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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도 공연장이 있어?” 서울에는 생각보다 소극장이 많다. 소극장이라고 하면 흔히 공연장이 밀집한 대학로 일대를 떠올리기 쉬우나 서울 곳곳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소극장은 약 50개에 달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학로 문화지구의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하나둘씩 대학로를 떠나 새 터를 잡거나 처음부터 대학로 밖에서 만들어진 곳들이다. 오랜 기간 한국 공연예술 실험의 모태 역할을 해온 곳들이 많다. 지난해부터 공연계를 강타한 팬데믹의 여파는 대학로 밖 소극장들에 더 짙게 남아 있다. 이들은 대중성보다는 실험성과 예술성을 앞세운 공연을 우선시하기에 일반 관객 유인이 여전히 쉽지 않다. 팬데믹 중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 단체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극장이 텅 비어 있는 날도 늘었다. 그럼에도 이 소극장들은 각자 지닌 고유한 예술적 빛깔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종로구에는 종로5가역 인근 ‘종로예술극장’이 대표적이다.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아 내년 1월 2일까지 연극 ‘햄릿 디 액터’를 공연한다. 극장을 닫은 지 약 1년 3개월 만에 올해 7월부터 문을 열고 관객과 만났다. 종로예술극장에서 활동 중인 길정석 배우는 “무대를 다시 열기까지 버티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관객들이 여전히 찾기 쉽지 않은 곳이지만 다시 연기하고 함께 실험적 작품을 고민할 수 있어 기쁘다”고 답했다. 성북구에는 민관이 협력해 운영하는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이 있다. 지난해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가 동아연극상 주요 부문을 휩쓸 정도로 우수 작품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서대문구 일대 소극장에서도 다양한 예술 실험이 진행된다. ‘신촌극장’은 17일부터 25일까지 연극 ‘큰 가슴의 발레리나’를 공연한다. 신촌 지역 유일한 소극장인 이곳은 실험적 연극, 무용, 행위예술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연희예술극장’도 16일부터 19일까지 연극 ‘청소의 원리’를 선보인다. 이곳은 본래 ‘카페 떼아뜨르’(카페를 겸한 복합문화예술공간) 성격의 공간이었으나 팬데믹 방역지침 준수를 위해 운영 방향을 바꿔야 했다. 윤영인 극장감독 겸 프로듀서는 “기존에는 살롱 문화를 좋아하는 마니아 관객들이 찾던 곳이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다른 형태로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제작진, 단원들과 의기투합하고 있다”고 했다. 강남구의 ‘M극장’은 창작무용의 메카로 불린다. 과거 한 무용단의 연습실로 쓰이던 곳을 2006년부터 무용 전용극장으로 개조했다. 소규모 무용단이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곳이다. 2017년 대학로에서 영등포구로 이사한 창작플랫폼 ‘경험과상상’은 23일부터 26일까지 연극 ‘인간문제’를 공연한다. 이 밖에도 마포구의 ‘이행성극장’ ‘성미산마을극장’, 동대문구의 ‘동네극장’, 광진구의 ‘충동소극장’, 종로구의 ‘북촌창우극장’ 등 수많은 소극장들은 지금도 서울 전역에서 꿈틀대고 있다. 서울 내 소극장 지원 사업을 벌이는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각 지역사회에서 예술 생태계를 만들며 고군분투하는 소극장들은 공연을 올리면 올릴수록 적자를 내는 상황”이라며 “소극장에 대한 각계각층의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시라노’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뮤지컬 배우로 정점을 찍은 조형균(37). 올해 데뷔 15년 차를 맞은 그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음유시인 ‘오르페우스’ 역을 맡아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올 9월 7일 개막해 내년 2월 27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에서 연인을 향해 부르짖는 그의 노래는 지옥의 벽마저 허물었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좋아하는 마블 영화 시리즈와 ‘하데스타운’의 메시지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극은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계속 딛고 일어나려는 도전에 대해 말한다. 단순히 신화, 영웅,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이라며 작품의 매력을 설명했다. 2019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후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쓴 작품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오르페우스는 곁을 떠난 연인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향한다. 노래로 지하의 신 하데스를 감동시킨 그는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조건으로 연인을 데려온다. 하지만 호기심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지상 문턱에서 고개를 돌리고 만다. 조형균은 “나도 모르게 뒤를 따라오는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지 않으려 늘 조심한다. 내가 먼저 뒤를 돌아보면 극도 빨리 끝나버리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사실 오디션 때 그는 ‘멘붕’ 상태였단다. 제작진은 지원 요건으로 ‘G#5(3옥타브 솔#)’ 가성을 요구했다. 뮤지컬 판에서 노래라면 빠지지 않는 조형균도 “숱하게 작품을 하면서도 노래해본 적이 없는 고음역대”라며 “첫 공연 직전까지 나만의 가성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기타 연주라는 더 큰 산도 남아 있었다. 정적이 가득한 ‘에픽1’의 한 장면에서 오르페우스는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같은 배역의 박강현, 엑소의 시우민과 개막 네 달 전부터 모여 기타 연습에 공을 들였다. 그는 “급하게 중고 거래로 기타를 구해 연습했는데 나중에는 질려서 꼴도 보기 싫었다”며 “리허설 때 한 명이 기타를 치면 다른 둘은 ‘제발 틀리지 말라’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뮤지컬 ‘찰리 브라운’으로 데뷔한 그는 앙상블 배역부터 묵묵히 치고 올라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끈기 있게 버티고 무대를 지켰다. 뮤지컬계에서는 뭐든 믿고 맡길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주연감’이라는 평이 나온다. 조형균은 “사실 배역이 나와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많이 따지지 않고 살았다. 새로운 도전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며 “‘형균이 잘한다’는 말보다 ‘형균이랑 작업하는 게 재밌다’는 말을 들을 때 더 신난다. 관객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철저한 낙관주의자인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며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삶의 낙을 하나 잃었기 때문. “제 낙인 캔맥주를 끊었습니다. 미칠 듯 가성을 많이 쓰는 이 공연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하하.”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로마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를 파헤쳤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네 인물이 위기에 처한 로마를 구하고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봤다. 이들을 통해 시대적 전환을 가져온 리더십에 대해서도 논한다. 로마는 이탈리아 산골에서 태동했다. 이후 지중해를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확장한 대제국을 건설하며 서양 문명의 근간을 만들었다. 로마제국 초기, 유럽 내 가장 큰 세력 확장을 이룩한 건 카이사르다. 이집트를 주축으로 동방세계까지 세력을 뻗쳤던 카이사르는 점차 독재자로 변해 갔고 훗날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다. 뒤이어 등장한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세운 제국의 틀을 굳건하게 만든 인물. 원로원의 위상을 회복시켰다. 로마 시민이 언제든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가 만든 수도교는 지금도 유럽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제국의 전성기이자 평화기를 뜻하는 ‘팍스 로마나’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50년간 18명의 황제가 통치한 군인황제 시대의 혼란을 잠재운 인물이다. 현재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해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신분을 뛰어넘는 통치술로 권좌에 올랐다. 제국을 동·서 로마로 나누고, 부황제도 뒀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거치며 기독교를 공인했다. 종교적 갈등을 무마했으며, 324년에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을 새로운 수도로 확정한다. 1990년대를 풍미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부터 다양한 ‘그리스·로마 신화’까지, 이역만리 타지의 우리는 지금도 꾸준히 로마를 찾는다. 왜일까. 저자는 “로마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민주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로마의 국교였던 기독교는 우리 국민의 23%가 믿는 종교다. 사적·공적 영역에서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은 로마사를 통해 우리는 새 시대에 필요한 답을 찾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제국의 성공을 찬양 일변도로 볼 것인지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게 힙합이라고? 너희들 진짜 뭐하냐?” 그의 준엄한 일갈을 듣고 싶어 사람들이 모여든다. 국내 1세대 힙합 래퍼 원썬(본명 김선일·43)이 최근 ‘쇼미더머니10 리뷰’ 시리즈를 시작한 그의 유튜브 채널은 힙합 팬들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사실 이 시리즈의 형식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원썬이 스튜디오 한가운데 앉아 엠넷의 힙합 경연프로그램 ‘쇼미더머니10’을 회차별로 경연 내용을 평가하는 게 전부다. 참가자들의 공연을 감상하고 즐기면서도 실력을 엄정히 평가한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린 심사위원, 프로듀서, 유명 래퍼를 향해 가감 없이 쓴소리도 날린다. 언뜻 ‘힙합 꼰대’의 푸념이나 잔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회차를 거듭하며 버벌진트, 팔로알토 같은 유명 래퍼도 출연한다지만, 인기 프로그램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영상은 유튜브에 이미 널려 있다. 신선한 콘텐츠라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구독자들은 “본방송보다 이 리뷰가 더 기다려진다” “본방송은 안 봐도 이 리뷰는 다 본다”는 댓글들을 남긴다. 인기를 보여주듯 유튜브 채널 ‘원썬 Sakkiz’의 구독자는 10월 초 그가 이 시리즈를 제작한 뒤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전까지 2000명 안팎이던 구독자는 시리즈 시작 약 두 달 만에 약 10만 명까지 치솟았다. 시리즈 누적 조회수는 1300만 회에 달한다. 힙합 팬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만난 원썬은 “집에 TV도 없다. 쇼미더머니를 평소 잘 챙겨보진 않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제가 좋아하던 힙합 판을 다룬 프로그램이기에 느낀 걸 말할 뿐”이라고 했다. 시리즈를 기획한 취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대중화하면서 장르가 갖고 있는 느낌만 좋아하는 사람이 늘었죠. 그런데 이 프로그램으로 힙합을 처음 접한 젊은 세대들은 랩이 뭔지, 힙합이 뭔지 제대로 안다고 할 순 없어요. 제가 힙합을 사랑하는 만큼 그 장르에 대해선 확실히 짚고 알려주고 싶었죠.” 엠넷의 ‘쇼미더머니10’은 올해로 열 번째 시즌까지 이어질 만큼 장수한 프로그램. 열 번째 시즌 우승자로 최근 래퍼 조광일을 선정하며 마무리됐다. 한국 힙합의 대중화를 견인한 프로그램의 공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즌이 이어지면서 랩 경연을 통한 실력파 래퍼 발굴이라는 원래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쇼맨십이 강한 참가자나 독특한 콘셉트를 앞세우는 참가자를 띄워준다는 지적도 있다. 힙합 예능의 색을 잃고 일종의 스타 등용문이나 ‘인맥 힙합’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평도 나온다. 원썬이 “힙합을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더 쓴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가장 화제가 된 리뷰 영상도 그의 독한 비판이 담긴 내용이다. 합합계에서 그보다 후배인 심사위원들을 향해 “저 심사는 잘못됐다”거나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다를 수 있겠지만 힙합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참가자가 대결에서 승리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평한다. 때론 “이게 말이 되느냐”며 역정도 낸다. 그를 본 구독자들은 “통쾌하다” “프로그램의 문제를 시원하게 지적해줘 고맙다”는 반응이다.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래퍼 염따는 자신을 저격한 원썬의 영상을 보고 “충고 감사하다”는 댓글도 남겼다. 그에게 이토록 열광하는 팬들을 보며 가장 놀란 건 원썬 자신이다. 그는 “참가자를 뽑고 떨어뜨리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제가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밀면서 잘하고 못하고 판단하는 걸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또 “힙합을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상당히 고무적”이라며 “비판받는 당사자들은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나중엔 약이 될 거라 생각한다”며 웃었다. 참가자들의 부족한 실력이나 프로그램 연출을 조목조목 ‘까기’만 한다고 인기를 얻긴 힘들었을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그가 각광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힙합에 대한 진정어린 사랑과 해박한 지식 때문이다. 힙합에 대한 그의 진심은 삶을 통해서 드러난다. 사실 그는 본업인 래퍼로서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쇼미더머니5’에 참가자로 출연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유행어만 남긴 채 조기 탈락했다. ‘꼰대 힙합’의 대명사이자 대중의 웃음거리가 됐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대중에게 놀림거리로 소비됐던 그지만, 힙합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다. 본인이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언더그라운드 힙합 무대에서 후배 양성에 힘썼다. 홍대의 정통 힙합 클럽인 ‘싱크홀’ 등이 월세 부담에 떠밀려 없어지지 않도록 공사판에서 번 돈을 보탰다. 그는 “지금도 시간이 나면 배달도 하고, 공사판도 나간다”고 했다. 힙합 팬들도 그의 인생 여정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힙합을 사랑하는 인물이란 걸 느낀다. 현역 래퍼로 활동하려는 열망도 식지 않았다. 최근 “한국 흑인음악의 대표가 되겠다”며 국악 선율과 힙합을 섞은 랩 ‘서사 2’도 발표했다. 그는 “음악은 끝이 없다. 아직 이 분야를 점령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끝장을 봤다’고 할 때까지 음악은 계속할 것 같다”고 했다. 힙합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이번 리뷰 시리즈를 통해 새롭게 조명 받았다. “누구보다 뛰어난 한국 힙합 평론가이자 심사위원”이라는 찬사도 받는다. 원썬은 “어려서 처음 힙합을 접했던 통로는 미국 라디오, 비디오 테이프, 음반이 전부였다.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리듬, 그루브가 너무 좋아서 절박하게 파고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훨씬 더 많은 음악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라면서도 “막상 어떤 게 좋은 음악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숭실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는 입학 후 전공이 아닌 음악을 본업으로 삼기로 다짐했다. 힙합 음악을 들을 곳을 찾아 홍대, 신촌, 이태원을 떠돌았다. 그는 “음악을 틀어주는 가게에 매일 드나들다 어느새 음료를 서빙하고 있고, 얼마 지나니 제가 음악을 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999년 첫 솔로 음반도 냈다. 아이돌 그룹이 대세인 때였지만, 드렁큰 타이거 등 래퍼를 우러러 보며 가사를 쓰던 펜을 놓지 않았다. 원썬은 최근 채널의 인기에 힘입어 랩 경연 프로그램 ‘방구석 래퍼’를 시작했다. 늘 배고파하며 음악하는 후배들을 위해 새 무대를 만들고, 재야의 랩 고수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내년 1월 15일까지 참가자를 모집한 뒤 채널을 통해 프로그램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멋있고 예쁘고 트렌디한 힙합, 싱잉랩(노래하듯 부르는 랩)도 다 좋다. 다만 기본을 지키는 랩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랩이란 뭘까. 그는 “랩은 곧 시이자 수필이고, 래퍼는 글쟁이”라고 강조했다. “래퍼는 가수이기 전에 글을 짓고 그 글을 낭독하는 사람입니다. 이왕이면 잘 지어진 글을 낭독해야 울림이 크겠죠. 요즘 래퍼들은 본인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걸 망각하고 있어요. 좋은 글이 곧 좋은 랩이 된다고 믿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현대무용단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가 신작 ‘인형의 집’을 12일 오후 3시, 6시에 서울 양천구 양천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작품은 4년 뒤인 2025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직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미래 사회에서 직장인이 출근을 위해 가상세계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무용으로 풀어낸다. 아바타로 변신한 무용수들은 다른 아바타들과 만나며 자유롭게 교류한다. 하지만 완벽한 줄 알았던 메타버스 안에서도 시스템적, 기계적 결함이 발생하고, 가상공간에서 한계를 느낀 아바타들은 현실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혹은 더 나은 가상세계를 찾기 위해 탈출을 꿈꾼다. 다양한 인간 집단들의 소통이 이뤄지는 가상공간 역시 우리의 사회이자 ‘인형의 집’과 같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 최신 기술이 던지는 질문들을 춤으로 담아낸다.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는 1994년 한국 남성으로는 처음 프랑스 무용단에 진출한 김성한 예술감독이 2005년 창단한 무용단이다. 김성한 예술감독이 이번 공연의 안무를 맡았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채널A가 1일로 개국 10주년을 맞았다. 채널A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 따듯한 웃음과 감동, 정확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한결같은 자세로 달려왔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창의적으로 구축해온 오리지널 콘텐츠, 현장에 발을 딛고 길어낸 불편부당한 뉴스는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사랑에 힘입어 채널A는 슬로건인 ‘꿈을 담는 캔버스’에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탁월한 콘텐츠를 더 많이 그려나갈 예정이다.》채널A는 예능, 교양, 드라마 등 각종 장르에서 탐험가 정신을 발휘해 콘텐츠를 개척해왔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익숙한 소재를 새롭게 포착함으로써 채널A만의 오리지널 콘텐츠와 지식재산권(IP)을 축적해온 것.○ ‘최초 시도’로 선도해온 방송 트렌드 채널A의 인기 프로그램에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유독 많다. 2011년 개국과 함께 시작한 종합편성채널 최장수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국내 첫 ‘탈북 예능’이다. 탈북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2013년 여러 종목의 전직 국가대표와 현역 선수들이 대결한 ‘불멸의 국가대표’는 국내 ‘스포엔터테인먼트’의 시초다. 2015년 시작한 첫 반려동물 관찰 예능 ‘개밥 주는 남자’는 확산되는 반려문화를 빠르게 포착해 연예인과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리얼리티 예능에 처음으로 ‘동거’를 입힌 ‘하트시그널’ 시리즈는 2017년부터 대한민국에 ‘썸’ 열풍을 일으켰다. 모든 시즌이 TV 화제성 1위를 차지하며 연애 리얼리티의 새 지평을 열었다. 첫 낚시 예능 ‘도시어부’는 중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낚시를 국민 레저로 탈바꿈시켰다. 낚시의 특성상 ‘침묵 예능이 가능하겠느냐’는 방송가의 의구심도 있었지만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착상은 이후 또 다른 히트작 ‘아이콘택트’의 ‘토크보다 강한 침묵’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문법을 개척해 나간다는 호평을 받았다. 올 상반기(1∼6월)를 뜨겁게 달군 첫 군대 예능 ‘강철부대’는 지상파, 종편, 케이블을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대 시청률 6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세계로 뻗어가는 오리지널의 힘채널A의 콘텐츠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등을 통해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트시그널’은 중국 미국 일본 등에 판권과 방영권 등을 판매했고, 유럽 오세아니아 등에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한 플랫폼사가 포맷을 구입해 만든 중국판 하트시그널은 시즌4까지 나올 만큼 오리지널 IP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육아 비법을 전하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 이어 현대인의 힐링 프로그램으로 진화한 ‘오은영의 금쪽상담소’까지, 오은영 박사를 중심으로 한 ‘금쪽 시리즈’는 넷플릭스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해 채널A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올린 ‘거짓말의 거짓말’, 지난달 29일 첫선을 보인 드라마 ‘쇼윈도: 여왕의 집’ 역시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각국에 선판매가 이뤄졌다. ○ 계속 이어지는 탁월한 콘텐츠채널A만의 독보적인 콘텐츠는 계속 이어진다. 당장 내년 상반기에 기대작을 연이어 선보인다. 2월 방영 예정인 ‘강철부대2’는 지난 시즌에 선전했던 부대원뿐만 아니라 또 다른 특수부대원들도 도전장을 내밀어 더욱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4월 론칭할 K뮤직 오디션 ‘청춘스타’는 ‘하트시그널’ 제작진이 만드는 또 하나의 청춘 유니버스. 피땀 나는 경쟁과 눈물 나는 연대를 통해 뮤지션들이 청춘스타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미치고 추해야 빛난다?최근 대형 뮤지컬에서 관객을 유혹하는 독보적 캐릭터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속 주인공이 빼어난 외모나 선한 캐릭터를 앞세운다면 뮤지컬 주인공들은 비참할 정도로 추한 외모나 광기 넘치는 성격을 지녔다. 기괴한 매력을 뿜어내는 주인공들의 노래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 ‘콰지모도’는 추남 캐릭터의 대명사다. 이 배역의 배우는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온종일 무대를 누빈다.》 의상 한쪽 어깨에 솜 보형물을 넣고, 공연 내내 구부정한 자세로 연기한다. 목을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와 절규도 가미된다. 일그러진 안면 근육에 안간힘을 쓰듯 힘겹게 노래한다. 썩은 이, 휘어진 코, 멍이 든 듯한 눈 분장도 몰입감을 더한다. 내년 5월 8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주인공 지킬 박사는 선악을 넘나드는 이중 인물이다. 자신의 몸에 약물을 주입해 숨겨 왔던 다른 자아 ‘하이드’로 변신한다. 류정한 홍광호 신성록이 선보이는 이번 시즌 배역은 분장부터 목소리, 움직임까지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 특히 무대조명 변화에 따라 순간적으로 두 캐릭터를 오가는 연기는 짜릿하다.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무대를 활보하는 욕망에 지배받는 범죄자 하이드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내년 2월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괴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앙리 뒤프레’는 1막 후반부터 시체를 이어 붙여 만든 피조물 ‘괴물’로 변신한다. 사회에서 버려지고 핍박당한 괴물은 자신의 탄생을 저주하면서도 직접 겪은 상처를 창조주에게 돌려주기 위해 더 날카롭고 잔인해진다. 좀비처럼 흐느적대는 동작 연기는 기본. 지하를 뚫고 내려갈 듯한 저음부터 고음역대 넘버까지 소화하고 괴성, 절규로 원망 섞인 감정을 표현한다. 음역대가 넓은 만큼 배우들 사이에서도 힘든 작품으로 꼽힌다. 주역 배우들이 연습 때 “죽고 싶은 심정”이라거나 “샤워하다 울었다” 등의 후기를 남길 정도다. 이번 시즌에는 박은태 카이 정택운이 이를 소화한다. 3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영국을 광기로 몰아넣은 살인마 이야기를 다룬다. 19세기 후반 벌어진 실제 연쇄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제작한 동명의 체코 뮤지컬을 각색했다. 신성우 김법래 강태을 김바울이 맡는 살인마 ‘잭’ 배역은 인간의 잔인하고 어두운 면모를 다각도로 표현한다. 내년 2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레베카’에는 광기 넘치는 여성 캐릭터의 대명사 ‘댄버스 부인’이 등장한다. 집착과 광기 그리고 파멸로 이어지는 인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중독성 있는 고음역대의 넘버와 섬뜩한 눈빛, 표정이 그의 광기를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신영숙과 옥주현이 배역을 맡는다. 이동섭 문화평론가 겸 작가는 “‘오페라의 유령’ ‘지킬앤하이드’처럼 광기, 추함을 내세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국내 뮤지컬 초창기부터 흥행하자 이 성공 공식을 따르는 작품이 늘었다”며 “관객은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더 독특하고 더 센 캐릭터를 원한다”고 분석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미치고 추해야 빛난다? 최근 주요 대형 뮤지컬에서 관객을 유혹하는 독보적 캐릭터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드라마, 영화 속 주인공이 빼어난 외모나 선한 캐릭터를 앞세운다면, 뮤지컬 속 주인공들은 비참할 정도로 추한 외모나 광기 넘치는 성격을 지녔다. 기괴한 매력을 뿜어내는 주인공들의 노래는 오히려 관객 마음의 문을 좀 더 능숙하게 열어젖힌다. 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 ‘콰지모도’는 추남 캐릭터의 대명사로 꼽힌다. 이 배역의 배우는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온종일 무대를 누빈다. 의상 한쪽 어깨에 솜으로 된 보형물을 넣고, 공연 내내 구부정한 자세로 연기한다. 목을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와 절규도 그를 상징한다. 마치 일그러진 안면근육에 안간힘을 쓰듯 힘겹게 노래한다. 검게 썩은 이빨, 휘어진 코, 멍이 든 듯한 눈 분장도 몰입감을 더한다. 내년 5월 8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주인공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이중적 인물이다. 자신의 몸에 약물을 주입해 숨겨왔던 또 다른 자아 ‘하이드’로 변신한다. 이번 시즌 류정한 홍광호 신성록이 선보이는 이 배역은 분장부터 목소리,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 특히 무대 조명 변화에 따라 순간적으로 두 캐릭터를 오가는 연기는 짜릿함을 전한다.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무대를 활보하는 욕망에 지배받는 범죄자 ‘하이드’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내년 2월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괴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앙리 뒤프레’는 1막 후반부터 시체를 이어 붙여 만든 피조물 ‘괴물’로 변신한다. 사회에서 버려지고, 핍박당한 괴물은 자신의 탄생을 저주하면서도 직접 겪은 상처를 창조주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기 위해 더 날카롭고 잔인해진다. 좀비처럼 흐느적대는 동작 연기는 기본. 지하를 뚫고 내려갈 듯한 저음부터 고음역대 넘버까지 소화하고 괴성, 절규로 원망섞인 감성을 표현한다. 음역대 폭이 넓은 만큼 배우들 사이서도 힘든 작품으로 꼽힌다. 주역 배우들이 연습 때 “죽고 싶은 심정”이라거나 “샤워하다 울었다”는 등 후기가 회자될 정도다. 이번 시즌 박은태 카이 정택운이 이를 소화한다. 3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영국을 광기로 몰아넣은 살인마 이야기를 다룬다. 19세기 후반 벌어졌던 실제 연쇄 사건을 토대로 제작한 동명의 체코 뮤지컬을 각색했다. 신성우 김법래 강태을 김바울이 맡는 살인마 ‘잭’ 배역은 인간의 잔인하고 어두운 면모를 다각도로 표현한다. 내년 2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레베카’에는 광기 넘치는 여성 캐릭터의 대명사 ‘댄버스 부인’이 등장한다. 집착과 광기 그리고 파멸로 이어지는 인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중독성 있는 고음역대의 넘버와 섬뜩한 눈빛, 표정 등이 그의 광기를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신영숙과 옥주현이 배역을 맡는다.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이동섭 작가는 “‘오페라의 유령’ ‘지킬앤하이드’처럼 광기, 추함을 내세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국내 뮤지컬 초창기부터 흥행하자 이 성공 공식을 따르는 작품이 늘었다”며 “현장성이 강한 공연에서 관객은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더 독특하고 더 센 캐릭터를 원한다”고 분석했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26일 개막하는 국립극단 신작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에는 독특한 인연의 두 배우가 한 무대에 선다. 권력욕에 눈이 먼 변호사이자 극우 백인 보수주의자인 ‘로이’ 역의 박지일(61)과 드래그퀸(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여장 남자)이자 흑인 간호사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벨리즈’ 역의 박용우(32)다. 극단에 선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들은 부자(父子) 관계. 71년 역사의 국립극단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연습실에서 두 배우가 서로 내색을 하지 않아 이들의 관계를 몰랐던 동료가 많았단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인터뷰한 두 배우는 “이번 작품을 하기 전에는 각자 작품 활동에 지장을 줄까 봐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야외에서 만나 안부를 전했다. 이 작품 덕에 요즘 연습실에서 매일 가족을 만나 즐겁다”며 웃었다. 2003년 연극 ‘서안화차’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박지일은 연극을 비롯해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박용우는 현재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활약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극작가 토니 쿠슈너의 대표작으로 1991년 미국에서 초연됐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반(反)동성애 사회 분위기에서 심리적 압박과 멸시를 버틴 동성애자들의 삶을 은유적 서사로 풀어냈다. 초연 당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을 수상한 신유청 연출가가 한국 초연을 맡았고, 배우 정경호는 이번 작품으로 연극에 처음 도전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 공연을 따라다니던 박용우는 고교 3학년 때 아버지에게 배우가 되겠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이후 연기 스승을 자처했다. 박용우는 “순간적 충동에 의지해 연기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긴다”고 말했다. 공연이 임박한 요즘 두 사람은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느라 서로에게 큰 관심을 쏟지는 못한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간단히 조언할 뿐. 소수자를 탄압하고 죄의식조차 없는 악인을 연기하는 박지일은 “가장 정이 안 가는 캐릭터다. 그런 인간마저 따뜻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데 작품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박용우는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던 드래그퀸 역할을 맡았다며 기뻐했다.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태우고 머리는 밝게 염색했다. 그는 “남성 중심, 이성애 중심의 서사가 대부분이다. 고정관념을 깰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극중 상대편을 끌어안는 간호사를 연기하기 위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관용을 표현하려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26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3만∼6만 원. 19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광풍의 시대. 근로소득에 대한 냉소가 커지고, 그중에서도 육체노동의 가치는 더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현장으로 향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공사장, 제조공장 등 일감이 있다면 어디든 간다. 그리고 본인의 노동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주변에서 “힘들게 조금씩 벌어서는 답이 없다” 해도 이들의 메시지는 투명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할 뿐.”○ “건강하게 번 돈, 가치 있게 쓸 것” 유튜브 채널 ‘심사장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심준섭 씨(26·한국외국어대 휴학 중)는 평일엔 경기 화성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전기·배관 설비 공사를 한다. 공장 숙소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심 씨는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근처 다른 공사장에 나간다. 창업자금을 벌기 위해 올해 초 육체노동에 뛰어든 그는 촬영이 허가된 현장에서 휴대전화로 본인이 일하는 모습을 촬영한다. 2월부터 일당 빠르게 올리기, 현장 적응법 등의 영상을 업로드해 왔다. 심 씨는 “코인이나 주식은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 ‘제로베이스’에서 땀 흘려 번 돈을 더 가치 있게 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공장 콘텐츠를 올려 구독자 1만5000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노가더 HooN’의 운영자 임상훈 씨(33)는 11년 차 현장 베테랑이다. 3∼6개월 단위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전기 공정이나 설비 노동 콘텐츠를 제작한다. 3∼6명이 함께 생활하는 숙소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부터 일하는 모습, 식사 순간까지 자유롭게 담는다. 대기업 공장별 장단점, 주의사항, 월급, 퇴직금 같은 정보도 공개한다. 임 씨는 “속칭 ‘노가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바꾸고 건강하게 일하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6월부터 공장 콘텐츠를 올려 구독자 1만5000명을 보유한 ‘청년일꾼 일꾼킴’ 채널의 운영자 A 씨(31)는 부사관 전역 후 투자 실패로 큰돈을 잃었다. 2019년부터 경기 이천과 용인, 충남 아산의 여러 공장을 오가며 일을 익힌 경험을 토대로 좋은 숙소 고르는 법, 실업급여 받기, 좋은 안전화 구매법 등의 영상을 올린다. 그는 “현장 일을 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관련 정보 찾으러 유튜브로 가는 MZ세대 육체노동 현장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은 웃고 즐기는 채널에 비해 구독자 수는 적지만 구독자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조회수 100만 회를 넘긴 영상도 종종 있다. 특히 심리적 진입장벽이 높은 육체노동의 특성상 일을 시작하기 전 정보를 얻으려는 이들이 많다. A 씨는 “자영업자, 휴학생, 여성 등 다양한 분들이 어떻게 일을 시작할지 몰라 적응법, 유의사항에 대해 묻는다”고 전했다. 댓글창에는 응원도 가득하다. 임 씨는 “‘덕분에 건물이 지어졌다’며 고마워하는 댓글을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심 씨는 “‘이런 자녀를 둔 부모님은 뿌듯하겠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동년배 사회 초년생들이 질문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최근 직접 나선 중소기업도 있다. 철근 조립업체 ‘금성철근’이 자체 유튜브 채널에 올린 ‘토목공사 갈고리 돌리기 초급편’의 조회수는 600만 회를 넘었다. 황세연 금성철근 대표는 “팬데믹으로 공장에 외국인 노동자가 줄면서 국내 젊은층의 유입이 늘고 있다. 유용한 콘텐츠를 추가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연계에 ‘리어왕’ 바람이 불고 있다. 한동안 국내 공연계에서 뜸했던 셰익스피어의 이 고전은 올해 초부터 영상, 연극, 창극 등 다양한 형태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장 대관 일정, 제작진의 작품 선택, 배우 캐스팅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공연의 특성상 리어왕 소재 작품이 유독 올해 쏟아져 나온 건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무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현실 사회의 리더십 갈증 속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려는 관객들로 리어왕이 나타나는 공연장은 늘 북적댄다. 연극 ‘리어왕’을 본 한 관객은 “내가 바라는,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올해 가장 먼저 국내 관객과 만났던 리어왕은 3∼5월 국립극장의 ‘NT Live’ 상영을 통해서였다. 영국 국립극단이 2018년 런던에서 공연한 작품을 영상화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 역할을 맡았던 영국 출신의 대배우 이언 매캘런(82)이 극 중 리어왕과 같은 여든 살의 나이에 무대에 올라 화제였다. 권력 투쟁, 배신과 음모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 7일 동안 진행한 상영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지금 가장 뜨거운 리어왕은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이순재표’ 리어왕이다. 이순재(86)는 3시간 20분이 넘는 원전 분량을 그대로 살리며, 23회 차 전 공연에서 홀로 역할을 책임진다. 최근 인기에 힘입어 공연 8회 차를 연장해 12월 5일까지 특별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순재는 “극의 핵심은 최고 권좌에 있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가난한 사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리더십은 군림하는 게 아니라 밑바닥과 같이 어울리는 것임을 작품이 말하고 있다”며 “진정한 리더는 쓴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16일 개막해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드레서’에도 리어왕이 등장한다. 극 중 선생님 역으로 노배우의 모습을 연기하는 송승환(64)이 극중극 형태로 리어왕을 선보인다. 지난해 진행한 공연은 팬데믹으로 예정보다 일찍 막을 내렸다. 극 중 리어왕은 “나 오늘 밤 이 피투성이 세상을 짊어져야 한다”고 울부짖기도 하며 “대체 내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느냐”고 왕의 고뇌를 내비친다. 송승환은 “리어왕은 우리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박진완 국립정동극장 홍보마케팅팀장은 “여러 공연 단체가 비슷한 시기에 리어왕을 재조명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관객 반응도 뜨겁다”고 했다. 내년에도 리어왕은 계속된다. 국립창극단은 우리의 소리로 리어왕을 재해석한 창극 ‘리어왕’을 3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고전 중 하나를 택해 창극으로 풀어내려던 제작진은 논의 끝에 리어왕을 택했다고. 작품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이름과 명예만 챙겨 호기롭게 물러나겠다던 리어왕은 결국 권력을 놓지 못해 갈등의 씨앗을 남긴다”며 “리더가 물러날 때를 알고 물처럼 흘러가야 하는데 이를 거부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연계 ‘리어왕’ 바람이 불고 있다. 한동안 국내 공연계에서 뜸했던 셰익스피어의 이 고전은 올해 초부터 영상, 연극, 창극 등 다양한 형태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장 대관 일정, 제작진의 작품 선택, 배우 캐스팅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공연의 특성상 리어왕 소재 작품이 유독 올해 쏟아져 나온 건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무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현실 사회의 리더십 갈증 속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으려하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려는 관객들로 리어왕이 군림하는 공연장은 북적댄다. 연극 ‘리어왕’의 한 관객은 “내가 바라는,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어때야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올해 가장 먼저 국내 관객과 만났던 리어왕은 3~5월 국립극장의 ‘NT Live’ 상영을 통해서였다. 영국 국립극단이 2018년 런던에서 공연한 작품을 영상화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 역할을 맡았던 영국 출신의 대배우 이언 맥캘런이 극 중 리어왕과 같은 여든 살의 나이에 무대에 올라 화제였다. 7일 동안 진행됐던 상영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지금 가장 뜨거운 리어왕은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이순재 표 리어왕이다. 이순재는 3시간 20분이 넘는 원전 분량을 그대로 살리며, 23회차 전 공연에서 홀로 역할을 책임진다. 최근 인기에 힘입어 공연 8회차를 연장해 12월 5일까지 특별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순재는 “극의 핵심은 최고 권좌에 있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비로소 가난한 사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며 “진정한 리더는 쓴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리더십은 군림하는 게 아니라 밑바닥과 같이 어울리는 것임을 작품이 말하고 있다”고 했다. 16일 개막해 내년 1월 1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드레서’에도 리어왕이 등장한다. 선생님 역으로 노배우의 모습을 연기하는 송승환이 극 중 극 형태로 리어왕을 선보인다. 지난해 예정됐던 공연은 팬데믹으로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극 중 리어왕은 “나 오늘밤 이 피투성이 세상을 짊어져야한다”고 울부짖기도 하며 “대체 내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느냐”며 고뇌를 내비친다. 송승환은 “작품 속 리어왕은 한 사람 그리고 우리 인생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박진완 국립정동극장 홍보마케팅팀장은 “마치 사전에 함께 논의라도 한 듯 여러 공연 단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리어왕을 재조명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관객 반응도 뜨겁다”고 했다. 내년에도 리어왕은 계속된다. 국립창극단은 우리의 소리로 리어왕을 재해석한 창극 ‘리어왕’을 내년 3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고전 중 하나를 택해 창극으로 풀어내려던 제작진은 논의 끝에 리어왕을 택했다. 작품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리어왕은 이름과 명예만 챙겨 호기롭게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결국 권력을 놓지 못해 갈등의 씨앗을 남긴다”며 “리더가 물러날 때를 알고 물처럼 흘러가야 하지만, 그걸 거부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고 했다. 이어 “작품은 넓게 보면 세대갈등과 인간 존재가 소멸하는 이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극장 홍보를 담당하는 차경연 PD는 “권력 뒤에 가려진 인간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그리는 작품이다. 여러 ‘리어왕’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건 간접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저 하나쯤은 무의미한 아름다움을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때론 의미 없는 것들이 우릴 구원하니까요.” 꽃을 사랑하는 극작가 배삼식(51·사진)이 창작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로 돌아왔다. 12일 개막해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은 서울예술단이 6년 만에 재공연하는 작품. 우리 인생을 매화의 아름다움에 빗대 흘러가듯 유려하게 펼쳐낸 옴니버스 극이다. 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 인근에서 만난 배 작가는 “작품이 6년 만에 다시 빛을 볼 줄은 몰랐다”며 “배우들이 그저 무대에서 즐겁게 뛰놀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이어 “요즘엔 모두가 작품 안에 강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그리는 극이 하나쯤은 있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약 30년 전 그가 매화를 마주했던 찰나의 순간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작품으로 이어졌다. 대학생 시절 배 작가가 한국식 정원으로 유명한 전남 담양군 소쇄원 인근을 여행할 때였다. 잔설 위 부슬비가 내리던 대숲 사이 푸르게 꽃받침이 올라온 청매화를 봤다. 그는 “겨우내 움츠렸다가 봄까지 견뎌낸 싹을 보고 덧없는 아름다움, 희망, 안타까움을 느꼈다.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늘 빨리 지나가 버리더라. 글로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작품의 미덕은 ‘느슨함’이다. 배우들은 느린 박자를 타고 천천히, 유려하게 움직이며 꽃이 됐다가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찬란한 순간순간과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배 작가는 “매화라는 소재 하나만 딱 붙잡고 작품을 느슨하게 써 나갔다. 작가가 할 말이 너무 많으면 춤, 연기는 들러리가 되기 쉽다. 극에 빈자리를 남기려 계속 비워냈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그는 꽃을 노래했다. 국립극단의 70주년 기념작 ‘화전가’에서는 6·25전쟁을 앞둔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꽃놀이를 하며 노래를 부르던 여인들의 삶을 묘사했다. “고통스러운 전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 너무 뻔할 것 같았다”고 했다. 집 마당에 여러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지켜봤다. 2007년 동아연극상 희곡상(‘열하일기만보’)에 이어 2009년에도 동아연극상 희곡상(‘하얀앵두’)을 수상한 그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제가 쓴 대사 없이 무용수가 그저 고요히 무대를 지나는 장면이 가장 좋다”며 “저는 평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 말하기 위해 말이라는 도구를 쓰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2만∼5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44년생 고(故) 황광수와 1976년생 정여울. 32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두 저자의 우정은 문학에 대한 사랑이라는 탄탄한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올 9월 29일 암 투병 끝에 별세한 황광수는 끝내 자신의 마지막 책을 보지 못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글들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은 두 작가의 우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은 서로에게 스승이자 벗이던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와 인터뷰 글, 황광수의 에세이를 추려 엮었다. 황광수는 20년가량 출판사에 몸담으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끝까지 쓰는 용기’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을 쓴 정여울은 “선생님이자 친구와 나눈 이야기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당초 함께 책을 펴내기로 했지만 황광수의 별세로 기획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씁쓸함과 애도를 담은 정여울의 추도사가 추가됐다. 책은 심심한 대낮에 전화로 주고받았을 법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죽음, 역사, 인간, 민주주의에 대해 나눈 대화까지 온갖 주제를 다룬다. 정여울이 “선생님, 혹시 100년 전에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려면 어떻게 갔을까요?”라고 묻는가 하면 황광수는 “우주인처럼 무겁고 느리게 뒷동산을 걸어볼 참”이라며 일상을 담담히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핵심은 문장에 대한 이들의 깊은 사랑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장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하다. 투병 중이던 황광수가 “요즘엔 세상 모든 피조물이 슬프게 보일 때가 많다”고 털어놓자 정여울은 “꿈속에서 제가 선생님에게 빌린 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황광수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정여울은 “그곳은 많이 춥지 않으시냐”는 안부로 시작해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마지막 편지’를 쓴다. 이별했지만 이별하지 않은 이들의 우정은 그래서 먹먹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어쩌면 현대인은 각자의 삶과 소명이라는 내림굿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샤먼(무당)의 굿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의 삶을 몸짓으로 그려낸 국립무용단의 신작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가 11일부터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 48명이 한바탕 춤으로 풀어내는 굿판을 통해 관객은 각자의 인생을 반추한다. 이 작품은 제작진 명단이 공개됐을 때부터 기존 국립무용단 작품은 물론이고 여느 무용과도 사뭇 다른 무대가 예견됐다. 10일 사전 시연, 11일 본 공연 개막을 앞두고 4일 국립극장에서 주요 제작진 3인을 만났다.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콘셉트 작가로 참여한 윤재원(연출·미술감독), 이날치의 장영규(음악감독),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손인영(안무)은 “굿의 연희적 특성을 강조한 전형적인 굿판이 아니라 굿이라는 의식이 갖고 있는 일상성에 초점을 맞췄다”며 “기존 무용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총체예술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 분야에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세 사람은 샤먼의 의미에 대해 각자의 해석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손 예술감독이 ‘이 시대 샤먼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고, 윤 연출가가 큰 뱡향성을 제시했다. 윤 연출가는 “샤먼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시대까지 분명 존재하는 직업인데 우리는 무당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비슷한 모습으로만 늘 묘사해 왔다”며 “샤먼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직업인으로 조명하고 나아가 그 안에 깃든 우리의 모습과 삶을 비추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 제목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는 소명을 받아들여 인생을 사는 개인들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에 가깝다. “샤먼은 쉽게 말해 이별을 다루는 직업인 것 같아요. 이별, 관계의 단절, 해결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샤먼을 찾아요. 그때 샤먼이 하는 역할은 곁에서 얘기를 들어주고 ‘잘 가라’ ‘어서 오라’ 인사를 대신 건네주죠. 필연적으로 이별을 다룰 수밖에 없죠.”(윤재원 연출가) 작품의 음악은 이날치의 수장이자 영화 ‘곡성’ ‘부산행’ 등에 참여한 장영규가 맡았다. 그는 “극한의 에너지로 사람을 몰아가는 굿 음악은 가장 어려운 장르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간 피해 오기만 했다”며 “이번 기회에 굿에 대한 제 해석을 덧붙일 수 있게 됐다. 주로 굿 음악에 쓰이는 독특한 리듬을 차용했다”고 말했다. 공연에는 가사가 있는 노래도 등장하는데 윤 연출가가 가사를 쓰고 장 음악감독이 멜로디를 입혔다. 이날치 멤버가 직접 부른 노래를 녹음했다. 손 예술감독을 필두로 4명의 무용수인 김미애 박기환 조용진 이재화가 조안무자로 참여했다. 손 감독은 “춤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존 무용과 달리 이번 작품은 마치 영화,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일부 장면에서 무용수들이 몸짓을 자제할 때도 있다”며 “국립무용단의 신선한 무용 실험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2만∼7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유럽 인구 절반을 앗아간 페스트와 지난한 백년전쟁을 겪은 15세기 프랑스 파리. 재해와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잿더미 위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다가올 천년엔 더 나은 삶과 사랑이 가득하리라 믿으며. 새 시대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담고 있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인기 넘버 ‘대성당의 시대’. 시적인 노랫말과 중독적 선율로 1998년 첫 공연 이래 23개국 1500만 명 관객 앞에서 불리던 이 노래가 17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울려 퍼진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했던 공연이 다시 찾아오는 것. 17일 공연에 앞서 13일 경기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서 관객과 만나며, 서울 공연 이후엔 대구, 부산을 거친다. 약 두 달간의 한국 투어다. 지난해 이 작품의 프로듀서 샤를 탈라르가 타계한 뒤 ‘노트르담 드 파리’ 사단을 이끄는 이는 프로듀서이자 그의 아들인 니콜라 탈라르(48). 2000년 프로덕션에 합류해 유럽, 미국, 아시아로 작품을 진출시킨 일등공신이다. 미국 브로드웨이 한복판에서 이례적으로 프랑스어 공연이 이어질 만큼 원어의 맛을 잘 살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8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그는 “2005년 한국 첫 공연 당시 ‘내가 비틀스를 데려왔나’ 싶을 정도로 환호가 대단했다”며 “지난해는 팬데믹으로 객석의 함성은 들을 수 없었지만 마스크 너머로도 환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현장에서 관객의 반응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객들이 올려주는 반응을 계속 챙겨보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의 응원을 느낀다”고 했다. 올해 공연에도 최고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다. 1998년 초연부터 참여한 원조 ‘프롤로’ 다니엘 라부아를 비롯해 음유시인 ‘그랭구아르’ 역의 리샤르 샤레스트, 대성당 종지기 ‘콰지모도’ 역의 안젤로 델 베키오 등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예술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예술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는 철학을 배웠다. 지금도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할 때 이 철칙만큼은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올해 저와 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 한마음이다. 감격스럽고 무대가 소중하다”고 했다. 1998년 초연 이래 무대에 숱하게 작품이 올랐고, 국가별 여러 언어 버전의 공연도 제작됐다. 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의 원작은 크게 흔들리지 않기로 유명하다. 니콜라 탈라르는 “시간이 흘러도 원작에 크게 손을 대지 않는 게 원칙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불멸의 감정인 ‘사랑’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울림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극이 담고 있는 시의성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25년이 지났지만 극에 담긴 사회 투쟁적 이슈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극을 처음 선보인 1998년 프랑스에서도 불법 체류자. 이민자 문제가 있었죠. 지금도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나라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잖아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던 그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공연계로 뛰어들어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 샤를 탈라르는 프랑스 문화계 저명인사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독립 음악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 훈장도 받았다. 또 1973년 프랑스 파리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단 파리 생제르맹(PSG)을 재건하는 데 참여했다. 199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 제작에 집중했으며 ‘태양의 아이들’ ‘돈 주앙’ 등 작품을 남겼다. 니콜라 탈라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일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일종의 ‘내부자’의 관점에서 문화계와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좋은 공연’에 대해 “정답은 없다”고고 단언했다. 이야기, 특수효과, 안무 등 표현수단이 다양해지면서 관객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좋은 공연의 요소도 다양해졌다는 것.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관객이 근심 걱정을 완전히 잊고 러닝타임 내내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인지 늘 돌아본다”고 했다. 작품의 총괄 책임자가 된 그는 한국 첫 공연 당시 객석의 독특하면서도 열광적 반응을 잊지 못한다. “2005년 첫 공연 때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극이 끝날 때까지 정적만 흘렀어요. 하지만 커튼콜 때 모든 감정이 폭발하며 기립박수를 받았죠. ‘제2의 고향’ 한국의 관객과 다시 만날 순간을 기다렸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1월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이 시작되면서 얼어붙었던 공연계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앞서 10월 공연 매출액은 1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300억 원대를 돌파했다. 연말을 앞두고 대작 공연들이 잇달아 개막해 공연 매출은 당분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공연 취소와 연기를 숱하게 치른 제작사들은 방역의 고삐를 조이며 기쁘면서도 초조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8일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월간 공연 매출액은 약 303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약 405억 원이었던 공연 매출액은 팬데믹이 악화하면서 2월 약 210억 원으로 급감한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올해 1월 약 37억 원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반등했다. 팬데믹 재확산으로 잠시 주춤했던 7, 8월을 제외하고는 2월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국내 공연장에서 바이러스 확산·전파 사례가 비교적 적었고 백신 접종률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억눌려 있던 문화생활 수요와 맞물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흐름 속에 공연 단체들은 최대 공연 성수기인 11, 12월을 맞아 여러 흥행작을 내놓고 있다. 뮤지컬의 경우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하데스타운’ ‘지킬앤하이드’ 등을 비롯해 ‘노트르담드파리’ ‘레베카’ ‘프랑켄슈타인’ 등이 공연을 앞두고 있다. 연말 공연의 대명사 격인 발레 ‘호두까기 인형’도 관객맞이 준비 중이다. 내년 1월엔 3년 만에 뮤지컬 ‘라이온킹’의 공연도 예정돼 있어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검증된 흥행작들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공연계 매출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그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오후 10시까지였던 공연장 영업시간 제한도 1일부터 해제됐으며 판매 가능 좌석 수도 늘어났다. 백신 접종자만 관객으로 받는다면 산술적으로는 객석 전체를 가동할 수 있게 된 것. 상황 변화에 맞물려 공연계는 백신 접종자 대상 할인 이벤트도 발 빠르게 도입 중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하데스타운’ ‘메리 셸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토록 보통의’와 연극 ‘인사이드’ ‘작은 아씨들’ ‘보도지침’ ‘리어왕’ 등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공연계에는 기대감과 우려가 공존한다. 그간 객석의 70%를 가동하며 손해를 겨우 면하던 상황을 회복하려면 위드 코로나 체제에서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공연 취소와 재개를 반복했던 학습효과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도 마냥 낙관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노민지 클립서비스 PR전략팀장은 “관객이 극장을 많이 찾지 않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없앴던 공연 팸플릿, 전단도 다시 만들어 공연장에 비치하기 시작했다. 억눌린 문화생활 욕구가 연말 매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업계 기대감은 분명하다”면서도 “그간 팬데믹 확산으로 여러 혼란을 겪었던 만큼 조심스럽게 상황을 주시 중”이라고 했다. 신시컴퍼니의 홍보를 담당하는 최승희 실장은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마냥 장밋빛으로 보기는 힘들다. 공연장 예매 시스템상 백신 접종자만 별도로 체크해 전석을 개방하기는 쉽지 않다”며 “공연계서 가장 중요한 연말 시즌인 만큼 더 보수적으로 접근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부모를 잃고 쓰러진 아기 늑대. 이를 발견한 양(羊) 부부가 천적을 보고 도망치려던 것도 잠시. 평생 자식을 간절히 원했던 부부는 쓰러진 늑대를 자식으로 거두어 양부모(養父母)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늑대에게 말한다. “넌 이제부터 양이야.” 양의 탈을 쓰고 자란 늑대의 삶은 어떨까. 지난달 29일 개막해 21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나은 숲’은 늑대 퍼디난드의 삶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그렸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설립 1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독일 극작가 겸 소설가인 마틴 발트샤이트가 쓴 이 작품은 2010년 독일 청소년 연극상을 받으며 유럽 전역에서 20차례 이상 공연됐다. 국내 첫선을 보이는 무대는 영국 청소년극 분야 대가인 연출가 토니 그레이엄(70)의 손을 거쳤다. 1일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레이엄 연출가는 “청소년극이 일반 연극이랑 다를 게 없죠?”라고 되물으며 “억지로 교훈적 메시지나 가르침을 담아선 안 된다. 청소년도 우리처럼 모든 걸 다 알고 느낀다. 그저 고민을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 그레이엄은 “독일 작가가 쓴 작품을 영국 연출가가 한국에서 공연하는 상황”을 즐거워했다. “기생충, 오징어게임에서 한국 사회가 민감하게 다룬 불평등, 계층 문제가 세계에서도 통했어요. 좋은 연극도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통해야 합니다. 한국 관객들이 제 작품 속 문제의식을 어떻게 바라볼지 기대됩니다.” 늑대, 양을 비롯해 곰, 여우 등을 인간 군상에 빗댄 작품은 많은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다. 동물처럼 행동하는 배우들을 보고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이들의 고민은 꽤 묵직하다. 관객 각자 경험에 따라 극은 다르게 읽힌다. 그레이엄은 “누군가는 입양을, 다른 누군가는 이민자나 난민을 떠올릴 수 있다. 한국에선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특정 집단이 아니라도 인간은 누구나 정체성을 고민한다”고 했다. 첫 공연을 포함해 9일 공연분까지 1차 판매한 티켓은 매진됐다. 청소년보다 성인 관객 비중이 더 높다. 팬데믹으로 청소년이 극장을 쉽게 찾지 못하는 점도 있겠으나 “좋은 청소년극은 어른에게도 좋은 극”이라는 그의 철학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는 “작품을 평하기엔 이르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배우, 제작진이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결말은 열려 있다. 자신의 삶을 찾아 양부모 곁을 떠난 주인공이 더 행복한지, 불행한지 말하지 않는다. 퍼디난드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양 친구들은 그가 늑대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다. 그리고 객석에 반문한다. “왜 늑대가 양으로 살면 안 되느냐”고. 그레이엄은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제목 ‘더 나은 숲’처럼 더 나은 곳이 있다는 희망은 청소년극에서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20대에 교직 생활을 하다 30대부터 연출가로 나선 그는 영국 국립청소년극단 유니콘 시어터에서 14년간 예술감독을 맡았다. 앞서 ‘타조 소년들’ ‘노란 달’을 국내에 선보여 호평받기도 했다. 교훈과 가르침을 최대한 덜어내려 했던 이번 작품에서도 여러 배우들은 핵심을 관통하는 ‘교훈적’ 대사를 말한다.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어디로, 누구와 함께 가느냐입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AI)이 나타나고,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떠나는 시대. 찰나에 사람 눈을 속이는 마술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빼앗아 뒤흔들 수 있을까. 25년째 마술 한길을 걸어온 최현우(43)는 이렇게 답했다. “21세기가 되면 사라질 직업 8위로 마술사가 꼽혔어요. 하지만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마법 같은 순간을 늘 꿈꾸는 인류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믿어요.” ‘마법사가 되고픈 마술사’ 최현우가 다음 달 3일 개막하는 매직쇼 ‘더 브레인’으로 관객과 만난다.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데뷔 후 처음 크리스마스 때 ‘강제 휴식’해야 했다. 그는 “잠시 제 삶을 돌아본 시간이었지만 결국 현장 공연에 대한 간절함과 관객에 대한 감사함만이 남았다”며 “역시 빨간 날에는 일해야 한다”고 웃었다. ‘더 브레인’은 심리학, 뇌과학, 행동과학 등을 접목한 ‘멘털매직(Mental Magic)’ 쇼다. 카드,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관객 심리와 생각을 맞히고 다음 행동을 예언한다. 착시를 이용한 시각 마술도 곁들인다. 따라서 관객 참여는 필수. 최현우는 “신체 접촉을 없애고, 최대한 대화를 통해 마술을 풀어내도록 방식을 변형했다. 마술도 ‘위드 코로나’로 진화 중”이라고 했다. 공연 말미엔 그가 쇼에서 선보였던 마술의 비밀을 전부 공개한다. 그는 “공연마다 비밀을 공개하는 순간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다. 다만 모든 걸 털어놔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멘털매직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은 진화한다. 언뜻 현실과 동떨어진 채 저 너머에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현실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는 “남성 마술사를 둘러싼 미녀나 호랑이가 등장하는 무대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마술이 현실 속 페미니즘과 동물복지 운동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사 역시 계속 변해야 한다. 최현우는 한때 후배 마술사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이던 ‘쇼트폼 마술’에 대해 마술을 가벼워 보이도록 만들고, 비밀 공개에만 집중한다는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도 공연장으로 끌어오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현재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최현우’에서 마술을 알리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최근엔 틱톡도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1996년 한 대학 축제서 손을 벌벌 떨며 처음 마술을 선보인 이래 무대 밖에서도 그는 스타였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마술을 선보였고, 데이비드 코퍼필드처럼 하늘을 나는 마술을 준비하다가 추락해 팔이 으스러지는 사고도 겪었다. 2015년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맞힌 건 지금까지 회자된다. “조작 방송이냐”는 항의 전화 수백 통을 받았고 “당첨 번호 알려 달라”는 얘기는 지금까지도 듣는다고. 그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모두 마술”이라며 미소 지었다. 꿈에 나타난 최현우가 불러준 번호로 로또 2등에 두 번 당첨됐다는 한 팬의 사연도 화제였다. 최현우는 이 팬에게 “제가 꿈에 또 나오면 꼭 저에게도 번호를 알려 달라”고 직접 연락했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는 “살면서 마술에 한 번도 싫증 난 적이 없다”고 했다. 슬럼프도 딱히 없었다. “마술에 제 영혼을 갈아 넣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마술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는 그가 앞으로 답해야 할 질문이자 과제다. “설명 필요 없이 제가 하는 마술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고 싶어요. 제가 잘 살고, 잘 버텨야죠.” 12월 3일∼2022년 1월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5만5000∼9만9000원, 7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AI)이 나타나고,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떠나는 시대. 잠깐 사이 사람 눈을 속이는 마술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빼앗아 뒤흔들 수 있을까. 25년째 마술 한 길을 걸어온 최현우(43)는 이렇게 답했다. “21세기가 되면 사라질 직업 8위로 마술사가 꼽혔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마법 같은 순간을 늘 꿈꾸는 인류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믿어요.” ‘마법사가 되고픈 마술사’ 최현우가 다음달 3일 개막하는 매직쇼 ‘더 브레인’으로 관객과 만난다. 1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는 공연을 앞두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공연이 취소되며 데뷔 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때 강제 휴식해야 했다. 그는 “잠시 제 삶을 돌아본 시간이었지만, 결국 현장 공연에 대한 간절함과 관객에 대한 감사함만이 남았다”며 “역시 빨간 날에는 일해야 한다”고 웃었다. 이번 작품 ‘더 브레인’은 심리학, 뇌과학, 행동과학 등을 접목시킨 ‘멘탈매직(Mental Magic)’ 쇼다. 카드, 스마트폰 등 소품을 활용해 관객 심리와 생각을 맞추고 다음 행동을 예언한다. 착시를 이용한 시각 마술도 곁들인다. 때문에 관객 참여는 필수. 최현우는 “신체 접촉하는 과정을 없애고, 최대한 대화를 통해 마술을 풀어내도록 방식을 변형했다. 마술도 ‘위드 코로나’로 진화 중”이라고 했다. 공연 말미엔 그가 쇼에서 선보였던 마술의 비밀을 전부 공개한다. 그는 “공연마다 비밀을 공개하는 순간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다. 다만 모든 걸 털어놔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멘탈매직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언뜻 마술 무대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저 너머에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현실과 긴밀히 연결돼있다. 그는 “남성 마술사를 둘러싼 미녀나 호랑이가 등장하는 무대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마술이 현실 속 페미니즘 운동, 동물복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사 역시 계속 공부하고 변해야 한다. 후배 마술사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이던 ‘숏폼 마술’이 마술을 가벼워 보이도록 만들고, 비밀 공개에만 집중한다는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도 공연장으로 끌어오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현재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최현우’에서 마술을 알리는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최근엔 틱톡도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1996년 한 대학 축제서 손을 벌벌 떨며 대중에게 처음 마술을 선보인 이래 무대 밖에서 그는 스타였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서 마술을 선보였고, 데이비드 카퍼필드처럼 하늘을 나는 마술을 준비하다 추락해 팔이 으스러지는 사고도 겪었다. 2015년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맞춘 건 지금까지 회자된다. “조작 방송이냐”는 항의 전화 수백 통을 받았고 “당첨번호 알려 달라”는 얘기는 지금까지도 듣는다고. 그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모두 마술”이라며 미소 지었다. 꿈에 나타난 최현우가 불러준 번호로 로또 2등에 두 번 당첨된 한 팬의 실화도 화제였다. 이 팬에게는 “제가 꿈에 또 나오면 꼭 저도 번호를 알려 달라”고 직접 연락했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는 “살면서 마술에 한 번도 싫증난 적이 없다”고 했다. 슬럼프도 딱히 없었다. “마술에 제 영혼을 갈아 넣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마술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는 그가 앞으로 답해야할 질문이자 과제다. “구체적 설명 필요 없이 제가 하는 마술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고 싶어요. 제가 잘 살고, 잘 버텨야죠.”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