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52

추천

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6-06~2026-07-06
문학/출판50%
문화 일반30%
인사일반10%
종교7%
학술3%
  • [책의 향기]안 믿던 공기감염, 나치 수용소 카메라가 첫 포착

    오랫동안 질병은 물과 음식, 접촉, 오염된 표면, 기침과 재채기를 통해 퍼진다고 알려져 왔다. 공기 중에 오래 떠다니는 작은 입자를 통한 감염은 의학의 중심에서 오랫동안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공기는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꽃가루, 곰팡이가 뒤섞여 이동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란 사실을.미국 예일대 분자생물물리학·생화학 겸임교수인 저자가 쓴 과학사 책이다. 역사 속에서 공기 전파 감염이 왜 오랫동안 외면받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게 됐는지를 추적했다. 저자는 미 뉴욕타임스(NYT) 탐사보도팀의 일원으로 팬데믹을 심층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1930년대 들어 몇몇 과학자는 기존의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질병은 기류를 타고 퍼질 수 있으며, 세균은 연기처럼 공기 중에 몇 시간씩 떠다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기 속 생명체를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했고, 훗날 ‘공중생물학’이라 불리는 분야의 토대를 마련했다. 공기 감염이 처음으로 ‘눈에 보인’ 순간을 담은 일화도 흥미롭다. 1937년 문을 연 나치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는 수용 인원이 급증하면서 감염병 확산 위험에 직면했다. 수용소 측은 오염된 물과 음식뿐 아니라 공기 중 세균에 의한 전염도 우려하며, 사람들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두도록 설득하기 위해 비말을 촬영하는 실험에 나섰다. 사람들이 재채기하고 기침하고 말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필름을 현상하자, 입에서 마치 불꽃처럼 뻗어나가는 줄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연구진의 눈길을 끈 건 그 줄무늬 주변을 감싸고 있는 희미한 안개였다. 스튜디오 온도를 30도까지 높여 안개를 없애려 했지만, 따뜻한 공기 속에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통 큰 비말은 중력 때문에 금세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더 작은 비말핵은 공기 중에 오래 떠다니며 멀리까지 이동한다. 공기 전파 감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이미 그 사진 속에 담겨 있었던 셈이다. 공기의 이동에는 국경도, 거리도 없다. 구제역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은 침으로 가까운 개체를 감염시킬 뿐 아니라,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비말핵도 함께 내뿜는다. 실제로 한 농장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바람을 따라 수 km 떨어진 지역까지 번져 수십 곳의 농장에서 집단 발병을 일으킨 경우도 소개된다. 우리는 집과 지하철, 사무실, 학교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감염병 대응은 손 씻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환기와 사람의 밀도, 실내 공기질 관리까지 모두 공중보건의 영역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절실히 배웠지만, 일상이 회복되자 공기의 중요성은 다시 주변으로 밀려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다시 우리 앞에 불러내, 방역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가 설계해야 할 인프라’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7-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은희경이 응시한 ‘몸의 시간’

    영국 밴드 오아시스(Oasis)가 16년 만에 재결합해 한국을 찾았던 지난해 10월. 이는 소설가 은희경(67)에게도 마음 들뜨는 일이었다. 비록 공연장을 찾진 못했지만, 오랜 팬의 아쉬움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시간의 감촉’(문학동네)에 녹아들었다.“전설적인 밴드의 내한 공연이라니,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의 열렬한 팬으로서 놀랍고 반갑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이명이 없을 때 왔어야 한다고 투덜댄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은 작가는 오아시스 이야기가 나오자 “좀 일찍 오지 싶었다”며 웃었다. 1995년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에서 개성적인 10대 소녀 진희를 탄생시켰던 그는 이번엔 노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취향도, 유머도, 고집도 제각각인 두 인물이다.● ‘할머니’보다 하나의 개인 소설은 예순다섯 살 자매 안나(1월생)와 경선(12월생)이 병간호를 계기로 다시 만나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할머니’란 이름으로 쉽게 묶이지 않는다. 안나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전후한국문학전집’을 탐독했고, 경선은 카페에서 플랫화이트와 모카시나몬라테를 즐긴다. 은 작가는 “우리 소설에서 ‘교육받은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노년 여성들을 헌신적인 존재로만 그리지 않고, 고유한 개인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인물들이 어린 시절부터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성장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다고 생각했죠.”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안나와 경선, 그리고 손녀 다니엘이 비 오는 날 호텔 방에서 ‘첫사랑’, ‘첫 여행’ 등 첫 경험을 돌아가며 얘기하는 대목이다. 은 작가는 “그 장면을 쓸 때 특히 재밌었다”며 “할머니와 손주라는 관계가 아니라, 세 사람이 동등하게 자기 인생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 든 몸을 있는 그대로“난데없이 뺨 한가운데에 터럭이 자라나고 머리숱이 빠지면서 점점 골룸의 헤어스타일이 되어간다….” 소설엔 이런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늙어가는 몸을 놀랄 만큼 정직하게 묘사한다. 한 페이지에 걸쳐 몸의 변화를 응시하는 대목도 있다. 은 작가는 “이번 소설에선 늙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태어나서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소멸에 이르는 게 삶이잖아요. 지금도 그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에요. ‘젊을 때는 좋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늙었네’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는 현재가 있으니까요.” 노년을 그린 문학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은 작가는 미국 작가 필립 로스(1933∼2018)를 언급했다. 로스는 ‘에브리맨’ 등에서 늙어가는 몸과 죽음의 공포, 상실을 집요하게 그려낸 작가. 하지만 은 작가의 노년관과는 결이 달랐다.“너무나 많은 기득권을 가졌던 사람의 탄식처럼 느껴졌어요. 노년을 ‘갖고 있던 걸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실제로 ‘시간의 감촉’은 노년을 다루면서도 우울이나 무력감에 머물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삶의 반경은 조금씩 넓어진다. 안나와 경선은 서로를 만나 조금씩 바깥으로 나아간다. 노년소설인 동시에 성장소설로도 읽히는 이유다.“안나도 그렇고 경선도 그렇고 자기 세계 안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에요. 마지막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하죠.” 어른의 성장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걸까. 은 작가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라고 답했다.“사람들이 ‘어떻게 아직도 소설을 쓰냐’고 물어요. 저는 제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고, 틀린 게 이렇게 많다는 걸 새로 알게 되는 순간이 좋아요. ‘아, 내가 그걸 몰랐구나’ 발견하는 순간이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틀렸다는 건 과거고, 지금은 새롭게 알게 된 현재니까요.” 그 말은 자연스럽게 첫 장편 ‘새의 선물’로 이어졌다. 은 작가는 2022년 100쇄를 맞아 개정판을 내며 ‘앉은뱅이’ 같은 표현을 현재의 감각에 맞게 고쳤다. “틀린 걸 알고 고칠 수 있어 기뻤다”고 한다. ‘새의 선물’은 이후로도 15쇄를 더 찍었다. 30년 넘은 작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읽히는 이유. 새로운 걸 배우길 멈추지 않는 작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7-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취향도 유머도 고집도 제각각 예순다섯 자매, 세상에 뛰어들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Oasis)가 16년 만에 재결합해 한국을 찾았던 지난해 10월. 이는 소설가 은희경(67)에게도 마음 들뜨는 일이었다. 비록 공연장을 찾진 못했지만, 오랜 팬의 아쉬움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시간의 감촉’(문학동네)에 녹아들었다.“전설적인 밴드의 내한 공연이라니,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의 열렬한 팬으로서 놀랍고 반갑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이명이 없을 때 왔어야 한다고 투덜댄다.”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은 작가는 오아시스 이야기가 나오자 “좀 일찍 오지 싶었다”며 웃었다. 1995년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에서 개성적인 10대 소녀 진희를 탄생시켰던 그는 이번엔 노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취향도, 유머도, 고집도 제각각인 두 인물이다.● ‘할머니’보다 하나의 개인소설은 예순다섯 살 자매 안나(1월생)와 경선(12월생)이 병간호를 계기로 다시 만나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할머니’란 이름으로 쉽게 묶이지 않는다. 안나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전후한국문학전집’을 탐독했고, 경선은 카페에서 플랫화이트와 모카시나몬라테를 즐긴다.은 작가는 “우리 소설에서 ‘교육받은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노년 여성들을 헌신적인 존재로만 그리지 않고, 고유한 개인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인물들이 어린 시절부터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성장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다고 생각했죠.”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안나와 경선, 그리고 손녀 다니엘이 비 오는 날 호텔방에서 ‘첫사랑’, ‘첫여행’ 등 첫 경험을 돌아가며 얘기하는 대목이다. 은 작가는 “그 장면을 쓸 때 특히 재밌었다”며 “할머니와 손주라는 관계가 아니라, 세 사람이 동등하게 자기 인생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든 몸을 있는 그대로“난데없이 뺨 한가운데에 터럭이 자라나고 머리숱이 빠지면서 점점 골룸의 헤어스타일이 되어간다….”소설엔 이런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늙어가는 몸을 놀랄 만큼 정직하게 묘사한다. 한 페이지에 걸쳐 몸의 변화를 응시하는 대목도 있다. 은 작가는 “이번 소설에선 늙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태어나서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소멸에 이르는 게 삶이잖아요. 지금도 그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에요. ‘젊을 때는 좋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늙었네’ 같은 건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는 현재가 있으니까요.”노년을 그린 문학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은 작가는 미국 작가 필립 로스(1933~2018)를 언급했다. 로스는 ‘에브리맨’ 등에서 늙어가는 몸과 죽음의 공포, 상실을 집요하게 그려낸 작가. 하지만 은 작가의 노년관과는 결이 달랐다.“너무나 많은 기득권을 가졌던 사람의 탄식처럼 느껴졌어요. 노년을 ‘갖고 있던 걸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실제로 ‘시간의 감촉’은 노년을 다루면서도 우울이나 무력감에 머물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삶의 반경은 조금씩 넓어진다. 안나와 경선은 서로를 만나 조금씩 바깥으로 나아간다. 노년소설인 동시에 성장소설로도 읽히는 이유다.“안나도 그렇고 경선도 그렇고 자기 세계 안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에요. 마지막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하죠.” 어른의 성장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걸까. 은 작가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라고 답했다.“사람들이 ‘어떻게 아직도 소설을 쓰냐’고 물어요. 저는 제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고, 틀린 게 이렇게 많다는 걸 새로 알게 되는 순간이 좋아요. ‘아, 내가 그걸 몰랐구나’ 발견하는 순간이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틀렸다는 건 과거고, 지금은 새롭게 알게 된 현재니까요.”그 말은 자연스럽게 첫 장편 ‘새의 선물’로 이어졌다. 은 작가는 2022년 100쇄를 맞아 개정판을 내며 ‘앉은뱅이’ 같은 표현을 현재의 감각에 맞게 고쳤다. “틀린 걸 알고 고칠 수 있어 기뻤다”고 한다. ‘새의 선물’은 이후로도 15쇄를 더 찍었다. 30년 넘은 작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읽히는 이유. 새로운 걸 배우길 멈추지 않는 작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7-01
    • 좋아요
    • 코멘트
  • 13개국 인플루언서들 “한국 곳곳의 맛 알릴게요”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1층. 쿠킹 스튜디오 ‘CJ더키친’에선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주제로 한식 쿠킹 클래스가 열리고 있었다. 숙수 복장을 한 셰프가 비빔밥의 유래를 소개하고 조리 과정을 시연하자, 참가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따라 했다. 그런데 교실 곳곳에 삼각대가 세워졌고, 스마트폰 카메라가 계속해서 돌아갔다.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르기 전에, 비빔밥 위에 고사리를 올릴 때도 참가자들은 먼저 카메라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이들은 13개국에서 온 미식·여행 인플루언서 33명. “이게 바로 한국의 맛”이라며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 각자의 언어로 설명을 마친 뒤에야 다음 재료를 집었다. 이 행사는 한국관광공사가 이날부터 2일까지 진행하는 ‘K-로컬푸드 헌터스 33’의 프로그램 중 하나. 관광공사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 지역 향토 음식을 소개하는 취지로 마련했다. 참가자들의 팔로어 수를 합산하면 약 2130만 명에 이른다. 일본 후쿠오카 출신인 다나카 요코(田中陽子) 씨는 “한국 포장마차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를 좋아한다”며 “테이블 위 그릇과 소주잔, 막걸리 사발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음식을 즐기는 모습까지 모두 매력적이다. 집에 한국 포장마차 분위기를 재현한 방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미셸 영 씨(28)는 백김치와 깍두기, 부추김치까지 김치 종류를 줄줄 외울 정도로 ‘한식 고수’다. 집에서 부추전도 직접 부쳐 먹는다고 한다.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로, 이번 여행은 “서울을 넘어 ‘각 지역에 숨어 있는 진짜 로컬의 맛’을 경험하는 것”이 목표다. 이날 참가자들은 쿠킹 클래스를 마친 뒤엔 서울 성북구 삼청각으로 이동해 출정식에 참가했다. 한옥을 배경으로 갓을 쓰고 기념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라이브 방송과 영상 촬영은 멈추지 않았다. 해외 인플루언서들은 6월 30일부터는 강원, 전라, 경상 등 세 팀으로 나뉘어 지역 대표 음식 33선을 찾아 나섰다. 이미 한식에 익숙한 해외 팬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고려해 서울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향토 음식 위주로 일정이 짜였다. 강원 팀은 강릉에서 초당순두부와 물회를 맛보고, 강릉중앙시장에서 닭강정과 오징어순대 등도 즐긴다. 이후 춘천으로 넘어가 숯불닭갈비를 체험한다. 전라 팀은 전주에서 막걸리와 홍어삼합을 먹고, 순창에서는 고추장과 떡볶이를 손수 만들어 본다. 담양 떡갈비와 광주 육전도 경험한다. 경상 팀은 안동에서 안동소주 만들기에 참여한다. 대구에선 뭉티기, 부산에서는 조개구이와 산낙지를 즐긴다. 중국 베이징 출신으로 팔로어가 301만 명에 이르는 스자(時嘉) 씨는 “전라도 미식 탐방이 가장 기대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역”이라며 “전주 비빔밥 같은 음식을 맛보고 팬들에게 한국 지역만의 숨은 풍미를 소개하고 싶다”고 기대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7-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출판사 속내 듣고, 개성 부스에 매료… “책 아직 미래 있다”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출판사 김영사 부스에서 한 독자가 책 ‘두 개의 논어’를 집어 들었다가 좀처럼 내려놓지 못했다. 시선이 머문 곳은 책을 감싼 띠지. 기존 띠지 위에 편집자가 손수 쓴 ‘속마음 띠지’가 하나 더 둘러져 있었다. “한형조 교수님의 책을 내고 싶어 5년간 교수님을 쫓아다녔습니다”, “구애 끝에 결국 원고를 받기로 했지만, 마감을 불과 2주 앞두고 교수님께서 작고하셨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짧은 글 속에는 편집자가 원고를 기다린 시간과 끝내 유작이 되어버린 책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의 태호 편집자는 “공식 띠지에는 담을 수 없었던 뒷이야기를 도서전을 찾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자와 편집자가 결말 두고 토론 28일 막을 내린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개성 넘치는 굿즈와 이벤트, 부스 디자인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곳곳에서 발을 멈춘 채 책에 얽힌 사연을 읽고, 책을 만드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온라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책을 발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출판사 클레이하우스는 편집자와 번역가가 독자와 함께 책을 읽는 ‘교환 독서’를 선보였다. 소설 ‘클레오파트라와 프랑켄슈타인’에는 심연희 번역가가 손수 붙인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등장인물들의 말다툼 장면에는 “와, 여기부터 진짜 말싸움 번역하며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책에 실린 주석에는 담기 어려운 번역가의 속내였다. 1인 출판사 소장각의 부스에서는 말레이시아 거리의 오래된 간판만 모은 사진집이 관람객의 발길을 잡았다. 독자 이지윤 씨(30)는 “실물 도판을 보니 (온라인보다) 매력적이다. 도서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고 했다. 프랑스 문학 전문 출판사 레모 부스에서는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시리즈(전 4권)를 완독한 독자 김은희 씨(50)가 편집자에게 “열린 결말이라 아쉽다. 5권을 내달라”라며 말을 걸었다. 편집자는 “열린 결말이라 더 여운이 남는 것 아닐까요?”라며 작품 이야기를 이어갔다. 책을 사이에 두고 처음 만난 독자와 편집자가 결말을 놓고 토론하는 모습은 온라인 서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아직 책의 미래가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은 한정판 굿즈 경쟁이 화제였다면, 올해는 출판사마다 개성적인 부스가 두드러졌다. 김영사는 체육관, 푸른숲은 세탁소, 위즈덤하우스는 수영장을 구현하는 등 부스 자체를 하나의 콘셉트로 꾸민 곳이 적지 않았다. 올해 “유료 굿즈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된 문학과지성사의 이광호 대표는 “예전에는 ‘작가 팬덤’ 중심이었다면 올해는 일종의 ‘출판사 팬덤’이 생긴 것을 체감했다”며 “독자들이 각 부스의 큐레이션과 정체성에 관심을 보여서 고무적이었다”고 했다. 온라인으론 충족하기 어려운 ‘만남’의 가치는 이번 도서전에서도 확인됐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온라인 서점이 대세가 되면서 출판사들도 독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평소엔 알기 어렵다. 도서전은 독자를 직접 만나 ‘아직 책의 미래가 있다’는 힘을 얻는 자리”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AI에 읽기 맡길수록… ‘생각 못하는 사람’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이미 입학 사정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 2023년 미 온라인 교육매체 인텔리전트 조사에 따르면 대학 입학처의 56%가 AI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87%는 최종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도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기업 채용도 다르지 않다. 2024년 기업 리더 대상 설문조사에선 절반가량이 채용에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지원자를 탈락시키도록 맡기고 있었다. AI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또 다른 AI가 읽고 평가하는 시대다. 미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가장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인 ‘읽기’를 AI에 “외주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요즘 AI 시대의 읽기를 다룬 책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인간의 손을 떠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들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삼 서늘하다. 2024년 5월 출시된 구글의 AI 개요(AI Overview)에 “미국에 무슬림 대통령이 몇 명 있었나?”라고 묻자 “미국에는 무슬림 대통령이 한 명 있었는데, 버락 후세인 오바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백한 오류다. AI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의 첫 무슬림 대통령?’이란 제목의 학술서를 근거로 삼았지만, 제목 끝의 물음표를 읽지 못했다. 실제 책을 읽었다면 오바마가 무슬림이란 주장이 그 책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AI는 맥락보다 단편적인 정보를 우선시하고, 그 결과 읽기를 가장한 오독을 만들어 낸다. 문학 읽기의 힘을 보여주는 연구도 흥미롭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활용한 연구에선 주인공 해리에게 자신을 동일시한 독자일수록 이민자와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편견이 낮아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만약 AI가 정리한 ‘해리=영웅, 볼드모트=악당’ 수준의 요약만 읽었다면 이런 공감이 가능했을까. 읽기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통과해 보는 경험이란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뭣보다 인상적인 건 폴란드 화가 유제프 찹스키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그는 굶주림과 강제노동에도 동료들의 정신을 지탱하기 위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훗날 이 강연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란 얇은 책으로 남았다. 영어판 기준 56쪽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결코 프루스트 작품의 줄거리 요약이 아니다. 찹스키는 자신의 사유와 해석을 덧입혀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 AI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56쪽 분량으로 요약해 달라고 하면 아마 몇 초 만에 해낼 것이다. 그러나 AI는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쓸 수는 없다. 찹스키가 그 책을 쓴 이유는 정보를 압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이 버티도록 도우려는 의도였다. 읽고, 생각하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이 여전히 사고하고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증거였던 셈이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건 단순히 “책을 읽자”는 권유가 아니다. 읽기를 AI에 넘긴다는 건 그저 한 단계를 생략하는 게 아니다. 의미를 구성하고 판단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 전체를 외주화하는 일이다. 읽기를 잃으면 판단도 함께 잃게 된다. AI가 무엇이든 대신 읽어주는 시대일수록,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건 읽기 자체가 아니라 ‘읽으며 생각하는 능력’이다. AI는 소설을 요약할 순 있어도 찹스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AI는 줄거리를 요약할 뿐, 차프스키가 될 수 없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이미 입학사정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 2023년 미 온라인 교육매체 인텔리전트 조사에 따르면 대학 입학처의 56%가 AI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87%는 최종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도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기업 채용도 다르지 않다. 2024년 기업 리더 대상 설문조사에선 절반가량이 채용에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지원자를 탈락시키도록 맡기고 있었다. AI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또 다른 AI가 읽고 평가하는 시대다.미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가장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인 ‘읽기’를 AI에 “외주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요즘 AI 시대의 읽기를 다룬 책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인간의 손을 떠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들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삼 서늘하다.2024년 5월 출시된 구글의 AI 개요(AI Overview)에 “미국에 무슬림 대통령이 몇 명 있었나?”라고 묻자 “미국에는 무슬림 대통령이 한 명 있었는데, 버락 후세인 오바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백한 오류다. AI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의 첫 무슬림 대통령?’이란 제목의 학술서를 근거로 삼았지만, 제목 끝의 물음표를 읽지 못했다. 실제 책을 읽었다면 오바마가 무슬림이란 주장이 그 책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AI는 맥락보다 단편적인 정보를 우선하고, 그 결과 읽기를 가장한 오독을 만들어낸다.문학 읽기의 힘을 보여주는 연구도 흥미롭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활용한 연구에선 주인공 해리에게 자신을 동일시한 독자일수록 이민자와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편견이 낮아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만약 AI가 정리한 ‘해리=영웅, 볼드모트=악당’ 수준의 요약만 읽었다면 이런 공감이 가능했을까. 읽기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통과해보는 경험이란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뭣보다 인상적인 건 폴란드 화가 유제프 차프스키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그는 굶주림과 강제노동에도 동료들의 정신을 지탱하기 위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훗날 이 강연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란 얇은 책으로 남았다. 영어판 기준 56쪽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결코 프루스트의 줄거리 요약이 아니다. 차프스키는 자신의 사유와 해석을 덧입혀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오늘날 AI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56쪽 분량으로 요약해 달라고 하면 아마 몇 초 만에 해낼 것이다. 그러나 AI는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쓸 수는 없다. 차프스키가 그 책을 쓴 이유는 정보를 압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이 버티도록 도우려는 의도였다. 읽고, 생각하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이 여전히 사고하고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증거였던 셈이다.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건 단순히 “책을 읽자”는 권유가 아니다. 읽기를 AI에 넘긴다는 건 그저 한 단계를 생략하는 게 아니다. 의미를 구성하고 판단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 전체를 외주화하는 일이다. 읽기를 잃으면 판단도 함께 잃게 된다. AI가 무엇이든 대신 읽어주는 시대일수록,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건 읽기 자체가 아니라 ‘읽으며 생각하는 능력’이다. AI는 소설을 요약할 순 있어도 차프스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6
    • 좋아요
    • 코멘트
  • “내가 111개 전생 거쳤단 얘기, 소설 재료로”

    “모든 과학적 진보와 발견은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악용될 수도 있어요. 불도 그렇고 방사선도 마찬가지죠. 인공지능(AI) 역시 그런 도구일 뿐입니다.”‘2026 서울국제도서전’ 이틀째인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한국에서도 독자층이 두꺼운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5)는 새 장편 ‘영혼의 왈츠’(열린책들)의 국내 출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간은 ‘역사를 돌아본다’는 발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소설이다. 주인공은 역사 속 여러 인물로 전생(前生)을 살아간다. 네안데르탈인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고대 철학자 피타고라스로 환생하기도 한다. 소설은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했다.“오래전부터 퇴행 명상을 통한 전생 체험에 빠져 있어요. 제가 만났던 한 영매는 ‘당신은 111개의 전생을 거쳤다’고 하더군요.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설 재료로는 충분했죠. 작품에 이집트 여성으로 전생을 겪는 장면도, 전생에 제가 여자였다는 이야기에서 가져왔습니다.”베르베르 작가는 자신에게 전생 체험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실험”이라며 “(이런 시도를 통해) 살다 보면 현생에만 몰두하게 되지만 ‘이것만 있는 게 아니구나. 다른 삶도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고 했다. 스스로를 ‘역사광’이라 부를 정도로 역사를 좋아하는 베르베르 작가는 인류사를 “몽매주의와 계몽주의의 대립”으로 정의했다.“우리를 과거로 되돌리고 야만과 노예 상태로 예속시키려는 힘이 있는가 하면, 정신을 고양하고 영혼을 성숙시키려는 힘도 존재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몽매주의에 맞서 계몽주의가 싸워 온 역사라고 생각합니다.”이런 연장선에서 세계 각지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걱정하기도 했다.“오늘 아침 뉴스만 봐도 몽매주의의 사례를 알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여전히 아홉 살 여자아이들이 강제로 결혼하고 성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독재 체제가 전체주의를 강요하며 국민을 노예처럼 만들고 있죠. 그런데도 세계가 ‘그러려니’ 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전생’에 꽂힌 베르베르 “나는 111개의 삶 거쳤다는 얘기 들어”

    “모든 과학적 진보와 발견은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악용될 수도 있어요. 불도 그렇고 방사선도 마찬가지죠. 인공지능(AI) 역시 그런 도구일 뿐입니다.”‘2026 서울국제도서전’ 이틀째인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한국에서도 독자층이 두터운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5)는 새 장편 ‘영혼의 왈츠’(열린책들)의 국내 출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게 AI는 이미 과거의 주제”라고 한 작가는 인류 역사에서 신기술의 등장은 언제나 반복돼왔다는 점을 강조했다.신간은 ‘역사를 돌아본다’는 발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소설이다. 주인공은 역사 속 여러 인물로 전생(前生)을 살아간다. 네안데르탈인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고대 철학자 피타고라스로 환생하기도 한다. 소설은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했다.“오래전부터 퇴행 명상을 통한 전생 체험에 빠져있어요. 제가 만났던 한 영매는 ‘당신은 111개의 전생을 거쳤다’고 하더군요.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설 재료로는 충분했죠. 작품에 이집트 여성으로 전생을 겪는 장면도, 전생에 제가 여자였다는 이야기에서 가져왔습니다.”베르베르 작가는 자신에게 전생 체험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실험”이라며 “(이런 시도를 통해) 살다 보면 현생에만 몰두하게 되지만 ‘이것만 있는 게 아니구나. 다른 삶도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고 했다. “남성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여성의 시각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스스로를 ‘역사광’이라 부를 정도로 역사를 좋아하는 베르베르 작가는 인류사를 “몽매주의와 계몽주의의 대립”으로 정의했다.“우리를 과거로 되돌리고 야만과 노예 상태로 예속시키려는 힘이 있는가 하면, 정신을 고양하고 영혼을 성숙시키려는 힘도 존재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몽매주의에 맞서 계몽주의가 싸워온 역사라고 생각합니다.”이런 연장선에서 세계 각지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걱정하기도 했다.“오늘 아침 뉴스만 봐도 몽매주의의 사례를 알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여전히 아홉 살 여자아이들이 강제로 결혼하고 성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독재 체제가 전체주의를 강요하며 국민을 노예처럼 만들고 있죠. 그런데도 세계가 ‘그러려니’ 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5
    • 좋아요
    • 코멘트
  • 기차 소리 멈춘 ‘폐역’, 따뜻함 가득한 ‘지식 창고’로[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옛 기차역 유휴공간을 활용한 ‘단촌면작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10일 개관식을 가진 도서관은 옛 단촌역 부속 기계실을 리모델링해 120㎡ 규모로 조성됐다. 바로 옆 단촌역 무인카페는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실로 운영된다. 단촌면은 그동안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없는 문화 소외지역이었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은 인근 금성면에 있는 작은도서관 하나뿐이라, 단촌면에서 차량으로 20분 이상 가야만 했다. 인근 초등학교인 단촌초 3학년 이여온 군은 “스마트폰을 가장 좋아하지만 책도 좋아한다. 도서관이 생겨서 앞으로 책과 스마트폰이 공동 1등이 될 것 같다”며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종이접기’다. 도서관에 종이접기 관련 책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신미정 단촌초 교무부장도 “기존 학교 도서관이 교실 한 칸 크기의 딱딱한 공간이었던 것에 비해, 이곳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은도서관 134곳을 조성했다. 단촌면작은도서관은 135번째이자, 올해 신규 조성될 9개 관 중 첫 번째로 문을 연 도서관이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옛 역사를 한쪽은 카페로, 한쪽은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해 과거의 기억이 머무는 아름다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미숙 KB국민은행 경북광역본부 대표는 “작은도서관이 청소년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따뜻한 위로와 행복을 채워 가는 소중한 문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연 목사는 “독서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책을 통해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직접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버려진 기차역의 변신…책과 휴식이 있는 시골 사랑방 됐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 도서관으로 변신했다.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옛 기차역 유휴공간을 활용한 ‘단촌면작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10일 개관식을 가진 도서관은 옛 단촌역 부속 기계실을 리모델링해 120㎡ 규모로 조성됐다. 바로 옆 단촌역 무인카페는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실로 운영된다.단촌면은 그동안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없는 문화 소외지역이었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은 인근 금성면에 있는 작은도서관 하나뿐이라, 단촌면에서 차량으로 20분 이상 가야만 했다.인근 초등학교인 단촌초 3학년 이여온 양은 “스마트폰을 가장 좋아하지만 책도 좋아한다. 도서관이 생겨서 앞으로 책과 스마트폰이 공동 1등이 될 것 같다”며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종이접기’다. 도서관에 종이접기 관련 책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신미정 단촌초 교무부장도 “기존 학교 도서관은 교실 한 칸 크기의 딱딱한 공간이었던 것에 비해, 이곳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은도서관 134곳을 조성했다. 단촌면작은도서관은 135번째이자, 올해 신규 조성될 9개 관 중 첫 번째로 문을 연 도서관이다.김주수 의성군수는 “옛 역사를 한편은 카페로, 한편은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해 과거의 기억이 머무는 아름다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미숙 KB국민은행 경북광역본부 대표는 “작은도서관이 청소년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따뜻한 위로와 행복을 채워가는 소중한 문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수연 목사는 “독서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책을 통해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직접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4
    • 좋아요
    • 코멘트
  • 연습생 생활만 8년, 아이돌 활동은 1년… ‘망돌’의 ‘직장인’ 데뷔기

    “귀하는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101명의 연습생이 아이돌 데뷔를 두고 경쟁하는 케이블 채널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2017년 어느 날, 첫 녹화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한 청년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미 8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고, 2014년 아이돌 그룹 BTL 멤버 ‘큐엘’로 데뷔했지만 소속사 사정으로 1년 만에 팀이 해체된 경험을 한 이였다. 한데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던 오디션마저 물거품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 ‘인생도 함께 해체된 것’ 같았다.‘망돌’(망한 아이돌)이라 불리던 청년은 9년이 흐른 지금 에치와이(옛 한국야쿠르트) 홍보마케팅팀을 거쳐 S사에서 AI(인공지능)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7년 차 직장인이 됐다.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망돌의 이력서’(애플북스·사진)를 펴낸 이상현 씨(34)를 1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꿈을 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씨는 “계약 해지 직후 몇 날 며칠을 고시텔 침대와 바닥 사이에 머문 채 지냈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꿈도, 사소한 계획도 없었다. 현실과 톱니를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시텔 근처 식당 TV에서 다른 그룹으로 다시 데뷔에 성공한 동료의 얼굴을 볼 때면 ‘나만 꿈을 놓은 건가’라는 미련이 가슴을 쳤다. 이 씨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건 스물여섯 살 때였다. 부모님이 “대학만 들어가면 응원하겠다”고 했던 터라 입학은 해뒀지만, 연습생 생활 때문에 1학년 1학기만 마친 채 휴학을 반복한 학교였다. 더는 집 안에 웅크리고 내일을 유예할 수 없었다. 복학 당시 그가 고시텔 벽에 붙인 목표는 의외로 소박했다. ‘결석 없음.’“일단 수업에 빠지지 말자. 그것부터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시작한 첫 학기 성적은 전 과목 ‘A+’. 과 수석까지 차지했다. 아이돌 시절 몸에 밴 ‘악바리 근성’이 발휘됐다. 학점은 겨우 끌어올렸지만 취업은 또 다른 서바이벌이었다. 토익 점수도, 교환학생 경험도, 인턴 경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어떤 면접관은 “궁금해서 한번 불러봤다”고 말하곤 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동안은 자신도 그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수십 번의 탈락을 반복하고 어느 순간 생각을 바꿨다. 아이돌 경력을 문제 삼을 수 없을 정도로 준비해 보자고. 에치와이 영업관리직 서류에 합격한 뒤에는 면접을 준비하며 현직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현장 이야기를 듣고, 업무를 공부했다. 그러자 면접장에서 늘 따라다니던 “왜 아이돌을 그만뒀나요” 같은 질문도 사라졌다. 입사한 뒤 첫 근무처였던 시장개척팀에선 자칭 ‘야쿠르트 아저씨’가 되어 연습생 시절 오디션장을 찾아다니듯 병원 밀집 상권을 돌며 같은 시간에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서울 강남 지역 영업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이 씨는 “도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진로 때문에 막막한 친구들이 있다면 정말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현직 아이돌이나 연습생 후배들에게도 조언했다.“고등학교 졸업장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교가 아니더라도, 아이돌을 그만두게 됐을 때를 대비한 뭔가는 있어야 하고요. 요즘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성공하기가 정말 어려워졌잖아요. 꿈을 향해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다음도 생각해야 해요.” 그는 ‘망돌’이라는 단어를 꼭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저는 그 단어 안에 희망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 끝났다고 해서 인생까지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배신의 아이콘? 알고 보면 의리파!

    흡혈박쥐는 매일 밤 자기 몸무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약 15mL의 피를 마신다. 먹잇감은 대부분 소다. 유람선 갑판 위에서 낮잠을 청하는 여행객도 가끔 훌륭한 끼니를 제공한다. 식사를 방해받지 않는다면, 즉 소가 꼬리를 휘젓거나 여행객이 베개를 휘둘러 내쫓지 않는다면 한 번의 식사로 그 양을 채운다. 흡혈박쥐는 자연에 ‘상호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실은 연속으로 3일 동안 먹이를 찾지 못한 박쥐는 아사할 가능성이 크다. 밤새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온 박쥐들 가운데 약 20%는 배를 채우지 못한 채 귀환한다. 특히 사냥이 서툰 두 살 미만의 어린 개체들은 허탕을 치는 일이 더 잦다. 이때 놀랍게도, 흡혈박쥐들은 서로 먹이를 나누며 생존한다.군락 내 먹이 공유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흡혈박쥐는 아무에게나 피를 나눠 주지 않았다. 과거 자신에게 피를 나눠 준 동료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을 건넸다. 말하자면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 반대로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사기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가 드러나 결국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한 채 집단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이 연구는 1984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으며, 오늘날까지도 흡혈박쥐는 자연의 상호 이타주의를 설명하는 사례로 꼽힌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동물학과 및 신경과학대학원 교수이자 세계적인 박쥐 연구자인 저자의 신간은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박쥐 편’을 글로 옮겨놓은 듯한 책이다. 박쥐의 세계를 생생하게 소개하는 한편, 이를 연구하기 위해 동굴과 밀림을 누비는 과학자들의 모험담도 들려준다. 박쥐의 놀라운 능력은 동료에게 먹이를 나눠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리로 물체의 형태를 구분하고, 수백만 마리가 한 동굴에 살면서도 서로의 목소리를 정확히 구별한다. 같은 크기의 생쥐보다 20배 이상 오래 살며, 강인한 면역 체계는 현대 의학이 주목하는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음성학습 능력이다. 음성학습은 인간 언어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 아기는 부모의 말을 들으며 발성을 익힌다. 반면 자연계에서 음성학습은 드문 능력이다. 다른 개의 짖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강아지도 다른 개와 똑같이 짖고, 원숭이 역시 음성학습 능력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박쥐는 다르다. 연구진이 새끼 박쥐에게 높낮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한 소리를 들려준 뒤 몇 달 후 울음소리를 분석하자, 새끼들은 어미의 소리와 실험용 스피커에서 들은 소리가 섞인 발성을 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성장 환경에 따라 억양과 말투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흔히 박쥐를 어둡고 불길한 동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박쥐는 하룻밤에 수천 마리의 모기와 해충을 먹어 치워,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또 수백 그루의 나무 위치를 기억해 해마다 같은 꽃을 찾아가 수분을 돕는 생태계의 조용한 파수꾼이기도 하다. 뭣보다 협력과 의사소통, 장수와 면역의 비밀을 품은 진화의 경이로운 실험체다. 박쥐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볼 기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도와준 동족에게 베푼다…박쥐가 보여준 ‘상호 이타주의’

    흡혈박쥐는 매일 밤 자기 몸무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약 15ml의 피를 마신다. 먹잇감은 대부분 소다. 유람선 갑판 위에서 낮잠을 청하는 여행객도 가끔 훌륭한 끼니를 제공한다. 식사를 방해받지 않는다면, 즉 소가 꼬리를 휘젓거나 여행객이 베개를 휘둘러 내쫓지 않는다면 한 번의 식사로 그 양을 채운다.흡혈박쥐는 자연에 ‘상호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실은 연속으로 3일 동안 먹이를 찾지 못한 박쥐는 아사할 가능성이 크다. 밤새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온 박쥐들 가운데 약 20%는 배를 채우지 못한 채 귀환한다. 특히 사냥이 서툰 2살 미만의 어린 개체들은 허탕을 치는 일이 더 잦다. 이때 놀랍게도, 흡혈박쥐들은 서로 먹이를 나누며 생존한다.군락 내 먹이 공유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흡혈박쥐는 아무에게나 피를 나눠주지 않았다. 과거 자신에게 피를 나눠준 동료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을 건넸다. 말하자면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 반대로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사기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가 드러나 결국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한 채 집단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이 연구는 1984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으며, 오늘날까지도 흡혈박쥐는 자연의 상호 이타주의를 설명하는 사례로 꼽힌다.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동물학과 및 신경과학대학원 교수이자 세계적인 박쥐 연구자인 저자의 신간은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박쥐 편’을 글로 옮겨놓은 듯한 책이다. 박쥐의 세계를 생생하게 소개하는 한편, 이를 연구하기 위해 동굴과 밀림을 누비는 과학자들의 모험담도 들려준다.박쥐의 놀라운 능력은 동료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리로 물체의 형태를 구분하고, 수백만 마리가 한 동굴에 살면서도 서로의 목소리를 정확히 구별한다. 같은 크기의 생쥐보다 20배 이상 오래 살며, 강인한 면역 체계는 현대 의학이 주목하는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음성학습 능력이다. 음성학습은 인간 언어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 아기는 부모의 말을 들으며 발성을 익힌다. 반면 자연계에서 음성학습은 드문 능력이다. 다른 개의 짖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강아지도 다른 개와 똑같이 짖고, 원숭이 역시 음성학습 능력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박쥐는 다르다. 연구진이 새끼 박쥐에게 높낮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한 소리를 들려준 뒤 몇 달 후 울음소리를 분석하자, 새끼들은 어미의 소리와 실험용 스피커에서 들은 소리가 섞인 발성을 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성장 환경에 따라 억양과 말투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우리는 흔히 박쥐를 어둡고 불길한 동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박쥐는 하룻밤에 수천 마리의 모기와 해충을 먹어 치워,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또 수백 그루의 나무 위치를 기억해 해마다 같은 꽃을 찾아가 수분을 돕는 생태계의 조용한 파수꾼이기도 하다. 뭣보다 협력과 의사소통, 장수와 면역의 비밀을 품은 진화의 경이로운 실험체다. 박쥐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볼 기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19
    • 좋아요
    • 코멘트
  • 천명관 10년만의 장편…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로 데려가다

    소설 ‘고래’의 작가 천명관(62)이 이번엔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로 독자를 데려간다. 천 작가가 다섯 번째 장편소설 ‘아코디언’을 출간했다. 2016년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장편이다. 신작은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 서울이 배경.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고아들이 낡은 붉은색 아코디언 한 대에 의지해 생존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천 작가는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6·25전쟁이야말로 인류사에 보기 드문 거대한 비극이면서 한국 사회 지형을 만든 근원”이라며 “제 나름대로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고래’를 떠올린 독자들에겐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신화적 상상력과 민담적 서사로 가득했던 ‘고래’와 달리, ‘아코디언’은 판타지적 요소를 거의 배제한 사실주의 소설에 가깝다. 천 작가는 “고래를 쓸 때는 저도 제가 뭘 쓰는지 몰랐다”며 웃은 뒤 “머릿속에서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통제하지 않고 놓아준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소설은 현실의 부조리와 폭력, 착취, 불평등을 담고 있다”며 “다른 형식으로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가두려고 애썼다”고 했다.‘아코디언’에서 시대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는 음악이다. 작품 곳곳에 ‘목포의 눈물’, ‘열아홉 순정’, ‘베사메무초’ 같은 유행가들이 등장하며, 일부는 장의 제목으로도 활용됐다. 천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릴 때 늘 들려주셨던 곡들”이라며 “‘단장의 미아리고개’ 가사인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 끌려가신 이 고개’를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내용이 노래가 될 수 있나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돌이켜보면 당시 노래들은 민중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었고 삶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어요. 상처와 트라우마뿐 아니라 익살과 아이러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도 담겨 있었죠. 그런 노래들의 탄생 배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노래들에 바치는 헌사예요.” 천 작가는 2004년 발표한 장편 ‘고래’의 영어 번역본이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부커상은 제 인생에서 재밌는 해프닝이었다”며 “시상식에 가기 전부터 상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가족들을 모두 데려왔더라. 그걸 보고 ‘아, 저분이 받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30대에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40대엔 소설가로 활동했다. 50대에 다시 영화로 돌아가더니, 60대에 다시 소설가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50대에 영화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남은 삶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 것”이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사]조선일보

    ◇조선일보 △편집인·부사장 양상훈 △이사 주필 김창균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17
    • 좋아요
    • 코멘트
  • 유행가가 흐르던 폐허의 서울…‘고래’ 천명관의 새 장편 ‘아코디언’

    ‘고래’의 작가 천명관이 이번엔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로 독자를 데려간다.천명관 작가(62)가 신간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을 기념해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016년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장편이다.신작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고아들이 낡은 붉은색 아코디언 한 대에 의지해 생존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천 작가는 “한국전쟁이야말로 인류사에 드문 거대한 비극이면서 한국 사회 지형을 만든 근원”이라며 “제 나름대로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말했다.‘고래’를 떠올린 독자들에게 이번 작품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신화적 상상력과 민담적 서사로 가득했던 ‘고래’와 달리 ‘아코디언’은 판타지적 요소를 거의 배제한 사실주의 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천 작가는 “‘고래’를 쓸 때는 저도 제가 뭘 쓰는지 몰랐다”며 웃은 뒤 “머릿속에서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통제하지 않고 놓아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소설은 현실의 부조리와 폭력, 착취, 불평등을 담고 있다”며 “다른 형식으로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가두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이번 작품에서 시대를 환기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음악이다. 작품에는 ‘목포의 눈물’, ‘열아홉 순정’, ‘베사메무초’ 같은 유행가들이 등장하며 일부는 장의 제목으로 활용됐다. 천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릴 때 늘 들려주셨던 곡들”이라며 “‘단장의 미아리고개’ 같은 노래 가사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 끌려가신 이 고개’를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내용이 노래가 될 수 있나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이어 “돌이켜보면 당시 노래들은 민중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었고 삶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며 “상처와 트라우마뿐 아니라 익살과 아이러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도 담겨 있었다. 노래들의 탄생 배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노래들에 바치는 헌사”라고 말했다.천 작가는 2004년 발표한 장편 ‘고래’의 영어 번역본이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부커상은 제 인생에서 재밌는 해프닝이었다”고 말한 뒤 “시상식에 가기 전부터 제가 상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가족들을 모두 데려왔더라. 그걸 보고 ‘아, 저분이 받겠구나’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30대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40대에는 소설가로 활동했으며, 50대에 다시 영화로 돌아갔던 그는 60대에 다시 소설가의 자리로 돌아왔다. 천 작가는 “50대에 영화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남은 삶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17
    • 좋아요
    • 코멘트
  • “애도는 비선형적, 완벽한 방법 없어… 상실 대한 이야기”

    “애도에는 완벽한 방법이 없어요. 애도는 비선형적이고 지저분할 수도 있죠.”한국계 미국인 윤지현 작가(34)가 16일 서울 마포구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꺼낸 말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 즉시 11개국에 선판매된 호러 장편소설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기자간담회 자리였지만, 이날 윤 작가가 가장 오래 이야기한 것은 호러도 귀신도 아닌 ‘애도’였다.소설은 익사한 언니를 되살리려는 재미교포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녀는 모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법으로 언니를 부활시키지만, 그 대가로 평화롭던 캘리포니아의 해안 도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귀신의 위협에 휩싸인다. 장화홍련 설화와 물귀신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K호러’ 소설로 소개되지만, 윤 작가는 작품의 출발점이 공포가 아니었다고 했다. “초고는 상실을 겪고 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윤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가족 중 한 명이 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창작은 그 감정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상실을 이해하고 애도의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품은 시작됐다.호러라는 장르를 만나며 고민은 더욱 선명해졌다. 윤 작가는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되거나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했을 때 느끼는 공포가 있다”며 “그 변화와 상실에 책임져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고딕(Gothic·괴기스럽거나 공포스러운 중세적 분위기)적인 공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20여 년 전 본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도 오랫동안 그의 상상력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인데도 ‘장화, 홍련’은 끝까지 봤다. 너무 아름답고 뛰어난 영화였다”고 회고했다. 다만 원작의 설화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다. 원작 속 장화와 홍련은 죽은 뒤 귀신이 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원한을 푼다. 반면 소설 속 자매는 직접 행동한다. 동생은 살아남고, 언니는 귀신이 아니라 실재의 육체를 가진 존재로 돌아온다. 윤 작가는 “원작보다 두 인물에게 훨씬 강한 주체성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윤 작가는 한국 문화가 죽음을 삶 가까이에 두는 것에도 주목했다. “미국에서는 애도를 일정 기간의 과정으로 여기고 이후에는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제사를 지내면서 죽은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위안을 준다”고 덧붙였다.“치유란 상실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 속에서 다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요.”(윤 작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애도에는 완벽한 방법이 없어요”…호러 장편소설 낸 윤지현

    “애도에는 완벽한 방법이 없어요. 애도는 비선형적이고 지저분할 수도 있죠.”한국계 미국인 윤지현 작가(34)가 16일 서울 마포구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꺼낸 말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 즉시 11개국에 선판매된 호러 장편소설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기자간담회 자리였지만, 이날 윤 작가가 가장 오래 이야기한 것은 호러도, 귀신도 아닌 ‘애도’였다.소설은 익사한 언니를 되살리려는 재미교포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녀는 모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법으로 언니를 부활시키지만, 그 대가로 평화롭던 캘리포니아의 해안 도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귀신의 위협에 휩싸인다. 장화홍련 설화와 물귀신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K-호러’ 소설로 소개되지만, 윤 작가는 작품의 출발점이 공포가 아니었다고 했다. “초고는 상실을 겪고 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윤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가족 중 한 명이 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창작은 그 감정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상실을 이해하고 애도의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품은 시작됐다.호러라는 장르를 만나며 고민은 더욱 선명해졌다. 윤 작가는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되거나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했을 때 느끼는 공포가 있다”며 “그 변화와 상실에 책임져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고딕(Gothic·괴기스럽거나 공포스러운 중세적 분위기)적인 공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20여 년 전 본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도 오랫동안 그의 상상력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인데도 ‘장화, 홍련’은 끝까지 봤다. 너무 아름답고 뛰어난 영화였다”고 회고했다. 다만 원작의 설화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다. 원작 속 장화와 홍련은 죽은 뒤 귀신이 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원한을 푼다. 반면 소설 속 자매는 직접 행동한다. 동생은 살아남고, 언니는 귀신이 아니라 실제의 육체를 가진 존재로 돌아온다. 윤 작가는 “원작보다 두 인물에게 훨씬 강한 주체성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윤 작가는 한국 문화가 죽음을 삶 가까이에 두는 것에도 주목했다. “미국에서는 애도를 일정 기간의 과정으로 여기고 이후에는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제사를 지내면서 죽은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위안을 준다”고 덧붙였다.“치유란 상실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 속에서 다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요.”(윤 작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16
    • 좋아요
    • 코멘트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년 만에 500권 달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500권을 돌파했다.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 500번째 책으로 이미륵 작가의 ‘압록강은 흐른다’(사진)를 출간했다고 15일 밝혔다. 1998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첫 책으로 선보인 지 28년 만이다. 국내 출판사 문학전집 시리즈가 500권을 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00번째 책으로 선정된 ‘압록강은 흐른다’는 3·1운동에 가담한 뒤 일제의 수배를 피해 독일로 망명한 이미륵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고향에서의 유년 시절과 식민지 조선의 현실, 망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1946년 독일 피퍼 출판사에서 독일어로 처음 출간됐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현재까지 38개국 245명의 작가가 쓴 394개 작품을 소개했다. 누적 발행 부수는 약 2300만 부에 이른다.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2000년 12월 2일 세계문학전집으로 처음 출간된 이후 약 81만3000부가 판매됐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66만6000부로 2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60만 부로 3위에 올랐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58만8000부)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50만5000부)이 각각 4위와 5위를 기록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6-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