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김갑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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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갑식 부국장입니다.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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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니스트라 신부 “바티칸이 늘 시끄럽다고?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한다.” 최근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순택 주교의 서품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사베리오 칸니스트라 맨발 가르멜 수도회 총장 신부(56)의 말이다. 그는 5년 동안 정 주교와 로마에 있는 이 수도회에서 함께 일했다. 정 주교 서품식 다음 날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의 맨발 가르멜 수도회 한국 관구 수도원이자 영성문화센터를 찾았다. 이 수도회는 이스라엘 가르멜 산과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중세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몇 명의 그룹이 가르멜 산에서 은둔 수도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유럽에서 크게 성장했다. 수도회 정신이 퇴색될 무렵 스페인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1515∼1582)가 엄격한 규율과 기도의 수도회 정신을 일깨워 맨발 가르멜 수도회로 다시 태어났다. 테레사 성녀는 특히 여자 수도회를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봉쇄(封鎖) 수녀회로 창립했다. 세계 100여 개국에 수도원이 있고, 남자 수도자는 4000여 명, 봉쇄 수녀회 수도자는 1만여 명이다. 국내의 경우 남자 수도회는 6곳, 여자 수도회는 8개의 봉쇄 수녀원이 있다. 오전 미사 후 식당에서 만난 신부들의 아침 식사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서품식과 여행, 심지어 영화까지.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로렌 등 옛 배우에 이어 김기덕 감독의 이름도 나왔다. ―어떻게 한국 영화를 아나. “김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빈집’을 본 적이 있다.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우리가 지은 죄와 이에 대한 책임을 다룬 영화로 느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같은 ‘로마 주민’이다. 바티칸은 개혁 때문에 늘 시끄러운 것 같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 의하면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항상 복음과 사람이 핵심인데 인간의 역사 안에서는 이를 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교황이 날린 비둘기가 까마귀에게 공격당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바티칸 개혁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 “하하,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 해석은 과장된 것이다.” ―종교가 세계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종교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세속적인 힘도 있고, 인간 내면의 성찰을 유도해 하느님에게 향하도록 하는 면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이 세상의 왕국으로 만들거나 권력의 중심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종교 때문에 싸우나. “종교 자체보다는 종교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분쟁의 원인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지향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종교를 외면하고 있다. “당연하다.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교회의 역할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전통이자 생활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옵션’이 됐다. 교회 안에 머물러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황의 말처럼 나가서 손님을 맞아야 한다.”▼ 사베리오 칸니스트라 총장 신부 이력 ▼△1958년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방의 카탄차로 시 출생 △대학에서 언어학 전공 뒤 출판사 근무 △1985년 가르멜 수도회 입회(이탈리아 토스카나 관구) △1990년 종신 서원 △1992년 사제 수품 △2008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관구장 선출 △2009년 맨발 가르멜 수도회 총장 선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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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예정 WEA총회 무기 연기

    10월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가 무기한 연기됐다. WEA는 12일 “한국에서 발생한 복음주의 공동체 내부 분열로 총회를 제때 개최하기 어려운 점을 주요하게 고려해 한국에서 개최하려던 차기 총회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WEA는 복음주의 계열 개신교 연합체로 6년마다 총회를 연다.}

    • 201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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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제 스님 “참된 나 속에 행복이…”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사진)은 13일 겨울 집중수행 기간인 동안거(冬安居) 해제를 맞아 낸 법어에서 “안거 동안에 부끄러움 없는 수행을 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며 “‘참나’ 속에 영원한 행복과 정의, 대자유, 평화가 있다”고 밝혔다.}

    • 201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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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리나 울라노바 “발레는 리허설이다”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찬란해야 할 10대, 그리고 사춘기. 스스로 선택한 발레리나의 길을 걷기 위해 러시아에서 홀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햇빛이 창가에 스며들어 나를 비추면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조명 같았고, 쓸쓸히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의 달빛은 공연이 끝난 후 나를 비추는 커튼콜의 핀 라이트 같았다. 1992년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보수적인 러시아. 그것도 자존심 센 러시아 최고의 발레학교 안에서 소수의 동양인이었던 나는 수많은 ‘싸움’을 이겨내야 했기 때문에 사춘기는 누구보다 늦었다. 그 ‘싸움’에 사춘기가 헤집고 들어올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늦은 사춘기가 시작된 건 열여덟 언저리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밤늦게야 기숙사에 돌아온 뒤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나 갈리나 울라노바의 책을 읽었다. 러시아 유학 시절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던 그분의 책이었다. 평소 그분이 자주 했다는 말 한마디가 눈에 파고들었다. “발레는 리허설이다.” 곧바로 형광펜을 집어 들어 밑줄을 긋고 가슴속에 새겼다. 어렸던 때라 당시엔 그 말을 단순히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연습만이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당시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내가 기댈 것이라곤 연습밖에 없었다. 어쩌면 더 지독한 연습을 위해 그 문장이 찾아왔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15년 동안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시간을 보낸 뒤 그 문장은 조금 변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변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인생의 주인공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발레에서 배운 삶과 죽음, 인생 그리고 사랑의 진심이 자연스럽게 내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단순히 연습만 열심히 하라고 말했던 것 같은 그 문장이 언제부턴가 발레뿐이 아니라 삶을 위한 리허설을 말하는 것이 됐다. 사실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가 궁금할 때가 있기도 했다. 그것들이 발레리나로서의 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막연히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면 다른 길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몽유병 환자처럼 꿈속에서 여러 곳을 이리저리 헤매다 깨어보면, 여느 때처럼 토슈즈를 만지고 리허설에 몰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곤 했다. 아마도 발레리나로서 리허설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가장 나다운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발레는 리허설이다, 이 말이 앞으로도 수많은 리허설을 해야 할 나를 얼마나 발전시킬지 아직 상상하기 힘들다. 또한 아직도 그 문장을 100%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15년의 짧은 시간 동안 배우고 느끼게 했던 그것이 이제는 홀로 서게 된 내게 또 다른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것들이 발레리나, 무용가, 인간 그리고 ‘여자 김주원’을 더욱 무르익게 만들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내일도 리허설을 할 것이다. 앞으로 쌓아 나아갈 경험과 인생의 깨달음을 위해 더욱 깊은 곳으로 나를 끌고 갈 것이다. 언젠가 ‘발레와 리허설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발레리나 김주원(성신여대 교수)}

    •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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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 순교자 124위 시복 결정]聖人 103위 선포이후 30년만에 큰 경사

    한국 가톨릭계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 결정으로 1984년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103위 시성식 이후 꼭 30년 만에 큰 경사를 맞게 됐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복된 순교자들은 대부분 신해박해(179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의 천주교 초기 신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해외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파견되기 전부터 가톨릭 신앙을 지킨 인물들이 포함돼 있으며,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빼면 평신자들이다. 첫 대규모 박해로 기록된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가 53명으로 가장 많고, 기해박해(1839년)를 전후한 순교자 37명, 병인박해 순교자 20명,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가 14명이다. 윤지충은 전라도 진산 출신으로 1790년 중국 베이징 교구장이었던 알레산드르 드 고베아 주교가 조선교회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 조정에서 체포령을 내리자 자수한 뒤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첫 성직자였다. 고베아 주교가 파견한 주 신부는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1794년 입국했다. 그는 6년 만에 조선교회 신자 수를 1만 명으로 늘리는 데 공로를 세웠다. 신유박해 때 중국으로 피하려다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한 뒤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처해졌다. 정약종은 형 정약전에게 교리를 배우고 가톨릭에 입교했다.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해 주 신부의 인가를 얻어 교우들에게 보급했고 평신도 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내다 1801년 순교했다. 이성례는 최경환 성인의 부인이자 별도의 시복 절차 중에 있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이다. 투옥 후 남편이 순교하자 죽어가는 젖먹이 막내를 살리기 위해 배교(背敎)를 위장해 석방됐다. 하지만 장남 최양업이 중국에 유학 중인 신학생인 사실이 드러나 다시 수감된 후 지금의 당고개에서 참수됐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이성례를 테마로 조성한 것이다.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9일 발표문에서 “1984년 시성식 이후 아직 시복시성이 되지 않은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그런 염원이 시성 30주년인 올해 시복의 열매를 맺게 됐다”고 밝혔다. 30년 전 103위 시성은 초기 한국에 선교사를 많이 파견한 파리외방선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엔 한국 가톨릭교회의 힘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별위원회에 소속된 한 신부에 따르면 미국 이민 1.5세대인 정시몬 신부가 시복 청원서의 번역과 연구, 정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로마 한인 신학원 원장인 김종수 신부도 현지에서 ‘로마 청원인’ 자격으로 시복과 관련한 행정적인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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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가톨릭 첫 순교자 등 124위 시복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의 가톨릭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에 대한 시복(諡福)을 승인했다고 로마 교황청이 8일(한국 시간) 밝혔다. 이로써 한국 가톨릭은 1984년 김대건 신부 등 103위에 대한 시성식 이후 30년 만에 큰 경사를 맞았다. 시복은 순교자 등을 교회가 공경하는 인물인 복자(福者)로 선포하는 것으로 이후 성인(聖人)으로 추대된다. 외사촌 정약용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윤지충(1759∼1791)은 교리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됐으며 한국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로 기록돼 있다. 함께 시복되는 123위는 1791∼1888년 순교자들이다. 이번 시복 발표에 따라 교황이 방한해 직접 시복식을 집전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1984년 103위에 대한 시성식은 당시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했다. 이와 관련해 교황청 해외선교 매체인 아시아뉴스는 “교황이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가 개막하는 8월 13일 한국을 찾아 가톨릭의 성모승천대축일인 15일 시복식을 주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 등 일부 외신은 이 매체를 인용해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남북한의 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집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9일 “시복된 순교자들 중에는 신분 제도를 넘어 남녀평등과 인간적 권리 신장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많다”며 “이 순교자들의 공동체처럼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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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자 출신 첫 한국인 가톨릭 주교… 아르헨 교포 문한림 신부 인터뷰

    “한국은 태어난 조국이고, 아르헨티나는 제가 선택한 조국입니다.” 6일(이하 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이민자 출신의 한국인 주교로 처음 임명된 문한림 신부(59·사진)의 말이다. 문 신부는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구장으로 있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 인근의 산마르틴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문 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6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뒤 1984년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코스마와 다미아노 성인성당의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7일 성당 사제관에서 축하 인사를 받고 있던 문 신부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축하드린다. 이민자 출신의 한국인 주교는 처음이다. “큰 축복으로 생각한다. 장인남 대주교가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38년 전 이민을 갔는데 한국 국적을 유지한 이유가 있나. “저는 한국 사람이고, 영주권이 있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어 국적을 유지했다. 물론 여기서 신자들과 함께 살면서 뼈를 묻을 거다. 한국대사관에서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한 주교까지 됐으니 국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프란치스고 교황과는 오랜 인연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교황님이 저를 아신 지가 20년 정도 됐다. 저와 산마르틴 주교님도 잘 알고 있어 이번 인사를 한 것 같다. 교황께서는 교구장으로 있을 때부터 한국인 신부와 수녀들의 활동에 큰 관심을 보이셨다.” ―주교 임명 통보는 언제 받았나. “일주일 전쯤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 산간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다 시내로 나왔는데 휴대전화에 아르헨티나 주재 교황청 대사관 연락처가 남아 있었다. 다음 날 교황청 대사관에서 ‘교황님이 나를 주교로 선택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공식 발표 전에는 말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기도하면서 침묵을 지켰다.” ―그때 심경이 어땠나. “그 전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 평소에는 제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데, 그때는 말씀을 주셨다. 기자님이 신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백지처럼 마음을 모두 비워라. 네 계획도 과거도 백지로 만들어라. 그러면 내가 마음대로 뜻대로 쓰겠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교황대사관 측과 전화를 한 거다.” 어릴 때부터 신부의 길을 꿈꿔 온 문 신부는 꽃꽂이 전문가인 어머니 박원일 씨(83)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이민 간 뒤 현지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사제가 됐다. 문 신부는 특히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 현재 코스마와 다미아노 성당이 운영하는 학교에는 1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교육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38년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한국에서 보낸 시기보다 길다. 아르헨티나는 자원도 많고 땅도 큰, 축복 받은 나라다. 가난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나라가 정치적 혼란으로 가난해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교육이 가장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주교님을 도와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를 수 있도록 교구 차원에서 노력하겠다.” ―한국 방문 계획은…. “당장은 아니고 다음 휴가 때 한국에 갈 수도 있다.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와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이 신학대 동기다. 서울 가면 배고프지 않게 다닌다. 하하.”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에도 큰 경사다. “교민이 2만 명 정도 계신데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줄 수 있는 소식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현지인들도 조금 놀라는 분위기다. 주교 직분을 잘해야 할 것 같다.” ―교황을 만나면 혹 할 말은…. “주교 교육 때문에 10월경 로마에 갈 것 같다. 아마, 큰 십자가를 주셔서 감사하다, 믿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할 것 같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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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활동 중 한국인 가톨릭 주교 첫 탄생

    해외에서 활동 중인 첫 한국인 가톨릭 주교가 탄생했다. 교황청은 6일 홈페이지를 통해 아르헨티나 산마르틴 교구의 주교로 문한림 신부(59·사진)를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 교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구장으로 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와 가깝다. 문 주교는 한국에서 신학교를 다니다 1976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사제품을 받았지만 한국 국적은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가 신학교 동기생이다. 교황청의 이번 인사는 문 신부만 주교로 임명한 것이 전부여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교계의 설명이다. 문 신부는 현지에서 40년 가깝게 사목활동을 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각별한 교분을 나눠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신부는 언어와 이민의 장벽을 넘어 현지에서 빈민들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교계의 한 인사는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도 첫 한인 주교의 탄생을 뉴스로 다루고 있다”면서 “문 주교의 임명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 한인 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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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천당… 요한 바오로 2세는 배달 나가셨습니다”

    《 90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건한 서품식의 ‘반전’은 축하식에서 일어났다. 추기경과 주교의 유머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축하식장은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정진석 추기경은 유경촌, 정순택 두 주교의 동시 서품을 ‘쌍둥이 서품’으로 재치 있게 표현해 박수를 받았다. 정 추기경이 “2002년 염수정 추기경이 첫 쌍둥이 서품식의 주인공이었는데, 이번에 서품식 주례를 맡았다. 복이 많은 분”이라고 말하자, 염 추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조폭’과 신부의 공통점을 아느냐”며 운을 뗐다. 그러더니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어디 가든 지갑을 열어 돈 내는 법이 없다 △서열이 확실하다 △남의 구역은 침범하지 않는 예의를 지킨다 △조직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다 등을 꼽았다. 강 주교는 이어 “여기까지는 아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조폭과 주교의 공통점도 아느냐”고 다시 물었다. 청중의 반응을 살피던 그는 “어디에 나타나도 주변 사람들이 슬슬 피하고 다가서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낸 뒤 “교회와 세상이 만들어준 세속적 권위에 물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2006년 주교로 서품된 조규만 주교는 “8년 만에 ‘동생’을 봤는데 그게 쌍둥이일 줄은 몰랐다”며 영하의 날씨에도 서품식을 지켜준 신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로 유머 한마디를 자청했다. “어느 주교가 천당 문 앞에서 베드로 사도의 ‘빽’으로 간신히 들어갔어요. 천당 식당에 갔더니 아무도 서빙을 해주지 않아서 주교가 이유를 물었더니 평소 봉사를 많이 안 한 주교들의 자리는 ‘셀프’라고 했답니다. 주교가 그럼 먼저 오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지금 배달 나갔다’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 세상서 봉사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배달 가야 합니다.” 사제 대표로 나온 김태근 신부의 입심도 고위 성직자들에게 뒤지지 않았고, ‘성역’도 없었다. 그는 유 주교에 대해 “일찌감치 핸섬 보이로 뽑혀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 ‘식탁 보이’로 중앙 무대에 발탁된 꽃미남 신부의 원조” “어릴 때 합창단 활동으로 가수 권유를 받았기도 했다는데 노래방 가면 꼭 지갑을 꺼낸다. 그런데 나오는 것은 돈이 아니라 불러야 할 노래 번호”라고 ‘폭로’했다. 정 주교에 대해서는 “군복무 경력을 조사했다. 알고 보니 기동타격대였다. 사고로 일찍 제대했는데 그때 접한 것이 가르멜 수도회에 관한 책”이라며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사제가 된 인연을 소개했다. 축하식에 이어 새 주교의 가족과 동료 신부들이 참석한 축하연. 분위기가 무르익자 염 추기경이 유머를 보탰다. “(제가) 염 씨, 소금이죠. 소금도 열심히 기도하면 수정이 됩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주님 모습을 따르면 수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 서품식 참석자는 “최근 가톨릭계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정치적 행동과 ‘어둠의 세력’ ‘심판’ 등 일부 사제들의 과격한 언어 사용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서품식에서는 두 주교의 탄생을 본 것도 축복이지만 신부님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날 장내를 가득 메운 평신도들의 박수를 이끌어낸 것은 과격한 주장이 아니라 권위를 벗은 유머와 품격 있는 언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낮춤이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김혜린 인턴기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 201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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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수정 추기경 “봉사하는 목자 되길”… 유경촌-정순택 주교 서품식

    “주교는 지배하기보다는 봉사해야 합니다. …자기 양들을 위하여 서슴없이 목숨을 내놓는 목자(牧者)임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염수정 추기경)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유경촌(세례명 티모테오·52) 정순택(베드로·53) 보좌주교에 대한 서품식 중 염 추기경 훈시의 한 대목이다. 서울대교구의 주교 서품식은 2006년 조규만 주교 서품식 이후 8년 만이다. 두 명의 주교가 서품식을 갖는 것은 2002년 당시 염수정 이한택 주교(전 의정부교구장)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서품식은 염 추기경 주례와 한국 천주교 주교단의 공동 집전으로 진행됐으며 사제 600여 명을 포함해 9000여 명이 참석했다. 서품식은 땅에 완전히 엎드리는 자세로 기도하는 두 주교의 부복(俯伏)에서 경건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부복은 하느님에 대한 경배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정, 부족함을 하느님께서 채워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청원을 표현하는 동작이다. 이때 주교단도 모두 주교관을 벗고, 참석자들은 함께 일어나 기도했다. 서품식에 이어 열린 축하식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주교 2명이 동시에 탄생하는 ‘쌍둥이 서품’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며 “두 주교의 서품은 한국 교회에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유 주교는 답사에서 “주교의 직무를 살기에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요한복음의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를 사목 표어로 정했다”며 “이런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동생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은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장크트게오르겐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 주교는 “모든 분이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교회 품 안에서 큰 사랑을 만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정 주교는 서울대 공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에 입학했으며 1986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김혜린 인턴기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 201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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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염추기경

    “추기경님이 나를 기억하실지 몰랐어요.”(정희일 할머니·90) “(먼저) 천국 가시면 나 좀 잘 봐주세요.(웃음)”(염수정 추기경) 설날 연휴를 앞둔 2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대표 김종국 신부)을 찾은 염 추기경이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28년 전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 할머니와 다시 만난 것. 정 할머니는 염 추기경이 자신을 알아보자 놀라며 “추기경님이 오신다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염 추기경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 할머니 뵈면서 많이 배웠다. 할머니께서 착하게 살고 계시니 아름답고 예쁘신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웰빙이 따로 필요 없다”고 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토마스의 집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노숙인들에게 무료 배식을 했다. 한 여성 자원봉사자가 “저보다 잘하신다”고 하자 염 추기경은 “70년을 (혼자) 먹고 살았는데 당연하다”며 웃었다. 염 추기경과 영등포 노숙인들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간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당시 영등포 본당 주임신부였던 염 추기경은 국내 최초의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그해 겨울 영등포시장 부근에서 한 노숙인이 아궁이를 껴안은 채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염 추기경은 파출소에 연락해 시신을 수습한 뒤 주변 성당과 가톨릭 단체와 힘을 합쳐 무료 급식소를 시작한 것.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역과 용산 일대 노숙인들이 밥을 먹으러 오고, 고 김수환 추기경도 성금을 보내 그 돈으로 고기반찬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시설은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관리하다 1993년부터 ‘토마스의 집’이 운영하고 있다. 염 추기경은 토마스의 집에 이어 인근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원장 이문주 신부)을 찾아 떡을 나눠 주고 노숙인 환자, 자원봉사자와 대화를 나눴다. 염 추기경은 봉사자들에게 “여러분은 천국 가실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셔서 그런지 다들 얼굴이 너무 환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추기경 서임 뒤 첫 사목 활동으로 19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노숙인 요양시설 ‘은평의 마을’에서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행사 뒤 3년간의 영등포성당 주임신부 시절을 떠올리며 “이 지역은 마음의 고향 같은 장소의 하나”라며 “노숙인들이 추워진 날씨 때문에 더 어렵게 지내지 않는지 살펴보기 위해 꼭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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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피라이터 겸 작가 故 최윤희 “성실성과 편집증도 타고난 재능이지 않나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게 될 내 운명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내가 모르는 엉뚱한 다른 곳에서 껄껄껄 웃고 있었습니다. 입학원서를 들고 색신검사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적록색약을 통보했고, 내 미대 입학지원서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미대뿐이 아닙니다. 자연계는 몽땅 지원할 수 없었고 육해공 사관학교생도도 자격이 없었으며 심지어 운전면허까지 그때는 딸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당연히 좌절했고 때 이른 술꾼이 되어 신라의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경주의 밤거리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휘젓고 다녔습니다. 운명이었을까요. 술기운 속에서 불현듯 가슴을 헤집고 뛰쳐나와 나를 구해준 시 한 편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였지요.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보고 싶었지만 어느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어서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하는 작가의 한숨이 함께하는 시였습니다. 나는 이 시의 한숨에 공감했고 오랫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해 방황하던 화가와 만화가 사이에서 기어코 만화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만큼 만화는 내게 즐거움을 주었고 타고난 기질대로 행한 몰입과 즐거운 편집은 나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내 선택에 만족했고, 만족한 만큼 오만해졌습니다. 막 40대 초입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행복전도사’로 불리던 최윤희 씨를 만난 것은 내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시니컬하고 도발적인 성격이 비슷해 첫 만남에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웠는데 때로 내 오만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종류는 그림을 그리다가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전화도 받는 사람이고, 또 한 종류는 그리던 그림이 끝나지 않으면 배도 고프지 않고 생리작용도 멈추고 전화벨 소리도 못 듣는 종류입니다. 나는 후자였습니다. 나는 그리던 사람의 팔다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는 사람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천장만 쳐다보고 매일 글 한 줄 쓰지 않는 게으름에 대해서는 진절머리를 쳤습니다. 바로 이때 최윤희 씨의 냉랭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성실성과 편집증도 타고난 재능이지 않나요? 성실성이 당신의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듯이 게으름도 그 사람의 선택은 아닙니다.” 아아,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랍고 섬뜩해 바로 항복하고 말았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가당치도 않게 그 능력을 내 노력의 산물로 오해하면서 얼마나 많은 날을 거드름을 피웠는지 알게 됐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찰 정도의 능력들이 가득하지만 항상 없는 것을 욕심내고 있을 뿐. 우리에게 언제든 선택하는 일만 남은 것이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 뒤 내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후배작가들이 좋아하는 짧은 제 글이 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니까 천재를 만나거든 다투지 말고 먼저 가라고 보내라고, 그리고 우리는 하루 한 걸음만 더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살이가 시시해져서 멈추어 선 천재를 밟고 지나갈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다룬 글입니다. 한번 입은 상처는 쉬 극복이 안 되는 법이니까요. 운명뿐 아니라 순리냐 아니냐 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화가 이현세}

    •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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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선불교와 실존철학 사이… 행복한 방황

    “…교리와 조직을 지키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 불교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스님이었지만 환속(還俗)한 뒤 이제는 재가불자(출가하지 않은 불교 신자)로 불교 철학과 명상을 지도하고 있는 저자가 서문에 남긴 말이다. 영국 런던 근교에서 성장한 서양 젊은이가 불교를 40여 년간 접한 뒤 날린 일침이기도 하다. 또 10여 년의 출가 생활을 끝낸 이유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 아닐까?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려던 저자는 입시에 실패한 뒤 떠난 여행에서 불교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불교 공동체에 합류한 뒤 출가했고 이후 파란 눈의 스님으로 살았다. 책은 크게 스님으로 지낸 때와 환속 후 재가불자로 살아가는 시기,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렇다고 개인사가 촘촘하게 담겨 있는 자서전은 아니다. 삶의 여정과 함께 저자가 수시로 느낀 불교에 대한 고민과 각종 경전에 대한 해석이 교차한다. 불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서양인으로서 불교를 선택한 이유와 환속 등 개인사가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책 중간에 저자는 “나는 양쪽 진영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게 극도로 불편하다”고 고백한다. 한쪽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스님의 지도를 통해 얻은 불교, 다른 쪽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 등으로 대표되는 서양적 사고관이다. 불교가 주는 마음의 평화와 수행법을 받아들였지만, 지나치게 신비화된 불교 조직과 스님들의 모습은 그에게 의문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선불교 수련을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던 그는 서양 출신의 비구니 성일(마르틴) 스님과 전남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의 지도를 받는다. 그는 “송광사에서 보낸 몇 년이 내가 스님으로 보낸 시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알아챘으리라. 저자의 도반인 성일 스님 역시 환속했다. 성일 스님은 다시 마르틴이 돼 저자와 결혼한다. 같은 수행자로 살다 환속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쏠리지만, 아쉽게도 충분한 ‘고백’은 없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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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연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인 홍재철 목사(71·사진)가 21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제19대 대표회장에 당선돼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년.}

    • 201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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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태종 총무원 2018년 대전 이전

    대한불교천태종은 충북 단양 구인사에 있는 총무원을 2018년경 세종시에서 가까운 대전 유성의 광수사 터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총무원장 도정 스님(사진)은 15일 간담회에서 “총무원의 대전 이전은 중창조인 상월 대조사가 불교와 종단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구상했던 방안”이라며 “대전 총무원을 국제 포교와 행정의 중심으로 삼고 구인사는 수행 중심 도량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 201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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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신부님들 축구 너무 잘해 무서웠어요”

    “개인적으로 부족함이 많아 내게 어울리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교황님께서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추기경(cardinal·樞機卿)이란 말에 담긴 ‘경첩’이라는 뜻처럼 교황님과 한국 교회, 나아가 아시아 교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5일 서울 명동대성당 주교관 집무실을 찾은 예수회 아돌포 니콜라스 총장(78)의 추기경 임명 축하에 대한 염수정 추기경(71)의 답변이다. 예수회는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출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수도회. 1534년 가톨릭 수사 로욜라가 창설한 이후 당시 부패했던 가톨릭의 개혁에 앞장섰다. 1967년 사제품을 받은 니콜라스 총장은 스페인 출신으로 일본 조치(上智)대 교수로 31년간 근무했으며 예수회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구 의장을 거쳐 2008년 예수회 수장인 총장에 선출됐다. 이날 만남에서는 교황 방한과 남북 화해에 대한 기대가 화제가 됐다. “만약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면 한국 교회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방한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니콜라스 신부) “교회 신자들, 사제들과 함께 간절히 교황님 방한을 바라고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도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염 추기경) 염 추기경은 “교황님께서 남북한 화해를 위해 해결책을 찾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현재 북한 교회는 단절돼 있다. 한국 교회가 복음화를 위해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니콜라스 총장은 “한반도 상황이 위험하다는데,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궁금하다”고 묻기도 했다. 이들은 1979년부터 1년간 필리핀의 한 대학에서 만났던 인연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염 추기경은 영성적 가르침을 준 니콜라스 총장을 늘 은사로 생각해 왔다며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면담 이후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주교관 사제 식당에서 나물과 잡채, 된장국 등으로 점심을 함께했다. 신학생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진 염 추기경이 축구 얘기를 꺼내며 “그때 한국 신부 중에 축구를 잘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하자, 니콜라스 총장은 “한국 분들이 너무 열심히 해서 두려울 정도였다”며 웃었다. 니콜라스 총장은 예수회가 운영하는 서강대를 방문해 교직원과 동문회 임원 등을 만난 뒤 17일 출국할 예정이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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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추기경 뒤엔 옹기 팔며 사제의 길 이끈 어머니 있었네

    “옹기와 순교자 집안, 어머니, 형제 신부, 겸손과 소신….”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이 된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과 12일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된 염수정 추기경(71)의 신앙과 삶의 발자취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정표다. 김 추기경은 1969년 47세 때 한국 최초의 추기경에 임명됐다. 당시 전 세계 136명의 추기경 중 최연소였다. 마산교구장을 거쳐 서울교구장이 된 지 불과 1년밖에 안 된 시점이라 훗날 서울 텃세에 시달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면 서울대교구에서 사제가 된 염 추기경은 줄곧 서울대교구에서 활동하다 2002년 59세에 주교가 됐다. 교구장이 된 것은 2012년 69세로 비교적 늦은 나이다. 이런 차이점은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청은 김 추기경의 능력뿐 아니라 ‘젊음’이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교계의 중론이다. 여러 이정표 중 특히 도드라진 것은 어머니였다. 김 추기경 어머니 서중하 여사(1955년 작고)는 평생 옹기와 포목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면서 두 아들을 성직자로 이끌었다. 김 추기경의 어머니는 어린 추기경과 세 살 위의 형(김동한 신부·1983년 선종)을 불러 “나중에 신부가 되라”고 직접 말했다. 훗날 김 추기경은 “장사를 하다 25세쯤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청천벽력 같았다”고 회고했다. 염 추기경의 어머니 백음월 여사(1995년 작고)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 딸이면 수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3형제를 신부의 길로 인도했다. 두 추기경은 집안이 모두 가톨릭 순교자 집안에, 옹기를 구워 팔며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켜왔다는 점도 닮았다. 두 추기경은 1992년부터 7년간 서울대교구에서 교구장과 교구 사무처장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지냈다. 김 추기경이 76세에 교구장 직에서 물러날 때 염 추기경도 교구 본당 신부로 떠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나중에 염 추기경이 주교가 됐을 때 김 추기경은 이렇게 덕담을 겸한 인물평을 했다. “염 주교, 훤한 인물이 말해주듯 인내와 겸손의 덕을 갖췄어요.” 염 추기경이 2010년 김 추기경 선종 1주기를 맞아 교구 차원에서 재출범한 옹기장학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은 것도 두 추기경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을 보여준다. 두 추기경 모두 넓은 포용력을 지녔지만 신앙적 소신에는 굽힘이 없었다. 교계의 한 중견 신부는 “두 추기경의 가장 닮은 점은 ‘고집, 또는 외유내강형 소신’”이라며 “두 분 모두 겸손과 관용이 몸에 배어 있지만 신앙에 입각한 원칙은 양보하지 않는 분들”이라고 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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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승 스님 “1사찰 1사회시설 운영… 불교 대중화 힘쓰겠다”

    “사회와 이웃을 향한 나눔과 봉사의 불교를 만들고, 불교 중흥을 위한 지속적 종단 혁신의 길을 종단 구성원 모두와 함께 걸어가겠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사진)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신년 목표를 밝혔다. 자승 스님은 최근 도박과 음주 등 일부 스님의 계율 위반과 관련해 “4년 임기 중 승가 청규(淸規)를 공식 제정해 실천하고 부족한 부분은 (종단) 승려법을 개정해 범계 행위를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자승 스님은 사회 속에서 함께 하는 불교를 만들기 위해 1사찰 1사회시설 운영, 남북 간 대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불교 역할 강화, 불교 한류 개척 등에 힘쓰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조계종은 올해 부처님오신날에 서울이나 평양에서 남북 불교도 평화기원 법회 개최를 추진하고, 세종시에 총무원 분소도 설치할 계획이다. 자승 스님은 선거기간에 공약으로 내세웠던 교구 중심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말사(末寺) 주지인사의 교구 위임은 올해 상반기에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또 “자성과 쇄신을 위해 종단 차원에서 진행해온 기존 결사운동을 ‘붓다로 살자’ 운동으로 승화시켜 대중화, 생활화, 사회화하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배석한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사회적 약자 편이 아니라 진실 편에 서서 균형과 조정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게 화쟁의 기본 정신”이라며 “진보와 보수를 떠나 국민의 마음에서 합리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마당인 가칭 ‘대한민국 야단법석’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화쟁 100일 순례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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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석에 앉으시죠” “거긴 예수님 자리로”

    “이쪽 가운데로 앉으시죠.”(염수정 추기경) “새 추기경님이 앉으셔야죠.”(정진석 추기경) “그럼 여기는 예수님 자리로….”(염 추기경) 13일 추기경 임명 축하식에 앞서 오전 9시 반경 서울대교구청 3층 교구장 집무실에서 만난 두 추기경은 서로 가운데 상석에 앉지 않겠다며 ‘자리다툼’을 벌였다. 잠시 후 웃으면서 상석은 예수님 자리로 비워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12년 정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이 된 염 추기경은 집무실 문가에 나와 선배 추기경을 맞았다. 후임 교구장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면서 평소 교구청 출입을 삼가던 정 추기경은 이날만은 공식 행사보다 1시간 넘게 일찍 찾아와 새 추기경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두 추기경과 조규만 주교, 최근 임명된 유경촌 주교에 이어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청대사가 차례로 합석해 세 번째 추기경 탄생의 경사 속에 웃음꽃을 피웠다. 정 추기경은 “새 추기경 탄생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며 “이런 관심은 아마도 교회뿐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해 가톨릭이 더욱 노력해 달라는 바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딜랴 대사는 이 자리에서 염 추기경에게 추기경 임명을 알리는 교황청의 공식 문서를 전달했다. 추기경 임명 날짜가 당초 예상보다 한 주 이상 빨라진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왔다. 정 추기경은 “내 경우 추기경 임명 날짜가 2006년 2월 22일로 수요일이었다”며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염 추기경은 “이번 추기경 발표는 주님 세례 축일에 맞춰지는 바람에 앞당겨진 것 아니냐”며 “모두 새롭게 태어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 주교가 “교황님은 역시 예측불허다. 교황께서 방한 전 교구장께 미리 선물을 주면서 열심히 살라고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염 추기경은 “다른 분들은 모두 좋아하는데 그 무게 때문에 나만 안 좋아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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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 경청으로 화해의 영적지도자 되시길”

    2012년 정진석 추기경의 은퇴 이후,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기다려온 새 추기경의 탄생 소식을 접하고 불현듯 염수정 추기경의 혜화동 신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1988년 유학생으로 선발되었을 때 당시 염 신부님은 신학교 사무처장직을 맡고 있었다. 유학에 필요한 서류 및 재정 지원 관계로 몇 차례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형님처럼 필요한 것들을 자상하게 챙겨주셨다. 과묵하면서도 믿음직한 형님! 그 모습이 지금까지 내 가슴에 각인된 염 신임 추기경의 아이콘이다. 형님 같았던 신부님이 이제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임명 첫날 하루 종일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가운데 염 추기경은 “두렵고 떨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금 우리 사회 여러 진영으로부터 다양한 우려와 기대의 시선들이 날카로운 촉을 세우고 그에게로 쏠리고 있다. 나 역시 그중 한 가슴으로서 감히 그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나의 기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유쾌한 회상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3월, 그가 막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6000명이 넘는 보도진의 궁금증은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보이는 바티칸 내부 사안 및 노선에 집중돼 있었다. 바티칸 은행의 비리, 고위 성직자들의 스캔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현안과 관련한 교회의 입장 등에 대하여 과연 신임 교황은 어떤 대담한 정책을 펼칠지에 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매서운 눈초리로 교황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은 보란 듯이 이런 문제에 대해 모른 척하고 딴전을 부렸다. 그 대신 그는 거침없는 인간미로 세계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교황 전용 리무진 대신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자신의 가방을 스스로 챙기고, 호텔 숙박료를 직접 지불하고, 저녁이면 몰래 저잣거리로 나가 노숙인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등 착한 기행에 우선적으로 골몰했다. 그 결과 언론으로부터 ‘세계인의 본당 신부’라는 별칭을 얻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바티칸 내부의 개혁은 소리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염수정 추기경이 교황의 이러한 문제 해결 경륜을 따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먼저 살아있는 인간미로 대중에게 다가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본래 부르심에 실행으로 충실하면서도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지혜롭게 차근차근 소리 없이 개혁을 꾀하는 ‘고수’의 접근법 말이다. 다음으로, 염 추기경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낡은 틀을 깬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 참여’를 몸소 실행하는 추기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어느 편이건 신임 추기경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었으면 할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준 직분 ‘추기경’은 모든 신자의 추기경, 온 국민의 추기경이다. 따라서 국민 모두를 통합으로 끌어안는 치유의 영적 지도자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황희 정승의 어법’을 즐기는 어르신의 면모가 제격이겠다. 말다툼하던 두 명의 하인 중 한 명이 황희에게 하소연을 하자 “네 말이 옳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의 얘기를 듣고는 “네 말도 옳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부인이 “둘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은 옳고 한 사람은 틀려야지요.” 하니, 황희가 “당신 말도 옳소”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지만 여기에는 ‘뼈’ 있는 메시지가 있다. 세상 누구의 의견이건 들을 가치가 있고 인정해줘야 하는 옳음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염 추기경에게 통 큰 경청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만년의 고 김수환 추기경이 남겼던 유훈을 계승하는 추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 추기경은 정직(진실), 준법(정의), 배려(사랑), 이 세 가지를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꼽으면서 이것이 국민운동을 통하여 구현되기를 소망했다(‘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참조). 이 정신을 염 추기경이 계승해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질적 성장에 기여하는, 그리하여 그 혜택이 모든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까지 골고루 분배되는 이 나라의 영적 지도자로 활약해주실 것을 기도로써 기대한다. 인천가톨릭대 교수·미래사목연구소 소장}

    • 201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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