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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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30~2025-12-30
문화 일반52%
문학/출판23%
연극13%
교육3%
무용3%
산업3%
학술3%
  • 누가 예상했을까… 노벨문학상에 美 포크록 가수 밥 딜런

     미국의 가수 겸 시인인 밥 딜런(75·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먼)이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현지 시간) “훌륭한 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인보다 가수로 더 유명한 인물이 노벨 문학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딜런은 1993년 수상한 소설가 토니 모리슨(85)에 이어 23년 만에 미국에 노벨 문학상을 안겼다.  한림원은 “딜런의 노래는 ‘귀를 위한 시’다.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인내를 승화시켰으며 획기적인 사고를 보여줬다”고 밝혔다.이어 “5000년 전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와 여류 시인 사포가 쓴 시적인 텍스트는 공연이 됐는데 이는 딜런과 같은 방법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딜런은 그래미상, 아카데미상, 퓰리처상에 이어 노벨상까지 거머쥔 최초의 인물이 됐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딜런은 1970년대 대표적인 포크가수로 저항음악의 상징이었다. 1963년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Knockin' on Heaven's Door’ 등의 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한때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트위터에 “오르페우스(그리스 신화의 음유시인)부터 파이즈(파키스탄 가수)까지 음악과 시는 매우 가까이 연결됐다”며 “딜런은 음유시인 전통의 뛰어난 후계자”라고 썼다. 상금은 800만 크로나(약 10억4000만 원).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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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손효림]할매 할배 콘텐츠의 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 울 뻔했어요. 작가 선생님의 어머니가 쓰러지신 적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 할머니도 그러신 적이 있거든요.” 연평초등학교 6학년 홍정민 양은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포토에세이 ‘할매 할배 참 곱소’에 대해 말하다 눈시울이 빨개졌다. 이 학교에서는 11일 저자인 김인자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본보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함께하는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캠페인의 첫 번째 방문지인 연평도에서 10∼12일 진행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홍 양은 “담임 선생님도 우셨다”고 살짝 귀띔했다. 학생들은 이 책을 갖고 싶다며 앞다퉈 요청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콘텐츠’의 힘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83세 황보출 할머니가 늦깎이로 한글을 배운 후 쓴 시를 모아 올 8월에 출간한 ‘가자뒷다리’도 서점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살면서 겪은 아픔을 솔직하게 쓴 작품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내가 클 때는/쌀 서 말을/못 먹고 컸다고 하네.//참 나도 요즘 태어났으면/인생살이가 좋았을까.’ 제목이 ‘욕심’이다. 할머니가 생각하는 욕심은 그런 거다. ‘지하철 노인좌석에 앉으려는데/뒤에서 열쇠뭉치가 날아온다/남자 한 분이 자리를 먼저 잡으려고 한다 (중략) 열쇠뭉치가 자리 주인 된 것은 처음 본다’(‘열쇠좌석’) 희한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의아한 표정이 보이는 듯해 웃음이 난다. 한글학교를 다닌 어르신 87명이 쓴 시와 산문을 모은 ‘보고시픈 당신에게’는 서툴게 꼭꼭 눌러쓴 글씨와 정성껏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예쁘기 한량없는 손자가 자기 동화책을 읽을 때 할머니 것도 한 권 빼 오며 어느새 사이좋은 공부 친구가 되고(김정순 ‘손자는 내 공부 친구’) 한글을 깨쳐 딸에게 문자도 보내고 계모임 돈 계산도 하고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청국장을 주문하며 기뻐한다.(오홍자 ‘내 인생에 꽃이 폈네’) 역시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시를 담은 ‘시집살이 詩집살이’도 인기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독자들이 ‘삶의 애환이 묻어나 작은 울림이 느껴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안고 토닥여 주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다. 책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사랑받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노년층뿐만 아니라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환호를 보낸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생사는 한 명 한 명이 책 한 권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는다. 온갖 풍파를 겪은 이들에게선 애잔함과 함께 느긋함과 해학이 묻어난다. 젊은 세대는 가지 못한 길을 먼저 가 본 그들이기에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삶의 의미와 여유, 웃음에 목말라하는 이가 갈수록 늘어나는 요즘, 문화계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힘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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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가수 겸 시인’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

    미국의 가수 겸 시인인 밥 딜런(75·사진)이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현지시간) "훌륭한 미국 음악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인보다 가수로 더 유명한 인물이 노벨문학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8)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2년 연속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밥 딜런은 1993년 소설가 토니 모리슨(85)에 이어 23년 만에 미국에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사라 다닐스 스웨덴 한림원 사무차장은 "딜런은 54년 동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인내를 승화시켰고 놀라운 사고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호메로스와 사포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시적인 텍스트를 썼고 이것은 공연이 됐다. 이것은 밥 딜런과 같은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밥 딜런은 1970년대 대표적인 포크가수로 저항 음악의 상징이었다. 1963년 앨범 '더 프리휠링 밥 딜런'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등의 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지만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딜런이라는 이름을 따 예명을 지을만큼 문학에 심취했다. 상금은 800만 크로나(약 10억 4000만 원). 시상식은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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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책과 음악… ‘최전선’에 문화가 흐르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 연평초등학교 인근에는 2010년 북한의 포격으로 땅이 푹 꺼진 현장 사진과 이를 설명하는 게시물이 설치돼 있다. 6년이 지나도 연평도는 그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12일 연평초에는 평소와 달리 활기가 넘쳤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책 버스에 모인 1, 2학년생 16명은 스토리텔러 최순자 씨가 강아지 똥 모형을 들자 키득키득 웃음부터 터뜨렸다.  “내가 아주아주 답답한 곳을 빠져나왔는데 여기가 어디지? 너희들은 어느 학교 친구들이니?”(최 씨) “연평초등학교요!”(학생들) ○ 문화 싣고 달리는 책 버스 올가을 꽃게 철에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탓에 시름에 빠져 있던 연평도 어민들은 최근 본격적으로 꽃게잡이에 나서고 있었다. 해경 고속단정 침몰 사건 이후 중국 어선이 그나마 줄어든 덕분이다. 해질 무렵 연평도 항구에는 꽃게를 가득 실은 배가 들어와 이를 트럭으로 옮기는 손놀림이 분주해지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여기에 ‘작은도서관…’ 등이 10∼12일 사흘간 책 버스 행사와 공연 등으로 책 문화 향연을 펼치자 학생과 주민, 군인들은 이내 흠뻑 젖어들었다. 11일에는 김인자 작가가 학생들에게 그림책과 에세이집을 읽어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연평초 6학년 박은경 양은 “김 작가님이 ‘할매 할배 참 곱소’라는 책을 쓰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30여 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 대표인 김수연 목사(70)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고정욱 동화작가가 쓴 ‘책 할아버지의 행복도서관’을 연평초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아이 이름과 함께 ‘책을 읽으면 행복해집니다’ ‘책을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란 당부를 일일이 쓰고 사인을 했다.   10일 저녁에는 마을회관인 연평종합회관 앞마당에서 가수 서수남 씨가 노래를 부르고 발레 ‘지젤’ 영상물을 상영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주민 100여 명이 함께했다. 흥에 겨워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 연평부대, 문화가 꽃피다 12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주최로 테너 신재호, 소프라노 김문희 씨가 해병대 연평부대를 직접 찾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내 마음의 강물’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을 불러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창작발레 ‘심청’, 오페라 ‘마술피리’ 영상물도 상영했다. 고학찬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은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있는 서해5도의 연평도에서 발레 ‘심청’을 처음 선보이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세계문학전집 300권과 신간 베스트셀러 100권을 포함해 총 400권을 연평부대에 전달했다. 국민은행은 내년 초 주민과 군인 가족을 위해 컨테이너를 도서관으로 꾸민 ‘컨테이너 도서관’도 기증할 예정이다. 박이성 연평부대장은 “입대 후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된 군인이 많은데 신간을 보면 무척 반가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에게는 도덕경, 논어, 명심보감, 탈무드 등 2000여 권의 포켓북을 전달했다. 김상민 병장(22)은 “제대 후 복학 준비를 위해 책을 가까이 했는데 마음을 더 다잡고 읽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남북 대치에 따른 아픔이 서린 연평도에서 책 버스가 출발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 “책 한권 펼쳐들고 벙글벙글 웃어주세요” ▼ 작은도서관 전국공연 서수남씨  “벙글벙글 벙글벙글 웃어 주세요. 화내지 말고∼.” 해병대 연평부대에 11일 저녁 기타 소리와 함께 ‘벙글벙글 웃어 주세요’를 부르는 가수 서수남 씨(73·사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물농장’ ‘팔도유람’ 등 신명 나는 노래가 이어지자 사병들은 큰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어깨를 들썩였다. 우렁찬 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서 씨는 김수연 목사와의 인연으로 2014년부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올해로 가수 인생 52년을 맞은 그는 행사장 분위기를 띄우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한다. 중년 이상의 팬들은 그를 보면 반가워하고, 젊은 세대들은 얼굴은 몰라도 ‘닭장 속에는 암탉이∼’라는 ‘동물농장’의 가사가 나오면 ‘아, 그 노래’라며 박수를 친다. 이날도 서 씨가 공연 전 연평도 골목을 다니자 주민들은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넸고, 소주를 마시던 남성들은 “한잔하고 가시라”며 손짓하기도 했다. 서 씨는 “작은도서관을 통해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로 참여했는데 오히려 내 인생이 바뀐 것 같다”며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새 피곤함을 잊는다”고 말했다. 연평도=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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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연평도에 꿈을 선물한 ‘달리는 도서관’

     12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연평초등학교 운동장. 노란색으로 꾸민 버스에는 책 그림과 함께 ‘꿈을 캔다! 행복을 만든다! 작은 도서관에서…’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책과 TV 모니터를 갖추고 놀이방처럼 꾸며 놓은 책 버스 안에서는 1, 2학년 학생 16명이 구연 동화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는 책 버스가 연평도를 찾았다. 이 단체는 KB국민은행, 서울 예술의전당과 함께 10∼12일 학생과 해병 부대원에게 책을 기증하고 작가와의 만남, 발레 영상 상영, 노래 공연을 펼쳤다.  2010년 북한 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7일엔 해경 고속단정이 중국 어선의 공격으로 침몰해 연평도 일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후 중국 어선의 출현이 주춤해지자 주민들은 본격적으로 꽃게잡이에 나섰다. 여기에 책 잔치까지 더해지자 주민들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작은도서관…’은 32년째 전국에 300여 개의 도서관을 세우고 책을 기증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2005∼2010년 방방곡곡을 누볐던 책 버스를 새로 만든 뒤 첫 방문지로 연평도를 택한 건 상처 입은 최전방의 섬을 문화로 어루만진다는 의미가 담겼다.  ‘작은도서관…’과 동아일보는 독서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책 버스’를 앞세워 도서관을 만들고 책을 기증하는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캠페인을 펼친다.연평도=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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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들이 다 가는 길 무슨 재미… 돈 불리다 돈 키우고 있어요”

    《 “쭈쭈쭈쭈∼.”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자리한 돼지농장 ㈜성우의 이도헌 대표(49)가 5일 방목해 키우는 까만 돼지를 보며 소리 내 다가가자 돼지들이 달려왔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 듯 얌전히 있었다. 돼지 농장주 4년 차인 이 대표는 월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 운용에 참여하고 아시아개발은행 인도네시아 자문역,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컨설턴트, 한국투자증권 상무를 지냈다. 글로벌 금융인이 돼지농장주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그는 최근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스마트북스)를 펴냈다. 》 ○ “평범한 삶 따분해”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 3학년 때 파생상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국내에서 파생상품에 관심을 가진 이는 극소수였다. 28세에는 금융 컨설팅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설립해 7년 후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제가 ‘삐딱선’을 타는 기질이 있어요. 남들이 가는 길은 재미가 없어요.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 성과를 냈을 때 맛보는 짜릿한 쾌감이 좋아요.” 쌍용증권에 입사한 그는 미국 뉴욕 주재원으로 나가면서 국제 금융계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2010년 금융계 구조조정을 겪으며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노키아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걸 보며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업종을 찾았는데 먹을거리와 관련된 1차 산업이더라고요.”  한국 소비자들이 수입한 냉동돼지고기보다는 얼리지 않은 냉장육을 선호해 유통기간이 짧은 돼지고기는 국내산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자국 내 돼지고기 수요도 감당하지 못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돼지농장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물론 고민도 적지 않았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딸, 아들의 학비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대에도 일하고 싶었기에 행동에 나섰다.○ 자연의 시간 따른 삶 날벼락이 떨어졌다. 투자한 농장이 부도 위기에 처한 것.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13년 농장 경영에 뛰어들었다. 농장 운영은 만만치 않았다. 그해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돼지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자식이 죽어나가는데 병원비가 없는 부모 심정이었어요. 구제역이 인근 농가까지 번졌을 때는 전염될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에 올라 바람 방향을 살피며 가슴을 졸였고요.”  문제가 생기면 경험 많은 농장 직원 6명과 머리를 맞댔다. 축사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돼지의 성장 단계에 따라 축사를 구별해 온도와 사료 배합도 조정했다. 처음엔 새끼 돼지만 따로 키우는 축사가 없었다.  그는 현재 4만9587m²(약 1만5000평) 크기의 이 농장에서 돼지 7800여 마리를 키운다. 돼지 사육 밀도는 일반 농가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생산성은 전국 상위 3%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에게 성과급도 지급하고 있다. 농장에는 돼지 분뇨로 에너지를 만드는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세울 계획이다. 덴마크, 스페인 등의 선진 농가를 방문해 고급 돼지를 키우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나는 돼지농장으로…’에는 고군분투했던 과정과 인생 2막을 준비한 구체적인 방법,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 대한 당부가 자세히 담겨 있다. 특히 그는 책에서 인생 2막의 원칙 중 하나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를 들었다. 그는 임원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직원들을 평가해 구조조정하는 업무를 떠맡아 마음에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접 결정한 일은 낯설고 힘든 상황을 견디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다른 이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고 좋은 돼지를 키우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하다”며 “홍성 돼지를 돼지업계의 ‘인텔’로 만들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홍성=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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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청계천 책방]노벨상과 日 과학자들

     일본이 올해까지 3년 연속 노벨 과학상을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노벨 과학상을 받은 일본인은 22명에 이른다. 환호하는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궁금함이 뒤섞여 있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고토 히데키 지음·허태성 옮김·1만8000원·부키)는 일본이 1854년 개국 후부터 16번째로 노벨상을 받은 2012년까지 일본 과학자들이 150여 년간 고군분투한 과정을 그렸다. 메이지 유신, 태평양전쟁 등 역사적 상황에서 과학자 개개인이 기울인 노력과 애환을 확인할 수 있다. 국력을 키우려는 욕구와 군사 강국에 대한 열망이 일본의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고 한다. 포로를 대상으로 한 실험,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고민 등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도 짚는다. 상이 목표는 아니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걸 이룬 과정을 보노라면 일본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든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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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나치 과학자 이용한 美, 전쟁범죄 눈감다

     귀 체온계, 아폴로 11호,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고엽제….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과학자들이 개발했거나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 독일이 패망한 후 미국은 1600여 명의 나치 과학자를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페이퍼클립’ 작전이다.  포로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생체 실험을 거듭한 독일 과학자들은 놀라운 결과물을 갖고 있었다. 탄도미사일, 사린 가스, 로켓 포격 기술, 생화학무기….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소련보다 먼저 이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페이퍼클립’에 강한 추진력을 부여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공식 승인했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전작 ‘에어리어51(Area51)’ 집필을 위해 자료를 찾다 독일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의 최고위 기술자문이었던 지크프리트 크네마이어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미 공군을 위해 일했고 국방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가장 큰 상을 받은 사실에 경악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정부 기관, 대학, 도서관, 교도소를 찾아다녔을 뿐 아니라 나치 과학자 2세까지 인터뷰했다. 28쪽에 달하는 참고문헌과 인터뷰한 인물 등의 목록은 저자가 발로 뛴 흔적을 증명한다. 이 책은 나치 과학자 21명의 행적을 집중 조명한 결과물이다.  방대하고 치밀한 취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다. V-2 로켓으로 영국과 벨기에의 도시 3000개를 폭격한 베른헤르 폰 브라운은 나치 친위대 장교였지만 미국에서 우주 연구의 유명 인사로 급부상하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의 연구팀은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선보였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과학훈장까지 받았다.  나치 과학자들을 받아들인 데 항의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기자는 ‘아들아, 대량살상을 즐기지만 자기 목숨은 소중히 여긴다면 과학자가 되어라’라는 글을 쓰며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짙은 어두움을 향해 간다. 소련 스파이를 대상으로 최면 상태에서 정보를 말하게 하는 약물을 실험하던 중 연구자인 박테리아 학자 프랭크 올슨에게 몰래 약물을 주입하며 결과를 관찰했다. 두려움과 흥분에 휩싸이며 이상 증세를 나타내는 올슨을 보며 미국 정부는 그가 기밀을 소련에 누설할 가능성을 염려하기에 이른다. 결국 올슨은 호텔 창문에서 떨어져 숨졌다. 사건은 자살로 처리됐다. 괴물(독일)을 패망시켰고 또 다른 괴물(소련)을 견제한다고 자부했던 미국은 스스로 괴물이 되어 갔다. 한편 독일 과학자들은 실생활에도 기여했다. 음료업계는 열처리를 하지 않고도 과일즙을 살균하게 됐고 실이 풀리지 않는 양말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효모를 무제한으로 생산할 수도 있었다. ‘히틀러의 마법사’들은 미국이 군수산업, 우주공학, 상업, 공업 등 각 분야에서 비상하는 도약대가 된 것이다.  저자는 과학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 나아가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착잡하고도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끝없이 자문했던 것이기도 하다. ‘국가가 사용하는 수단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남는가’. 원제는 ‘Operation Paperclip’.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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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환기 김기창 장욱진…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대가들이 그린 책표지

     김환기 김기창 장욱진 천경자….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이들이 모였다. 회화전이 아니다. 이들이 디자인한 단행본을 모은 전시회다. 서울 종로구 비봉길 삼성출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책이 된 예술, 예술이 된 책’ 기획전에는 유명 작가들이 디자인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책의 표지나 면지(표지 안쪽) 등을 꾸미는 장정(裝幀)은 주로 화가들이 맡았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화가와 삽화가, 서예가 대부분은 책의 표지화와 삽화, 표지 글씨인 제자(題字) 작업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화가인 김용준 정현웅 길진섭 구본웅 남관 윤명로와 삽화가인 김용환 김영주 이승만 김세종을 비롯해 서예가인 김충현 김응현 손재형 등 작가 65명의 손길이 깃든 책 117권을 감상할 수 있다. 긴 뿔을 가진 동물 두 마리가 그려진 안수길의 소설 ‘제3인간형’(1952년) 표지는 김환기의 작품이다. 김기창은 윤영춘의 시집 ‘무화과’(1948년) 표지에 여백의 미를 살려 무화과 열매와 나뭇잎을 그렸다. 김기창의 아내인 화가 박래현도 장정에 참여했다. 조풍연의 ‘청사수필’(1959년)의 표지 디자인은 박래현의 작품이다. 이병도의 수필 ‘내가 본 어제와 오늘’(1966년) 표지는 그의 사위인 장욱진이 디자인했다.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1947년)의 장정은 동생인 박문원이 맡았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은 “우리 출판물이 구현했던 뛰어난 예술성을 감상하고 책과 예술의 새로운 융합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말까지로, 이달 12일까지는 무료다. 관람료는 일반 3000원, 학생 2000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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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50자 서평]궁극의 미니멀라이프 外

    한달 전기료 5500원… 자급자족의 삶궁극의 미니멀라이프(아즈마 가나코 지음·즐거운 상상)=30대 중반 주부인 저자를 포함해 4인 가족은 도쿄 교외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청소기 없이 지내고 텃밭을 가꾸고 오골계, 메추리를 키우며 자급자족한다. 한 달 전기료는 500엔(약 5500원)에 불과하다. 지금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삶을 통해 무소유의 가치를 제시한다. 1만2000원.상품-소비가 바꾸는 역사 이야기카트에 담긴 역사 이야기(김대갑 지음·노느매기)=테디 베어에 담긴 미국의 대외 침략의 역사, ‘토마스와 친구들’에 담긴 영국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유산 등 상품에 스며 있는 역사적 가치를 분석했다. 영국의 차 소비와 아편전쟁, 미국의 홍차 소비와 독립 등 인간의 소비가 어떻게 역사를 바꾸는지도 짚었다. 1만5000원.미술·가구 등 가까이 있는 수학수학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가(이한진 지음·컬처룩)=중세 고딕 성당과 르네상스 회화, 현대 추상 미술에는 수학의 원리가 활용됐다. 성인 남성 키의 황금 분할을 통해 얻은 숫자들은 의자, 탁자 등 가구의 길이와 천장 높이의 기준이 된다. 우리 삶 가까이 있는 수학의 원리를 분석했다. 1만8000원. 사계절문학상 대상받은 작가 장편소설다윈 영의 악의 기원(박지리 지음·사계절)=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작가의 소설. 핵심권력자들이 사는 1지구부터 버림받은 땅 9지구까지 구획된 사회가 배경이다. 9지구의 인물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삼촌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1지구에 사는 루미는 모범생 친구 다윈 영과 함께 1지구를 벗어나 9지구로 향한다. 1만8000원.}

    • 201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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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청계천 책방]추억을 부르는 맛·맛·맛

     번데기를 보면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가 떠오른다. 운동회 날엔 번데기 장수가 꼭 찾아왔다. 종이를 돌돌 말아 고깔처럼 만든 간이 용기(?)에 감질나게 몇 마리 담겨 있던 번데기의 고소한 맛은 운동장에 펄럭이던 만국기를 불러낸다.   ‘어른의 맛’(히라마쓰 요코 지음·조찬희 옮김·1만3800원·바다출판사)은 인생의 순간순간 만났던 맛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온 초밥에서 맛본 와사비의 코끝 찡한 맛, 어른이 돼 즐기게 된 술안주의 맛, 여름이면 생각나는 추어탕…. 작은 냄비에 두부, 바지락, 대파, 무를 넣고 끓인 음식은 배를 채우려는 게 아니라 술을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한 거란다. 두 명이 마주 앉아 익은 두부나 생선을 건네주고 받는 맛이 있다고 한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편안히 먹는 음식은 또 하나의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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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해적이 애꾸눈인 이유,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마

     비행기가 야간에 착륙하기 10∼15분 전에 객실 전등을 끄는 이유는 뭘까? 힌트는 우리 눈이 빛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 승객을 어둠에 적응시켜 사고가 났을 경우 앞을 제대로 보며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망막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비상탈출용 슬라이드는 물론이고 땅도 보이지 않아 허공으로 뛰어내리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해적들은 눈에 이상이 없어도 한쪽에 안대를 하고 다녔다. 어두운 곳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할 상황이 되면 안대로 가린 눈을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과학 유튜브 채널 ‘생각 좀 해 봅시다’(e-penser) 운영자로 유명한 저자는 이들 사례와 함께 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빛을 조절해 받아들이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망막을 이루는 원추세포와 간상세포 등 학창 시절 밑줄 그어가며 외웠던 단어들이 줄기차게 튀어나온다.  책은 태양계, 전자기학, 고전역학, 열역학, 특수상대성이론, 일반상대성이론, 생명 분야까지 종횡무진 달린다. 소행성대 안에서 소행성들은 보통 서로 수십만에서 수백만 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 기사들이 소행성을 피해 조심조심 건너야 할 필요가 없다. 사고가 났을 때 시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껴지는 건 뇌가 흥분해서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기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잘못됐단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물론이고 우주의 구조까지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뉴턴, 아인슈타인, 갈릴레이 같은 유명한 과학자의 업적과 일화뿐 아니라 무명의 과학자도 다수 소개한다. 과학 발전의 열매는 전설적인 과학자뿐 아니라 이름 없는 과학자들의 남모르는 노력이 쌓였기에 가능했다는 저자의 말에는 과학자에 대한 존경심이 엿보인다. 방대한 분야를 다뤄 모든 내용을 다 소화하기는 쉽지 않지만 눈길이 가는 내용만 찾아 읽어도 과학상식이 꽤 늘어난 기분이 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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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아 어머니, 눈물을 거두세요”

     “시를 쓰고 나면 저렇게 철해 놓고 계속 고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존경하는데, 이 그림액자는 그분이 태어나고 돌아가신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구입한 거죠. 이건 제 시를 안치환 씨가 노래로 만든 CD고요.” 서울 마포구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29일 열린 ‘푸르메를 사랑한 작가초대전’ 개막식에서 정호승 시인(66)이 자신의 애장품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전시회에는 올해 4월 문을 연 이 병원을 세우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세 명의 작가인 고 박완서 작가와 이해인 수녀(71), 정 시인의 육필 원고와 편지, 손부채, 꽃삽, 옛 사진 등이 출품됐다. 세 작가의 여러 면모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세 작가는 서로 긴밀하게 교류하기도 했다. 전시회에는 박 작가가 작고했을 때 정 시인이 쓴 조시(弔詩)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 수녀와 정 시인은 법정 스님과도 가까웠다. 법정 스님이 이 수녀를 위해 쓴 친필 액자와 정 시인에게 쓴 손편지도 보였다. 박 작가의 넷째 딸인 호원균 씨는 생전에 어머니가 바느질 할 때 사용했던 목판과 자를 보며 “우리가 자랄 적에는 기성복이 별로 없어 어머니가 옷을 다 만들어 줬다”며 “이건 그때 쓴 물건들”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2005년부터 발간한 모든 책의 첫 인세를 지속적으로 푸르메재단에 기부하고 매달 별도 기부금을 냈다. 장애 청소년과 거제도 여행을 함께했다. 박 작가가 화단을 가꾸는 사진도 걸려 있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댁을 방문했을 때 화단을 가꾸는 선생님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잡초를 뽑느냐고 물었더니 ‘잡초를 뽑으면 사념이 없어진다’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이 수녀가 글씨를 쓰고 스티커를 붙여 만든 손부채 4개도 펼쳐져 있었다. “수녀님이 소녀 같은 마음을 지녀 스티커를 좋아한다”는 게 백 상임이사의 설명이다. 이 수녀는 일정상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수녀는 장애 어린이와 부모들을 위한 북콘서트, 시 낭송 등에 참여하고 책과 음반 판매 수익금을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청년 정호승’을 볼 수 있는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정 시인은 장애아 부모를 위한 시 강연회를 열고, 장애 청소년과 백두산에 함께 올라 자작시 ‘백두산의 눈물’을 낭독해 감동을 안겼다. 장애아를 둔 어머니를 위해 시 ‘어머니 당신이 희망입니다’를 지었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책을 보내고 친필 사인을 한 시집도 한가득 보내고 있다. 정 시인은 “장애아 어머니들은 누구보다 많은 아픔을 갖고 있다”며 “그분들이 전시회에 많이 와서 세상살이가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느끼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회는 12월 31일까지 열리며 무료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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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한 죽음의 기록, 고달픈 삶 위로하네

     38세에 세상을 떠난 미국 신경외과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쓴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흐름출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5만 권 넘게 팔려 지난주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8위, 예스24는 6위에 각각 올랐다. 영문학, 철학을 공부한 저자가 레지던트 막바지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담담히 일상을 이어가며 삶을 성찰한 글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이처럼 요즘 서점가에서는 존엄한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책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외과 의사가 환자들을 만나며 의미 있는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생각을 담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부키)도 지난해 5월 출간된 후 현재까지 5만5000여 권이 팔렸다. 영국의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가 환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 쓴 ‘참 괜찮은 죽음’(헨리 마시 지음·더퀘스트)도 올해 5월 출간돼 1만 권 이상 팔렸다. 출판사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치다.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4편의 에세이를 묶은 ‘고맙습니다’(알마)는 올해 5월 말 나온 뒤 모두 5500여 권이 팔렸다. 특별판 1, 2는 가격이 일반판(6500원)의 3∼4배에 이르는데도 불구하고 한정판으로 각각 찍은 500권이 모두 나갔다. 저자들은 모두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의사로, 폭넓은 사유와 죽음에 대한 경험을 결합해 큰 울림을 주는 책을 탄생시켰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숨결이…’를 읽은 독자들이 ‘불안해하던 내일을 마주하는 용기를 갖게 됐다’, ‘삶에 대한 애착이 컸던 저자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나의 모습에서 인생을 생각해 본다’는 글을 남겼다. ‘참 괜찮은…’의 한 독자는 ‘죽음이라는 끝이 정해진 길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해줬다’고 썼다.  이들 책의 주요 독자는 40, 50대로 알려졌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의 40, 50대는 고민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강한 세대로, 주위에서 죽음을 접하며 본인과 부모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고령화가 본격화되기 시작됐던 1990년대 중반부터 죽음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젊은 독자들에 대해서는 불안한 사회 구조가 한몫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데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성취보다는 꽉 찬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20, 30대 독자가 유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남 교보문고 상품지원단 구매팀 과장은 “죽음을 다루지만 의미 있는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들 책은 결국 삶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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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는 한일문제 아닌 인권의 문제”

     “위안부 문제는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저를 공격하는 건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32년간 아사히신문 기자를 지낸 우에무라 다카시 씨(58·사진)는 26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는 1991년 일본에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2014년 아사히신문을 퇴직할 무렵부터 본인은 물론이고 한국인 아내와 10대 딸에 대한 일본 우익의 협박과 살해 위협이 시작됐다. 그가 쓴 위안부 기사가 날조됐다는 허위 주장이 일본 주간지에 실린 것. 우에무라 씨가 퇴직 뒤 가려던 대학은 갖은 협박에 시달리다 임용을 취소했다. 강사로 있던 대학에도 협박이 이어졌지만 뜻있는 일본인들이 그를 보호해야 한다며 나서기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한국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로 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책에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낱낱이 담겨 있다. 그는 “‘날조 기자’란 말은 기자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돈만 내면 끝이 아니며, 위안부 합의는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그 기억을 이어 가도록 해야 양국 간 진정한 화해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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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피해자 증언 최초보도’ 日기자 “아베정권 바뀌면…”

    1991년 8월 11일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최초로 보도한 일본 기자가 있었다. 3일 후 증언을 했던 여성은 김학순이라는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오는 물꼬가 트인 것이다. 일본 기자는 그 해 12월 김 할머니의 한스러운 삶과 일본 정부를 제소한 사실에 대해 기사를 썼다. 32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친 일본 기자는 일본 고베의 한 여대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악몽 같은 현실이 시작됐다. 2014년 1월 일본 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에 과거 위안부 기사를 쓴 사실이 보도되면서 일본 우익들의 협박이 시작된 것. 이들은 대학에 어마어마한 양의 협박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결국 임용이 취소됐다. 그는 물론 한국인 아내, 10대인 딸 역시 온갖 협박과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 씨(58)의 이야기다. 일본 우익은 우에무라 씨가 정신대를 위안부로 표기했고, 양아버지가 위안부로 팔았음에도 강제 연행된 것처럼 기사를 썼다며 그를 '날조 기자'로 몰아붙였다. 당시에는 정신대를 위안부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했고 '전쟁터에 연행되었다',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고 썼을 뿐이었다. 우메무라 씨가 강사로 있던 대학에까지 우익들의 협박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나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직을 제안했고, 올해 3월부터 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담은 책이 올해 초 일본에서 출간됐고 최근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에무라 씨와 나눴던 질의 응답을 정리했다. ―한국어판 책을 출간한 소감은? "일본에서는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연표 등 관련자료의 양이 더 많다. 내가 왜 그렇게 일본에서 공격받아야 하는지 너무 황당하다. 1991년 8월 정신대 이름으로 전장에 갔다고 기사를 썼다. 당시 위안부를 정신대라고 쓴 건 한국, 일본 여러 매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우익은 내가 쓴 기사에 대해서만 '정신대는 위안부와 다르다'고 공격했다. 일본의 리버럴한 언론사(아사히신문) 저널리스트로서 공격받은 것이다. 날조 기자란 말은 기자에게 사형 선고다. 없는 사실을 조작하는 게 날조다. 날조 기자라면 해직돼야 하는데 아사히신문은 내 기사를 인정했다. 날조기자란 말은 그냥 욕이 아니라 내 기자 인생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말이다. 뉴욕타임즈,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같은 유력 일간지들이 나에 대해 보도했다. 날조 기자라면 어떻게 보도를 할 수가 있었겠는가. 가톨릭대에서도 어떻게 날조 기자에게 수업을 맡기겠는가.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일본 언론의 자유, 위안부의 인권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끝까지 싸우려 한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딸이 협박받았을 때였다. 딸은 내가 기사를 쓴 한참 뒤인 1997년에 태어났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의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실어 비방하는가 하면 이지메를 하라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자살하라는 말까지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딸이 강하게 견뎌 줘서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었다. 딸을 협박한 남성에 대해 지난달에는 도쿄지방법원이 '미성년자에 대한 악질적인 인격공격'이라며 170만 엔(약1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딸이 재판에서 이겼듯이 나도 이길 것이다."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변호사와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170명의 변호인단이 꾸려져 무료로 변호를 해준다. 내가 공격을 받는 건 일본에서 언론의 자유가 없어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원자들이 기금을 모았고, 개인 돈도 쓰고 있다." ―협박은 여전한가. "가톨릭대를 협박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는 아직까지 많은 협박글이 남아 있지만. 일본의 여러 대학과 시민단체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 뉴욕대, 시카고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등에서 강연했다. 올해 4월에 유엔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조사하는 분이 나를 인터뷰 했고 보고서도 나왔다. 국제 사회가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아직 있지만 상황은 예전보다 좋아졌고 앞으로 차츰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태도는 어떤가? "아사히신문은 위안부 문제를 열심히 보도했지만 요즘은 많이 쓰지 않고 있다. 여러 사안으로 공격을 많이 받아서 위축된 측면도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들도 옛날에 비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많이 안 가지는 것 같다. 한 기자는 '위안부 기사를 쓰고 우에무라 씨처럼 될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나를 공격해 언론 자유를 압박하려는 우익의 노력은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 여름에 규슈나 홋카이도 나고야 등에 강연하러 간 내용이 아사히신문에 났다. 퇴직 후 우익의 공격으로 대학 임용이 취소되자 아사히신문에서 복귀하라고 제안도 했지만 내가 정중히 거절했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 선후배들이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모아 활동비로 쓰라고 보내주고 있다." ―기자 시절 위안부 보도에 일정 부분 거리를 뒀다고 했는데 이유가 뭔가? "1990년대는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다. 나는 그 때 다른 곳에서 특파원을 하고 있었다. 또 아내가 한국인이고 장모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간부여서 내가 위안부 기사를 쓰면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다고 할까봐 거리를 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요즘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 보도를 별로 안 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위안부는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이번 일 역시 내 문제가 아니라 용기를 내 증언한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다."―아베 정권이 바뀌면 일본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베 정권 때문에 역사에 대한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역사를 모르니까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고노담화의 정신은 계승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말고 인류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합의에는 고노 담화 같은 내용도 있어서 한일 양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에 보니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 것이었다. 돈만 내면 문제가 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위안부 합의는 끝이 아니라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한 시작점이 돼야 한다. 일본 교과서에도 나오고 젊은 세대도 그 기억을 계승해야 한다." ―한국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본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책에는 나를 돕는 시민단체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80년대 후반 연세대 어학당을 다녔고 1990년대 서울특파원을 지냈다. 앞으로 일본과 한국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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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NO 플라스틱’ 도전한 가족의 유쾌한 좌충우돌

     화학제품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기자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가습기에 꼬박꼬박 부어 썼던 살균제만 모아도 몇 박스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화학제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꽤 도발적인 이 책에 눈길이 간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남편과 세 아이를 둔 저자는 2009년 베르너 보테 감독의 영화 ‘플라스틱 행성’을 본 후 정신이 번쩍 드는 충격을 받는다.(이 영화는 2011년 국내에서도 상영됐다.) 세계의 가정집에서 플라스틱 물건을 모조리 집 밖으로 꺼내 전시하고 플라스틱으로 범벅이 된 곳곳을 보여준 것.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물질은 기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유독성 여부를 알 수조차 없는 현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려서부터 쓰레기 만드는 걸 싫어했던 저자는 세 아이를 천 기저귀로 키우고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데 만족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이도 보통 수준은 넘는다. 가족의 지지 속에 시작한 이 실험은 플라스틱 없는 삶이 정말 가능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2년간의 여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첫 번째 장보기 결과는 처참했다. 플라스틱 손잡이가 없는 주전자는 찾을 수 없었고 친환경제품 전문 매장에서조차 비닐 포장이 안 된 상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이들이 아니었다. 가족,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블로그를 통해 도움을 구하며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종이에 포장된 화장지를 구하지 못해 뒤처리를 할 때 신문지나 나뭇잎, 인도식으로 왼손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까지 논의하며 기겁한다. 그러다 골판지 상자에 담긴 종이 손수건을 찾아내고 종이 상자에 담긴 면류를 파는 슈퍼마켓을 발견할 때면 함께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환경보호라는 무게감에 짓눌리는 대신에 보물찾기를 하듯 즐기는 이들의 실험기는 유쾌하다. 블로그에 연재한 글을 엮어 책으로 펴냈기에 구어체로 정리된 데다 우리말로 재치 있게 번역돼 에너지가 통통 튀는 이야기꾼을 마주한 기분이다.    텔레비전, 냉장고, 청소기, 컴퓨터처럼 대체할 수 없는 제품은 사용하고 가족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 점은 실험의 지속성에 힘을 더했다. 실제 저자의 남편은 나무 칫솔대에 돼지털이 꽂힌 칫솔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냥 길을 한번 떠나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저자의 생각은 압박감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내는 주문 같다.    실험이 계속되면서 저자는 끝없는 소비를 통해 지탱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실감하게 된다. 살 물건은 신중하게 선택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쓰지 않음으로써 점점 간소한 삶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직접 키운 토마토에 모차렐라 치즈를 얹어 먹는 가족의 큰 기쁨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 대목에서는 짠한 마음도 든다. 모차렐라 치즈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오기에 비닐로 포장되지 않은 건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실험을 시작한 이후 삶이 훨씬 안락해졌고 실험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고. 그는 지방의회 의원에 선출된 데 이어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주위의 온갖 플라스틱 제품이 매직아이처럼 눈에 들어왔다. 작은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 원제는 ‘Plastikfreie Zon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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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청계천 책방]자연과 살어리랏다

     지칠 때 산이나 공원처럼 나무, 꽃, 풀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충전이 되는 느낌이 든다. 자연의 힘은 신기하고 오묘하다.   ‘김산하의 야생학교’(김산하 지음·갈라파고스·1만5000원)에서 영장류 학자인 저자는 수년간 정글에서 살며 긴팔원숭이를 관찰했다. 다양한 생물이 각각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자연의 원리임을 몸소 깨닫는다. 다른 생명들을 무감각하게 파괴해 온 인간의 행태에 일침을 가한다. 개발을 위해 숲을 파괴하는 행위를 돌아보게 하고, 일회용 컵이나 화장지, 샴푸 사용을 조금씩이라도 줄여보자고 제안한다. 도시에도 인간뿐 아니라 비둘기, 참새, 매미, 개미 등 많은 생명이 존재한다. 가혹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이 생명체들을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그래, 함께 살아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호모사피엔스 한 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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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선미 작가 “상처 입고 외로운 아이들 안아주세요”

     버려지고 떠돌다 미혼모인 엄마와 같이 살게 된 무, 자신도 모르게 무지막지한 욕설을 토해 내는 장애를 가진 윤, 미국 유학을 갔지만 고등학교도 못 마치고 돌아온 도진, 뭐든 잘 훔치는 기하.  상처를 지닌 소년 네 명이 ‘틈새’라고 불리는 분식집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틈새 보이스’(문학과지성사·사진)가 최근 출간됐다.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 표’ ‘들키고 싶은 비밀’ 등으로 유명한 황선미 작가(53)의 세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틈새…’에는 외로움이 많이 투영돼 있다. 작가 역시 “기댈 데 없이 외로웠던 청소년기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 “상처 있는 아이들 보듬어 주길” 작가는 가난한 집 5남매의 둘째로 중학교를 못 가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공부 잘하는 오빠를 뒷바라지하기도 벅찬 상황이었거든요.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반항하느라 아무것도 안 하고 글만 썼어요. 열세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고교에 진학했지만 학교는 여유 있는 형편에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도시락 반찬만 봐도 집안 형편이 다 드러나잖아요.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제가 명문대 진학을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며 절대적인 ‘벽’ 같은 걸 느꼈어요.” 오기와 반감이 그를 에워쌌다. 친구들이 입시 준비에 몰두할 때 그는 홀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 선생님이 눈총을 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단다. ‘틈새…’에서 어릴 때 자신을 성적(性的)으로 학대했던 친척 할아버지가 숨지자 장례식장을 찾아가 뒤엎어 버린 해리의 강단 있는 모습이 연상됐다. 그 강단이 해리와 비슷하다고 하자 황 작가는 미소를 지었다. “‘틈새…’의 아이들은 학교든 어디든 온전히 소속되지 못하고 혼자 웅크리고 있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한데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마음으로는 다가가고 싶어 했더라고요. 상처 있고 외로운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여 주고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몸으로 하는 작업, 글쓰기 그는 20년 넘게 작가 생활을 하며 50여 권의 작품을 썼다. 한 해 평균 두세 권을 쓴 셈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써요. 그래야 감을 놓치지 않으니까요. 작가는 몸으로 하는 거예요. 묵혔다가 쓰라는 사람도 있지만 ‘개꼬리 3년 묵혀도 황모(黃毛) 못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쓰는 게 몸에 배야 해요.” 그는 글을 쓸 때 가장 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가 될 줄은 몰랐단다. 대학(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도 친구가 권해서 갔지만 ‘작가는 무지개 너머에 있는 존재인 줄 알았기에’ 지금의 현실은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각국 언어로 번역돼 세계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독자층도 어린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예전에는 강연을 가면 아이들만 있었는데 요즘은 중년층은 물론이고 노인층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와요. 제 작품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징검다리가 되면 좋겠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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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속성장기업 한세예스24홀딩스]국민 4명 중 1명이 회원… 다양한 시도로 책과 접할 기회 늘릴터

    국내 대표 온라인 서점인 예스24는 1999년 문을 연 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갈수록 도서 시장이 침체되고 서점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예스24는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고 독자와의 접점을 확대함으로써 계속 커나갈 수 있었다. 국내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2010년 모바일 쇼핑 서비스를 시작했고, 경기 파주시와 대구에 물류센터를 설립해 당일 배송이 가능한 주문 시간도 늘렸다. 공연, 영화,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로도 사업을 확대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독자 욕구에 신속 대응 예스24의 회원은 올해 9월 현재 1200만 명을 넘었다. 국민 4명 중 1명이 회원인 셈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판매된 책은 모두 3억1200여만 권으로 이를 쌓아올리면 6799km에 이른다. 한라산 높이(1947.269m)의 약 3500배가량 되는 분량이다. 올해 상반기 누적거래액은 2746억80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었다.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올해는 오프라인 중고서점인 ‘예스24강남’, ‘예스24목동’을 열어 중고책 시장도 개척하고 있다. 영풍문고, 쿠팡과는 전략적 제휴를 추진 중이다. 경기 파주시와 대구에 물류센터를 설립함으로써 당일 배송이 가능한 주문 시간이 연장됐다. 올해 3월부터는 서울, 경기 지역의 당일 배송 가능시간을 1시간씩 확대했다. 서울, 부산은 오후 3시까지 주문하면 당일에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책 이외의 엔터테인먼트 분야로도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공연, 영화, 음반, DVD 등도 함께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이 인터넷에서 책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를 포착해 이에 대응한 것. 엔터테인먼트 사업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113% 늘어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콘서트 티켓을 단독 판매하는 계약을 맺어 엑소, 샤이니 등 유명 아이돌그룹의 단독 콘서트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SK텔레콤과 제휴를 맺고 멤버십 영화 예매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다. 독자와 작가와의 교류도 확대해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독서 인구를 늘리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만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600여 차례 열렸다. 강연회뿐 아니라 북콘서트, 티타임, 원데이 클래스, 트레킹, 답사 등 색다른 형태로 독자와 작가가 만나는 방식을 도입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만남의 형태에 따라 작가와 독자를 합쳐 5명을 넘지 않도록 구성하는가 하면 많게는 450여명의 독자가 모이는 등 행사의 성격에 맞춰 규모를 조정한다. 지난달에는 정유정 작가와 300여 명의 독자가 함께하는 ‘2016 소설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연극으로 각색해 선보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예스24 측은 “작가와 독자가 깊이 있게 소통하고 교감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연구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첨단 기술로 책과 교감하세요” 예스24는 지난해 모바일 연매출이 1000억 원을 넘었다. 2010년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모바일 쇼핑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연평균 10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K페이 등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매출 확대에 상당히 기여했다. 모바일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560만 건이 넘었다. 웹 매출 대비 모바일 매출 비중은 2014년 15%에서 지난해 23%였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32%까지 늘었다. 전자책 앱을 만들어 꾸준히 투자하고 서비스를 개선한 것도 모바일 매출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기술인 TTS(Text to Speech)를 활용하면 우리말은 물론이고 영어로도 책 내용을 들을 수 있다. TTS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속도를 선택할 수 있어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직장인이 많다. 어학 공부를 하는 수험생, 대학생들도 자주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문판과 국문판 전자책으로 선보였다. ‘귀가 트이는 영어’ ‘입이 트이는 영어’와 같은 EBS의 인기 영어 프로그램 교재 4종을 전자책으로 내놓았다. 라디오 방송을 듣고 문제 풀이도 가능하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능이 있는 멀티 전자책을 선보일 계획이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전자책 앱을 설치하면 전자책 6권을 무료로 제공한다. 소설, 인문, 비즈니스 분야 등의 인기 있는 책은 전자책으로 10년 대여를 해주고 있다. 10년 대여를 할 경우 가격은 종이책보다 50∼83%가량 저렴하다. 전자책 앱에서는 ‘마이 메뉴’ 기능을 활용하면 구매한 책 권수와 선호하는 분야, 총 독서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독서 습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많다. 김기호 예스24 대표는 “독자의 편의를 확대하고 물류 시스템과 전자책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시도와 투자를 통해 책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도서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책은 물론이고 공연, 영화 관련 서비스도 늘려 더욱 다채롭고 편리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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