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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오랜만에 해외 현대미술가와 미술 시장에 관한 따끈한 소식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첫 소식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생존 작가로는 이례적으로 ‘몰입형 전시’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례적인지, 호크니는 뭐라고 했는지 소개합니다.두 번째도 이례적인 소식입니다. 미국의 어느 컬렉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작품을 경매에 내놨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내막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호크니 너마저…! 몰입형 전시에 뛰어들다위 사진은 2월 22일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소재로 한 몰입형 전시 ‘Bigger & Closer’ (Not Smaller & Further away) 의 모습입니다. 런던에 새로 개관한 공간인 ‘Lightroom’에서 6월 4일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더 큰 첨벙’(1967), ‘더 큰 그랜드 캐년’(1998) 등 호크니의 주요 작품을 압도적인 사이즈로 감상할 수 있어 화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어떤 작품들은 바닥 면으로 호크니의 붓터치가 애니메이션처럼 번져서 흘러 나오기도 하고, 호크니가 방송이나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던 음성도 스피커로 들리기도 한다네요.‘회화는 원화로 봐야 제 맛’인 줄 알았건만이 소식을 보도한 외신 기사에서 다소 이례적이라는 언급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그간 몰입형 전시는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아주 오래 전 작가들. 이를테면 반 고흐나 세잔과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물론 국내에서는 비교적 해외보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 생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사용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몰입형 전시에 대한 거부감의 이유는, ‘예술 작품은 눈으로 직접 감상해야 한다’라는 암묵적 원칙 때문입니다. 특히 회화 작품은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을 작가가 어떻게 구성하고 점유하는지도 중요한 요소죠. 여기에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색감과 붓터치의 미묘함도 직접 감상으로만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이런 작품을 사이즈를 엄청나게 크게 늘려버리거나, 또 납작한 스크린에 픽셀로 구현하면 어쩔 수 없이 왜곡되는 부분이 있고 이 때문에 몰입형 전시는 그간 전문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아왔죠.저 역시 작품을 직접 보는 맛을 즐기는 쪽이고, 인증샷도 잘 찍지 않기 때문에 😓 몰입형 전시를 보면 종종 헛헛한 마음이 들곤 했답니다. 물론 몰입형 전시는 테마파크처럼 즐겁게 볼 수 있다는 점에는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감상의 목적이 전시마다 다르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뉴욕타임스의 평론가 제이슨 파라고는 몰입형 전시에 대해 “지적 감상의 장이기 보다는, 감각적 셀피(인증샷)을 위한 배경”이라고 언급했었고, 가디언의 평론가 조너던 존스는 특히 이번 전시에 대해 “호크니가 자신의 명성을 유행에 순진하게 넘겨주고 말았다”며 “부족한 기술로 그의 예술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없다”고 썼습니다.호크니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스스로가 폴라로이드, 아이패드 등 다양한 매체로 실험해 왔다며 “내 일관적인 커리어의 연장선”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다른 몰입형 전시는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며 다만 자신은 살아있는 예술가로 직접 참여했기에 다르다고도 했답니다.몰입형 전시,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살아있는 컬렉터가…이름 걸고 작품 내놓다이번 소식 역시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알게된 내용입니다.미국의 컬렉터이자 아트 딜러인 아담 린더만이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장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이 소식이 기사가 된 이유는 그가 ‘멀쩡히 살아있는 컬렉터’이기 때문인데요.보통 작품이 대거 경매에 나오는 경우를 ‘3D’라고 줄여서 말합니다. 소장가의 죽음(death), 이혼(divorce), 아니면 채무(debt)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컬렉터가 사망하거나, 이혼해 재산을 나눠줘야 하거나, 채무에 시달려 작품을 현금화해야 하는 등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큰 경매가 이뤄진다는 것이죠.이런 사유가 있지 않은 경우 대부분의 컬렉터들은 자신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조용히 작품을 내놓습니다.왜냐면 작품을, 특히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을 빨리 다른 사람에게 되파는 것은 ‘플리핑’(flipping, 낮은 가격에 구매해 단기간에 비싸게 팔아 치우는 것) 등 투기로 보일 수도 있고 이것이 발각되면 향후 그 작가의 작품을 구매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2차 시장에 나와도 직접적으로 이득을 볼 수 없기도 하고, (소장자가 작품을 다시 팔았을 때 그 이득은 모두 소장자의 것이고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없다는 의미) 소장자가 작품의 예술성이 아니라 투기성만 보고 이득을 취했다는 점에서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죠.그런데 아담 린더만은 자신의 컬렉션에 ‘아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당하게 경매에 나섰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NYT 인터뷰에서 린더만은 “어떤 사람은 나를 놀리고 또 뒤에서 이야기를 하겠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며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이 10여 년 만인데 매우 기대된다”고 운을 뗐습니다.그러면서 자신의 경매도 ‘스토리’를 갖게 하고 싶었고 이 때문에 ‘아담’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2009년 입생로랑의 유산 경매가 그랬고, 작년 폴 앨런 컬렉션 경매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경매도 스토리를 갖길 바랐다”며 “컬렉터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고르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죠. 즉 경매에 관심을 쏠리게 하려는 의도라는 의미로 읽힙니다.그가 내놓은 작품에는 조지 콘도, 요시토모 나라, 무라카미 다카시 등 국내 컬렉터에게도 익숙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작품들의 추정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린더만은 “경매로 내놓는 것은 어차피 떠나기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그러면서 떠나보낸 작품을 판 수익 중 일부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아프리카, 대서양, 고대 미국 전시관에 후원할 계획이라고도 밝혔습니다.일부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프 쿤스나 데미언 허스트처럼 최근 가격이 하락한 작품들을 처분하려는 의도를 포장했을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하네요.실제로 지난 수 년간 코로나19로 미술 시장에도 많은 돈이 흘러들어 왔던 가운데, 금리 인상 등 여파로 올해 미술 시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우려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3월 9일 펼쳐질 린더만 컬렉션 경매에서 그 분위기 일부를 가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말괄량이는 길들여져야 할까?(말괄량이 길들이기)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은 여자가 죽어야만 임무를 시작할 수 있는가?(안녕 내 사랑) 개츠비는 못된 데이지 없이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없는 걸까?(위대한 개츠비)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서평가와 여성학자 등 8명이 비판적으로 다시 읽은 고전 문학이 담겨 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달과 6펜스’, ‘안녕 내 사랑’, ‘위대한 개츠비’, ‘나자’, ‘ 그리스인 조르바’, ‘날개’, ‘메데이아’가 이들의 도마에 올랐다. 서평가 한승혜는 어릴 적 좋아했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다시 읽고, 작품 속 사회가 여성을 규정하고 단죄하는 방식이 과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미술평론가 조이한은 ‘그리스인 조르바’ 속 여성에 대한 과대 망상적 시선에서 ‘n번방 사건’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조르바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꿈꾸는 나약한 지식인의 판타지는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러한 비판적 읽기가 고전 문학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의 ‘날개’를 분석한 여성학자 정희진은 “한국 문학사에서 이상이 이룬 문학적 성취는 동의하지만 불편한 것은 작품에 대한 변화 없는 해석”이라고 꼬집는다. 식민지 시대 노예무역을 주도했던 이들의 동상이 마침내 끌어내려지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치 판단도 달라져야 함을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누구나 매일 사진을 찍고, 스마트폰에 사진 수천 장을 저장하죠. 그 많은 사진이 온라인에서 떠돌잖아요. 그게 아니라 ‘사진이 걸린 방’이 실제로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류가헌에서 자신이 소장한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 최연하 큐레이터(사진)의 말이다. 사진 전시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최 큐레이터가 20여 년간 전시 기획을 하며 만나고 모은 작품 27점이 ‘사진이 걸린 방’전에서 공개되고 있다. 20대 때 전시에서 보고 반해 마음에 담아뒀다 20년 만에 산 작품부터, 1960년대 국내에서 꺼리던 합성을 과감하게 시도한 황규태의 사진, 싹이 막 피어오르기 직전의 당산나무를 찍은 사진까지…. 작품마다 소장하게 된 계기를 친절하게 설명에 담았다. 최 큐레이터는 사진 작품을 소장하는 매력에 대해 “사진은 살아있는 무언가에 닿았던 빛을 담은 기록”이라며 “그 사진을 좋은 종이 위에 인쇄하면 다시 그때의 빛이 반짝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 감상의 즐거움과 컬렉션의 의미에 대한 담론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4일에는 최 큐레이터와 박미경 류가헌 관장,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진행하는 큐레이터 토크도 열린다. 전시는 3월 5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선시대 백자라고 하면 흔히 ‘달항아리’ 도자기를 떠올리지만 백자에는 청화백자부터 철화·동화백자, 순백자까지 다양한 기법과 형태가 있었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여 년간 만들어진 수많은 백자 중 대표 명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28일 개막하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에선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조선 백자 59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이 출품돼 눈길을 끈다. 특히 일본에 있는 수준급 백자 34점을 비롯해 국내외 14개 박물관·미술관의 백자 185점을 모은 역대 최대 규모란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백자 ‘챔피언스리그’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일단 화려함으로 압도한다. 1부 ‘절정, 조선백자’는 외부 빛을 차단한 약 661㎡(약 200평) 규모의 ‘블랙박스’에 백자 42점을 펼쳐놓았다. 가벽이나 칸막이가 없다 보니 드넓은 암흑 속에 조명과 흰 백자만 반짝인다. 마치 관람객들에게 인증샷을 남기라고 만든 공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최근 관람객들은 자신이 화려한 공간 속에 있었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전시 초입부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고미술도 군집을 통해 화려함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공간에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백자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총 42점이 청화백자, 철화백자, 채색백자, 상감백자와 순백자의 순으로 전시됐다. 이 연구원은 “1부 전시는 백자의 대표 선수들을 모은 ‘챔피언스리그’”라고 강조했다. 달항아리는 단 3점만 전시됐다. 이에 대해 그는 “조선백자 토털전이라는 취지에는 좋은 작품 석 점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가장 깊은 곳으로 가면 전체 백자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개구쟁이 같은 철화백자 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2부 ‘청화백자’, 3부 ‘철화·동화백자’, 4부 ‘순백자’가 이어진다. 초창기 청화백자는 주로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청화 안료인 코발트가 수입해야 하는 값비싼 재료였기 때문이다. 이후 청화백자는 점차 사대부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사군자나 자작시가 문양으로 들어간 작품을 볼 수 있다. 철화·동화백자는 조선 중기 일본, 중국과의 전란으로 청화 안료 수급이 어려워지자 대체재로 철 안료를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청화백자는 왕실을 중심으로 중앙에서만 제작된 데 비해 철화백자는 지방에서 제작됐다. 이번 전시에서 철화백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지방 백자는 거의 민속품이기에 자주 전시하기 어렵다”며 “지방 백자는 (왕실의) 제약 없이 직접 만들어 소비한 것이기에 개구쟁이 같은 자유분방함을 지닌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단정한 백자만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지방 백자 섹션을 마련해야 관람객이 비로소 웃으실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고 전시를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장난스러운 용의 모습이 담긴 17세기 ‘백자철화 운룡문호’, 연잎이 시원하게 그려진 ‘백자동화 연화문 팔각병’ 등이 전시됐다. 전시와 연계해 조선 백자 전문가들의 강연과 학술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청소년을 위한 단체 자율감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일 2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된다. 5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요즘은 조선시대 백자라고 하면 흔히 ‘달항아리’ 도자기를 떠올리지만 백자에는 청화백자부터 철화·동화백자, 순백자까지 다양한 기법과 형태가 있었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여 년 간 만들어진 수많은 백자 중 대표 명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조선 백자 59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이 출품됐으며, 일본에 있는 수준급 백자 34점까지 가져와 국내외 14개 박물관·미술관의 백자 185점을 모은 역대 최대 규모 조선 백자전,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28일 개막한다.○ 백자 ‘챔피언스 리그’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첫 인상부터 화려함으로 압도한다. 1부 ‘절정, 조선백자’ 전시는 약 661㎡(200평) 공간에 외부 빛을 차단한 ‘블랙박스’에서 가벽이나 칸막이가 일체 없이 백자 42점을 펼쳐 놓았다. 드넓은 암흑 속에 조명과 흰 백자만 반짝여 ‘인증샷’을 남기라고 만든 공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최근 관람객들은 내가 화려한 공간 속에 있었다는 경험 또한 중요하게 본다고 생각했다”며 “관람객의 시선을 전시 초입부터 사로잡기 위해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고, 고미술도 군집 속에서 화려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음을 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공간에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백자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42점이 청화백자, 철화백자, 채색백자, 상감백자와 순백자 순으로 전시됐다. 이준광 연구원은 “백자의 대표 선수들을 모은 ‘챔피언스 리그’”라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단 3점만 전시되었는데 이에 대해 “조선백자 토탈전이라는 취지에는 좋은 작품 석 점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가장 깊은 곳으로 가면 전체 백자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개구쟁이 같은 철화백자 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2부 ‘청화백자’, 3부 ‘철화·동화백자’, 4부 ‘순백자’가 이어진다. 청화백자는 청화 안료인 ‘코발트’가 수입해서 쓰는 값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이후 점차 확대되어 사대부 계층에서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사군자나 자작시가 문양으로 들어간 경우를 볼 수 있다. 철화·동화 백자는 조선 중기 일본, 중국과의 전란으로 청화 안료 수급이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대체재로 철 안료를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특히 청화백자는 왕실을 중심으로 중앙에서만 제작했는데, 철화는 지방에서 제작된 백자도 소개된다. 이 연구원은 “지방 백자는 거의 민속품이기에 자주 전시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지방 백자는 (왕실의) 제약 없이 직접 만들어 소비한 것이기에 개구쟁이 같은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일반 관람객에게 단정한 백자만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지방 백자 섹션을 마련해야 비로소 웃으실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고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장난스러운 용의 모습이 담긴 17세기 ‘백자철화 운룡문 호’, 연잎이 시원하게 그려진 ‘백자동화 연화문 팔각병’ 등이 전시됐다. 전시와 연계해 조선 백자 전문가들의 강연과 학술심포지움도 개최된다. 청소년을 위한 단체 자율감상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을 통해 볼 수 있다. 전시는 5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오늘은 유럽과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라익스미술관의 전시 ‘베르메르’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제 주변에도 이 전시만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지 고민하는 분이 계실 정도로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전시인데요.개막 전부터 사전 티켓 10만 장의 예약이 마감되더니, 개막 후에는 입장권 45만 장이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6월까지 열리는 전시를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이 전시에 왜 이렇게 많은 관심이 쏠리는지, 또 어떤 작품들이 나왔는지 소개하겠습니다.기획 기간 7년…생애 다시 보기 힘들 전시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활동했으며, 살아있는 동안 그림을 팔아 11명의 자녀를 키우며 어렵지 않게 살았지만 말년엔 가난해져 빚을 남기고 떠난 예술가. 베르메르는 15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이중 4명은 출생 직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것이 요하네스 베르메르(페르메이르·1632~1675)에 대해 알려진 거의 전부입니다. 편지나 일기 등 그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도 없고, 남긴 것은 오로지 그림 약 37점 뿐이죠. 보통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는 예술가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입니다.이번 라익스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그 중 28점을 모았습니다. 베르메르의 작품 대부분을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인데요. 준비 기간만 7년이 걸렸다는 이 전시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운송료가 치솟아 당분간은 다시 기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또 오래 된 작품들은 한 번 전시를 하고 나면 보존을 위해 얼마간은 수장고에 다시 머물러야 하죠. 이 때문에 베르메르의 작품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을 한 관객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그럼 어떤 작품이 전시에 나온 것일까요? 그리고 그 작품 속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요.전시의 첫 출발은 베르메르가 살았던 델프트 풍경으로 시작합니다.강에서 북쪽을 바라본 도시의 모습인데요. 정면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시계탑을 자세히 보면 아침 7시 풍경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이 그림에서 독특한 것은 도심을 저 멀리 밝은 색으로만 그려놓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외곽의 관문을 정면에 배치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건축을 클로즈업해 그릴 법도 한데, 그저 강물 위에 두둥실 배가 떠다니듯 차분하게 그린 것도 특징이구요.게다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푸른 하늘을 가득 채운 회색 구름입니다. 이 그림 속 고요함과 차분함. 이것이 베르메르의 팬들을 매료시킨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미술관 연구로 드러난 고민의 흔적들이 전시가 준비되는 과정은 작품을 모으는 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작품을 과학적으로 또 미술사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통해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죠. 미술관은 베르메르의 새 전기를 출간했고요, 새로운 연구 결과도 발표했습니다.그 중 하나가 베르메르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우유를 따르는 여자’에 관한 것입니다.지금의 그림에서는 완전한 흰 벽면의 여백 앞에 여자의 모습만 두드러지게 표현이 되어 있죠. 미술관이 SWIR 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촬영한 결과, 여인의 머리 뒤 벽면쪽에 물통 거치대가 그려졌었고, 오른쪽 아래에는 큰 바구니를 그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이러한 흔적을 통해 미술관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준비하고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베르메르가 시행착오를 거쳤음을 알게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그가 여러 물건들을 배치하고 삭제해가면서 ‘고요함’을 얻는 과정도 파악했다고 덧붙였죠.이 작품에서 중요한 흔적은 바로 여인의 뒤편에 있는 큐피드입니다.큐피드가 발견되기 전 이 그림의 벽면은 비어있었습니다. 그런데 1979년 X-ray 촬영을 통해 큐피드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베르메르가 그렸다가 지운 것으로 당시에는 생각했었죠.그런데 2017년 안료를 분석하면서 큐피드 위에 칠해진 물감은 베르메르가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결국 아주 느린 복원 끝에 2021년 큐피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큐피드의 발 아래 놓여있는 가면까지 보여지면서 이 그림은 굉장히 암시적인 내용을 갖게 되었지요. 여인이 읽고 있는 것은 사랑의 편지이며, 거짓(가면)이 아닌 진실된 사랑을 은유하는 것으로요.그림 오른쪽 커튼도 눈여겨보세요. 윗부분을 잘 보시면 액자에 커튼이 걸려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입니다.진주 속 반짝이는 욕망들한 자리에 모인 그의 작품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욕망’입니다.우리가 아주 오래 전 그림을 볼 때는 주로 왕이나 교회가 의뢰한 것을 보다보니 대놓고 화려한 그림에 익숙해져서,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박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요.그의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옷과 가구, 텍스타일이 꽤나 화려하며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기였던 ‘진주’가 자주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이 당시 그림에서 진주는 순수, 아름다움, 사랑을 상징했으며 이에 더해 값비싼 장신구이기 때문에 부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위 작품에서 보이는 진주 귀걸이는 굉장히 큰 사이즈인데요. 당시 저정도의 사이즈라면 베르메르가 소장할 수 있는 가격대의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때문에 가짜 진주를 사용했거나, 베르메르가 상상으로 그려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또 위 그림에서 여인이 입고 있는 노란 재킷도 그의 그림에서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베르메르가 사망할 때 남긴 유품 목록에도 이 재킷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베르메르 아내의 옷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값비싼 옷을 사 그림에 활용했던 것이겠죠.고급스러운 옷, 가짜일지라도 비싸보이는 목걸이와 귀걸이. 이 모든 것들은 베르메르가 그림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그렇다면 우리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고요함이 아니라 당시 델프트에 살았던 사람들의 욕망을 읽게 되는 것이죠.라익스미술관이 전시를 직접 찾을 수 없는 관객을 위해 고맙게도 28점 모두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공개(https://www.rijksmuseum.nl/en/johannes-vermeer?ss=)해두었답니다. 나머지 작품도 감상하며, 수백년 전 네덜란드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 만나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알맹이는 가라!” 서울 종로구 백아트 갤러리에서 팔순을 앞둔 예술가가 22일 퍼포먼스 도중 외쳤다.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삼각 수영복만 입은 채 훌라후프를 돌리는 그는 꽃무늬 버선과 알록달록한 샤워캡을 쓰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관객들에게 탁구공을 날리고 등판을 후려치는 퍼포먼스까지…. 모두 작가 성능경(79)의 트레이드마크다. 최근 미술계에서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 종로구 백아트에선 성능경 작가의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행각’이 4월 30일까지 열린다. 성 작가는 1974년 제3회 ‘ST(공간과 시간)’ 전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신문: 1974.6.1. 이후’를 선보인 뒤 전위 미술 1세대로 각인돼 왔다. 당시 전시 기간 동안 작가가 매일 신문을 소리 내 읽고 면도칼로 기사를 오려 냈다. 유신시대 정부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1968년부터 작가 생활을 시작했지만, 갤러리 전시는 1991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런데 올해에만 총 네 차례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현재 백아트에서 진행 중인 그의 개인전에서는 ‘끽연’, ‘수축과 팽창’ 등 1960∼80년대 초반 대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작품과 최근 마무리한 ‘그날그날 영어’ 연작, 지금도 매일 작업 중인 ‘밑 그림’ 연작을 만날 수 있다. ‘그날그날 영어’는 수년간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영어 교육 섹션 지면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겨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밑 그림’은 화장실 휴지로 작업했다. 전시는 무료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실험미술을 하는 청년 작가 그룹 ‘논꼴’의 동인이었던 강국진(1939∼1992)의 기록을 모은 책 ‘아카이브북 시리즈: 강국진 컬렉션’을 발간했다. 강국진은 1968년 정찬승, 정강자 작가와 함께 서울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국내 첫 누드 퍼포먼스로 기록된 ‘투명풍선과 누드’를 선보여 화제를 일으킨 인물이다. 1970∼90년대에는 판화, 회화 작업을 하며 한성대 서양화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이번 책은 2014년 11월 강국진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한 기록 9500여 점을 정리한 것이다. 강국진이 개인 카메라로 기록한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 전시 전경이 다수 포함됐다. 이 밖에 컬렉션 목록과 이미지, 평론가와 기증자 인터뷰 등이 수록됐다. 실험미술에 대한 조명은 미술관 전시로도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 그룹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9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도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92·사진)이 최근 폐암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박 화백은 23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며 “평생 담배를 물고 살았다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서야 끊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장 죽어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며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고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 화백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연락하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며 “안부 전화 등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박 화백은 한국 추상미술을 개척하고 이끌었다.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고, 루이비통과 협업하기도 했다. 대표작은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描法·Ecriture)’ 연작이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교수를 지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알맹이는 가라!’ 22일 서울 종로구 백아트 갤러리에서 팔순을 앞둔 예술가가 퍼포먼스 도중 외쳤다.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삼각 수영복만 입은 채 훌라후프를 돌리는 그는 꽃무늬 버선과 알록달록한 샤워캡을 쓰고 있다. 부끄러워하는 관객들에게 탁구공을 날리고 등판을 후려치는 퍼포먼스까지 성능경(79)의 트레이드마크다. 그가 물러가라고 외치는 알맹이란 양복과 넥타이 속에 숨어 체면 차리기 급급한 권위주의는 아닐까. 최근 미술계에선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성능경 작가는 1974년 전시 기간 동안 매일 신문을 소리 내 읽고 면도날로 기사를 오려내며 유신시대 언론 탄압을 비판한 퍼포먼스 ‘신문: 1974.6.1. 이후’를 제3회 ‘ST(공간과 시간)’ 전에서 선보인 후 전위 미술 1세대로 각인됐다. 1968년부터 작가 생활을 시작했지만, 갤러리 전시는 1991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 그런데 올해에만 네 차례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이날 개막한 백아트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 경의 예술행각’에서는 ‘끽연’, ‘수축과 팽창’ 등 1960~80년대 초반 대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작품과 최근 마무리한 ‘그날그날 영어’ 연작, 지금도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 연작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날그날 영어’는 수년간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영어 교육 섹션을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겨 그림을 그렸다. ‘밑 그림’은 2020년 7월부터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이를 앱 프로그램을 이용해 색깔을 입혔다. 전시는 무료이며 4월 30일까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강국진(1939~1992)의 기록을 모은 책 ‘아카이브북 시리즈: 강국진 컬렉션’을 발간했다. 실험미술을 추구한 청년 작가 그룹 ‘논꼴’의 동인이었던 그는 1968년 정찬승, 정강자 작가와 함께 서울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국내 첫 누드 퍼포먼스로 기록된 ‘투명풍선과 누드’를 선보여 화제를 일으켰다. 1970~1990년대에는 판화, 회화 작업을 하며 한성대 서양화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이번 책은 2014년 11월 강국진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한 기록 9500여 점을 정리한 것이며, 그의 작업에 관련한 기록과 드로잉, 전시인쇄물 및 학교·교직 활동 기록이 있다. 특히 강국진이 개인 카메라로 기록한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 전시 전경 사진이 다수 포함됐다. 이밖에 컬렉션 목록과 이미지, 평론가와 기증자 인터뷰 등이 수록됐다. 책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디지털정보실·도서실을 비롯한 전국 각 도서관과 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미술관 전시로도 실험미술 조명은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 그룹전을 개최하며 이 전시가 9월에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현대미술가의 전시부터 캐나다 이누이트 예술, 우크라이나 현대 영화까지….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유럽과 아시아 9개국 대사관과 문화예술 기관이 협업해 전시를 선보인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21일 서울 중구 캐나다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4월 7일 개막해 7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전시의 계획을 공개했다. 2018년 3개국의 참여로 시작한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올해 네덜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중국 캐나다 폴란드 프랑스 등 역대 가장 많은 9개국이 참여한다. 프랑스 파빌리온에서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은 지네브 세디라의 아시아 첫 개인전 ‘꿈은 제목이 없다’(사진)를 양림미술관에서 선보인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어떻게 사회의 보편적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영화적 문법으로 접근한 작품이 공개된다. 캐나다 파빌리온은 국내 처음으로 캐나다 원주민 이누이트 예술을 이강하미술관에서 소개한다. 캐나다 킨게이트족 작가 28명이 작업한 드로잉 및 조각 90여 점이 전시된다. 스위스 파빌리온은 한국과 스위스 사진작가 8명의 작품을 이이남스튜디오 공간에 맞게 구성하고, 포토북 전시도 준비 중이다. 네덜란드 파빌리온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집단을 법정에 세우는 ‘공판 퍼포먼스’를 펼친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우크라이나 현대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이스라엘 파빌리온은 영상 오브제 설치 전시를, 중국 파빌리온은 대나무를 소재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한 전시를 선보인다. 폴란드 파빌리온은 10년후그라운드, 양림쌀롱 등 전시 공간에서 공공프로그램을 기획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까요? 작품을 상자에 넣어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 이상의 훨씬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그 작품이 바다 건너 먼 외국에서 온 것이라면 말이죠. 얼마 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이 그랬습니다. 이 전시는 프랑스 조르주 루오 재단, 말랭그 갤러리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소장품이 한자리에 모였답니다. 전시가 끝나고 작품들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야 했는데요. 이 모든 과정은 미술관에 소속된 ‘쿠리에’(작품 호송인)가 점검합니다. 이 역할을 위해 한국을 찾은 퐁피두센터의 보존복원가 A 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인터뷰이가 개인 사정으로 익명을 요청해 A 씨로 표기합니다).모든 것은 ‘쿠리에’의 눈앞에서지난달 29일 전시가 끝나고 다음 날 퐁피두센터의 쿠리에를 기다리던 미술관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전남 광양까지 온 쿠리에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죠. A 씨는 “한국에 올 좋은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미술관에 도착한 A 씨는 가장 먼저 작품들의 변화를 체크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루오 작품은 종이에 유화로 그린 것이 많아 재료 특성상 세밀한 점검이 필요했습니다. 작품마다 포장법도 모두 다릅니다. 작품을 이동 상자인 ‘크레이트’에 어떻게 넣고 보호재는 무엇을 넣을지, 세워서 운반할지 눕혀서 운반할지, 손으로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등 여러 방법이 자세히 정해져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쿠리에가 확인합니다. 그 다음에는 작품을 차에 실어 세관을 거쳐 비행기로 이동하겠죠? 작품이 파리에 도착해도 바로 열 수 없습니다. “갑자기 박스를 열면 기온, 습도의 급변으로 작품이 손상될 수 있어요. 비행기 진동, 온도, 습도에 따라 사용하는 크레이트의 재질부터 여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사전에 합의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빌려주는 퐁피두센터와 전시를 여는 전남도립미술관이 이런 상세한 부분들을 상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입니다. 쿠리에는 이 합의된 과정이 잘 진행되는지 봐야 하기에, A 씨가 자리에 없으면 작품 포장이나 운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단계마다 상태를 체크하고, 변화가 있다면 어느 시점에 생긴 것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죠.작품 보존에는 ‘윤리’가 필요하다 전시를 관람하는 경험이 대부분인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미술관들이 왜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A 씨는 이런 과정을 ‘윤리’로 설명했습니다. 관계자가 상황이나 조건에 타협해 작품에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을 객관적 연구와 매뉴얼로 방지한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즉, 시간이나 예산이 부족하다고 임의로 저렴한 크레이트나 보호재를 사용하는 사태를 막는 것이죠. 당장에 큰 손실은 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작은 균열도 큰 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씨는 프랑스의 예술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1889∼1963)의 드로잉 100여 점을 복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이뤄진 작업은 과학적 검사, 미술사 연구, 가치 결정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쳤습니다. 특히 콕토가 종이에 붙인 스카치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것을 두고 긴 숙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테이프의 흔적은 작가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테이프의 점착 성분으로 인해 생긴 갈색 얼룩이 시간이 지나면 더 진해지고, 제거하기도 어려워진다는 판단 아래 없애기로 결정했죠. 손상은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지만, 미술관 작품은 후대의 사람들도 보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물질의 화학적 반응을 고려해 ‘과학자’처럼 느껴졌지만, 콕토 작품의 의미를 고려하는 부분은 ‘미술사가’로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예측·연구하며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철학적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그는 ‘보존복원가의 윤리’를 강조했습니다. “보존복원의 모든 가치 판단은 직업윤리가 바탕입니다. 특정인이나 대중의 요청에 따른 무분별한 보존복원, 즉 개인의 미적 판단에 의하거나 진정성을 무시한 복원 처리를 해서는 안 되죠. 작품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미술사적 연구 등 윤리적 검증을 하며 작업에 임해야 합니다.” 저는 A 씨의 이야기를 통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공적 자금(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은 시민들이 봐야 할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볼 수 있도록 보존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연구하고 알리는 것이 그 역할이겠지요. A 씨는 “루오가 한국에서 누구나 알 만한 작가는 아니지만, 풍부한 미술사를 보여주는 전시였다”며 “향후에도 이런 시도로 한국 미술관들이 앞으로 나아갈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번에는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미술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 어떠세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미국의 한 지역 아트페어에서 생존 작가 중 최고가 판매기록을 가진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조각품이 관객 실수로 산산조각 났다. 19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AFP통신에 따르면 마이애미의 ‘아트 윈우드’ 프리뷰 행사에서 한 관람객이 쿤스의 ‘풍선개(Balloon Dog)’ 조각 받침대를 발로 건드려 작품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작품은 겉모습이 풍선처럼 보이는 도자기로, 4만2000달러(약 5500만 원)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40cm, 길이 48cm인 조각품은 투명 아크릴 받침대에 올려져 있었고, VIP 프리뷰 기간인 16일 칵테일 행사 중 한 관객의 실수로 깨졌다. 목격자인 스티븐 갬슨 씨는 NYT에 “작품이 100개 넘는 조각으로 깨졌고 직원들이 빗자루로 파편을 쓸어 담고 있었다”며 “계획된 퍼포먼스인가 싶었는데 조각품을 깬 관객 얼굴이 빨개진 걸 보고 사고임을 알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깨진 작품을 보려고 사람이 더 몰려 깨진 조각을 팔 생각이 있느냐고 갤러리에 문의했다”고 밝혔다.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사고로 파란색 풍선개 작품이 799개에서 798개로 줄었다. 희소성이 높아져 수집가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라며 웃었다. 갤러리는 “불행한 일이지만 관객이 손을 대거나 일부러 작품을 건드리진 않았으며, 보험에 들어놨기에 절차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쿤스의 ‘풍선개’는 다양한 색과 크기의 시리즈 수천 점이 제작됐다. 201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가로세로 각각 3m가 넘는 오렌지색 ‘풍선개’ 작품이 5840만 달러에 팔려 당시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현재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는 2019년 쿤스의 작품 ‘토끼’의 낙찰가인 9107만 달러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의 한 지역 아트페어에서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풍선개 조각품이 관객의 실수로 산산조각이 났다. 19일(현지 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마이애미의 아트페어 ‘아트 윈우드’ 프리뷰 행사에서 한 관람객이 쿤스의 ‘풍선개’(Balloon Dog) 조각이 있는 받침대를 발로 건드려 조각품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해당 작품은 겉모습은 풍선처럼 보이지만 도자기 작품으로 4만2000달러(약 5500만 원)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40cm, 길이 48cm였던 조각품은 투명 아크릴 받침대에 올려져 있었으며, ‘아트 윈우드’에는 미국과 해외 갤러리 50여 곳이 참가했다. ‘풍선개’가 산산조각 난 것은 VIP 프리뷰 기간인 16일 이었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스티븐 갬슨 씨는 뉴욕타임스(NYT)에 “작품이 100개 넘는 조각으로 깨졌고 내가 봤을 땐 이미 직원들이 빗자루로 조각을 쓸어 담고 있었다”며 “사전에 계산된 퍼포먼스인가 싶었는데 조각품을 깨뜨린 관객이 얼굴이 빨개진 걸 보고 사고인 걸 알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깨진 작품을 보려고 사람이 더 몰렸다”며 “그걸 보고 깨진 조각을 팔 생각이 있냐고 갤러리에 문의했다”고 밝혔다. 갤러리 관계자는 NYT에 “이번 사고로 파란색 풍선개 조각이 799개에서 798개로 줄어서 수집가들에게는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쿤스의 ‘풍선개’를 출품한 벨-에어 파인아트 갤러리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관객이 조각품을 일부러 깨려고 한 것은 아니며, 칵테일 행사 중 사람이 많아 받침대를 발로 살짝 차 조각품이 넘어졌다”고 전했다. 이전에 보도된 것처럼 손으로 건드린 것은 아니라고 갤러리는 밝혔다. 그러면서 “불행한 일이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에 보험을 들어뒀고, 보험처리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쿤스의 ‘풍선개’ 조각은 다양한 색과 크기의 시리즈 수천 점이 제작된 바 있다. 201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가로 세로 3m가 넘는 오렌지색 ‘풍선개’ 조각이 5840만 달러에 팔리면서 생존 작가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이 기록은 2018년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9030만 달러)에 의해 깨졌고, 2019년 제프 쿤스의 조각 ‘토끼’(9107만 달러)가 현재는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까요? 작품을 상자에 넣어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 이상의 훨씬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그 작품이 바다 건너 먼 해외에서 온 것이라면 말이죠.얼마 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이 그랬습니다.이 전시는 프랑스 조르주 루오 재단, 말랭그 갤러리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소장품이 한 자리에 모였답니다.전시가 끝나고 작품들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야했는데요. 이 모든 과정은 미술관에 소속된 ‘쿠리에’(작품 호송인)가 점검합니다.이 역할을 위해 한국을 찾은 퐁피두센터의 보존복원가 A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이가 개인 사정으로 익명을 요청해 A씨로 표기합니다.)모든 것은 ‘쿠리에’의 눈 앞에서지난달 29일 전시가 끝나고 작품 철거 날, 퐁피두센터의 쿠리에(작품호송인)를 기다리던 미술관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프랑스 파리에서 전남 광양까지 온 쿠리에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죠. A씨는 “한국에 올 좋은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했습니다.미술관에 도착한 A씨는 가장 먼저 작품들의 변화를 체크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루오 작품은 종이 위 유화로 그린 것이 많아 재료 특성상 세밀한 점검이 필요했습니다.여기에 각 작품마다 포장법도 세세하게 다릅니다.작품을 이동 상자인 ‘크레이트’에 어떻게 넣고 보호재는 무엇을 넣을지, 세워서 운반할지 눕혀서 운반할지, 손으로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등 여러 방법이 자세히 정해져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쿠리에가 확인합니다.그 다음에는 작품을 차에 실어 세관을 거쳐 비행기로 이동하겠죠? 작품이 파리에 도착해도 바로 열 수 없습니다.“갑자기 박스를 열면 기온, 습도의 급변으로 작품이 손상될 수 있어요. 비행기 진동, 온도, 습도에 따라 사용하는 크레이트의 재질부터 여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사전에 합의되어 있습니다.”작품을 빌려주는 퐁피두센터와 전시를 여는 전남도립미술관이 이런 상세한 부분들을 상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입니다.쿠리에는 이 합의된 과정이 잘 진행되는지 봐야하기에, A씨가 자리에 없으면 작품 포장이나 운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각 단계마다 상태를 체크하고, 변화가 있다면 어느 시점에 생긴 것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죠.작품 보존에는 ‘윤리’가 필요하다전시를 관람하는 경험이 대부분인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미술관들이 왜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A씨는 이런 과정을 ‘윤리’로 설명했습니다.관계자가 상황이나 조건에 타협해 작품에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을 객관적 연구와 매뉴얼로 방지한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즉 시간이나 예산이 부족하다고 임의로 저렴한 크레이트나 보호재를 사용하는 사태를 막는 것이죠. 당장에 큰 손실은 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작은 균열도 큰 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A씨는 프랑스의 예술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1889~1963)의 드로잉 100여 점을 복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수년에 걸쳐 이뤄진 작업은 과학적 검사, 미술사 연구, 가치 결정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쳤습니다. 특히 콕토가 종이에 붙인 스카치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것을 두고 긴 숙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테이프의 흔적은 작가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테이프의 점착 성분으로 생긴 갈색 얼룩이 시간이 지나면 더 진해지고, 제거하기도 어려워진다는 판단 아래 없애기로 결정했죠. 손상은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지만, 미술관 작품은 후대의 사람들도 보아야 하는 것이니까요.”물질의 화학적 반응을 고려해 ‘과학자’처럼 느껴졌지만, 콕토 작품의 의미를 고려하는 부분은 ‘미술사가’로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예측·연구하며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철학적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그는 ‘보존복원가의 윤리’를 강조했습니다.“보존복원의 모든 가치 판단은 직업윤리가 바탕입니다. 특정인이나 대중의 요청에 따른 무분별한 보존복원, 즉 개인의 미적 판단에 의하거나 진정성을 무시한 복원 처리를 해서는 안 되죠. 작품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미술사적 연구 등 윤리적 검증을 하며 작업에 임해야 합니다.저는 A씨의 이야기를 통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공적 자금(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은 시민들이 봐야 할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볼 수 있도록 보존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연구하고 알리는 것이 그 역할이겠지요.A씨는 “루오가 한국에서 누구나 알만한 작가는 아니지만, 풍부한 미술사를 보여주는 전시였다”며 “향후에도 이런 시도로 한국 미술관들이 앞으로 나아갈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독자 여러분도 이번 주말은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미술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 어떠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식탁 위 하얀 우유가 엎질러진 모습을 표지로 담은 이 소설은 한 엄마가 자신의 아홉 살짜리 아들 ‘유’를 폭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바로 유를 사랑하는 다정한 엄마 아스미의 일상으로 전환된다. 전업주부이자 한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 행복을 느끼는 그녀에게 대체 어떤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할 무렵, 소설은 또 다른 ‘유’를 독자 앞에 들이민다. 책에는 총 세 명의 ‘유’와 엄마가 등장한다. 세 아이의 엄마는 각각 아스미, 루미코, 가나. 아스미는 남편의 안정적 수입으로 세 엄마 가운데 가장 윤택한 삶을 누린다. 루미코는 프리랜서 작가, 가나는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간 남편과 헤어진 싱글 맘이다. 세 가정의 모습이 교차되는 가운데, 엄마들은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부딪힌다. 아스미는 차분하기만 했던 아들 유가 학급 친구들을 괴롭히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유는 아빠와 할머니에게도 거친 언행을 일삼는다. 그녀의 남편은 아들의 문제를 회피하며 “네가 교육을 잘못했다”고 비난만 한다. 루미코의 남편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남편은 자신의 일이 줄어들며 무기력해지자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게 된 루미코를 되레 비꼬기 시작한다.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해달라는 아내의 제안에 억지로 응하더니 급기야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가나의 아들 유는 가장 착한 아이로 그려지지만, 같은 반 친구의 계략으로 도둑이라는 누명을 쓴다. 이 세 명의 유 중 엄마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이는 누구일까. 긴장하며 소설을 읽게 되는 건 세 엄마가 처한 상황이 자칫하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식탁 위 컵에 담긴 흰 우유가 엎질러지듯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양육의 책임을 떠넘기는 남편 등의 요소가 결합되면 엄마는 무너지고 행복했던 집은 하루아침에 지옥이 된다.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한계 상황을 현실적으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제3회 가나자와서적 대상 수상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픽셀’을 이용해 작업해 온 홍승혜 작가가 사각형 픽셀을 벗어나 한층 자유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국제갤러리 개인전 ‘복선을 넘어서II’를 통해서다. 홍 작가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들어 작업하는 프로그램을 포토샵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바꿨다”며 “20년 만에 네모(픽셀)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서울점의 1관과 3관에서 벽화 조각 사운드 조명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1관에서는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담은 평면 작업들이 설치됐다. 평면 이미지를 입체로 만든 자화상 조각 ‘홍당무’, 기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모던 타임스’도 볼 수 있다. 3관에선 작가가 만든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픽셀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형물들이 춤을 추는 듯한 ‘무도회장’ 콘셉트로 공간을 구성했다. 조명이 바닥을 비추고 알록달록한 꽃 조형물이 곳곳에 장식돼 있다. 이 공간은 햇빛이 들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이를 보여주기 위해 갤러리는 매주 수요일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3월 19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광복 이후 초창기 대학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1950∼19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으로부터 지도 받은 작가 4명의 작품을 모아 ‘분화(分化)’전을 개최한다. 김종영은 서울대 미대가 창설된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1세대 교수다. 1953년 영국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각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제자 송영수(1930∼1970),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최의순(89)의 조각 19점, 드로잉 38점을 선보인다. 스승은 어떤 철학을 갖고 제자들을 가르쳤을까.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유고집에서 김종영 선생은 예술 교육은 말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말없이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며 “작품으로 먼저 보여주고 제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 이끌어주는 정도만 해야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서울대 재학 시기는 6·25전쟁 기간과 겹친다. 교수진과 직원들은 피란 중 부산에 임시 교사를 만들어 수업하다 1953년 9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김종영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실기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박 실장에 따르면 당시 대학을 다니는 학생 수가 적었기에 제자들은 일대일 교육을 받는 수준이었다. ‘분화’전이 열리는 미술관 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송영수의 작품은 철을 재료로 작업해 선선과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두 인물이 손과 발을 맞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듯한 ‘곡예’(1966년)와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토템’(1970년) 등이 전시됐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학 입학 전 조각가 박승구(1919∼1995)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던 최만린의 작품 중에선 서예의 필치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작들이 출품됐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최종태의 작품은 서사가 있는 회화와 여인상이 주를 이룬다. 최의순은 건조 시간이 짧아 빠르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석고를 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최종태, 최의순 작가는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Record: 김종영미술관 20년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고 20주기인 2002년 12월 15일 개관했다. 이때 만든 본관 ‘불각재’는 생전 김종영이 작업실에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김종영이 강조했던 ‘깎지 않고(不刻)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신관 사미루(四美樓)는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이라는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 사랑채 건물에 걸려 있던 현판에 새겨진 글자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종영의 작품, 그리고 과거 전시 사진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3월 26일까지 열린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푸른 대지를 칼로 자른 듯,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간 미국 워싱턴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공공 기념비 중 하나다. 크고 높게 지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용히 어우러져 ‘부끄러운 상처’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2년 23세 예일대 학생일 때 디자인 공모에서 우승해 이 기념비를 만들고, 지금은 미국에서 존경받는 건축가인 마야 린(64)이 지난달 31일 한국을 찾았다. 중국계 미국인인 린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작은 개인전 ‘자연은 경계가 없다’를 열고 있다. 전시장에는 한반도에서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과 한강을 표현한 ‘핀 강―임진과 한’(2022년) 등 조각·설치 작품 5점이 걸려 있다. 이날 갤러리에서 만난 린은 “(국경과 관계없이) 흐르는 물과 산맥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예술과 건축을 병행하는 그는 “건축은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것과 같고 예술은 시를 쓰는 일 같다”며 “그리고 기념비는 상징성과 건축적 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에 이 둘을 합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대표작인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대해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살을 베이는 듯한 고통”이라며 “언젠가는 이 상처가 낫겠지만 흉터는 남는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땅을 칼로 벤 듯 잘라낸 뒤 드러난 단면에 반짝이는 화강암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국인 5만5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이 기념비에는 지금도 매년 수백만 명의 발길이 이어진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그는 2025년 완공될 시카고 오바마 대통령 센터의 공공 조각 제작도 맡고 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 예술인에게 시상하는 ‘크리스털 어워드’를 수상했다. 3월 1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대학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했을까?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1950~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의 교육을 받은 작가 4명의 작품을 모은 ‘분화(分化)’전을 개최한다. 김종영은 1948년 서울대 미대가 창설될 때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1세대 교수다. 1953년 영국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작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해 주목을 받았다. 전시장에서는 그의 제자 송영수(1930~1970),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최의순(89)의 조각 19점, 드로잉 38점이 전시됐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김종영은 유고집에서 예술 교육이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말없이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며 “작품으로 먼저 보여주고 제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 이끌어주는 정도로만 해야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시장 속 작가들이 학교를 다닐 무렵은 6·25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다. 교사와 직원들도 피난을 가 부산에서 임시 교사를 만들었다가, 1953년 9월 다시 서울로 왔다. 김종영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실기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작품을 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거의 없었기에 1:1 교육을 받는 수준이었다고 그는 전했다.‘분화’전이 열리는 미술관 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송영수의 작품은 철을 재료로 해 선적인 요소와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두 인물이 손과 발을 맞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듯한 ‘곡예’(1966)와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토템’(1970)등이 전시됐다. 지하 1층 전시장에는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학 입학 전에도 박승구(1919~1995)에게 조각을 배운 최만린은 서예의 필치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 작품들이 출품됐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최종태는 서사가 있는 회화와 여인상 작품이 주를 이룬다. 최의순은 건조 시간이 짧아 빠르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석고를 재료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최종태와 최의순 작가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Record: 김종영미술관 20년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고 20주기인 2002년 12월 15일 개관했다. 이 때 만들어진 본관 ‘불각재’는 생전 김종영이 작업실에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땄다. 김종영이 강조했던 ‘깎지 않고(不刻)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신관 사미루(四美樓)는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 등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 사랑채 건물에 걸려있던 현판의 내용이다. 이처럼 공간에 담겨진 뜻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종영의 작품, 그리고 과거 전시 사진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3월 2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양화가 윤형재(70)의 개인전 ‘백색 미래’가 서울 강남구 부띠크모나코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십자가’, ‘미래의 기호’, ‘마음의 꽃’, ‘빛의 드로잉’ 등 신작 20여 점으로 구성됐다. 홍익대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한 윤 작가는 작업할 때 흰색을 수차례 덧칠한다. 그렇게 표현한 순백색 바탕에 간결한 형태의 십자가, 꽃 등을 담았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예술가의 십자가’에 대해 윤 작가는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절대자의 인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며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뜻에서 순수한 정신적인 의미를 십자가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마음의 꽃’은 깨진 화분을 표현했다. 그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해져도 누군가는 꿈을 키우며 살아가기에 갈등을 깨진 화분으로, 꿈은 꽃으로 표현했다. 각자 의견이 달라도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담았다”고 말했다. ‘미래의 기호’는 미래의 언어를 음악적 기호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 제목 ‘백색 미래’에 대해 그는 “미래는 백지이고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했다. 그는 2001년 점자를 결합해 시각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외환위기 이후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미술 작품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떠올리고 작업한 것. 당시 아버지로부터 처음으로 “아들을 화가 시키길 잘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가족이 나의 예술에 공감해 준 것에 감동했다. 그때부터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는 부띠크모나코 뮤지엄은 올해 재개관했다. 부띠크모나코 뮤지엄 이사장인 이병주 플래닝코리아 대표는 “기술적 측면이 주로 부각됐던 건축 분야를 미술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2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