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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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문학/출판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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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7%
생활/가정3%
국제사고3%
인사일반3%
사회일반3%
  • 이만큼 쌓였습니다… 한국 문단의 미래가

    “올해 응모작들은 소재가 한층 다양해져 각기 다른 세계를 이야기로 끌어오려는 시도가 반가웠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사건과 모티프를 잡아놓고도 이를 문학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작품들이 적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작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올해 9개 부문에 접수된 작품은 총 9113편으로, 지난해(7384편)보다 1729편이 더 늘었다. 부문별 응모 편수는 중편소설 436편, 단편소설 787편, 시 6878편, 시조 488편, 희곡 101편, 동화 273편, 시나리오 81편, 문학평론 18편, 영화평론 51편이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중편소설 손홍규·정한아 소설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단편소설 김성중·손보미·안보윤 소설가,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 김상혁·서효인 시인 △시나리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가 맡았다.● “소재 폭 넓고 문장력 높아져” 중편소설 응모작은 다양한 소재를 다뤘지만, 문장력과 서사력이 결합한 ‘중편다운 밀도’를 갖춘 작품은 드물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여울 평론가는 “이태원 참사, 비상계엄 등 시사적 소재가 다양하게 등장했지만 문학적 형상화의 밀도는 부족했다”며 “살인 등 강력범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은 폭력이 일상화된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홍규 소설가는 “다양한 시공간을 다루지만 현실 문제를 직접적으로 파고든 작품은 적었다”며 “유머와 여유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고 했다. 정한아 소설가는 “중편이 줄 수 있는 회복·치유의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은 드물었다”면서도 “편차가 큰 가운데도 울림 있는 작품은 분명히 존재했다”고 평했다. 단편소설 부문은 소재의 폭은 넓은 반면에 문체와 톤이 비슷해 ‘음역대가 비슷한’ 작품이 많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성중 소설가는 “평균적인 문장력은 높아졌고 못 쓰는 소설은 확연히 줄었지만 마지막에 힘이 빠지는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강동호 평론가는 “가족, 돌봄, 장애, 부동산, 플랫폼 노동 등 한쪽에 경향이 몰린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안보윤 소설가는 “한 사람을 악인으로 몰아 분노를 터뜨리는 방식의 서술에서 벗어난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보미 소설가는 “직업적·생존적 불확실 등 사회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잔잔한 우울과 불안이 두드러져” 시 부문은 내면의 불안과 고립감 등 예민한 정서가 두드러진 응모작이 많았다. 서효인 시인은 “정치적 이슈는 뉴스의 과잉 때문인지 시로 가져온 경우가 드물었다”며 “시어 선택은 전반적으로 날카롭고 예민했다”고 말했다. 김상혁 시인은 “거대 담론은 사라지고 생활·주변 이야기로 이동하고 있으며, 잔잔한 우울과 불안이 응모작 전반을 관통했다”며 “응모 편수가 늘어난 것은 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했다. 시나리오 부문에선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표현 방식이 한층 세련돼졌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윤수 감독은 “예전보다 훨씬 의연하고 가볍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고 복수, 정의, 사이비 종교, 소셜미디어 등 사회적 주제도 세련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조정준 대표는 “전체적으로 편차가 줄고 평균적 완성도가 올라갔다”면서도 “아이템은 흥미롭지만 서사로 충분히 확장되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고 했다. 또 공상과학(SF) 응모작이 증가했으나 논리적 설계 없이 ‘SF를 가장한 판타지’가 많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날 예심 결과 △중편소설 11편(11명) △단편소설 12편(12명) △시 58편(11명) △시나리오 11편(11명)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희곡·동화·문학평론·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에서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1일자 지면에 실린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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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나의 일식처럼… ‘눈부신 순간’ 함께 보는 이야기”

    2016년 경기 이천시의 한 지역축제 현장. 라틴 음악단이 가설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동안 옆에서 인형 탈을 쓰고 열심히 춤을 추는 알바생이 있었다. 그날 공연엔 이름 없는 밴드부터 마술사까지 다양한 팀이 참여했다. 비록 세간의 ‘성공’ 기준에선 멀어 보이는 이들이었지만, 그 알바생은 최선을 다해 무대를 채우는 모습에서 그들의 “눈부신 순간”을 목격했다. 시간이 흘러 당시 인형 탈을 썼던 알바생은, 소설이란 또 다른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가 됐다. 2022년 등단해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이효석문학상’을 연달아 휩쓴 소설가 함윤이(33). 지난달 11일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문학과지성사)를 펴낸 작가를 3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다. 수록작 ‘구유로’의 주인공은 개기일식 기념 축제에 참가한 무명 걸그룹. 이들은 오래된 승합차를 손수 몰고 전국의 축제를 전전하며, 얼렁뚱땅 지어진 무대를 오르내린다. 데뷔와 앨범 발매는 계속 미뤄지고, 스물일곱 살이 된 멤버들은 “너무 늙었어”라며 한탄한다.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K팝의 이면을 들춘 듯한 세계다. 함 작가는 “세간의 시선에선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계속 열심인 사람들, 어떤 과정에 있는 이들이 있다”며 “그들에게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은 118년 만에 찾아온 개기일식이다. 그는 “일식은 찰나지만 낮과 밤이 뒤바뀌고 어둠과 빛이 교차한다”라며 “그 순간을 다 같이 보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의 소설들은 고단함 속에서도 묘한 생기가 감돈다. 지지고 볶다가도 “밥이나 먹자”는 말로 허기를 달래는 인물, 악취와 빛이 공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는 작가가 경험한 다양한 ‘현실 세계의 노동’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스무 살 이후 그는 제약공장과 외국인 게스트하우스, 토마토 농장, 동물원, 화장품숍, 웨딩홀 등 정말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함 작가는 “학창시절 거의 매년 지리산을 종주하는 등 산을 타며 얻은 체력이 이를 뒷받침한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소설들은 실존하는 작품과 미디어가 적지 않게 등장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구유로’엔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산문집 ‘얼음 속을 걷다’가, ‘규칙의 세계’에는 미국 시트콤 ‘사인필드’가 나온다. ‘나쁜 물’에는 작곡가 조율이 이 소설을 읽고 만든 곡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삽입돼 있다. 함 작가는 “이야기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 있다. 예컨대 ‘해리포터’는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받았고,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며 “어떤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불러오고, 서로 만나 부딪히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작가에게 하나의 이야기란 언제나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문’과도 같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순간이동 마법 기물 ‘포트키’처럼. 함 작가는 “모든 책이 저에게는 포트키였다. 제 책도 독자에게 다음 이야기를 향해 이동할 수 있는 포트키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가 다음에 건넬 ‘포트키’는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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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들은 서로 영향 주고받아….모든 책이 저에게 해리포터 ‘포트키’”

    2016년 경기 이천시의 한 지역축제 현장. 라틴 음악단이 가설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동안, 옆에서 인형 탈을 쓰고 열심히 춤을 추는 알바생이 있었다. 그날 공연엔 이름 없는 밴드부터 마술사까지 다양한 팀이 참여했다. 비록 세간의 ‘성공’ 기준에선 멀어 보이는 이들이었지만, 그 알바생은 최선을 다해 무대를 채우는 모습에서 그들의 “눈부신 순간”을 목격했다.시간이 흘러 당시 인형 탈을 썼던 알바생은, 소설이란 또 다른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가 됐다. 2022년 등단해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이효석문학상’을 연달아 휩쓴 소설가 함윤이(33). 지난 달 11일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문학과지성사)를 펴낸 작가를 3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다.수록작 ‘구유로’의 주인공은 개기일식 기념 축제에 참가한 무명 걸그룹. 이들은 오래된 승합차를 손수 몰고 전국의 축제를 전전하며, 얼렁뚱땅 지어진 무대를 오르내린다. 데뷔와 앨범 발매는 계속 미뤄지고, 스물일곱 살이 된 멤버들은 “너무 늙었어”라며 한탄한다.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K팝의 이면을 들춘 듯한 세계다. 함 작가는 “세간의 시선에선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계속 열심인 사람들, 어떤 과정에 있는 이들이 있다”며 “그들에게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은 118년 만에 찾아온 개기일식이다. 그는 “일식은 찰나지만 낮과 밤이 뒤바뀌고 어둠과 빛이 교차한다”며 “그 순간을 다 같이 보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그의 소설들은 고단함 속에서도 묘한 생기가 감돈다. 지지고 볶다가도 “밥이나 먹자”는 말로 허기를 달래는 인물, 악취와 빛이 공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는 작가가 경험한 다양한 ‘현실 세계의 노동’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스무 살 이후 그는 제약공장과 외국인 게스트하우스, 토마토 농장, 동물원, 화장품숍, 웨딩홀 등 정말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함 작가는 “학창시절 거의 매년 지리산을 종주하는 등 산을 타며 얻은 체력이 이를 뒷받침한 것 같다”고 했다.그의 소설들은 실존하는 작품과 미디어가 적지 않게 등장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구유로’엔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산문집 ‘얼음 속을 걷다’가, ‘규칙의 세계’에는 미국 시트콤 ‘사인필드’가 나온다. ‘나쁜 물’에는 음악가 조율이 이 소설을 읽고 만든 곡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삽입돼 있다.함 작가는 “이야기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 있다. 예컨대 ‘해리포터’는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받았고,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며 “어떤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불러오고, 서로 만나 부딪히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때문에 작가에게 하나의 이야기란 언제나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문’과도 같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순간이동 마법 기물 ‘포트키’처럼. 함 작가는 “모든 책이 저에게는 포트키였다. 제 책도 독자에게 다음 이야기를 향해 이동할 수 있는 포트키가 됐으면 한다”며 “저한테 자극을 준 작품들을 소설에 직접 드러내는 건, 독자가 그 문을 더 쉽게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그가 다음에 건넬 ‘포트키’는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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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절벽에 매단 관도 채색한 두개골도 극진한 ‘존엄葬’

    알프스산맥이 내려다보이는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의외의 공간, 지하 봉안당이 있다. 이곳엔 손으로 하나하나 채색한 두개골 610개가 보관돼 있다. 꽃과 나뭇잎 무늬로 장식하거나,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사망일을 적어 넣은 것도 있다. 유럽 최대 규모의 ‘두개골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왜 유해를 전시한 걸까. 이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맞게 될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가 고대 이집트의 미라부터 인도의 야외 화장, 미국의 방부처리 산업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지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례 의식을 탐색한 책이다. 인류 역사상 대표적인 장례 방식인 매장과 화장뿐 아니라 티베트 산악 지대의 조장(鳥葬), 남미 와리족의 식인 의식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조명한다. 감각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컬러 일러스트는 죽음을 삶의 중요한 일부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저자의 시선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필리핀 북부 산악 지방 사가다에서는 약 2000년 동안 죽은 이를 동굴이나 석회암 절벽의 벽에 묻어 왔다. 이른바 ‘매달린 관’이다. 계곡 곳곳에는 수백, 수천 개의 관이 바위틈과 절벽 가장자리에 매달린 모습으로 남아 있다. 관은 받침대를 이용해 들어 올리거나, 덩굴에 엮어 선반처럼 튀어나온 바위나 절벽에 박힌 기둥 위에 올려놓는 방식으로 설치한다. 이 지역의 토착 부족 이고로트족은 시신을 높은 곳에 두면 홍수나 야생동물로부터 안전할 뿐만 아니라 조상의 영혼에 더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필리핀이 3세기 넘게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사가다만은 지형적 고립으로 인해 그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았다. 덕분에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인도의 갠지스강 변에는 시신을 태우는 전통의 불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힌두교 신앙에서는 영혼이 새로운 육신으로 환생하기 전에 불을 통해 정화돼야 한다고 여긴다. 화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의식을 주도하는 장남이 고인의 두개골을 뚫거나 깨뜨려 영혼을 해방시키는 의식을 행한다. 바라나시에서는 매일 약 100건의 화장이 이뤄지며, 이 중 많은 수가 전통적인 야외 화장터에서 진행된다. 화장 과정에서 발생한 독성 폐기물은 그대로 갠지스강으로 흘러들고, 이질과 콜레라 같은 수인성 질병을 유발하는 거대한 ‘박테리아 스튜’를 만든다. 수백만 명이 그 물을 마시고, 요리하고, 목욕하고, 수영한다. 강을 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전통주의자들의 반발과 정치적 부패가 얽혀 정화 사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갠지스강 변에선 여전히 장례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책에 소개되는 장례 의례 가운데 일부는 낯설고, 때로는 끔찍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을 대하는 데 옳은 방식과 그른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는 문화적 차이일 뿐이며, 그 안에는 나름의 의미와 망자를 존엄하게 보내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남은 삶의 모습에 깊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환기한다. 다양한 장례 풍습을 들여다보는 일은 죽음뿐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여정이 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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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대·한국공공외교학회, 국제학술대회 개최

    한국공공외교학회와 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가 6일 오전 9시 서울 성동구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국가 이미지와 영화, 영상미디어’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영화와 시각 매체가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고 확산하는 과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논의할 예정이다.회의에는 전문 석학 4명이 기조 강연자로 나선다. 홍콩 뱁티스트대 다야 투쑤 교수는 국제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회(IAMCR) 회장으로 국제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대가다. 김홍준 영상자료원 원장은 한국 영화사에 정통한 학자로 한예종 영상원에서 가르쳤다. 리츠메이칸대 오야마 신지 교수는 런던대에서 문화연구를 가르치다 교토로 자리를 옮겼다. 알렉산더 황 교수는 중국계 프랑스인으로 파리대에서 공공외교를 가르치고 있는 소장 학자다.이번 기조연설은 아시아의 소프트파워와 미디어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영화와 시각 미디어를 통해 어떤 국가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전문적인 시각으로 다룰 예정이다.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12개 국가에서 참여해 50여 개 논문을 두고 발표 및 토론한다. 일반인 참여 가능하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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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대표 여류 문인 ‘신달자 문학관’ 개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여류 문인으로 2025년 ‘인촌상’ 수상자인 신달자 시인(82·사진)의 작품 세계를 담은 ‘신달자문학관’이 4일 경남 거창군에서 개관했다. 현존하는 국내 여성 시인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건 문학관을 개관하는 건 처음이다. 이날 개관식엔 신 시인과 김수복 한국시인협회장, 구인모 거창군수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박정자 배우가 시인의 시 ‘핏줄’을, 나태주 시인이 ‘아! 거창’을 낭송하며 개관을 축하했다. 신 시인은 이날 인촌상 수상자로 받은 상금 가운데 2000만 원을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신 시인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음 문학관을 연다고 했을 때는 너무 민망했다”면서 “‘감사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걸 수억 개를 풀어다 놓아도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시가) 내 감정을 노래하고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고향과 대한민국의 모든 독자들에게 나누어 줄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 시인은 1964년 여성지 ‘여상’에 시 ‘환상의 밤’이 당선됐고,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 활동에 나섰다. 여성 특유의 심미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고뇌를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하며 여성성을 바탕으로 시 세계를 확장했다. 은관문화훈장(2012년)과 대한민국문학상(1989년) 등을 수상했다. 신달자문학관은 내년부터 신 시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지역 문인들의 창작·낭송 프로그램과 주민 대상 문학 강좌 등 다양한 문학 행사를 운영할 계획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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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 한길… 이제 내가 민들레 솜털이 됐구나”

    최근 온라인에서 소소하게나마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제목은 ‘이해인 수녀님께 사인 요청하면 벌어지는 일’. 말 그대로 이해인 수녀(80)가 사인해주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수녀는 필통에서 어른 주먹만 한 도장을 꺼내 ‘쾅’ 찍고, 색연필로 꽃 그려 넣고, 장미 스티커 꺼내 종이를 빈틈없이 꾸민다. 사인 하나에 5분이 걸렸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대신 사꾸(사인 꾸미기)”라는 댓글이 달렸다.지난달 22일 산문집 ‘민들레 솜털처럼’(마음산책·사진)을 펴낸 이 수녀를 1일 전화로 만났다. “7년 만에 제주를 찾아 김기량성당에서 특강과 독자 만남을 진행하고 있다”는 그는 ‘명랑 수녀’답게 목소리부터 경쾌했다. “우리 집안은 어머니, 언니가 나이 들어도 이렇게 목소리가 젊어요. 제가 수녀원에 안 왔으면 앵커가 됐을 거예요, 호호.”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낸 지 벌써 49년. 신간은 인터뷰와 미공개 대담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말을 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이 수녀는 “50년 전 책은 민들레 영토, 이번엔 민들레 솜털”이라며 “가끔 거울을 보면 머리가 하얗게 셌다. ‘어머, 내가 존재 자체로 진짜 민들레 솜털이 됐구나’ 그런 묵상을 하게 된다”고 했다.“민들레 영토 때는 ‘이 땅에서 내가 고독의 진주를 캐며 꽃으로 피어나야 되는데. 좁은 돌 틈에 피어나 민들레처럼 강인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런 결심을 갖고 글을 썼어요. 그 민들레 한 송이의 수녀가 50년 한길을 가서, ‘진짜 민들레 영토가 됐구나. 내가 한 송이 민들레로 솜털을 날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한 그는 수도 생활 60년이 준 선물은 “모든 사람이 다 정겹고, 처음 보는 이도 일가친척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수녀원 창고엔 1980년대 중반부터 모은 독자 편지가 수십만 통 쌓여 있다고 한다. 특히 교도소에서 온 편지는 대부분 직접 답한다.“이감됐으면 교도관한테 물어서라도 답장해요. 가령 공주 감호소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갔다면, 옮긴 지역에 있는 독자한테 ‘크리스마스 때 나 대신 뭐라도 전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 화제가 된 ‘사꾸’에 대해선 “사인 하나하나가 기도라 생각한다”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단 맘으로 정성껏 한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예쁜 스티커를 보내줘요. 일본 출장 다녀왔다며 보내주기도 하고. 제가 ‘스티커 부자’예요. 온갖 스티커가 다 있어요. 스티커, 색연필, 메모지는 항상 제 가방에 있어서 어딜 가도 들고 다녀요.” 50년 가까이 글을 써 온 ‘민들레 소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신앙 안에서 한길로 오느라 참 애썼다고 하고 싶네요. 마음 변해서 민들레 영토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고독의 진주를 키워내고 시에 나오는 대로 살아보려 안간힘을 썼구나. 고맙다, 축하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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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들레 소녀’의 50년 한길…“내가 이제 솜털을 날리는구나”

    최근 온라인에서 소소하게나마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제목은 ‘이해인 수녀님께 사인 요청하면 벌어지는 일.’ 말 그대로 이해인 수녀(80)가 사인해주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수녀는 필통에서 어른 주먹만한 도장을 꺼내 ‘쾅’ 찍고, 색연필로 꽃 그려 넣고, 장미 스티커 꺼내 종이를 빈틈없이 꾸민다. 사인 하나에 5분이 걸렸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대신 사꾸(사인 꾸미기)”라는 댓글이 달렸다.지난 달 22일 산문집 ‘민들레 솜털처럼’(마음산책)을 펴낸 이 수녀를 1일 전화로 만났다. “7년 만에 제주를 찾아 김기량성당에서 특강과 독자 만남을 진행하고 있다”는 그는 ‘명랑 수녀’답게 목소리부터 경쾌했다. “우리 집안은 어머니, 언니가 나이 들어도 이렇게 목소리가 젊어요. 제가 수녀원에 안 왔으면 앵커가 됐을 거예요, 호호.”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낸 지 벌써 49년. 신간은 인터뷰와 미공개 대담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말을 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이 수녀는 “50년 전 책은 민들레 영토, 이번엔 민들레 솜털”이라며 “가끔 거울을 보면 머리가 하얗게 셌다. ‘어머, 내가 존재 자체로 진짜 민들레 솜털이 됐구나’ 그런 묵상을 하게 된다”고 했다.“민들레 영토 때는 ‘이 땅에서 내가 고독의 진주를 캐며 꽃으로 피어나야 되는데. 좁은 돌 틈에 피어나 민들레처럼 강인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런 결심을 갖고 글을 썼어요. 그 민들레 한 송이의 수녀가 50년 한 길을 가서, ‘진짜 민들레 영토가 됐구나. 내가 한 송이 민들레로 솜털을 날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한 그는 수도 생활 60년이 준 선물은 “모든 사람이 다 정겹고, 처음 보는 이도 일가친척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수녀원 창고엔 1980년대 중반부터 모은 독자 편지가 수십만 통 쌓여 있다고 한다. 특히 교도소에서 온 편지는 대부분 직접 답한다.“이감됐으면 교도관한테 물어서라도 답장해요. 가령 공주 감호소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갔다면, 옮긴 지역에 있는 독자한테 ‘크리스마스 때 나 대신 뭐라도 전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화제가 된 ‘사꾸’에 대해선 “사인 하나하나가 기도라 생각한다”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단 맘으로 정성껏 한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예쁜 스티커를 보내줘요. 일본 출장 다녀왔다며 보내주기도 하고. 제가 ‘스티커 부자’예요. 온갖 스티커가 다 있어요. 스티커, 색연필, 메모지는 항상 제 가방에 있어서 어딜 가도 들고 다녀요.”50년 가까이 글을 써 온 ‘민들레 소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신앙 안에서 한 길로 오느라 참 애썼다고 하고 싶네요. 마음 변해서 민들레 영토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고독의 진주를 키워내고 시에 나오는대로 살아보려 안간힘을 했구나. 고맙다, 축하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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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으로 본 ‘전통 의식주’… 조상의 지혜, 여기 담겼죠

    《“전통 의식주엔 우리가 살아온 지혜가 담겨 있어요. (요즘 K컬처가 주목받는 건) 이제 와 그걸 새롭게 느끼는 거죠. 원래 아주 무궁무진합니다.”최근 출간된 신간 ‘살림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은 독특한 책이다. 요즘 해외에서도 관심 높은 ‘K헤리티지(문화유산)’를 “가상의 옛집을 둘러보는 시간 여행자” 콘셉트로 구성했다. 부엌이나 안방, 대청, 사랑채, 마당 등을 집주인 몰래 살펴보는 형식이다. 책을 집필한 이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75)는 전공이 ‘미생물학’이다. 문화유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2009년에도 ‘담장 속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이란 관련 서적을 냈다.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옛 선조들의 ‘살림의 과학’을 좇다 보면, 더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애써 온 옛사람들의 노력과 꿈을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간은 특히 전통 의식주에 담긴 과학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조선 양반들은 추운 겨울에도 구멍이 송송 뚫린 갓을 썼는데, 보온은 어떻게 했을까’ 같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선비들은 위가 트인 방한모를 쓰고, 그 위에 갓을 올려 쓴 뒤 끈으로 묶어 방한을 하며 의관도 정제했다. 이처럼 꼭대기가 열린 모자는 중국과도 차별화되는 조선의 고유한 의복이었다. 전통 살림의 과학은 오늘날에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뚫려 ‘숨을 쉬는’ 전통 옹기가 대표적이다. 옹기를 필터로 사용해 제3세계에 보급할 정수기를 만들 수 있는지 검토된다고 한다. 과학자인 이 교수가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진 건 1978년 28세 때였다. 서울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유학길에 올라 박사 과정 지도교수를 찾아뵌 자리였다. 악수를 나눈 뒤 교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뜻밖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고려 자기에 대해 얘기해 줄래?”“알고 보니 교수님이 취미로 동양 미술사를 공부하셨더라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제가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예요. 이른바 정체성이 없었던 거죠. 독일어로 지도교수를 ‘독토어파터(Doktorvater)’라고 하는데, 아버지처럼 많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역사와 고미술에 빠져들었다. 경북대 재직 시절에도 틈만 나면 전국 고미술상을 찾아다니며 고대 토기나 그릇받침, 항아리, 단지를 수집했다. 30년 넘게 발품을 팔다 보니 준(準)전문가가 됐다. 그렇게 수십 년간 수집한 백제·신라·가야 등 토기 157점을 2013년 한성백제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이를 바탕으로 2021년 특별전 ‘흙으로 만든 그릇, 토기’를 열기도 했다. 그의 서재도 작은 전시관을 방불케 했다. 3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토기가 진열장에 놓여 있었다. 뽁뽁이와 노끈으로 단단히 감싼, 가야의 손잡이가 있는 잔들도 칸마다 들어 있었다. “이런 건 이삿짐센터도 취급을 안 해요. 전부 제가 짐을 싸고 풀어요. 지난해 서울에서 이사 올 때도 하나도 안 깨졌어요. 보고 있으면 즐거워요. 책 읽는 것과 똑같아요.” 인터넷과 인공지능(AI)으로 즉각 답을 얻는 시대. 하지만 이 교수는 ‘맥락’을 탐구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자연 속에서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려는 우리 살림살이 속엔 자연을 닮아 가려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들어 있어요. 부족한 살림에도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는 지혜를 추구해 온 게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이라고 봅니다.”용인=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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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드래곤 홍콩 화재에 100만 홍콩달러 기부…국내 연예계, 기부 행렬

    홍콩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에 국내 연예인들과 엔터테인먼트 업계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30일 가수 지드래곤 소속사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지드래곤이 홍콩 시민들의 심리적 치유를 응원하기 위해 100만 홍콩달러(약 1억8800만 원)를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부금은 피해자 구조와 복구에 힘쓰는 소방관과 자원봉사자를 돕는 데 쓰일 예정이다.SM엔터테인먼트가 100만 홍콩달러를 기부한데 이어 슈퍼주니어 100만 홍콩달러, 에스파 50만 홍콩달러, 라이즈가 25만 홍콩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그룹 아이들도 100만 위안(약 2억700만 원)을 보내며 기부에 동참했다. 그룹 아이브, 보이넥스트도어, 엑소 첸백시, 투어스도 각각 50만 홍콩달러를 전달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긴급 구조 및 재난 후 재건을 위해 월드비전 홍콩에 200만 홍콩달러를 전달했고, 그룹 스트레이 키즈는 100만 홍콩달러를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와 별도로 기부했다. YG엔터테인먼트 또한 100만 홍콩달러를 기부했다. 하이브 뮤직그룹 APAC 6개 레이블(빅히트 뮤직, 빌리프랩, 쏘스뮤직,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KOZ 엔터테인먼트, 어도어)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5억 원을 기부했다.28~29일 홍콩에서 ‘2025 마마 어워즈’를 개최한 CJ 그룹은 타이포 웡 푹 코트 지원 기금에 2000만 홍콩달러(약 37억8140만원)를 기부했다.지난 26일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에서 대형 화재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현재 사망자는 128명, 부상자는 79명으로 집계됐다. 종자는 200여 명으로 수색 작업에 따라 사망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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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할인-광고-온라인몰 없이도… 美 매출 1위 ‘힙한 마트’

    오프라인 유통의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 시대다. 온라인에서 클릭 한 번이면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온라인몰도 없고, 가격 할인도 없으며, 광고조차 하지 않는데도 미국에서 단위 면적당 매출에서 압도적 1위를 자랑하는 마트가 있다. 미국 경험이 있는 이들에겐 친숙한 마트 체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다.이 책은 1967년 트레이더 조를 창업한 조 쿨롬이 직접 집필해 더 눈길을 끈다. 그는 서문에서 “기업가와 예비 기업가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며, 트레이더 조의 성장 과정과 당시 경제적 상황을 ‘MBA 수업’처럼 병치해 설명한다. 책을 읽다 보면 위기는 늘 반복됐고, 결국 그 위기를 돌파한 이들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예를 들어 1970년대 베트남전 지출과 1973년 오일쇼크로 물가가 급등했을 때 트레이더 조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을 실행했다. 첫째, 자체 소식지를 발행했다. 둘째, 공정거래법의 빈틈을 활용해 수입 와인 가격을 대폭 낮췄다. 셋째, 친환경 식품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 중 자체 소식지의 탄생 과정은 흥미롭다. 트레이더 조는 마요네즈, 참치 통조림, 핫도그, 땅콩버터 같은 식품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시식회를 열어 1등 제품을 선정하고 ‘시중 최저가’에 판매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바로 이 시식회 결과를 알리기 위해 자체 소식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 여기에 독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만화도 삽입했는데, 이 유쾌한 구성은 금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자체 소식지는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정보물에 가까운 교육적 매체가 됐다. 고객들이 아예 3공 바인더에 묶어 보관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이에 한동안 트레이더 조는 표지에 바인더용 구멍을 인쇄해 제공하기도 했다. 이는 트레이더 조가 ‘교육 수준은 높지만 소득은 낮은’ 소비자층에게 유독 큰 지지를 받은 이유를 보여준다. 소식지는 트레이더 조가 다른 소매업체와 확연히 구별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이 획일적 ‘대중’이 아니라 취향과 가치관을 지닌 ‘독립적 개인’으로 자리 잡도록 도운 셈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재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왜 지금까지 트레이더 조를 모방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답은 명확하다. 높은 임금과 후한 복지를 제공하려는 기업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트레이더 조만큼 유능한 직원들을 끌어오고 지켜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기준은 단순했다. 매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풀타임 직원이라면 캘리포니아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벌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쿨롬은 오랜 시간 경영을 하며 이 높은 임금 정책을 고수했고, 이를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임차료가 다소 높더라도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자리’, 즉 최고의 입지에 매장을 여는 전략도 그중 하나였다. 15년짜리 임대차 계약은 소매업에서 가장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그는 이 부분만큼은 철저히 본인이 통제했다. 그 결과 30년 동안 트레이더 조를 운영하면서 질병이나 노화 같은 개인적 사정을 제외하면 풀타임 직원의 이직이 거의 없었다. 에코백 품절 대란이나 냉동김밥 인기 등 한국인에게도 ‘힙한 마트’로 여겨지는 트레이더 조의 성공 법칙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원칙’을 잘 지켰다. 이건 경영인은 물론이고 다른 누구라도 세상살이에서 명심해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닐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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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설국이 눈국? 칸트가 그리스 학자?… ‘AI 오류’ 범벅된 지식의 보고

    서울대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는 A출판사의 한 전자책에는 “일본의 소설 ‘눈국’에서는…”이란 문장이 등장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유명한 소설 ‘설국(雪國)’을 인공지능(AI)이 ‘눈국’으로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을 다룬 또 다른 전자책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히는 일은 우리 삐라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란 대목이 있다. ‘삐라’란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들어갔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문장이다. 최근 학계나 출판계에서 AI를 활용하는 건 일상화됐다. 기획이나 자료 조사, 퇴고 등 저술 과정에서 AI를 적극적으로 쓰는 저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별다른 감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무더기로 만들어낸 AI 콘텐츠가 국내 대학 도서관 장서로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 국어 문법도 틀리는 AI 전자책해당 출판사가 펴낸 ‘음운론’을 다룬 책도 문제가 많았다. “‘신라’라는 단어에서도 ‘ㅅ’ 다음의 ‘ㄴ’은 ‘ㄹ’과 만나 ‘ㄹ’로 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실라’가 아닌 ‘신라’로 발음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신라’를 ‘실라’라고 읽는 건 국어의 기초 문법인 ‘유음화(流音化)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다. 출판사는 이런 전자책을 ‘청소년을 위한 OO시리즈’라며 다량으로 출간했다. 이 시리즈만 서울대 도서관에서 약 1000권이 검색된다. 원래 출판사는 저자가 실수해도 편집팀이 교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 한 권을 만들 때 최소 세 차례 교정을 거치는 ‘3교’가 관행”이라며 “사전 원고 검토까지 포함하면 편집자 손이 평균 4번은 닿는다. 게다가 분야 전문가를 감수자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AI 출판 도서는 고전을 번역하면서 역자는 물론이고 원전을 표기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B 출판사는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미래 형이상학을 위한 서문’ 번역본을 내면서 원전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술이라고 표기했다. 칸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재호 서울대 학부교수는 해당 책을 검토한 뒤 “칸트의 ‘변증론’을 헤겔의 ‘변증법’이라 오역하는 등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잘못된 번역어를 많이 사용했다”고 짚었다. 서울대 도서관은 전자책 규모를 확대하면서 A, B출판사의 AI 출판물을 소장하게 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 측은 “A출판사 발행 전자책은 해당 출판사 외 다수의 도서를 제공하는 구독 전자책 플랫폼에 포함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서점에서 서울대에 제공하는 전자책은 대략 15만 권이다. 서점 관계자는 “출판사들에 ‘생성형 AI로 만들었을 경우 표기를 해달라’는 지침을 전달하고 있지만, 표기 여부는 사실상 출판사 마음”이라며 “강제성이 없어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려 제외시킬 근거가 약하다”고 했다. 출판사들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AI 전자책 검증 ‘큐레이터’ 시스템 도입해야 이에 관련 윤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마구잡이 AI 도서’가 양산돼 출판계와 학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박사과정 연구자 C 씨는 “학생 다수가 학술적 목적에서 도서관 책들을 찾아보는데, 기본 출처 표시부터 제대로 안 된 책들이 섞여 있는 건 문제”라며 “AI로 썼다는 건 명확히 밝혀야 하고, 학교는 책들이 제대로 분류되고 있는지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AI 정보의 홍수 시대에 책과 글을 선별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위 정보를 걸러내는 ‘큐레이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한 학술 출판사 관계자는 “AI 출판물이 서울대 도서관에 들어갔다는 건 사서들도 이를 거를 기준 자체가 없었다는 의미”라며 “대학과 공공도서관이 책 선정 기준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에선 이미 ‘AI 양산 도서’의 도서관 유입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유럽작가협의회(EWC)와 유럽문학번역가협회협의회(CEATL), 유럽출판사연합(FEP)은 4월 공동 성명을 내고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츠를 문화 자산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며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은 이러한 종류의 산출물을 구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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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AI ‘딸깍 출판’ 최소 9000권, 검증없이 서울대 도서관에 버젓이

    “‘(옷을) 입다’에서 ‘ㅂ’이 ‘ㄷ’ 앞에서 ‘ㅁ’으로 변하여 ‘임다’로 발음되는 것은 단어 내부 규칙입니다.”‘입다’를 “입따”로 읽는 건 웬만한 초등학생도 아는 발음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 사실조차 틀린 전자책이 서울대 도서관에 버젓이 비치돼 있다. 대학생과 연구자들이 인공지능(AI)으로 무분별하게 제작해 오류가 상당한 책들을 참고서로 쓸 환경에 노출된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대 도서관엔 AI로 전자책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출판사 A와 B의 서적 약 9000권이 비치돼 있다. 업계에서 이른바 ‘딸깍 출판’(클릭하면 AI가 책을 만든다는 뜻)의 대표 사례로 꼽는 곳들이다. 다른 출판사들이 감수 없이 내놓은 AI 전자책들이 도서관에 더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A 출판사는 지난 1년 동안 전자책 7311권을 출간했다. 일일 20권꼴로, 하루 78권을 찍어내기도 했다. 분야도 인문, 사회와 과학·기술을 망라한다. 저자는 대부분 ‘△△팀’ 등으로 돼 있으며, 인터넷에 ‘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퍼블리싱’이라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AI 제작 전자책이 기존 학술자료와 똑같이 제공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서울대 연구자는 “AI 저작물로 명시하지 않으면 틀린 내용을 인용하거나 출처 표기를 잘못해 연구 윤리를 위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측은 “해당 서적들은 대형 서점의 구독 플랫폼을 통해 소장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대학 내 관련 규범이 만들어지면 준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설국이 눈국? 칸트가 그리스 학자?… ‘AI 오류’ 범벅된 지식의 보고AI로 찍어낸 전자책들, 서울대 도서관에 버젓이‘음운론’ 전자책 기초문법 틀리고… 고전 오역 수두룩, 기본출처 누락도서점 전자책 구독… 검증없이 유입, “대학-서점 걸러낼 시스템 마련해야”서울대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는 A출판사의 한 전자책에는 “일본의 소설 ‘눈국’에서는…”이란 문장이 등장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유명한 소설 ‘설국(雪國)’을 인공지능(AI)이 ‘눈국’으로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을 다룬 또 다른 전자책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히는 일은 우리 삐라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란 대목이 있다. ‘삐라’란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들어갔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문장이다.최근 학계나 출판계에서 AI를 활용하는 건 일상화됐다. 기획이나 자료 조사, 퇴고 등 저술 과정에서 AI를 적극적으로 쓰는 저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별다른 감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무더기로 만들어낸 AI 콘텐츠가 국내 대학 도서관 장서로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 국어 문법도 틀리는 AI 전자책해당 출판사가 펴낸 ‘음운론’을 다룬 책도 문제가 많았다. “‘신라’라는 단어에서도 ‘ㅅ’ 다음의 ‘ㄴ’은 ‘ㄹ’과 만나 ‘ㄹ’로 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실라’가 아닌 ‘신라’로 발음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신라’를 ‘실라’라고 읽는 건 국어의 기초 문법인 ‘유음화(流音化)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다. 출판사는 이런 전자책을 ‘청소년을 위한 OO시리즈’라며 다량으로 출간했다. 이 시리즈만 서울대 도서관에서 약 1000권이 검색된다.원래 출판사는 저자가 실수해도 편집팀이 교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 한 권을 만들 때 최소 세 차례 교정을 거치는 ‘3교’가 관행”이라며 “사전 원고 검토까지 포함하면 편집자 손이 평균 4번은 닿는다. 게다가 분야 전문가를 감수자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AI 출판 도서는 고전을 번역하면서 역자는 물론이고 원전을 표기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B 출판사는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미래 형이상학을 위한 서문’ 번역본을 내면서 원전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술이라고 표기했다. 칸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재호 서울대 학부교수는 해당 책을 검토한 뒤 “칸트의 ‘변증론’을 헤겔의 ‘변증법’이라 오역하는 등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잘못된 번역어를 많이 사용했다”고 짚었다.서울대 도서관은 전자책 규모를 확대하면서 A, B출판사의 AI 출판물을 소장하게 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 측은 “A출판사 발행 전자책은 해당 출판사 외 다수의 도서를 제공하는 구독 전자책 플랫폼에 포함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서점에서 서울대에 제공하는 전자책은 대략 15만 권이다.서점 관계자는 “출판사들에 ‘생성형 AI로 만들었을 경우 표기를 해달라’는 지침을 전달하고 있지만, 표기 여부는 사실상 출판사 마음”이라며 “강제성이 없어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려 제외시킬 근거가 약하다”고 했다. 출판사들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AI 전자책 검증 ‘큐레이터’ 시스템 도입해야이에 관련 윤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마구잡이 AI 도서’가 양산돼 출판계와 학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박사과정 연구자 C 씨는 “학생 다수가 학술적 목적에서 도서관 책들을 찾아보는데, 기본 출처 표시부터 제대로 안 된 책들이 섞여 있는 건 문제”라며 “AI로 썼다는 건 명확히 밝혀야 하고, 학교는 책들이 제대로 분류되고 있는지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전문가들은 AI 정보의 홍수 시대에 책과 글을 선별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위 정보를 걸러내는 ‘큐레이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한 학술 출판사 관계자는 “AI 출판물이 서울대 도서관에 들어갔다는 건 사서들도 이를 거를 기준 자체가 없었다는 의미”라며 “대학과 공공도서관이 책 선정 기준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해외에선 이미 ‘AI 양산 도서’의 도서관 유입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유럽작가협의회(EWC)와 유럽문학번역가협회협의회(CEATL), 유럽출판사연합(FEP)은 4월 공동 성명을 내고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츠를 문화 자산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며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은 이러한 종류의 산출물을 구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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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도 역시 ‘손맛’이지… 출판계 필사책 열풍

    7일 신작 장편소설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황금가지)을 출간한 이영도 작가는 비슷한 시기 ‘필사노트 1―후회는 부정된 자신에의 그리움’도 냈다. 전작 장편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오버 더 초이스’와 중단편소설 18편에서 발췌한 184개 문장을 담은 필사책이다. 최근 출판계에선 인기 작가의 신간과 필사책을 함께 출간하는 방식이 마케팅 공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신간에 대한 주목도를 높일 수 있는 데다, 이미 책을 소장한 독자들이라도 소장용이나 선물용으로 필사책을 ‘N차’로 구매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필사노트를 펴낸 황금가지 출판사 관계자는 “책에 담긴 문장은 독자들로부터 추천받았다”며 “작품을 읽을 때의 감정을 되짚어 보기에 좋으리라 생각되는 문구를 추렸다”고 했다. ‘이영도 필사노트’는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등에서 발췌한 문장을 담은 2, 3권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원래 필사책의 원조로는 2015년 출간된 ‘나의 첫 필사노트’(새봄출판사)가 꼽힌다. 이효석 이상 김유정의 대표작을 왼쪽에 싣고, 오른쪽에 독자가 따라 쓸 수 있는 공간을 배치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필사책이 이 편집 방식을 따르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방식이었다. 이전까지 필사란 별도의 공책을 마련해 자신이 읽은 책을 그곳에 다시 써 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필사책은 시를 비롯한 문학이 위주였지만, 요즘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올 초 가수 장원영의 추천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던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은 3월 필사책으로도 선보였다. ‘저속노화’ 열풍을 일으킨 정희원 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의 글을 묶은 필사책 ‘저속노화 명심 필사노트’(생각의힘) 역시 다음 달 1일 출간될 예정이다. 매일 한 구절씩 필사하도록 한 ‘일력’ 형태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문장 365일 필사 일력’(헤르몬하우스)은 날마다 한글과 영문을 병기해 필사하면서 영문 감각도 익힐 수 있도록 구성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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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기작가 신간엔 이것도 함께…출판계 공식이 된 필사책

    이달 7일 신작 장편소설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황금가지)을 출간한 이영도 작가는 비슷한 시기 ‘필사노트 1―후회는 부정된 자신에의 그리움’도 냈다. 전작 장편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오버 더 초이스’ 및 18편의 중단편소설 18편에서 발췌한 184개 문장을 담은, 408쪽 분량의 필사책이다. 황금가지 출판사 관계자는 “노트에 담긴 문장은 네이버 카페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추천받았다”며 “작품을 읽을 때의 감정을 되짚어보기 좋으리라 생각되는 문구를 추렸다”고 했다. ‘이영도 필사노트’는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등에서 발췌한 문장을 담은 2, 3권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최근 출판계에선 인기 작가의 신간과 필사책을 함께 출간하는 방식이 마케팅 공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미 책을 소장한 독자도 소장, 선물용으로 필사책을 ‘N차’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노린 것.필사책의 원조로는 2015년 출간된 ‘나의 첫 필사노트’(새봄출판사)가 꼽힌다. 이 책은 이효석 이상 김유정의 대표작을 왼쪽에 싣고, 오른쪽에 독자가 따라 쓸 수 있는 공간을 배치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필사책이 이 편집 방식을 따르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방식이었다. 이전까지 필사란 별도의 공책을 마련해 자신이 읽은 책을 그곳에 다시 써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필사책의 초기에는 시를 비롯한 문학이 위주였지만 요즘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올 초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은 3월 필사책으로 출간됐고, ‘저속노화’ 열풍을 일으킨 정희원 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의 글을 묶은 필사책 ‘저속노화 명심 필사노트’(생각의힘) 역시 다음 달 1일 출간될 예정이다.매일 한 구절씩 필사하도록 한 일력 형태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문장 365일 필사 일력’(헤르몬하우스)은 날마다 한글과 영문을 병기해 필사하면서 영문 감각도 익힐 수 있도록 구성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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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망상에 잘 빠지는 뇌…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1. 조현병을 앓는 30대 프랭크 던바는 정부의 인공위성이 고의로 자신의 몸에 ‘에너지 빔’을 쏘고 있고, 그 결과 육체적 통증과 팔다리 경련이 생긴다고 확신한다. #2. 소도시 상점 매니저인 세실리 퍼킨스는 인공위성 음모론 관련 유튜브 영상을 몇 시간씩 본다. 자신이 피해자라 믿는 건 아니지만,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지역구 의원에게 청원서도 보낸다.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교수인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이다. 프랭크는 전형적인 망상 사례다. 세실리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대목에서 차이가 있다. 세실리의 믿음은 프랭크처럼 주관적 체험(통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온라인에서 접한 정보에 근거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정신질환과 별도로, ‘망상 비슷한 믿음’이라는 범주로 구분한다. ‘집단 망상’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망상 비슷한 믿음’을 갖게 된 현실을 짚고 원인과 해법을 탐구한 책이다. 우선 저자는 음모론이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연다. 인지 편향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취약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험적 규칙에 의존한다. 이런 ‘빠른 사고’는 신속한 결정을 돕지만 동시에 현실을 왜곡하는 함정도 낳는다. 충분한 정보를 검토하지 않은 채 즉각적인 인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는 종종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들어 달라진 건, 이러한 인지적 취약성이 사회적·구조적 요인과 결합해 초대형 위기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집단적 망상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인터넷’을 지목한다. 이전만 해도 비상식적이고 특이한 믿음에 동의하는 사람을 동네에선 찾기 어려웠다. 있어도 오히려 조롱을 받곤 했다.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인터넷 덕에 가장 비주류적인 믿음까지 공유할 동료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비주류’라는 말 자체도 무의미해졌다. 그렇다면 집단 망상에 대한 ‘치료법’은 뭘까. 저자는 의사답게 몇 가지 해법도 제시한다. 첫 사례는 NPR 최고경영자였던 진보주의자 켄 스턴이다. 그는 2016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복음주의 교회에 가고, 텍사스에서 멧돼지를 사냥하고, 보수 성향 티파티 모임에도 직접 참석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생각만큼 극단적으로 분열돼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이런 여행 체험을 담은 책 ‘공화당원 같은 나: 어떻게 진보의 거품에서 벗어나 우파를 사랑하게 됐는가’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합의점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여행을 마친 뒤 스턴은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스스로 무당파를 선언했다. 두 번째 사례는 작가 존 하워드 그리핀이다. 그는 1959년 피부색을 흑인처럼 만들고, 인종 분리 정책을 시행 중이던 미 남부를 6주간 자동차로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인종차별을 ‘흑인이 된 나’에 기록했다. 실제로 ‘흑인으로 살아 보는 경험’을 통해 흑인의 현실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저자는 진정한 이해에 이르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한참을 걸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많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오늘날, 직접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일은 우리와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 양극화를 누그러뜨리며, 극단적 갈등의 벼랑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처방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책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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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전반으로 번지는 집단 망상…‘잘못된 믿음’ 벗어나려면

    #1. 조현병을 앓는 30대 프랭크 던바는 정부의 인공위성이 고의로 자신의 몸에 ‘에너지 빔’을 쏘고 있고, 그 결과 육체적 통증과 팔다리 경련이 생긴다고 확신한다.#2. 소도시 상점 매니저인 세실리 퍼킨스는 인공위성 음모론 관련 유튜브 영상을 몇 시간씩 본다. 자신이 피해자라 믿는 건 아니지만,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지역구 의원에게 청원서도 보낸다.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교수인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이다. 프랭크는 전형적인 망상 사례다. 세실리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대목에서 차이가 있다. 세실리의 믿음은 프랭크처럼 주관적 체험(통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온라인에서 접한 정보에 근거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정신질환과 별도로, ‘망상 비슷한 믿음’이라는 범주로 구분한다.‘집단 망상’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망상 비슷한 믿음’을 갖게 된 현실을 짚고 원인과 해법을 탐구한 책이다. 우선 저자는 음모론이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연다. 인지 편향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취약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험적 규칙에 의존한다. 이런 ‘빠른 사고’는 신속한 결정을 돕지만 동시에 현실을 왜곡하는 함정도 낳는다. 충분한 정보를 검토하지 않은 채 즉각적인 인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는 종종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최근 들어 달라진 건, 이러한 인지적 취약성이 사회적·구조적 요인과 결합해 초대형 위기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집단적 망상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인터넷’을 지목한다. 이전만 해도 비상식적이고 특이한 믿음에 동의하는 사람을 동네에선 찾기 어려웠다. 있어도 오히려 조롱을 받곤 했다.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인터넷 덕에 가장 비주류적인 믿음까지 공유할 동료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비주류’라는 말 자체도 무의미해졌다.그렇다면 집단 망상에 대한 ‘치료법’은 뭘까. 저자는 의사답게 몇 가지 해법도 제시한다. 첫 사례는 NPR 최고경영자였던 진보주의자 켄 스턴이다. 그는 2016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복음주의 교회에 가고, 텍사스에서 멧돼지를 사냥하고, 보수 성향 티파티 모임에도 직접 참석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생각만큼 극단적으로 분열돼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이런 여행 체험을 담은 책 ‘공화당원 같은 나: 어떻게 진보의 거품에서 벗어나 우파를 사랑하게 됐는가’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합의점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여행을 마친 뒤 스턴은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스스로 무당파를 선언했다.두 번째 사례는 작가 존 하워드 그리핀이다. 그는 1959년 피부색을 흑인처럼 만들고, 인종 분리 정책이 시행 중이던 미 남부를 6주간 자동차로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인종차별을 ‘흑인이 된 나’에 기록했다. 실제로 ‘흑인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통해 흑인의 현실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저자는 진정한 이해에 이르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한참을 걸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많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오늘날, 직접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일은 우리와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 양극화를 누그러뜨리며, 극단적 갈등의 벼랑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처방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책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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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 첫 한인 이민자, 그의 이름은 ‘코리아’ 였다”

    《우리에겐 아픈 역사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1876년, 한 열일곱 살 조선 청년이 중국 상하이에서 호주행 배에 올랐다. 당시 호주는 골드러시로 금광 채굴 인력이 몰리던 시기. 그는 수많은 중국인들에 섞여 신세계로 갔다. 18년 뒤 1894년 시민권을 받으며 ‘존 코리아(John Corea)’라고 이름 지었다. 현재 기록상 확인되는 호주 최초의 한인 이민자다.》이 존재를 세상에 알린 건 송지영 호주국립대 교수(49·정치학 전공·사진)다. 2016년 이민 간 그는 호주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재호 한인 이민사’를 정리하는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호주에서 한국인 이민사를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팀을 만든 건 처음이다.17일 캔버라 자택에서 동아일보 화상 인터뷰에 응한 송 교수는 “존 코리아는 ‘코리아’란 성을 기록으로 남긴 덕에 찾을 수 있었다”며 “19세기 말 호주에 많은 한인이 있었고, 광산 등 산업 곳곳에서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송 교수가 이런 이민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한 책 ‘이민의 진화’(푸른숲)가 5일 국내 출간됐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호주에 다다른 청년들부터 오늘날 워킹홀리데이 세대까지 시대마다 변화한 이민의 역사를 담았다.호주 내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 연구는 한국 근대사를 이민사란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시대별 한국 사회가 겪은 문제들이 다양하게 노정된다. 송 교수는 “특히 청년들은 ‘인간 안보(human security)’가 보장되는 곳으로 이동한다”며 “이민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국의 미래를 비춰 보는 지표”라고 했다. ‘인간 안보’는 1994년 유엔개발기구가 세계 이주와 이민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 이민의 정치적·경제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자는 뜻이다. 송 교수가 재호 한인동포 78명을 인터뷰했더니 ‘과도한 경쟁’과 ‘수직적인 직장 문화’ 등이 한국을 떠난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실은 송 교수 역시 1세대 이민자다. 한국에서 30년, 영국 5년, 싱가포르 5년을 거쳐 호주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극심한 번아웃을 겪은 뒤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도 인간 안보를 꿈꾸며 호주로 향한 청년이었던 셈이다. 송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로 북한인권 등 탈북자 연구를 했다. 이후 한국의 결혼 이주 여성 문제에도 집중했다. 이러한 경계인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재호 한인 연구로 이어졌다. ‘호주에서 더 행복한가’를 묻자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건 참 어렵다”고 했다. “20년 전 한국에서 성차별에 회의를 느꼈지만, 호주엔 인종차별의 벽이 있었습니다. 1세대 이민자들이 20대엔 현지인보다 건강하지만, 40대에 들어서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암 발생률도 높다는 연구가 많아요. 나이가 들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1세대 이민자들의 건강이 생애 주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하는지도 중요한 연구 주제죠.” 그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게 이민이지만, 어디가 더 나은 사회인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고 했다. 특히 존 코리아 관련 자료를 찾으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코리아는 빅토리아주 밀두라 근처 니콜스 포인트 묘지에 묻혀 있었다. 정부 기록을 검색해 찾아낸 자리는 묘비 하나 없는 평지였다고 한다. 타국에서 생을 마친 첫 재호 한인의 묘. 그 앞에서 송 교수는 “나는 어디서 죽고 싶은가란 질문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내륙 황무지 묘지는 가톨릭과 유대인, 중국인 묘역 등 구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죽어서도 나눠져 있는 삶. 송 교수는 책의 수익금을 모아 존 코리아의 묘비를 세울 계획이다. “내년이 존 코리아가 호주에 온 지 150주년이에요. 꼭 묘비를 세워 드리는 게 제 꿈입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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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해도 온기 느끼려, 현지인 삶으로 첨벙 들어가는 거죠”

    “저는 이상하게 자기네 집 가서 밥 먹자는 사람들이 많아요.”이병률 시인(58·사진)의 여행 스타일은 EBS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과 비슷하다. 현지에 스며들어 부대끼는 여행을 한다는 점이 닮았다. 2012년 베트남 호찌민을 여행했을 때도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 주민의 초대를 받았다. 아래로 낚싯대를 드리우면 물고기가 잡힌다는 물가의 작은 움막이었다. 이 시인은 “너무너무 모기가 많은 집이었다. 하도 뜯겨서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며 씩 웃었다.이런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산문집 ‘좋아서 그래’(달)를 낸 이 시인을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이미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등 여러 여행 에세이를 출간한 여행 애호가. 하지만 낯선 사람을 무방비로 따라가는 건 위험하진 않을까.“위험하죠. 그래도 가요. 가면 재밌는 일들이 생기죠. 인류가 나한테 열어젖히는 자신의 온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 안으로 첨벙 들어가 보는 거예요.”1995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전, 이 시인은 프랑스 파리에서 2년을 지냈다. 이후 시집 한 권 내지 못해 막막하던 시절에도 파리를 다시 찾곤 했다. 신간엔 그가 방황의 순간마다 돌아가 안긴 도시, 파리의 풍경과 기운이 담겼다. 가수 아이유의 ‘바이, 썸머’ 앨범 커버 등을 제작한 최산호 일러스트레이터가 삽화를 그렸다. 시인이 묘사한 파리의 풍경과 삽화를 함께 보는 재미가 있다. 파리의 어떤 기운이 시를 쓰게 했는지 묻자, “파리는 우울하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파리는 겨울이 길어요. 겨울이 우기이기도 하고. 3월 말부터 해가 조금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좋아해요. 창의적인 것은 슬프고 상처가 깊을 때 폭발력 있게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거든요. 그런 환경이 창작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아요.”이 시인은 “파리는 사랑하기 쉬운 곳”이라고도 했다. 한번은 파리 생마르탱 운하에 걸터앉아 메모를 하고 있는데, 노부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집에서 쓰던 그릇과 포크를 쟁반에 담아 소풍 나온 모습이었다. “무슨 글을 쓰냐”길래 “시 쓴다”고 답했더니, “집에 빈방이 있으니 거기서 쓰라”며 그를 데려갔다.“처음 갔을 땐 일주일 정도 있었고, 이후에도 두 번 정도 더 갔어요. 진짜 같이 먹고 자고 했죠. 사랑이 많은 사람들인 거예요.”이번 신간은 달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이 시인이 ‘여행그림책’ 시리즈의 문을 여는 책이다. 나태주, 천선란, 정세랑, 고선경 작가 등이 다음 필자로 예고돼 있다. 나태주 시인(80)은 오랫동안 구호단체를 통해 후원해 온 탄자니아의 16세 소녀를 만나기 위해 지난해 8월 현지를 찾았다. 그 여정을 시로 쓰고 손수 그림까지 그렸다고 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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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하게 집에서 밥 먹자는 사람 많아…인류가 내게 주는 온기”

    “저는 이상하게 자기네 집 가서 밥 먹자는 사람들이 많아요.”이병률 시인(58)의 여행 스타일은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을 닮았다.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 집에 스며들어 부대끼는 여행을 한다는 점에서다. 2012년 베트남 호찌민을 여행했을 때도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인에게 초대를 받았다. 바로 아래 낚싯대를 드리우면 물고기가 잡힌다는 물가의 작은 움막이었다. 이 시인은 “너무너무 모기가 많은 집이었다”며 “너무 뜯겨서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며 씩 웃었다.신작 여행산문집 ‘좋아서 그래’(달)를 낸 이 시인을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등 베스트셀러 여행 에세이를 써온 작가답게 그는 남다른 여행 철학을 들려줬다. ‘위험하진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다. “위험하죠. 그래도 가요. 가면 쓸 게 있어요. 재밌는 일들이 생기죠. 인류들이 나한테 열어젖히는 자신의 온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 안으로 첨벙 들어가 보는 거예요.”신간은 이 시인이 대표로 있는 달 출판사에서 새롭게 시작한 ‘여행그림책’ 시리즈의 첫 책이다. 이 시인을 시작으로 나태주, 천선란, 정세랑, 고선경 등이 다음 타자로 예고돼 있다. 특히 나태주 시인(80)은 지난해 8월, 오랫동안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해온 16세 소녀를 만나기 위해 탄자니아를 찾았다. 그 여정을 시로 쓰고 직접 연필로 그림까지 그려 책에 담았다. 8박 9일 동안 나 시인과 동행한 이 시인은 “안 주무시고 그날 치를 스케치하고 글로 쓴 뒤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어젯밤 쓴 글인데 읽어줄게요’ 하시더라”며 혀를 내둘렀다.1995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전,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2년을 지냈다. 이후 시집 한 권 내지 못해 막막하던 시절에도 파리를 다시 찾곤 했다. 신간은 그가 방황의 순간마다 돌아가 안긴 도시, 파리의 풍경과 기운을 풀어낸 책이다. 파리의 어떤 기운이 시를 쓰게 했는지 묻자 “파리는 우울하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파리는 겨울이 길어요. 겨울이 우기이기도 하고. 3월 말부터 해가 조금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좋아해요. 창의적인 것은 슬프고 상처가 깊을 때 폭발력 있게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거든요. 그런 환경이 창작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아요.”또 그는 “파리는 사랑하기 쉬운 곳”이라고도 했다. 한번은 파리 생마르탱 운하에 걸터앉아 메모를 하고 있는데, 한 노부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집에서 쓰던 그릇과 포크를 쟁반에 담아 소풍 나온 모습이었다. “무슨 글을 쓰냐”길래 “시 쓴다”고 답했더니 “집에 빈방이 있으니 거기서 쓰라”며 그를 데려갔다. “처음 갔을 땐 일주일 정도 있었고, 이후에도 두 번 정도 더 갔어요. 진짜 같이 먹고 자고 했죠. 그건 사랑이 많은 사람들인 거예요.”그는 책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했다.“우리는 평균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평균 이상이 되려는 욕망 속에서 살아요. 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선택지는 많죠. 이 책을 통해 그 ‘다른 것들’을 들여다보고, 그 방향에서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뻔한 길이 아닌 다른 길에도 충분한 희망과 빛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는 게 훨씬 재밌어지겠죠.”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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