 시동잠금장치를 부착하도록 제한하는 게 경찰의 구상이다. 경찰은 상습 음주운전 예방은 물론이고 생계형 음주운전자의 무면허 운전도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음주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객관적 절차를 통해 확인되면 합법적으로 운전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시동잠금장치는 교통사고 감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멕시코주는 2002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화했다. 당시 225명이었던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0년 140명으로 줄었다. 애리조나주도 2007년 도입 당시 399명이던 사망자가 2014년 199명으로 감소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평균 8125억 원. 시동잠금장치 도입으로 음주운전이 10%만 줄어도 8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이미 국회에는 시동잠금장치를 도입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제출돼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조건부 운전면허 대상자가 시동잠금장치가 없는 차를 운전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이다. 기술적 문제도 없다. 국내 시동잠금장치 관련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부 업체는 해외 수출까지 하고 있다. 음주측정기는 물론이고 운전자 본인 확인을 위한 실시간 얼굴 인식 기능까지 갖췄다. 시동잠금장치 설치 운전자들의 운행기록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센터와 통신설비 마련도 예산만 뒷받침되면 가능하다. 음주운전 단속과 교통사고 예방에 투입되는 예산을 감안하면 조기 도입이 어렵지 않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해외에선 블랙박스만큼 중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는 외국에선 이미 보편적인 자동차 안전기기다. 미국에서는 1986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주에서 시행 중이다. 음주운전 재범자뿐 아니라 초범이라도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의 차량에 의무적으로 장치를 부착하도록 했다. 호주 스웨덴 캐나다 프랑스 핀란드 네덜란드는 대중교통뿐 아니라 통학버스에도 반드시 달도록 하고 있다.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 등의 장치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특히 교통 선진국일수록 음주운전을 더 이상 운전자 개인의 통제 아래에 놓아선 안 된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초 미국 노바사우스이스턴대의 이오아나 포포비치 박사 연구팀은 알코올약물사용장애(SUD)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한 뒤 음주운전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99년 핀란드에서도 음주운전이 정신질환과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해외에서는 면허 정지나 취소 같은 행정처분보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설치가 더 효과가 크다고 본다”며 “시동잠금장치 장착이 운전자에게 음주운전을 단념하게 하는 심리적 제동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정성택 기자}
‘불면허’ 효과가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운전면허시험 난도가 높아진 뒤 초보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운전면허를 취득한 초보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562건이다. 전년도 같은 기간 904건에 비해 37.8%나 줄었다. 사망자는 13명에서 9명, 중상자는 334명에서 184명으로 각각 감소했다. 이때는 운전면허시험이 어려워진 직후다. 난코스로 꼽히는 직각주차(T자 코스)와 경사로 등이 추가됐다. 장내기능시험 합격률은 시행 전 92.8%였으나 시행 후 6개월간 54%로 크게 줄었다. 장내기능시험만 합격한 연습면허 소지자의 교통사고도 이 기간 16건으로 전년도 60건에서 73.3%나 줄었다. 연습면허 소지자가 인명 피해 사고를 낸 경우도 43건에서 9건으로 감소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운전면허시험이 어려워진 덕분에 거리로 나서는 초보 운전자의 실력과 교통법규 이해력이 크게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며 “초보 운전자의 교통사고 감소로 절감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이 12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11년 까다로운 운전면허시험을 일종의 규제로 보고 대폭 간소화했다. 하지만 운전면허 따기가 쉬워지면서 교통사고 위험도 덩달아 커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원정 올 정도였다. ‘물면허’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운전면허시험이 대폭 개선됐다. 학과시험 문제은행 문항이 730개에서 1000개로 늘었다. 난폭·보복운전 금지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장내기능시험도 차로준수 등 2개에 직각주차와 경사로, 좌·우회전, 교차로, 가속 등 5개가 추가됐다. 기능시험 주행거리도 50m에서 300m로 늘어났다. 이수일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야간 운전과 겨울철 운전, 고속도로 운전 등 면허 취득 후 실제 겪을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정성택 기자}
2014년 5월 10일 오후 9시 30분경 울산 중구의 한 식당 앞. 좁은 도로를 달리던 택시 한 대가 갑자기 주차된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야간에 지나는 차량이 많지 않아 교통사고가 거의 나지 않는 곳이다. 원인은 술이었다. 경력 12년의 택시운전사 반모 씨(51)가 반주로 막걸리 반병을 마신 것이다. 경찰은 오후 10시 15분경 반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다. 수치는 0.097%였다. 면허취소 기준(0.1%)에 가까웠다. 반 씨는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운전 당시 정확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알 수 없다는 이유다. 통상 알코올이 몸에서 빠르게 흡수되는 시간을 음주 후 30분부터 90분까지로 본다. 이를 ‘혈중 알코올 농도 상승기’로 부른다. 반 씨의 사고는 술을 다 마시고 약 10분 후 발생했다. ‘아직 취하지 않은 상태’일 가능성이 있어 처벌 기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반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울산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운전 종료에서 음주 측정까지 간격이 45분에 불과하고, 측정 수치도 0.097%로 처벌 기준인 0.05%를 크게 넘었다”며 “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관련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했다. 김인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부장은 “이번 판결은 음주운전 당시와 혈중 알코올 농도 상승기를 나누지 않고 전체 맥락에서 판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아직 법적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위드마크 공식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이젠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드마크 공식은 운전자가 마신 술의 양과 경과 시간, 몸무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알코올 농도를 도출하는 것이다. 경찰은 음주운전 며칠 후에도 이 공식을 사용해 운전자가 얼마나 취해 있었는지 추정한다. 또 위드마크 공식의 증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술자리 동석자 등의 진술과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음주 장면 등을 함께 활용한다. 하지만 법원은 위드마크 공식으로 얻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5년 1월 충북 청주시에서 발생한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서 귀가하던 피해자를 30대 운전자가 치어 숨지게 한 뒤 달아난 사건이다. 도주 19일 만에 붙잡힌 운전자는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위드마크 공식으로 추정한 혈중 알코올 농도는 1, 2심은 물론 대법원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줄고 있지만 재범률은 오히려 높아지는 게 특징”이라며 “음주운전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처벌하려는 사법적 의지가 있어야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정성택 neone@donga.com·배석준·서형석 기자}

“보도(步道·인도)가 있어야 할 곳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량들이 서 있으면 아이들은 차도를 걸을 수밖에 없어요.” 20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사무소 근처에서 한 시내버스 운전사가 털어놓았다. 이곳은 15일 배정규(가명·10) 군이 시내버스에 치여 숨진 현장이다. 편도 1차로의 좁은 길이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지만 등하교 때 아이들이 걸어 다닐 최소한의 공간조차 없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교통 전문가와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았다. 운전사의 과실 여부를 떠나 도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실종된 보도 △불법 주정차 △좁은 차도 등 통학안전을 위협하는 3대 원인을 현장에서 찾아냈다. ○ 보도 없는 스쿨존은 ‘킬링 존’ 사고 지점 바로 옆 주차장 한 곳에는 정규 군을 추모하며 친구와 주민들이 놓고 간 과자와 음료수, 빨간 우산이 함께 있었다. 양옆에는 하얗게 칠하다 만 18L 용량의 식용유 통이 있었다. 통에는 ‘보도 주차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근처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는 임휘택 씨(65)는 “(너무 위험해서) 이렇게라도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정규 군은 하굣길에 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난 곳은 스쿨존의 끝자락이다. 보도가 끝나는 곳에서 약 8.8m 떨어져 있다. 사고 지점을 포함해 주변 약 10m 구간은 목욕탕 주차장이다. 주차를 2열로 할 수 있어 주차장이 가득 차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공간은 30cm가 채 안된다. 사고 지점을 포함해 약 50m 구간은 한쪽 도로엔 아예 보도가 없었다. 사고 지점 반대편 도로 옆엔 폭 1m의 보도가 있었다. 성인 1명이 겨우 걸을 정도의 폭이다. 그마저도 10m가량 걸으면 폭이 절반으로 줄었다. 현장을 점검한 교통안전공단 충북지사 백승엽 안전관리처 차장은 “중앙선과 차선이 벗겨진 곳이 많아 차량들이 뒤엉키면서 도로 가장자리로 향하면 보행자는 무방비”라고 말했다. 사고 지점은 편도 1차로 차도 3개가 만나는 삼거리다. 가장 넓은 차도의 폭이 3m 남짓이다. 좁은 곳은 2.25m. 도로교통법상 차도의 폭은 최소 2.75m 이상이 돼야 한다. 일반 시내버스가 지나가면 여유 공간이 거의 없다. 옥산면사무소 앞은 학원과 병원 상가가 몰려 있다. 각 건물 앞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점령하고 있다. 이날도 사고 지점 근처의 한 편도 1차로에는 반경 약 10m 안에 차량 8대가 불법 주차 중이었다. 차량 사이로 어린이가 불쑥 나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커 보였다. 버스 종점까지 있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버스도 어린이들에겐 심각한 위협이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버스 운전사가 삼거리에서 전방을 보지 않고 다른 쪽 차량을 먼저 살피다 사고를 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교통안전공단 충북지사 황용진 안전관리처장은 “사고 차량의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분석한 결과 사고 시점에 운전자가 3초간 브레이크를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3초 정도면 어떤 부딪힘 때문에 반사적으로 제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운전사는 사고 당시 정규 군 충격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광주 스쿨존 사고현장도 ‘판박이’ 정규 군이 사고를 당한 날 광주 북구 오치동에서도 조모 양(7)이 집으로 가던 중 차량에 치여 숨졌다. 조 양이 숨진 곳도 스쿨존이었다. 이곳 역시 ‘보도 실종’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꼽혔다. 20일 사고 현장을 둘러본 하태준 전남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가 난 스쿨존 보도는 한쪽 방향만 설치돼 있거나 끊기는 등 미로처럼 복잡해 초등학생들이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사고 지점 주변의 편도 1차로 400m 구간이 내리막길이라 과속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사고 구간은 광주 북구 문흥지구에서 전남대 후문 방향으로 오가는 차량이 시간당 평균 400∼500대에 이른다. 사고 지점 인근 초등학교 옆 편도 1차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30km다. 하지만 이날도 시속 50∼60km로 운행하는 차량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스쿨존 횡단보도 인근에서 안전봉을 들고 스쿨존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김종선 씨(78)는 “스쿨존 운행 차량 중에는 시속 100km에 가깝거나 심지어 추월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구간에는 과속방지턱 3개만 설치돼 있는 등 교통안전 시설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 교수는 “인도를 양쪽으로 만들어 과속과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고 과속단속 카메라도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청주=정성택 neone@donga.com / 광주=이형주 기자공동기획 : 국민안전처 국토교통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교통문화 개선을 위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save2000@donga.com)로 받습니다.}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빨리 대피하세요.” 동행한 전문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파트 비상 대피로를 찾아 내달렸다. 볕이 들지 않는 복도는 어두침침했다. 야광으로 된 유도표지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복도 곳곳에는 자전거와 가구 문짝 등이 방치돼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피해야 위층으로 갈 수 있었다. ‘실제 상황’이 아닌데도 진땀이 났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만약 한밤중 진짜로 불이 나 정전까지 된다면 이런 물건에 부딪혀 대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대부분 가연성 물질로 된 물건이라 화재 때 ‘불쏘시개’ 역할까지 해 더욱 위험했다”고 말했다. 지은 지 43년 된 영국 런던의 24층짜리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로 최소 10여 명이 사망하면서 국내 노후 건축물도 예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 취재진은 박 교수와 함께 지은 지 40년 이상 된 서울의 노후 아파트 3곳을 긴급 점검했다.○ 화마 닥치면 소방차도 무용지물 15일 서울 중구의 한 10층짜리 아파트. 1970년 완공됐다. 불이 난 런던 ‘그렌펠타워’보다 4년 앞선다. 350가구 규모지만 리모델링을 앞두고 현재는 70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이 아파트엔 층별 방화벽이 없다. 아래층에 불이 나면 위쪽으로 급속히 번져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복도 위로 가스관이 지나가고 건물 외벽엔 낡은 전선줄이 뒤엉켜 있다. 불이 나면 모두 ‘시한폭탄’으로 변할 수 있다. 노후 아파트의 화재 위험성은 모두 비슷했다. 화재에 취약한 낡은 건축 자재가 여전히 많고 소방 설비도 취약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아파트는 1930년대 완공된 5층짜리 아파트다. 아파트 안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상시 생명을 지켜줄 최후의 수단인 안전장치가 없었다. 소화전에는 비상등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소화기는 도난 방지를 위해서인지 쇠줄로 묶여 있거나 오래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옥상으로 가는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한 주민은 “믿을 건 소화기밖에 없는데 확인해 보니 사용기한이 지나 있었다. 관리실에 교체를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40년 이상 사용 건축물은 15만5988동으로 전체 건축물의 25%에 달한다. 박 교수는 “당장 시설 보강과 법 개정이 어렵다면 화재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철저히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피로나 비상구 위치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노후 아파트 주민들은 화재 발생 시 대피를 위한 안내나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주민은 “구청에서 실태조사를 나왔는데 건물 벽체만 뜯어보고 아무 조치 없이 그냥 갔다”며 “화재 대피와 관련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초고층 건물도 불안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초고층 건물도 문제다.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3266개 동이다.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초고층 건물은 107동이나 된다. 최근 3년간 고층 건물 화재는 2014년 107건에서 지난해 150건으로 늘었다. 올해 6월 현재 57건이 발생했다. 2월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66층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인 메타폴리스 단지 내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치기도 했다. 국민안전처는 런던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의 긴급안전점검을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긴급안전점검은 소방시설과 피난·방화 설비, 건축 외장재뿐만 아니라 가스 및 전기 설비도 포함된다. 긴급안전점검 대상에 포함되는 고층 건물 중 아파트가 2701곳이다. 전체 82.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당장 사고 예방을 위해선 현장에서 재난 대응 매뉴얼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는지 당국이 확인해야 한다”며 “사고 발생 후 책임을 묻는 성격의 처벌보다 미흡한 예방과 대비를 처벌하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신규진·정성택 기자}

“눈을 감아주세요.” “진동 들어왔습니다.” 9일 경기 화성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종합시험로. 45인승 버스의 속도계가 시속 50km를 가리킬 즈음, 선글라스를 낀 운전사가 잠시 눈을 감았다. 운전대와 계기판 사이에 달린 소형 특수카메라가 운전사의 얼굴을 빠르게 분석했다. 운전사의 손목에 찬 시계모양 밴드가 부르르 떨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운전사가 눈을 감은 지 불과 1초 만이었다. 이 장비는 교통안전공단에서 8개 유관기관 및 민간업체와 공동 개발 중인 ‘버스 운전자 졸음·부주의 경고 장치’다. 운전자의 신체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동으로 위험 경고를 보내는 기술이다. 공단은 일반 차량에 비해 대형 사고의 위험이 큰 대형 차량의 안전운전을 유도하기 위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 2013년부터 4년에 걸쳐 35억 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들였다. 올해 4월 수도권 운행 광역직행버스 5대를 대상으로 1차 시범운영도 마쳤다. 이날 교통안전공단은 △눈을 감았을 때 △앞을 보지 않을 때 △앞차와 간격이 줄어들 때 △차로를 바꿨을 때 등으로 나눠 경고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줬다. 이 장치는 기본적으로 소형 카메라가 들어가 있는 얼굴 모니터링 장치가 눈 깜빡임 등 운전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안전띠에 부착된 호흡 감지기와 손목에 착용한 밴드로 맥박수도 확인해 운전자가 졸린 상태인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앞차와의 충돌 방지는 운전석 앞에 설치된 전방 인식 카메라를 통해 수집한 정보와 운전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계산해 판단한다. 시속 50km에서 앞차와의 거리가 약 14m로 가까워지자 손목 밴드 진동과 함께 경고음이 울렸다. 차로를 벗어났을 때도 전방 카메라가 흰색 차선을 인식해 이탈 여부를 알려줬다. 최경임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처장은 “올 하반기 전국을 운행하는 버스 15대를 대상으로 2차 시범운영을 할 예정”이라며 “이후 버스뿐만 아니라 화물차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모델로 상용화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화성=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주택가 골목 등에서의 차량 운행 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제한하는 보행자 안전 대책이 법으로 만들어진다. 국가 차원의 보행안전 종합대책도 수립된다. ‘사람 중심의 안전’이라는 새 정부 정책기조에 맞춰 보행자 교통안전 정책이 대폭 강화되는 것이다. 8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이르면 올 하반기 전국 이면도로를 ‘30구역’으로 지정하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된다. 30구역은 보행자 안전을 위해 주택가와 상가 밀집지역 등의 주변 도로 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다. 현재 30구역은 안전처 및 경찰청의 ‘생활권 이면도로 정비지침’으로 운영 중이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를 위한 5대 제언을 선정했다. 향후 5년간 교통사고 사망자를 2000명 줄이기 위해 ‘이면도로 제한속도 30km’ 등 도심 제한속도 10km 하향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보 보도 후 경찰청은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추진 중이다. 도시의 간선도로 등 왕복 4차로 이상 도로의 제한속도를 현행 시속 60km에서 50km로, 왕복 2차로 등 이면도로는 30km로 일괄해 낮추는 정책이다. 국토교통부도 올 2월 발표한 제8차 국가교통안전기본계획(2017∼2021년)에 이 같은 내용을 반영했다. 도로교통법에 30구역 정책이 반영되면 보행자 안전 정책 추진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중앙정부가 보행안전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법도 개정된다. 현행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보행안전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만 기본계획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돼 있다. 정종제 안전처 안전정책실장은 “현재 보행안전 기본계획을 세워야 하는 161개 지자체 중 58%만 계획을 수립한 상태”라며 “정부 차원에서 기본계획을 만들면 지자체에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본 목표 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시행규칙으로 들어가 있는 ‘보행자 우선도로’ 규정도 보행안전법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지난해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4292명 중 39.9%(1714명)가 보행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보행자 사망은 3.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1명의 약 3.5배에 달한다. 안전처에 따르면 충돌 속도가 시속 50km일 때 보행자 치사율은 80%에 달하지만 30km 이하에선 10% 내외로 감소한다. 교통 선진국인 독일의 경우 도심 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50km로 낮춘 후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20% 줄었다. 덴마크도 똑같이 제한속도를 하향하고 교통사고 사망자를 24% 줄였다. 안전처는 이날 경찰청 등 유관기관 및 민간 전문가가 참석한 토론회 개최를 시작으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이달 말 보행안전 종합대책을 확정할 예정이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법률 개정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 단기간에 통학차량 안전을 강화할 수 있다. 교통안전공단이 도입한 ‘어린이 안심 통학버스’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4일 공단에 따르면 이는 통학차량에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설치해 활용하는 서비스다. DTG는 통학차량의 과속 운행은 물론이고 급가속과 급제동 등을 자동으로 파악해 기록하는 장치다. 통학차량이 언제 어떻게 위험한 운행을 하는지 정확하게 진단할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운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운전 습관을 개선하게 된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도 있어 차량의 위치를 교사와 학부모들이 개인용 컴퓨터(PC) 및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교통안전공단이 경북 김천 지역 통학차량 53대에 시범 운영한 결과 교통사고가 설치 전보다 41% 줄었다. 교통안전공단은 통학차량을 타고 내릴 때 자동으로 이를 파악하는 기능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 김규호 공단 운행기록팀장은 “올해 안에 김천 지역 어린이집의 통학차량 100대에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다른 지방자치단체와도 협의해 어린이 안심 통학버스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정성택 neone@donga.com·서형석 기자}

“국민안전처 간판을 내릴 순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안전업무는 반드시 강화돼야 합니다.” 안전처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안전처를 구성하던 해경과 소방의 독립 방침을 밝혔다. 안전처는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탄생한 안전처는 2년 6개월 만에 간판을 내릴 처지다. 물론 해경 독립은 정확히 말하면 복원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해경은 대폭 축소된 뒤 안전처의 한 조직이 됐다. 이후 중국의 불법 조업 어선이 해경 고속단정을 침몰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등 해양범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현장 해경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방도 조직의 자율성이 떨어져 재난 발생 때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두용 한국안전학회 부회장은 “재난 상황에서 가장 기본은 현장 대응이다. 육상은 소방, 해상은 해경이 원칙이다. 그 위에 안전처를 만든 건 관리조직을 얹는 것뿐이었다”며 “출범 당시에도 조직의 자율성을 해치면서까지 안전처를 만드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해경과 소방의 독립은 이런 시행착오 후 내려진 당연한 결과다. 결국 안전처에 남는 건 과거 안전행정부(안행부) 시절 안전관리본부 조직이다. 국가 차원의 재난 발생 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국정기획위는 29일 “아직 확정된 게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현재 행정자치부와 통합하는 개편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자부와 통합돼 과거 안행부로 되돌아가면 안전 업무가 장관의 여러 일 중 하나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의전과 정부조직 관리 등의 업무를 맡는 장관이 안전을 전담해서 챙기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자연스레 차관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다른 부처와 안전 관련 정책을 협의하는 데 주도권을 갖기 힘들게 뻔하다. 옛 안행부 출신의 안전처 관계자는 “안행부 시절 안전 관련 부서는 핵심 보직이 아니다 보니 능력 있는 인재들이 지원하려 하지 않았다”며 “행자부와 통합되면 이러한 기피 현상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하성 경일대 교수는 “앞으로는 질병과 테러 등 서로 다른 재난이 겹쳐서 일어나는 복합재난의 형태가 많아질 것”이라며 “이럴수록 정부가 사전에 재난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부터 지진과 가뭄까지 최근 늘어나는 재난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안전 강화라는 지향점 없는 정부조직의 ‘뗐다 붙이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한 투자는 결코 낭비가 아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앞으로 통학차량 운행 후에는 반드시 내부에 어린이가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찰청은 이런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다음 달 3일부터 시행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에 신설된 어린이 하차 확인 의무를 위반하면 범칙금 12만 원, 벌점 30점이 부과된다. 지금까지는 어린이가 승하차하는 과정에서의 안전만 확인하면 됐다. 운행 종료 후 하차 확인 의무가 추가된 것은 어린이가 통학차량에 방치된 사고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광주의 한 유치원에서 최모 군(4)이 8시간가량 통학차량에 갇혔다가 찌는 듯한 무더위에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 2월에도 전남 광양시의 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7세 어린이가 30분간 방치됐다가 지나가던 사람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과태료 부과가 가능한 항목도 확대된다. △지정차로 위반(4만 원) △통행구분 위반(7만 원)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5만 원) △보행자보호 불이행(7만 원) △적재물 추락방지조치 위반(5만 원) 등이다. 지금까지 이 같은 위반은 범칙금 부과 대상이었다. 차량 주인에게 부과하는 과태료와 달리 범칙금은 위반한 운전자에게 물려야 한다. 운전자를 확인할 수 없으면 부과할 수가 없다. 이번 조치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항목은 △과속(과속 정도에 따라 4만∼13만 원) △끼어들기(4만 원) △꼬리물기(5만 원) △신호위반(7만 원) △중앙선 침범(9만 원) △전용차로 위반(5만 원) △주·정차 위반(4만 원) △긴급자동차 양보의무 위반(7만 원) △고속도로 갓길 위반(9만 원) 등과 함께 총 14개로 늘어났다. 주·정차 차량과 교통사고가 났을 때 신고 의무(위반 시 범칙금 12만 원)도 신설됐다. 지금까지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위반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고로 교통 흐름이 방해받을 때 또는 교통안전에 위험이 있을 때만 인정됐다. 가볍게 차량을 훼손하고 도주했을 경우 가해 운전자를 붙잡아도 처벌할 수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설치해야 하는 안전삼각대 위치 규정도 ‘후방 100m’에서 ‘후방에서 접근하는 차가 확인할 수 있는 위치’로 개정됐다. 안전삼각대를 설치하려고 가다가 오히려 2차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앰뷸런스 등 긴급자동차의 양보요령도 ‘우측 가장자리로 양보’에서 길 양쪽을 다 포함할 수 있게 ‘긴급차가 우선 통행할 수 있도록 양보’로 바뀌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평소에 아이들이 남편 차를 타면 앞질러 가는 다른 차량들을 보고 ‘아빠 또 졌어!’라는 말을 곧잘 했어요. 이젠 아빠 따라서 서로 안전운전 하겠다고 하네요.” 가족이 교통안전공단 안전체험교육을 받은 박수정 씨(49)의 소감이다. 초등생 두 아들과 함께 박 씨 부부는 27일 경기 화성시 교통안전 체험교육센터에서 열린 ‘한마음 가족 안전운전 체험교육’에 참가해 안전운전 경진대회 대상을 받았다. 서울 경기 인천에서 19가족이 참가했다. 국내에서 가족단위 교통안전체험교육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가 가족들은 안전띠를 매지 않고 급제동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직접 느껴 보고 곡선 주로나 교차로에서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 경제적으로 운전하는 법과 효과 등을 체험했다. 박 씨는 “시속 15km 정도로 달려도 급정거를 하면 속이 울렁거리는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아이들도 과속은 위험하고 안전벨트는 꼭 매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진대회에서는 대상 1팀, 최우수상 1팀, 아차상 2팀이 수상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참가 가족들은 ‘교통안전 실천 다짐식’을 갖고 안전운전을 약속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한국의 교통안전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고속도로 안전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고속도로 사망자는 273명으로 2015년보다 13.3% 증가했다. 최근 5년간 고속도로 사망자는 2013년 298명 이후 2015년 241명으로 매년 줄어들다가 지난해 증가세로 돌아섰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속도로 사망자 중 승합차와 화물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60.4%로 2015년보다 5.6%포인트 늘었다. 차량 1대당 기준으로도 고속도로 내 화물차와 승합차 사망자 규모는 승용차의 각각 6.7배, 6배에 달했다. 최근 5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중 화물차와 승합차로 인한 사고 비중이 60%를 넘은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특히 고속도로 내 화물차 교통사고 증가세는 심각하다. 지난해 사망자가 134명으로 2015년보다 25.2% 늘어났다. 이 중 71.6%(96명)가 사업용 화물차로 인한 사망자다. 2015년과 비교하면 41.2%나 급증했다. 치사율도 일반 사고에 비해 고속도로 사고의 경우 6.3%로 3.3배, 화물차 사고의 치사율(13.6%)은 7.2배에 달했다. 대형사고도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고속도로 대형사고는 20건이었다. 대형사고는 사망자가 3명 이상이거나 사상자가 20명 이상인 사고를 말한다. 최근 5년간 고속도로의 평균 대형사고 건수는 20.4건으로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같은 기간 1km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가장 많은 고속도로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0.13명이었다. 총길이 128km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서울로 들어오는 통근 차량 및 물동량이 많아 2014년을 제외하고 전국 고속도로 중에서 유일하게 모두 0.1명을 넘었다. 영동고속도로의 경우 행락철 이용객이 계속 늘어나면서 승합차 사상자도 꾸준히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영동고속도로의 교통사고 사상자는 매년 늘어나 지난해 212명이었다. 2015년(131명)보다 61.8% 늘었다. 최근 5년간 사상자 규모는 2.5배로 커졌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올해 개원 30주년을 맞았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1987년 5월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성장하자 외형 뿐 아니라 자동차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경기 화성시에 문을 열었다. 1996년 충돌시험동 등 7개 실내시험동을 만들었고 2010년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자동차 등 ‘미래차 시험동’ 운영을 시작했다. 1999년 시작한 자동차안전도평가(KNCAP)를 통해 국민들에게 다양한 자동차 안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현재 첨단 미래형 자동차의 안전을 위한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13년 첨단주행시험로를 완공했고 내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약 36만 ㎡)의 자율주행자동차 실험도시인 ‘케이시티(K-City)’를 선보일 예정이다. K-City는 세계 자율주행자동차 실험시설 중 유일하게 어린이보호구역과 버스전용차로 등 구체적인 교통시설을 구현한다. 가상현실 등 5세대(5G) 시설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연구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교통안전공단은 16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자동차의 안전과 혁신으로 미래를 바꾼다’라는 주제로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에서 오영태 공단 이사장은 “K-City는 자율주행자동차 산업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교통안전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자동차 안전 글로벌 컨퍼런스에 이어 17, 18일 자동차 안전실험 장비 등을 체험할 수 있게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연구원 개방행사가 진행된다. 19일부터 이틀간 국제 대학생 창작자동차 경진대회도 열린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러시안룰렛 같아요.”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의 부인 파스칼 서덜랜드 씨(51)는 ‘횡단보도 건너기’를 이렇게 비유했다. 물론 영국이 아닌 한국 상황이다. 러시안룰렛은 총알 1개가 장전된 리볼버(회전식) 권총을 돌아가며 겨냥해 발사하는 걸 말한다. 이른바 ‘죽음의 승부차기’다. 서덜랜드 씨는 한국의 도로에서 러시안룰렛의 공포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 70대 중 단 1대만 횡단보도에서 멈췄다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주한 영국대사관저에서 서덜랜드 씨를 만났다. 그는 남편과 함께 2015년 2월 한국에 왔다. 국제회의통역사협회(AIIC) 정회원인 그는 이화여대에서 영어 통역을 가르치고 있다. 서덜랜드 씨는 최근 유명 미국 사진작가의 6·25전쟁 사진을 국내에 영구 전시하도록 이끄는 등 대외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는 “평소 한국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며 “동아일보가 한국에서 교통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동안 한국 생활에서 느낀 교통 문화의 문제점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덜랜드 씨가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횡단보도였다. 그는 한국에서 두 딸을 외국인학교에 보내고 있다. 서덜랜드 씨는 “애들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땐 차량을 향해 멈추라는 의미로 손을 뻗는다”고 말했다.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 서있어도 차량이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는 탓에 나온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서덜랜드 씨와 함께 관저에서 나와 근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갔다. 관저에서 직선거리로 250여 m 떨어진 세종로파출소 앞이다. 이곳은 왕복 3차로로 도로 폭이 9m가 채 되지 않는 좁은 이면도로의 진입로다. 파출소 양옆에는 면세점 건물과 호텔이 있고 횡단보도에서 약 85m 떨어진 곳에 지하철역도 있어 유동인구가 많다. 보행자들은 길을 건너기 전 횡단보도 앞에 서서 도로 양쪽을 살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량은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를 보고도 속도를 별로 늦추지 않고 진입로로 ‘돌진’하다시피 했다. 한 관광객은 횡단보도에 이르기 직전 급정거하는 차를 보고 ‘위협’을 느꼈는지 몸을 움츠렸다. 횡단보도 앞에 있던 약 20분간 보행자들을 보고 먼저 멈춘 차량은 70여 대 중 1대뿐이었다. “영국에서는 횡단보도 앞에 보행자가 서있으면 차량들이 일단 멈춥니다. 도로에서는 약자인 보행자를 항상 우선적으로 보호한다는 안전의식이 뿌리내린 것이죠. 아이들 등굣길에 같이 가곤 하는데 학교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갈 때 차량이 속도를 늦추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면 애들이 도로 가장자리에 붙어서 갑니다.”○ “어리석은 죽음 막을 수 있다” 최근 서덜랜드 씨는 한 이화여대 제자가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전에는 한국 지인의 이웃 자녀가 사고를 당해 다친 이야기도 접했다. 그는 “보도가 없는 골목길에서 속도를 늦추지 않는 차량도 아찔하지만 곡예하듯 달리는 오토바이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택시를 탄 경험도 소개했다. 서덜랜드 씨는 한국인 지인과 함께 택시 뒷좌석에 함께 타자마자 평소 습관처럼 안전띠를 맸다. 그러자 지인은 “뭐 하러 안전띠를 매냐. 안 해도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덜랜드 씨는 “지나가는 말이었겠지만 한국인들이 안전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22%에 그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평균 80%가 넘는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안전띠를 매지 않을 경우 맸을 때보다 치사율은 최대 12배 높다. 현재 뒷좌석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서덜랜드 씨는 “영국도 처음엔 안전띠가 생활화되지 않았다”며 “1970년대부터 지속적인 안전띠 착용 캠페인 등을 통해 안전의식 변화를 이끌었기 때문에 지금의 교통안전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사고 사망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죽음(stupid death)’ 같아요. 교통안전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의 강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장 변화가 생기진 않아도 정부가 꾸준히 안전 교육에 힘쓴다면 한국도 안전한 교통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공동기획: 국민안전처 국토교통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교통문화 개선을 위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save2000@donga.com)로 받습니다.}
한국의 도로이용자는 교통 선진국에 비해 졸음운전과 음주운전, 휴대전화 사용 등 이른바 ‘반칙운전’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주요 25개국 중 한국인이 교통법규 위반을 관대하게 보는 비율이 최상위권이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벨기에도로안전연구소(BRSI)와 함께 세계 주요 25개국의 도로이용자 교통안전의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5개국 교통안전 연구기관이 함께 교통안전 설문조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문조사는 국가별로 도로이용자(차량 운전자, 차량 탑승자, 보행자, 자전거·오토바이 운전자) 1000명씩 총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설문 결과 운전 중 위험행동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운전 중 유아용 카시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37%로 25개국 중 가장 낮았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은 33%, 졸음운전은 54%만 용납하지 않는다고 답해 각각 21위, 19위였다. 그나마 용납하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던 음주운전(68%)도 조사 대상 국가 평균(71%)에도 미치지 못했고 20위에 그쳤다. 교통법규 위반에 관대하다 보니 ‘안전운전 불이행’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도 많았다. 2015년 한국의 위반유형별 교통사고 사망자 비중을 살펴보면 휴대전화 사용, 졸음운전 등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안전운전 불이행 교통사고’ 사망자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68.5%였다. 이 중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2.6%에 이른다. 반면 교통사고 경험은 한국인이 가장 많았다. 모든 조사 대상 그룹에서 25개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하지만 도로를 얼마나 안전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엔 25개국 평균(10점 만점에 6.4점)과 0.5점 정도 차이에 그쳤다. 이는 한국 도로이용자들이 실제 교통사고 경험에 비해 그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걸 말한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0.1명으로 25개국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 특히 인구 10만 명당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는 5.2명으로 아일랜드를 제외한 24개국 중 가장 많았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교통빅데이터연구소장은 “도로이용자의 안전의식 개선을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교통안전 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공공 주도의 캠페인과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정성택 기자}

차기 정부는 교통안전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음주운전 단속 기준 및 처벌을 강화하는 데 모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 운전자의 형사책임을 ‘덜어주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도 개정 내지 폐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30일 동아일보가 ‘시동 꺼! 반칙운전’ 교통캠페인 공동기획 기관 및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등 5개 시민단체와 함께 주요 대선 후보를 상대로 교통안전 공약 검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세림이법’도 원안 찬성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 캠프 가운데 문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 측은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현행 혈중 알코올 농도 0.05%에서 0.03%로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본보는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 캠페인을 통해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0.03%로 강화하자고 제언했다. 현재 이 같은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문 후보 측은 단속 기준 강화에는 찬성하되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았다. 음주운전자 사면 여부는 의견이 갈렸다. 안, 유, 심 후보 측은 모든 음주운전 사범에 대해 특별사면은 안 된다고 밝혔다. 홍 후보 측은 단순 음주운전 적발에 한해서만 사면에 찬성했다. 문 후보 측은 찬반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어린이 통학차량의 안전을 강화한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은 현재 원안이 유지될 확률이 높아졌다. 미취학 아동 통학 차량에만 동승자 의무탑승 규정을 적용하자는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이에 모든 후보 측이 반대한 것이다.○ ‘세계 유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바뀌나 교통사고처리특례법도 개정 내지 폐지(심 후보)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1982년 제정된 이 법은 교통사고 가해 운전자가 과속이나 중앙선 침범 같은 11대 중과실을 범하지 않고 종합보험에만 가입돼 있으면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없는 경우 형사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가해 운전자를 지나치게 보호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허억 가천대 국가안전관리대학원 교수는 “현재 세계에서 가해자를 보호해주는 특례법이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인명 피해가 있거나 난폭운전의 경우는 면책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아니면 아예 교특법을 폐지하고 교통사고 기소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체 입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안전특별회계의 부활도 모든 후보 진영에서 찬성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교통 범칙금과 과태료 전액을 교통안전시설 등에만 활용하도록 자동차교통관리개선특별회계가 운용됐지만 이후 정부 예산부처의 반대로 2006년 폐기됐다. 자동차특별회계가 폐지된 뒤 교통 관련 범칙금과 과태료는 국가 일반회계에 편입돼 청사 건립 같은 교통안전과 무관한 곳에 쓰이고 있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빅데이터연구소장은 “전국 주요 9개 지방자치단체의 최근 3년(2013∼2015년)간 인구, 등록차량 대수, 단위 도로당 교통안전 예산 등을 비교한 결과 평균 예산이 100만 원 늘어나면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1.1명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별회계가 부활하면 지역 간 교통안전 시설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국민 10명 중 4명은 일상생활 중 교통사고를 가장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교통안전을 듣는다’는 제목의 발표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대국민 교통안전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조사에는 일반인 661명이 참가했다. 전체 응답자 중 37.0%는 일상을 위협하는 요소로 교통사고를 꼽았고 산업재해(16.6%)와 지진(13.4%) 등이 뒤를 이었다. 교통안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음주·뺑소니 운전 등 반사회적 운전(26.6%) 근절이 가장 많이 꼽혔다. 보행 중 사고 예방대책(17.8%)이 다음으로 많았다. 이번 발표회는 안실련과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등 5개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하고 국회 교통안전포럼과 본보가 후원했다. 발표회에 참석한 주요 정당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 개정 및 교통안전을 위한 특별회계의 필요성에 모두 공감했다. 1980년대 제정된 교특법은 중대과실이 없는 한 종합보험에 가입했으면 가해 운전자의 기소를 면제해준다. 이 때문에 가해자를 지나치게 보호해 안전불감증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교통 범칙금과 과태료는 일반회계에 포함돼 교통과 무관한 사업에 쓰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재 수석전문위원은 “교통 관련 벌금을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주낙영 수석전문위원은 “지방분권 체제를 강화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예산 등 지역의 교통안전 정책에 대한 책임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는 “개인적으로 의사지만 질병을 예방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며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