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김상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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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상훈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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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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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 2회-항암 치료 24회 견디고 대장암-간 전이 모두 완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최희원 씨(47)가 30대 후반이던 10년 전. 어느 날 만난 지인이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당시 최 씨는 다이어트 중이었다. 실제로 체중이 짧은 시간에 5kg이 빠졌다. 최 씨는 다이어트가 효과를 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무렵부터 배가 자주 아팠다. 동네 의원에 갔다. 장염 같다며 약을 처방해 줬다. 약효는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르면 저절로 증세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드문드문 의원에 갔고, 그때마다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얼마 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도 제대로 용변을 보지 못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있었던 변비 증세가 심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변비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갑자기 체중이 빠진 것이나 변비가 심해진 것은 모두 대장암으로 인해 나타난 증세였다. 하지만 동네 의원 의사도, 최 씨도 대장암일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 대장암 수술 후 항암 치료 돌입어느 날 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 무렵부터 복통의 강도도 심해졌다. 배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제야 최 씨는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최 씨의 대장암 수술을 집도한 이윤석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당시 인천성모병원 교수)는 “심한 변비, 혈변, 통증이 나타난다면 암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것이다. 최 씨의 경우 이런 증세가 나타나기 1, 2년 전에 이미 대장암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암은 나이 들어서야 생기는 걸로만 알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맞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젊은 환자가 증가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장암은 60대 이후에 주로 걸렸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집에서 가까운 인천성모병원으로 갔다. 최 씨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림프샘으로 전이된 대장암 3기 진단이 떨어졌다. 서둘러 수술해야 하는 상황. 이 교수가 수술을 집도하기로 했다(이 교수는 나중에 서울성모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2013년 8월, 최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이 교수는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3시간 정도 소요됐다. 암은 대장의 중간 부위인 결장에 있었다. 이 부위를 제거하고 대장의 위와 아래쪽을 연결하는 수술이었다. 대장과 연결된 림프샘도 절제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 암은 완벽하게 제거된 것 같았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한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항암 치료는 2주마다 한 번씩, 꼬박 6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진행됐다. ● 대장암 이겨내니 간에 전이이제 모든 치료가 끝났나 싶었다. 안심하려던 찰나, 최 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4개월 후였다.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는데, 간에서 암이 발견됐다.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이다. 암이 원격 전이됐기에 병기는 대장암 3기에서 대장암 4기로 조정됐다. 이 교수는 “3기 대장암의 경우 수술을 끝낸 후 1, 2년 이내에 전이가 생기는 확률은 30∼40% 정도”라고 했다. 60∼70%는 재발하지 않고 완치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최 씨는 행운보다는 불운에 더 가까운 사례인 셈이다. 최 씨는 “젊은 나이에 암이 생겨서 전이가 생긴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죽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간으로 전이된 암을 제거하기 위한 치료에 돌입했다. 수술에 앞서 선행 항암 치료를 3회 진행했다. 이어 암이 있는 간의 오른쪽 부위를 제거하는 간 절제 수술을 시행했다. 4, 5시간이 소요된 큰 수술이었다. 이번에도 수술은 잘 끝났다. 다시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추가로 9회의 항암 치료를 마쳤다. 그 후로 5년이 지났다. 2019년 9월, 대장과 간에서 암세포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비로소 최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암이 재발할 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굳이 비교하자면 암에 걸린 적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재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대장암의 경우 일단 완치하면 다른 암에 비해 재발 확률이 낮다. 만약 전이됐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컨디션만 잘 유지하면 다시 완치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최 씨는 매년 병원을 찾아 몸 전체를 살피는 CT 검사와 종양표지자 검사를 받는다. 3년 혹은 4년 간격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도 한다. 이렇게 하면 설령 암이 재발 혹은 전이되더라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 운동하며 24회의 항암 치료 버텨항암 치료를 받으면 속이 좋지 않아 음식 섭취가 힘들어진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권하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는 환자들이 오히려 드물다. 최 씨도 마찬가지였다. 속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무엇이든 먹으려고 했다. 과일을 자주 먹었다. 팥이 든 도넛이 그나마 괜찮아 1주일 내내 도넛만 먹은 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기왕이면 영양이 더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좋았겠지만, 어떻게든 음식을 먹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운동도 암 환자들의 완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최 씨도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2시간씩 집 주변을 걸어 다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전반부 12회의 항암 치료를 수월하게 견딜 수 있었다. 간으로 전이된 후 다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술 전에 3회, 수술 후에 9회를 받았다. 다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 경우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최 씨도 그랬다. 게다가 항암제는 더 강했다. 손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왔다. 이를 견딜 수 없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버렸다. 메슥거림도 더 심해졌다. 이번에도 먹는 게 고역이었다. 암에 걸리기 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고기는 아예 먹을 수 없었다. 밥 냄새도 맡지 못했다. 그래도 최 씨는 참고 먹었다. 이때는 주로 사과와 바나나, 고구마를 먹었다. 양배추도 데친 후 갈아서 먹었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4, 5년이 지난 후까지 음식 냄새에 민감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정상을 되찾았다. ●“긍정적 태도가 치료에 도움”완치 비결을 묻자, 이 교수는 “환자인 최 씨가 아주 밝고 긍정적이다. 그런 면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 씨는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단다.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울면 아이들이 속상해할 테니까. 이후 최 씨는 아이들 앞에서 단 한 번도 찡그리거나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암 환자란 사실조차 몰랐다. 최 씨는 또 고치면 나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최 씨는 “수술하고 치료하면 될 것이고,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간 전이 판정을 받았을 때는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간 수술을 집도할 의사를 처음 만났을 때도 환하게 웃었다. 최 씨가 너무도 의연해서 당시 의사가 “혹시 환자 당사자 맞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밝은 성격의 최 씨이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암이 완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암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평생 경계한다는 뜻이다. 최 씨는 “완치됐다고는 하나 무서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 때문에 매일 3시간씩 집 주변에 있는 산을 오르며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 유발 요소인 비만을 막기 위해서다.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을 때 자녀가 같은 암에 걸릴 확률은 2∼3배 높아진다. 최 씨는 이 점이 신경이 쓰인다. 그 때문에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입학 선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켰다. 이 교수는 “대장암 환자였다면 최 씨처럼 자식들을 20대 때부터 관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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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내시경 검사 정상인데 배 아파… 담석일 수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0대 중반의 여성 A 씨는 추석 명절 때 과식했다. 특히 기름기가 많은 전을 많이 먹었다. 갑자기 체한 것처럼 배가 아프고 답답해졌다. 소화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나중엔 온몸에서 열이 났다. 증세가 나타나고 4∼5시간 만에 병원에 갔다. 급성 담낭염이었다. 의료진은 우선 담낭 안의 고름을 빼내고 항생제를 투여했다. 염증이 가라앉은 후에는 복강경을 이용해 담낭을 들어냈다. 송태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집도했다. 담낭을 제거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담석, 여성과 노인에 많아담낭은 간에 인접해 있다. 다른 말로는 쓸개라고 한다. 간은 매일 500∼1000mL의 담즙(쓸개즙)을 만들어 낸다. 이 담즙은 콜레스테롤이나 빌리루빈(수명이 다한 헤모글로빈) 같은 노폐물을 처리하고 십이지장에서 지방의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 담낭은 담즙을 일시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담즙에 들어있는 담즙산은 지방질인 콜레스테롤을 물에 녹도록 변화시킨다. 간에서 담즙산이 덜 분비되면 콜레스테롤은 굳는다. 담낭 기능이 떨어지면 제대로 수축하지 않아 담낭 안에 담즙이 고여 굳는다. 이렇게 굳은 결정체들에 점액이나 칼슘 등이 엉겨 붙어 담석이 된다. 담석 성분에 따라 크게 콜레스테롤 담석과 색소성 담석으로 나눈다. 콜레스테롤 담석은 말 그대로 콜레스테롤이 너무 많아 굳은 결정이다. 색소성 담석은 빌리루빈이 늘어나면서 굳은 결정으로, 갈색이나 흑색을 띤다. 세균이나 기생충 감염으로 인해서도 색소성 담석이 생긴다. 송 교수는 “과거에는 담석 환자의 60% 이상이 색소성이었지만, 서양식 식습관, 비만 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콜레스테롤 담석이 75∼80%로 더 많다”고 말했다. 남성보다는 여성 환자가 많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담석 위험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출산을 여러 번 했거나 피임약을 복용한 경우 에스트로겐 호르몬 약물을 복용한다면 담석이 있는지 살피는 게 좋다.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인들에게서 담석이 더 많이 발견된다. 담낭의 기능이 떨어진 게 원인이다. 송 교수는 “70대 이후에 급격히 증가하며 이때부터는 남녀 환자 비율이 거의 같다”고 말했다. ● 무증상 담도 담석, 합병증 위험 커생기는 위치에 따라 담낭 담석과 담도 담석으로도 나눈다. 담낭 담석은 성인 10명 중 1명꼴로 발견된다. 대부분은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증세가 없다면 ‘일단 관찰’이 기본 원칙이다. 송 교수는 “담낭 담석 환자의 30% 정도에서 증세가 나타난다. 또 매년 100명 중 2명 정도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급성 증세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담낭 담석을 제거할 때는 보통은 A 씨처럼 담낭을 절제한다. 담낭 기능이 떨어진 상태라서 그냥 두면 50∼70%는 재발하는 데다 합병증 발생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담낭을 제거한 직후에는 지방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설사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담도가 늘어나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담즙이 흐르는 통로인 담도에 담석이 생기면 대처법은 달라진다. 담도 담석이 췌장 입구를 막을 경우 급성 췌장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6시간 이상 지나면 위험해질 수 있다. 아무리 늦어도 24시간 이내에 담석을 제거해야 한다. 담즙이 혈액으로 흘러 들어가면 복통, 고열, 황달 등의 증세도 나타난다. 송 교수는 “대체로 담도 담석 환자의 20% 정도는 합병증이 생기므로 가급적 빨리 담석을 제거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담도 담석은 담도암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담도 담석이 오랫동안 방치되면 10% 정도는 암이 된다. 또 담도 담석 환자는 담도암이 발생할 위험성이 10배 정도 높아진다. 송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담도 담석은 무증상이라도 제거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간경화 진단을 받은 70대 초반의 여성 B 씨가 무증상 담도 담석을 그냥 뒀다가 악화한 사례다. 송 교수는 “담도 담석이 간경화의 출발점이었다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B 씨는 강가 근처에서 살아왔다. 예전부터 민물고기를 날로 많이 먹었다. 기생충이 간에 달라붙어 담석이 생겼고, 이 담석이 지속적인 염증을 유발해 간경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강가에 사는 고령자 중에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 증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담석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복통의 양상, 면밀히 살펴야담석은 담즙의 흐름을 막는다. 이때 담낭과 담도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지면서 복통이 발생한다. 하지만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도 문제를 찾지 못한다. 송 교수는 “담석증의 복통에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 담석증이라면 복통이 주로 식후 30분 무렵부터 나타난다. 담즙은 섭취한 음식이 십이지장까지 내려왔을 때 다량 분비된다. 이때가 식후 30분 무렵인 것. 둘째, 복통이 나타나는 부위도 제한적이다. 담낭과 담도가 있는 복부의 오른쪽 윗부분에서 주로 통증이 발생한다. 심하면 복통이 주변 부위로 확산한다. 이 경우 오른쪽 어깨까지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콕콕 찌르는 식의 복통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급체한 것처럼 꽉 막힌 느낌의 복통일 때가 많다. 평소 체한 증세와 소화불량이 자주 나타나는데 소화기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면 담석증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넷째, 담석증에 의한 복통은 최소한 30분에서 길게는 3∼4시간까지 계속된다. 담석으로 막힌 부위가 풀리면 복통도 사라진다. 만약 막힌 부위가 개선되지 않으면 복통은 그 후로도 계속될 수 있다. 이 경우 세균 감염이 일어나면서 담즙이 고름으로 변한다. 그러면 급성 담낭염이나 담관염으로 악화할 수 있다. 송 교수는 “담석증의 가장 흔한 합병증이 급성 담낭염이다. 그러니 증세가 악화하기 전에 빨리 병원에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다섯째, 만약 담석증이 심해지고 합병증까지 발생했다면 호흡 곤란과 발열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송 교수는 특히 담석이 담도를 막은 경우가 최악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경우 온몸으로 세균 감염이 퍼져 패혈증까지 나올 수 있다”며 신속한 치료를 당부했다.● 지나친 다이어트-금식은 피해야담석이 생기지 않도록 일상생활에서부터 조심하는 게 좋다. 우선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이나 과당이 많은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 고지방·고열량 식품은 더 많은 콜레스테롤을 만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담석이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해야 담낭이 주기적으로 수축하면서 담즙을 잘 배출한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담석이 생길 위험도 떨어진다. 비만은 담석이 생기기 좋은 환경이다. 살이 찌면 담즙으로 콜레스테롤 분비가 늘어나고, 담낭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담즙의 흐름이 느려지고, 담낭에서 점액질과 같은 물질도 더 많이 분비된다. 담즙이 더 잘 굳는 환경이 되는 것. 따라서 운동이 필수다. 운동을 자주 하면 담즙이 원활하게 배출되고, 콜레스테롤도 줄어든다. 하지만 과도하고 급격한 다이어트는 금물이다. 단시간에 몸무게를 빼거나 금식을 오래 하면 담석이 더 잘 생길 수 있다. 다이어트를 급격하게 하면 간에서 담즙을 분비할 때 콜레스테롤과 점액질이 더 많이 분비되고 담낭 기능이 떨어지는 것. 이런 다이어트를 하는 4명 중 1명꼴로 콜레스테롤 담석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다가 금식하는 동안에는 담낭이 수축하지 않기 때문에 담석이 생길 위험이 더 커진다. 이 밖에도 고지혈증과 당뇨병도 담석이 생기는 원인 중 하나다. 평소에 과음하면 색소성 담석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는 경우 담석 발생 확률은 2배 높아진다. 따라서 수시로 담석 검사를 하는 게 좋다.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하면 담낭 담석의 90%는 발견할 수 있다. 담도 담석도 초음파 검사로 발견할 수 있지만, 관찰이 어려운 부위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해야 한다.담석 예방을 위한 생활 수칙1. 고지방, 고열량 음식을 덜 먹는다.2.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습관을 들인다.3. 비만이 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4. 적절한 운동을 일상적으로 한다.5. 과도한 다이어트나 금식은 피한다. 6. 고지혈증과 당뇨병을 예방한다. 7. 과음은 금물이다. 최대한 절주한다. 8. 여성호르몬 제제 사용 시 의사와 상의한다. 자료: 송태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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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1일 만에 100대 명산 완등 “이젠 남 부럽지 않은 건강인”[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최중섭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교수(55)는 40대 때까지만 해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본업인 의사 업무에만 전념했다. 수술이 끝나면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고 바로 쓰러져 잤다. 업무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이러니 건강이 좋을 리 없었다. 지방간이 무척 심했다. 간 건강의 척도가 되는 간 수치(AST, ALT)가 300U/L(L당 유닛)을 넘어섰다. 간 수치의 정상 범위는 최대 40U/L 정도다. 고혈압약을 먹은 후의 수축기 혈압이 140㎜Hg였다. 체중은 115㎏에 이르렀다. 초고도 비만이었다. 서 있으면 튀어나온 배에 가려 발끝을 볼 수 없었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최 교수는 “이대로 간다면 5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랬던 최 교수의 운명이 6년 전 바뀌었다. 지금은 전국의 명산을 모두 오른 ‘전문 산꾼’이 됐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산, 힘들지만 또 가고 싶어져”2017년 5월, 고교 동창회가 열렸다. 학창 시절 막역지우(莫逆之友)를 30여 년 만에 만났다.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 친구가 침샘암에 걸렸다. 최 교수는 동료 교수를 추천했고, 친구는 무사히 치료를 끝냈다. 친구가 고마워서 충고 하나 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너, 그러다가 큰일 나.” 친구는 20년 넘게 전국의 산을 다닌, ‘전문 산꾼’이었다. 그는 최 교수를 북한산으로 데리고 갔다.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세 명이 해발 400여 m의 영봉을 올랐다. 초보자도 2시간 이내에 오를 수 있다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최 교수는 “숨이 목까지 찼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도중에 몇 번이나 주저앉으며 포기하려 했다. 친구들이 간신히 말린 덕분에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최 교수의 첫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그날 저녁 최 교수는 끙끙 앓아누웠다. 최 교수는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뜻밖에도 이 결심은 이틀 만에 무너졌다. 산에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상에서 드러누웠을 때 얼굴을 스쳤던 바람이며,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풀의 향기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친구가 다시 주말 산행을 제의했다. 최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자”고 했다. 불암산으로 두 번째 산행을 떠났다. 이번에도 힘들었다. 최 교수는 “내가 미쳤지. 다시는 산에 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산에 올랐다. ● 2년 만에 100대 명산 오르다며칠이 지나면 산이 궁금해지고, 막상 산에 오르면 후회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토요일에 산에 가면 일요일에는 온종일 끙끙대며 누워있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점차 산에 가는 횟수가 늘었다. 주로 수도권에 있는 낮은 산을 다녔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정말로’ 산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최 교수는 “이때부터는 산에 오를 때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퇴근하다가 방향을 바꿔 산으로 가기도 했다. 혼자 산행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서너 명의 고교 동창생과 함께 다녔다. 이 무렵부터는 지방에 있는 산을 찾아다녔다. 보통은 토요일 새벽에 모여 승용차 한 대로 지방으로 향했다. 4시간 남짓 이동한 뒤 첫 번째 산에 올랐다. 해가 질 무렵 하산하고 근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상경하다가 두 번째 산을 올랐다. 최 교수는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 일요일 늦은 밤에 집에 도착하는 게 거의 일상이 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아웃도어 업체의 등산 애플리케이션을 알게 됐다. 전국의 명산 100개를 등산할 때마다 스탬프로 인증하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최 교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2021년 3월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미 다녔던 산이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올랐다. 풍경과 느낌이 또 다르게 다가왔다. 되도록이면 매주 두 곳의 산을 올랐다. 어떨 때는 일주일에 세 개의 산을 오르기도 했다. 올 6월,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의 가야산을 오름으로써 전국의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꼬박 841일 걸렸다.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최 교수는 “산은 다시 올라도 느낌이 다르다. 그 산을 다시 하나씩 오를 생각”이라며 웃었다. 그동안 다녔던 산 중에서 가장 아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단다. 최 교수는 “설악산 공룡능선 코스는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힘들기도 하지만 치명적일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 1년 산행, 몸이 가뿐해졌다산행하다 보니 저절로 건강 관리가 됐다. 산행을 시작하고 딱 1년 만에 간 수치가 완벽히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세 자리였던 체중은 88㎏까지 떨어졌다. 오히려 급격하게 체중이 빠지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최 교수는 “체중이 많이 빠지니 당장 수술하는데 체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체중 감량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 무렵 병원 회식이 있었다. 대리운전 서비스를 신청하고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회식 장소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15분 거리. 경사가 워낙 가팔라서 평소에도 별로 걷던 구역이 아니었다. 최 교수는 “후배와 이야기하면서 올라갔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후배들이 오히려 뒤처졌다”라고 했다. 이후 최 교수가 달라졌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 보니 6개 층까지는 전혀 헉헉대지 않았다. 수술을 앞두고는 일부러 병원 밖 커피 맛집에 가서 커피를 사 오기도 했다. 이제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면 발끝이 보였다. 다시 1년이 지나자 모든 건강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고혈압 가족력이 있었다. 약을 먹어도 혈압은 140㎜Hg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110㎜Hg까지 떨어졌다. 틈틈이 퇴근 후에 집 근처 양재천 산책길도 걷는다. 최 교수는 “운동이 습관이 되다 보니 밥맛이 너무 좋아졌다. 살찔까 봐 걱정”이라며 웃었다. ● 무릎 근육 보호하려 틈틈이 운동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산에 오르면 무릎이 다칠 수 있다. 최 교수도 그랬다. 1년 6개월 만에 무릎 통증이 나타났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실제로 관절 손상이 확인됐다. 최 교수는 재활의학과 의사인 동생에게 해법을 물었다. 동생은 무릎 관절 주변 근육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 조언에 따라 연구실에 무릎 운동 기구를 들여놓고 매일 100회씩 꾸준히 운동했다. 종아리 근육 운동도 추가했다. 최 교수는 “특히 하산할 때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이 평지의 4배 정도는 된다. 종아리 근육이 강해야 부상이 안 생긴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최 교수는 연구실에서 최소한 100회 이상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닌다. 이 동작이 종아리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 이 재활 훈련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무릎 통증이 크게 줄었다. 이후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한 결과 2개월 만에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최 교수는 “친구들이 특효 주사 맞았느냐고 묻더라. 재활 훈련만 충실히 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 밖에 코어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가방을 메고 다닌다. 가방에는 얼린 물병 6개 정도를 넣는다. 이 경우 가방 무게는 최대 20㎏ 정도가 된다. 배낭이 무거워지면 코어 근육에 그만큼 힘을 더 주게 된다. 최 교수는 “생활 속에서 근력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일부러 팔굽혀펴기와 같은 운동을 하면 오히려 무리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재활 훈련을 하면서까지 산에 다니는 이유가 뭘까. 최 교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좋다”라고 했다. 그는 이를 ‘건강한 중독’이라 표현했다. 물론 지금도 산에 오르는 순간에는 힘이 들고 숨도 찬다. 그런데도 한 주일이 시작되면 주말 산행부터 떠올리는 것은, 산의 향기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등산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단다. “속도 경쟁은 하지 마세요. 천천히 산에 올라야 부상의 우려도 적습니다. 또 입산 금지 구역에는 가지 말고, 공중도덕은 지켜주세요. 그래야 모든 사람이 쾌적하게 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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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 안되고 복부 팽만감… 심장병일 수 있어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채순분 씨(68)는 젊었을 때부터 체한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러다가 10년 전에는 처음으로 조금 심한 소화 불량 증세를 경험했다. 간혹 동네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심장 판막증의 초기 증세였다. 판막에 이상이 생겨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물론 채 씨는 그런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심장 질환이 있으면 흉통이나 호흡곤란을 떠올린다. 채 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채 씨의 심장 수술을 집도한 유재석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그 경우는심장 판막증이 많이 진행돼 심부전 증세가 나타나는 상태”라고 했다. 오히려 심장 판막증 초기에는 복부 팽만감이나 소화 불량 등 얼핏 보면 소화기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채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년 전에야 심부전, 심장 판막증, 심장세동, 대형 혈전 등을 최종 진단받았다. 그러니까 최초 증세가 나타나고 8년이 지난 후에야 정확한 진단이 이뤄진 것이다. ●8년 만에 심장 질환 판정채 씨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심장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다. 음식만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다. 물만 먹어도 체하는 느낌이 강해졌다. 복부 팽만감도 나타났다. 명치 부위가 꽉 막히고 살짝 숨이 차는 느낌도 생겼다. 피로감도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채 씨는 이 모든 증세의 원인이 심장 판막증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유 교수는 “심장으로 혈액이 들어가는 판막에 손상이 생기면 복부 팽만감이 나타난다. 또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혈액이 전신으로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8년 정도가 흘러갔다. 2021년 초, 갑자기 복통이 시작됐다. 근처 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의료진은 소화기 계통의 약을 처방해줬다.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추가로 심장 검사를 진행했다. 심부전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료진은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그해 4월, 채 씨는 A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 심부전 진단이 떨어졌다. 추가로 X레이 검사에서 심장이 커져 있는 점이 확인됐다. 심장 비대증이다. 심장이 붓기 시작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보통은 이때부터 몸이 붓는 증세도 생긴다. 채 씨도 그랬다. 종아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튀어나오지 않고 눌린 자국 그대로 남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초대형 혈전 발견그해 12월 전후로 증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무엇보다 숨이 차는 증세가 심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가파르지 않은 평지인데도 5분을 걷지 못했다. 도중에 꼭 쉬어야 했다. 담벼락이 있으면 손바닥으로 짚고 걸어갔다. 유 교수는 “심부전이 상당히 진행돼서 나타나는 증세”라고 말했다. 얼마 후 채 씨는 B 대학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심전도와 심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심부전, 판막증, 심방세동의 진단이 떨어졌다. 특히 판막의 손상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좌심방에서 큰 혈전이 발견됐다.의료진은 일단 약물을 처방했다. 놀랍게도 숨찬 증세가 개선됐다. 채 씨는 “약물만으로 완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물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다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유 교수는 “이뇨제 성분의 약물은 염분과 수분을 배출시켜 일시적으로 심장의 떨어진 기능을 보완할 수 있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B 병원 의료진은 이미 수술 시기를 넘겼고, 따라서 판막 수술만으로는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의료진은 채 씨에게 인공심장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일반적으로 인공심장 수술은 심장이식 전 단계에 행하는 치료법으로 여겨진다. 채 씨는 앞이 캄캄해졌다. ●정확한 진단-1회 수술로 해결채 씨는 혹시 대안이 있을까 해서 다른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진료를 받게 된 의사가 강도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다. 채 씨는 “교수님이 ‘인공심장 안 하고도 살릴 수 있다’라고 말했을 때 병과 싸울 용기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채 씨는 이어 “환자들에게 의사의 격려와 확신은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밀 검사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심부전은 예상대로 심한 상태였다. 심장 크기가 가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게 정상인데, 채 씨는 60% 정도였다. 이러니 심장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심장 안에 있는 혈전의 크기는 2㎝에 이르렀다. 수술을 집도한 유 교수는 특히 혈전에 주목했다. 혈전이 심장에서 떨어지면 혈관을 타고 전신 어디로든 흘러가 치명적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것이다. 그 혈관이 뇌를 막으면 뇌졸중이 된다. 장 혈관을 막아버리면 장이 썩기 시작한다. 이때 복통이 나타날 수 있다. 일단 혈전이 떨어져 나가면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 교수는 “혈전의 크기가 5㎜만 돼도 위험한데, 채 씨의 경우 4배에 이르는 크기였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유 교수가 협의한 끝에 최종 수술 범위가 결정됐다. 이어 2월 수술이 진행됐다. 병든 판막(승모판막)은 인공 판막으로 교체했다. 늘어난 판막(삼첨판막)은 성형을 통해 줄였다. 심방세동(심방에 불규칙하게 잔 떨림이 나타나는 병)은 냉각 소작기로 불필요한 미세혈관을 냉동함으로써 해결했다. 대형 혈전은 완전히 긁어냈다. 과거에는 이런 수술을 하려면, 가슴뼈를 절단해야 했다. 채 씨의 경우 옆구리 상단 갈비뼈 사이로 3~4㎝만 절개했다. 3차원 내시경을 삽입해 수술을 진행했다. 이 모든 수술에 3시간 반가량 소요됐다. 가슴뼈를 절단할 경우 아무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채 씨는 뼈를 절개하지 않기 때문에 염증 우려도 적고, 상처가 아무는 기간도 크게 줄어들었다. 통증도 적었다. 채 씨는 회복 기간 중에 ‘무통 주사’라 부르는 일종의 진통제도 거의 쓰지 않았다. 게다가 수술 후 10일 만에 퇴원했다. 간병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걸리는 바람에 1인실에 격리되지 않았다면 더 일찍 퇴원할 수 있었다. ●“숨찬 증세 완벽히 사라져”앞으로 채 씨는 평생 ‘와파린’ 성분의 약을 먹어야 한다. 와파린은 혈액 응고를 막음으로써 혈전의 생성을 억제한다. 외부에서 균이 침투할 경우 인공 판막이 감염될 위험도 남아있다. 만약 감염이 발생하면 인공 판막을 교체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판막 수술을 한 환자들은 3개월마다 와파린의 양과 판막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또 혈액 응고를 돕는 비타민K의 함량이 높은 바나나, 청국장, 시금치 등의 음식은 피해야 한다. 2년 정도가 지나면 심장 초음파 검사로 전반적인 상황을 살핀다. 채 씨도 3개월마다 혈액 검사 등을 통해 몸 상태를 살피고 있다. 물론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는다. 수술 후에 어떻게 달라졌을까. 퇴원하고 1주일 동안은 기침이 많이 나왔다. 일종의 수술 후유증인데, 1주일 만에 거의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전철을 타고 시내를 활보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숨찬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채 씨는 “약간만 걸어도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아무런 제약 없이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체한 증상도 없어졌다. 덕분에 예전에는 밥 반 공기를 간신히 먹었는데 요즘에는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피로감도 사라졌다. 덕분에 요즘에는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채 씨는 집에 실내 자전거를 두고 매일 40~50분 동안 탄다. 이제는 산에 오르고 싶단다. 가능할까. 이에 대해 유 교수는 “근력 운동이든 산행이든 상관없다. 다만 출혈이 있으면 피가 잘 안 멎을 수 있다. 상처가 나지 않게, 넘어지지 않게만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채순분 씨의 심장 질환 투병 일지2013년 소화불량 증세 처음 발생(심장 판막 질환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2013~2021년 심부전, 판막질환 등 심장 질환 악화2021년 초 갑작스런 복통(심작 판막 질환이 원인)위-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원인 못찾음 추가 심장 검사에서 심부전 의심 소견2021년 4월 A 대학병원 진료. 심부전 진단 X레이 검사에서 심장비대증 추가로 확인 2021년 가을 숨찬 증세 급격히 악화. 걷기도 힘들어짐.2021년 12월 B 대학병원 진료심부전, 심장비대증, 심방세동 진단 및 혈전 발견 약물 처방. 일시적 호전2022년 1월 B 대학병원 인공심장 수술 권유 서울아산병원, 인공심장 수술 대신 긴급 판막 수술 결정 2022년 2월 판막교체 및 성형, 심방세동, 혈전제거 수술 동시 시행2023년 10월 현재 완치 상태. 3개월마다 건강 상태 체크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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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 안되고 복부 팽만감… 심장병일 수 있어요” [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채순분 씨(68)는 젊었을 때부터 체한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러다가 10년 전에는 처음으로 조금 심한 소화 불량 증세를 경험했다. 간혹 동네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심장 판막증의 초기 증세였다. 판막에 이상이 생겨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물론 채 씨는 그런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심장 질환이 있으면 흉통이나 호흡곤란을 떠올린다. 채 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채 씨의 심장 수술을 집도한 유재석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그 경우는 심장 판막증이 많이 진행돼 심부전 증세가 나타나는 상태”라고 했다. 오히려 심장 판막증 초기에는 복부 팽만감이나 소화 불량 등 얼핏 보면 소화기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채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년 전에야 심부전, 심장 판막증, 심장세동, 대형 혈전 등을 최종 진단받았다. 그러니까 최초 증세가 나타나고 8년이 지난 후에야 정확한 진단이 이뤄진 것이다. ● 8년 만에 심장 질환 판정채 씨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심장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다. 음식만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다. 물만 먹어도 체하는 느낌이 강해졌다. 복부 팽만감도 나타났다. 명치 부위가 꽉 막히고 살짝 숨이 차는 느낌도 생겼다. 피로감도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채 씨는 이 모든 증세의 원인이 심장 판막증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유 교수는 “심장으로 혈액이 들어가는 판막에 손상이 생기면 복부 팽만감이 나타난다. 또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혈액이 전신으로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8년 정도가 흘러갔다. 2021년 초, 갑자기 복통이 시작됐다. 근처 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의료진은 소화기 계통의 약을 처방해 줬다.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추가로 심장 검사를 진행했다. 심부전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료진은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그해 4월, 채 씨는 A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 심부전 진단이 떨어졌다. 추가로 X레이 검사에서 심장이 커져 있는 점이 확인됐다. 심장 비대증이었다. 심장이 붓기 시작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보통은 이때부터 몸이 붓는 증세도 생긴다. 채 씨도 그랬다. 종아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튀어나오지 않고 눌린 자국 그대로 남기 시작했다. ● 심장에서 초대형 혈전 발견그해 12월 전후로 증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무엇보다 숨이 차는 증세가 심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가파르지 않은 평지인데도 5분을 걷지 못했다. 도중에 꼭 쉬어야 했다. 담벼락이 있으면 손바닥으로 짚고 걸어갔다. 유 교수는 “심부전이 상당히 진행돼서 나타나는 증세”라고 말했다. 얼마 후 채 씨는 B대학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심전도와 심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심부전, 판막증, 심방세동의 진단이 떨어졌다. 특히 판막의 손상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좌심방에서 큰 혈전이 발견됐다. 의료진은 일단 약물을 처방했다. 놀랍게도 숨찬 증세가 개선됐다. 채 씨는 “약물만으로 완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물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유 교수는 “이뇨제 성분의 약물은 염분과 수분을 배출시켜 일시적으로 심장의 떨어진 기능을 보완할 수 있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B병원 의료진은 이미 수술 시기를 넘겼고, 따라서 판막 수술만으로는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의료진은 채 씨에게 인공심장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일반적으로 인공심장 수술은 심장이식 전 단계에 행하는 치료법으로 여겨진다. 채 씨는 앞이 캄캄해졌다. ● 정확한 진단-1회 수술로 해결채 씨는 혹시 대안이 있을까 해서 다른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진료를 받게 된 의사가 강도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다. 채 씨는 “교수님이 ‘인공심장 안 하고도 살릴 수 있다’라고 말했을 때 병과 싸울 용기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채 씨는 이어 “환자들에게 의사의 격려와 확신은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밀검사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심부전은 예상대로 심한 상태였다. 심장 크기가 가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게 정상인데, 채 씨는 60% 정도였다. 이러니 심장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심장 안에 있는 혈전의 크기는 2㎝에 이르렀다. 수술을 집도한 유 교수는 특히 혈전에 주목했다. 혈전이 심장에서 떨어지면 혈관을 타고 전신 어디로든 흘러가 치명적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것이다. 그 혈관이 뇌를 막으면 뇌중풍(뇌졸중)이 된다. 장 혈관을 막아버리면 장이 썩기 시작한다. 이때 복통이 나타날 수 있다. 일단 혈전이 떨어져 나가면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 교수는 “혈전의 크기가 5㎜만 돼도 위험한데, 채 씨의 경우 4배에 이르는 크기였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유 교수가 협의한 끝에 최종 수술 범위가 결정됐다. 이어 2월 수술이 진행됐다. 병든 판막(승모판막)은 인공판막으로 교체했다. 늘어난 판막(삼첨판막)은 성형을 통해 줄였다. 심방세동(심방에 불규칙하게 잔떨림이 나타나는 병)은 냉각 소작기로 불필요한 미세혈관을 냉동함으로써 해결했다. 대형 혈전은 완전히 긁어냈다. 과거에는 이런 수술을 하려면, 가슴뼈를 절단해야 했다. 채 씨의 경우 옆구리 상단 갈비뼈 사이로 3∼4㎝만 절개했다. 3차원 내시경을 삽입해 수술을 진행했다. 이 모든 수술에 3시간 반가량 소요됐다. 가슴뼈를 절단할 경우 아무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채 씨는 뼈를 절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증 우려도 적고, 상처가 아무는 기간도 크게 줄어들었다. 통증도 적었다. 채 씨는 회복 기간에 ‘무통 주사’라 부르는 일종의 진통제도 거의 쓰지 않았다. 게다가 수술 후 10일 만에 퇴원했다. 간병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는 바람에 1인실에 격리되지 않았다면 더 일찍 퇴원할 수 있었다. ● “숨찬 증세 완벽히 사라져”앞으로 채 씨는 평생 ‘와파린’ 성분의 약을 먹어야 한다. 와파린은 혈액 응고를 막음으로써 혈전의 생성을 억제한다. 외부에서 균이 침투할 경우 인공판막이 감염될 위험도 남아있다. 만약 감염이 발생하면 인공판막을 교체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판막 수술을 한 환자들은 3개월마다 와파린의 양과 판막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또 혈액 응고를 돕는 비타민K의 함량이 높은 바나나, 청국장, 시금치 등의 음식은 피해야 한다. 2년 정도가 지나면 심장 초음파 검사로 전반적인 상황을 살핀다. 채 씨도 3개월마다 혈액 검사 등을 통해 몸 상태를 살피고 있다. 물론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는다. 수술 후에 어떻게 달라졌을까. 퇴원하고 1주일 동안은 기침이 많이 나왔다. 일종의 수술 후유증인데, 1주일 만에 거의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전철을 타고 시내를 활보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숨찬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채 씨는 “약간만 걸어도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아무런 제약 없이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체한 증상도 없어졌다. 예전에는 밥 반 공기를 간신히 먹었는데 요즘에는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피로감도 사라졌다. 덕분에 요즘에는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채 씨는 집에 실내 자전거를 두고 매일 40∼50분 동안 탄다. 이제는 산에 오르고 싶단다. 가능할까. 이에 대해 유 교수는 “근력 운동이든 산행이든 상관없다. 다만 출혈이 있으면 피가 잘 안 멎을 수 있다. 상처가 나지 않게, 넘어지지 않게만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채순분 씨의 심장 질환 투병 일지2013년 소화불량 증세 처음 발생(심장 판막 질환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2013∼2021년 심부전, 판막 질환 등 심장 질환 악화2021년 초 갑작스러운 복통(심장 판막 질환이 원인)위-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원인 못 찾음추가 심장 검사에서 심부전 의심 소견2021년 4월 A대학병원 진료. 심부전 진단X레이 검사에서 심장비대증 추가로 확인 2021년 가을 숨찬 증세 급격히 악화. 걷기도 힘들어짐.2021년 12월 B대학병원 진료심부전, 심장판막증, 심방세동 진단 및 혈전 발견 약물 처방. 일시적 호전2022년 1월B대학병원 인공심장 수술 권유서울아산병원, 인공심장 수술 대신 긴급 판막 수술 결정 2022년 2월 판막 교체 및 성형, 심방세동, 혈전 제거 수술 동시 시행2023년 10월 현재 완치 상태. 3개월마다 건강 상태 체크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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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산 잘 못하고 식욕 떨어진 부모님, 우울증일 수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70대 부부가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찾아왔다. 아내 A 씨의 치매 여부를 알기 위해서다. 남편 B 씨가 보기에 아내 A 씨는 치매 초기였다. 최근 들어 A 씨가 자주 깜빡깜빡한다는 것이다. 냉장고에 뭘 집어넣었는지 까먹는 일도 많아졌고, 음식을 태우는 횟수도 늘어났다고 했다. 아내 A 씨도 자신이 치매 초기가 아닐까 걱정이 되던 차였다. A 씨는 남편에게 병원에 가 보자고 했고, 이날 부부가 함께 상담을 받은 것이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와 혈액 검사 결과 아내 A 씨에게서 치매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A 씨는 노인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오히려 치매 판정은 남편 B 씨에게 떨어졌다. B 씨가 평소 치매로 의심될 만한 증세를 보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진단이 떨어진 걸까. 전 교수는 “이 부부처럼 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이고, 아무런 증세도 없는데 치매 판정이 나오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문제는, 병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울증 환자가 치매 치료제를 먹는다고 해서 증세는 개선되지 않는다. 이 부부의 경우 아내 A 씨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 후 증세가 크게 개선됐다. 남편 B 씨도 초기에 치매를 발견함으로써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 우울증일까? 치매일까?노인 우울증인지 치매인지는 뇌 MRI 검사를 받으면 알 수 있다. 뇌의 해마와 측두엽 부위가 위축돼 있다면 치매 초기다. 그런 조짐이 없다면 치매일 가능성은 다소 낮다. 우울증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이 부부의 경우 치매로 의심되던 아내 A 씨는 뇌의 상태가 건강했다. 반면 남편 B 씨는 해마가 위축돼 있었다. 이 때문에 B 씨에게만 치매 판정이 떨어진 것이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두 질병을 구분할 수 없을까. 전 교수는 “노인 우울증과 치매를 두부 자르듯이 정확히 구분하긴 쉽지 않다. 다만 증세를 세심하게 살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단 우울증이라면 걱정이 많아지는 특징이 있다. 특히 ‘내가 치매가 아닐까’라는 식의 걱정을 자주 한다. 전 교수는 “우울증과 치매 증세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매라고 자가진단을 내리면서 걱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걱정 때문에 본인이 직접 병원을 찾아 치매 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치매인 경우는 정반대다. 자신이 치매 혹은 인지장애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병원에 모시고 와서 치매 확진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은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둘째, 방향감각에서 차이가 난다. 치매에 걸리면 길이 헷갈린다. 목적지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반면 우울증이라면 길을 찾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목적지까지 잘 찾아간다면 치매보다는 우울증에 가깝다. 그 대신 우울증의 경우 더하기와 빼기 같은 계산 분야에서 집중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셋째, 기억력이 떨어지는 양상이 다르다. 치매는 대체로 오래전의 일은 기억하면서도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 예전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향도 있다. 반면 우울증은 시간보다는 감정에 더 연결돼 있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기억 중에 특히 아프고 슬픈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린다. 이런 게 반복되면 우울증은 더 심해진다. ● 젊은 우울증과 중년 우울증우울증에 걸리면 당연히 우울한 느낌이 강해진다. 하지만 다른 증세도 나타난다. 전 교수는 “나이에 따라 우울증이 발현되는 방식은 다르다”고 했다. 그 차이를 알아두는 게 좋다. 10대와 20대의 ‘젊은 우울증’은 감정 기복이 심한 게 특징이다. 타인의 말투나 표정에 예민하고, 마음의 상처도 잘 생긴다. 밤에 뇌가 각성하면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 주로 밤에 먹으며, 폭식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학교나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젊은 우울증의 경우 초기에는 자각하지 못하다가 중간 단계 이후 우울함을 느낀다. 이때부터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같고,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집 안에 자신을 가두는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40대 이후의 ‘중년 우울증’ 양상은 다소 다르다.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우울한 느낌이 강하고 의욕도 크게 떨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을 때가 많다. 젊은 우울증과 달리 식욕이 떨어져 먹는 것도 변변찮다. 대체로 오전에 증세가 심하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호르몬(코르티솔)의 분비량이 오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회사원은 오전 출근을, 주부는 오전 가사 노동을 무척 힘들어한다. 중년 우울증의 또 다른 특징은 ‘건강 염려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신체 증세의 원인을 찾지 못하니 중병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사실 우울증에 걸리면 나이에 상관없이 두통, 통증, 전신 쇠약감, 가슴 답답함, 미세한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젊은 나이에는 육체적으로 건강한 덕분에 이런 증세를 덜 느낄 뿐이다. ● 노인 우울증, 신체 증세 많아노인 우울증은 ‘신체화’의 경향이 강하다. 만성 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에 따라 두통, 요통, 전신 통증이 많이 나타난다. 이를 전 교수는 “슬픈 기운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세도 다른 연령대보다 심하다. 식욕이 떨어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바람에 폐렴과 같은 2차 합병증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우울증과 함께 불면증이 심해지는 점도 노인 우울증의 큰 특징이다. 변덕이 심해진다. 갑자기 화를 버럭 내거나 짜증을 낼 때도 많다. 같은 말을 반복할 수도 있다. 이런 증세는 치매 초기와 비슷해 세심하게 관찰하거나 검사가 필요하다. 건강염려증도 노인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세다. 신체 증세가 나타나니까 병원을 찾아다니고, 약을 찾아 먹는다. 주관적으로 실제 통증보다 과하게 느끼는 경향도 강하다. 진통제도 더 많이 먹는다. 하지만 통증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운동하는 것도 싫어진다. 나중에는 밖에 나가기도 싫고, 실제로 나가지도 못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우울증이 치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년 때까지 우울 증세가 전혀 없다가 노인으로 접어든 후에 우울증이 생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 교수는 “치매 환자의 30% 정도에서 우울증이 함께 나타난다”고 말했다.● 부모 상태 2주마다 살펴야전 교수에 따르면 국내 노인 100명 중 5∼10명은 우울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치료받는 환자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방치돼 있는 셈이다. 전 교수는 “혼자 사는 노인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각지대’가 생기는 셈”이라며 “노인들은 우울증이 생겨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들의 역할이 무척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식들이 정기적으로 부모 상태를 살펴야 한다. 전 교수는 “2주마다 한 번씩은 전화나 직접 방문을 통해 부모님의 증세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의욕 저하 △기억력 저하 △불면증 △식욕부진 등 네 가지 증세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런 증세가 2주 동안 일관되게 나타났거나 더 심해졌다면 노인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치매의 경우 불면증이나 식욕부진 증세는 비교적 덜한 편이다. 다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에는 식욕부진을 동반할 수 있다. 체중 변화도 살펴야 한다. 노인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이 떨어지면서 만사에 흥미가 떨어진다. 집 밖에도 잘 나가려 하지 않는데 먹는 것마저 부실해서 체중이 빠질 수밖에 없다. 전 교수는 “우울증 초기에는 대략 3개월 사이에 체중이 5∼10㎏ 정도가 빠진다. 이 점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노인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면 대략 2∼4주 후부터 의욕이 살아난다. 다만 젊은 우울증과 비교했을 때 치료 기간은 긴 편이다. 전 교수는 “최소한 6개월, 보통은 1∼2년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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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산 잘 못하고 식욕 떨어진 부모님, 우울증일 수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70대 부부가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찾아왔다. 아내 A 씨의 치매 여부를 알기 위해서다. 남편 B 씨가 보기에 아내 A 씨는 치매 초기였다. 최근 들어 A 씨가 자주 깜빡깜빡한다는 것이다. 냉장고에 뭘 집어넣었는지 까먹는 일도 많아졌고, 음식을 태우는 횟수도 늘어났다고 했다. 아내 A 씨도 자신이 치매 초기가 아닐까 걱정이 되던 차였다. A 씨는 남편에게 병원에 가 보자고 했고, 이날 부부가 함께 상담을 받은 것이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와 혈액 검사 결과 아내 A 씨에게서 치매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A 씨는 노인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오히려 치매 판정은 남편 B 씨에게 떨어졌다. B 씨가 평소 치매로 의심될 만한 증세를 보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진단이 떨어진 걸까. 전 교수는 “이 부부처럼 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이고, 아무런 증세도 없는데 치매 판정이 나오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문제는, 병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울증 환자가 치매 치료제를 먹는다고 해서 증세는 개선되지 않는다. 이 부부의 경우 아내 A 씨는 우울증약을 복용한 후 증세가 크게 개선됐다. 남편 B 씨도 초기에 치매를 발견함으로써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우울증일까? 치매일까?노인 우울증인지 치매인지는 뇌 MRI 검사를 받으면 알 수 있다. 뇌의 해마와 측두엽 부위가 위축돼 있다면 치매 초기다. 그런 조짐이 없다면 치매일 가능성은 다소 낮다. 우울증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이 부부의 경우 치매로 의심되던 아내 A 씨는 뇌의 상태가 건강했다. 반면 남편 B 씨는 해마가 위축돼 있었다. 이 때문에 B 씨에게만 치매 판정이 떨어진 것이다.병원에 가지 않으면 두 질병을 구분할 수 없을까. 전 교수는 “노인 우울증과 치매를 두부 자르듯이 정확히 구분하긴 쉽지 않다. 다만 증세를 세심하게 살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단 우울증이라면 걱정이 많아지는 특징이 있다. 특히 ‘내가 치매가 아닐까’라는 식의 걱정을 자주 한다. 전 교수는 “우울증과 치매 증세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매라고 자가진단을 내리면서 걱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걱정 때문에 본인이 직접 병원을 찾아 치매 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치매인 경우는 정반대다. 자신이 치매 혹은 인지장애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병원에 모시고 와서 치매 확진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은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둘째, 방향 감각에서 차이가 난다. 치매에 걸렸다면 길을 헷갈린다. 목적지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반면 우울증이라면 길을 찾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목적지까지 잘 찾아간다면 치매보다는 우울증에 가깝다. 그 대신 우울증의 경우 더하기와 빼기 같은 계산 분야에서 집중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셋째, 기억력이 떨어지는 양상이 다르다. 치매는 대체로 오래전의 일은 기억하면서도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 예전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향도 있다. 반면 우울증은 시간보다는 감정에 더 연결돼 있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기억 중에 특히 아프고 슬픈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린다. 이런 게 반복되면 우울증은 더 심해진다. ●젊은 우울증과 중년 우울증우울증에 걸리면 당연히 우울한 느낌이 강해진다. 하지만 다른 증세도 나타난다. 전 교수는 “나이에 따라 우울증이 발현되는 방식은 다르다”고 했다. 그 차이를 알아두는 게 좋다. 10대와 20대의 ‘젊은 우울증’은 감정 기복이 심한 게 특징이다. 타인의 말투나 표정에 예민하고, 마음의 상처도 잘 생긴다. 밤에 뇌가 각성하면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 주로 밤에 먹으며, 폭식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학교나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젊은 우울증의 경우 초기에는 자각하지 못하다가 중간 단계 이후 우울함을 느낀다. 이때부터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같고,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집안에 자신을 가두는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40대 이후의 ‘중년 우울증’ 양상은 다소 다르다.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우울한 느낌이 강하고 의욕도 크게 떨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을 때가 많다. 젊은 우울증과 달리 식욕이 떨어져 먹는 것도 변변찮다. 대체로 오전에 증세가 심하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호르몬(코르티솔)의 분비량이 오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회사원은 오전 출근을, 주부는 오전 가사 노동을 무척 힘들어한다. 중년 우울증의 또 다른 특징은 ‘건강 염려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신체 증세의 원인을 찾지 못하니 중병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사실 우울증에 걸리면 나이에 상관없이 두통, 통증, 전신 쇠약감, 가슴 답답함, 미세한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젊은 나이에는 육체적으로 건강한 덕분에 이런 증세를 덜 느낄 뿐이다. ●노인 우울증, 신체 증세 많아노인 우울증은 ‘신체화’의 경향이 강하다. 만성 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에 따라 두통, 요통, 전신 통증이 많이 나타난다. 이를 전 교수는 “슬픈 기운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 표현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세도 다른 연령대보다 심하다. 식욕이 떨어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바람에 폐렴과 같은 2차 합병증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우울증과 함께 불면증이 심해지는 점도 노인 우울증의 큰 특징이다. 변덕이 심해진다. 갑자기 화를 버럭 내거나 짜증을 낼 때도 많다. 같은 말을 반복할 수도 있다. 이런 증세는 치매 초기와 비슷해 세심하게 관찰하거나 검사가 필요하다. 건강염려증도 노인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세다. 신체 증세가 나타나니까 병원을 찾아다니고, 약을 찾아 먹는다. 주관적으로 실제 통증보다 과하게 느끼는 경향도 강하다. 진통제도 더 많이 먹는다. 하지만 통증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운동하는 것도 싫어진다. 나중에는 밖에 나가기도 싫고, 실제로 나가지도 못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우울증이 치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년 때까지 우울 증세가 전혀 없다가 노인으로 접어든 후에 우울증이 생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 교수는 “치매 환자의 30% 정도에서 우울증이 함께 나타난다”고 말했다.●부모 상태 2주마다 살펴야전 교수에 따르면 국내 노인 100명 중 5~10명은 우울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치료받는 환자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방치돼있는 셈이다. 전 교수는 “혼자 사는 노인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각지대’가 생기는 셈”이라며 “노인들은 우울증이 생겨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들의 역할이 무척 크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식들이 정기적으로 부모 상태를 살펴야 한다. 전 교수는 “2주마다 한 번씩은 전화나 직접 방문을 통해 부모님의 증세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의욕 저하 △기억력 저하 △불면증 △식욕부진 등 네 가지 증세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런 증세가 2주 동안 일관되게 나타났거나 더 심해졌다면 노인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치매의 경우 불면증이나 식욕부진 증세는 비교적 덜한 편이다. 다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에는 식욕부진을 동반할 수 있다. 체중 변화도 살펴야 한다. 노인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이 떨어지면서 만사에 흥미가 떨어진다. 집 밖에도 잘 나가려 하지 않는데 먹는 것마저 부실해서 체중이 빠질 수밖에 없다. 전 교수는 “우울증 초기에는 대략 3개월 사이에 체중이 5~10㎏ 정도가 빠진다. 이 점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노인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면 대략 2~4주 후부터 의욕이 살아난다. 다만 젊은 우울증과 비교했을 때 치료 기간은 긴 편이다. 전 교수는 “최소한 6개월, 보통은 1~2년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 우울증 예방을 위한 지침1. 고립이 우울증을 키운다. 사람들과 어울리자.2. ‘나 홀로 식사’는 줄이고, 2인 이상 식사를 하자.3.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잘 관리하자.4. 의욕 저하를 막기 위해 평소 활동량을 늘리자.5. 노인에게 근력은 필수. 근력 운동을 꼭 하자.6. 자식들은 2주마다 부모님 상태를 체크하자.자료 :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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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은 습관… 평일엔 자전거 출퇴근, 주말엔 조정”[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김성환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48)는 키가 190cm에 이르는 거구다. 얼핏 보기에도 건강해 보인다. 실제로 질병을 의심할 만한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40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한 적이 거의 없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말 등산을 하는 게 전부였다. 교수 대부분이 즐기는 골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운동에 푹 빠져 산다.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종목도 한둘이 아니다. 김 교수는 기자와 인터뷰하고 나서야 자신이 그토록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운동이 재미있고 하나씩 늘리다 보니 생활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주 2회 이상 미니벨로 타고 출퇴근김 교수는 집에서 병원까지 11km의 거리를 종종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그날 저녁 약속이 있으면 자전거 퇴근은 다음 날로 미룬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주 2회 이상 자전거 출퇴근을 지킨다. 매주 44km 이상 자전거 출퇴근을 하는 셈이다. 자전거는 7년 전에 처음 탔다. 당시 영국에서 연수 중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없었다. 자전거를 장만했다. 그 후로 매일 20여 분씩 자전거로 통학했다. 딱 한 달 만에 체중이 11kg 줄었다. 허리띠 몇 칸을 더 졸라매야 했다. 얼굴이 반쪽이 됐다는 농담도 들었다. 그래도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일단 가벼웠다. 아침에도 저절로 일찍 눈이 떠졌다. 김 교수는 “누구든 한 달만 꾸준히, 제대로 자전거를 타면 이런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전거를 들고 귀국했다.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려봤다. 한강 풍경이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다. 운동도 하고, 풍경도 즐길 겸해서 자전거 출퇴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자전거 출퇴근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의 자전거는 ‘미니벨로’ 모델이다. 몸체가 작다. 속도를 올릴 수 있는 기어도 3단에 불과하다. 먼 거리를 가려면 그만큼 힘이 더 든다. 그런데도 그 자전거를 택한 것은 접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페달이 빡빡하면 근력 운동 효과가 커지고, 접을 수 있으면 어디든 들고 다니며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김 교수는 주말에는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가족들과 서울 시내 여러 곳을 다녔다. 날을 잡아서 강원 속초시에 가서 탄 적도 있다. 제주도로 건너가 해안가를 달리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조정, 나이 상관없이 즐길 수 있어”약 5년 전 김 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조정을 시작했다. 선배의 제안으로 조정 동호회를 꾸렸다. 주말마다 오전 6시부터 2∼3시간씩 미사리 조정 경기장에서 훈련했다. 조정 경기장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주말 자전거 타는 횟수가 줄었다. 그래도 조정을 못 하는 날에는 다시 자전거를 탔다. 그러다 보니 주말 이틀 내내 운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운동량이 더 늘어났다. 김 교수는 “오전에 운동을 끝내기 때문에 오후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며 웃었다. 조정 보트는 1인용, 2인용, 4인용, 8인용이 있다. 김 교수는 주로 2인용과 4인용 보트를 탄다. 혼자 균형을 잡아야 하는 1인용의 난도가 가장 높다. 언젠가 1인용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곧 물에 빠지고 말았다. 김 교수는 좀 더 훈련해서 1인용 보트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김 교수는 조정이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의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전신운동이라고 했다. 얼핏 보면 팔로 노 젓는 동작만 보이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 발로 보트 밑바닥을 밀면서 몸통에 힘을 줘야 한다. 또 노를 끌어당길 때는 허리를 펴야 한다. 상체를 비트는 동작이 없어 척추에도 무리가 가지 않는다. 양쪽 팔과 다리를 모두 쓰기 때문에 평형감을 키우기에도 좋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힘든 운동도 아니란다. 김 교수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보니 70대와 80대는 흔하고 90대 노인도 있었다. 자기 체력에 맞게 조절하면 조정은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조정 운동의 장점은 또 있다. 김 교수는 “확 트인 공간에서 보트를 타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트 장만 비용은 부담일 수 있다. 보트를 대여해주는 업체가 없어 직접 구매해야 한다. 김 교수가 속한 동호회도 회원들이 회비를 내서 중고 보트를 샀다. ● “달리기와 등산은 신중하게”3년 전부터 달리기도 시작해 지금까지 10km 마라톤 대회를 6회 나갔다. 김 교수는 달리기를 무척 좋은 운동으로 평가했다. 운동량이 많고, 땀을 통해 노폐물도 배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같은 쾌감도 느낀다. 김 교수는 요즘도 해외 학회에 가면 아침 일찍 반드시 달린다. 그런데도 김 교수는 달리기가 썩 재미 있지는 않다고 했다. 혼자 달리는 게 외로운 운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마라톤 대회에도 동료들이 함께 있었으니 출전한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 점은 자전거와 다르단다. 자전거는 자기 체력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며 풍광도 즐겨야 하기에 혼자가 더 좋다는 것이다. 등산은 그가 대학생 때부터 즐겨 온 취미다. 국토 종주에 도전한 적도 있다. 해외의 유명한 산에도 몇 차례 올랐다. 히말라야산맥을 오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꿈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산에 가는 횟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나이가 들면 산행은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 자신도 언젠가 산행 중에 큰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게다가 험한 지역을 오르내리다가 잘못하면 발목이나 무릎에 큰 부상이 생길 수도 있다. 김 교수는 달리기나 등산이 키가 큰 사람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압박이 무릎에 가해지기 때문. 이런 점만 잘 보완한다면 운동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달리기는 동료가 있다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등산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위험도가 커지는 것 같아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 “나이 들수록 근력 운동 필요”김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근력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의료 기술이 좋아진 덕분에 수명은 늘었지만 삶의 질까지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근육량이 떨어지면 노인의 신체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경우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다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김 교수의 아버지와 친척이 병에 걸렸다. 그제야 자신을 돌아봤고, 근력 운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끔은 팔굽혀펴기를 하지만 그것 말고는 제대로 근력 운동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제대로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우선 자신의 근력 상태를 체크했다. 하체 근력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상체 근력은 많이 약했다. 더 건강해지려면 골고루 근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 내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헬스클럽에서 운동한다. 벤치프레스, 스쾃, 철봉 등 몸의 큰 근육과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주로 한다. 3개 혹은 4개의 기구를 12회 3세트씩 이용한다. 되도록 평일에는 매일 근력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매주 4회 정도는 헬스클럽을 찾는다. 김 교수는 “운동도 습관”이라고 했다. 운동하면 더 운동을 찾게 되고, 하지 않으면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3일 혹은 4일 정도만 운동을 중단해도 이 습관이 깨진다. 배가 나오고 허리띠의 구멍이 하나 더 밀린다. 피로감도 커진다.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라며 웃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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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은 습관… 평일엔 자전거 출퇴근, 주말엔 조정”[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김성환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48)는 키가 190㎝에 이르는 거구다. 얼핏 보기에도 건강해 보인다. 실제로 질병을 의심할 만한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40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따로 시간 내서 운동한 적이 거의 없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말 등산하는 게 전부였다. 교수 대부분이 즐기는 골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요즘에는 운동에 푹 빠져 산다.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종목도 한둘이 아니다. 김 교수는 기자와 인터뷰하고 나서야 자신이 그토록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운동이 재미있고 하나씩 늘리다 보니 생활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주 2회 이상 미니벨로 타고 출퇴근김 교수는 집에서 병원까지 11㎞의 거리를 종종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그날 저녁 약속이 있으면 자전거 퇴근은 다음 날로 미룬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주 2회 이상 자전거 출퇴근을 지킨다. 매주 44㎞ 이상 자전거 출퇴근을 하는 셈이다.자전거는 7년 전에 처음 탔다. 당시 영국에서 연수 중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없었다. 자전거를 장만했다. 그 후로 매일 20여 분씩 자전거로 통학했다. 딱 한 달 만에 체중이 11㎏ 줄었다. 허리띠 몇 칸을 더 졸라매야 했다. 얼굴이 반쪽이 됐다는 농담도 들었다. 그래도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일단 가벼웠다. 아침에도 저절로 일찍 눈이 떠졌다. 김 교수는 “누구든 한 달만 꾸준히, 제대로 자전거를 타면 이런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전거를 들고 귀국했다.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려봤다. 한강 풍경이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다. 운동도 하고, 풍경도 즐길 겸 해서 자전거 출퇴근을 하자 마음먹었다. 자전거 출퇴근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의 자전거는 ‘미니벨로’ 모델이다. 몸체가 작다. 속도를 올릴 수 있는 기어도 3단에 불과하다. 먼 거리를 가려면 그만큼 힘이 더 든다. 그런데도 그 자전거를 택한 것은 접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페달이 빡빡하면 근력 운동 효과가 커지고, 접을 수 있으면 어디든 들고 다니며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김 교수는 주말에는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가족들과 서울 시내 여러 곳을 다녔다. 날을 잡아서 강원도 속초에 가서 탄 적도 있다. 제주도로 건너가 해안가를달리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조정, 나이 상관없이 즐길 수 있어”약 5년 전, 김 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조정을 시작했다. 선배의 제안으로 조정 동호회를 꾸렸다. 주말마다 오전 6시부터 2~3시간씩 미사리 조정 경기장에서 훈련했다. 조정 경기장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주말 자전거 타는 횟수가 줄었다. 그래도 조정을 못 하는 날에는 다시 자전거를 탔다. 그러다 보니 주말 이틀 내내 운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운동량이 더 늘어났다. 김 교수는 “오전에 운동을 끝내기 때문에 오후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며 웃었다. 조정 보트는 1인용, 2인용, 4인용, 8인용이 있다. 김 교수는 주로 2인용과 4인용 보트를 탄다. 혼자 균형을 잡아야 하는 1인용의 난도가 가장 높다. 언젠가 1인용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곧 물에 빠지고 말았다. 김 교수는 조금 더 훈련해서 1인용 보트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김 교수는 조정이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전신운동이라고 했다. 얼핏 보면 팔로 노 젓는 동작만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발로 보트 밑바닥을 밀면서 몸통에 힘을 줘야 한다. 또 노를 끌어당길 때는 허리를 펴야 한다. 상체를 비트는 동작이 없어 척추에도 무리가 가지 않는다. 양쪽 팔과 다리를 모두 쓰기 때문에 평형감을 키우기에도 좋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힘든 운동도 아니란다. 김 교수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보니 70대와 80대는 흔하고 90대 노인도 있었다. 자기 체력에 맞게 조절하면 조정은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조정 운동의 장점은 또 있다. 김 교수는 “확 트인 공간에서 보트를 타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트 장만 비용은 부담일 수 있다. 보트를 대여해주는 업체가 없어 직접 구매해야 한다. 김 교수가 속한 동호회도 회원들이 회비를 내서 중고 보트를 샀다. ●“달리기와 등산은 신중하게”3년 전에는 달리기도 시작했다. 지금까지 10㎞ 마라톤 대회를 6회 나갔다. 김 교수는 달리기를 무척 좋은 운동으로 평가했다. 운동량이 많고, 땀을 통해 노폐물도 많이 배설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같은 쾌감도 느낀다. 김 교수는 요즘도 해외 학회에 가면 아침 일찍 반드시 달린다. 그런데도 김 교수는 달리기가 썩 재미는 있지 않다고 했다. 혼자 달리는 게 외로운 운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마라톤 대회에도 동료들이 함께 있었으니 출전한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 점은 자전거와 다르단다. 자전거는 자기 체력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며 풍광도 즐겨야 하기에 혼자가 더 좋다는 것이다. 등산은 그가 대학생 때부터 즐겨온 취미다. 국토 종주에 도전한 적도 있다. 해외의 유명한 산에도 몇 차례 올랐다. 히말라야산맥을 오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꿈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산에 가는 횟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나이가 들면 산행은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 자신도 언젠가 산행 중에 큰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게다가 험한 지역을 오르내리다가 잘못하면 발목이나 무릎에 큰 부상이 생길 수도 있다. 김 교수는 달리기나 등산이 키가 큰 사람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압박이 무릎에 가해지기 때문. 이런 점만 잘 보완한다면 운동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달리기는 동료가 있다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등산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위험도가 커지는 것 같아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나이 들수록 근력 운동 필요”김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근력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의료 기술이 좋아진 덕분에 수명은 늘었지만. 삶의 질까지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근육량이 떨어지면 노인의 신체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경우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다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김 교수의 아버지와 친척이 병에 걸렸다. 그제야 자신을 돌아봤고, 근력 운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끔은 팔굽혀펴기를 하지만, 그것 말고는 제대로 근력 운동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제대로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우선 자신의 근력 상태를 체크했다. 하체 근력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상체 근력은 많이 약했다. 더 건강해지려면 골고루 근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 내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헬스클럽에서 운동한다. 벤치프레스, 스쾃, 철봉 등 몸의 큰 근육과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주로 한다. 3개 혹은 4개의 기구를 12회 3세트씩 이용한다. 되도록 평일에는 매일 근력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매주 4회 정도는 헬스클럽을 찾는다. 김 교수는 “운동도 습관”이라고 했다. 운동하면 더 운동을 찾게 되고, 하지 않으면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3일 혹은 4일 정도만 운동을 중단해도 이 습관이 깨진다. 배가 나오고 허리띠의 구멍이 하나 더 밀린다. 피로감도 커진다.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라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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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동생이 콩팥 기증… 새 삶 얻은 형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김숙자 씨(67)는 만성 신부전증 환자였다. 콩팥 기능이 6%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올해 4월 말에 콩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민상일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 씨는 새 콩팥을 얻었으니 만성 신부전증에서 해방될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김 씨는 33일 동안 퇴원하지 못하고 제2의 투병을 해야 했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던 것. 자칫 새 콩팥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김 씨와 민 교수는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 “당뇨병 때문에 콩팥 질환 악화 가능성”2005년 소변에서 거품이 생겼다.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당뇨병이라고 했다. 잘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약은 거르지 않았고, 매일 1시간 반 남짓 걷기 운동도 했다. 김 씨는 당뇨병이 만성 신부전증의 징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민 교수는 “당뇨병이 생기고 평균 15년 후에 콩팥 질환이 생기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때 이미 콩팥이 손상되기 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2010년에는 고혈압 진단도 받았다. 지나치게 높은 고혈압 또한 콩팥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만, 약간 혈압이 높은 정도는 무방할 수도 있다고 민 교수는 설명했다. 이후로도 겉으론 아무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 적도 없다. 4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콩팥 질환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목이 마르고 물을 많이 먹게 됐다. 다리가 붓고 온몸이 가려울 때도 있었다. 민 교수는 “노폐물이 빠지지 못해 나타나는 증세”라고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대처했다. 운동은 더 충실하게 했다. 식단에도 신경 썼다. 쌀밥은 잡곡으로 바꿨다. 나트륨과 칼륨은 콩팥 질환자가 특히 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런 성분이 많은 바나나, 아보카도, 토마토 같은 과일과 채소는 먹지 않았다. 김 씨는 이렇게 대처하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콩팥 상태는 더 나빠졌다. 민 교수는 “콩팥이 일단 손상되면 식단 관리나 운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 것. ● 투석 버티다 시동생 콩팥 이식지난해 2월, 김 씨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콩팥 기능이 6%만 남아있었다. 말기 신부전증 진단이 떨어졌다. 투석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입원을 기다리던 4월 말, 갑자기 음식을 토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드러누워 있지 못할 정도로 옆구리 통증이 심했다. 응급실로 직행했다. 신우신염이라고 했다. 치료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 일단 감염부터 잡은 뒤 혈액투석 준비에 들어갔다. 혈액투석은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노폐물과 과잉 수분을 제거한 뒤 다시 몸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투석을 하려면 혈액의 이동 통로를 먼저 만들고, 4∼8주 후에 투석을 시작한다. 김 씨는 5월 말부터 투석을 매주 3회씩 받았다. 투석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투석을 한다고 해서 콩팥 기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다. 민 교수는 “투석할 때 콩팥 기능의 10∼15%만 작동한다. 투석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태는 더 안 좋아지고 환자는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일한 해법은 콩팥 이식이다. 7월에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코노스)에 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하지만 대기자가 워낙 많아서 순번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10월, 김 씨의 시동생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시동생은 지인이 투석하는 것을 지켜보니 정말 힘들 것 같더라며 말을 꺼냈다. 이어 김 씨에게 콩팥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다. 가족이 무척 화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곧바로 이식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김 씨와 시동생의 혈액을 섞어 거부반응을 살폈다. 수혜자인 김 씨의 혈청에 들어 있는 항체가 시동생의 백혈구를 공격하지 않았다. 일단 합격점이다. 김 씨의 혈액형은 B형, 시동생은 A형이었다. B형에는 A형을 공격하는 항체가 있다. 다만 김 씨의 경우 이 항체 수치가 낮았다. 이식에 큰 문제가 없을 수준까지 항체 수치를 떨어뜨렸다. 모든 작업이 끝난 올해 4월, 콩팥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수술은 로봇을 사용해 3시간 만에 끝냈다. 콩팥을 이식한 경우 보통은 10일 이내에 퇴원한다. 하지만 김 씨는 그러지 못했다. 또 다른 투병을 시작해야 했다. ● 33일 동안의 두 번째 투병수술 후 소변이 잘 나오면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다. 보통은 수술 후 1시간당 400∼500cc의 소변을 본다. 하지만 김 씨는 300cc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곧 나오지 않았다. 민 교수는 초음파로 이식된 콩팥을 살폈다. 혈액이 잘 공급되고 있었다. 수술에는 확실히 문제가 없다는 증거.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항체 거부 반응일 확률이 높았다. 투석과 같은 방식으로 혈액을 꺼내 문제가 될 만한 항체 수준을 낮추고 다시 혈액을 집어넣는 ‘혈장 교환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첫 일주일 동안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 씨는 여전히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을 또 해야 했다. 이식받은 콩팥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커졌다. 김 씨는 “시동생 생각만 하면 너무 미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악의 경우 김 씨 자신은 다시 투석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콩팥을 내어준 시동생의 헌신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끝나게 된다는 사실이 내내 걱정됐다는 것이다. 민 교수의 걱정도 커졌다. 이식받은 콩팥의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항체 거부 반응이 확실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곧이어 항체의 정체도 알아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만 보고된 특이 항체였다. 이 항체의 공격으로 콩팥이 기능을 못 하고 있었던 것. 민 교수는 이 항체를 다루는 외국 기업 국내 지점과 접촉해 이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어 그 항체의 수치를 낮춰갔다. 김 씨는 이식 수술 후 33일 동안 입원하면서 15회의 혈장 교환술을 받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도 3회 시행했다. 혈장 교환술과 투석 모두 4시간이 소요된다. 김 씨는 그 고통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덕분에 20여 일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 33일이 지난 6월 1일, 마침내 김 씨는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 “의사의 격려가 큰 희망이 됐다”김 씨는 한 번도 ‘완치’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민 교수님이 와서 ‘걱정하지 마시라. 다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을 때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의사의 헌신 또한 완치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민 교수는 김 씨가 입원한 기간 내내 휴일을 포함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태를 체크했다. 휴일인데도 민 교수가 직접 김 씨 병상을 찾는 날도 많았다. 요즘 김 씨는 2주 혹은 3주마다 민 교수를 만나 몸 상태를 살핀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한 달 혹은 두 달마다 병원에 오면 된다. 또 하루에 2회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약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도 마찬가지. 김 씨는 “매일 1시간 반씩 걷는다. 비가 와도 걷는다. 요즘 몸 상태는 최상이고, 무척 만족하고 있다”며 웃었다. 재발 우려는 없을까. 민 교수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관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건강을 되찾은 덕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콩팥 이식 환자도 감기약은 먹어도 된다. 다만, 코로나19 치료제(팍스로비드)는 면역억제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사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11월, 김 씨는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는 판단에서다. 민 교수도 “이제 마음껏 다니셔도 된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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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동생 콩팥 기증받아 새 삶 얻은 형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김숙자(67) 씨는 만성 신부전증 환자였다. 콩팥 기능이 6%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올 4월 말에 콩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민상일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집도했다.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 씨는 새 콩팥을 얻었으니 만성 신부전증에서 해방될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김 씨는 33일 동안 퇴원하지 못하고 제2의 투병을 해야 했다.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겼던 것. 자칫 새 콩팥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김 씨와 민 교수는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 “당뇨병이 콩팥 질환 악화 가능성”2005년 소변에서 거품이 생겼다.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당뇨병이라 했다. 잘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약은 거르지 않았고, 매일 1시간 반 남짓 걷기 운동도 했다. 김 씨는 당뇨병이 만성 신부전의 징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민 교수는 “당뇨병이 생기고 평균 15년 후에 콩팥 질환이 생기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때 이미 콩팥이 손상되기 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2010년에는 고혈압 진단도 받았다. 지나치게 높은 고혈압 또한 콩팥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만 약간 혈압이 높은 정도는 무방할 수도 있다고 민 교수는 설명했다. 이후로도 겉으로는 아무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 적도 없다. 4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콩팥 질환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목이 마르고 물을 많이 먹게 됐다. 다리가 붓고 온몸이 가려울 때도 있었다. 민 교수는 “노폐물이 빠지지 못해 나타나는 증세”라고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대처했다. 운동은 더 충실하게 했다. 식단에도 신경 썼다. 쌀밥은 잡곡으로 바꿨다. 나트륨과 칼륨은 콩팥 질환자가 특히 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런 성분이 많은 바나나, 아보카도, 토마토와 같은 과일과 채소는 먹지 않았다. 김 씨는 이렇게 대처하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콩팥 상태는 더 나빠졌다. 민 교수는 “콩팥이 일단 손상되면 식단 관리나 운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극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 것. ● 투석 버티다 시동생 콩팥 이식지난해 2월, 김 씨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콩팥 기능이 6%만 남아있었다. 말기 신부전 진단이 떨어졌다. 투석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입원을 기다리던 4월 말, 갑자기 음식을 토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드러누워 있지 못할 정도로 옆구리 통증이 심했다. 응급실로 직행했다. 신우신염이라 했다. 치료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 일단 감염부터 잡은 뒤 혈액투석 준비에 들어갔다. 혈액투석은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노폐물과 과잉 수분을 제거한 뒤 다시 몸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투석하려면 혈액의 이동 통로를 먼저 만들고, 4~8주 후에 투석을 시작한다. 김 씨는 5월 말부터 투석을 매주 3회씩 받았다. 투석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투석한다고 해서 콩팥 기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다. 민 교수는 “투석할 때 콩팥 기능의 10~15%만 작동한다. 투석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태는 더 안 좋아지고 환자는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일한 해법은 콩팥 이식이다. 7월에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코노스)에 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하지만 대기자가 워낙 많아서 순번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10월, 김 씨의 시동생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시동생은 지인이 투석하는 것을 지켜보니 정말 힘들 것 같더라며 말을 꺼냈다. 이어 김 씨에게 콩팥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다. 가족이 무척 화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곧바로 이식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김 씨와 시동생의 혈액을 섞어 거부반응을 살폈다. 수혜자인 김 씨의 혈청에 들어있는 항체가 시동생의 백혈구를 공격하지 않았다. 일단 합격점이다. 김 씨의 혈액형은 B형, 시동생은 A형이었다. B형에는 A형을 공격하는 항체가 있다. 다만 김 씨의 경우 이 항체 수치가 낮았다. 이식에 큰 문제가 없을 수준까지 항체 수치를 떨어뜨렸다. 모든 작업이 끝난 올 4월, 콩팥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수술은 로봇을 사용해 3시간 만에 끝냈다. 콩팥을 이식한 경우 보통은 10일 이내에 퇴원한다. 하지만 김 씨는 그러지 못했다. 또 다른 투병을 시작해야 했다. ●33일 동안의 두 번째 투병수술 후 소변이 잘 나오면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다. 보통은 수술 후에 1시간당 400~500cc의 소변을 본다. 하지만 김 씨는 300cc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곧 나오지 않았다. 민 교수는 초음파로 이식된 콩팥을 살폈다. 혈액이 잘 공급되고 있었다. 수술에는 확실히 문제가 없다는 증거.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항체 거부반응일 확률이 높았다. 투석과 같은 방식으로 혈액을 꺼내 문제가 될 만한 항체 수준을 낮추고 다시 혈액을 집어넣는 ‘혈장 교환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첫 1주일 동안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 씨는 여전히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을 또 해야 했다. 이식받은 콩팥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커졌다. 김 씨는 “시동생 생각만 하면 너무 미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악의 경우 김 씨 자신은 다시 투석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콩팥을 내어준 시동생의 헌신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끝나게 된다는 사실이 내내 걱정됐다는 것이다. 민 교수의 걱정도 커졌다. 이식받은 콩팥의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항체 거부반응이 확실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곧이어 항체의 정체도 알아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만 보고된 특이 항체였다. 이 항체의 공격으로 콩팥이 기능을 못 하고 있었던 것. 민 교수는 이 항체를 다루는 외국 기업 국내 지점과 접촉해 이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어 그 항체의 수치를 낮춰갔다. 김 씨는 이식 수술 후 33일 동안 입원하면서 15회의 혈장 교환술을 받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도 3회 시행했다. 혈장 교환술과 투석 모두 4시간이 소요된다. 김 씨는 그 고통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덕분에 20여 일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 33일이 지난 6월 1일, 마침내 김 씨는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의사의 격려가 큰 희망이 됐다”김 씨는 한 번도 ‘완치’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는 “병상에 누워있을 때 민 교수님이 와서 ‘걱정하지 마시라. 다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라고 말했을 때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의사의 헌신 또한 완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민 교수는 김 씨가 입원한 기간 내내 휴일을 포함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태를 체크했다. 휴일인 데도 민 교수가 직접 김 씨 병상을 찾는 날도 많았다. 요즘 김 씨는 2주 혹은 3주마다 민 교수를 만나 몸 상태를 살핀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한 달 혹은 두 달마다 병원에 오면 된다. 또 하루에 2회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약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도 마찬가지. 김 씨는 “매일 1시간 반씩 걷는다. 비가 와도 걷는다. 요즘 몸 상태는 최상이고, 무척 만족하고 있다”며 웃었다. 재발 우려는 없을까. 민 교수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관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건강을 되찾은 덕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콩팥 이식 환자도 감기약은 먹어도 된다. 다만 코로나19 치료제(팍스로비드)는 면역억제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사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11월, 김 씨는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는 판단에서다. 민 교수도 “이제 마음껏 다니셔도 된다”며 웃었다. 김숙자 씨의 만성 신부전증-장기이식 투병일지2005년 당뇨병 진단(콩팥 질환이 시작됐을 가능성 있음)2010년 고혈압 진단2019년 건강 검진결과 콩팥 질환 확인2022년 2월 만성 신부전증 진단4월 신우신염으로 응급 치료혈액투석 시작(주 3회, 4시간씩 진행)7월 뇌사자 장기 이식 대기자 등록10월 시동생 장기 기증 의사 밝혀장기 이식 전 항체 검사 등 이식 사전 작업 시작2023년 4월 장기 이식 수술 시행4~5월 특이항체로 인한 거부 반응 치료(15회 혈장교환술, 3회 투석 진행)6월 사실상 완치, 퇴원2023년 9월(현재) 2주 혹은 3주마다 건강 상태 확인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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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리 아프면 모두 디스크? 통증 양상 잘 따져보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성인 중에 허리가 한두 번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척추 질환자는 1131만 명이다. 10명 중 2명 이상은 허리 때문에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는 뜻이다. 2012년까지만 해도 척추 질환 진단을 받은 환자의 평균 나이는 41.8세였다. 2021년에는 36.9세로 낮아졌다. 젊은 척추 질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 실제로 2021년 신규 환자의 40%가 20대와 30대였다. 가장 환자가 많은 척추 질환은 척추추간판탈출증과 척추관협착증이다. 다만 모두가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 제대로만 관리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무난히 할 수 있다. 양재혁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를 만나 허리 질환을 자가 진단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 허리 질병 상식부터 알아 두자양 교수는 “허리가 아프다고 모두 ‘디스크’는 아니다”라고 했다.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다양하다는 것. 양 교수는 근육통을 척추추간판탈출증이나 척추관협착증으로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각 질병은 어떻게 다를까. 척추추간판탈출증을 흔히 허리 디스크라고 한다. 디스크는 척추뼈 사이에 있는 구조물인 추간판을 가리킨다. 디스크는 원래 젤리처럼 부드럽다. 탄력성이 있어 외부 충격을 잘 흡수한다. 하지만 퇴행적 변화가 일어나면 딱딱해지면서 탄력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디스크가 비어져 나오거나 파열되는 것이다. 척추추간판탈출증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20∼50대에 많이 발생한다. ‘아직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잘못된 자세로 생활하는 경우, 허리에 무리하게 힘이 가게 근력 운동을 하는 경우 허리 디스크 환자가 될 확률이 높다. 척추관협착증은 말 그대로 척추관이 좁아진 질병이다. 척추관은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다. 여기가 좁아지면 신경이 눌리며 통증을 유발한다. 어느 부위의 신경이 눌리느냐, 얼마나 많은 신경 다발이 눌리느냐에 따라 증세가 나타나는 부위와 강도가 달라진다. 척추관협착증은 40대에도 발생한다. 다만 의료적 처치가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경우는 주로 60대 이후일 때가 많다. 노인들에게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 중 하나다. 두 질병과 무관하게 허리가 아플 때도 있다. 단순 근육통일 때가 많다. 이 경우는 근육이 뭉친 게 원인이다. 즉, 뭉친 근육만 풀어주면 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통증은 대체로 7일 이내에 사라진다. ● 통증 양상-강도 잘 살펴야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 그렇다면 어떤 통증이 나타날 때 병원에 가는 게 좋을까. 질병별로 통증 양상은 조금씩 다르다. 척추 디스크라면 허리 통증이 가장 흔하다. 허리와 엉덩이의 연결 부위가 주로 많이 아프다. 통증은 다리로 확산하기도 하는데, 다리 통증의 경우 칼로 벤 것처럼 예리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척추 질환 중에 요통 강도가 가장 높다. 양 교수는 “가장 통증이 심한 상황을 10점이라고 했을 때 척추 디스크의 통증 강도는 7∼8점이다.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아플 수가 있다”고 말했다. 척추 디스크일 때는 가만히 있을 때나 움직일 때 모두 통증이 나타난다. 다만 디스크가 신경에 눌렸을 때 발생하는 통증이기 때문에 똑같은 자세를 취할 때 똑같은 양상의 통증이 발생한다. 이런 증세가 3∼7일간 이어지면 척추 디스크일 확률이 매우 높다. 허리 통증이 있다 해도 매번 부위가 다르거나, 똑같지 않은 자세에서도 나타난다면 근육통일 가능성이 크다. 이때의 통증은 강도도 낮고, 예리하기보다는 쥐어짜는 느낌이 강하다. 평소보다 일이나 운동을 많이 한 후에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급성 통증은 3일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진통제를 먹고 쉬면 대부분 7일 이내에 좋아진다. 심한 경우에도 3∼6주를 넘기지는 않는다. 척추관협착증일 때도 통증은 척추 디스크일 때와 마찬가지로 허리에서 시작하고, 다리로 확산한다. 다만 요통의 범위가 엉덩이 아래쪽까지로 더 넓어진다. 통증 강도는 4∼5점 정도다. 통증이 주로 움직일 때 나타나는 게 척추 디스크와 다르다. 가령 가만히 있을 때는 아프지 않은데 걷기 시작하면 5∼10분 만에 허리 통증이 나타난다. 그러다 앉아서 쉬면 1∼2분 만에 통증이 사라진다. 양 교수는 “활동을 시작하면 눌린 신경으로 공급되는 에너지가 줄어들었다가, 쉬면 다시 에너지 공급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척추관협착증이라면 상체를 앞으로 숙일 때 통증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은 척추 디스크와 완전히 다르다. 척추 디스크의 경우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 디스크에 가해지는 압박이 커지면서 통증이 더 심해진다. ● 운동도 질병에 맞춰 달리해야평소 척추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좋다. 다만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척추를 망칠 수 있다. 양 교수는 “질병에 따라 운동 시기와 요령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일단 척추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면 걷기와 같은 운동은 상관없지만 근력 운동은 당분간 피해야 한다. 양 교수는 “급성기일 때는 디스크가 치유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4∼6주는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근력 운동을 해도 될까. 이에 대해서도 양 교수는 부정적이다. 통증이 80% 이상 줄어들었다고 느꼈을 때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물론 허리를 펴는 ‘신전 운동’을 자주 해 주는 게 좋다. 의도적으로 상체를 세우고 허리를 펴며, 배를 내미는 듯한 느낌으로 걷도록 한다. 척추관협착증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운동 부족으로 병이 악화할 수 있다. 따라서 평소에 충분히 근력 운동을 해 줘야 한다. 신전 운동 외에도 특히 엉덩이 근육을 강화하는 게 좋다. 양 교수는 “40대와 50대라면 스쾃, 플랭크, 팔굽혀펴기 등 세 종목만 열심히 해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반복적으로, 혹은 30분 이상 걸었을 때 허리 통증이 나타난다면 척추관협착증일 확률이 높다. 다만 이 경우 당장 치료해야 할 수준은 아니다. 운동을 해 주는 게 좋다. 가령 아침에는 누운 상태로 허리를 펴 주는 동작을 10∼15분 한 뒤 천천히 일어나거나, 상체를 펴고 걷는다면 증세는 많이 사라진다. ● 허리·엉덩이·종아리 근육 키워야양 교수는 “엉덩이와 종아리 근육을 함께 강화해야 허리 질환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든 할 수 있는 다섯 동작을 추천했다. 운동 후에는 반드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근육도 성장할 수 있다. ① 손으로 책상을 짚은 상태에서 뒷발을 들어 까치발 자세를 한다. 이때 배를 살짝 내밀면서 상체를 뒤로 젖히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또 엉덩이에 의도적으로 힘을 준다. 이 자세를 3초 유지한다. 틈날 때마다 이 동작을 하는 게 좋다. ② 책상을 바라보며 서거나 옆으로 선다. 한쪽 팔로 책상을 짚은 상태에서 제자리 걷기를 한다. 이때 무릎이 직각이 되도록 들어올려야 한다. 배는 약간 내미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한다. 이 동작도 틈날 때마다 하는 게 좋다. ③ 머리는 든 채로 바닥에 엎드린다. 이어 양손으로 바닥을 밀며 상체만 일으킨다. 이때 하체가 바닥에서떨어지면 안 된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하체에 집중한다. 15회씩 2, 3세트를 반복한다. ④천장을 보고 눕는다. 팔과 다리를 모두 들어 올린다. 이때 무릎은 직각이 되도록 한다. 그 상태에서 팔과 다리를 번갈아 휘젓는다. 왼팔을 머리 쪽으로 뻗었다면 오른팔은 발 쪽으로 쭉 뻗는 식이다. 배에 힘을 주고 바닥을 누르는 느낌이어야 한다. 15회씩 2, 3세트 반복. ⑤ 기어가는 자세를 취한다. 이 상태에서 왼팔은 정면, 오른발은 뒤쪽으로 뻗는다. 5초 정도 있다가 팔과 다리를 바꿔 같은 요령으로 반복한다. 15회씩 2, 3세트 반복.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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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을 즐기려면 지금 근력 운동부터 하세요”[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박선화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37)는 근력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루하고 힘들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종목의 운동에 도전했다. 운동량이 많은 덕분에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에 비해 근육량이 많았다. 체력도 강하다고 자부했다. 이러니 굳이 근력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엔 생각이 달라졌다. 박 교수는 다른 운동을 대부분 중단했다. 대신 근력 운동에 특히 신경을 쓴다. 박 교수는 “평생 재미있게 운동하면서 살려면 근력 운동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그런 것”이라며 웃었다. ●“스키와 테니스, 특히 즐겨”박 교수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스포츠 종목을 즐겼다. 걷기나 달리기처럼 유산소 운동의 요소를 갖고 있고, 근력도 강화할 수 있는 데다,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스키를 가장 오래 즐겼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을 따라 스키장에 갔다가 푹 빠졌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아예 겨울방학 때 스키장에서 숙식하며 응급 환자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2교대 근무라 다소 힘이 들었지만, 비번일 때 스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스키는 지속하기에 한계가 너무 많았다. 업무는 갈수록 많아졌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개인 시간은 더 줄었다. 차츰 스키장에서 멀어졌다. 박 교수는 “요즘에는 겨울에도 아주 가끔 스키장에 간다. 사실상 스키를 관둔 셈”이라고 말했다. 그 후로 수영을 시작했지만, 곧 관뒀다. 일부러 멀리 있는 수영장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컸기 때문. 마라톤에도 도전해 10㎞ 코스 단기 마라톤을 두 번 완주했다. 하지만 마라톤도 관뒀다. 박 교수는 “역동적이고 승부 욕구를 자극하는 운동을 더 좋아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7년 전, 가족과 함께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레슨을 받고 나서 연습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5년 정도 배우고 나니 능숙하게 게임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레슨이 끝나면 30분∼1시간 정도 게임을 했다. 코트를 뛰어다니다 보면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흘렀다. 운동을 끝내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고 개운해졌다. 박 교수는 “테니스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재미 세 가지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근육량 많아도 무릎 아파 운동 중단”박 교수는 테니스를 무척 즐겼다. 병원 테니스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실력이 늘면서 동작도 커졌다. 코트도 더 많이 뛰어다녔다. 이런 동작은 무릎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박 교수는 걱정하지 않았다. 당시 체력적으로나 몸의 근육량으로나 또래 여성의 평균 수준은 넘었기 때문. 6개월 전, 문제가 생겼다. 테니스를 끝내고 나면 무릎이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는 운동하지 않을 때도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제야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무릎 주변 근육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근육량은 많지만, 무릎 주변 근육량은 적었던 것. 이런 사례는 흔하다. 무릎 관절이 손상되지 않더라도 그 주변 근육이 약하면 운동할 때 통증이 나타난다. 그대로 놔둔 채로 운동을 계속하면 통증이 더 심해지며, 무릎 관절염으로 악화할 수 있다. 테니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근력 운동이 필요했다. 마침 병원 지하에 직원들을 위한 체력단련실이 있었다. 4개월 전, 박 교수는 그 체력단련실에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매주 2회, 점심시간을 이용해 1시간씩 근력 운동을 했다.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헬스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았다. 초기에는 무릎을 포함해 하체 근력을 강화하는 위주로 프로그램을 짰다. 달리거나,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는 동작은 일절 취하지 않았다. 평생 처음 시작한 근력 운동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딱 한 달 만에 운동 효과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무릎이 욱신거리거나 시큰거리는 등의 통증이 사라졌다. 무릎 통증이 사라지니 전반적으로 피로도 덜 쌓였다. 몸도 훨씬 가벼워졌다. 그전까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꽤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게 됐단다. ●“하루씩 번갈아 상·하체 근력 운동”박 교수는 요즘도 주 2회 근력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무릎 주변 근육이 어느 정도 강해진 후로는 상체와 하체 근력 운동을 골고루 하고 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반드시 처음에는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박 교수도 먼저 5∼10분 동안 상체와 하체를 골고루 풀어준다. 사실 스트레칭은 집에서도 자주 한다. 박 교수는 “업무 때문에 어깨가 뭉칠 때가 많은데, 폼롤러를 이용해 30∼40분 스트레칭을 해 주면 훨씬 편해진다”고 말했다. 스트레칭에 이어 근력 운동을 시작하는데,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우선 하나의 운동 기구를 15분 이상 쓰지 않는 것이다. 길어 봐야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같은 운동 기구만 이용하면 운동 효과는 적고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근력 운동은 자신에게 맞게 중량을 설정한 뒤 10∼15회를 한다. 이를 1세트로 하고, 총 3세트를 이어서 한다. 이 또한 운동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또 하루는 상체, 하루는 하체 중심으로 근력 운동을 한다. 같은 부위를 거푸 운동하면 근육이 더 뭉칠 수 있고, 근육통이 생길 수도 있다. 박 교수는 “처음에는 전문 트레이너에게 제대로 운동법을 배우는 게 좋다”고 말했다. 기구 없이도 근력 운동이 가능하다. 박 교수가 가장 좋아하고, 틈날 때마다 하는 동작이 플랭크 자세다. 1분∼1분 30초 이상 플랭크 자세만 취하면 끝이다. 보기보다 상당히 어렵단다. 코어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된다. 박 교수는 머잖아 다시 테니스를 할 생각이다. 더 나중에는 암벽등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근력 운동에 더 집중하고 있다. 박 교수는 “무슨 운동이든, 부상 없이 즐기려면 충분한 근력 운동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전거 타기는 평생 운동 습관”박 교수의 전공은 산부인과다. 임신부에게 규칙적인 운동을 자주 권한다. 임신했을 때 운동하면 허리 통증, 변비, 임신성 당뇨, 임신성 고혈압 위험을 줄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매주 150분 이상 중간 강도의 유산소 운동이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교수는 유산소 운동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그는 걷기나 달리기 같은 운동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방법을 택했다. 박 교수는 살짝 속도를 내고 자전거를 타면 병원에서 10∼15분 이내에 닿는 거리에 살고 있다. 의대에 다닐 때부터 병원 근처에 살았고, 신접살림도 병원 근처에 차렸다. 자전거 출퇴근은 의대생 때 시작했다. 어느덧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취미이자 운동 습관이다.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는 목적이 컸다. 버스 정거장까지 가서,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일단 자전거를 타고 보니 재미도 있고, 운동 효과도 작지 않은 것 같았다. 박 교수는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 도로가 비어 있어 약간 속도를 내서 달리는데, 이 경우 운동 강도는 중등도 수준까지 올라간다”고 말했다. 가끔 맞바람이 강할 때는 페달을 밟는 하체에 힘이 더 들어가 운동 효과도 커진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나이가 된 후로는 주말에 왕복 1시간 거리를 가족이 함께 다녀온다. 박 교수는 “아이가 더 크고 육아 문제가 해결되면 좀 더 멀리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싶다”며 웃었다. 박 교수는 평소 활동량을 늘리는 데도 신경을 쓴다. 굳이 운동이라 생각하지 않더라도 많이 움직이면 저절로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계단 오르기다. 박 교수는 매일 최소한 10개 층 이상은 반드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덤으로 하체 근력도 강해진단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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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번 수술 견디고 다리 살려내… 등산이 더 즐거워졌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세균에 감염된 뼈에 염증이 생기면 골수염이 된다. 무릎 주변 부위에서 많이 발생한다. 청소년 때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과 발열이 대표적인 증세다. 항생제를 처방하는 등 초기에 제대로 대처하면 후유증이나 합병증 없이 완치에 가까워진다.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 골수염으로 악화할 수 있다. 이때는 증세가 훨씬 심각해진다. 상처 부위에서 고름이 나고, 피부가 썩는다. 물론 치료도 훨씬 어려워진다. 뼈 안의 염증을 다 긁어내는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더 심하면 다리 자체를 절단할 수도 있다. 신용명 씨(69)는 중증 만성 골수염 환자였다. 오른쪽 다리를 통째로 잃을 뻔했다. 하지만 한양대병원 골수염클리닉의 황규태 정형외과 교수와 김연환 성형외과 교수에게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나서 다리도 살리고, 병으로부터도 해방됐다. 요즘 신 씨는 튼튼한 두 다리로 산에 오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60년 전 발병, 32년 후 재발 약 60년 전, 그러니까 신 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오른쪽 무릎 위쪽 부위에서 열이 나고 통증이 느껴졌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고름까지 나왔다. 동네 의원에 갔다. 의사가 준 약을 꾸준히 먹고, 상처 부위를 잘 소독했다. 4년 만에 증세가 사라졌다. 신 씨는 병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신 씨는 자신의 병을 잘 몰랐다. 나중에야 그게 만성 골수염이며, 면역력이 떨어지면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로는 재발을 막기 위해 면역력 강화에 특히 신경 썼다. 무엇보다 꾸준히 운동했다. 수시로 산에 올랐다. 암벽 등반에도 도전했다. 그 밖에도 운동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다 했다.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40대가 되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1996년, 오른쪽 다리에서 통증이 다시 나타났다. 열도 느껴졌다. 신 씨는 만성 골수염이 재발한 게 아닌가 걱정됐다. 병원에 갔더니 항생제를 처방해줬다. 15일 동안 그 약을 먹었다. 다행히 증세가 사라졌다. 신 씨는 그제야 만성 골수염이 재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신 씨의 오판이었다. 32년 만에 병이 재발했지만 증세가 곧 사라지니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다. 황 교수는 “신 씨와 같은 사례가 적잖다.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했을 때 균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을 경우 균이 뼈 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활동을 재개한다”라고 말했다. 재발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신 씨는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병은 악화하고 있었다. 다시 10년이 지난 2006년, 허벅지 통증이 시작됐다. 50대 초반으로 접어들면서 면역력이 더 떨어지자 숨죽이고 있던 균들이 더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 “자가 치료로 버티다 더 악화”증세는 40대 때보다 더 심했다. 하지만 신 씨는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당시 그의 아내가 간암 투병 중이었던 것. 자신의 병을 신경 쓸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아내를 돌보고, 가족을 챙겨야 했다. 동네 정형외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서 버텼다. 얼마 후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불행이 겹쳤다. 그의 모친이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매달 한두 번은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를 살펴야 했다. 그 자신의 치료는 계속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그대로 뒀다가 골수암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집에서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항생제를 먹는 식의 ‘자가 치료’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신 씨가 만성 골수염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것은 2019년 초가을이었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힘든 일을 거푸 겪다 보니 신 씨의 투병 의지도 많이 꺾였다. 하지만 성장한 자식들이 신 씨에게 치료를 강하게 권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 대형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그의 상태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뼈에서 흘러 나온 고름이 피부를 녹이고 있었다. 고름의 양도 너무 많았고,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결과는 그만큼 최악이었다. 의사는 골반 바로 아래쪽부터 다리 전체를 절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판정이었다. 무릎 주변에서 절제한다면 의족이라도 착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판단대로라면 의족 자체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신 씨는 다른 병원을 물색했다. 마침 황 교수가 해외 연수를 끝내고 막 돌아와 한양대병원 골수염 클리닉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 씨는 다리 절제 수술 예정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이 클리닉을 찾았다. ● 11번의 수술 극복, 사실상 완치황 교수와 김 교수도 신 씨의 상태에 적잖이 놀랐다. 다리를 통째로 절제해야 한다는 다른 병원 의료진의 판단이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허벅지 위쪽 20㎝ 정도가 썩어 있었다. 피부는 다 녹았다. 진료실에 악취가 퍼져 1시간 가까이 환기를 해야 했다. 그래도 황 교수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염증 제거 수술을 먼저 하고, 만약 실패하면 그때 가서 다리를 절제하자고 판단한 것. 상처 부위가 워낙 커서 한 번의 수술로는 부족했다. 출혈량도 너무 많았다. 이 때문에 매주 1회씩, 두 달 동안 8회의 수술을 시행했다. 그때마다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뼈 안의 염증을 긁어냈다. 수술이 끝나면 균 배양 검사를 했다. 결과는 좋았다. 염증 수치가 점점 떨어졌다. 다만 뼈가 약해질 수 있어 추가 조치가 필요했다. 이듬해 12월, 뼈 안에 인공 물질을 채워 넣는 수술을 했다. 아홉 번째 수술이었다. 이때까지 신 씨의 허벅지는 피부가 없이 ‘열린’ 상태였다. 김 교수가 피부 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옆구리에서 피부조직을 떼어내 허벅지에 이식했다. 이식한 피부의 크기만 해도 가로 24㎝에, 세로 16㎝였다. 피부와 혈관을 성공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열 번째 수술도 잘 끝났다. 이후 신 씨는 매월 병원을 찾아 몸 상태를 검사했다. 9개월이 지나자 염증 수치가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다. 의료진은 재발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뼈 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먼저 김 교수가 종아리의 얇은 뼈를 20㎝ 정도 잘라내 허벅지에 이식했다. 이어 황 교수가 양쪽 골반에서 각각 8㎝씩 뼈를 떼어내 다시 허벅지에 이식했다. 2021년 4월, 이식한 뼈가 잘 붙어있는 게 확인됐다. 황 교수는 사실상 완치를 선언했다. ● “적극적 운동-투병 의지가 회복 도와”완치라고는 하지만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황 교수는 “물론 병의 특성상 재발의 위험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증세가 나타났을 때 바로 조치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씨는 미세하게나마 균이 뼈 안에 남아 있을 수 있어 6개월마다 몸 상태를 살피고 있다. 신 씨가 다리를 절제해야 할 위험을 극복하고 사실상 완치에 이른 비결은 뭘까. 신 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 진료를 받았을 때 두 교수가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덕분에 힘든 것도 모를 만큼 적극적으로 투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걸어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자 하루라도 더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싶었다. 신 씨는 몸을 세우지 못할 때는 병상에 누워서 팔로만 상체를 지탱하는 운동을 했다.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문 뒤에는 병상을 활용해 근력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3∼4시간을 빠지지 않고 운동했다. 황 교수는 “신 씨가 적극적으로 운동한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어떨 때는 지나칠 정도로 많이 운동하는 바람에 말리기도 했다”며 웃었다. 신 씨는 이식한 뼈가 붙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부터 보조 장비 도움 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등산을 재개했다. 평지를 다닐 때와 달리 이때는 보조 장비가 필요했다. 지난해 3월, 마침내 보조 장비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처음 산에 올랐다. 그 후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즐기고 있다. 신 씨는 “산에 오르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커진 것 같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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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확진 후, 귀 먹먹하면 돌발성 난청 의심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고교생 강민지(가명·17) 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후 왼쪽 귀가 먹먹해졌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증세는 좋아지지 않았다. 동네 의원에서 스테로이드 약물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마찬가지였다. 강 양은 큰 병원으로 옮겼다. 문인석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검사해보니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왼쪽 귀의 청력이 심각하게 나빠져 있었다. 문 교수는 강 양을 입원시킨 뒤 6일 동안 집중 치료를 시행했다. 퇴원한 후로는 1주 혹은 2주에 한 번씩 상태를 살폈다. 2개월의 치료가 끝난 후 청력은 30% 정도 돌아왔다. 문 교수는 “더 늦게 병원에 왔으면 청력을 완전히 잃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 병을 ‘돌발성 난청’이라 불렀다. 원인을 알 수 없으며, 갑자기 발생한다고 해서 이런 병명이 붙었다. 문 교수는 “코로나19 합병증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 난청, 종류 따라 원인-증세 달라난청은 말 그대로 소리가 잘 안 들리는 병이다. 문 교수는 “크게 전음성 난청과 감각성 난청 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음성 난청은 중이염 같은 귓속 염증이 원인이다. 이 염증 때문에 청각기관인 달팽이관까지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것. 예전에는 가장 흔한 난청이었지만 환자가 줄어드는 추세다. 염증이 있는 귀에서만 먹먹함, 통증, 고름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급성이라면 하루 만에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만성이라면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증세가 나타난다. 병원에 가면 원인 질환부터 치료한다. 염증을 제거하거나 항생제 치료를 하며 심하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감각성 난청 환자가 늘고 있다. 청각을 담당하는 감각기관이나 청신경 등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감각성 난청은 다시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중에서 소음성 난청과 노인성 난청이 가장 흔하다. 소음성 난청은 지나치게 큰 소리가, 노인성 난청은 노화에 따른 감각기관의 퇴행성 변화가 원인이다. 감각성 난청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대체로 3년 이상, 길게는 10년 이상 진행된 후에야 난청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진행 상황을 잘 모를 수 있다. 대체로 양쪽 귀 모두에서 똑같이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안 들리기만 할 뿐 통증은 발생하지 않는다. 감각성 난청의 경우 약물치료가 크게 효과가 없다. 난청을 유발하는 소음을 멀리하거나 평소에 귀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치료의 일환으로 보청기를 착용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돌발성’ 생길 수도”돌발성 난청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여러 원인이 동시에 작용해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바이러스 감염이 가장 큰 원인이다. 청신경종양, 메니에르병이 원인인 경우는 10% 정도다. 문 교수는 돌발성 난청의 대표적 증세로 귀가 먹먹해짐을 꼽았다. 증세는 한쪽 귀에서만 1, 2일 이내에 나타난다. 1주일 이상 서서히 귀가 안 들렸다면 돌발성 난청이 아니다. 이와 함께 환자의 90%에서 이명이 나타난다. 청신경종양이나 메니에르병이 원인이라면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통증은 사람에 따라서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5분 이상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문 교수는 “증세가 아주 짧게 나타난다면 돌발성 난청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증세 지속 시간이 짧더라도 반복될 때는 돌발성 난청일 수 있다. 문 교수는 “하루에 10회 이상 증세가 반복된다면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최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돌발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문 교수에 따르면 한 해외 연구 결과 코로나19 확진자일수록 돌발성 난청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투입한 쥐에게서 귀 안에 있는 달팽이관 세포가 더 손상된다는 실험실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 입원 환자 1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3%가 청력이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 교수는 “현재까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청각 신경계에 직접 작용한다는 의학적 확신은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문 교수는 이에 따라 코로나19에 확진된 후 귀가 먹먹해진다면 반드시 이비인후과를 방문할 것을 당부했다. ●“치료 시기 놓치면 청력 영구 상실”다른 난청과 달리 돌발성 난청은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문 교수는 “증세가 나타나고 3일 이내에 치료할 때 효과가 좋다. 아무리 늦어도 7∼10일 이내에는 진료를 시작해야 청력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증세가 나타나자마자 병원에 갔을 때 완치율은 90% 이상이다. 일단 나빠지기 시작하면 완치율은 50% 이하로 떨어진다. 너무 늦게 병원에 간다면 청력을 완전히 잃을 가능성이 있다. 신속한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문 교수는 최근 치료한 환자 A 씨 사례를 들었다. A 씨는 귀가 먹먹해지고 어지러운 증세를 느꼈다. 곧바로 병원을 찾았는데, 검사 결과 청신경 종양이 발견됐다. 이 종양이 원인인 돌발성 난청이었던 것. A 씨는 일찍 병원에 간 덕분에 난청 치료와 청신경종양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 결과 청력을 100% 되찾았다. A 씨와 달리 20대 남성 B 씨는 치료를 미루다가 낭패를 봤다. B 씨도 귀가 먹먹하다는 증세를 느꼈다. 하지만 곧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하면서 치료를 받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후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청력의 30%를 잃은 후였다. 그 후 치료가 듣지 않아 B 씨는 사실상 한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문 교수는 “결국 증세가 나타난 후 얼마나 빨리 병원에 가느냐가 치료 성패를 가르는 셈”이라면서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동네 의원에서 얼른 치료를 받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 달 이상 병을 키운다면 대학병원에서도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면역력 키우는 게 최고 예방법”문 교수는 “돌발성 난청은 면역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특히 50대 이후에 몸에 무리가 가도록 일하다가 돌발성 난청에 걸리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과로하거나 감기 등의 바이러스 질환에 걸렸다면 충분히 쉬라고 했다. 또 몸이 좋아진 것 같기는 한데, 귀만 먹먹하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것을 당부했다. 사실 돌발성 난청은 특별한 예방법이 없다. 면역력을 키우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문 교수는 △적절히 운동하고 △과로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덜 느끼려고 노력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술은 줄이고 카페인이 든 커피는 하루 한 잔으로 제한할 것을 권했다. 돌발성 난청 환자의 절반 정도가 60대 이상이다. 문제는, 질병이 있는 노인의 경우 돌발성 난청 초기 증세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가족의 세심한 체크가 필요하다. 문 교수는 최근 치료했던 70대 후반의 이정심(가명) 씨 사례를 들었다. 이 씨는 파킨슨병 초기 환자다. 간호사였던 이 씨의 딸은 이틀 만에 청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내고 치료를 받게 했다. 검사 결과 한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문 교수는 “증세를 일찍 발견한 덕분에 2주 만에 증세가 50% 수준을 회복했고, 곧 100%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특히 치매나 인지장애가 있는 노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 수 없다. 그냥 뒀다가 청력을 상실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가족의 수시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함께 살지 않는다면 매주 1회 이상은 통화한다. 이때 양쪽 귀로 번갈아 가면서 통화하도록 하고, 평소보다 잘 듣지 못한다면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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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확진 후, 귀 먹먹하면 돌발성 난청 의심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문인석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원인 모르는 돌발성 난청 증가 추세바이러스 감염 합병증이 주된 원인1~2일 사이에 한쪽 귀만 급성 증세먹먹함에 이명-어지럼증도 동반5분 이상 계속되면 ‘돌발성’ 의심초기 치료하면 완치율 90% 넘어10일 이상 치료 끌면 청력 잃을 수도50대 이후 면역력 강화 노력해야고교생 강민지 양(17·가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후 왼쪽 귀가 먹먹해졌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증세는 좋아지지 않았다. 동네 의원에서 스테로이드 약물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마찬가지였다. 강 양은 큰 병원으로 옮겼다. 문인석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검사해보니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왼쪽 귀의 청력이 심각하게 나빠져 있었다. 문 교수는 강 양을 입원시킨 뒤 6일 동안 집중 치료를 시행했다. 퇴원한 후로는 1주 혹은 2주에 한 번씩 상태를 살폈다. 2개월의 치료가 끝난 후 청력은 30% 정도 돌아왔다. 문 교수는 “더 늦게 병원에 왔으면 완전히 청력을 잃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 병을 ‘돌발성 난청’이라 불렀다. 원인을 알 수 없으며, 갑자기 발생한다고 해서 이런 병명이 붙었다. 문 교수는 “코로나19 합병증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난청, 종류 따라 원인-증세 달라난청은, 말 그대로 소리가 잘 안 들리는 병이다. 문 교수는 “크게 전음성 난청과 감각성 난청,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음성 난청은 중이염과 같은 귓속 염증이 원인이다. 이 염증 때문에 청각기관인 달팽이관까지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것. 예전에는 가장 흔한 난청이었지만 환자가 줄어드는 추세다. 염증이 있는 귀에서만 먹먹함, 통증, 고름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급성이라면 하루 만에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만성이라면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증세가 나타난다. 병원에 가면 원인 질환부터 치료한다. 염증을 제거하거나 항생제 치료를 하며 심하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감각성 난청 환자가 늘고 있다. 청각을 담당하는 감각기관이나 청신경 등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감각성 난청은 다시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중에서 소음성 난청과 노인성 난청이 가장 흔하다. 소음성 난청은 지나치게 큰 소리가, 노인성 난청은 노화에 따른 감각기관의 퇴행성 변화가 원인이다. 감각성 난청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대체로 3년 이상, 길게는 10년 이상 진행된 후에야 난청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진행 상황을 잘 모를 수 있다. 대체로 양쪽 귀 모두에서 똑같이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안 들리기만 할 뿐 통증은 발생하지 않는다. 감각성 난청의 경우 약물치료가 크게 효과가 없다. 난청을 유발하는 소음을 멀리하거나 평소에 귀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치료의 일환으로 보청기를 착용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돌발성’ 생길 수도”돌발성 난청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여러 원인이 동시에 작용해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바이러스 감염이 가장 큰 원인이다. 청신경종양, 메니에르병이 원인인 경우는 10% 정도다. 문 교수는 돌발성 난청의 대표적 증세로 귀가 먹먹해짐을 꼽았다. 증세는 한쪽 귀에서만 1~2일 이내에 나타난다. 1주일 이상 서서히 귀가 안 들렸다면 돌발성 난청이 아니다. 이와 함께 환자의 90%에서 이명이 나타난다. 청신경종양이나 메니에르병이 원인이라면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통증은 사람에 따라서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5분 이상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문 교수는 “증세가 아주 짧게 나타난다면 돌발성 난청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증세 지속 시간이 짧더라도 반복될 때는 돌발성 난청일 수 있다. 문 교수는 “하루에 약 10회 이상 증세가 반복된다면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최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돌발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문 교수에 따르면, 한 해외연구결과 코로나19 확진자일수록 돌발성 난청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투입한 쥐에서 귀 안에 있는 달팽이관 세포가 더 손상된다는 실험실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 입원환자 1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3%가 청력이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 교수는 “현재까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청각 신경계에 직접 작용한다는 의학적 확신은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문 교수는 이에 따라 코로나19에 확진된 후 귀가 먹먹해진다면 반드시 이비인후과를 방문할 것을 당부했다. ●“치료 시기 놓치면 청력 영구 상실”다른 난청과 달리 돌발성 난청은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문 교수는 “증세가 나타나고 3일 이내에 치료할 때 효과가 좋다. 아무리 늦어도 7~10일 이내에는 진료를 시작해야 청력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증세가 나타나자마자 병원에 갔을 때 완치율은 90% 이상이다. 일단 나빠지기 시작하면 완치율은 50% 이하로 떨어진다. 너무 늦게 병원에 간다면 청력을 완전히 잃을 가능성이 있다. 신속한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문 교수는 최근 치료한 환자 A 씨 사례를 들었다. A 씨는 귀가 먹먹해지고 어지러운 증세를 느꼈다. 곧바로 병원을 찾았는데, 검사 결과 청신경종양이 발견됐다. 이 종양이 원인인 돌발성 난청이었던 것. A 씨는 일찍 병원에 간 덕분에 난청 치료와 청신경 종양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 결과 청력을 100% 되찾았다. A 씨와 달리 20대의 남성 B 씨는 치료를 미루다 낭패를 봤다. B 씨도 귀가 먹먹하다는 증세를 느꼈다. 하지만 곧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하면서 치료를 받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후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청력의 30%를 잃은 후였다. 그 후 치료가 듣지 않아 B 씨는 사실상 한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문 교수는 “결국 증세가 나타난 후 얼마나 빨리 병원에 가느냐가 치료 성패를 다루는 셈”이라면서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동네 의원에서 얼른 치료를 받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 달 이상 병을 키운다면 대학병원에서도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면역력 키우는 게 최고 예방법”문 교수는 “돌발성 난청은 면역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특히 50대 이후에 몸에 무리가 가도록 일하다 돌발성 난청에 걸린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과로하거나 감기 등의 바이러스 질환에 걸렸다면 충분히 쉬라고 했다. 또 몸이 좋아진 것 같기는 한데, 귀만 먹먹하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것을 당부했다. 사실 돌발성 난청은 특별한 예방법이 없다. 면역력을 키우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문 교수는 △적절히 운동하고 △과로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덜 느끼려고 노력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술은 줄이고 카페인이 든 커피는 하루 한 잔으로 제한할 것을 권했다. 돌발성 난청 환자의 절반 정도가 60대 이상이다. 문제는, 질병이 있는 노인의 경우 돌발성 난청 초기 증세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가족의 세심한 체크가 필요하다. 문 교수는 최근 치료했던 70대 후반의 이정심 씨(가명) 사례를 들었다. 이 씨는 파킨슨병 초기 환자다. 간호사였던 이 씨의 딸은 이틀 만에 이 사실을 알아내고 치료를 받게 했다. 검사 결과 한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문 교수는 “증세를 일찍 발견한 덕분에 2주 만에 증세가 50% 수준을 회복했고, 곧 100%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특히 치매나 인지장애가 있는 노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 수 없다. 그냥 뒀다가 청력을 상실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가족의 수시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함께 살지 않는다면 매주 1회 이상은 통화한다. 이때 양쪽 귀로 번갈아 가면서 통화하도록 하고, 평소보다 잘 듣지 못한다면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돌발성 난청 대비를 위한 생활 수칙 1. 평소 충분히 운동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2.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과로했다면 반드시 쉰다. 3. 술을 줄이고 커피는 하루 한 잔으로 제한한다.4. 바이러스 감염 후에는 귀 상태를 잘 살핀다. 5. 돌발성 난청의 증세에 대해 미리 파악해 둔다.6. 귀가 먹먹한 증세가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간다. 7. 노인이 있다면 가족이 주기적으로 청력을 확인한다. ※자료 : 문인석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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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산행 10년… “축 처졌던 몸, 이제 가뿐”[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조수현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58)는 환자들에게 운동을 강조한다. 그 어떤 약보다 운동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만성피로, 비만, 근 감소 환자들은 대부분 자세가 좋지 않고 근육량도 적다. 운동만 제대로 해도 증세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처방을, 조 교수 자신도 이행한다. 그는 10여 년째 주말 이틀 동안 집 근처 산에 오른다. 하산한 후에는 가끔 남편과 도심을 걷는다. 주중에는 반드시 근력 운동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뜀틀을 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 후로 발레, 수영, 테니스 등 여러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그나마 체력이 좋아졌다. 다만 걷기나 산행과 같은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다. 그랬던 그가 10여 년 전,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까. ● 항암제 부작용 이기려 등산 시작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대수명(83.5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9%다. 3명 중 1명 이상이 평생에 걸쳐 한 번 이상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환자를 고치는 의사라고 암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10여 년 전, 조 교수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모든 암이 그렇듯이 발병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조 교수의 경우 업무나 육아에 따른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항암, 수술, 방사선 치료를 잇달아 받았다. 결과는 좋았다. 조 교수는 재발이나 전이 없이 완치할 수 있었다. 다만 항암제 부작용이 생겼다. 암만 골라 죽이는 표적 치료제를 쓰려 했지만 조 교수와는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통 항암제를 써야 했다. 이런 항암제는 광범위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건강한 조직도 다칠 수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암은 잡았지만, 몸에서 힘이 빠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항암제 후유증이다.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거리를 걷던 중이었다. 조 교수는 할머니보다 자신이 더 느리게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친구와 산행할 때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헉헉댔다. 몸이 힘들어지니 운동을 덜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근육이 빠져 몸은 더 힘들어졌다. 대책이 필요했다. 조 교수는 근육량도 늘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봤다. 그때 집에서 가까운 곳에 ‘안산(鞍山)’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높이 295.9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나 있어 오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조 교수는 안산에 오르기로 했다. ●“산행, 중년 건강 관리에 좋아” 업무량이 많은 평일 주중에는 등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말마다 안산에 올랐다. 산에서 2시간 정도 걸었다. 처음엔 다소 힘이 들었다. 하지만 체력을 회복하려면 꼭 필요한 운동이었다. 이를 악물고 걸었다. 주말에 열리는 학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주말 이틀에는 반드시 산에 올랐다. 점차 익숙해졌다. 걷는 속도도 빨라지고 체력도 점차 좋아졌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예전의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이렇게 1년 동안은 주말 이틀 산행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걸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원하는 목표를 이뤘지만 조 교수는 산행을 이어나갔다. 직접 산에 오르다 보니 중년 이후의 건강 관리로 주말 산행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항암 부작용을 없애려 시작한 운동이 중년 건강 관리 수단으로 바뀐 셈. 조 교수는 요즘에도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2시간 남짓 산에 오른다. 속도는 5.8∼6km 정도로, 다소 빠른 편이다. 때로는 산행을 마친 후에도 남편과 함께 도심으로 1시간 정도 산책을 겸해 걷는다. 산행은 주로 안산에서 한다. 다른 산에 갈 때도 있지만 완만한 길과 가파른 길이 섞여 있는 안산 산행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코스에 따라 걷는 법도 다르다. 가령 경사가 가파른 흙길에서는 런지 자세를 취하며 성큼성큼, 빠르게 걷는다. 이런 자세는 하체 근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돌길에서는 판판한 돌덩어리를 골라 밟아가며 걷는데, 평형감을 키우는 데 좋다. 조 교수는 “최근 등산로에 계단을 까는 산이 많아졌다. 운동 효과가 떨어질 수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상체 세우고 탄력 주며 걸어야”중년 이후에는 운동 부족도 문제지만 잘못된 자세로 운동하는 게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몸이 상할 수 있기 때문. 조 교수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자신만의 산행 원칙을 세웠다. 첫째, 산행은 2시간 내외로 끝낸다. 운동 시간을 더 늘리면 체력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현재의 건강 상태에서 더 악화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 게 운동의 목적이라면 지나치게 길게 운동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둘째, ‘운동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조 교수는 “오늘 산에 오르지 않으면 다음 일주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운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산행을 시작한 초기 6개월 동안에는 비나 눈이 내려도 산에 올랐다. 셋째, 바른 자세로 산에 오른다. 우선 상체를 꼿꼿이 세운다. 걸을 때 상체를 숙여서는 안 된다. 뒤쪽 다리를 앞으로 뻗을 때는 땅바닥을 발로 차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또 스프링처럼 몸을 위아래로 탄력을 주면서 걸어야 무릎에 무리가 덜 간다. 조 교수는 “올바른 자세로 걷거나 산에 오르면 피로감도 덜하고 몸에 나타나는 부작용도 적다”고 말했다. 넷째, 유산소 운동은 원칙적으로 주 5회, 매번 1시간씩은 해야 효과가 크다. 다만 주말 이틀 동안 몰아서 해도 의학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매주 5시간 운동 원칙은 지키려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조 교수는 주말 이틀 동안 등산 4시간, 걷기 1시간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다섯째, 가벼운 워킹화를 신는다. 맨발 산행은 어떨까. 조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평발로 변하기 때문에 충격이 덜 흡수되고, 다치기도 쉽다. 깨끗하고 푹신한 길이 아니면 맨발 산행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 교수는 “그래도 맨발 산행을 하고 싶다면 파상풍 예방접종을 3차까지 마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주 3회 근력 운동도 꾸준히항암제 부작용을 완전히 떨칠 즈음, 허리에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주말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10kg이 넘는 장비를 들고 기차를 탔다가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가 생긴 것. 치료를 겸해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이 근력 운동도 어느덧 7∼8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하며 되도록 매주 3회를 채우려고 한다.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동작도 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동작도 여럿 있단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동작 세 가지를 조 교수가 추천했다. 첫째, 천장을 보고 눕는다. 이 상태에서 배꼽에 힘을 주면서 배를 바닥 쪽으로 끌어당긴다. 동시에 등에도 힘을 주면서 등이 바닥에 닿도록 한다. 배 근육과 등 근육을 동시에 강화하는 이 동작은 척추 환자들이나 노인들의 근력 강화에도 좋다. 10회씩 3세트를 이어 한다. 둘째, 누운 상태에서 배를 들어 올리는 브리지 자세도 좋다. 손으로는 바닥을 민다. 이 또한 10회씩 3세트를 한다. 브리지 동작이 끝나면 그 자세 그대로 한쪽 발을 들어 올린다. 마찬가지로 10회씩 3세트. 이 동작이 끝나면 같은 요령으로 다른 쪽 발을 10회씩 3세트 들어 올린다. 셋째, 서서 하는 동작이다. 우선 앞무릎은 굽히고 뒷무릎을 펴는 런지 자세를 취한다. 공을 가볍게 쥐고 앞으로 팔을 곧게 뻗는다. 이어 좌우로 10회 회전한다. 그 다음에는 발을 바꿔 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3세트를 하면 된다. 팔과 다리, 허리 모두의 근육을 강화하는 전신 운동이다. 조 교수는 “코어 근육 강화 운동은 허리디스크 환자뿐 아니라 중년 이후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 매주 2회 정도면 괜찮지만, 효과를 더 보려면 3회를 채울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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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산행 10년…“축 처졌던 몸, 이제 가뿐”[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조수현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58)는 환자들에게 운동을 강조한다. 그 어떤 약보다 운동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만성피로, 비만, 근 감소 환자들은 대부분 자세가 좋지 않고 근육량도 적다. 운동만 제대로 해도 증세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처방을, 조 교수 자신도 이행한다. 그는 10여 년째 주말 이틀 동안 집 근처 산에 오른다. 하산한 후에는 가끔 남편과 도심을 걷는다. 주중에는 반드시 근력 운동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뜀틀을 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 후로 발레, 수영, 테니스 등 여러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그나마 체력이 좋아졌다. 다만 걷기나 산행과 같은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다. 그랬던 그가 10여 년 전,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까. ●항암제 부작용 이기려 등산 시작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대 수명(83.5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9%다. 3명 중 1명 이상이 평생에 걸쳐 한 번 이상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환자를 고치는 의사라고 암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10여 년 전, 조 교수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모든 암이 그렇듯이 발병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조 교수의 경우 업무나 육아에 따른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항암, 수술, 방사선 치료를 잇달아 받았다. 결과는 좋았다. 조 교수는 재발이나 전이 없이 완치할 수 있었다. 다만 항암제 부작용이 생겼다. 암만 골라 죽이는 표적 치료제를 쓰려 했지만 조 교수와는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통 항암제를 써야 했다. 이런 항암제는 광범위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건강한 조직도 다칠 수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암은 잡았지만, 몸에서 힘이 빠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항암제 후유증이다.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거리를 걷던 중이었다. 조 교수는 할머니보다 자신이 더 늦게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친구와 산행할 때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헉헉댔다. 몸이 힘들어지니 운동을 덜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근육이 빠져 몸은 더 힘들어졌다. 대책이 필요했다. 조 교수는 근육량도 늘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봤다. 그때 집에서 가까운 곳에 ‘안산(鞍山)’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높이 295.9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나 있어 오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조 교수는 안산에 오르기로 했다. ●“산행, 중년 건강 관리에 좋아” 업무량이 많은 평일 주중에는 등산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말마다 안산에 올랐다. 산에서 2시간 정도 걸었다. 처음엔 다소 힘이 들었다. 하지만 체력을 회복하려면 꼭 필요한 운동이었다. 이를 악물고 걸었다. 주말에 열리는 학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주말 이틀에는 반드시 산에 올랐다. 점차 익숙해졌다. 걷는 속도도 빨라지고 체력도 점차 좋아졌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예전의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이렇게 1년 동안은 주말 이틀 산행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걸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원하는 목표를 이뤘지만 조 교수는 산행을 이어나갔다. 직접 산에 오르다 보니 중년 이후의 건강 관리로 주말 산행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항암 부작용을 없애려 시작한 운동이 중년 건강 관리 수단으로 바뀐 셈. 조 교수는 요즘에도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2시간 남짓 산에 오른다. 속도는 5.8~6㎞ 정도로, 다소 빠른 편이다. 때로는 산행을 마친 후에도 남편과 함께 도심으로 1시간 정도 산책을 겸해 걷는다. 산행은 주로 안산에서 한다. 다른 산에 갈 때도 있지만 완만한 길과 가파른 길이 섞여 있는 안산 산행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코스에 따라 걷는 법도 다르다. 가령 경사가 가파른 흙길에서는 런지 자세를 취하며 성큼성큼, 빠르게 걷는다. 이런 자세는 하체 근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돌길에서는 판판한 돌덩어리를 골라 밟아가며 걷는데, 평형감을 키우는 데 좋다. 조 교수는 “최근 등산로에 계단을 까는 산이 많아졌다. 운동 효과가 떨어질 수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상체 세우고 탄력 주며 걸어야”중년 이후에는 운동 부족도 문제지만 잘못된 자세로 운동하는 게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몸이 상할 수 있기 때문. 조 교수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자신만의 산행 원칙을 세웠다. 첫째, 산행은 2시간 내외로 끝낸다. 운동 시간을 더 늘리면 체력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현재의 건강 상태에서 더 악화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 게 운동의 목적이라면 지나치게 길게 운동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둘째, ‘운동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조 교수는 “오늘 산에 오르지 않으면 다음 일주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운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산행을 시작한 초기 6개월 동안에는 비나 눈이 내려도 산에 올랐다. 셋째, 바른 자세로 산에 오른다. 우선 상체를 꼿꼿이 세운다. 걸을 때 상체를 숙여서는 안 된다. 뒤쪽 다리를 앞으로 뻗을 때는 땅바닥을 발로 차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또 스프링처럼 몸을 위아래로 탄력을 주면서 걸어야 무릎에 무리가 덜 간다. 조 교수는 “올바른 자세로 걷거나 산에 오르면 피로감도 덜 하고 몸에 나타나는 부작용도 적다”고 말했다. 넷째, 유산소 운동은 원칙적으로 주 5회, 매번 1시간씩은 해야 효과가 크다. 다만 주말 이틀동안 몰아서 해도 의학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매주 5시간 운동 원칙은 지키려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조 교수는 주말 이틀 동안 등산 4시간, 걷기 1시간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다섯째, 가벼운 워킹화를 신는다. 맨발 산행은 어떨까. 조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평발로 변하기 때문에 충격이 덜 흡수되고, 다치기도 쉽다. 깨끗하고 푹신한 길이 아니면 맨발 산행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 교수는 “그래도 맨발 산행을 하고 싶다면 파상풍 예방접종을 3차까지 마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주 3회 근력 운동도 꾸준히항암제 부작용을 완전히 떨칠 즈음, 허리에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주말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10㎏이 넘는 장비를 들고 기차를 탔다가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가 생긴 것. 치료를 겸해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이 근력 운동도 어느덧 7~8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하며 되도록 매주 3회를 채우려고 한다.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동작도 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동작도 여럿 있단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동작 세 가지를 조 교수가 추천했다. 첫째, 천장을 보고 눕는다. 이 상태에서 배꼽에 힘을 주면서 배를 바닥 쪽으로 끌어당긴다. 동시에 등에도 힘을 주면서 등이 바닥에 닿도록 한다. 배 근육과 등 근육을 동시에 강화하는 이 동작은 척추 환자들이나 노인들의 근력 강화에도 좋다. 10회씩 3세트를 이어 한다. 둘째, 누운 상태에서 배를 들어 올리는 브리지 자세도 좋다. 손으로는 바닥을 민다. 이 또한 10회씩 3세트를 한다. 브리지 동작이 끝나면 그 자세 그대로 한쪽 발을 들어 올린다. 마찬가지로 10회씩 3세트. 이 동작이 끝나면 같은 요령을 다른 쪽 발을 10회씩 3세트 들어 올린다. 셋째, 서서 하는 동작이다. 우선 앞 무릎은 굽히고 뒷무릎을 펴는 런지 자세를 취한다. 공을 가볍게 쥐고 앞으로 팔을 곧게 뻗는다. 이어 좌우로 10회 회전한다. 그 다음에는 발을 바꿔 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3세트를 하면 된다. 팔과 다리, 허리 모두의 근육을 강화시켜주는 전신 운동이다. 조 교수는 “코어 근육 강화 운동은 허리디스크 환자 뿐 아니라 중년 이후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 매주 2회 정도면 괜찮지만, 효과를 더 보려면 3회를 채울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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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로 전이된 4기 방광암, 곧 완치돼요” [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7년 가을, 심재흥 씨(46)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혈뇨는 이틀 후 사라졌다. 인터넷에서 피로 때문에 혈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글을 봤다. 당시 심 씨는 영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몸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심했다. 술과 담배도 많이 했다. 그래서 혈뇨가 나타났으려니 하고 넘어갔다. 해가 바뀌고 2018년 초, 이번엔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병원에 갔다. 하지만 기본적인 소변검사조차 할 수 없었다. 이뇨제를 처방받은 뒤 먹기 시작했다. 몸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2월에 그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다. 의료진은 방광에 혹이 꽉 찼는데 암인 것 같다며 얼른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심 씨는 하유신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의 진료를 예약했다. 진료는 5월로 잡혔다.● 폐로 전이된 4기 방광암 진단그후로도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진료 예정일 바로 전날에 일이 터졌다.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고, 의식도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소변을 오래 보지 못한 탓에 급성 신부전이 나타난 것. 심 씨는 응급처치 도중에 정신을 잃었다.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 심 씨의 심장은 이후 8분 동안 뛰지 않았다.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하 교수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심 씨가 응급실로 즉각 오지 않았다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은 방광에 차 있는 암 덩어리였다. 암 덩어리가 방광을 꽉 채우는 바람에 소변이 나오는 길인 요관을 막아 급성 신부전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심장 쇼크가 일어난 것. 하 교수는 “이 씨처럼 방광암이 너무 커지면 소변량이 적어지면서 신부전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사실 이 씨는 혈뇨가 나왔던 2017년부터 이미 방광암이 진행되고 있었다. 혈뇨가 방광암 초기 증세였던 것인데, 그 사실을 모른 채 1년 넘게 버틴 것이다. 응급처치를 끝내고 이 씨가 안정을 되찾은 후 하 교수는 방광암의 전이 여부를 확인했다. 방광 4분의 1이 차 있을 정도로 암은 커져 있었다. 폐에서도 2∼3cm 크기의 암 5개가 보였다. 림프샘을 거쳐 폐로 전이된 방광암 4기였다. 이 경우 5년 생존율은 평균 15% 정도에 불과하다. ● 집중 항암치료, 폐 전이된 암 사라져4기 암일 때는 수술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항암치료로 암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종양내과 의료진이 먼저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의 전통적 항암제로 치료를 시작했다. 첫 4개월 동안 총 6회의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치료는 3주마다 진행됐다. 입원하지 않고 30분 정도 주사를 맞는 식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항암치료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 심 씨는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기는 했지만, 입맛이 떨어지고 딸꾹질이 나오는 것 말고는 크게 힘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항암치료가 힘들 것 같다며 거부감을 가지는 환자들이 많은데, 최근 부작용을 최소화한 약제들이 많아졌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암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의료진은 항암제를 교체했다. 인체 면역 체계를 변화시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항암제였다. 최근 여러 암에서 꽤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 교수는 “비뇨기계 암 중에서 방광암이 특히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심 씨는 이때부터 약 2년 동안 34회에 걸쳐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폐로 전이됐던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더 주저할 게 없었다. 하 교수와 종양내과 의료진 등이 모여 논의한 끝에 수술을 결정했다. 다만 이 대목에서 고민이 생겼다. 표준치료 원칙을 따른다면 방광을 완전히 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심 씨는 방광을 살려줄 것을 원했다. ● 방광 살리고 암 덩어리만 제거방광을 완전히 들어내는 게 방광암 수술의 표준치료법인 까닭이 있다. 암세포가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 장기까지 암이 침투했다면 그 장기들도 완전히 혹은 일부를 절제해야 한다. 심 씨의 경우 방광에 있는 암 덩어리가 너무 컸다. 이 때문에 방광을 완전히 들어내는 게 옳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 장기에 침투하지 않고 림프샘을 따라 폐에만 전이된 것은 행운이었다. 폐에 있던 암은 사라졌으니 방광 안에 있는 암만 제거하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 게다가 심 씨는 인공 방광을 삽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 교수와 의료진이 다시 논의했다. 환자와도 충분히 상의했다. 최종적으로 방광을 살리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하 교수는 “생존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기에 환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수술법을 결정했다”고 했다. 2019년 2월, 하 교수가 수술을 집도했다. 내시경을 통해 미세한 암까지도 모두 제거했다. 방광을 살려야 하기에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술 시간도 평소보다 4∼5배 더 걸렸다. 수술하면서 다시 주변 장기를 살폈고, 암의 침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후 심 씨는 항암치료를 재개했다. 하 교수는 이와 함께 암의 재발과 전이 여부를 정기적으로 살폈다. 일단 수술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폐에서 완전관해(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가 확인됐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2020년 10월, 심 씨는 항암치료도 끝냈다. 그 후로는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경과만 살피고 있다. 수술 후 4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재발과 전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내년 2월이면 수술 후 5년이 지나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긍정 의지가 암 투병에 큰 도움”하 교수는 “심 씨의 ‘치료 순응도’에 놀랄 때가 많았다. 어떤 치료를 하든지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났고, 큰 부작용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심 씨가 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심 씨가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런 자세가 투병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심 씨의 ‘긍정 의지’는 치료 과정에서 잘 나타났다. 그는 총 40회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든 싸움이었다. 그래도 잘 이겨냈다. 입맛이 없어 식사량은 절반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하루 세 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단백질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식단에는 반드시 고기를 넣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운동과 담을 쌓았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면서 오전에 1만 보, 오후에 1만 보를 걸었다. 이때 시작한 운동이 습관이 돼 요즘에도 하루 1만 보는 무조건 걷는다. 씩씩하게 투병했지만 심 씨도 사실은 무서웠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암이 의심된다고 했을 때 머리가 멍해졌다. 나중에 4기 방광암이라고 했을 때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심 씨는 “다른 방법이 있겠나. 그냥 받아들였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라며 웃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암 진단을 받은 뒤 우울해지거나 불안해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가끔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마음을 바꿔 적극적으로 투병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암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또 있을까. 심 씨는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가 가족의 지원과 배려였다. 심 씨는 “가족이 많이 도와줬고, 덕분에 병과 잘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둘째, 의사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랐다. 심 씨는 “주변에서 암에 좋은 음식이라고 추천해도 의사가 권하지 않으면 단 하나도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암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다가 신장이나 간 독성으로 병을 악화시키는 사례가 있다.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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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로 전이된 4기 방광암, 곧 완치돼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7년 가을, 심재흥 씨(46)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혈뇨는 이틀 후 사라졌다. 인터넷에서 피로 때문에 혈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글을 봤다. 당시 심 씨는 영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몸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심했었다. 술과 담배도 많이 했다. 그래서 혈뇨가 나타났으려니 하고 넘어갔다. 해가 바뀌고 2018년 초, 이번엔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병원에 갔다. 하지만 기본적인 소변검사조차 할 수 없었다. 이뇨제를 처방받은 뒤 먹기 시작했다. 몸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2월에 그 병원에서 컴퓨터단층(CT) 검사를 했다. 의료진은 방광에 혹이 꽉 찼다며 암인 것 같다며 얼른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심 씨는 하유신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의 진료를 예약했다. 진료는 5월로 잡혔다. ● 폐로 전이된 4기 방광암 진단그 후로도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진료 예정일 바로 전날에 일이 터졌다.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고, 의식도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소변을 오래 보지 못한 탓에 급성 신부전이 나타난 것. 심 씨는 응급처치 도중에 정신을 잃었다.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 심 씨의 심장은 이후 8분 동안 뛰지 않았다.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하 교수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심 씨가 응급실로 즉각 오지 않았다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은 방광에 차 있는 암 덩어리였다. 암 덩어리가 방광을 꽉 채우는 바람에 소변이 나오는 길인 요관을 막아 급성 신부전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심장 쇼크가 일어난 것. 하 교수는 “이 씨처럼 방광암이 너무 커지면 소변량이 적어지면서 신부전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사실 이 씨는 혈뇨가 나왔던 2017년부터 이미 방광암이 진행되고 있었다. 혈뇨가 방광암 초기 증세였던 것인데, 그 사실을 모른 채 1년 넘게 버틴 것이다. 응급처치를 끝내고 이 씨가 안정을 되찾은 후 하 교수는 방광암의 전이 여부를 확인했다. 방광 4분의 1이 차 있을 정도로 암은 커져 있었다. 폐에서도 2~3㎝ 크기의 암 5개가 보였다. 림프절을 거쳐 폐로 전이된 방광암 4기였다. 이 경우 5년 생존율은 평균 15% 정도에 불과하다. ● 집중 항암치료, 폐 전이된 암 사라져4기 암일 때는 수술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항암치료로 암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종양내과 의료진이 먼저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의 전통적 항암제로 치료를 시작했다. 첫 4개월 동안 총 6회의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치료는 3주마다 진행됐다. 입원하지 않고 30분 정도 주사를 맞는 식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항암치료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 심 씨는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기는 했지만, 입맛이 떨어지고 딸꾹질이 나오는 것 말고는 크게 힘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항암치료가 힘들 것 같다며 거부감을 가지는 환자들이 많은데, 최근 부작용을 최소화한 약제들이 많아졌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암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의료진은 항암제를 교체했다. 인체 면역 체계를 변화시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항암제였다. 최근 여러 암에서 꽤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 교수는 “비뇨기계 암 중에서 방광암이 특히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심 씨는 이때부터 약 2년 동안 34회에 걸쳐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폐로 전이됐던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더 주저할 게 없었다. 하 교수와 종양내과 의료진 등이 모여 논의한 끝에 수술을 결정했다. 다만 이 대목에서 고민이 생겼다. 표준치료 원칙을 따른다면 방광을 완전히 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심 씨는 방광을 살려줄 것을 원했다. ● 방광 살리고 암 덩어리만 제거방광을 완전히 들어내는 게 방광암 수술의 표준치료법인 까닭이 있다. 암세포가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 장기까지 암이 침투했다면 그 장기들도 완전히 혹은 일부를 절제해야 한다. 심 씨의 경우 방광에 있는 암 덩어리가 너무 컸다. 이 때문에 방광을 완전히 들어내는 게 옳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 장기에 침투하지 않고 림프절을 따라 폐에만 전이된 것은 행운이었다. 폐에 있던 암은 사라졌으니 방광 안에 있는 암만 제거하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 게다가 심 씨는 인공 방광을 삽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 교수와 의료진이 다시 논의했다. 환자와도 충분히 상의했다. 최종적으로 방광을 살리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하 교수는 “생존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기에 환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수술법을 결정했다”고 했다. 2019년 2월, 하 교수가 수술을 집도했다. 내시경을 통해 미세한 암까지도 모두 제거했다. 방광을 살려야 하기에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술 시간도 평소보다 4~5배 더 걸렸다. 수술하면서 다시 주변 장기를 살폈고, 암의 침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후 심 씨는 항암치료를 재개했다. 하 교수는 이와 함께 암의 재발과 전이 여부를 정기적으로 살폈다. 일단 수술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폐에서 완전관해(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가 확인됐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2020년 10월, 심 씨는 항암치료도 끝냈다. 그 후로는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경과만 살피고 있다. 수술 후 4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재발과 전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내년 2월이면 수술 후 5년이 지나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심재흥 씨의 방광암 투병 일지2017년 초, 이틀 동안 혈뇨 발생2018년 2월 방광암 의심 진단5월 급성 신부전으로 응급실행급성 심정지 발생폐 전이 4기 방광암 진단5~9월 전통적 항암치료 6회 시행10월 면역항암제 치료 시작2019년 2월 폐로 전이된 암 소멸방광암 수술(방광 적출하지 않고 보존함).면역항암제 치료 계속 진행.2020년 9월 방광암 완전히 사라짐(완전관해).면역 항암 치료 종료(2년 동안 34회 시행)2023년 8월 수술 후 4년 6개월 경과. 재발-전이 없음.2024년 2월, 수술 후 5년 경과, 완치 판정 가능.● “긍정 의지가 암 투병에 큰 도움”하 교수는 “심 씨의 ‘치료 순응도’에 놀랄 때가 많았다. 어떤 치료를 하든지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났고, 큰 부작용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심 씨가 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심 씨가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런 자세가 투병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심 씨의 ‘긍정 의지’는 치료 과정에서 잘 나타났다. 그는 총 40회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든 싸움이었다. 그래도 잘 이겨냈다. 입맛이 없어 식사량은 절반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단백질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식단에는 반드시 고기를 넣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면서 오전에 1만 보, 오후에 1만 보를 걸었다. 이때 시작한 운동이 습관이 돼 요즘에도 하루 1만 보는 무조건 걷는다. 씩씩하게 투병했지만 심 씨도 사실은 무서웠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암이 의심된다고 했을 때 머리가 멍해졌다. 나중에 4기 방광암이라고 했을 때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심 씨는 “다른 방법이 있겠나. 그냥 받아들였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라며 웃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암 진단을 받은 뒤 우울해지거나 불안해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가끔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마음을 바꿔 적극적으로 투병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암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또 있을까. 심 씨는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가 가족의 지원과 배려였다. 심 씨는 “가족이 많이 도와줬고, 덕분에 병과 잘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둘째, 의사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랐다. 심 씨는 “주변에서 암에 좋은 음식이라고 추천해도 의사가 권하지 않으면 단 하나도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암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다가 신장이나 간 독성으로 병을 악화하는 사례가 있다.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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