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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끈질긴 삶과 신명, 경상남도’(6월 24일까지)엔 유독 눈에 띄는 전시품이 있다. 경남 민속 탈놀음(가면극)인 ‘오광대’에 쓰이는 탈과 깃발들이다. 오광대는 ‘다섯 광대가 탈을 쓰고 노는 다섯 과장(판소리의 마당이나 현대극의 막에 해당)의 놀음’이다. 보통 다섯 명의 광대가 양반 말뚝이 할멈 등 1인 2역 이상을 맡아 공연한다. 지역에 따라 과장의 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오광대는 다른 탈놀음과 달리 경남 지역에서만 전승돼 왔다. 오광대를 처음 연구한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에 따르면 오광대는 초계 밤마리(현재 합천군 덕곡면)에서 시작돼 경남 각지로 퍼졌다. 19세기부터 경남의 지방 민속으로 자리 잡았고, 그 가운데 통영과 고성, 가산 오광대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제7호, 제73호로 지정돼 있다. 민속박물관의 박수환 학예연구사는 “하나의 탈놀음이 같은 도내에서만 전파되어 내려온 유일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도대체 오광대의 어떤 면이 경남 백성을 사로잡아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한 걸까. ① 말뚝이는 조선의 스파르타쿠스? 오광대의 가장 큰 특징은 양반에 대한 비난과 풍자가 강하다는 점이다. 다른 탈놀음도 사회비판적 성격이 없진 않다. 하지만 오광대는 계급사회에 대한 조롱이 극 전체의 주제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심엔 ‘말뚝이’가 있다. 오광대는 ‘말뚝이 탈놀음’이라 불릴 정도로 말뚝이의 존재감이 크다. 말뚝이의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양반이 타는 말을 다루는 하인으로 추정된다. 오광대의 ‘양반 과장’에서 말뚝이는 권위만 내세우는 양반을 철저히 망신 주는 주인공이다. 다른 지역 탈놀음은 세속종교인을 비꼬는 ‘중 과장’의 비중이 높으나 오광대는 중 과장을 없애거나 축소하고 양반 과장에 힘을 실었다. 말뚝이는 가면 자체도 코를 강조해 ‘남성적 힘’을 과시한다. 반면 양반은 언청이나 곰보 등 나약한 얼굴로 만들었다. ‘영노 과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영노란 양반을 잡아먹으면 용이 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양반을 먹잇감으로 삼아야 승천할 수 있는 이무기. 그 존재만으로도 가히 체제전복적인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② 오광대는 페미니즘과 외세저항의 원조 오광대의 얼개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점도 묘미다. 이 중 고성오광대는 ‘할미영감 과장’을 강조한 게 특징. 다른 오광대는 이 과장에서도 양반 비판을 주제로 다루지만, 고성오광대는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내용은 이렇다. 조강지처 할미는 우연히 둘째 부인을 얻어 집을 나간 영감과 마주친다. 할미와 둘째 부인이 다투던 중 할미가 넘어져 죽는다. 상여꾼들이 할미의 상여를 메고 나가며 곡을 하는 것으로 과장은 마무리된다. 지아비에게 버림받고 생까지 마감하는 여인네의 기구한 운명을 보여주는 가면극은 조선시대에 희귀하다. 반면 통영오광대는 ‘포수사자 과장’을 중시한다. 담비를 잡아먹는 사자를 총으로 쏴 죽이는 포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박 연구사는 “사자는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정화의 의미를 지니는 동물이나 오광대에선 해를 끼쳐 죽여야 하는 대상”이라며 “여기서 사자는 악독한 외세를, 포수는 이를 물리치는 민족 영웅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③ 오광대는 자생적 예술인가 제례적 행사인가 오광대는 민초의 한과 희망이 담긴 예술이다. 하지만 오로지 민중의 의지로 조선시대에 이런 발칙한 공연이 경남 곳곳에서 성행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공연을 유치할 금전적 비용을 일반 백성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박 동아대 명예교수는 오광대의 흥행을 공연이 지닌 ‘토착신앙’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마을 제사나 대형 굿이 있을 때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탈놀음을 벌였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정착보다는 떠도는 습성을 지닌 놀이패를 공식 연회에 초대하는 것은 지방관아나 유지들의 몫이었다. 정 교수는 “기존에 지역마다 뿌리내린 샤머니즘과 새로이 전파된 탈놀음이 융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광대에 들어있는 ‘오방신장무 과장’과 ‘문둥이 과장’은 이런 개연성을 높여준다. 오방신장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는 방위신으로 춤을 추며 정화의식을 벌인다. 문둥이 과장은 문둥병에 걸린 주인공이 춤으로 한을 풀고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친다. 이런 주술성은 지역 제례와 오광대를 잇는 연결고리로 이해된다. ④ 오광대 전파의 공로자는 향리(鄕吏) 오광대 공연은 지방관청이 주로 유치했다. 여기서 실무를 담당한 것은 향리들이다. 이훈상 동아대 사학과 교수는 “지방 말단공무원인 이들 계층이 오광대를 퍼뜨린 숨은 주역”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오광대에 날카로운 저항의식이 담긴 것도 계급적 역학관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향리는 양반과 백성 사이의 중간자로서 온갖 부정부패의 주범으로 공격받았다. 입장이 난처했던 그들에게 오광대의 사회비판은 여러모로 요긴했다. 백성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줌으로써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사회 모순의 책임이 향리가 아니라 양반에게 있음을 은연중에 교육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금전을 관할하는 향리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오광대의 일탈도 가능했던 셈이다. 그렇다고 오광대가 가진 민중적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광대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판정신을 공연문화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오광대의 예술성이 계급을 뛰어넘어 지역에 안착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정양환·최고야 기자 ray@donga.com}

대한제국 외교의 상징이었던 건물이 미국의 수도에서 소중한 역사의 현장으로 소개된다. 지난해 102년 만에 되찾은 옛 주미대한민국공사관은 시대적 역경을 딛고 대한제국이 자주외교를 일구었던 상징성이 담긴 곳. 그 공사관이 ‘워싱턴의 북촌’ 로건서클 역사지구의 핵심 랜드마크로 대접받으며 한국 근현대사를 소개하는 명소로 발돋움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에 따르면 현지 로건서클보존회는 이달 초 “한미 외교사의 상징인 공사관 건물을 로건서클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대표적 관람 코스로 소개하고 7월 열릴 예정인 지역 페스티벌에서 오픈하우스 행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 특히 로건서클보존회를 이끄는 팀 크리스텐슨 회장은 공사관 홍보 차원에서 올해 축제에 한국 전통공연을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뜻을 재단 측에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북서쪽에 있는 로건서클은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처럼 오랜 전통가옥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19세기 초 빅토리아풍 건축물이 즐비하고, 교육자이자 인권운동가로 존경받는 메리 맥러드 베순(1875∼1955)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1930년 시 의회가 그 가치를 인정해 역사지구로 지정했다. 로건서클보존회는 자체 제작한 안내책자 ‘로건서클 역사탐방 루트’에서 꼭 들러야 할 역사적 명소 15곳에 공사관 건물을 포함시켰다. 책자에는 1903년 공사관으로 사용하던 시절 대형 태극기가 걸린 내부 사진을 실었다. 설명문에는 “1891년 조선왕조(Joseon Dynasty)가 첫 번째 주미 공사관으로 매입한 건물(최초 개설 시기는 3년 앞선 1889년으로 확인됨)”이라며 “1910년 한일 강제병합 뒤 일본 정부가 억지로 소유권을 빼앗았다”고 적혀 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0주년이 되던 2012년 대한민국 정부가 다시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도 들어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보존회 측의 요청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로건서클은 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도 상당하지만, 워싱턴과 인근 초중고교 학생들도 현장학습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미국 10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공사관에 들러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우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 달 보존회와 상의해 공사관 앞에 대형 안내판도 설치할 예정이다. 다만 오픈하우스는 건물 보존이 최우선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할 방침이다. 이성원 재단 사무총장은 “현지 주민들이 창립한 로건서클보존회는 정부가 지역 운영 방안을 먼저 협의해 올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며 “그런 단체가 먼저 옛 공사관을 중요 역사현장으로 대접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현 시점에서 공산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수 있다. 물론 몇몇 공산국가는 아직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거의 자본주의나 진배없거나 봉건세습의 왜곡된 형태로 명맥만 이어갈 뿐이다. ‘진짜 공산주의 국가’는 사라졌다는 소리다. 그리 따지면 카를 마르크스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꿈꿨던 이상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불호를 떠나 공산주의는 19, 20세기를 뒤흔들었던 사상이었다. 그리고 그 붉은 깃발 아래엔 혁명의 투혼으로 세계를 변혁하려던 이들이 있었다.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이란 부제처럼 책은 다양한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일찍이 ‘러시아혁명사’를 집필한 저자는 오랜 기간 세계 현장을 누비며 이 방대한 작업에 천착했다. 1997, 98년 동아일보사에서 출간한 ‘붉은 영웅들의 삶과 이상’과 ‘동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이상’의 합본이지만 상당한 분량을 개정 증보해 새로이 선보였다. 20세기 공산주의자 열전이라 분량은 만만찮다. 하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매끄러워 읽을 맛이 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혁명가들에 대한 적확한 평가가 주는 삶의 교훈도 낙낙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이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제시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사진) ‘임시제방 설치안’에 대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문화재청은 16일 ‘반구대 암각화, 최선의 보존방안을 찾아야 합니다’라는 보도자료에서 “현재 암각화 상황에선 어떤 제방을 설치하든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음을 관계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암각화 암석은 진흙이 퇴적돼 만들어진 이암(泥巖·shale)으로 물에 취약한 성질”이라며 “매년 4∼7개월간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훼손이 진행 중”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발표는 최근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의 ‘케네이택 댐’ 건설을 제안할 계획이던 새누리당과는 상당한 시각차를 보여준다. 케네이택 댐이란 조립식 구조로 댐 형태의 투명 막을 만들어 물을 차단하는 것.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당 차원에서 하 교수가 제안한 안을 보고받았는데 새로운 구조라 경청할 내용이 많다”며 “문화재청에 함께 고려할 것을 제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 청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기관으로서 의견을 제시했을 뿐 반대나 대립으로 비치면 곤란하다”면서도 “임시 제방은 검증이 되지 않아 암각화 침수를 100% 막을 수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책 마련을 위해 “관련 기관들과 다각도로 상의하겠다”면서도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곡천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바꿀 뜻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셈이다. 한편 변 청장은 최근 논란이 된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국 뉴욕 전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변 청장은 “소중한 국보가 너무 자주 해외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취임 전부터) 추진돼 왔던 사안이라 꼭 나가야 한다면 비교적 해외전시가 덜했던 제78호 반가사유상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0월부터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제83호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국보 12점 등을 선보이는 특별기획전 ‘황금의 나라, 신라’전을 개최할 예정이었다.정양환·이승헌 기자 ray@donga.com}

건너서 아는 지인의 친구 얘기다. 나이도 지긋한데 유독 미국 의류 ‘갭(GAP)’만 즐겨 입으셨다. 애도 아니고 커다란 로고 찍힌 옷 부담되지 않냐 물으니 이리 대답했단다. “웬걸? 그래도 ‘갑’이잖아.” 요즘 갑을(甲乙) 관계가 이슈다. 갑의 횡포, 을의 설움…. 자극적이나 공감하는 이가 많다. 살다 보면 주눅 드는 처지에 놓였던 적 대부분 있으니까. 최근 조선시대 평생 을이길 고집한 선인을 알게 됐다. 정민 한양대 교수가 2011년 쓴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이란 책에서다. 스승인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제자 치원 황상(1788∼1870)의 고귀한 인연을 다룬 멋진 작품. 허나 저자 의도와 달리, ‘갑을’ 잣대를 들이댄 건 읽은 놈 심성이 꼬여서다. 방귀 낀 김에 쭉 삐딱하면, 황상은 태생부터 을이었다. 시골 아전의 자식이니 봉건사회에서 대성하긴 글렀다. 오죽하면 귀향 온 죄인인 다산에게 글을 배웠겠나. 사대부라면 나중에 ‘갑 커뮤니티’ 진출에 누가 될까 꺼렸을 게다. 스승에게도 한결같이 을이었다. 정약용에게 배우고도 등진 이 숱했으나 그만은 의리와 본분을 지켰다. 초서(抄書·책의 중요 부분을 옮겨 씀)에 치중하란 조언을 칠순 넘어서까지 따랐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엔 자제에게도 극진했다. 치원에게 다산의 가르침은 금이고 옥이었다. 단 하나, 스승 뜻을 거스른 게 있었다. 도통 과거를 응시하지 않았다. 황상의 재능이라면 뭐가 되어도 됐을 텐데, 스스로 을의 삶을 자처했다. 그의 꿈은 탁한 세상을 피해 조용히 사는 ‘유인(幽人)’이었다. 스승이 모의고사로 짓게 한 부(賦·한자 여섯 자로 한 글귀씩 짓는 글)에서 열여덟 소년은 탈속의 행복을 노래했다. “천지의 기운이 드넓게 퍼져/ 허공에 춤을 추며 뒤섞이누나/ 산비탈 타고서 솟아올라서/ 푸른 하늘 끝까지 내달린다네 … 밭두둑서 겨자 싹을 따가지고 와/ 뜨락에서 약 모종을 바라본다네/ 이미 곳을 얻어서 즐거워하니/ 내 장차 세상 피해 숨어 살리라.” 누구나 황상처럼 살긴 어렵다. 을보단 갑이 되고픈 욕망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을로 자신을 낮춰도 이만한 품격을 갖추면 갑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치원은 공부와 인성에서 ‘슈퍼 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갑을의 칡넝쿨을 을의 수양 부족 탓으로 떠넘기면 곤란하다. 세상이나 조직이 만든 저울을 개인에게 책임 돌릴 순 없다. 다만 갑입네 거들먹거리는 분들, 상대가 당신네보다 훨씬 상질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라. 하긴 그걸 알 만한 인격자라면 첨부터 갑을 운운하는 소리 나오게도 안 했겠지. 깜냥은 병정(丙丁)쯤 되나, 행여 누구에게 유세 떨진 않았는지. 나부터 반성하련다.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한국 사람, 새마을운동 덕에 먹고살만해졌지. 허나 잃은 것도 많소. 전엔 굿하면 마을 축제였거든. 남정네도 목욕재계하고 도래떡(초례상에 놓는 큼직하고 둥글넓적한 흰떡)을 찧었지. 그런데 미신타파다 허례허식이다, 우리 문화요 전통인데 죄인 대하듯…. 피란 내려와 배곯던 때도 그리 속 끓진 않았어.” 곱게 빗어 쪽 찐 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한숨에 밴 떨림은 세월의 주름일까. 얘기를 잇든 말든 연분홍 저고리는 하늘하늘. 뒤편 제단 일월성신(日月星辰) 천지신명은 울긋불긋 무심하다.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무당’ 김금화 선생(82)의 집은 꽤 후덥지근했다. 뙤약볕 마당 복슬강아지는 연신 혀를 날름날름. 날씨도 한몫했지만 좁다란 방에 대여섯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으니. 그 열기가 허공으로 피어올랐을까. 잠시 먼 곳을 보던 김 선생이 한복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담담하니 말을 이어갔다. 이날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중요무형문화재 구술채록 세 번째 날.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명예보유자인 그가 6·25전쟁 뒤 남한 정착 시절을 풀어놓을 차례였다. 배연신굿이란 황해도 해주, 옹진 지방에서 행해지던 일종의 풍어제. 출항을 앞두고 고깃배의 안전과 만선을 기원하는 굿이다. 처음엔 “내세울 일 없다”며 손사래 쳤다던 그도 이젠 익숙해져서일까. 대담을 진행하던 홍태한 중앙대 민속학과 강사가 내미는 물잔을 편안히 받아들었다. “고향 떠난 무일푼 아낙이 뭔들 쉬웠겠어. 게다가 무당인데. 피죽 한 그릇, 누울 자리 마련도 눈치를 봤지. 그래도 알음알음 이북사람 연이 닿아 일이 들어옵디다. 없이 살아도 배 나려면 굿하는 게 당연했던 때니까. 별비(別備·무당에게 주는 돈)야 주는 대로 받지. 그러나 어디 돈보고 굿 치르나. 마음으로 하지. 보리 한 되라도 정성만 지성이면 목포 군산도 내려갔소. 그리 조금씩 소문나서 살림을 꾸렸어. 새끼 입에도 겨우 풀칠이나마 했지.” 하지만 인생사 원래 그런가. 먹고살 숨통이 트이자 마음이 갈수록 시렸다. 십수 년 정붙였던 지아비도 곁을 떠났다. 하긴 무당 ‘남편살이’가 어디 쉬웠을까. 가까운 벗이 혼인해도 식장은 들지도 못했다. 민간신앙은 냉대하면서 부정 탄다는 속설은 왜 그리 철석같은지. 새마을운동은 옹골찬 대못이었다. 무당을 혹세무민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무구(巫具)고 작두고 다 때려치울까…. 신 내림 받은 업보가 한스러웠다. 세상 시선이 바뀐 건 의도치 않은 곳에서 시작됐다. 명창 박동진 선생(1916∼2003)의 주선으로 우연히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설움이나 풀어보려 신명나게 춤을 췄다. 헌데 이게 웬걸. 천대는 어디 가고 예인(藝人)이라 극찬이 쏟아졌다. 특히 외국인 반응이 뜨거웠다. ‘토속 샤머니즘의 정수’ ‘전통종합예술의 정찬’. 해외로 초청공연까지 나갔다. 1985년 마침내 나라에서 무형문화재(당시는 ‘인간문화재’)로 지정했다. 그의 어머니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젠 바라는 거 없다고. 맺힌 거 다 풀렸다고. 맘에 걸리는 게 없진 않다. 사람들이 굿을 대하는 태도다. 홍태한 강사에 따르면 굿은 현재 서울에서만 한 해 20여만 건이 열린다. 하지만 대부분 쉬쉬 하며 몰래 치른다. 홍 강사는 “무대에선 예술이 되었건만, 실생활에선 여전히 저급문화로 홀대 받는다”고 말했다. 김 선생은 마을 모두 불 밝히고 흥에 취하던 고향, 손 맞잡고 이웃을 챙기던 인정이 그립다. 정부도 문화재 지정으로 그치지 말고 좀 더 현장의 어려움을 살펴주길 당부했다. 문화재청이 무속 채록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당은 ‘삼국유사’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녔다. 그럼에도 예우는 여전히 소홀한 게 현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의 황경순 학예연구사는 “현재 무속 종목은 김 선생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와 제82-3호 위도띠뱃놀이를 구술채록하고 있다”며 “앞으로 동해안별신굿 서울새남굿 등 다양한 무속 문화재도 진행해 그 가치를 높여가겠다”고 설명했다. “사실 무형문화재라고 뭔 영화가 생겼겠어? 그래도 고마운 거지. 다 학자님들, 나라님들 공이야. 우리야 배운 가락대로 꿋꿋하니 버텼을 뿐이고. 그걸 민속이다 문화재다 연구하고 아껴주는 세상이 옵디다. 구술채록에 응한 것도 그래서야. 한 자라도 더 남기면 보살펴주겠구나. 이제 떠나도 굿은 남겠구나.”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북한에 있는 고려시대 유적인 개성역사유적지구가 다음 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등재 권고’ 판정을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계유산은 이코모스가 권고하면 본회의에서 이변이 없는 한 등재된다. 다음 세계유산위원회(WHC)는 6월 16∼27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다. 이번에 등재될 개성역사유적지구는 핵심지역 면적만 4942km²로 왕건릉 만월대 첨성대 개성남대문 고려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 표충사 등을 아우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케아(IKEA) 관련 책 서평을 쓴다니 의외로 주위에서 관심이 크다. “한국엔 언제 들어와?” “반발이 심하다던데….” “난 뭐 만드는 거에 약해서 별로.” “가격이 착하잖아!” 놀라운 건, 아직 국내엔 정식으로 문도 안 연 이 가구 브랜드(스스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 부른다)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들어오기도 전부터 엄청난 화제였던 애플의 아이폰처럼. 국내에서의 성공 여부를 떠나 도대체 이케아는 왜 이리 주목받을까. ‘이케아, 불편을 팔다’는 어쩌면 제목부터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핵심은 바로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고, 심지어 기꺼이 즐기고자 하는 ‘불편’을 팔기 때문이다. 자, 이 광활한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당신의 보물을 찾아보시라. 낑낑대며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다면, 이젠 땀깨나 쏟아가며 직접 조립해 보라. 그 대신 가격은 어디보다 싸다. 왜? 당신이 직접 만드니까. 그 가구는 아버지 혹은 남편(아내 혹은 독거인일 수도)의 손때가 묻은 당신만의 가구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케아를 흔히 ‘스웨덴산(産) 디즈니랜드’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들도 좋아할지 의문이나, 어른에겐 환상의 놀이동산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어릴 적처럼 조립장난감을 완성해 보는 기쁨. 게다가 실용성도 탁월하다. 실제로 해외 이케아 매장을 가보면 몇 시간이고 신나서 쇼핑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이케아 ‘복음서’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저자 의도와 상관없이, 이케아에 대해 약간 ‘불편함’이 생길 수도 있다. 창업주 잉바르 캄프라드가 어릴 적부터 타고난 장사꾼이었고, 탁월한 현지 적응력이나 뛰어난 위기대처능력을 갖췄다는 용비어천가는 잠시 접어두자. 이케아란 이름은 ‘잉바르 캄프라드 엘름타리드 아군나리드(Ingvar Kamprad Elmtaryd Agunnaryd)’의 약자. 창업주와 자기가 살던 농장, 마을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기업은 지금도 창업주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1인 기업’ 성향이 강하다. 게다가 캄프라드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열렬한 나치추종자였고, 자신도 젊은 시절 히틀러를 숭배했다. 이후 이케아가 포름알데히드를 방출하는 환경문제로 곤욕을 치렀고, 제3세계 아동 노동을 착취한 경력도 있었다는 건 책 속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시라. 물론 이케아는 이런 문제를 나름 잘 해결해 왔다. 약점을 덮을 만큼 장점도 많다. 하지만 아이폰을 보라. 그렇게도 열광했던 애플 제품인데 어느 순간 약간 시큰둥해지지 않았나. 이유는 간명하다. 소비자는 변한다. 취향도 제각각이다. 이케아가 이 땅에서도 성공하려면 상당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그건 그들과 경쟁해야 할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케아를 기다리는 소비자나 앞으로 맞닥뜨릴 경쟁사 모두 읽어볼 가치가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은율탈춤 명예보유자인 민남순 씨(사진)가 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1969년 은율탈춤에 입문해 탁월한 기량으로 은율탈춤의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 왔으며, 대학과 사회단체에서 탈춤 보급에 힘써 왔다. 2002년 은율탈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됐고 2012년 명예보유자가 됐다. 은율탈춤은 황해도 은율 지방에서 이어져 내려온 탈춤으로 양반사회를 비판하는 사회 풍자의 요소가 강하다. 빈소는 인천 남구 주안사랑병원, 발인은 9일 오전 7시. 032-875-9963}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돌아왔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지리학과 교수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저술가다.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책 ‘총, 균, 쇠’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14만 권 가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에서 숱한 소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1994년 미 과학전문지 ‘디스커버’에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는 논문을 실어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생리학 진화생물학 조류학 문화인류학 등 다방면으로 연구 활동을 벌였고 6개 언어에 능숙할 정도로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다. 때문에 풍부한 연구와 세련된 필력이 버무려진 그의 책은 나올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필명 ‘로쟈’를 쓰는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저자는 ‘21세기의 다윈’이라 불릴 정도로 넓은 시야와 이론적 토대를 갖췄다”며 “그의 ‘박람강기(博覽强記·여러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함)’는 학자로서 본받아야 할 미덕”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이아몬드 교수의 최신작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가 9일 국내에서 정식 출간된다. 현지에서 지난해 12월 출간된 이 책은 ‘총, 균, 쇠’ ‘문명의 붕괴’(2005년)와 함께 교수의 ‘문명 대(大)연구 3부작’에 해당한다. 앞선 ‘총, 균, 쇠’가 서구 문명이 궁극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유를 통해 인류 역사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짚었다면 ‘문명의 충돌’은 여러 문명의 위기와 종말을 고찰함으로써 자연 자원을 남용하는 문명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3부작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교수는 전통사회로 눈을 돌린다. 위험천만한 현재 세계의 생존 해법을 찾기 위해 알래스카 이누피아크족이나 아마존 야노마모족, 필리핀 아그타족 등 국가 사회 이전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부족들을 살핀다.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를 번역한 강주헌 씨는 “서구 문명이 세계를 지배했다고 모든 면에서 다른 문명보다 우월하단 뜻은 아니다”며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려면 오히려 전통사회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제시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3권 모두 700쪽이 넘는 분량인 데다 방대한 내용이 담겨 읽기에 수월하진 않다. 하지만 세계적 석학이 오랫동안 공들인 연구과정과 결론을 찬찬히 따라가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올해 3월 특별판으로 재출간한 ‘총, 균, 쇠’에서 ‘한국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고안된 문자 체계인 ‘한글’로 책이 번역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명예보유자인 남기환 씨(사진)가 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남사당놀이 꼭두각시놀음 예능보유자였던 남운룡 선생(1907∼1978)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남사당패에서 다양한 기예를 연마했다. 1993년 남사당놀이 보유자로 인정됐고, 2008년 명예보유자에 올랐다. 남사당놀이는 꼭두쇠를 비롯해 최소 남성 40명으로 구성된 남사당패가 조선 후기부터 전국을 돌며 행했던 공연이다. 빈소는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발인은 8일 오전 7시. 02-557-3880}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보석을 찾았습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울 최고 경관지 가운데 하나인 종로구 부암동 백석동천(白石洞天). 이곳의 정자 복원 방식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가 벌여온 논쟁을 옛날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해결했다. 2011년부터 백석동천 종합정비계획을 진행해 온 종로구청은 6일 “1935년 동아일보 지면에서 정자의 실물 사진을 찾았다. 신문에 실린 원형 그대로 되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악산 북쪽 중턱에 펼쳐진 백사실 계곡은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 높다. 특히 백석동천은 흰 돌이 많고(백석) 신선이 사는 별천지(동천)라 불릴 만큼 절경이라 2008년 명승 제36호로 지정됐다. 1800년대에 조성된 별서(別墅·별장의 일종) 유적으로 연못 주위에 정자와 사랑채 터, 담장과 석축 일부가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국회의 탄핵 의결로 직무가 정지됐을 때 이곳에 왔다가 감탄을 쏟아냈다. 지난해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소유였다는 숨겨진 역사도 밝혀졌다. 여러모로 가치가 높아 복원은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구청은 주춧돌만 남은 정자 원형이 어땠는지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 건축사사무소에 의뢰해 창덕궁 후원의 태극정(太極亭)과 소요정(逍遙亭)을 참조한 계획안을 수립했다.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조선시대 문인의 정원이라면 담백해야 하는데 궁궐 정자는 과하다는 지적이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지붕이 너무 화려하고 계자난간(鷄子欄干·닭 모양 부재로 지지한 난간)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동아일보 사진이 발견되며 한 방에 풀렸다. 1935년 7월 19일자 2면에 게재된 온전했던 정자 전경을 종로구청이 찾아냈다. 시민단체 주장대로 단아하고 소탈한 풍취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종로구청은 “실물을 확인했으니 기존 설계를 폐지하고 9월경부터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민화를 통해 옛 선조가 펼친 상상의 나래를 만끽하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10일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특별전 ‘상상의 나라-민화 여행’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지난 30여 년간 모은 민화 가운데 80여 점을 엄선해 공개한다. 민화는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유행했던 그림으로 집 안 장식이나 행사에 실용적으로 쓰였다. 정통 회화와 달리 관습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기발한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채색이 돋보였다. 박물관은 민화들을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눠 전시한다. ‘화폭에 자연이 들어오다’란 주제를 담은 제1전시실은 꽃과 나무, 영모(翎毛·새나 짐승), 어해(魚蟹·바다동물)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모았다. 그 가운데 화조도는 부부 금실이 좋아지고 자손을 많이 낳는다는 의미가 담겨 침실용으로 인기가 많았다. 제2전시실은 ‘화폭에 책과 문자를 놓다’란 주제로 꾸몄다. 책이나 문방구를 그린 책거리그림이 눈에 띈다. 백수백복(百壽百福·장수다복)과 같은 문자로 만든 민화도 함께 전시된다. 마지막 제3전시실의 ‘화폭에 옛 이야기를 담다’에서는 유교적 이상이 반영된 전경을 담은 산수화나 옛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작품들에 초점을 맞췄다. 금강산이나 관동팔경을 그렸거나 삼국지연의와 구운몽을 소재로 한 민화가 눈길을 끈다. 박물관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미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9월 14일까지. 일요일 휴관. 3000∼8000원. 02-541-3525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부끄럽지만 고백부터 하자. 책 선정회의에서 이 두 권을 묶기로 한 것은 안일했다. 그저 워낙 육아에 관심 많으니 요즘 흐름이나 짚어보자는 취지였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펼쳐본 책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일단 ‘엄마의 의욕이…’는 그럭저럭 예상을 벗어나진 않는다. 일본에서 꽤 잘나가는 자녀교육 전문가인 저자는 아빠 엄마의 과잉의욕이 아이를 어떻게 망치는지 강하게 비난한다. 자극적이지만 사실 이래야 정신 차린다. 그리고 작지만 적절한 부모의 변화가 얼마나 아이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조언해준다. 동의하건 안 하건 이 책은 대충 통과. 그런데 문제는 ‘서울대 엄마들’이다. 이 책, 어떤 육아 방법도 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에 대한 책도 아니다. 물론 잘나디잘난 서울대 출신 엄마 24명에 대한 인터뷰 속에는 나름 느껴지는 바가 많다. 하지만 그 포커스는 바로 그 ‘엄마들’이다. 서울대를 나온 여성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며 그 교육법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라면 당장 이 책을 덮길 바란다. ‘서울대 엄마들’은 말 그대로 엄마가 주인공이다. 저자들 역시 서울대 출신(평생 글에 이렇게 서울대를 많이 써본 적은 처음이다)인 책은 정말 담담하게 서울대를 나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 주목한다. 그들은 우리와 뭐가 차이가 날까. 그들 역시 우리와 뭐가 닮았을까. 성질 급하게 결론부터 얘기하련다. 방식이나 상황은 약간 다를지언정 그들도 똑같은 엄마였다. 일단 선입견부터 버리자. 서울대 부모를 둔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다! 아, 살짝 쾌감이 드는 이 악마 근성에 축배를. 오히려 너무 대단한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자녀가 많다. 최고학력을 갖췄다고 교육법이 고차원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준이 너무 높다보니 아이의 재능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잦았다. 게다가 적당한 속물근성과 강남 지상주의, 자녀를 통한 은근한 경쟁심리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맞다. 서울대도 한국 땅에 있다. 그들은 2013년 동시대를 사는 ‘한국 엄마’였다. 그렇다면 왜 그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이들도 이 땅의 진흙탕 같은 교육 현실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걸까. 사회 탓, 정부 탓, 남편 탓…. 다 맞는 말인데 뻔히 아는 건 잠시 접어두자. 의외로 이 대답은 ‘엄마의 의욕이…’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이런 고학력 부모들은 ‘고층빌딩형 지식’에는 일가견이 있다. 반에서 1등 하고,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스킬’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허나 책이 말하는 ‘들판형 지식’에는 의외로 허술한 경우가 많다. 보기엔 쓸모없어 보이는 잡학일지 몰라도 다양한 관심과 경험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어쩌면 서울대건 아니건 이 땅의 엄마 아빠들은 여기서 아이와의 관계에 낭패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좋은 대학과 번듯한 직장만이 성공의 척도라고 믿는 사회에서, 조금 뒤처지거나 돌아가는 삶은 ‘낙오’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진 않았는지. 자신의 아이 역시 이런 기준으로 평가 대상 채점하듯 바라본 것은 아닌지. 허구한 날 이 땅의 교육현실을 개탄하면서도, 그 레이스에서 뒤처질까봐 불안에 떨고 있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것이 쏟아져도 남은 게 하나 있다. 다들 아는 ‘희망’이다. 아마 자녀가 없는 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바로 이런 모순에서 우리는 아직 희망을 본다. 왜? 우리 아이니까.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니까. 부모는 그런 거다. 험한 세상의 파도를 막을 버팀목이 될 책임이 있는 한, 저 풍랑에 맞설 수밖에 없다. 다만 이젠 바깥세상만 보며 걱정하지 말고, 등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자. 혹시 그 아이, 등 뒤에서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땅에 와준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쳤던 초심을 기억하자. 서울대 엄마건, 일본 엄마건 혹은 아빠건, 가족은 서로 존재하는 자체로 고마운 거다. 그리고 그거면 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음력 7월 말. 아직 늦더위가 남았으나 환절기 밤공기는 벌써 쌀쌀하다. 뜻한 바 있어 객지로 떠났어도 어찌 부모 형제의 안부가 궁금치 않을까. 과거를 앞둔 처지에도 몇 차례나 편지를 부쳤건만 답신은 오질 않고….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온통 스산하고 아련한 마음이 전해진다. 숨이 다하던 순간도 나라를 걱정하던 충정에 감읍한 세상은 그를 성웅(聖雄)이라 불렀다. ‘신의 반열’로 존경하다 보니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다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순신이 효성 지극한 자식이자 우애 넘치는 동생이란 것을 보여 주는 고문서(사진)가 최근 발견됐다. 지난달 28일은 충무공 탄생 468주년.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전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교수)은 1일 이순신이 젊은 시절 쓴 친필 편지로 추정되는 문서를 공개했다. 이순신이 관직에 오르기 전에 쓴 편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적이 없다. 가로 40.0cm, 세로 21.5cm의 한지에 17행 149자가 적힌 편지에는 성을 뺀 ‘순신(舜臣)’이라는 서명이 명확하다. 노 소장은 “난중일기와 이전 서간에서 드러난 왕희지 초서체의 충무공 필법이 확실하다”며 “특히 이름과 ‘何(어찌 하)’ ‘之(갈 지)’ 글자가 거의 똑같다”고 설명했다. 노 소장에 따르면 편지는 이순신이 1576년 초시(初試·과거의 첫 시험)를 보기 직전인 31세 때 보낸 것으로 보인다. 맏형 이희신(1535∼1587)에게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편지에는 형님이 건강 문제로 붓을 잡는 게 힘들까 우려하는 내용도 담겼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는데 가족은 무사한지, 부모와 장인의 안부는 어떠한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은 변변치 못하니 형이 두루 살펴 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잊지 않는다. 이순신이 젊은 시절 조카에게 ‘과외’를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반년 동안 논어를 가르쳐 한 권을 뗐는데, 이제 자신이 집을 떠났으니 조카의 공부가 걱정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조카는 노량해전 당시 충무공 곁을 지켰던 이완(1579∼1627)과 열세 살에 제술과(製述科·과거의 한 종류)에서 수석을 차지한 이분(1566∼1619)이 유명하나 이 중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노 소장은 최근 자신의 신간 ‘이순신의 승리 전략’을 통해 충무공이 다양한 경전과 병서는 물론이고 삼국지도 탐독했던 다독가였다고 밝혔다. 노 소장은 “젊은 삼촌이 조카에게 직접 학문을 가르쳤으니 이미 상당한 학문적 조예를 갖췄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정부 여당이 울산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보존하기 위해 암각화 일대에 임시 생태제방을 쌓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신석기 문화 유적인 반구대암각화는 인근에 사연댐이 세워진 뒤 1년에 7, 8개월은 물에 잠겨 일부 그림이 지워질 정도로 훼손이 심각하지만 해법을 놓고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10년 넘게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 당시 2017년까지 반구대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황우여 대표는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귀중한 문화유산이 지방자치단체와 해당 부처의 갈등 조정 실패로 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장마철이 오기 전에 암각화 일대에 임시로 생태제방을 쌓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시로 생태 제방을 쌓아 물에 잠겨 있는 암각화를 꺼내 더 훼손되지 않도록 막겠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암각화의 지속적인 보존을 위해 당정협의를 거쳐 예산 지원 등 필요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밟아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식수원 대책 마련뒤 댐수위 낮출 방안 검토 ▼새누리당은 2일 암각화 인근인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암각화 보존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암각화 보존 방법을 놓고 울산시는 생태제방 축조를, 문화재청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울산시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출 경우 식수원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문화재청은 영구 생태제방을 쌓으면 암각화의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반대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일단 ‘임시 생태제방’을 쌓았다가 추후 식수원 대책을 마련한 뒤 임시 제방을 허물겠다는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다. 4월 초 국무총리실에 암각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한 정부도 새누리당과 함께 암각화 보존을 위해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훼손이 계속되는) 암각화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신속한 대책 수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암각화 보존 방안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논란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이 사안을 ‘조기 경보’ 대상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모철민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가능한 한 빨리 암각화 보존을 위한 합의안을 도출하겠다”며 “특히 울산시민들의 식수 부족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근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장 시절 암각화 보존대책을 정부에 촉구할 정도로 ‘암각화 보존 전도사’로 활약 중인 김형오 전 의장도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갈등을 끝내고 하루빨리 암각화를 물속에서 꺼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싶으면 우선 물속에 잠긴 암각화를 꺼내 정상화해야 한다”며 “‘작살 박힌 고래’ 등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그림은 이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다”고 말했다.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인터뷰하는 대상이 아니라 반구대를 함께 살리는 ‘동지’로 얘기 나눕시다. 지금 반구대 암각화는 불에 타고 물고문을 당하고 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예상대로였다. 달리 ‘반(구대) 청장’이라 불릴까. 지난달 2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취임 후 언론과의 첫 단독인터뷰를 가진 변영섭 문화재청장(62)은 자리에 앉자마자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얘기부터 꺼냈고, 인터뷰의 거의 모든 시간을 반구대에 할애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는 수시로 냉탕과 온탕을 오고갔다. 반구대 보존을 위한 열정은 매섭도록 뜨거웠고 대답마다 문장의 조사 하나에도 신경 쓰는 신중함도 짙게 묻어났다. 대한민국 첫 여성 문화재청장은 취임 7주 동안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 ―교수로 재직하다 처음으로 관직에 나섰다. 그것도 문화재청장이란 막중한 자리다. “여러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개인적인 소회는 중요하지 않다. 평생 문화를 공부하고 문화재에 관심을 쏟아왔으니 아주 바뀐 건 아니다. 다만 강단에선 이상을 논하고 그것을 실천할 방법론을 고민했다면, 지금은 현장에서 실행에 옮기는 입장이란 것만 다를 뿐이다. 솔직히 정치나 관직에 관심이 없었기에 지금도 거창한 포부는 없다. 하지만 문화와 문화재에 대해 좀 더 깊고 치열하게 고민할 기회를 얻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문화재청 역사상 첫 여성 청장이다. 느끼는 바가 사뭇 다를 텐데…. “물론 직원들은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디테일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남성이건 여성이건 청장으로 일하는 건 본질적으로 똑같다. 성별에 초점을 맞춰서 에너지를 써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다만 여성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꼼꼼하면서도 대화로 일을 풀어나가려 노력한다. 반구대 역시 울산시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화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 청장’이란 별명은 들어봤나. 전담 TF(태스크포스)도 꾸렸다. “그렇게 부르는 줄 몰랐다.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취지로 이해해 달라. 반구대는 올해 또 물에 잠긴다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조선왕조실록을 물에 젖게 내버려둘 수 있나. 지금 반구대는 암석이 약해져 종이를 물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이것이 울산시민들과의 대립으로 보일까봐 걱정스럽다. 절대 서로를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다. 해결 방향에서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TF는 물론 문화재청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일해 줘서 감동했다. 안에 들어와 보니 정말 열심히 한다.” ―울산시와 갈등을 빚는 것은 사실 아닌가. 지난 현장설명회 때도 박맹우 울산시장이 거세게 항의를 표시했다. “박 시장도 다 시민을 위해 일하는 거 아니겠나. 그간 보여준 모습을 보면 시장으로서 존경스러운 면도 많다. 울산 역시 반구대를 지키기 위해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넘게 반구대 보존 운동을 해보니까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다. 서로의 얘기를 더 귀담아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역시 그간 그런 부분에서 실패했다는 걸 인정한다. 계속해서 울산과 대화하겠다. 제발 이걸 대립이나 갈등으로 보지 말아 달라.” ―박근혜 대통령도 반구대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별다른 언질은 없었나. “따로 얘기할 기회는 없었다. 임명장을 받을 때 돌아가며 한마디 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문화재의 맏형, 그림으로 쓴 역사책을 살릴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바로 ‘반구대 암각화’ 하고 반응하시더라. 원래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신 분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감명받았다.” ―문화재청은 산적한 현안이 많다. 너무 반구대에 ‘다 걸기(올인)’하는 거 아닌가. “그만큼 시급하니까 이러는 거다. 또 취임 때부터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등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펴왔다. 그런 의미에서 반구대를 모범 사례로 세우고 싶다. 반구대 문제가 이렇게까지 된 데는 관리나 보존에 있어 지방자치단체와의 혼선이 한몫을 했다고 본다. 반구대를 시작으로 국가지정문화재는 국가가 관리한다는 상식적 원칙을 세우고 싶다. 반구대가 살아야 우리 문화가 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고려 관음보살이 6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후손에게 그 미소를 허락했다.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불화 1점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불화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데다 지금까지 세계를 통틀어 160여 점만 확인돼 국제 경매시장에서도 진객(珍客)으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윤왕좌(輪王坐)’ 자세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여서 국보급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윤왕좌는 부처나 보살이 정면으로 앉은 채 세운 오른 무릎에 오른팔을 올리고 왼손은 바닥을 짚은 자세다. 정우택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29일 “일본 후쿠오카 현 조텐(承天)사에서 14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수월관음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수월관음도란 달밤의 물가 바위에서 관음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파하는 장면을 담은 불화를 일컫는다. 고려 문화재의 윤왕좌는 조각상이나 쇠거울 선각(線刻·선으로 새긴 그림이나 무늬)으로 일부 존재할 뿐 불화에서는 유례가 없다. 지금껏 알려진 고려 수월관음도는 비스듬히 옆으로 반가좌를 튼 자세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불화 발견은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윤왕좌 관음도가 당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결정적 계기도 마련했다. 이 그림은 가로 47.5cm, 세로 97.1cm 크기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는 전형적인 고려불화 기법을 따랐다. 후대에 수정하거나 손댄 흔적이 없으며, 제작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존에 알려진 14세기 전반 고려불화인 일본 야마토문화관(大和文華館) 수월관음도와 비교해 보면 △의복 형태 및 착용 방식 △투명 베일의 표현법 △국화무늬 치마 문양 등이 놀랍도록 닮아 동시대나 14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화가 발견된 조텐사는 조선시대 양국 교류의 거점으로 이용되던 사찰로 고려 동종(1065년)과 또 다른 고려불화 반가좌 수월관음도를 소장한 곳이다. 정 교수는 “윤왕좌 수월관음도는 세련된 공간미와 차분한 주제의식이 조화를 이룬 걸작”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성과를 5월 4일 동악미술사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굳은 입술엔 묘한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정면을 바라보는 눈빛은 지긋한 듯 찌릿하다. 인도 신화 속 제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취했던 자세(윤왕좌·輪王坐)여서일까. 편안한 듯 다부지게 세상을 내려다본다. 그 기세를 아우르며 감싸는 천의(天衣)의 보드라움이란. 발아래 앙증맞은 선재 동자의 합장 따라 어느새 두 손이 모아진다.정우택 동국대 교수(동국대박물관장)가 올해 초 찾은 윤왕좌 수월관음도는 일본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존재’였다. 30여 년 전 나온 한 출판물에 자그마한 흑백 사진이 실리긴 했으나 정 교수가 이를 발견할 때까지 누구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14세기 후반에 그려진 관음보살은 그렇게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길 600여 년을 기다렸다.일본 후쿠오카 현 조텐(承天)사 수월관음도가 이토록 빼어난 아름다움을 갖추고도 주목받지 못한 것은 선입견 탓이 컸다. 그간 고려불화에서 관음보살은 45도쯤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반가좌를 튼 자세가 대부분이었다. 정면을 향해 무릎을 세우고 한 손을 짚은 윤왕좌 관음은 18세기 조선불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자세였다. 이 때문에 이 불화도 정확한 조사 없이 흔한 조선불화 가운데 하나려니 지레짐작해 버린 것이다.하지만 고려 수월관음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일본 야마토(大和)문화관 소장 작품(14세기 전반 추정)과 비교해 보면 조텐사 불화의 가치가 여실히 드러난다. 보살이 걸친 천의의 형상과 착의법이 거의 똑같고, 왼손으로 천 자락을 누르듯 잡은 방식도 일치한다. 투명한 베일을 바위 좌우로 흘러내리게 한 기법, 흔한 거북등무늬를 생략하고 국화무늬로만 감싼 과감성도 조선불화에선 찾기 힘들다.이 수월관음도는 이 땅의 불화 전통이 켜켜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증명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윤왕좌는 조선불화에 많이 등장하고 고려불화엔 없다 보니 그동안 학계는 윤왕좌의 원류를 15세기 중국 법해(法海)사 벽화를 비롯한 명대 불화로 짐작해왔다. 하지만 조텐사 불화의 등장으로 고려와 조선을 잇는 소중한 명맥을 되찾은 셈이다.불화가 발견된 조텐사가 한반도와 역사적 관계가 많은 곳이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양국의 교류 거점으로도 자주 이용돼 일본행록(日本行錄)을 썼던 조선통신사 송희경(宋希璟)이 이 사찰에 대한 시를 짓기도 했다. 국내에는 ‘승천사 동종(承天寺 銅鐘)’으로 유명한 1065년 고려 동종과 또 다른 고려불화를 소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인연이 바탕이 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난주 출간된 책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는 제목부터 참 의미심장했다. 누구나 놀고 싶지 일하는 게 좋을까 싶다가도, 만족스러운 이도 있을 텐데 너무 일반화시켰단 반감도 생겼다. 어쨌든 노동이 버거웠던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터. 혹 극복할 방도만 있다면야 책 100권이라도 읽겠다. 얼른 주사 한 방이 필요했지만, 책은 청진기부터 갖다댄다. 독일 여성 철학자인 저자는 문제의 근원을 성과주의에 물든 사회에서 찾는다. 정부와 사회조직, 그리고 구성원 스스로조차 일중독을 장려하기 때문이란다. 책은 이를 ‘향락 노동’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하자면 노동은 결코 쾌락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현대 인류는 노동이 자아실현을 이룰 행복의 수단이란 집단최면에 걸려 일에 몰두한다. 이런 자가당착이 인간을 우울하게 만드는 쳇바퀴가 되는 셈이다. 살짝 현학적이나 상당히 수긍이 간다. 주위를 둘러보자. 일 잘한단 소리 듣는 사람들, 근사하긴 한데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고 사는 것 같진 않다. 스스로 선택했지만 자기 시간을 희생하고 억제하는 데 익숙하다. 저자는 이를 ‘강박적인 사랑’과 비슷하다고 봤다. 계속해서 뭔가를 갈구하고 인정받길 원하며. 육체적 정신적 혹사를 오르가슴 비슷한 훈장으로 받아들인다. 뭐, 아닌 사람도 있다. 말만 번지르르하거나 남한테 책임 전가하는 이가 왜 없겠나. 하지만 그들조차 ‘능력자’로 대접받으려 하지 밀려나길 바라진 않는다. 결국 책이 제시하는 처방전은 이렇다. 내려놓아라. 적극적인 과로가 존경받는 사회적 편견부터 바꾸자. 권태와 게으름에 몸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이건 성과사회를 위해서도 올바른 방향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만 들고 판다고 매번 아이디어가 샘솟던가. 때론 편안한 수다가, 가끔은 멍한 사색이, 이따금 목적 없는 휴식이 더 매력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노동이 우울하지 않으려면 한계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수영이 하고 싶은가. 그럼 일단 가만히 몸에 힘을 빼야 물에 뜨는 법을 배운다. 요즘은 대체휴일제가 꽤나 논란인가 보다. 잘못 도입하면 최대 32조 원까지 손실이 생긴다니 심사숙고하잔 의견에 동의한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비용절감에 밤잠 설치는 중소기업들은 더욱 걱정스럽겠다. 그런데 하나만 여쭤보자. 경영자님들, 이 고통분담 함께하는 거 맞죠. 직원들은 별 보며 일하는데, 분식회계나 저질러 뒤로 사욕만 채우는 수장들은 이 땅엔 없으니까. 휴일 늘리지 않아도 수당 덜 받아도, 분명 너도나도 신나서 출근하는 직장 만들려 애쓰고 계실 게 분명하다. 아, 우리의 노동은 우울할 틈이 없다. 대체휴일제도 내려놓자. 평일에 슬쩍슬쩍 놀면 되잖나.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