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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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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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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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세계적 흑인 코미디언의 ‘웃픈 성장기’

    몇 년 전 미국 월스트리트의 로펌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를 만났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20, 30대는 ‘더 데일리 쇼’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것 같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도, CNN도 아니고 케이블TV의 시사 코미디 뉴스쇼라고? 얼마 뒤 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 쇼의 새 진행자가 들어섰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라고? 그가 이 책을 쓴 트레버 노아다. 이 책은 최악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분리시켜 증오하다’로 풀이된다)가 횡행하던 1984년 남아공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코미디언이 된 그가 쓴 자신의 성장기이자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다. 노아는 어렸을 때 엄마랑 손을 잡고 길을 걷다 경찰이 나타나면 서로 손을 놓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떨어져야 했다는 코미디 레퍼토리가 있다. 유튜브로 볼 때는 마냥 웃었지만 이 책을 보니 아파르트헤이트 아래서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이 성관계를 하면 둘 다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노아의 엄마는 흑인, 아빠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다. 유색인으로 분류된 노아 같은 혼혈은 백인도 흑인도 아니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난 늘 어느 그룹에 속해야 할지 탐색하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야 했다.” 그를 구원한 건 엄마의 지시와 교육으로 능숙하게 된 영어, 아프리칸스어 및 9개 종족의 언어였다. “피부색이 아닌 언어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보여준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카멜레온이 됐다.” 운전사의 살해 위협을 피해 불법 미니버스에서 모자가 뛰어내리는 등 폭력과 무법을 이웃하며 살아온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냥 닭을 먹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우리 가족은 고고학자에게는 악몽이었다. 뼈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으니까” 같은 유머가 곳곳에 잠복해 있다.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이 거셌던 올해, 인종차별에 관한 여러 책이 나왔지만 이 책만큼 흥겹고 강렬하고 명확하게 짚은 책은 없다. 번역도 훌륭하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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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의 실체, 이 책에선 보입니다”

    올 8월 양장본 ‘김일성 1912∼1945’(유순호 지음·전 3권·서울셀렉션)가 출간됐을 때 출판계는 갸우뚱했다. 김일성 평전이 나올 시점인가 하는 의문과 정가 15만 원인 이 책이 팔릴까 하는 것이었다. 28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김형근 서울셀렉션 대표(58)는 “저자가 1980년대부터 18년간 만주의 항일유적지를 누비며 목격자(생존자) 200여 명을 직접 취재하고 각종 기밀 자료를 분석해 김일성을 검증한 책”이라며 “(김일성이) 좋든 나쁘든 사실적 진실을 캔 책이 국내에서 출판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선족인 저자 유순호 씨(61)는 옌볜에서 스무 살 무렵부터 글 잘 쓰는 작가로 통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가짜’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김일성의 실체 찾기에 나서 저자의 20, 30대를 바친 결과가 이 책이라는 것. 2002년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에서 식료품점을 하고 있다는 유 작가는 4년 전부터 원고를 들고 국내 100여 개 출판사를 직접 찾거나 e메일로 출간을 제안했지만 허사였다. 지난 정부 때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 현 정부 들어서는 ‘김정은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저자는 머리말에서 말한다. 김 대표는 “이 책은 ‘김일성이 항일 무장투쟁을 한 것은 맞다’는 사실 말고는 대부분 뻥튀기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에서 나온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왜곡, 과장, 오류가 100곳이 넘는다. 예를 들면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에 김일성은 참여하지도 않았고, 1940년 김일성이 소련으로 간 것은 혁명적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만주에서 배겨내지 못하고 도망간 것이라는 사실 등이다. “그동안 김일성을 다룬 책은 ‘김일성은 가짜’라는 것 아니면 와다 하루키나 서대숙류의 ‘위대한 김일성 장군’을 인정하는 시각을 다룬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 중간에 있지 않겠습니까.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이 책에서는 보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1930년대 만주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항일 독립투사들에게’ 헌정한다. 김 대표는 “당시 만주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온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이 레지스탕스처럼 싸웠다”며 “1945년 이전의 만주 항일투쟁사는 한민족이 공유한 역사이고, 이에 대한 역사적 조명의 책임은 한국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1000질이 팔려야 출간의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는 이 책은 1930년대 만주 무장투쟁 세력의 음모, 계략, 뒷이야기도 풍성해 “삼국지만큼 재미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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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론 4대신’ 제향 하남 사충서원서 열려

    사충서원(四忠書院) 가을 제향이 24일 사단법인 사충서원(이사장 이상혁 변호사) 주관으로 열렸다(사진). 사충서원은 조선 경종 때 그의 동생인 영인군(영조)을 왕세제로 추대해 대리청정을 주장하다 소론이 일으킨 신임사화(辛壬士禍)로 1722년 사사(賜死)된 ‘노론 4대신’을 기린다. 4대신은 당시 영의정 김창집, 각각 좌의정과 우의정을 지냈던 이이명, 조태채, 좌의정 이건명이다. 서원은 영조가 1726년 사액(賜額)했으며 6·25전쟁으로 파괴됐다가 1968년 경기 하남시에 복원됐다. 이날 제향에는 김상호 하남시장이 초헌관으로 참례했다. 제향은 사충서원이 지난달 한글로 첫 제작한 홀기(笏記·제례나 집회의 식순을 적은 문서)에 따라 진행됐다. 이 이사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문 홀기로 하는 제향에 참석자들이 급속히 줄어 올해부터 한글 홀기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남=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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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과거에도 지금도 여성은 고독하죠”

    글 두 편이었다. 2017년 가을 번역가 김명남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옮겨놓은 미국 작가 캐럴라인 냅(1959∼2002)의 ‘혼자 있는 시간’과 ‘내 인생을 바꾼 두갈래근’. 혼자 사는 여성의 고독과 고립의 글, 혐오하던 몸이 해방의 몸이라는 깨달음의 글에 나희영 바다출판사 팀장(41·사진)은 출간을 결심했다. 3년여 만인 지난달 ‘명랑한 은둔자’(캐럴라인 냅 지음·김명남 옮김)가 나왔다. “편집하다가 우는 일이 드물고 그런 원고를 만나는 경우도 많지 않은데,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어요.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어쩜 이렇게…. 진짜 저 같은 거예요.” 책은 1990년대 혼자 살던 냅의 가족, 일, 우정, 반려견과의 사랑, 고독, 고립, 자기혐오, 삶의 슬픔, 자기수용, 자기이해를 망라한다. 독자를 품는 스펙트럼이 넉넉하다. 21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나 팀장은 “독자들이 ‘이게 90년대 글이라고?’ 하며 놀란다. 이물감이나 시간적 거리감을 못 느낀다”고 했다.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 ‘남자보다 개가 좋아’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같은 냅의 책은 2000년대 중반 국내에 출간됐다.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칙릿(chick-lit·젊은 여성을 겨냥한 소설) 부류로 간주됐다. 반면 ‘명랑한 은둔자’는 30, 40대 여성을 흡인한다. “30대는 물론이고 X세대가 지금 40대잖아요. 1인 가구가 늘고, 결혼 안 한 직업여성이 많고. 그동안 고독이라는 주제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거의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여성의 고독이 조명을 받아요. 혼자 사는 여성의 일, 삶 같은 코드가 독자에게 닿는 거죠.” 한 달여 만에 5쇄를 찍은 이 책에 대한 독자 반응은 “나를 표현한 것 같다” “내 친구 같다” “거의 다 밑줄을 쳤다” 등 공감으로 수렴한다. 가벼운 위로, 산뜻한 이야기 위주의 요즘 에세이에 지친 독자도 이 책을 집어 든다. “가볍지 않다는 게 차별 지점이지 않나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려는데 화장실에 가서 숨겨놓은 술을 마실 만큼 심한 알코올 중독이나 거식증 이야기 등 질릴 정도로 솔직한 고백은 읽는 사람 몸을 지치게 하는 느낌도 있어요. 그럼에도 다정함, 따스함이 그걸 상쇄하죠.” 냅의 글은 삶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상향 곡선을 그린다. 자신을 ‘명랑한 은둔자’라고 정의한 것처럼 삶을 잘 살아내고자 한 의지가 번뜩인다. 나 팀장은 “삶의 격랑을 거쳐 온 시간과 경험이 생의 선물이며 거기서 승리감을 맛본다는 것이죠”라고 풀이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가 기르던 18세 된 개를 올해 6월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냅의 원고를 읽으면서 정리가 된 거 같아요. 그냥 데려오고 닥칠 일들은 다 받아들여 보자는 생각.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는데,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좋아요.”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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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태초에 인종은 없었다, 만들어졌을 뿐

    영화 ‘대부’(1972년)에서 뉴욕의 마피아 두목 마이클 코를레오네는 모 그린에게 그의 라스베이거스 호텔을 내놓으라고 한다. 화가 난 모는 “빌어먹을 기니 놈(guineas)”이라며 언성을 높인다. 기니는 노예무역으로 악명 높던 서아프리카 해안 지역. 왜 앵글로색슨계 모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마이클에게 기니 놈이라고 욕을 했을까. 해답은 이 책에 나온다. 18세기 ‘기니’는 백인이 흑인을 경멸조로 칭하는 말이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도 기니인이라고 불렸다. 지금이야 백인이지만 당시에는 흑인 취급을 받은 것이다. 이 일화는 미국에서 백인이라는 범주가 가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렇다. 태초에 인종이라는 것은 없었으며 근대 들어 정치,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인종주의가 인종을 낳았다는 얘기다. 어렸을 적 미국으로 이민 가 현재 그곳의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먼저 미국에서 백인 흑인 황인종 한국인 히스패닉이라는 인종의 범주와 한계가 정해진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핀다. 이는 아메리카에 도착한 순서, 그리고 사회 경제적 위치와 연결돼 있다. 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그리스 폴란드 러시아 이민자와 유대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야 ‘정규 백인’에 합류할 수 있었다. 책은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고대나 중세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던 인종 개념의 출현은 16세기 ‘항해의 시대’에 서구가 원주민과 맞닥뜨린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논증한다. 토착민, 즉 비(非)서구인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인종주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영국이 미 버지니아에 식민지를 만들고 담배농장을 넓혀 나가던 17세기 중반까지 흑인과 백인 노동자 사이에 인종적 차별은 없었다. 그러나 1676년 흑인과 백인이 연합한 노동자 반란이 일어났다. 농장주들은 백인 노동자에게 물질적 혜택과 사회적 특권을 제공하며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인종이 노동계급의 연합을 방지하는 장치로 창안된 순간이다. 이후 인종주의 심화에 기독교와 과학 그리고 법이 ‘부역’한 사례도 소개한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저자의 거친 감정이 군데군데 드러난 점은 아쉽지만 읽기 쉽게 정리됐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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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은산 ‘시무7조’와 김수현 에세이의 공통점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진인(塵人) 조은산의 ‘시무(時務) 7조’,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짚은 삼호어묵의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 10만 부 넘게 나간 김수현 작가의 에세이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그리고 김봄 작가의 이낙연 전 국무총리 홍보 서적…. 접점을 찾기 힘든 이들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글의 구성 형식이 흡사하다는 것. 조은산, 삼호어묵의 글은 폐부를 찌르는 내용으로 공감을 샀다. 여기에 글 형식이 최근 유행하는 에세이 형태와 닮았다. 요즘 독자에게 더 쉽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공감을 높이는 효과를 얻은 셈이다. 이 글들의 형식은 문단의 왼쪽 정렬, 잦은 행갈이, 열 줄 안팎의 한 문단, 문단과 문단 사이의 여백이 특징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30, 40대 여성 독자에게 특화된 양식(樣式)이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놀)의 임소연 책임편집자는 “5, 6년 전부터 블로그나 SNS에 단락, 단락 짧게 쓴 글이 유행했다. 책의 주 소비층인 30대 여성이 편하게 느끼는 형식”이라고 말했다. 한 줄에 글자 수가 많은 것을 선호하지 않는 요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장의 길이는 큰 변수가 아니다. 긴 문장이더라도 독자의 호흡을 고려해 중간중간 끊어 읽도록 행갈이를 한다. 한 문장을 두세 번 행을 바꾸는 일이 흔하다. 단문의 효과가 난다. 시처럼 운율감과 리듬감이 느껴지면서 읽는 맛이 생긴다. 조은산의 글이 시조나 고려가사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의 광고인이자 저술가인 히키타 요시아키는 최근 저서 ‘짧은 글을 씁니다’(가나)에서 “글은 내용이 아니라 리듬으로 읽게 해야 한다”고 했다. 문단과 문단을 멀찌감치 띄우는 것은 ‘함께 읽는다’는 독서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문단 사이든, 행간이든 공간이 많으면 좋은 문장을 사진 찍어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편하다. 신동해 웅진지식하우스 단행본사업본부장은 “최근의 책 읽기는 취향 독서로 ‘나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주위에 알리며 사실상 같이 책을 읽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책의 한 페이지가 SNS의 한 화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세이는 1960∼80년대 김형석 이시형, 칼릴 지브란 등 삶에 대한 성찰을 다룬 글들이 인기를 끌다가 이후 위축됐다. 그러다 최근 자기 감성에 집중하며 일상을 말랑말랑하게 써내려간 에세이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 같은 형식을 끌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흐름은 정치인의 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나온 ‘스스로에게 엄중한 남자 이낙연’(비타베아타)은 올 4월 총선 기간 김봄 작가가 이 전 총리를 동행 취재한 포토에세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내는 여타 책과는 형식이 판이하다. 배소라 비타베아타 콘텐츠실장은 “에세이집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의 김 작가가 총선 때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더 짧은 글을 요즘 에세이처럼 써보자고 기획했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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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었다 살아난 책들의 비밀

    지난달 나온 ‘인간의 내밀한 역사’(시어도어 젤딘 지음·김태우 옮김·어크로스)는 다른 출판사에서 1999년 초판, 2005년 개정판을 내고 절판된 책을 다시 낸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젤딘의 ‘인생의 발견’(2016년)과 ‘대화에 대하여’(2019년)를 냈던 어크로스가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대신 내줄 수 없겠느냐”는 저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책은 출판사 글항아리도 복간을 망설였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지난달 펴낸 저서 ‘읽는 직업’에서 ‘무명의 인간들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면서 미학적이기 그지없는 문장들을 얽어 나간’ 이 책을 복간하고 싶었지만 주저했다고 털어놓는다. 판매 면에서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가 컸다. 절판의 기준은 1년에 1000부나 하루 1부 또는 한 달에 10부 미만 판매 등 출판사마다 다르다. 권당 하루 10∼20원의 보관료도 부담이다. 한번 독자가 외면한 책을 다시 내는 것은 모험이다. 그럼에도 복간된 책은 어떤 행운을 타고난 것일까. 이은혜 편집장은 “상업적으로 확실한 것”이라고 못 박는다. 독자가 다시 찾으리라 장담할 만한 뒷배가 필요하다. 올해 문학동네가 복간한 김은성 작가의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는 김영하 소설가가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유명인의 공개적 찬사는 복간의 든든한 담보가 된다. 비슷한 것으로 ‘셀럽의 사적 추천’이 있다. 이진희 은행나무 총괄이사는 “정유정 작가가 ‘좋은 책인데 절판됐더라’고 한 책을 다시 펴냈다”고 했다. 2007년 국내 한 출판사가 냈지만 빛을 못 본 영국 작가 W E 보먼의 소설 ‘럼두들 등반기’(2014년)다. ‘7년의 밤’ ‘종의 기원’의 정 작가가 추천사를 쓴 이 책은 1만 부 넘게 팔렸다. 책 띠지에 ‘정유정 강력 추천’이라고 적힌 것은 물론이다. 상업성을 뒤로 돌릴 때도 있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저자의 생각, 사유, 철학의 흐름에서 빠지면 안 되는 책은 손해를 무릅쓰고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도 그런 경우다. 다만 전작 ‘인생의 발견’이 약 3만 부 나간 것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중고 책 시장의 독자 반응도 따져 봐야 한다.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2005년·마음산책)은 소설가 김연수가 ‘스밀라는 현대 소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라고 한 책이다. 그러나 1996년 한 출판사에서 나온 뒤 절판됐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이 책을 낸다고 헌책방 사이트에 알렸더니 ‘감사하다’ ‘이번엔 분권하지 말아 달라’ 같은 댓글이 수백 건 올랐다. 이들만 사줘도 200부는 팔리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10만 부 넘게 나갔다. 책도 시운(時運)이 따라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사랑받아 마땅한 책이 시대를 못 만나 묻혔다는 것이다. 저자의 요청으로 글항아리가 2018년 초 복간한 ‘법으로 읽는 유럽사’(한동일 지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8000부나 팔렸다. 그 전해 저자의 다른 책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이 베스트셀러가 된 덕을 본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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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자유주의 시대 모르면 자유를 고민할 수 없어”

    ‘토착왜구’라는 억지소리가 채 가시지 않은 지금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4∼1901)의 ‘문명론 개략’(소명출판)을 펴내는 것은 모험일 수 있다. 게다가 역자는 책의 해제(解題)에서 후쿠자와의 문명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역설한다. ‘이 사람이 쓰는 법’에서 옮긴이를 소개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그의 해제는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번역자 성희엽 박사(57·사진)를 6일 만났다. “일본 근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을 한 권 꼽자면 후쿠자와가 1875년에 쓴 이 책입니다. 인터넷에는 후쿠자와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가 있는데, 이 책도 제대로 못 봤으면서 어떻게 그를 비판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메이지유신을 이룬 1868년부터 약 10년간 일본은 혼란스러웠다. 혁명의 성공에 심취해 어떤 국가를 만들지 어렴풋했다. 후쿠자와는 개인의 자유와 공화(共和)의 가치를 바탕으로 권력의 전제(專制)를 견제하는 문명화에서 길을 찾았다. “봉건사회와 근대사회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고민하던 후쿠자와는 자유를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로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공화와 결합해 권력의 전제를 견제해야 사회가 바르게 유지된다는 거였죠. 자유주의를 동양사회에서 처음 소화한 겁니다.” 서울대 화학과 82학번인 성 박사는 그 시대 운동권이 그랬듯 일본어를 공부해 한국에 없던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을 읽었다. 대학 도서관에서 찾은 일본판 마오쩌둥 선집의 ‘모순론’ ‘실천론’을 며칠간 밤새 번역해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1990, 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유럽을 현장에서 본 뒤 사회주의를 포기했다. “정치권에 들어가 정부에서 일하던 40대 후반,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까 고민했죠.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할지 알려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국가를 이룬 일본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경대에서 일본 근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메이지유신의 역사를 다룬 ‘조용한 혁명’(2016년)을 냈다. 그리고 4년여 작업 끝에 이 책을 내놨다. “한국 지도층은 대부분 자유주의 시대를 모르고, 자유라는 가치를 고민하지 않았어요. 산케이신문 칼럼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나 이른바 ‘코로나 독재’, (유력 정치인의) 성폭력 등을 보세요. 전체주의적 습성과 파시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죠.” 해제는 이렇게 맺는다. ‘… 19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와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국가 체제의 본질은 전제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과 사회는 물론이고 그 국가마저도 독립 자존할 수 없게 만듦을 생생하게 증거해 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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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세상을 읽는 게 편집자의 일이죠”

    “이은혜 편집장은 책에 미쳤어요.”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58·사진)는 최근 펴낸 책 ‘읽는 직업’의 저자를 두고 몇 번이고 말했다. 정 대표가 다른 출판사(글항아리) 편집장의 책을 낸 건 ‘이은혜표 문체’라고 부를 만큼 글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편집 경력 35년 차인 그가 이제 15년 차 후배 편집자에게서 2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았을 리 없다. “제가 15년 차에 그랬거든요. 그때 마음산책을 차렸어요. 왜 그랬겠어요? 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출판사에) 소속된 데서 오는 한계가 있잖아요. 미친 듯이 책을 내보고 싶었어요.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15년은 열정으로는 정말 책에 미치는데 자기가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는 연차죠.”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페퍼민트 차를 마시며 후배 편집자 얘기를 하는 그의 얼굴은 내내 밝았다. ‘읽는 직업’은 책을 낳는 저자 편집자 독자의 트라이앵글에서 늘 드러나지 않게 일하는 편집자가 책 만드는 일이란 어떤 것인지 들려준다. 읽다 보면 편집이라는 일이 저자를 ‘읽고’ 독자를 ‘읽고’ 세상을 ‘읽으며’ 존재하는 매력적인 직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책을 제안했을 때 “편집자가 어떻게 저자가 되나요. 글 쓸 힘이 있으면 원고를 더 열심히 보고 다듬는 데 쓰겠다”고 했던 저자는 나중에 다시 조르니까 “저자에게, 독자에게 할 말이 생겼다”며 쓰겠다고 했단다. “편집자라는 존재는 오탈자가 난다든지, 책이 잘못될 때만 드러나잖아요.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태반이 모르기도 하고요. 저자에게는 편집자의 바람과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를 말하고 싶고, 독자에게는 결과물로서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대요.” 오전 네다섯 시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참고자료용 책들로 가득한 책장들에 둘러싸인 책상에서 교정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것은 책으로 될 것인가, 책이 아닌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꽉 채운 채 인생의 80%를 책 아니면 책 이야기로 구성한 것 같은 후배를 보며 그는 자신의 초심을 돌이켜봤을까. “책을 만드는 즐거움, 편집자로 산다는 것의 자부심은 35년 전에서 ‘1도’ 안 변했어요. 다만 당시에는 책이 다른 어떤 매체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었고 ‘내가 사회에 중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교보문고에서 ‘문구를 살까, 책을 살까’ 하는 선택지의 하나가 돼버린 요즘에는 편집자로서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나 걱정이 들어요.” 유능한 편집자라면 ‘꼭 내야 할 책’과 ‘팔리는 책’ 사이의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정 대표는 이를 ‘관리형 품목’과 ‘효율형 품목’으로 불렀다. 그럼 이 책은? “100퍼센트 효율형이에요. 개인의 고민과 그 결과물 사이의 간극을 다루고 있어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흥미로워할 거예요. 정말 많이 팔려야 해요. 하하.”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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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2차대전 戰車 모습이 다르다?

    세계는 약 100년과 75년 전에 끝난 두 차례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벗어나 있는가. 국제정치사가인 저자의 두 책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전략적 경쟁은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패권국과 신흥국의 경쟁을 떠올린다. 새로운 합종연횡의 가능성은 20세기 초반 세계와 흡사하다. 1918년 세계를 휩쓴 스페인독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겹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떤가. ‘토착왜구’라는 신조어를 낳은 현 정부의 대(對)일본 정책과 맞물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가 부른 비극이다. 족쇄처럼 우리를 구속하는 남북관계는 2차대전 이후를 겨냥한 강대국의 세계전략이 낳은 한반도 분단의 결과다. 각각 1963년과 1974년에 쓰인 두 책은 각 전쟁의 원인에 대한 기존 연구와는 궤를 달리하는 시각을 보여준다. 1차대전의 원인으로 꼽히는 팽창정책, 세력경쟁, 동맹 실패 대신 저자는 ‘철도 시간표 이론’을 꺼내든다. 1914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저격으로 빚어진 위기에서 각 나라가 외교적 술책으로 한 선전포고와 동원이 철도를 통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또 2차대전은 세계 정복이라는 히틀러의 야심에서 촉발됐다는 기존 연구와는 달리 히틀러가 무력 사용 위협과 소규모 전쟁을 통해 독일의 힘과 지위를 키워나가려 했다고 주장한다. 양차 대전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는 1차대전은 대중의 전쟁이었지만 전선은 집에서 멀었던 반면 2차대전은 모든 사람이 전쟁에 휘말렸고 전방과 후방의 구분은 사라졌다고 분석한다. 전례 없는 국가적 단결이 요구돼 1차대전 때 각광받던 장군들은 뒤안길로 들어서고 히틀러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이 비길 데 없이 강한 힘을 가졌다고 파악한다. 두 책에는 전쟁의 참상과 이모저모를 기록한 470장의 사진이 있다. 전차의 변모를 통해 양차 대전 사이 군사기술 발전상을 알 수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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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쓴다는 건 미래로 메시지를 보내는 일”

    소설가 장강명(45)은 이달 초 ‘책, 이게 뭐라고’(아르테)를 냈다. 2017년부터 2년간 작가 요조와 함께 진행한 팟캐스트를 글감의 바탕으로 삼아 ‘정보를 담는 오래된 매체 책과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에 대한 글 38편을 모았다. 이 책에서 세상은 ‘말하고 듣는’ 세계와 ‘읽고 쓰는’ 세계로 나뉜다. 읽고 쓰는 세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같은 디지털 매체를 등에 업은 말하고 듣는 세계의 집중포화에 그로기 상태다. 그럼에도 ‘책을 쓴다는 일은 우주의 기본 속성’이라고 믿는 장 작가를 14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났다. 장 작가는 책에서 한때 웹소설을 써볼까 고민도 했다고 고백한다. ‘거기에 독자들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한국문학이 점점 ‘게토화, 갈라파고스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가장 두려운 것은 문학과 문학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옛날 이문열 황석영이 시도했던 ‘한국사 전체에 내가 대응한다’는 것이 사라졌다. ‘한국사회 전체가 이렇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렇게 하겠다는 야심도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 게 가능한 시대인가 싶기도 하고. 문학도 파편화된 영역에서 이슈 파이팅 삼아 쓰긴 하는데 ‘다른 건 필요 없고 내 이슈가 제일 중요하다’는 식이다.” 말하고 듣는 세계의 거주자들은 현재와 부단히 소통한다. 읽고 쓰는 세계의 거주자들은 ‘읽으며 과거와 대화’하고 ‘쓰면서 미래로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현재와 싸울 수밖에 없다’. 그는 책에서 ‘50년 뒤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10만 부 넘게 팔리는 책을 쓰고 싶은’ 속내를 감춘 적이 없다. “찰스 디킨스는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로 생각했지만 당대의 진지한 (문학적) 평가를 받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 ‘데이비드 코퍼필드’ 같은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토를 달지 못하죠. 그때 디킨스가 어떤 기분이었을까 싶기도 해요. 결국 쓰고 싶으니까 소설을 쓰는 건데. 김진명 작가가 부러운 게 아니라 정말 열렬한 한 명의 독자를 사로잡고 싶다는 식의 선민의식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고 싶고. 딜레마예요.” 정식 등단하기 전에 언제나 책을 들고 다니던 장 작가는 요즘 전자책으로만 책을 읽는다. ‘손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이니 ‘종이 냄새’니 하며 종이책의 물성(物性)을 강조하는 사람은 의심한다. 읽고 쓰는 세계에 책이라는 물신(物神)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책의 ‘팬시상품화’도 마뜩지 않다. 읽고 쓰는 세계가 만들어낼 우려가 있는 ‘근본주의’보다는 말하고 듣는 세계가 지어내는 ‘근본이 사라지는 현상’을 두려워한다는 장 작가는 SNS와 인터넷 게시판에서 풍기는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포퓰리즘은 진정한 국민과 부패한 엘리트라는 상상의 전선을 만들고 ‘우리는 진정한 국민인데 저들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권을 잡은 뒤에도 그런다는 거죠.”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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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진정한 자유는 ‘족쇄 찬 국가’에서 온다

    2012년 정치 경제 제도가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에 따라 국가의 실패 여부가 결정된다는 베스트셀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저자들이 이번에는 어떤 국가가 성공하는지를 분석했다. 이들에게 국가 성공의 기준은 개인의 자유 보장이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공포와 폭력으로부터,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가치에 따른 삶을 추구할 수 없게 만드는 지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근대 정치사상가 홉스는 공포와 폭력, 지배라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국가, 즉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리바이어던은 언제든 자유보다 통제에 탐닉할 수 있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국가에 사회가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것. 저자들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부터 중국 미국에 이르기까지 들여다본 리바이어던의 역사는 국가와 사회가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다. 그것은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와 레드 퀸의 달리기 경주와 같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네가 있는 힘껏 달려야 해.” 사회가 국가와 나란히 달리지 못하면 국가가 비대칭적으로 커져 ‘독재 리바이어던’으로 치우쳐 자유는 질식한다. 사회가 국가의 작용 자체를 막을 만큼 커지면 ‘부재(不在) 리바이어던’으로 흘러 개인은 자발적 예속에 놓인다. 독재와 부재 사이의 좁은 회랑(回廊)이 바로 자유로 가는 길, ‘족쇄 찬 리바이어던’의 길이다. 이때 국가는 법으로 폭력을 통제하고 분쟁을 해결하며,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잘 조직된 사회의 제어를 받는다. 국가와 사회의 균형을 맞추는 레드 퀸의 경주는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렵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파편화한 정당체제, 페라인스마이어라이(극성스러운 모임광·狂)가 상징하는 고도로 결집한 사회의 양극화가 심했다. 모든 당사자 간 타협은 부재했으며 적대적이었다. 결과는 나치 독재였다. 책은 중국에 대해 “진나라 이후 사회에 대한 국가의 압도적인 지배력으로 2500년 동안 회랑에서 떨어져 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고 혹평한다. 반면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타협의 산물로 건립한 미국은 족쇄를 차고 태어나 그 무게 때문에 회랑 안에 머물며 진화를 계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을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통일사회당, 프랑스 국민전선과 함께 포퓰리스트로 분류한다. 포퓰리스트는 ‘운동에 참여 않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몰면서 교활한 엘리트 집단의 일부로 묘사하고 양극화를 부추긴다.’ 신뢰를 잃은 제도적 기관들이 타협을 주선하기는 더욱 어려워 회랑 밖으로 튕겨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출현을 막으려면 국가에 맞서 사회의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1938년 스웨덴 살트셰바덴 사회민주주의 연합을 사례로 든다. 이 책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전에 쓰였다. 개인 자유의 보장에 대한 동아시아와 미국 유럽의 관점이 큰 차이를 보이는 현 상황에서라면 책 내용이 조금은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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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직원에게 맡겼더니 대박 났어요”

    2017년 1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프로그래밍 디렉터인 애덤은 선댄스영화제에서 러시아 도핑 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카루스’를 봤다. 걸작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치고 비싼 250만 달러를 입찰가로 생각했다. 하지만 경쟁사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어 400만 달러는 돼야 할 것 같다. 최고콘텐츠책임자(CCO)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결정을 하라고 당신한테 월급을 주는 겁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월척이라면 450만이든, 500만이든 잡아야죠.” 애덤은 460만 달러로 결정했다. 이카루스는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세계적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에린 마이어 교수와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에 관해 지난해 함께 쓴 ‘규칙 없음’에는 애덤 같은 실무자(책에서는 ‘정보에 밝은 주장·informed captain’이라고 표현)가 홀로 큰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적지 않게 들어있다. 저자들은 ‘직원 결정을 승인하거나 거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상사는 혁신을 막고 성장을 더디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올 4월 기준 전 세계 유료 구독자 1억9300만 명을 보유한 굴지의 콘텐츠 기업 넷플릭스에는 이처럼 대부분의 회사에는 당연히 있는 것이 많이 없다. 휴가 규정, 비용 규정, 출장 규정, 승인 절차, 의사결정 승인, 핵심성과지표, 성과 향상 계획, 성과급…. 얼핏 직원 마음대로인 것 같은 이런 방식은 자유와 책임의 문화다. 헤이스팅스는 지난 300년간 기업은 대량생산과 낮은 오류비율을 위해 중앙 집중적인 통제, 규정, 정책, 의사결정을 통한 규정과 절차 문화 속에 움직였다고 본다. 지휘자가 악보를 바탕으로 단원들을 한 음, 한 박자 흐트러짐 없이 이끄는 교향악처럼. 그러나 이는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성격과 목표가 오류 방지가 아니라 혁신인 산업은 그런 통제 절차와 규정은 거의 없고, 의사결정권은 철저히 분산돼 있으며 직원 각자에게 많은 자유를 주고 각 부서가 유연하게 운신한다. 그래야 예측 못 한 기회가 생기고 사업 조건이 변할 때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민첩성이 극대화한다. 연주자 각자의 즉흥연주가 놀라운 화음을 이루는 재즈같이. 여기에는 선결조건이 있다. 인재 밀도가 높아야 한다. 넷플릭스의 인력관리 원칙은 이렇다.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 ‘대단한(great)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좋은(good) 직원을 해고한다.’ 창의력이 생명인 분야에서 뛰어난 직원 1명은 평범한 직원 10명보다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분명 조직을 이끄는 방식에 관한 책이지만 읽고 나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한편 무시무시하면서도 변화할, 또는 바뀌어야 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희열이 조금씩 밀려온다. 원제 ‘No Rules Rules’.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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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국가는 중요하지 않다”

    책 제목이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라고 하자 이정화 정은문고 대표(53·사진)의 동생이 물었단다. “고려시대 다음의 그 조선을 말하는 거야?” 조선시대에 조선 남성과 결혼한 일본 여성 이야기냐는 뜻이었다. 1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기자와 만난 이 대표는 “저도 일본 이와나미문고(巖波文庫) 신간 소식에서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북송(北送)사업’이 뭔지 몰랐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북송사업은 1959년 2월∼1984년 7월 북한 정부와 조총련이 재일교포 약 9만3000명을 북송선에 태워 북한에 보낸 일을 말한다. 우리는 강제송환이라 불렀고 북한은 동포귀국사업이라고 했다. 1990년대 초 조총련을 탈퇴한 인사들은 북송된 이들 대부분이 참혹하게 산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 출간된 이 책은 유명한 보도사진작가인 하야시 노리코(林典子·37)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평양, 원산, 함흥 등지에서 북송사업으로 재일교포 남편과 함께 북에 온 일본 아내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포토 다큐멘터리’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4∼76년 저희 집에서 일하시던 일본인 할머니가 계셨어요. ‘왜 일본 사람이 우리 집에서 일하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에 한국 남편과 결혼했는데 이후 혼자 살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이 대표는 출간 작업에 들어가면서 북송사업의 실체를 파헤친 책 ‘북한행 엑소더스’를 어렵게 구해 읽고 일본 영화 ‘박치기’도 봤다. 이 대표는 “이 책이 북송사업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부터 글을 풀어냈다면 별 관심이 없었을 것 같다. 아내들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여서 좋았다”고 했다. 책의 사진과 글은 일본인 특유의 정서라고나 할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들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것처럼 보이고 읽힌다. 물론 저자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안내원이 옆에 있다는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싶다. 아내들은 한국 북한 일본 정부가 ‘강제송환이다’ ‘귀국이다’ ‘납치다’라고 외쳐대지만 그저 그렇게 됐을 뿐이라는 식으로 담담히 말한다. “저자는 말해요. 자신은 사회나 국가나 역사를 보면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면서 그가 처한 처지나 상황, 역사나 정치적 역학관계를 생각한다고. 그런 시각이 중요합니다. 국가나 사회부터 보게 되면 사람을 보기 전에 판단이 결정되거든요. 이 책처럼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판단하기 이전에 알아가게 되는 거죠. 독자께서 그렇게 전체를 보시길 바라요.” 책 표지는 건물 한쪽이 드러나고 그 뒤로 바다가 끝도 없이 보이는 사진이다. 저자가 끝까지 이 사진을 고집했다. 원산 앞바다다. 일본인 아내들은 저 바다 너머 무엇을 보려 한 것일까. 저자는 책 표지에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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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로버트 케네디’를 불러내고 싶다

    ‘… 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증오가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폭력과 무법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 지혜와 연민, 그리고 정의감입니다….’ 1968년 4월 4일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피살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그날 오후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유세가 잡혀 있었다. 유세 장소는 이 도시에서도 빈곤한 흑인들이 많은 곳이었다. 선거 참모들은 위험하다며 취소하자고 했지만 로버트 케네디는 감행했다. 사실상 즉흥연설을 통해 슬퍼하고 분노하며 일촉즉발이던 흑인들을 위로했다. 킹 목사 사후 24시간 동안 미국 119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 46명이 숨지고 약 2500명이 다쳤다. 인디애나폴리스는 소요가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대도시였다. 이 책은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1925∼1968)가 1968년 3월 16일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그해 6월 5일 JFK처럼 총탄에 숨질 때까지 82일간의 선거운동을 다뤘다. ‘무자비하고 까다롭고 호전적이며 무례하고 참을성 없으며 기회주의적’이란 평을 받던 그가 어떻게 ‘진정성 있고 선하며 품위 있고 온화하며 영리하고 단호하고 사람을 고무할 줄 아는’ 리더로 변해 대중이 우러르는 죽음을 맞았는지 꼼꼼한 취재와 분명한 ‘편애’로 기술했다. 영웅시된 그의 입지는 대중이 ‘케네디라는 이름의 마술에 홀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은 극심한 인종차별, 베트남전쟁 반대, 빈부 격차의 증대에 따른 빈곤 같은 당시 미국의 시대적 이슈를 그가 정치적 거래를 배제한 채 진정성 있게 부딪힌 결과로 파악한다. 그는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위로하는 말로 감추지 않고 그릇된 희망이나 망상으로 속이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과 반대되는 생각을 이야기하고, 자신에게 동조하는 청중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정치적으로는 위험하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기조를 밀고 나갔다. 로버트 케네디의 대선 도전은 JFK의 후광과 어렴풋한 죽음의 그림자를 극복하는 기록이었다. 하나는 성공했지만 다른 하나는 실패했다. 선거운동 81일째, 고비였던 캘리포니아주 예비경선 승리가 확실해진 순간 ‘그와 형 사이에 남은 가장 큰 유사점은 매사추세츠 억양 그리고 애국과 희생은 분리할 수 없다는 믿음’뿐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그는 운명(殞命)한다. 이 책은 2008년 출간됐다. 당시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마지막 해로 대선을 몇 개월 남겨 놨다. 저자는 1968년과 2008년의 미국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인종차별은 그대로고 원치 않는 이라크전쟁으로 도덕적 리더십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것. 책의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2008년과 지금의 미국 또한 흡사하다며 로버트 케네디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그러나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로버트 케네디의 ‘재림’이라고 생각됐듯 조 바이든도 그럴지는 솔직히 관심 없다. 다만 ‘(지지자들을) 이용하려는 대신 교육하고, 분열 대신 화해를 시도하고, 메시지를 주입하는 대신 대화하고, 지갑이 아닌 선한 마음에 호소하고, 안위를 약속하는 대신 희생을 요구’하는 젊은 정치인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생길 뿐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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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이 쏠리는 내용 찾고… 끝까지 읽겠단 욕심 버려라

    《인정한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책 읽는 효과는 단번에 나지도 않는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再)확산으로 실내 점유 시간은 늘어났다. TV든 넷플릭스든 유튜브든 지루할 때가 온다. 책을 꺼내볼 겨를이 생기지 않을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다. 독서법 전문가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64·‘고수의 독서법을 말하다’ 저자), 김병완 김병완칼리지 대표(50·‘한번에 10권 플랫폼 독서법’), 이성열 작가(66·‘독서 고수들의 독서법을 훔쳐라’),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64·‘나는 도서관에서 교양을 읽는다’)에게서 ‘집콕, 책 읽는 기술’을 들었다.》○ 너의 관심은책은 많은 이에게 소일거리 아니면 공부다. 어느 쪽이든 책을 읽을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다. 독서법의 첫걸음은 자신의 관심에서 내딛는다. 지금 내 관심사는 무엇인가. 직장 업무의 특정 분야인가, 운동 같은 취미인가, 혼란한 시대의 불안한 마음인가, 직업을 바꿀 생각인가, 사춘기를 겪는 자녀인가…. 나를 흥미롭게 하는 것, 마음이 쏠리는 것이 독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책을 들어라관심이 명확해졌다면 책을 읽는 구체적인 목적이 생긴 것이다. 기간을 분명히 해보자.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정도면 나쁘지 않다. 관심과 관련된 책을 10권이면 10권, 20권이면 20권 정한다. 대출 서비스를 지속하는 지역 도서관에서라면 충분히 빌릴 수 있다. 책은 물리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가까이 둬야 한다. TV 앞이든, 화장실이든, 외출할 때 가방에든, 읽든 말든 상관없다.○ 정독, 피하라책 한 권을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서문을 읽고 목차를 훑어 내려가며 눈에 들어오는 꼭지를 찾아 읽는 것도 방법이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놓고 왔다 갔다 하며 보는 것도 좋다. 옛사람은 서재에 나란히 꽂힌 책등을 보는 것도 독서라고 했다. 지금은 책 앞뒤 표지와 띠지에 적힌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서라 할 수 있다.○ 영상과 함께분명 책 읽는 것은 지루하다. 군데군데 뽑아서 읽어도 그렇다. 책이라는 텍스트를 영상이라는 비주얼과 조합하면 지루함을 반감시킬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에 꽂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자. 중간에 때려치우기 서너 번에 결국 포기하기 일쑤다. 그럴 때는 유튜브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Le Pere Goriot(고리오 영감)’를 찾아보라. 영화가 나온다. 서양사 관련 책을 읽을 때도 관련 영화(영상)는 꽤 많다.○ 어떻든 독후감책을 읽었다면 말이나 글로 읽은 소감을 정리해서 알리도록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책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렇게 생긴 지적 호기심은 다른 책으로 연결시켜 준다. 보물찾기 하듯 내 관심에 대한 책마다의 해답을 연결해서 새로운 나만의 지식을 구축한다. 그러면 더 큰 의문이 생긴다. 그런 결절점마다 자신만의 독후감을 어떤 형식으로든 남기면 좋다. ○ 부모가 읽어라독서법 전문가들은 대중을 상대로 강연도 많이 한다. 자녀가 초등학생 이상인 여성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아이가 알아서 책을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지루할 때가 상상력을 키우기 가장 좋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확실한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부모님께서 책을 읽으세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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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촌은 나에게 巨峰 같은 존재”

    광복 75주년과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 서거 65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회고한 책 ‘나라와 민족의 선각자 仁村 金性洙’(백산출판사·사진)가 출간됐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각계 원로급 인사 19명이 인촌과의 인연, 그에 대한 경험과 소회를 담았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나라와 민족의 큰 어른’이라는 글에서 “인촌은, 낮은 야산만 보고 살았던 나에게 큰 거봉(巨峰)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 그가 지닌 애국심 때문이다. …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변함없는 애국심을 지니고 살았다”고 했다. 인촌이 설립한 중앙학교 교사였던 김 교수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그 이튿날 학교를 찾아가 “학교 재정을 은행에 맡겨두면 공산군 손에 넘어갈 테니 그 예금을 찾아 교사와 직원에게 3개월씩 월급을 먼저 지급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인촌은 바로 허락해 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3개월간 중앙학교 교직원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지냈다. 김 교수는 이어 “인촌의 탁월한 장점은 인재를 배출해 그를 아끼며 믿고 위해주었다는 사실”이라며 “인촌은 언제나 자신보다 유능한 적임자라고 인정할 때는 서슴지 않고 그 직책을 맡기고 자신은 뒤에서 돕는 자세였다”고 회고한다. 책은 인촌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주대환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의 말을 인용해 “독립운동가들 모두가 김성수의 도움을 받았다. … 그의 한계를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의 족적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강조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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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노멀 중년’ 50대… 그들의 자아찾기를 응원합니다

    《50대를 겨냥한 책이 부쩍 늘었다. 이달 ‘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 (빈티지하우스) ‘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빌리버튼), ‘50이라면 마음청소’(센시오)가 출간되는 등 올 들어 10종 넘게 나왔다. 출판계에서는 제목에 ‘50(대)’을 박아 넣은 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주로 자기계발서인 이 책들이 상정하는 50세(혹은 50대)는 세상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이라기보다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는 나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밀려오는 때다. 이성용 빈티지하우스 대표는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는 일, 즉 ‘은퇴’를 앞두고 재취업이냐 투자냐, 돈 걱정에 자녀교육 문제로 불안하다. 이때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50대를 잘 준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책을 냈다”고 말했다. 50을 타깃으로 하는 이 책들이 생각하는 주요 소비층은 막 50이 됐거나 50을 맞이할 40대 중후반, 즉 ‘뉴노멀 중년’이다. 이들이 30대 중반∼40대 초반이었을 때 ‘30대 재테크 성공전략’(2008년) ‘대한민국 30대, 재테크로 말하라’(2008년)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2011년) 같은 책이 유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나 4차 산업혁명같이 시대를 완전히 뒤바꿀 일은 상상도 못했기에 그런 경제·경영서에 신경 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현준 빌리버튼 대표는 “10년, 20년 전의 50대에 비해 재취업이나 투자환경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며 “이들은 그때 놓친 기회를 후회하고 있다”고 짚었다. 뉴노멀 중년은 과거의 50대와 다르다. 주로 1970년∼1975년에 태어난 이들은 X세대다. 그전 586세대(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50대로 대표되는 세대)까지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했다면 X세대는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에 집중한 첫 세대다. 이들은 50을 맞아 자아 찾기에 나선다. 지난달 나온 ‘50, 우아한 근육’(꿈의지도)는 세 자녀를 키우는 1970년생 동화작가가 50을 맞아 근육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이 탈바꿈한 과정을 담고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노년을 준비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윤소영 꿈의지도 팀장은 “뉴노멀 중년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고, 나의 몸과 취향에 투자한다. 책임을 오랜 시간 다한 후에 더 절실해진 자아 찾기”라고 말했다. 비상교육 Geo Company 대표인 1971년생 노중일 씨가 올 4월 펴낸 ‘50 SO WHAT?’(젤리판다)는 뉴노멀 중년이 동년배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다. 출생연도별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에 속하는 1970, 71, 72년생이 코로나19와 산업구조 격변 속에 ‘오춘기’를 겪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과거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펼쳐내야 하는 책임을 진 X세대의 고민과 두려움의 표현이라는 것. 노 씨는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X세대가 Y, 밀레니엄, Z세대와 더불어 잘 살려면 그들의 다양성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한다. 50을 위한 책의 잇단 출간은 독서 연령층의 고령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약 10년 전 책의 주소비층이던 30대 직장여성이 나이를 먹어 40대 중후반이 돼서도 계속 책을 구입하는 주요 연령대가 된다는 얘기다. 반면 디지털 매체를 선호하는 20, 30대의 책 시장 유입은 지지부진하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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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엎친데 덮친 경제난, 온고지신이 해결책

    더 이상 성장은 불가능한가. 정부의 개입은 어디까지가 적정한가. 양극화는 극복할 수 없는가. 대공황은 불가피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미중 무역 분쟁의 여파로 휘청대던 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엎친 데 덮친 경제난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저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택했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부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로버트 솔로까지 근현대 글로벌 경제 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들을 소환해 이들이 던져줄 묘안을 모색해 본다. 이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공통점은 이론 탐구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명확한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경제학의 일가를 세운 이들의 이론과 삶을 일별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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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

    마이클 루이스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작가다. 출루율이라는 보잘것없던 통계가 불러온 야구계의 격변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단 단장의 자전적 실화로 풀어낸 ‘머니볼’(2003년)이 그랬듯 이 책도 미식축구 전술의 작은 변화가 일궈낸 흑인 빈민 소년과 백인 부유층 가족의 휴먼스토리를 담았다. 이미 10년 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영화는 백인 가족이 길거리 갱이 될 뻔한 흑인 소년을 연봉 수백만 달러의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 키워내는 훈훈한 과정을 담았다. 흑인판 신데렐라 내지는 미국판 피그말리온처럼도 보인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현재 시각으로 보면 자칫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면 미 남부 복음주의 기독교도 가족의 선행이라는 태풍은 1980년대 초반 로렌스 테일러라는 불세출의 미식축구 수비수가 부른 나비효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야구팬은 1000만에 가깝다지만 미식축구팬은 채 1만이 될까. 만약 이 전형적인 미국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전형적인 표현으로 이 책을 쥐는 순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낯선 전문용어가 난무하지만 번역자가 최대한 매끄럽게 풀어내 군데군데 눈에 띄는 오타와 오역에도 너그러워진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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