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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의 단편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는 심사위원들이 그동안 읽었던 다른 소설들과 달랐습니다. 저는 ‘저주토끼’를 읽고 감동했고, 흥분했어요.” 프랭크 윈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장(60)은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영국에서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저주토끼’를 최종 후보로 선정한 심사위원 5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정보라는 환상적이고 무서운 소재를 사용해 소설을 쓰지만 결국 상실, 트라우마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탐구한다”며 “작품을 읽고 난 뒤 강렬하고 충격적인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마술적 사실주의’가 정보라의 작품에선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평행우주’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건 공포와 환상이라는 소재를 쓰지만 결국 현실에 사는 인간의 감정을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선정된 작품을 쓴 한국 작가는 한강에 이어 정보라가 두 번째다. 그는 “영국 출판사들은 최근에야 한국의 위대한 작가들을 알게 됐다”며 “정보라와 한강뿐 아니라 박상영, 배명훈, 황석영 같은 한국 작가들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작품들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연달아 오르는 건 한국 문학의 남다른 저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에서 정보라의 작품이 비주류 문학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대해 “한국에선 공포, 판타지, 공상과학(SF) 등 장르소설이 주류 독자들이나 주요 문학상에서 간과되곤 한다”며 “장르문학이 훌륭한 문학이 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SF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쓴 영국 작가 메리 셸리(1797∼1851), 추리소설의 대가인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1809∼1849) 역시 장르문학 작가”라며 “장르문학 작가도 다른 작가들처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고 강조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수상작은 26일 발표한다.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의 ‘야곱의 책들(The Books of Jacob)’, 욘 포세(노르웨이)의 ‘새로운 이름(A New Name)’, 가와카미 미에코(일본)의 ‘천국(Heaven)’, 클라우디아 피네이로(아르헨티나)의 ‘엘레나는 안다(Elena Knows)’, 지탄잘리 슈리(인도)의 ‘모래의 무덤(Tomb of Sand)’이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저주토끼’는 수상이 가능할까. “심사위원들이 24일 만난 뒤 최종 수상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회의가 끝나기 전까진 저도 수상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6편의 최종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라는 건 수상이 가능하다는 말이죠. 수상을 하든 못 하든 정보라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주시길 바랍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차분한 목소리로 시인을 소개한다. 시 한 편을 천천히 읽는다. 자신이 느낀 감상을 풀어놓는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을 파고든 최정례의 시 ‘개천은 용의 홈타운’을 낭독하곤 “요즘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 나도 당혹스럽다”고, 홀로 사는 삶을 노래한 이원하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를 읊곤 “나도 혼자 살면서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최근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을 자주 듣고 있다. 10분 남짓한 길이의 오디오클립은 시에 문외한인 독자들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잠들기 전 오디오클립을 틀어놓고 듣다 보니 각 회마다 소개되는 시인이 궁금해졌다. 오디오클립에 소개된 시인의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 책은 황인찬이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오디오클립을 통해 연재한 해설을 활자로 옮긴 에세이다. 총 49편의 시에 대한 황인찬의 감상이 담겨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유명 시인인 그가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풀어놓는 감상은 날카롭기보단 따뜻하다. 시를 샅샅이 해부하기보다는 술 한잔 기울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것 같다. 평론가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의 눈높이엔 딱 맞다. 유명 평론가나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지만 단순하고 쉬운 해설의 진가를 알게 된다. 그의 해설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건 자기 생각을 풀어놓으며 시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그는 곽재구의 시 ‘두부 먹는 밤’을 읽고 “난 먹는 낙이 사는 낙이다”라고 농담을 던진다. 이소연의 시 ‘공책’에 대해선 “난 공책을 일단 사놓고 보는 버릇이 있다. 세상엔 왜 이렇게 예쁜 공책이 많은 건가”라고 실없이 말한다. 그렇다고 감상의 깊이가 지나치게 얕은 것도 아니다. 정현우의 시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를 읽고 “어른스러움이라는 건 슬픔이나 외로움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만의 방식을 갖는 일”이라고 평가하며 시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한다. 시 ‘비숑큘러스’를 쓴 배수연을 “‘숑’이나 ‘큘’ 같은 낯선 언어로 상상력을 이어가는 시인”이라고 정의하며 장점을 부각한다. 최근 만난 정호승 시인은 “요즘은 독자와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시들이 너무 많아 염려된다. 시인들만 읽는 시를 넘어 독자에게 사랑받는 시를 쓰는 젊은 작가들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 쏟아지는 젊은 시인들의 시집에 손이 안 가나 고민하던 내 궁금증을 풀어주는 대답이었다. 황인찬 역시 “시는 혼잣말은 아니다. 혼잣말인 척하면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라고 말한다. 깊은 생각이 담긴 어떤 시는 쉬운 단어로 쓸 수 없다는 말은 동의한다. 다만 어떤 시가 어려워야 한다면 그 시의 해설은 조금 더 친절해도 되지 않을까. 쉽게 풀어 설명한다는 해설(解說)의 뜻 그대로 말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딸에게 엄마는 지구 같은 존재다. 딸은 지구 주위를 빙빙 도는 달처럼 엄마 곁을 맴돈다. 시인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죽는다면 딸은 누구를 맴돌아야 할까. 최근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를 펴낸 김혜순 시인(67·사진)은 28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19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간호하면서 앰뷸런스를 참 많이도 탔다”며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며 시를 썼다”고 했다. “제 엄마라고 다른 분들에 비해 특별하겠습니까. 다만 엄마가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 스스로 산고(産苦)를 느끼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내게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도 줬죠.” 김 시인이 시집을 펴낸 건 2019년 3월 ‘날개 환상통’(문학과지성사) 이후 3년 1개월 만이다. 그는 시집 ‘죽음의 자서전’(2016년·문학실험실)으로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을 수상했다. 지난해 12월엔 스웨덴 시카다상, 이달 6일 삼성호암상을 받았다. 40여 년간 큰 성취를 쌓아온 그가 엄마로 시를 쓴 건 처음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응급실에 3번이나 실려 갔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 시인은 “이 시는 엄마에 관해서, 엄마에 대해서 쓴 것이 아니다”라며 “사라지고 있는 엄마와 함께 시 한 편 한 편을 생성해 나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엄마는 시인들보다 말을 잘한다./우리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죽음과 삶 중간에 있는 거라고 한다./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라고 한다.”(시 ‘체세포복제배아’ 중)고 고백한다. “산호 때문에 울어보기는 처음이다. 엉엉엉 운다. 산호는 죽기 전에 병상의 엄마처럼 백화한다.”(시 ‘더러운 흼’ 중)고 말한다. 시에서 비탄의 정서가 깊게 묻어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단란한 가족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 헤어질 작별의 공동체가 걸어간다고 생각한다”며 “시는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예술이 아니다. 불행을 불행답게, 슬픔을 슬픔답게 하는 게 시”라고 했다. 고통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은 사막이다. 그는 “나는 지금 모래 한 알 한 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자라는 사막에서//우리는 부재로 가득 차 세상을 살아”(시 ‘모래의 머리카락’ 중)간다고 생각한다. “결국 각자의 사막으로/떠나갈 일만 남았는가”(시 ‘눈물의 해변’ 중)라고 묻는다. 왜 사막이냐고 묻자 그는 망설이다 답했다. “엄마와 저의 시간이 만든 나날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곳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저는 환상의 자리인 그곳을 사막이라고 부릅니다. 엄마와의 시간과 나날이 있는 그곳을요. 저는 늘 사막에 있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0억 원. 네이버웹툰과 문피아가 다음 달 11일부터 진행하는 ‘2022 지상최대웹소설공모전’의 총상금이다. 대상 1억 원, 최우수상 5개 작품 각각 5000만 원 등 총 10억 원의 상금은 국내 문학 공모전 중 최고 금액이다. 문학동네 소설상 상금인 5000만 원을 비롯해 국내 순수문학 상금을 훌쩍 뛰어넘는다. 웹소설 업계에서도 카카오페이지가 올 2, 3월 진행한 ‘2022 스테이지 웹소설공모전’의 총상금 5억 원의 2배다. 왜 거액을 들여 공모전을 여는 걸까. 경기 성남시 네이버웹툰에서 26일 만난 박제연 네이버웹툰 웹소설총괄리더(45)와 송준서 문피아 웹소설본부장(46)은 “여러 업계에서 일하는 다양한 신인 작가들을 웹소설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했다. “창작의 세계엔 경계가 없어요.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으로 커지면서 순수문학, 드라마, 영화 작가 지망생들이 웹소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죠. 기성 작가와 신인 작가가 모두 응모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계급장 떼고 웹소설의 세계에서 평가받는 거죠.”(박 리더)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9월 문피아 최대 주주가 됐다. 웹소설 업계의 큰손인 두 플랫폼이 손을 잡은 건 지식재산권(IP)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공모전을 여는 건 웹소설의 다양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네이버웹소설의 플랫폼인 네이버시리즈에 현재 20만 편 이상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송 본부장은 “현직 의사, 검사, 형사도 직업의 세계를 판타지 웹소설로 창작하고 있다”며 “트렌드가 수시로 바뀔 정도로 독특한 웹소설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박 리더는 “문피아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웹소설 시장에 뛰어들기 전부터 ‘찐 독자’의 취향을 파악해 왔기에 협업이 시너지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송 본부장은 “공모전은 두 플랫폼이 함께하는 첫 시도로, 웹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누적 조회수 1억7400만 회를 넘어선 데 이어 현재 영상화가 진행 중인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화제가 되는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자신 있게 답했다. “끊임없이 투자해야 제2의 ‘전지적 독자 시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공모전을 여는 건 좋은 작품뿐 아니라 좋은 작가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올해 웹소설 시장을 이끌어갈 작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성남=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0억 원. 네이버웹툰과 문피아가 다음달 11일부터 진행하는 ‘2022 지상최대웹소설공모전’의 총 상금이다. 대상 1개 작품 1억 원, 최우수상 5개 작품 각 5000만 원 등 10억 원의 상금은 국내 문학 공모전 중 최고 금액이다. 문학동네 소설상 상금인 5000만 원을 비롯해 국내 순수문학 상금을 훌쩍 뛰어넘는다. 웹소설 업계에서도 카카오페이지가 올 2~3월 진행한 ‘2022 스테이지 웹소설공모전’의 총 상금 5억 원의 2배에 달한다. 왜 이런 거액을 들여 공모전을 여는 걸까. 26일 경기 성남시 네이버웹툰에서 만난 박제연 네이버웹툰 웹소설 총괄 리더(45)와 송준서 문피아웹소설 본부장(46)은 “여러 업계에서 일하는 다양한 신인 작가들을 웹소설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창작의 세계엔 경계가 없어요. 웹소설 시장 규모가 6000억 원으로 커지면서 순수문학, 드라마, 영화 작가 지망생들이 웹소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죠. 기성작가와 신인작가가 모두 응모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계급장 떼고 웹소설의 세계에서 평가 받는 거죠.”(박 리더) 두 플랫폼이 공모전을 여는 건 웹소설의 다양화를 꾀하기 위한 전략이다. 네이버웹소설의 플랫폼인 네이버시리즈의 2018~2021년 연평균 성장률은 50%에 달한다. 네이버시리즈에 현재 20만 편 이상이 연재되고 있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송 본부장은 “현직 의사, 검사, 형사도 직업의 세계를 판타지 웹소설로 창작하고 있다”며 “트렌드가 수시로 바뀔 정도로 독특한 웹소설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공모전은 응모자가 온라인 사이트에 직접 작품을 연재하는 ‘오픈 연재’라는 방식을 택했다. 순수문학 공모전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 작품을 연재하는 웹소설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박 리더는 “독자와의 호흡을 중시하자는 차원에서 심사위원이 독자의 평가를 반영해 수상작을 결정한다”고 했다. 송 본부장은 “공모전 참가 조건이 1화 당 4000자 이상, 총 30화 이상”이라며 “웬만한 장편소설 분량인 12만 자 이상을 쓸 수 있는지 예비 웹소설 작가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9월 문피아 최대 주주가 됐다. 웹소설 업계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두 플랫폼이 손을 잡은 건 지식재산권(IP)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영상이나 웹툰과 비교해 작품 길이가 길고 기승전결이 탄탄한 웹소설은 IP의 원천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 박 리더는 “문피아는 IT(정보통신) 기업들이 웹소설 시장에 뛰어들기 전부터 ‘찐 독자’를 취향을 찾아온 만큼 협업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송 본부장은 “공모전은 두 플랫폼이 함께 하는 첫 행보라는 점에서 웹소설의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잣대”라고 했다. 누적 조회수 1억7400만 회를 넘어서고 현재 영상화가 진행 중인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자신 있게 답했다. “끊임없이 투자해야 제2의 ‘전지적 독자 시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공모전을 여는 건 좋은 작품 뿐 아니라 좋은 작가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올해를 이끌 웹소설 작가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K팝을 이끄는 국내 주요 기획사 대표들이 빌보드의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에 선정됐다. 빌보드는 25일(현지 시간) 올해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에 이성수 탁영준 SM 공동대표와 박지원 하이브 최고경영자(CEO), 신영재 빅히트뮤직 대표이사를 포함시켰다. 빌보드는 2014년부터 매년 세계 음악시장을 움직이는 인물들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빌보드는 SM의 두 대표에 대해 “SM의 많은 성과 중 하나는 메타버스 걸그룹 에스파의 성공”이라며 “SM은 우리가 상상한 방대한 버추얼 세상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빌보드는 박지원 CEO에 대해선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하이브로 기업을 리브랜딩하고, 음악의 제작 및 배급, 기술, 공연 등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며 음악 산업의 혁신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신영재 대표에 대해선 “BTS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팝스타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했다”고 설명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계약기간 4년, 판매량 보고 3개월 간격. 최소 선인세 20만 달러(약 2억4590만 원)를 포함해 인세 8% 지급.’ 25일 출판계에 따르면 이민진 작가(54)가 소설 ‘파친코’(2018년)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8년)의 판권 계약에 앞서 국내 출판사들에 이 같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작가는 “기존 출간본의 번역을 그대로 사용해 가능한 한 빨리 책을 내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베스트셀러인 ‘파친코’는 지난달부터 애플TV플러스에서 동명 드라마가 공개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통상 계약기간 5년, 판매량 보고 간격 1년인 국내 출판계 관례에 비춰 까다로운 조건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판권 계약이 종료된 책에 대해 새로운 계약조건을 내세우는 건 작가 고유의 권리라는 시각도 있다. 앞서 이 작가는 ‘파친코’를 국내 출간한 후 기존 판권 계약을 맺은 문학사상의 마케팅과 편집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사상 관계자는 “초판을 찍은 후 주인공 이름을 ‘순자’에서 ‘선자’로 바꾸는 등 작가의 여러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는데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학사상과 재계약이 사실상 불발된 만큼 이 작가는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문학사상 출간 책의 정가는 1, 2권 합쳐 2만9000원. 출판계는 최소 선인세 20만 달러 등 각종 계약조건을 맞추려면 책값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출판사 간 계약경쟁이 치열해 자칫 독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일(현지 시간) 콜롬비아 보고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소설가 은희경의 강연엔 각국 독자 200여 명이 몰렸다. 질문이 쏟아져 정해진 시간을 초과했고 사인회도 30분 넘게 진행됐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K팝과 K드라마를 접한 뒤 한국 문화에 빠진 10대 독자가 많았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문학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는 애플TV플러스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문학의 성과가 눈부시다. 지난해 해외에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은 186건으로, 2011년(54건)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는 약 200개 작품이 각국에서 출간된다. 지난해 해외에서 수상한 작품은 8개나 된다. 올해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이수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정보라),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수상(손원평) 등 낭보가 쏟아지고 있다.》○ ‘비주류’에서 피어난 K문학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었기 때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영화 ‘미나리’,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던 외국 팬들이 한국 문학 작품을 찾아보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한국 문학의 저변이 넓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한국 문학계에서는 기존에 ‘비주류’로 취급되던 분야에서 성공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달 7일 단편소설집 ‘저주토끼’(아작)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공포, 공상과학(SF) 소설을 주로 써온 정보라는 그동안 국내에서 유명 문학상을 받은 적이 없다. 아작도 장르문학 책을 주로 펴내는 소형 출판사다. 이는 과거 국내 대형 출판사가 키운 순수문학 작가의 성공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해외 37개국에 판권이 팔린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2008년·창비),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년·창비)는 대형 출판사인 창비에서 출간됐고 이들 작가도 창비나 문학동네에서 주로 책을 내왔다. ‘저주토끼’를 번역한 허정범 번역가는 “그동안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은 순수문학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한국에는 장르문학 작품도 풍부하다. ‘저주토끼’의 성과는 우리나라 장르문학의 문학성을 인정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이 언어 장벽을 넘는 길을 찾은 것도 해외에서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림책이다. 지난달 그림책 작가 이수지는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아동문학상 중 세계 최고 권위를 지녀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한국 작가가 받은 건 처음이다. 이수지의 ‘우로마’(책읽는곰), 이지은의 ‘이파라파냐무냐무’(사계절) 등이 3대 아동문학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그림책은 글보다는 그림 위주로 구성돼 있어 해외 독자가 보는 데 어려움이 없다”며 “높은 교육열 때문에 빠르게 발전한 한국 그림책은 번역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번역할 글이 적어 해외에서 빠르게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번역 출간되는 언어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청신호다. 2021년 한국 문학 작품이 번역된 언어는 29개에 달한다. 10년 전인 2011년 15개 언어에 비하면 2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치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뿐만이 아니다. 그리스어, 루마니아어, 보스니아어, 우크라이나어, 크로아티아어 등으로도 번역 출간되고 있다. 다양한 나라가 한국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OTT 업고 이산문학 열풍까지 한국 문학 열풍은 한국인 출신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이산문학’(디아스포라 문학) 작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산문학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작품으로 제작되면서 전방위적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7세 때 서울을 떠나 뉴욕에 정착한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이 쓴 장편소설 ‘파친코’다. 지난달 25일 애플TV플러스에서 공개를 시작한 동명의 드라마는 세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설은 미국 온라인 서점 아마존북스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70위에 올랐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세계 문학 시장에선 포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산문학이 이미 주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며 “해외 독자들이 흑인, 유대인에 이어 한국 이산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마존북스 베스트셀러 순위로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산문학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저변을 넓혀 가는 것도 인기 이유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출간된 뒤 아마존북스 아시안&아메리칸 분야 1위에 오른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문학동네)는 한국계 미국 작가 미셸 조너의 성장기를 담았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한국계 프랑스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장편소설 ‘속초에서의 겨울’(북레시피)은 혼혈 한국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 호평을 받아 지난해 12월 미국 전미도서상에 선정됐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요즘 이산문학 작가들은 한국인의 이민사를 고통스러운 역사의 단편으로만 바라보기보단 희로애락의 여러 측면에서 바라본다”며 “작가들의 경험이 다양해지면서 소재도 풍부해지고 있다”고 했다.○ “진출 경로 확대하고 번역가 키워야” 출판계에선 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을 반기면서도 가요, 드라마 등 다른 문화 콘텐츠의 활약에 비해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글로벌 OTT라는 새로운 통로가 생긴 영화 및 드라마, 세계인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접할 수 있는 K팝과 달리 해외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경로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은 한국문학번역원이나 출판사, 일부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 에이전시와 판권을 계약한 뒤 이뤄진다. 이들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아 한국 문학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한국 문학을 해외에 더 많이 소개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번역가를 키우고 국가 차원의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을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경쟁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원천 콘텐츠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드라마 ‘파친코’가 공개된 뒤 원작 소설의 인기가 더욱 치솟은 것처럼 문학은 다른 콘텐츠의 원천 콘텐츠로서 핵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각 분야의 한류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문학과 다른 문화 콘텐츠를 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1945년 3월 9일. 미 육군 항공대는 일본 도쿄에 무차별 대규모 공격을 퍼붓는 ‘미팅하우스 작전’을 시작한다. B-29 폭격기 300대로 구성된 제21폭격기 부대는 도쿄 중심가에 폭탄을 무더기로 떨어뜨렸다. 대량살상무기인 네이팜탄을 1665t 투하했다. 도시는 화염에 휩싸였다. 여성들은 자녀를 안고 뛰어다니다 불타 죽었다. 민간인들은 운하로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다. 단 3시간의 폭격으로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 타는 냄새가 폭격기 안까지 파고든 탓에 미군은 부대로 복귀한 뒤 B-29를 소독했다. 제21폭격기 부대는 이후 일본 오사카, 고베 등 67개 도시에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투하했다. 폭격 때마다 민간인들이 수없이 희생됐다. 같은 해 8월 6일 미군은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일왕은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다. 민간인들을 배제하지 않은 공격을 선택한 미군의 전략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것이다. 저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뉴요커에서 일한 저널리스트다. 한국에선 1만 시간을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한 사회과학서 ‘아웃라이어’(2009년·김영사)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대해 썼지만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가 신음하고 있는 상황이 머릿속에 스쳐간다. 저자는 묻는다.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과 올바르게 끝내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하던 1944년 미군은 괌, 사이판 등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를 점령한다. 일본군이 주둔하던 마리아나제도는 곧 미군이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변모한다. 당시 제21폭격기 부대를 이끌던 건 헤이우드 핸셀 준장이다. 핸셀은 폭격 대상을 세밀하게 조준해 타격하는 ‘정밀폭격’ 전술을 선호했다. 낮에 폭격기를 출동시킨 뒤 공장, 발전소 등 적국의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핸셀의 전략은 연달아 실패했다. 적의 대공포를 피하려 구름 위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정확한 위치에 폭탄을 투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핸셀은 민간인 학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항변했지만 미국 본토에선 결국 새 지휘관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 소장을 보냈다. 르메이의 선택은 핸셀과 정반대였다. 르메이는 정밀폭격을 포기했다. 르메이는 적의 대공(對空)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야간공습을 택했다. 표적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보단 광범위한 공격을 택했다.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을 공략하기 위해 최대 3000도까지 치솟는 네이팜탄을 썼다. 저자가 ‘사탄의 제안’이라고 부르는 선택이었지만 르메이에겐 명분이 있었다.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것은 군 지휘관의 책임이자 자기 부하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전쟁에선 단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메이의 결정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베트남전 등 다른 전쟁에서 네이팜탄 사용은 일상화됐다. 하지만 르메이의 결단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만약 르메이가 주저했다면 일본의 항복과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을지 모른다. 네이팜탄은 현재 사용이 금지돼 있다. 저자는 핸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영웅시하진 않는다. 르메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평가하지만 역시 비난하진 않는다. 다만 그날 벌어졌던 ‘어떤 선택’을 재검토해 보자고 말한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에. 당신은 핸셀과 르메이 중 누가 옳다고 생각하는가.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45년 3월 9일. 미 공군은 일본 도쿄에 무차별 대규모 공격을 퍼붓는 ‘미팅하우스 작전’을 시작한다. B-29 폭격기 300대로 구성된 제21폭격기 부대는 도쿄 중심가에 폭탄을 무더기로 떨어트렸다. 대량살상무기인 네이팜탄을 1665t 투하했다. 도시는 화염에 휩싸였다. 여성들은 자녀를 안고 뛰어다니다 불타 죽었다. 민간인들은 운하로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다. 단 3시간의 폭격으로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 타는 냄새가 폭격기 안까지 파고든 탓에 미군은 부대로 복귀한 뒤 B-29를 소독했다. 제21폭격기 부대는 이후 일본 오사카, 고베 등 67개 도시에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투하했다. 폭격 때마다 민간인들이 수없이 희생됐다. 같은 해 8월 6일 미군은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일왕은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다. 민간인들을 배제하지 않은 공격을 선택한 미군의 전략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것이다. ‘어떤 선택의 재검토’(김영사)를 쓴 말콤 글래드웰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뉴요커에서 일한 저널리스트다. 한국에선 1만 시간을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한 사회과학서 ‘아웃라이어’(2009년·김영사)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대해 썼지만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가 신음하고 있는 상황이 머리 속에 스쳐간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과 올바르게 끝내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하던 1944년 미군은 괌, 사이판 등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를 점령한다. 일본군이 주둔하던 마리아나제도는 곧 미군이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변모한다. 당시 제21폭격기 부대를 이끌던 건 헤이우드 핸셀 준장이다. 핸셀은 폭격 대상을 세밀하게 조준해 타격하는 ‘정밀폭격’ 전술을 선호했다. 낮에 폭격기를 출동시킨 뒤 공장, 발전소 등 적국의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핸셀의 전략은 연달아 실패했다. 적의 대공포를 피하려 구름 위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정확한 위치에 폭탄을 투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핸셀은 민간인 학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항변했지만 미국 본토에선 결국 새 지휘관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 소장을 보냈다. 르메이의 선택은 핸셀과 정반대였다. 르메이는 정밀폭격을 포기했다. 르메이는 적의 대공(對空)공격을 피하기 위해 야간공습을 택했다. 표적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보단 광범위한 공격을 택했다. 목재 건물이 많은 일본을 공략하기 위해 최대 3000도까지 치솟는 네이팜탄을 썼다. 저자가 ‘사탄의 제안’이라고 부르는 선택이었지만 르메이에겐 명분이 있었다.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것은 군 지휘관의 책임이자 자기 부하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전쟁에선 단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메이의 결정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베트남전 등 다른 전쟁에서 네이팜탄 사용은 일상화됐다. 하지만 르메이의 결단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만약 르메이가 주저했다면 일본의 항복과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을지 모른다. 저자는 핸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영웅시 하진 않는다. 르메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평가하지만 역시 비난하진 않는다. 다만 그날 벌어졌던 ‘어떤 선택’을 재검토해보자고 말한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에. 당신은 핸셀과 르메이 중 누가 옳다고 생각하는가.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영국 문학평론가들과 독자들은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이 없어요. 작품성이 높은 정보라의 단편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는 확실히 부커상 수상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를 영국에서 펴낸 혼퍼드 스타 출판사의 앤서니 버드 대표(35)는 19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야곱의 책들(The Books of Jacob)’을 포함한 6편의 최종 후보들 중 ‘저주토끼’의 수상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 그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공상과학(SF) 소설 ‘증언들’(황금가지)이나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의 공포 소설 ‘바르도의 링컨’(문학동네)이 각각 2019년과 2017년에 부커상 본상을 받은 사실을 거론했다. 그는 “‘저주토끼’는 영국에서 SF와 공포 소설 성격을 모두 지닌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기대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혼퍼드 스타는 동아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다. 김동인(1900∼1951)과 이효석(1907∼1942) 등의 근대 소설뿐 아니라 배명훈, 정보라 등 현대 한국 작품을 꾸준히 영국에서 번역 출간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을 영국에서 펴내는 이유에 대해 “‘저주토끼’는 감동적이고 충격적이며 흥미롭고 심오한 책”이라며 “모든 이야기가 훌륭한 단편소설집을 읽는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문 일이라 출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이나 정보라처럼 재능 있는 작가들을 보유한 건 한국에 행운”이라면서도 번역가들의 노력을 강조했다. 현지 문화에 맞춰 작품을 적절히 번역하는 건 창작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른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은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세운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를 통해 영국에 소개됐다”고 말했다. 혼퍼드 스타는 정보라의 장편소설 ‘붉은 칼’(2019년·아작)과 단편소설집 ‘그녀를 만나다’(2021년·아작)도 영국에 소개할 계획이다. 끝으로 그에게 한국 문학작품의 해외 진출 방안을 물었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 독자들이 자국(自國) 작품을 사서 읽는 겁니다. 그래야 영국에 있는 저 같은 해외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읽고 사랑에 빠질 수 있겠지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근 애플TV플러스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는 이민진(54)의 원작 소설 ‘파친코’의 최소 선인세(출판 계약금)가 20만 달러(약 2억4590만 원)로 정해졌다. 출판계에서는 입찰 경쟁이 붙으면 최종 선인세가 1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일본 유명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64)보다 높은 것으로, 무라카미 하루키(73)의 선인세 수준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17일 출판계에 따르면 이민진의 판권 계약을 대행하고 있는 에릭양 에이전시가 ‘파친코’ 판권계약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 선인세로 20만 달러를 이달 중순 주요 출판사들에 통보했다. 그의 전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8년) 판권도 함께 넘기는 조건이다. 마감일은 18일. 앞서 2018년 3월 문학사상 출판사가 판권을 따내 출간한 기존 책은 21일 계약이 만료된다. 출판계는 드라마 흥행 여파로 원작 판매가 급증한 만큼 최종 선인세가 10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파친코’ 1, 2권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13일 판매가 중지되기 직전까지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휩쓸었다. 문학사상 출간 기존 ‘파친코’ 정가(1, 2권 합쳐 2만9000원)를 기준으로 출판사의 통상 마진(60%)을 감안하면 새로 계약한 출판사는 2만8000권 이상을 팔아야 최소 선인세 20만 달러를 지불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다. 출판계 관계자는 “드라마 ‘파친코’ 인기가 치솟고 있는 만큼 별도의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는다”며 “드라마의 시즌 2, 3 제작 가능성도 있어 향후 추가 수익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민진이 문학사상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판권 입찰을 결정한 데 대해 출판계는 선인세를 높이기 위한 의도로 보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기존 책의 한글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명 해외 작가들에 대한 선인세는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출판계에 따르면 2017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문학동네)는 선인세가 20억∼3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키의 2009, 2010년 장편소설 ‘1Q84’(문학동네·3권)는 약 10억 원, 2013년 출간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는 약 16억 원으로 추정된다. 추리소설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2016년 장편소설 ‘라플라스의 마녀’(현대문학)는 약 2억 원의 선인세가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출판계가 국내 작가를 키우기보다 과도한 선인세 경쟁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 놓고 돈 먹기’식 판권 경쟁이 출판시장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은 제작과 광고, 마케팅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43만 부만 팔려 출판사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유명 작가의 신작이나 영화, 드라마의 원작이 베스트셀러를 독차지하는 국내 출판계 풍토가 선인세를 높이고 있다”며 “특정 해외작가의 선인세를 높이는 데 골몰하기보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파친코 게임은 삶에 대한 은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공평하지만 어쨌든 게임을 해야 하거든요.” 최근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흥행으로 국내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원작 소설 ‘파친코’(2018년)의 이민진 작가(54·사진)는 17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친코는 지난달 25일 애플TV플러스에 드라마가 공개된 후 해외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전체 베스트셀러 70위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1, 2권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차지했다. “19세 때 파친코를 처음 쓸 생각을 했는데 30년이 지나서야 책을 출간했어요. 오직 사회적,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것에만 신경을 썼어요.” 이민진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난 재미교포 1.5세다. 그의 이런 경험이 부산과 일본 오사카,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소설 ‘파친코’는 20세기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재일교포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작품 계획과 관련해선 “재미 한국 교포들의 교육열을 담은 3번째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7일 오후 7시 반 정보라 작가(46)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단편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선정된 직후라 소감을 묻기 위해서였다. 지하철 안 시끌시끌한 소음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냐, 기분이 어떠냐고 목소리를 높여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지금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집회에 참여하고 오는 길이라서 너무 추워요. 그게 소감이에요.” 이 책은 정보라가 지난해 8월 펴낸 중·단편소설집이다. ‘저주토끼’에 환상적인 이야기가 주로 담겼다면 이 책은 조금 현실적인 경향이 담긴 게 특징이다. 특히 표제작 ‘그녀를 만나다’엔 사회 비판적인 시각이 짙게 담겨 있다. 집회에 자주 참여하는 할머니가 테러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건을 풍자적으로 다룬다. 군 복무 중 외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당한 고 변희수 하사 사건, 성별 나이 인종 학력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안도 스치듯 언급된다. 단편소설 ‘Maria, Gratia Plena’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프랑스 남성 경찰관이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를 권총으로 쐈다. 경찰관의 아내는 가정폭력에 오래 시달렸다. 신고를 해도 남편이 경찰관이라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다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가 살아남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고민하다 과학적 상상력을 더해 쓴 것이 이 작품이다. 가정폭력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현실과 그 이후의 고통을 작품에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정보라는 투쟁하는 작가다. 그는 오랫동안 세월호 유가족 천막을 지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에도 참여했다. 그는 사회인으로서도, 작가로서도 애도하는 데 애를 쏟는다. 그가 ‘작가의 말’에서 “내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상실된 사람들을 누가 기억해줄 것인가. 그리고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고 말하는 이유다.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정보라의 작품 세계를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마술적 사실주의’라 평가했다. 이 평가처럼 그는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환상의 세계를 쌓아 올린다. 하지만 그 너머엔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살며 투쟁하는 작가의 의식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저주토끼’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여러 질의응답이 오갔는데 누군가 취미생활이 뭐냐고 물으니 정보라는 겸연쩍게 웃으며 “데모”라고 답했다. 이 답변이 작가 정보라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00년 정호승 시인(72)은 여행으로 떠난 부처의 탄생지 네팔 룸비니에서 작은 흙 부처상을 샀다. 흙먼지가 부는 길 한가운데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팔던 부처상이었다. 그는 부처상을 한국에 가져와 애지중지했다. 금속이 아닌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탄생한 게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2004년·창비)에 담긴 시 ‘산산조각’이다. ‘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시구에는 삶의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가르침이 녹아 있다. 15일 출간된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시공사)에서는 이 시가 우화소설 ‘룸비니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났다. 12일 만난 정 시인은 “우화소설에선 부처상이 화자가 돼 한낱 순례 기념품인 자신을 부처라고 믿는 중년 남성을 바라본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처상은 나락에 떨어진 중년 남성에게 희망을 북돋아주는 부처님이 돼 간다”고 말했다. “1972년 등단 후 시인으로 50년간 활동하며 우화소설집을 펴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에 담긴 서사를 촘촘한 그물망으로 건져 올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는데 그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우화를 선택했죠.” 신작에는 17편의 우화소설이 담겼다. 주인공은 모두 인간의 눈으로 보면 하찮은 것들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나를 더럽히고 내 살을 헐어서 남을 깨끗하게 해준다”(소설 ‘걸레’)고 생각한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크게 깨닫게 되는 날”(소설 ‘숫돌’)이 올 때까지 자기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는 “영국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우화소설 ‘동물농장’으로 공산주의의 모순을 지적했다”며 “우화소설은 시의 마음과 산문의 깊이를 함께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작에는 그의 경험과 종교적 성찰이 짙게 묻어 있다. 성철 스님(1912∼1993)의 다비식을 본 뒤 그 풍경을 그린 시 ‘새’는 우화소설 ‘참나무 이야기’로 만들어져 겸허함의 가치를 전한다.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선종 이후 쓴 시 ‘명동성당’은 우화소설 ‘추기경의 손’으로 재탄생해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은유’로 경전을 쓴 시인이라고 생각해 가톨릭 신자지만 절에 가면 삼배(三拜)를 한다”며 “작업실 책상 위에 십자고상(十字苦像·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수난을 새긴 형상)과 불상이 함께 놓여 있다”고 했다. 1972년 동시, 1973년 시, 1982년 소설로 신춘문예에 세 번이나 당선된 그의 내공 덕일까. 평소 정제된 서정시로 사랑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그의 단아한 문장은 신작에서도 아름답게 빛난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노래했기 때문일 테다. 현학적으로 쓰인 ‘요즘 시’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시는 혼자 쓰는 일기가 아니라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독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시들이 너무 많아 염려돼요. 시인들만 읽는 시를 넘어 독자에게 사랑받는 시를 쓰는 젊은 작가들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변기에서 머리가 나와요. 엄청난 상상력이죠.”(허정범 번역가) “변비가 생긴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정보라 작가)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단편소설 ‘머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두 사람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에 실린 이 작품은 화장실 변기에서 머리가 튀어 나오는 내용이다. 공포와 유머가 뒤섞인 독특한 작품을 써내고 번역한 두 사람다운 4차원적 답변이었다. ‘저주토끼’의 해외 출간을 담당하는 그린북 에이전시는 이날 정보라 작가의 장편소설 ‘붉은 칼’(2019년·아작)과 단편소설집 ‘그녀를 만나다’(2021년·아작)가 영국 출판사 혼퍼드 스타를 통해 영국판으로 번역 출간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작품도 허 번역가가 번역한다. 허 번역가는 “‘저주토끼’는 누가 먼저 낚아챌까 봐 비밀리에 작업했다”며 “정 작가가 쓰는 작품은 무조건 번역하고 싶고 죽을 때까지 번역하고 싶다”고 했다. 허 번역가는 또 “그동안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은 중년 남성 소설가들 위주, 특정한 기성세대 문학 중심으로 전개됐다”며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징어게임’과 ‘브리저튼’은 모두 장르물”이라고 했다. 정 작가는 단편소설집 ‘여자들의 왕’(아작)과 장편소설 ‘호’(아작)를 각각 올 6, 8월 출간한다. 정 작가는 “현재는 해양수산물 시리즈를 쓰고 있는데 문어는 썼고 상어, 멸치, 김 등을 소재로 새로운 소설을 쓸 예정”이라며 “포항 남자를 만나 포항으로 시집을 갔는데 제사상에 너무 큰 문어가 오르는 게 충격적이라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정 작가는 “주목받지 못하던 시기에 내 마음대로 써보자 하며 소설을 썼다”며 “소수자, 고통, 상실에 대해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정보라 작가(46)의 단편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가 미국 캐나다 등 16개국에서 출간된다. 허정범 번역가(41·안톤 허)가 영어로 옮긴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국내 작품의 해외 판권 계약을 맡고 있는 김시형 그린북 에이전시 대표는 “저주토끼 판권이 북미 대형 출판그룹인 아셰트북그룹 산하 앨곤퀸 출판사에 판매됐다”고 13일 밝혔다. 미국과 캐나다 출판시장을 겨냥한 이번 판권 계약에는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이 포함된다. 이번 북미시장 판권 입찰에는 미국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와 펭귄랜덤하우스도 참여했다. ‘저주토끼’는 지난달 11일 부커상 1차 후보에 오르기 전 영국, 중국, 스페인, 인도네시아, 터키, 폴란드, 일본까지 7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1차 후보에 오른 후 최근까지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알바니아, 루마니아,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 독일까지 모두 9개국과 추가로 판권을 계약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아셰트북그룹은 매년 1600권 이상의 책을 내는 대형 출판 유통사다.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도 이 그룹 계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제천복합건물 화재,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2019년 강원 고성군 산불, 2021년 이천 화재, 2022년 광주 아이파크 참사….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재난에선 재난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현대사회는 재난경보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경보사회’다. 매일매일 일상적인 우리 삶 속에서 재난경보가 상시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근 출간된 ‘국가 위기관리와 긴급재난경보’(박영사)엔 이런 고민이 담겨 있다. 저자인 이연 선문대 명예교수(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는 “우리는 아파트 실내나 빌딩 내에서 울려 퍼지는 화재경보에서부터 TV나 라디오, 스마트폰 등에서 울리는 각종 재난경보에 이르기까지 경보의 홍수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우리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재난경보’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대응해야만 우리들의 목숨과 삶의 터전을 보전할 수 있다. 최근 급속한 기후변화와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긴급재난경보’를 신속하게 전달해 주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다시 한 번 ‘재난경보시스템’의 중요성을 점검해야 할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 이 교수는 “재난경보는 공적 정보로 물이나 공기와 같이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신속하게 재난경보를 공유할 수 있는 한국형 얼럿(K-Alert) 시스템개발이 시급하다”며 “오늘날 ‘감염병’ 팬데믹도 재난 약자가 종식되어야 끝날 수 있다”고 말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단편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의 표제작 ‘저주토끼’는 끔찍한 소설이다. 대대로 저주용품을 만드는 할아버지가 모형 저주토끼를 만든다. 억울하게 몰락한 친구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다. 저주토끼는 원수의 손자 뇌를 갉아먹는다. 친구의 원수 집안은 삼대(三代)가 처참하게 몰락한다. 소설이 더 무서운 건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모두 덤덤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소설처럼 무서운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8일 온라인으로 만난 정보라 작가(46)는 시종일관 웃으며 친절하게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그는 “코미디언이 자기 농담에 먼저 웃으면 관객들이 안 웃는다”며 “공포 소설도 작가가 먼저 호들갑을 떨면 김이 새지 않냐”고 했다. “통념을 뒤집어야 독특한 이야기가 생겨요. 토끼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최대한 무섭게 만들어 보기로 했죠.” 그의 부모님은 둘 다 치과의사였다. 유년시절 집은 치과와 연결돼 있었다. 치과에도, 집에도 연구용으로 갖다놓은 두개골 모형이 있었다. 인체 구조도도 집 벽에 붙어 있었다. 이 때문인지 정 작가는 인체를 공포 소설에 적극 활용한다. 단편 ‘머리’에서는 변기에서 머리가 튀어나오지만 등장인물들은 놀라지 않는다. 정 작가는 “어릴 적엔 친구들 집에도 두개골 모형과 인체 구조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커서 보니 저만의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공포 소설을 쓴 날에도 악몽은 안 꾼다”고 했다. 부커상 심사위원들은 정 작가의 작품에 대해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평가했다. 남자친구도 없는 미혼 여성이 임신하고(단편 ‘몸하다’), 아무도 없는 암흑에서 목소리가 들리는(단편 ‘차가운 손가락’) 일이 능청스럽게 벌어진다.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를 취득한 것이 영향을 끼쳤다. “현실과 상상을 딱히 구분하지 않는 게 러시아 문학의 특성이에요. 도스토옙스키, 고골 등 러시아 대문호도 꿈과 현실을 섞어 쓰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창조했죠.” 한국에선 비주류에 속하는 공포, 공상과학(SF) 장르인 ‘저주토끼’를 발굴한 건 번역가 허정범(41·안톤 허)이다. 허 번역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애초부터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를 번역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저주토끼’에 끌렸다”고 했다.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다 국내 독자에게 생소한 정 작가를 소개하는 게 부담되지 않았냐고 묻자 허 번역가는 “한강 작가가 2016년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이 상을 받기 전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냐”고 대차게 되물었다. 허 번역가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문체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When we make our cursed fetishes, it‘s important that they’re pretty)처럼 유머와 공포가 뒤섞인 정 작가의 문장이 서양 독자들의 마음을 끌 것이라 생각했다. 허 번역가는 “제인 오스틴,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영미권 작가들은 상반된 정서가 담긴 문장을 많이 쓴다”며 “정 작가의 서양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문장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수상작은 다음 달 26일 발표한다.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의 ‘야곱의 책들’(The Books of Jacob), 욘 포세(노르웨이)의 ‘새로운 이름’(A New Name), 가와카미 미에코(일본)의 ‘천국’(Heaven), 클라우디아 피네이로(아르헨티나)의 ‘엘레나는 안다’(Elena Knows), 지탄잘리 슈리(인도)의 ‘모래의 무덤’(Tomb of Sand)이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저주토끼’는 수상이 가능할까. 허 번역가는 망설이다 답했다. “가요나 드라마에 비해선 한국 문학이 영미권에서 인정받는 상황은 아니에요. 수상 가능성은 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받는다면 진짜 엄청난 일이 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단편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의 표제작 ‘저주토끼’는 끔찍한 소설이다. 집안 대대로 저주용품을 만드는 할아버지가 모형 저주토끼를 만든다. 억울하게 몰락한 친구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다. 저주토끼는 원수의 손자 뇌를 갉아먹는다. 친구의 원수 집안은 삼대(三代)가 처참하게 몰락한다. 소설이 더 무서운 건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모두 덤덤하기 때문이다. 복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도, 이를 듣는 손자도 끔찍한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작가도 소설처럼 무서운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다. 8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만난 작가 정보라(46)는 시종일관 웃으며 친절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그는 “코미디언이 자기 농담에 먼저 웃으면 관객들이 안 웃는다”며 “공포 소설도 작가가 먼저 호들갑을 떨면 김이 새지 않냐”고 했다.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건조하게 썼다는 것이다. “통념을 뒤집어야 독특한 이야기가 생겨요. 토끼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최대한 무섭게 만들어 보기로 했죠.” 정 작가의 부모는 둘 다 치과의사였다. 유년시절 살던 집은 부모가 운영하는 치과와 연결돼 있었다. 치과에도, 집에도 부모님이 연구용으로 갖다놓은 두개골 모형이 있었다. 사람의 몸을 그린 인체 구조도가 집 벽에 붙어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정 작가는 인체를 공포 소설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단편소설 ‘머리’에서 변기에서 머리가 튀어나오는데 등장인물들은 놀라지도 않는 식이다. 정 작가는 “어릴 적엔 친구들 집도 두개골 모형과 인체 구조도를 하나씩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커서 보니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공포 소설을 쓴 날에도 악몽을 안 꾼다”고 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정 작가에게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마술적 사실주의란 실제와 환상이 뒤섞인 예술 장르다. 남자친구도 없는 미혼 여성이 임신하고(단편소설 ‘몸하다’), 아무도 없는 암흑에서 목소리가 들리는(단편소설 ‘차가운 손가락’) 일이 소설에서 능청스럽게 벌어지는 이유다.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를 취득한 것이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정 작가는 “현실과 상상을 딱히 구분하지 않는 게 러시아 문학의 특성”이라며 “도스토옙스키(1821~1881), 고골(1809~1852) 등 러시아 대문호도 꿈과 현실을 섞어 쓰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창조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비주류에 속하는 공포, 공상과학(SF) 장르인 ‘저주토끼’를 발굴한 건 번역가 허정범(41·안톤 허)이다. 허 번역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애초부터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를 번역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저주토끼’에 끌렸다”고 했다. 문단의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데다 국내 독자에게 생소한 정 작가를 소개하는 게 부담되지 않았냐고 묻자 허 번역가는 “한강 작가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받기 전 대중에게 인기 있었냐”고 대차게 되물었다. 허 변역가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문체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When we make our cursed fetishes, it’s important that they’re pretty)처럼 유머와 공포가 뒤섞인 정 작가의 문장이 서양 독자들의 마음을 끌 것이라 생각했다. 허 번역가는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등 영미권 작가들은 상반된 정서가 담긴 문장을 많이 쓴다”며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탓에 이미 서양적인 정 작가의 아이러니한 문장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고 했다. 최종 수상이 가능할까 묻자 허 번역가는 망설이다 답했다. “대중가요나 드라마에 비해선 한국 문학이 영미권에서 인정받는 상황은 아니에요. 수상 가능성은 낮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받는다면 진짜 엄청난 일이 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