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출신 첫 한국인 가톨릭 주교… 아르헨 교포 문한림 신부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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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교구장으로 있던 곳에 임명… 큰 축복
한국은 태어난 조국, 아르헨은 선택한 조국”

추기경 시절의 교황과 함께 미사 집전하는 문 신부



2006년 당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문한림 신부(교황 오른쪽)가 주임 신부로 있는 코스마와 다미아노 성당을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문한림 신부 제공
추기경 시절의 교황과 함께 미사 집전하는 문 신부 2006년 당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문한림 신부(교황 오른쪽)가 주임 신부로 있는 코스마와 다미아노 성당을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문한림 신부 제공
“한국은 태어난 조국이고, 아르헨티나는 제가 선택한 조국입니다.”

6일(이하 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이민자 출신의 한국인 주교로 처음 임명된 문한림 신부(59·사진)의 말이다. 문 신부는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구장으로 있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 인근의 산마르틴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문 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6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뒤 1984년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코스마와 다미아노 성인성당의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7일 성당 사제관에서 축하 인사를 받고 있던 문 신부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축하드린다. 이민자 출신의 한국인 주교는 처음이다.

“큰 축복으로 생각한다. 장인남 대주교가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38년 전 이민을 갔는데 한국 국적을 유지한 이유가 있나.

“저는 한국 사람이고, 영주권이 있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어 국적을 유지했다. 물론 여기서 신자들과 함께 살면서 뼈를 묻을 거다. 한국대사관에서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한 주교까지 됐으니 국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프란치스고 교황과는 오랜 인연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교황님이 저를 아신 지가 20년 정도 됐다. 저와 산마르틴 주교님도 잘 알고 있어 이번 인사를 한 것 같다. 교황께서는 교구장으로 있을 때부터 한국인 신부와 수녀들의 활동에 큰 관심을 보이셨다.”

―주교 임명 통보는 언제 받았나.

“일주일 전쯤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 산간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다 시내로 나왔는데 휴대전화에 아르헨티나 주재 교황청 대사관 연락처가 남아 있었다. 다음 날 교황청 대사관에서 ‘교황님이 나를 주교로 선택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공식 발표 전에는 말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기도하면서 침묵을 지켰다.”

―그때 심경이 어땠나.

“그 전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 평소에는 제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데, 그때는 말씀을 주셨다. 기자님이 신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백지처럼 마음을 모두 비워라. 네 계획도 과거도 백지로 만들어라. 그러면 내가 마음대로 뜻대로 쓰겠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교황대사관 측과 전화를 한 거다.”

어릴 때부터 신부의 길을 꿈꿔 온 문 신부는 꽃꽂이 전문가인 어머니 박원일 씨(83)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이민 간 뒤 현지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사제가 됐다. 문 신부는 특히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 현재 코스마와 다미아노 성당이 운영하는 학교에는 1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교육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38년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한국에서 보낸 시기보다 길다. 아르헨티나는 자원도 많고 땅도 큰, 축복 받은 나라다. 가난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나라가 정치적 혼란으로 가난해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교육이 가장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주교님을 도와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를 수 있도록 교구 차원에서 노력하겠다.”

―한국 방문 계획은….

“당장은 아니고 다음 휴가 때 한국에 갈 수도 있다.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와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이 신학대 동기다. 서울 가면 배고프지 않게 다닌다. 하하.”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에도 큰 경사다.

“교민이 2만 명 정도 계신데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줄 수 있는 소식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현지인들도 조금 놀라는 분위기다. 주교 직분을 잘해야 할 것 같다.”

―교황을 만나면 혹 할 말은….

“주교 교육 때문에 10월경 로마에 갈 것 같다. 아마, 큰 십자가를 주셔서 감사하다, 믿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할 것 같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가톨릭 주교#문한림#아르헨 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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