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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부발전이 2040년까지 무탄소 에너지 발전량 비중 60%, 온실가스 감축률 7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2026년은 이러한 장기 전략의 실행력을 검증하는 분기점으로, 석탄 화력 발전 중심의 기존 체계를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 개발과 글로벌 입지 확보를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용량 터빈 기술로 서해안 풍력 벨트 추진풍력발전은 중부발전의 무탄소 에너지 전략의 중심축이다. 390MW 규모의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단지’는 현재 본격적인 공사 단계에 진입했으며, 터빈 대형화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전력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대용량 터빈 기술은 발전 비용 절감으로 직결된다. 전남 신안 앞바다의 복잡한 지형을 반영한 지지 구조물 설계, 전력 손실 최소화를 위한 최적화된 배치, 그리고 기존 제주 한림 해상풍력(100MW) 운영 경험에서 도출된 특수 코팅 기술까지 적용되고 있다. 충남 보령과 인천 지역의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개발도 동시에 진행 중으로, 이는 서해안 전역에 걸친 풍력 벨트 구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美 텍사스 이어 중동까지 태양광 진출 태양광 분야에서 중부발전은 국내 유휴 부지 활용에서 해외 거대 시장 선점까지 다층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오만 이브리3 태양광·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 발전 사업은 지난달 15일 금융종결을 달성하며 건설 단계에 진입했다. 총사업비 3억1100만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500MW 태양광과 100MWh 배터리 저장장치를 연계한 오만 최초의 BESS 통합형 태양광 사업으로, 사막 기후 최적화 기술을 통해 12월 상업운전을 목표로 한다. 미국 텍사스 루시 태양광(350MW)은 양면형 패널 기술로 지면 반사광까지 활용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계획이며, 2027년 7월 운영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수상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추가 발전 용량을 확보하는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 위기 대응과 안정적 전력 수급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중부발전의 접근은 설비 대형화와 글로벌 거점 확보를 통해 기술적 한계와 입지 부족이라는 국내 제약을 극복하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자금 조달과 국제 금융기관의 참여는 사업의 재정적 안정성을 담보한다. 다만 해상풍력의 환경영향평가, 글로벌 사업의 정치·사회적 리스크, 그리고 기술 개발 과정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수 등은 향후 면밀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중부발전의 2040년 탄소중립 목표는 한국의 재정·에너지 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기능하고 있다. 서해안 풍력과 중동 태양광이라는 이중 전략은 국내 자원 한계를 보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향후 기술 표준화, 주민 수용성 확보, 그리고 장기적 수익성 확보 여부가 이 대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중부발전이 2040년까지 무탄소 에너지 발전량 비중 60%, 온실가스 감축률 7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2026년은 이러한 장기 전략의 실행력을 검증하는 분기점으로, 석탄 화력 발전 중심의 기존 체계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글로벌 입지 확보를 본격 추진할 전망이다.◆ 해상풍력 사업의 기술 고도화풍력발전은 중부발전의 무탄소 에너지 전략의 중심축이다. 390MW 규모의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단지’는 현재 본격적인 공사 단계에 진입했으며, 터빈 대형화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전력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대용량 터빈 기술은 발전 비용 절감으로 직결된다. 신안 앞바다의 복잡한 지형을 반영한 지지 구조물 설계, 전력 손실 최소화를 위한 최적화된 배치, 그리고 기존 제주 한림 해상풍력(100MW) 운영 경험에서 도출된 특수 코팅 기술까지 적용되고 있다. 보령과 인천 지역의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 개발도 동시에 진행 중으로, 이는 서해안 전역에 걸친 풍력 벨트 구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 진출태양광 분야에서 중부발전은 국내 유휴 부지 활용에서 해외 거대 시장 선점까지 다층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오만 이브리 3 태양광·BESS 발전사업은 지난 1월 15일 금융종결을 달성하며 건설 단계에 진입했다. 총사업비 3억 1,100만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500MW 태양광과 100MWh 배터리 저장장치를 연계한 오만 최초의 BESS 통합형 태양광 사업으로, 사막 기후 최적화 기술을 통해 2026년 12월 상업운전을 목표로 한다. 미국 텍사스 루시 태양광(350MW)은 양면형 패널 기술로 지면 반사광까지 활용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계획이며, 2027년 7월 운영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수상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추가 발전 용량을 확보하는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에너지 전환은 기후 위기 대응과 안정적 전력 수급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중부발전의 접근은 설비 대형화와 글로벌 거점 확보를 통해 기술적 한계와 입지 부족이라는 국내 제약을 극복하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자금 조달과 국제 금융기관의 참여는 사업의 재정적 안정성을 담보한다. 다만 해상풍력의 환경 영향 평가, 글로벌 사업의 정치·사회적 리스크, 그리고 기술 개발 과정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수 등은 향후 면밀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중부발전의 2040년 탄소중립 목표는 한국의 재정·에너지 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기능하고 있다. 서해안 풍력과 중동 태양광이라는 이중 전략은 국내 자원 한계를 보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향후 기술 표준화, 주민 수용성 확보, 그리고 장기적 수익성 확보 여부가 이 대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소프라노 이혜지의 독창회 ‘노래의 여정(A Journey of Song)’이 28일 오후 7시반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린다. 이혜지의 ‘노래의 여정’ 시리즈는 ‘성악과 기악이 어떻게 함께 공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성악과 기악이 단순한 ‘반주’ 선율 관계를 넘어 대등하고 유기적인 파트너로서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선보인다. 1부는 소프라노 이혜지가 기타리스트 김진세와 함께 외국 가곡·퓨전 현대곡을 선보인다. 소프라노의 풍부한 표현력과 따뜻하고 섬세하면서 때로는 강렬한 기타 선율이 만나는 음악을 전달한다. 헨리 퍼셀의 ‘Music for a While(음악이 있는 동안)’은 ‘오이디푸스’라는 희곡에 삽입된 곡으로, 카운터테너의 주요 레퍼토리를 소프라노 버전으로 들려준다. 이어 가브리엘 포레의 ‘Les Berceaux(요람들)’ ‘Clair de Lune(달빛)’과 쥘 마스네의 ‘Nuit d’Espagne(에스파냐의 밤)’이 펼쳐진다. 끝으로 페르난도 오브라도스의 ‘스페인 고전가곡’에 들어있는 ‘El Vito(엘 비토)’로 1부의 흥을 폭발시킨다. 김진세도 기타 독주 연주를 선보인다. 2부는 성악과 피아노의 협연이다. 뮤지컬 넘버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에두아르 리페가 작곡한 ‘How Do I Love Thee?(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요?)’는 19세기 시인 부부의 사랑 고백을 이혜지의 감성으로 달달하게 표현한다. 이어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세 개의 왈츠’에 들어있는 이네트의 러브송 ‘Je t’aime(사랑해)’를 통해 캐러멜 마키아토 맛의 사랑 표현을 감상하게 된다. 문재원의 피아노 솔로는 윌리엄 볼컴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3개의 유령 래그(3 Ghost Rag)’ 중 첫 번째 곡 ‘Graceful Ghost Rag(우아한 유령의 래그)’로 연주되고, 이어 이혜지의 목소리와 함께 볼컴의 ‘George(조지)’와 ‘Amor(사랑)’을 선물한다.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소프라노 이혜지는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와 더 스테이지(The Stage)로부터 ‘마치 불꽃놀이와 같은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소프라노’라는 평을 받았다. 2017년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런던 로열오페라 하우스의 예트 파커 아티스트 프로그램(Jette Parker Artist Programme)에 발탁되기도 했다. 2017-18 시즌 로열오페라 하우스에서 세계적인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커의 대표작 ‘마술피리’의 파파게나 역으로 데뷔했다. 웨일스 국립오페라단에서는 오페라 ‘리골레토’ 질다 역으로 데뷔했다. 2023년 잉글랜드 국립오페라(ENO)에서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 ‘아크나텐’의 티예 여왕 역을 맡기도 했다. 국내 무대에는 2024년 4월 국립오페라단에서 국내 초연인 영국 현대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의 티타니아 역으로 데뷔했으며, 최근 부산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카르멘’ 콘서트오페라를 공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 있는 그랑서울 빌딩 3층 롤파크(LoL Park).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온 MZ세대 팬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뛰고 있는 ‘2026 LoL 챔피언스 코리아 컵(LCK컵)’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는 ‘K게임’ 성지를 찾아 떠나 보았다.● 롤파크에 몰려드는 이방인들“프랑스에서도 매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에 시작하는 한국 LCK컵 경기 생중계를 봤어요. 프랑스인들에게도 LCK 경기가 열리는 롤파크는 유명해서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합니다.”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온 대학생 콜랑 씨(23)는 롤파크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오픈하자마자 ‘광클’로 매진되는 티켓을 구하지 못했지만, 로비에서 생중계를 보면서 세계적인 ‘게임의 성지’에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했다. 그는 “페이커 선수가 출전하는 롤파크 아레나를 방문하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였다”고 말했다. 롤파크에 외국 MZ세대가 몰려드는 이유는 LCK의 독보적 위상 때문이다. 세계에서 LoL(리그오브레전드) 리그는 한국, 북미, 남미, 유럽, 중국, 태평양 등 6개 지역에서 열린다. 매년 각 리그 상위 팀들이 모여 최강 팀을 가리는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15회 중 10회를 LCK 소속 한국 팀이 우승하는 업적을 이어 오고 있다. 400석 규모 롤파크에 들어서니 글래디에이터(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로마 콜로세움을 연상케하는 원형 경기장(아레나)이 보였다. 아레나 중앙,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싸우는 각 팀 5명 전사와 코치가 분주하게 소통하고 있다. 게임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중앙 대형 스크린에는 용을 비롯한 전투 캐릭터들이 불을 뿜고, 칼을 휘두르며 맞붙는다. 전세가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객석에서 KT롤스타와 DN수퍼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과 환호성, 탄식과 박수가 쏟아진다. ‘세상에. 컴퓨터 게임을 보면서도 이렇게 뜨겁게 응원할 수 있구나.’ 이종격투기나 복싱, 프로 축구와 야구 경기장에서 함성을 질러 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축구 팬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장에 가 보고, 야구 팬들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장에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전 세계 1030세대 게이머들은 롤파크에 와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롤파크 아레나 로비에는 빌지워터(Bilgewater) 카페가 있다. 빌지워터는 LoL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모든 사람이 열린 상태로 만나 교류하는 장소이자 세계관’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팬들은 경기를 기다리며 종이에 응원 문구를 쓴다. 금발의 서양 청년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온 소녀 팬도 많다. 게임이 끝나면 선수들이 나와 팬들과 사인회를 갖는다. BTS 공연을 보러 온 ‘아미’들이나 e스포츠 스타를 만나러 온 팬들 모습은 다르지 않다. 롤파크 로비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운영하는 PC방과 공식 굿즈 스토어가 있다. 또 LCK 출전 10개 팀 유니폼도 전시돼 있다. 페이커가 뛰고 있는 T1은 SK텔레콤이 후원한다. 다른 팀들도 농심, KT, 한화생명, KIA, 한진그룹, 부산은행 같은 유수의 기업이 후원한다. 굴지의 기업들이 후원하는 이유는 모든 경기가 스트리밍 채널 ‘네이버 치지직’과 ‘숲(Soop)’을 통해 세계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매일 4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데, 이 중 60%는 해외 시청자다.로비에서 만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파헤드 씨는 “사우디 리야드에서도 2년 전부터 e스포츠월드컵(EWC) 대회가 열리고 있다”며 “초대 대회 우승자 페이커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감격할 뿐”이라고 말했다.● K게임과 K푸드의 만남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찾아가는 또다른 게임 관광지 중 하나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하이커 그라운드(HiKR Ground)’다. 2023년도 월드챔피언십이 한국에서 열렸을 때 대대적인 게임 관련 전시가 열렸던 곳이다.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K게임 진수를 느끼려면 PC방을 가야 한다. LCK컵 참가 팀들은 서울 홍대, 강남, 동대문 등에 MZ세대 및 외국인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래그십 PC방을 열고 있다. 일반 PC방과 달리 각 팀 선수단 사진으로 꾸며져 있고 레스토랑 및 굿즈샵 등을 갖춘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다.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T1베이스 캠프’는 페이커 팬들의 성지 순례 장소다. 입구에는 T1 선수들의 대형 액자가 걸려 있고, 굿즈샵에는 안경을 쓴 페이커 선수 캐릭터가 서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굿즈샵에는 라이엇게임 피규어뿐 아니라 T1 선수들 사진이 들어 있는 기념품이 가득하다. K팝 팬들이 아이돌 가수 굿즈를 사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페이커의 시그니처 의자로 꾸며진 PC방에서는 ‘페이커 세트’ ‘T1 핫도그’ ‘칸나 불고기 덮밥’ 등 선수들 이름이 붙은 시그니처 메뉴가 가득하다. 요즘 PC방은 K푸드를 즐기는 레스토랑으로도 인기다. 1990년대 초반 태동한 PC방 먹거리는 원래 컵라면, 스낵류, 캔음료 등 간단한 메뉴에 그쳤다. 그러나 요즘은 떡볶이와 삼겹살, 파스타와 스테이크, 튀김, 핫도그, 피자에 카페 수준 음료와 디저트까지 갖춰 ‘K미식 공간’으로 승부를 하고 있다.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신논현역 앞에 있는 ‘레드포스 아레나’가 대표적이다. 농심이 후원하는 레드포스팀 이름을 딴 만큼 음식에 진심이다. 미국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e of America) 출신 셰프 2명이 수제 피자와 다채로운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농심의 각종 라면을 활용한 요리도 선보인다. ‘짜계치’(짜파게티에 계란후라이와 치즈를 올려먹는 라면)와 ‘불계치’(불닭볶음면에 계란+치즈), ‘삼겹짜파게티’(짜파게티 위에 삼겹살 얹은 것) ‘새우깡’을 모티브로 한 새우튀김우동 등 창의적인 요리가 펼쳐진다.레드포스 광주 상무지구점과 첨단점에서는 미슐랭 1스타 김완수 셰프가 스테이크와 랍스터, 생과일 주스 등 프리미엄 메뉴도 제공한다. 추운 날씨에 혼자 밥 먹을 일이 있다면 식당에서 멀뚱멀뚱 있지 말고 PC방에 와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밥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한 서울 동대문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는 ‘젠지 GGX’가 있다. 젠지e스포츠가 지난해 6월 동대문쇼핑몰 던던에 오픈한 복합 게임문화 공간이다. 젠지를 상징하는 블랙과 골드로 꾸며진 라운지 공간에서는 LCK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젠지의 호랑이 마스코트 ‘젠랑이’ 앞에서 팬들이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오뚜기가 운영하는 식음료 코너에서 ‘젠진라면’ ‘쵸비빔면’ ‘튀김만듀로’ 등 이색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독일에서 온 관광객 루카스 씨(21)는 “젠지 ‘쵸비(Chovy)’ 선수의 무호흡 파밍 실력을 좋아하는 게임 마니아”라며 “서울 여행은 아트와 테크놀러지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게임과 미식이 결합된 차세대 복합문화공간 ‘한국형 PC방’은 해외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 그랑서울 빌딩 3층 롤파크(LoL Park).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온 MZ세대 팬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뛰고 있는 ‘2026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컵’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는 ‘K게임’ 성지를 찾아 떠나 보았다.● 롤파크에 몰려드는 이방인들“프랑스에서도 매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에 시작하는 한국 LCK컵 경기 생중계를 봤어요. 프랑스인들에게도 LCK 경기가 열리는 롤파크는 유명해서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합니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온 대학생 콜랑 씨(23)는 롤파크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오픈하자마자 ‘광클’로 매진되는 티켓을 구하지 못했지만, 로비에서 생중계를 보면서 세계적인 ‘게임의 성지’에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했다. 그는 “페이커 선수가 출전하는 롤파크 아레나를 방문하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였다”고 말했다.롤파크에 외국 MZ세대가 몰려드는 이유는 LCK의 독보적 위상 때문이다. 세계에서 LoL(리그오브레전드) 리그는 한국, 북미, 남미, 유럽, 중국, 태평양 등 6개 지역에서 열린다. 매년 각 리그 상위 팀들이 모여 최강 팀을 가리는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15회 중 10회를 LCK 소속 한국 팀이 우승하는 업적을 이어 오고 있다. 400석 규모 롤파크에 들어서니 글래디에이터(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로마 콜로세움을 연상케하는 원형 경기장(아레나)이 보였다. 아레나 중앙,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싸우는 각 팀 5명 전사와 코치가 분주하게 소통하고 있다. 게임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중앙 대형 스크린에는 용을 비롯한 전투 캐릭터들이 불을 뿜고, 칼을 휘두르며 맞붙는다. 전세가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객석에서 KT롤스타와 DN수퍼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과 환호성, 탄식과 박수가 쏟아진다. ‘세상에. 컴퓨터 게임을 보면서도 이렇게 뜨겁게 응원할 수 있구나.’ 이종격투기나 복싱, 프로 축구와 야구 경기장에서 함성을 질러 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축구 팬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장에 가 보고, 야구 팬들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장에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전 세계 1030세대 게이머들은 롤파크에 와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롤파크 아레나 로비에는 빌지워터(Bilgewater) 카페가 있다. 빌지워터는 LoL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모든 사람이 열린 상태로 만나 교류하는 장소이자 세계관’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팬들은 경기를 기다리며 종이에 응원 문구를 쓴다. 금발의 서양 청년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온 소녀 팬도 많다. 게임이 끝나면 선수들이 나와 팬들과 사인회를 갖는다. BTS 공연을 보러 온 ‘아미’들이나 e스포츠 스타를 만나러 온 팬들 모습은 다르지 않다. 롤파크 로비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운영하는 PC방과 공식 굿즈 스토어가 있다. 또 LCK 출전 10개 팀 유니폼도 전시돼 있다. 페이커가 뛰고 있는 T1은 SK텔레콤이 후원한다. 다른 팀들도 농심, KT, 한화생명, KIA, 한진그룹, 부산은행 같은 유수의 기업이 후원한다. 굴지의 기업들이 후원하는 이유는 모든 경기가 스트리밍 채널 ‘네이버 치지직’과 ‘숲(Soop)’을 통해 세계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매일 4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데, 이 중 60%는 해외 시청자다. 로비에서 만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파헤드 씨는 “사우디 리야드에서도 2년 전부터 e스포츠월드컵(EWC) 대회가 열리고 있다”며 “초대 대회 우승자 페이커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감격할 뿐”이라고 말했다.● K게임과 K푸드의 만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찾아가는 또다른 게임 관광지 중 하나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하이커 그라운드(HiKR Ground)’다. 2023년도 월드챔피언십이 한국에서 열렸을 때 대대적인 게임 관련 전시가 열렸던 곳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K게임 진수를 느끼려면 PC방을 가야 한다. LCK컵 참가 팀들은 서울 홍대, 강남, 동대문 등에 MZ세대 및 외국인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래그십 PC방을 열고 있다. 일반 PC방과 달리 각 팀 선수단 사진으로 꾸며져 있고 레스토랑 및 굿즈샵 등을 갖춘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다.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T1베이스 캠프’는 페이커 팬들의 성지 순례 장소다. 입구에는 T1 선수들의 대형 액자가 걸려 있고, 굿즈샵에는 안경을 쓴 페이커 선수 캐릭터가 서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굿즈샵에는 라이엇게임 피규어뿐 아니라 T1 선수들 사진이 들어 있는 기념품이 가득하다. K팝 팬들이 아이돌 가수 굿즈를 사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페이커의 시그니처 의자로 꾸며진 PC방에서는 ‘페이커 세트’ ‘T1 핫도그’ ‘칸나 불고기 덮밥’ 등 선수들 이름이 붙은 시그니처 메뉴가 가득하다. 요즘 PC방은 K푸드를 즐기는 레스토랑으로도 인기다. 1990년대 초반 태동한 PC방 먹거리는 원래 컵라면, 스낵류, 캔음료 등 간단한 메뉴에 그쳤다. 그러나 요즘은 떡볶이와 삼겹살, 파스타와 스테이크, 튀김, 핫도그, 피자에 카페 수준 음료와 디저트까지 갖춰 ‘K미식 공간’으로 승부를 하고 있다.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신논현역 앞에 있는 ‘레드포스 아레나’가 대표적이다. 농심이 후원하는 레드포스팀 이름을 딴 만큼 음식에 진심이다. 미국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e of America) 출신 셰프 2명이 수제 피자와 다채로운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농심의 각종 라면을 활용한 요리도 선보인다. ‘짜계치’(짜파게티에 계란후라이와 치즈를 올려먹는 라면)와 ‘불계치’(불닭볶음면에 계란+치즈), ‘삼겹짜파게티’(짜파게티 위에 삼겹살 얹은 것) ‘새우깡’을 모티브로 한 새우튀김우동 등 창의적인 요리가 펼쳐진다. 레드포스 광주 상무지구점과 첨단점에서는 미슐랭 1스타 김완수 셰프가 스테이크와 랍스터, 생과일 주스 등 프리미엄 메뉴도 제공한다. 추운 날씨에 혼자 밥 먹을 일이 있다면 식당에서 멀뚱멀뚱 있지 말고 PC방에 와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밥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한 서울 동대문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는 ‘젠지 GGX’가 있다. 젠지e스포츠가 지난해 6월 동대문 쇼핑몰 던던에 오픈한 복합 게임문화 공간이다. 젠지를 상징하는 블랙과 골드로 꾸며진 라운지 공간에서는 LCK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젠지의 호랑이 마스코트 ‘젠랑이’ 앞에서 팬들이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오뚜기가 운영하는 식음료 코너에서 ‘젠진라면’ ‘쵸비빔면’ ‘튀김만듀로’ 등 이색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독일에서 온 관광객 루카스 씨(21)는 “젠지 ‘쵸비(Chovy)’ 선수의 무호흡 파밍 실력을 좋아하는 게임 마니아”라며 “서울 여행은 아트와 테크놀러지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게임과 미식이 결합된 차세대 복합문화공간 ‘한국형 PC방’은 해외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는 15일 서울대교구 영성센터에서 정기 총회를 열고, 제3대 회장으로 KBS 가톨릭교우회장인 윤성도 PD(사진)를 선임했다. 윤성도 신임 회장은 “우리 사회에 진리를 전파하는 협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과 활동을 재정비하고 활성화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2022년 1월 시그니스서울,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 가톨릭언론인협의회가 통합해 출범한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는 교황청 승인 기구인 시그니스(SIGNIS)의 한국 지부다. 협회는 월례 미사와 가톨릭 포럼, 신앙 아카데미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톨릭 미디어 콘텐츠 대상 시상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화성은 평균 연령 39.9세의 젊은 도시입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갈망이 많은 화성시민들은 멀리 서울 공연장까지 다니시곤 했죠. 이제는 서울의 관객들이 화성아트홀로 많이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 경기 화성시 최초의 대규모 복합공연시설인 화성예술의전당이 15일 정식 개관한다. 동탄2신도시 자라뫼공원에 자리 잡은 화성예술의전당은 연면적 1만3766m² 규모로 경기 남부권 최대 규모의 문화예술 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450석의 대공연장 동탄아트홀을 비롯해 소공연장과 야외공연장을 갖췄다.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에서 인터뷰를 가진 안 대표는 “대공연장 동탄아트홀에는 국내 유수의 공연장에서만 적용한 ‘어쿠스틱 셸(Acoustic Shell)’ 시스템을 도입해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울리는 입체적 음향 환경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어쿠스틱 셸은 무대와 객석 위치에 따라 음향이 닿는 위치를 분석해 천장과 벽면을 계획하는 방식이다. 주무대의 천장을 비롯해 좌우 측면과 후면에는 음향 반사판을 정교하게 설치해 공연장 자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안 대표는 “무대에 설치된 미디어 융복합 시스템을 통해 프로젝션 매핑, 실시간 렌더링,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돼 향후 확장현실(XR)이나 인공지능(AI) 기반 공연까지 가능한 최첨단 시설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15일 개관 기념 공연은 ‘정명훈 & KBS교향악단’이 포문을 연다.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라스칼라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에 선임된 지휘자 정명훈이 KBS교향악단,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어 2월 1일에는 지휘자 김성진과 소리꾼 김준수가 참여해 새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경기시나위 with 김준수’가 열린다. 2월 7일에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현역 단원들이 참여하는 ‘필하모닉 앙상블 신년 음악회’가 열리고, 27일에는 ‘창작발레 갓(GAT)’이 공연된다. “야외공연장은 스탠딩까지 하면 2만 명 정도가 관람할 수 있어요. 1450석의 실내 대공연장과의 연계를 통해 어린이 가족 중심의 페스티벌 운영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계절별로 봄에는 클래식 음악축제, 여름 가을 시즌에는 K팝 공연, 록 페스티벌, 대중음악 콘서트, 야외 영화 상영 등을 기획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언제든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안 대표는 화성예술의전당의 최대 강점으로 ‘서울 강남권에서 1시간 이내 올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수서에서 SRT와 GTX-A를 타면 동탄역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공연 시간대에 맞춰 동탄역과 연결하는 셔틀버스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공연 관람뿐 아니라 인근 상권, 공원, 식음·휴식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원데이 컬처 패키지’도 준비해 외부에서 오는 관객들에게 화성이 매력적인 문화 목적지로 인식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화성은 평균연령 39.9세의 젊은도시입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갈망이 많은 화성시민들은 멀리 서울 공연장까지 다니시곤 했죠. 이제는 서울의 관객들이 화성예술의전당으로 많이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화성시 최초의 대규모 복합공연시설인 화성예술의전당이 오는 15일 정식 개관한다. 동탄2신도시 자라뫼공원에 자리잡은 화성예술의전당은 연면적 1만 3766㎡ 규모로 경기 남부권 최대 규모의 문화예술 거점이 될 전망이다. 1450석의 대공연장 동탄아트홀을 비롯해 소공연장과 야외공연장을 갖췄다. 동탄아트홀은 설계 단계부터 소리의 질감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대공연장 동탄아트홀에는 국내 유수 공연장에서만 적용되는 ‘어쿠스틱 쉘(Acoustic Shell)’ 시스템을 도입,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울리는 입체적 음향 환경을 구현했다. 어쿠스틱 쉘은 무대와 객석 위치에 따라 음이 닿는 위치를 분석해 천장과 벽면을 계획하는 방식이다. 주 무대의 천장을 비롯, 좌·우 측면과 후면에는 음향 반사판을 정교하게 설치해 공연장 자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무대 전·후면 초대형 영상 스크린과 무대 중앙의 승강 무대(Lift Stage) 등 최첨단 무대 기술을 갖추어 클래식, 뮤지컬, 콘서트,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15일 개관 기념 공연은 ‘정명훈&KBS교향악단’이 포문을 연다.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에 선임된 지휘자 정명훈이 KBS교향악단,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베토벤 교향곡 제 3번 Eb장조, 영웅’이 연주된다. 이어 2월 1일에는 지휘자 김성진과 소리꾼 김준수가 참여해 새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경기시나위 with 김준수’가 열린다. 2월 7일에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현역 단원들이 참여하는 ‘필하모닉 앙상블 신년 음악회’가 열려 빈 전통의 정제된 사운드를 들려줄 예정이다. 마지막 무대는 2월 27일 열리는 ‘창작발레 갓’(GAT)이다. 지난해 한국 발레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윤별 발레컴퍼니의 대표작으로, 윤별 대표를 비롯해 강경호, 김유찬, 정성욱 등 실력파 발레리노들이 참여해 한국 발레의 가능성과 참신함을 선보인다. 화성예술의전당 개관을 앞두고 최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에서 안필연 화성문화재단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안 대표와의 일문일답. ―화성예술의전당이 들어선 부지가 동탄2신도시 자라뫼공원인데요. 뉴욕시립대에서 어반디자인을 전공하신 대표님께서 보시기엔 어떤가요?“화성예술의전당은 자라뫼 공원 안에 건립됐는데요.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동탄의 녹지공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변에 2028년에 준공될 시립미술관도 있고, 전망대도 있고 정말 아름다운 도시공원입니다. 공연장은 단일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 맥락 속에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라뫼공원이라는 입지는 공연장이 도시 생활권과 단절되지 않고 일상 속 문화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관 기념공연은 정명훈과 KBS교향악단, 빈 필하모닉 등 고전 클래식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데요. 젊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미디어 융복합 콘텐츠나 트렌디한 기획공연도 준비되고 있나요?“개관 기념공연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KBS교향악단과 함께 연주를 합니다. 정 지휘자는 2027년부터 이탈리아 라스칼라 음악감독을 맡게 돼서 모시게 됐습니다. 또한 빈필 음악회도 하고, 창작 발레도 하고. 내년에 몬테카를로 발레단도 올거예요. 초기에는 클래식 중심의 라인업으로 출발했지만, 젊은 관객층과의 접점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화성시는 평균 연령 39.9세로 젊은도시이기 때문이죠. 젊은 세대가 익숙한 디지털 환경과 공연장의 물리적 공간을 연결하는 방식, 즉 공연 전후 경험까지 포함한 확장형 콘텐츠를 중장기적으로 개발해 나갈 예정입니다.” ―서울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화성예술의전당은 SRT와 GTX-A 동탄역이 가깝게 연결되는 곳에 있습니다. 수서에서 동탄역까지 30분 밖에 걸리지 않아요. 이렇게 강남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화성예술의전당의 중요한 경쟁력입니다. SRT 동탄역 등 광역 교통 거점과의 연계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공연 시간대에 맞춰 연결교통 확대를 추진할 계획입니다.아울러 공연 관람을 중심으로 인근 상권, 공원, 식음·휴식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원데이 컬처 패키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연 한 편을 보고 돌아가는 방문이 아니라, 하루 동안 머무르며 도시를 경험하는 문화 소비로 확장해 외부 관객에게도 화성을 매력적인 문화 목적지로 인식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화성예술의전당 대극장에 국내 최고 수준인 ‘어쿠스틱 쉘(Acoustic Shell)’ 시스템을 도입했는데요. 음향기술적 측면에서 어떤 설계가 도입됐나요? “대극장은 가변형 음향 환경을 전제로 설계됐어요. ‘어쿠스틱 쉘’은 단순 반사판이 아니라 무대 후면과 측면, 상부의 반사 조건을 공연 장르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에서 요구되는 풍부한 잔향부터 실내악과 독주에 적합한 명료한 음향까지 폭넓게 대응이 가능하죠. 무대 기계 시스템과 음향 설비가 유기적으로 연동돼 있어 세팅 전환 시간이 짧아 연주자와 지휘자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화성아트홀의 무대 메커니즘이 ‘최첨단 미디어 융복합’ 기술 구현을 위해 설계된 부분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미디어 융복합은 영상 장치의 추가가 아니라 무대 시스템 전반의 확장성을 뜻합니다. 프로젝션 맵핑, 실시간 렌더링, 무대 기계와 연동되는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향후 XR이나 AI 기반 공연까지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지요. 기술이 전면에 드러나기보다 예술적 표현을 확장하는 도구로 기능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야외공연장은 관리가 까다롭지만 활용도가 높습니다. 실내 대극장과 연계한 야외 클래식 페스티벌이나 상업적 팝 공연 등을 수용하기 위한 계획은? “야외공연장은 1200석 정도 되지만, 스탠딩까지 하면 약 2만명 정도가 관람할 수 있어요.야외공연장은 계절성과 기술적 제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현재는 기본적인 전력 설비만 돼 있고 음향·조명 등 공연별로 필요한 세부 장비는 각 공연단체가 자체적으로 반입·운용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설비 고도화와 함께 단계적인 기술 인프라 보완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실내 대공연장과의 연계를 통해 어린이 가족 중심의 페스티벌 운영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계절별 특성도 고려해 봄에는 클래식 음악축제, 여름, 가을 시즌에는 K팝 공연, 락페스티벌, 대중음악 콘서트, 야외 영화상영 등을 기획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언제든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합니다.”―단순 대관을 넘어 ‘창작 공연 위주’의 운영방침을 밝히셨는데요. 현재 재단 내 제작 인력 구성과 오페라나 창작극을 올리기 위한 초기 제작 예산 확보 및 중장기적인 재무 건전성 확보가 돼 있는지?“화성예술의전당은 청년과 지역 예술가가 한 번의 무대에 소모되지 않고, 다음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창작의 기반을 만드는 공연장이 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는 재단이 운영하던 공연장이 초청공연 위주의 라인업으로 유지해 오던 것이 사실입니다. 화성예술의전당의 개관을 계기로 기획파트에서도 제작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에 따라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로 공연장을 차츰 전환시켜갈 계획입니다. 예산 확보 뿐 아니라 기획·제작·기술 인력을 중심으로 한 내부 제작 역량을 단계적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성에 있는 기존에 공연장과는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나요? “화성시에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반석아트홀(548석)과 화성아트홀(678석). 누림아트홀(360석)이 운영돼 왔어요. 화성예술의전당이 개관하면서 각 공연장은 무대 및 객석의 규모, 그리고 위치적 특성이 다른 만큼 성격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화성예술의전당은 대형 제작과 국제 교류 중심의 공간, 반석아트홀은 가족 친화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화성아트홀은 구 도심 속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해 보다 대중적인 공연으로 역할을 구분해 콘텐츠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지역 예술인과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자체 제작 공연에 지역 예술인 참여는 형식적인 지역 안배에 머물러선 안됩니다. 이를 위해 화성예술의전당은 처음부터 국제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작품성을 기준으로 협업 대상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선발 과정에서는 국내 심의위원뿐 아니라 국제 교류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작품의 보편성과 확장 가능성을 함께 평가합니다.또한 재단은 지역 예술인의 작품이 해외 무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국제 공동 제작과 교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외 공연장·페스티벌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워크숍, 쇼케이스, 레지던시 연계를 지원하고, 화성에서 초연된 작품이 다른 도시와 국가로 이동할 수 있는 제작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화성예술의전당이 지역 예술인의 출발점이자 국제 무대로 나아가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대표님이 화성예술의전당에서 목표로 하는 성과는 어떤 것입니까? “객석 점유율, 재정 자립도와 같은 수치는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시민과 예술가 모두에게 신뢰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임기를 마칠 때 화성예술의전당이 수도권을 대표하는 제작 거점이자, 지역 예술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성장시킨 플랫폼으로 평가받기를 기대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화성은 평균연령 39.9세의 젊은도시입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갈망이 많은 화성시민들은 멀리 서울 공연장까지 다니시곤 했죠. 이제는 서울의 관객들이 화성아트홀로 많이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화성시 최초의 대규모 복합공연시설인 화성예술의전당이 오는 15일 정식 개관한다. 동탄2신도시 자라뫼공원에 자리잡은 화성예술의전당은 연면적 1만 3766㎡ 규모로 경기 남부권 최대 규모의 문화예술 거점이 될 전망이다. 1450석의 대공연장 동탄아트홀을 비롯해 소공연장과 야외공연장을 갖췄다.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에서 인터뷰를 가진 안 대표는 “대공연장 동탄아트홀에는 국내 유수 공연장에서만 적용되는 ‘어쿠스틱 쉘(Acoustic Shell)’ 시스템을 도입해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울리는 입체적 음향 환경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어쿠스틱 쉘은 무대와 객석 위치에 따라 음이 닿는 위치를 분석해 천장과 벽면을 계획하는 방식이다. 주 무대의 천장을 비롯, 좌·우 측면과 후면에는 음향 반사판을 정교하게 설치해 공연장 자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안대표는 “무대에 설치된 미디어 융복합 시스템을 통해 프로젝션 맵핑, 실시간 렌더링,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돼 향후 XR이나 AI기반 공연까지 가능한 최첨단 시설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15일 개관 기념 공연은 ‘정명훈&KBS교향악단’이 포문을 연다.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에 선임된 지휘자 정명훈이 KBS교향악단,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어 2월 1일에는 지휘자 김성진과 소리꾼 김준수가 참여해 새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경기시나위 with 김준수’가 열린다. 2월 7일에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현역 단원들이 참여하는 ‘필하모닉 앙상블 신년 음악회’가 열리고, 27일에는 ‘창작발레 갓’(GAT)이공연된다. “야외공연장은 스탠딩까지 하면 약 2만명 정도가 관람할 수 있어요. 1450석의 실내 대공연장과의 연계를 통해 어린이 가족 중심의 페스티벌 운영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계절별 봄에는 클래식 음악축제, 여름, 가을 시즌에는 K팝 공연, 락페스티벌, 대중음악 콘서트, 야외 영화상영 등을 기획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언제든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안 대표는 화성예술의전당의 최대 강점으로 ‘강남권에서 1시간 이내 올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수서에서 SRT와 GTX-A을 타고 오면 동탄역에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공연 시간대에 맞춰 동탄역과 연결시키는 셔틀버스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공연관람 뿐 아니라 인근 상권, 공원, 식음·휴식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원데이 컬처 패키지’도 준비해 외부에서 오는 관객들에게 화성이 매력적인 문화 목적지로 인식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북한산은 원래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이 깎아지른듯 우뚝 서서 삼각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삼각산과 한강수는 서울을 상징한다.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짓게 되면서부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왜 북한산성을 지었을까. 새해 첫 산행으로 ‘북한산성 13성문 일주’에 도전했다. ●북한산성 13성문 종주새해 첫 산행을 했다. 장장 9시간 동안 총 16.7km의 성곽길을 걸어 북한산성의 13성문을 일주하는 산행이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길고, 어려운 코스였지만 새해를 맞아 심기일전하기엔 좋은 기회였다. 서울 은평구 구파발 역에서 내려 북한산성 입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성문은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숙종도 북산산성 축조 후 성을 방문했을 때 대서문으로 들어가 중성문을 거쳐 백운봉 아래에 있는 행궁에 도착했다고 한다. 북한산성에는 이같은 대문(大門) 6개와 작은 암문(暗門) 7개가 있다.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대서문, 북문, 중성문 같은 홍예(아치형) 구조를 갖춘 대문은 기와지붕에 문루를 갖춘 당당한 모습이다. 반면 암문은 대문이 없는 고갯마루 구간에 숨어 있는 네모난 모양의 작은 문이다. 보국문, 가사동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용암문, 백운봉암문, 서암문 등이다. 암문은 평소에는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비상출입구다. 높이 서 있는 대문은 잘 보이는 반면, 암문은 고갯마루나 능선 성벽 밑에 숨어 있다. 산성을 오가는 백성들은 평소 통로로 쓰지만, 적군들을 알아차리기 힘든 문이다.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는 인증명소로도 유명하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챌린지, 11템플투어, 12봉우리 챌린지 등 총 20여 개의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인증맛집’이다. 그래서 성문에 도착할 때마다,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사찰에 들를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GPS좌표를 기록하고, 인증샷을 찍으며 부지런히 산행을 한다. 그래서 더욱 재밌는 산행길이다. 의상봉과 용혈봉, 용출봉, 증취봉, 나한봉, 문수봉, 백운대, 원효봉 등 봉우리 주변의 바위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북한산성을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잇는 코스다. 바위산에 박힌 쇠줄과 철제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산꼭대기까지 굽이굽이 뱀처럼 이어지는 성곽길을 따라 걷는다. 나한봉에 있는 치성(雉城)에 올라서면 서울의 아파트 단지는 물론 한강, 여의도, 김포, 인천, 파주와 북한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양도성을 노리는 어떤 적군도 감시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적의 전망대다. 북한산성은 천혜의 화강암 봉우리를 성벽으로 연결한 요새다. 해발 100m의 낮은 계곡부터 760m의 능선부까지 성벽이 쌓여 있다. 낮은 곳에는 돌로 성벽을 높게 쌓은 반면, 능선부에는 성벽없이 여장(女墻)만 있는 곳이 있다. 네모난 구멍을 통해 적을 감시하거나 화살을 쏠 수 있는 시설물이다. 문수봉, 백운봉 같은 높은 봉우리는 자체가 성벽이다. 곳곳에 경비병들의 초소인 성랑(城廊) 유적지가 143곳이나 있다.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많다. 그러나 북한산성의 존재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백운대나 인수봉, 의상봉, 비봉 등 유명 봉우리 정상만 밟고 내려오는 수직적인 산행으로는 북한산성의 규모를 알기 어렵다. 북한산성의 13개 성문을 모두 돌게 되면 비로소 그 크기와 구조, 규모를 체감하게 된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낮 12시쯤 대남문(大南門)에 도착했다. 비봉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었다. 경복궁 창의문을 통해 세검정에서 구기동을 거쳐 북한산성으로 직행할 수 있는 최단코스가 대남문이다. 대문 주변에서 배낭에 싸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온 등산객들을 만났다. 동남아에서는 겪어보지 못했을 추위를 뚫고 여기까지 올라온 게 대단해보였다. “말레이시아에도 높은 산이 있나요?” “예, 물론이죠. 키나발루 산이요.” 해발 4000m가 넘는 키나발루 산이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말레이시아 관광객들은 북한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들에게 싸온 김밥을 맛볼 것을 권하자 무척 즐거워했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SNS에서 꼭 해보길 추천하는 것 중에는 산에서 한국인 등산객들이 인심좋게 나눠주는 음식을 맛보는 체험이라고 한다. 대성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성벽 길에서도 미국인 젊은이 카를로스 씨를 만났다.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는 그는 주말이나 휴가 때면 설악산을 비롯해 국내 산을 등반한다고 했다. 그는 “다음달 고향인 콜로라도로 돌아가기 전에 제주 한라산 백록담 등반에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암문 앞에서 만난 러시아에서 온 남성 2명은 “러시아인들에게 이 정도 추위는 문제없다”며 “오늘 백운대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영하 10도의 날씨. 평일의 북한산. 한국인 등산객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많이 만났다. 이른바 ‘K등산’이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된 현장이다. 북한산성13성문 종주는 체력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었다. 또한 인증샷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을 때마다 손이 시려웠다. 그러나 알프스도 아닌데 서울에서 산을 9시간 넘게 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 그것도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명산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북한산고 북악산, 관악산에는 ‘서울등산관광센터’가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등산화와 등산배낭, 등산복, 스틱과 아이젠, 장갑과 모자 등 등산장비를 빌릴 수 있는 곳이다. 렌털샵에서 등산장비를 빌려 사용한 후 반납하면 세탁해 다시 비치하는 시스템이다. 스위스같은 나라에서도 없는 저렴한 등산장비 렌털 서비스를 서울에서 해주니 외국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다. ●왜 북한산성을 지었나 북한산성은 처절한 반성이 담긴 성이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떠나고, 병자호란 때는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다가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해야 했다. 비참한 역사를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지은 성이다. 1636년 12월2일 청나라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호란이었다. 청은 12월9일 압록강을 건넜고, 기마병을 중심으로 ‘빛의 속도’로 쳐들어온 청군은 5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우왕좌왕하던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원래 강화도로 가려했다. 그러나 청군의 선발대가 한발 앞서 양화진 방면으로 진입해 길을 차단해 강화도 피난길도 막혀버렸다. 14일 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16일 청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준비없이 급하게 떠났기 때문에 남한산성에 갇힌 왕과 관료, 1만2000명의 군사와 백성들에겐 지탱할 수 있는 비축물자가 없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인조는 1637년 1월1일 행궁 뜰에 나와 명나라 황제를 향해 새해 인사를 올리는 예식을 진행한다. 명과 단교하고 자신들과 군신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며 쳐들어온 청의 눈앞에서 말이다. 청 태종은 산성 인근 망월봉에서 인조의 예식을 내려다보며 신무기 홍이포를 조준발사해 행궁을 유린한다. 인조는 47일 동안 버티다 결국 1637년 1월30일 송파강 삼전나루로 나가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어가며 굴욕적으로 항복한다. 9년 전인 정묘호란 때도 인조와 대신들은 강화도로 피란했다. 고려시대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도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1592년 임진왜란 때도 조선왕실은 한양도성에서의 수성 전투를 포기하고 의주로 피난길을 떠났다. 왕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백성들은 망연자실했고, 노비들은 궁에 들어가 불을 지르며 노비문서를 태웠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강화도와 남한산성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남한산성은 들판에 고립돼 있어 적에게 포위당하면 구원병은 커녕 식량보급도 어려웠다. 강화도는 해전에 익숙한 왜적들에겐 난공불락이 아니었다. 또한 남한산성은 한강을 건너야 하고, 강화도는 바다를 건너야 했다. 왕실과 관료는 배를 타고 피난갈 수 있었지만, 배를 타고 피난갈 수 없던 백성들은 철저하게 유린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란 이후 효종 때부터 북한산성을 새롭게 쌓아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북한산성의 입지는 산세가 험하고 높아 적이 포위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잇점이었다. ‘한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이 열지 못하는 지형’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를 하다보면 과연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동문을 지나 백운대와 인수봉 가까이 오다보면 깎아지른 화강암 바위 절벽으로 된 삼각산의 위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넓은 북한산성은 말타고는 도저히 들어올 수가 없고, 깊은 골짜기와 높은 봉우리는 수백만명의 군사로도 포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곳곳에 숨어 있는 암문으로 구원병과 보급물자를 전달할 수 있어 고립작전도 불가능해 보였다. 숙종은 1711년 “남한산은 나루를 건너기 어려우며, 강화도는 해구(海寇)에게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오직 북한산(北漢山) 만은 지극히 가까운 까닭으로 백성과 함께 들어가 지키려고 한다(欲與民共守)”며 축성을 결정했다. 북한산성에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과 주둔부대, 사찰과 간선도로 등이 조성됐다. 산성에 필수적인 물을 공급하는 연못과 우물도 100곳이 넘게 만들어졌다. 성문 중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가 통과하는 ‘시구문’도 따로 있다. 북한산성에도 백성들의 삶과 죽음이 이었다. 숙종이 북한산성에 대해 ‘백성과 함께 지키겠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전의 전란에서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홀로 도망갔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산성이다. ●승병들이 지은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1711년 4월3일부터 10월19일까지 단 6개월만에 축성됐다. 험준한 산 속에 길이 11.6km, 내부 면적 5.3㎢이나 되는 산성을 쌓는데 어떻게 여섯달 밖에 안걸렸을까? 답은 승병들이었다. 조선왕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맹활약했던 승병들을 동원해 북한산성을 지었다. 팔도에서 올라온 승병들은 돌을 쌓아 성벽을 지었고, 북한산성이 지어진 후에는 수비까지 담당했다. 성내 군사 요충지에는 사찰 13곳이 건립됐다. 바로 승영사찰(僧營寺刹)이다.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하는 병영의 역할을 하는 절이다. 승대장 팔도도총섭이 머무는 중흥사를 중심으로 태고사, 노적사, 서암사, 경흥사, 국녕사, 부왕사, 진광사, 보국사, 용암사 등의 승영사찰이 세워졌다. 그래서일까. 북한산성을 종주하다보면 깊은 산 속, 험준한 산꼭대기까지 많은 절을 만날 수 있다. 의사봉 아래쪽에 맞은편 원효봉을 마주보는 자리에 대불(大佛)이 있는 국녕사(國寧寺)가 대표적이다. 86칸 규모의 국녕사는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이의 성벽과 가사당암문의 수비를 맡았던 절이다. 북한산성 축성 당시 팔도도총섭과 승대장 자격으로 승군을 지휘했던 인물은 화엄사의 승려 성능(聖能)이었다. 성능은 이후 북한산성에서 30여년을 도총섭으로서 수도방위에 힘쓰다 영조 21년에 ‘북한지(北漢誌)’를 남기고 화엄사로 돌아갔다. 성능 스님은 ‘북한지’에 30여 년간 북한산성 내 사찰에서 5700개의 책판을 제작했다고 기록했다. 북한산성 내에 있는 사찰에서 대량으로 경전에 대한 판각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산성을 지키던 의승들은 350명. 팔도의 사찰에서 차출돼 온 승려들은 2개월씩 근무했다. 남한산성을 지키던 인원까지 합치면 의승 수는 700명에 이르렀다. 유교국가인 조선이 국가의 핵심시설인 산성수비는 승려에게 맡겼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긴 산행 끝에 오후 3시쯤 백운대 바로 아래 있는 백운동암문에 도착했다. 출발점인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원점회귀하기 위해 송추방향으로 산을 내려갔다. 북문을 지나 마지막 코스인 원효봉을 올랐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 원효봉에서 바라본 서울의 해지는 풍경은 최고였다. 우뚝 솟은 삼각산을 가로지르고 있는 북한산성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맛집추운 날 산행을 마친 후에는 따뜻한 음식이 그립니다. 연신내역 부근 시장골목 안에 있는 ‘원조두꺼비집 불오징어’는 50년 전통의 노포다. 오삼불고기 맛집이다. 철판 위에 통통한 오징어와 쑥산, 대파, 양배추가 산처럼 쌓여 나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쑥갓 향과 양념의 맛이 어우러진 불오징어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볶음밥이다. 오징어를 몇개 남긴 철판에 밥을 붓고, 매콤한 양념과 비벼먹는다. 볶음밥은 밑바닥이 살짝 누르게 먹어야 제맛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북한산은 원래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를 비롯해 인수봉 만경봉이 깎아지른듯 우뚝 서서 삼각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던 김상헌이 읊은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건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짓게 되면서부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왜 북한산성을 지었을까. 새해 첫 산행으로 북한산성 13성문 일주에 도전했다.● ‘명산 챌린지’ 등 인증 명소 북한산 의상봉 용출봉 증취봉 나한봉 문수봉을 지나 백운대 입구까지. 다시 원효봉을 거쳐 북한산성으로 원점 회귀. 장장 9시간 동안 총 16.7km 성곽길의 13성문을 종주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쉽지 않았지만 심기일전하기엔 좋은 기회였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가장 먼저 도달한 성문은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 정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숙종도 1712년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문으로 들어가 중성문을 거쳐 행궁에 이르렀다고 한다.북한산성에는 이같은 대문(大門) 6개와 작은 암문(暗門) 7개, 수문 2개가 있다. 대문인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대서문 북문 중성문은 홍예(아치형) 구조로 기와지붕 문루(門樓)를 갖춘 당당한 모습이다. 반면 암문은 네모난 작은 문이다. 보국문 가사동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용암문 백운봉암문 서암문이 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의 비상 출입구다. 고갯마루나 능선 성벽 밑에 숨어 있어 적군이 알아차리기 힘들다.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는 인증 명소로도 유명하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챌린지’ ‘11템플투어’ ‘12봉우리 챌린지’를 비롯한 20여 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성문에 도착할 때마다,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사찰에 들를 때마다 휴대전화로 GPS 좌표를 기록하고 인증샷을 찍으며 부지런히 산행을 한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산행길이다. 쇠줄을 잡고 암벽을 오르기도 하고, 산꼭대기까지 굽이굽이 뱀처럼 이어지는 성곽길을 걸으며 북한산성을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나한봉에 있는 치성(雉城·성 위에 낮게 쌓은 담)에 올라서면 서울 아파트 단지들은 물론 한강, 여의도, 김포, 인천, 파주와 북한까지 파노라마처럼 전망이 펼쳐진다. 북한산성은 천혜의 화강암 봉우리를 성벽으로 연결한 천연의 요새다. 해발 100m의 낮은 계곡부터 760m 능선부까지 성벽이 서 있다. 낮은 곳에는 높게 쌓은 반면, 높은 봉우리 주변엔 성벽없이 여장(女墻·성가퀴)만 세운 곳도 많다. 경비 초소인 성랑(城廊) 유적도 143곳이 남아 있다. 정오쯤 대남문(大南門)에 도착했다. 비봉능선으로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었다.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온 등산객들을 만났다. 동남아에서는 겪어 보지 못했을 추위를 뚫고 올라온 게 대단했다. “말레이시아에도 높은 산이 있나요?” “물론이죠. 해발 4000m가 넘는 키나발루산이요.” 말레이시아 관광객들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들에게 김밥을 맛보라고 권하자 무척 즐거워했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국에서 꼭 해 보라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산에서 한국인 등산객이 인심 좋게 나눠 주는 음식을 먹는 체험이라고 한다. 대성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성벽 길에서 미국인 카를로스 씨를 만났다. 주한미군으로 경기 동두천에서 복무하는 그는 설악산 같은 한국 명산을 자주 올랐다. 그는 “다음 달 고향 콜로라도로 돌아가기 전에 한라산 등반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암문 앞에서 만난 러시아 남성 2명은 “러시아인에게 이 정도 추위는 문제없다”며 “백운대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추운 평일 북한산.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보였다. 이른바 ‘K등산’이 서울 대표 관광상품이 된 현장이다. 알프스도 아닌데 서울에서 산을 9시간 넘게 탈 수 있다니. 그것도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명산이 지척에 있다는 건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도 만날 수 없는 축복이다.● 북한산성을 지은 까닭은 북한산성은 처절한 반성이 담긴 성이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떠나고,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았다. 비참한 역사를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지은 성이다. 1636년 12월 2일 청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호란이다.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7년 전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가려 했다. 그러나 청군 선발대가 한발 앞서 양화진에서 길을 차단해 강화도 피난길이 막혀 버렸다. 그달 14일 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16일 청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남한산성에 갇힌 왕과 관료, 군사 1만2000명과 백성들에겐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비축 물자가 없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인조는 이듬해 1월 1일 행궁 뜰에 나와 명나라 황제를 향해 새해 인사 예식을 올린다. 인근 망월봉에서 이 예식을 내려다보던 청 태종은 신무기 홍이포를 쏘도록 해 산성을 혼란에 빠트린다. 인조는 혹한에 47일 동안 버티다 1월 30일 송파강 삼전나루로 나가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항복한다. 임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강화도와 남한산성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남한산성은 들판에 고립돼 있어 적에게 포위당하면 구원병은커녕 식량 보급도 어려웠다. 강화도는 해전에 익숙한 왜적에겐 난공불락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한산성은 한강을 건너야 하고, 강화도는 바다를 건너야 했다. 왕실과 관료는 배를 탈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백성은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그래서 북한산성을 쌓아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졌다. 북한산은 산세가 험하고 높아 포위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잇점이었다. 말 그대로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1만 사람이 열지 못하는 지형’이다. 실제로 종주를 하다 보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동문을 지나 백운대와 인수봉 가까이 오면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인 삼각산의 위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넓은 북한산성은 수백만 병사도 포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암문으로 구원병과 보급품이 들어올 수 있어 고립 작전도 불가능하다. 북한산성에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과 부대 주둔지, 사찰과 간선도로 등이 조성됐다. 산성에 필수적인 물을 공급하는 연못과 우물도 100곳 넘게 만들어졌다. 숙종이 북한산성 축조를 결심하면서 했다는 ‘남한산과 강화도와 달리 북한산은 지극히 가까운 까닭으로, 백성과 함께 들어가 지키고자 한다(欲與民共守)’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전란 때마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 승병들이 6개월 만에 축성 북한산성은 1711년 4월 3일부터 10월 19일까지 6개월 만에 지어졌다. 험준한 산속에 길이 11.6km, 내부 면적 5.3㎢ 나 되는 산성을 짓는 데 어떻게 여섯 달 밖에 안 걸렸을까. 조선 왕실은 임진, 병자 양란 때 맹활약한 승병들을 동원했다. 특히 높은 봉우리들을 성벽으로 연결하면 됐기 때문에 작업이 빨랐다. 축성 이후 승병들은 북한산성 수비까지 담당했다. 이를 위해 성내 요충지에 승영사찰(僧營寺刹) 13곳이 건립됐다.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병영 역할의 절이다. 승병대장 팔도도총섭이 머무는 중흥사를 중심으로 태고사 노적사 서암사 경흥사 국녕사 부왕사 진광사 보국사 용암사 등이 세워졌다. 그래서일까. 험준한 산꼭대기에서까지 절을 만날 수 있다. 의상봉 아래쪽, 원효봉을 마주 보는 자리의 국녕사(國寧寺)가 대표적이다. 대불(大佛)을 모신 86칸 규모 국녕사는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성벽과 가사당암문 수비를 맡았다. 당시 팔도도총섭 자격으로 북한산성 승군을 지휘한 인물은 화엄사 승려 성능(聖能)이었다. 성능은 30여 년을 한양 방위에 힘쓰다 영조 21년 ‘북한지(北漢誌)’를 저술한 뒤 화엄사로 돌아갔다. 북한산성 승병은 350명. 팔도 사찰에서 차출돼 온 이들은 2개월씩 근무했다. 남한산성을 지키던 승병까지 합치면 700명에 이르렀다. 유교국가인 조선이 국가 핵심 시설인 산성 수비를 승려에게 맡겼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오후 3시쯤 백운대 바로 아래 백운동암문에 도착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산을 내려갔다. 북문을 지나 마지막 코스 원효봉을 올랐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 원효봉에서 바라본 서울의 해 지는 풍경은 최고였다. 우뚝 솟은 삼각산을 가로지르는 북한산성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맛집추운 날 산행 후에는 따뜻한 음식이 그립다.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부근 시장 골목에 있는 ‘원조 두꺼비집 불오징어’는 50년 전통의 오삼불고기 맛집이다. 철판에 통통한 오징어와 쑥갓, 대파, 양배추가 산처럼 쌓여 나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쑥갓 향과 양념 맛이 어우러진 불오징어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볶음밥이다. 오징어를 몇 점 남긴 철판에 밥을 붓고 매콤한 양념과 비벼 먹는다.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내년 병오년 새해는 ‘붉은 말(赤馬)’의 해다. 말은 거침없는 활력과 에너지의 상징이다. 새해 말의 기운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서울에는 말죽거리, 역삼동, 역촌동, 구파발 등 역참이 있던 곳에는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그런가하면 종로에는 피맛골이 있고, 광화문 앞에는 삼봉 정도전의 집 마굿간 자리에 이마(利馬)빌딩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서울에서 말과 인연이 깊은 동네는 요즘 가장 핫한 성수동과 뚝섬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다니는 이 곳은 원래말들이 맘껏 뛰어놀던 무대였다. 새해를 맞아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뚝섬과 살곶이벌판을 찾아 말처럼 도약하고 질주하는 생명력의 기운을 얻어보자. ● 말(馬)이 달렸던 연무장길성수동 연무장길은 ‘팝업(Pop-up) 스토어의 성지’다. 이 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대림창고와 어니언에서 커피를 마시고, 소금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에서 패션 선글라스를 끼어보고, 사진을 찍으며 하루를 보낸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디올 성수 앞에는 틱톡 영상을 촬영하며 춤을 추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다. 매주 새로운 패션, F&B, 게임 기업의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공짜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팝업이 끊임없이 또 생겨나기 때문에 돈 없어도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 바로 연무장길이다. 이 곳은 원래 수제화 공장과 자동차 정비소, 금속 가공공장이 즐비했던 준공업지대. 내년 봄부터 가을까지 서울숲과 성수동 골목길 곳곳에서 K팝을 테마로 한 국제정원박람회까지 열린다고 하니, 그야말로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릴 정도로 상전벽해하고 있다. 그런데 성수동 연무장길이 조선시대에는 군사 훈련장이었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뚝섬의 허허벌판. 이른바 ‘살곶이벌’로 불리는 이 곳에서 기병들이 마상 무예를 하며 활을 쏘고, 보병들이 진법을 훈련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던 곳이다. 논산에 육군훈련소가 있는 연무대(鍊武臺)가 있던 것 처럼, 성수동에도 군사들이 무예를 닦던 연무장(演武場)이 있었다. \ 연무장의 흔적을 찾아보려면 성덕정길로 가봐야 한다. 뚝도정수장과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트리마제 사이에 있는 길이다. 성덕정(聖德亭)은 왕이 군사 훈련을 검열하는 ‘열무(閱武)’ 행사에 참관할 때 지휘소로 사용하던 정자였다. 현재 성덕정터(현재 천주교 성수동 성당)에 정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수백년 수령의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왕의 쉼터에 넉넉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나무였다. 왕이 군사훈련에 참관할 때는 ‘뚝기(纛旗·대장기)’를 세웠는데, 여기서 ‘뚝섬’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번엔 발길을 서울숲으로 옮겨본다. 기수들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군마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살아 있는 말이 뛰는 듯 생생한 조각상이다. 뚝섬에서 말이 달렸던 것은 조선시대 뿐 아니다. 1954년부터 1989년까지 뚝섬에 경마장이 있었다. 뚝섬경마장은 2005년 서울숲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경주마가 달리던 트랙 위로 시민들이 걸어다닌다. 서울숲을 한바퀴 도는 원형 산책길은 바로 트랙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고 조성했기 때문이다. 서울숲 군마상을 보니 10여년 전 몽골초원에서 말을 타본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시간 뚜벅뚜벅 걷다가 박차를 가하고, 채찍을 휘두르니 말이 두발을 모았다 펴며 날아가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쾌감에 벅찬 가슴은 두근두근 뛴다. 한번 말 위에 올라타서 달리기 시작하면 지구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그래서 몽골고원의 칭기즈칸도 세상 끝까지 정복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살곶이 다리 서울숲에서 나와 한양대 옆 중랑천변에 가면 살곶이 다리를 만난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와 태종 이방원을 만난 곳이 이 근처다. 야사에 따르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 대한 분이 덜 풀린 이성계는 화살을 날렸다. 태종은 슬쩍 피했고 화살은 미리 촘촘히 세워둔 천막 기둥에 꽂혔다. 그래서 ‘화살이 꽂힌 벌판’이라고 해서 살곶이벌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할 때 한양의 도읍지를 물색하러 양주 회암사에서 온 무학대사도 살곶이 벌판을 통해 한양에 입성했다. 왕십리로 건너간 무학대사에게 한 노인이 “십리를 더 가면 진정한 명당이 나온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십 리(十里)를 더 가라(往)”는 노인의 말은 그대로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이 됐다. 실제로 살곶이다리를 찾아가 보니 그 크기가 놀라웠다. 21개의 교각 위에 총 63개의 화강암 석재를 사용한 이 다리는 말과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로마제국이 건설한 ‘로마가도’를 연상케하는 건축물이다. 살곶이다리는 ‘제반교’라고 불렸다. 반석 위를 건너는 다리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중랑천 하류에 왜 이런 육중한 돌다리를 놓았던 것일까. 살곶이다리는 경기도 광주, 이천을 거쳐 영남으로 가는 길과도 연결되는 동방의 대동맥이었다. 또한 중랑천변(현재 동부간선도로)을 따라 의정부, 포천, 철원을 거쳐 금강산, 함경도까지 가는 동서남북의 통행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중요한 길목이었다. 강원도에서 뗏목에 실려온 목재도, 충주에서 남한강 수운으로 실려온 물자들도 송파나루나 광나루에서 내려 살곶이다리를 너머 한양으로 들어왔다. 북방과 남방의 외적들도 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에 입성하려면 반드시 서울에서 보기드문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 살곶이 벌판을 통해야 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살곶이벌에 말을 키우고, 군사훈련을 펼쳤다. 조선시대 말은 오늘날의 자동차와 장갑차를 합친 것과 같은 최고의 기동전력이자 운송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은 살곶이벌에 가장 긴 돌다리를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살곶이벌에는 조선 초기부터 말을 키우던 국영 목장이었던 ‘살곶이 목장’이 있었다. 중랑천변의 마장동(馬場洞)은 국가의 말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의 목장이 있었다. 현재는 축산물시장이 들어서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들러 소고기 국밥을 한그릇하고 용마산 노을 산행으로 새해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 용마산에서 바라본 살곶이벌의 붉은해 오후 3시쯤 광진구 아차산역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한강변의 야트막한 아차산(295m)은 동네 뒷산 오르듯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아차산 정상으로 향할수록 고구려가 쌓았던 보루 유적지가 이어진다. 보루에 올라 서면 잠실벌의 롯데타워와 종합운동장, 강남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남양주와 광주에서 흘러온 한강의 푸른 물결이 구리, 하남을 지나 광나루와 송파나루로 밀려든다. 아차산은 한강의 지배권을 놓고 싸웠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치열한 각축전의 현장이었다. 능선을 타고 30분 정도 더 가다보니 용마산(348m) 정상에 도착했다. 수락산, 도봉산, 백운대부터 북한산, 인왕산, 안산, 남산, 관악산, 잠실벌까지 180도 넘게 서울시내의 전경을 광활하게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다. 특히 해질녘에 오니 한강 너머로 붉게 물드는 장관이 펼쳐졌다. 서울N타워가 우뚝 솟아 있는 남산을 보니 케이팝데몬헌터스에서 귀마와 사자보이즈, 헌트릭스가 최후의 대결을 펼쳤던 장면도 떠오른다. 용마산은 말의 전설이 깃든 산이다. 용마(龍馬)는 ‘용의 비늘‘이 온 몸에 덮인 신성한 말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天馬圖)‘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 용마산 아래의 면목동(面牧洞) 조선시대 궁중의 말을 키우던 목마장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용마산에서 내려다본 드넓은 살곶이 벌판에는 중랑천이 구비구비 한강으로 흘러간다. 이제 해가 지고 아파트 단지에 하나둘씩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등은 오렌지빛을 뿜어내고, 동부간선도로에 늘어선 자동차의 후미등이 빨갛게 빛난다. 곳곳에 점멸하는 전광판의 광고도 선명하다. 미국 LA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바라봤던 로스앤젤레스의 별빛 야경보다 더 드라마틱한 서울의 밤풍경이다. 경기가 어려운 연말이다. 생명력과 활력의 상징인 말은 늘 멈춰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상 덕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에너지를 준다. 또한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던 말은 승전보같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새해를 맞아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살곶이벌에 찾아가 봐도 좋을 것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내년 병오년 새해는 ‘붉은 말(赤馬)’의 해다. 말은 거침없는 활력과 에너지의 상징이다. 새해 말의 기운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서울에는 말죽거리, 역삼동, 역촌동, 구파발 등 역참이 있던 곳에는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그런가하면 종로에는 피맛골이 있고, 광화문 앞에는 삼봉 정도전의 집 마구간 자리에 이마(利馬)빌딩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서울에서 말과 인연이 깊은 동네는 요즘 가장 핫한 성수동과 뚝섬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다니는 이 곳은 원래말들이 맘껏 뛰어놀던 무대였다. 새해를 맞아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뚝섬과 살곶이벌판을 찾아 말처럼 도약하고 질주하는 생명력의 기운을 얻어보자.● 말(馬)이 달렸던 연무장길성수동 연무장길은 ‘팝업(Pop-up) 스토어의 성지’다. 이 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대림창고와 어니언에서 커피를 마시고, 소금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에서 패션 선글라스를 끼어보고, 사진을 찍으며 하루를 보낸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디올 성수 앞에는 틱톡 영상을 촬영하며 춤을 추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매주 새로운 패션, F&B, 게임 기업의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공짜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팝업이 끊임없이 또 생겨나기 때문에 돈 없어도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 바로 연무장길이다. 이 곳은 원래 수제화 공장과 자동차 정비소, 금속 가공공장이 즐비했던 준공업지대. 내년 봄부터 가을까지 서울숲과 성수동 골목길 곳곳에서 K팝을 테마로 한 국제정원박람회까지 열린다고 하니, 그야말로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릴 정도로 상전벽해했다. 그런데 성수동 연무장길이 조선시대에는 군사 훈련장이었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뚝섬의 허허벌판. 이른바 ‘살곶이벌’로 불리는 이 곳에서 기병들이 마상 무예를 하며 활을 쏘고, 보병들이 진법을 훈련하는 함성으로 가득 찼던 곳이다. 논산에 육군훈련소가 있는 연무대(鍊武臺)가 있던 것 처럼, 성수동에도 군사들이 무예를 닦던 연무장(演武場)이 있었다. 연무장의 흔적을 찾아보려면 성덕정길로 가봐야 한다. 뚝도정수장과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트리마제 사이에 있는 길이다. 성덕정(聖德亭)은 왕이 군사 훈련을 검열하는 ‘열무(閱武)’ 행사에 참관할 때 지휘소로 사용하던 정자였다. 현재 성덕정 터(현재 천주교 성수동 성당)에 정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수백년 수령의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왕의 쉼터에 넉넉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나무였다. 왕이 군사훈련에 참관할 때는 ‘뚝기(纛旗·대장기)’를 세웠는데, 여기서 ‘뚝섬’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번엔 발길을 서울숲으로 옮겨본다. 기수들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군마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살아 있는 말이 뛰는 듯 생생한 조각상이다. 뚝섬에서 말이 달렸던 것은 조선시대 뿐 아니다. 1954년부터 1989년까지 뚝섬에 경마장이 있었다. 뚝섬경마장은 2005년 서울숲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경주마가 달리던 트랙 위로 시민들이 걸어 다닌다. 서울숲을 한 바퀴 도는 원형 산책길은 바로 트랙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고 조성했기 때문이다. 서울숲 군마상을 보니 10여 년 전 몽골 초원에서 말을 타본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시간 뚜벅뚜벅 걷다가 박차를 가하고, 채찍을 휘두르니 말이 두 발을 모았다 펴며 날아가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쾌감에 벅찬 가슴은 두근두근 뛴다. 한 번 말 위에 올라타서 달리기 시작하면 지구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그래서 몽골 고원의 칭기즈칸도 세상 끝까지 정복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살곶이다리 서울숲에서 나와 한양대 옆 중랑천변에 가면 살곶이 다리를 만난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와 태종 이방원을 만난 곳이 이 근처다. 야사에 따르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 대한 분이 덜 풀린 이성계는 화살을 날렸다. 태종은 슬쩍 피했고 화살은 미리 촘촘히 세워둔 천막 기둥에 꽂혔다. 그래서 ‘화살이 꽂힌 벌판’이라고 해서 살곶이벌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할 때 한양의 도읍지를 물색하러 양주 회암사에서 온 무학대사도 살곶이 벌판을 통해 한양에 입성했다. 왕십리로 건너간 무학대사에게 한 노인이 “십리를 더 가면 진정한 명당이 나온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십 리(十里)를 더 가라(往)”는 노인의 말은 그대로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이 됐다. 실제로 살곶이다리를 찾아가 보니 그 크기가 놀라웠다. 길이 76m, 너비 6m의 이 다리는 말과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로마 제국이 건설한 ‘로마가도’를 연상케하는 건축물이다. 살곶이다리는 ‘제반교’라고 불렸다. 반석 위를 건너는 다리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중랑천 하류에 왜 이런 육중한 돌다리를 놓았던 것일까. 살곶이다리는 경기도 광주, 이천을 거쳐 영남으로 가는 길과도 연결되는 동방의 대동맥이었다. 또한 중랑천변(현재 동부간선도로)을 따라 의정부, 포천, 철원을 거쳐 금강산, 함경도까지 가는 동서남북의 통행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중요한 길목이었다. 강원도에서 뗏목에 실려온 목재도, 충주에서 남한강 수운으로 실려온 물자들도 송파나루나 광나루에서 내려 살곶이다리를 넘어 한양으로 들어왔다. 북방과 남방의 외적들도 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에 입성하려면 반드시 서울에서 보기 드문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 살곶이 벌판을 통해야 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살곶이벌에 말을 키우고, 군사훈련을 펼쳤다. 조선시대 말은 오늘날의 자동차와 장갑차를 합친 것과 같은 최고의 기동 전력이자 운송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은 살곶이벌에 가장 긴 돌다리를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살곶이벌에는 조선 초기부터 말을 키우던 국영 목장이었던 ‘살곶이 목장’이 있었다. 중랑천변의 마장동(馬場洞)은 국가의 말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의 목장이 있었다. 현재는 축산물시장이 들어서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들러 소고기국밥을 한 그릇하고 용마산 노을 산행으로 새해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 용마산에서 바라본 살곶이벌의 붉은 해오후 3시쯤 광진구 아차산역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한강변의 야트막한 아차산(295m)은 동네 뒷산 오르듯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아차산 정상으로 향할수록 고구려가 쌓았던 보루 유적지가 이어진다. 보루에 올라서면 잠실벌의 롯데타워와 종합운동장, 강남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남양주와 광주에서 흘러온 한강의 푸른 물결이 구리, 하남을 지나 광나루와 송파나루로 밀려든다. 아차산은 한강의 지배권을 놓고 싸웠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치열한 각축전의 현장이었다. 능선을 타고 30분 정도 더 가다 보니 용마산(348m) 정상에 도착했다. 수락산, 도봉산, 백운대부터 북한산, 인왕산, 안산, 남산, 관악산, 잠실벌까지 180도 넘게 서울 시내의 전경을 광활하게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다. 특히 해 질 녘에 오니 한강 너머로 붉게 물드는 장관이 펼쳐졌다. N서울타워가 우뚝 솟아 있는 남산을 보니 케이팝데몬헌터스에서 귀마와 사자보이즈, 헌트릭스가 최후의 대결을 펼쳤던 장면도 떠오른다. 용마산은 말의 전설이 깃든 산이다. 용마(龍馬)는 ‘용의 비늘’이 온몸에 덮인 신성한 말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天馬圖)‘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 용마산 아래의 면목동(面牧洞)은 조선시대 궁중의 말을 키우던 목마장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용마산에서 내려다본 드넓은 살곶이 벌판에는 중랑천이 굽이굽이 한강으로 흘러간다. 이제 해가 지고 아파트 단지에 하나둘씩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등은 오렌지빛을 뿜어내고, 동부간선도로에 늘어선 자동차의 후미등이 빨갛게 빛난다. 곳곳에 점멸하는 전광판의 광고도 선명하다. 미국 LA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바라봤던 로스앤젤레스의 별빛 야경보다 더 드라마틱한 서울의 밤 풍경이다. 경기가 어려운 연말이다. 생명력과 활력의 상징인 말은 늘 멈춰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상 덕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에너지를 준다. 또한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던 말은 승전보 같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새해를 맞아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살곶이벌에 찾아가 봐도 좋을 것이다.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필리핀 세부시티의 NUSTAR 리조트는 메트로 마닐라 외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5성급 호텔이다. 막탄-세부 국제공항에서 차량으로 약 30분, 막탄에서 보트를 타고 약 2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총 22에이커 규모의 부지에는 호텔, 카지노, 명품 쇼핑몰, 레스토랑, 영화관, 공연장, 컨벤션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숙박 뿐 아니라 즐길거리와 업무까지 모두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올 인 원(All in One)’ 복합 명품 리조트를 추구한다. 리조트 로비에 도착하면 직원이 쟁반에 담아 온 망고주스 웰컴드링크가 반긴다. 리조트 로비에 들어서면 라운지 천장에는 체코 예술가 페트라 소시타코바가 만든 수공예 유리 작품인 ‘산호의 꿈’이 전시돼 있다. 막탄섬과 보홀섬같은 필리핀 바닷 속 풍경을 호텔 라운지에서 재현하는 것은 현지화된 럭셔리의 극치를 보여준다. 호텔 총지배인 로엘 콘스탄티노는 “진정한 필리핀식 환대를 통해 따뜻함과 배려가 깃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모토”라고 소개했다. 야외 수영장은 2곳이 있다. 4층 인피니티풀은 바다와 도시 스카이라인을 한 눈에 담는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세부항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풀장은 로맨틱한 분위기로, 연인이나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5층에 있는 라운지형 야외 수영장은 커다란 원형풀장이 두개가 있다. 선베드에 누우면 필리핀에서 가장 긴 해상교량(길이 8.9km)인 ‘세부-코르도바 고속화 대교(CCLEX)’의 풍경이 펼쳐진다.누스타 리조트 객실은 총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2022년 오픈한 필리핀 최초의 정통 5성급 브랜드 호텔인 필리 호텔(379객실)은 ‘머무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 8월 오픈한 누스타(Nustar) 호텔은 223개 전객실 오션뷰와 스마트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방마다 전담 버틀러가 배치돼 있다. 23층에 있는 이그제큐티브 클럽 라운지(Executive Club Lounge)에서는 조식과 애프터눈티, 저녁 칵테일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2027년에는 세 번째로 ‘그랜드 서밋’이 문을 열 계획이다. 그랜드 서밋은 400실 규모의 4성급 비즈니스, 마이스(MICE) 중심 호텔이다. 누스타몰에는 루이뷔통, 생로랑, 베르사체 등 럭셔리 브랜드가 한자리에 몰려 있다. 프리미어 시네마에서는 돌비 디지털 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춘 몰입감 넘치는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가족 여행객에게는 실내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Break 100’이 인기다. 스크린 골프, 스크린 야구, 농구, 축구와 사격 시뮬레이터, 레이싱 드라이브 등 실내에서도 충분히 액티브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누스타에는 내년 말 바다와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유리로 된 ‘스카이덱’ 전망대도 오픈할 예정이다. 누스타 미식의 중심에는 홍콩식 북경오리 전문으로 알려진 럭셔리 다이닝 레스토랑 ‘모트(Mott) 32’가 있다. 이 레스토랑은 ‘애플우드 로스트 덕’과 수제 딤섬, 프라임 비프 요리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포비든 로즈, 제이드 로드, 하나미와 같은 시그니처 칵테일도 유명하다. 또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 프리모(Il Primo)’에서는 바라쿠다 생선요리가 맛있고, ‘피나(FINA)’에서는 커다란 바나나잎에 펼쳐져 나오는 필리핀 정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 누스타 뷔페에는 한국식 김치는 물론 상큼한 필리핀식 망고김치도 나온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크루즈 세일즈 이사는 “요즘 한국의 허니무너들은 유럽보다 가까운 곳에서 럭셔리하게 쉬는 것을 선호한다고 들었다”며 “한국의 신혼여행 트렌드의 변화에 가장 걸맞는 호텔”이라고 소개했다. 세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은 겨울에 엄청 추운 곳입니다. 청계천 물길 위에서 펼쳐지는 ‘빛초롱축제’와 광화문 마켓은 서울의 밤풍경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마법 같은 축제입니다.”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사진)는 코로나 이후 4년 넘게 서울의 외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서울달’과 ‘서울컬처라운지’, ‘서울썸머비치’와 ‘서울빛초롱축제’처럼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축제를 확대해 왔다. 그중에서도 ‘서울 등산관광센터’는 ‘K등산 붐’을 일으켰다. ―서울 등산관광센터 열게 된 과정은.“언젠가 독일에서 온 지인이 ‘서울은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명산이 있어 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이 말에 영감을 얻어 ‘등산 관광’을 기획하게 됐어요. 탈의와 샤워 시설을 갖춘 등산관광센터를 북한산, 북악산, 관악산에 3호점까지 오픈했습니다. 외국인에게 등산화, 등산복, 스틱, 장갑, 모자까지 등산용품을 빌려주고, 세탁해서 재사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죠. 누적 방문객 1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입니다.” ―서울 빛초롱축제를 우이천까지 확장한 배경은.“우이천은 북한산을 조망하며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심 속 힐링 공간입니다. ‘수변감성도시’라는 서울시의 시정 목표에 맞춰 축제를 한강의 지천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3000만 외래 관광객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은.“파리와 런던, 뉴욕은 세계적인 미술관들로 매년 수많은 방문객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서울도 ‘예술관광’으로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총 83개 민관기관이 참여하는 ‘서울예술관광얼라이언스(SATA)’를 통해 지속 가능한 예술관광 콘텐츠를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의 외래 관광객이 지난해 1200만 명, 올해는 2000만 명이 넘게 됐습니다. 청계천빛초롱축제를 비롯한 ‘K컬처’로 외래 관광객 3000만 명 유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2025 서울빛초롱축제’와 ‘2025 광화문 마켓’이 이달 12일 화려한 막을 올렸다. 스산한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따스하게 밝혀주는 점등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올해로 17주년을 맞은 서울빛초롱축제는 ‘나의 빛, 우리의 꿈, 서울의 마법’을 주제로 2026년 1월 4일까지 24일간 진행된다. 청계천 일대(청계광장∼삼일교, 오간수교)와 우이천을 아우르며, 전통 한지 등(燈)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5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작년 행사의 경우 총 328만 명이 축제 현장을 찾았고, 축제 당시 청계광장 일대 유동 인구는 외지인 80%, 외국인 관광객이 60% 이상 증가하는 직접적인 효과를 냈다. 12일 공식 오픈 이후 주말 사이에만 무려 108만 명이 몰렸다. 이 추세면, 역대 최대 기록인 400만 명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의 폭포 앞에는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최초로 전등이 켜진 역사적 순간을 발광다이오드(LED) 영상과 한지 등으로 재현했다. 어머니와 함께 붓글씨를 공부하던 한석봉의 ‘형설지공(螢雪之功)’ 시대를 지나 전깃불이 들어오고, 전차가 다니며 ‘빛’의 속도로 발전해 온 개화기를 표현한 작품들이 이어진다. 내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선보이는 8마리의 ‘말 조형물’도 소셜미디어 포인트로 꼽힌다. 말의 기운으로 힘차게 새해를 연다는 상징이다.이어 K컬처 모티브 ‘갓등’, 청계천 복원 20주년 기념작 ‘청계의 빛’, 15m 공중 조형물 ‘서울달’ 등이 청계천 주변을 밝힌다. 삼일교 ‘빛의 오로라’는 워터 스크린 구조에 빛을 쏘아 몽환적인 느낌을 만들어 낸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우이천 구간으로의 확장이다. ‘우이교∼쌍한교’ 350m 구간에 ‘소울 라이트(Soul Light)’라는 테마로 다양한 작품을 전시한다. 지난해 서울빛초롱축제를 빛냈던 어가 행렬이 우이천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광화문광장은 이달 31일까지 20일간 유럽 감성의 ‘겨울동화 속 산타마을’로 꾸며 변신한다. 올해 마켓은 광화문광장을 △산타마을 입구 △산타마을 놀이광장 △산타마을 마켓 빌리지 3개의 테마공간으로 구성하여 방문객을 맞이한다. 산타마을 입구는 호두까기 인형의 집부터 진저브레드 쿠키의 집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포토존을 조성했으며 산타마을 놀이광장에는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루돌프 회전목마를 설치했다. 산타마을 마켓 빌리지는 크리스마스 시즌 소품, 수공예품, 먹거리 등을 판매하는 마켓 부스를 운영해 소상공인들의 상품과 겨울 간식을 만날 수 있다. 올해 광화문 마켓에는 다양한 기관과 기업이 참여하는 ‘파트너 부스’를 마련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옥스팜 코리아, 세계교육문화원뿐 아니라 디즈니코리아(아바타: 불과 재), 바버(Barbour), 네스프레소(Nespresso) 등 글로벌 협업 파트너들의 브랜드 체험존도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의 외래 관광객이 지난해 1200만 명, 올해는 2000만 명이 넘게 됐습니다. 청계천빛초롱축제를 비롯한 ‘K컬처’로 외래 관광객 3000만 명 유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2025 서울빛초롱축제’와 ‘2025 광화문 마켓’이 이달 12일 화려한 막을 올렸다. 스산한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따스하게 밝혀주는 점등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올해로 17주년을 맞은 서울빛초롱축제는 ‘나의 빛, 우리의 꿈, 서울의 마법’을 주제로 2026년 1월 4일까지 24일간 진행된다. 청계천 일대(청계광장~삼일교, 오간수교)와 우이천을 아우르며, 전통 한지 등(燈)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5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작년 행사의 경우 총 328만 명이 축제 현장을 찾았고, 축제 당시 청계광장 일대 유동 인구는 외지인 80%, 외국인 관광객이 60% 이상 증가하는 직접적인 효과를 냈다. 12일 공식 오픈 이후 주말 사이에만 무려 108만 명이 몰렸다. 이 추세면, 역대 최대 기록인 400만 명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의 폭포 앞에는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최초로 전등이 켜진 역사적 순간을 발광다이오드(LED) 영상과 한지 등으로 재현했다. 어머니와 함께 붓글씨를 공부하던 한석봉의 ‘형설지공(螢雪之功)’ 시대를 지나 전깃불이 들어오고, 전차가 다니며 ‘빛’의 속도로 발전해 온 개화기를 표현한 작품들이 이어진다.내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선보이는 8마리의 ‘말 조형물’도 소셜미디어 포인트로 꼽힌다. 말의 기운으로 힘차게 새해를 연다는 상징이다.이어 K컬처 모티브 ‘갓등’, 청계천 복원 20주년 기념작 ‘청계의 빛’, 15m 공중 조형물 ‘서울달’ 등이 청계천 주변을 밝힌다. 삼일교 ‘빛의 오로라’는 워터 스크린 구조에 빛을 쏘아 몽환적인 느낌을 만들어 낸다.특히 이번 축제에서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우이천 구간으로의 확장이다. ‘우이교~쌍한교’ 350m 구간에 ‘소울 라이트(Soul Light)’라는 테마로 다양한 작품을 전시한다. 지난해 서울빛초롱축제를 빛냈던 어가 행렬이 우이천을 화려하게 장식한다.광화문광장은 이달 31일까지 20일간 유럽 감성의 ‘겨울동화 속 산타마을’로 꾸며 변신한다. 올해 마켓은 광화문광장을 △산타마을 입구 △산타마을 놀이광장 △산타마을 마켓 빌리지 3개의 테마공간으로 구성하여 방문객을 맞이한다.산타마을 입구는 호두까기 인형의 집부터 진저브레드 쿠키의 집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포토존을 조성했으며 산타마을 놀이광장에는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루돌프 회전목마를 설치했다. 산타마을 마켓 빌리지는 크리스마스 시즌 소품, 수공예품, 먹거리 등을 판매하는 마켓 부스를 운영해 소상공인들의 상품과 겨울 간식을 만날 수 있다.올해 광화문 마켓에는 다양한 기관과 기업이 참여하는 ‘파트너 부스’를 마련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옥스팜 코리아, 세계교육문화원뿐 아니라 디즈니코리아(아바타: 불과 재), 바버(Barbour), 네스프레소(Nespresso) 등 글로벌 협업 파트너들의 브랜드 체험존도 있다.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 인터뷰“서울은 겨울에 엄청 춥고 스산한 곳입니다. 청계천 물길 위에서 펼쳐지는 ‘빛초롱축제’와 광화문 마켓은 서울의 밤풍경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마법같은 축제입니다.”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는 코로나 이후 4년 넘게 서울의 외래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여의도 야경을 볼 수 있는 ‘서울달’을 비롯해 ‘서울컬처라운지’, ‘청계소울오션’ 등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서울썸머비치’와 ‘서울빛초롱축제’ ‘광화문 마켓’처럼 계절에 따라 관광객과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도 매년 확대해왔다. 그 중에서도 ‘서울 등산관광센터’는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K등산 붐’을 일으켰다. “2021년 취임했을 때 코로나라 관광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할 때라고 생각했죠. 때마침 독일에서 온 지인이 ‘서울에 오니까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게 너무 좋다. 산에 있는 절이 너무 아름답다’고 하시더군요. 유럽 국가에서는 도시에서 산에 가려면 최소 6시간은 차를 타고 가야해요. 동남아 국가에서는 산이 정글이라 들어갈 수가 없죠. 반면 지하철을 타면 30분 거리에 명산을 찾을 수 있는 도시는 세계에서 거의 없습니다. 이 말에 영감을 얻어 외국인도 쉽게 서울 산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등산관광’을 기획했습니다.”―서울 등산관광센터 열게 된 과정은. “외국인 관광객 3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서울의 산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85%였어요. 그런데 등산화나 스틱 등 부피가 큰 등산용품이 없어 산에 가기 불편하다는 이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울관광재단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등산용품을 렌탈해주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탈의시설, 샤워시설을 갖춘 등산관광센터를 북한산에 1호점, 북악산에 2호점, 관악산에 3호점이 잇달아 오픈했습니다. 외국인에게 등산화, 등산복, 스틱, 장갑, 모자까지 등산용품을 저렴하게 빌려주고, 세탁까지 해서 채워넣는 시스템을 개발했죠. 전례가 없던 일이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센터 부지를 찾아내고, 등산용품 세척 업체, 운영 가이드라인 등 직원들과 함께 백지상태에서 일궈온 사업이라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등산관광센터는 올해 6월 누적방문객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각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있는 걸 보면 ‘K-등산’이라는 새로운 한류를 이끌었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서울 빛초롱축제를 청계천 뿐 아니라 우이천까지 확장한 배경은.“서울시의 주요 시정 목표 중 하나는 ‘수변감성도시’입니다. ‘물에 비친 한지 등불’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서울 빛초롱축제는 그 대표적인 사업이죠. 청계천 뿐 아니라 한강의 지천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우이천은 북한산을 조망하며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심 속 힐링 공간으로 ‘물멍’과 ‘산멍’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관광 미래비전 3377’(3천만 외래 관광객 유치, 1인당 지출액 300만원, 체류일 7일, 재방문 70%) 전략을 선포한 바 있다. 길 대표는 “3000만 외래관광객을 달성하기 위해 ‘예술관광’ 활성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에 관광객이 몰려오는 이유는 ‘케데헌’ ‘오징어게임’ 등을 비롯한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한류붐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붐은 언젠가는 변곡점이 있을 수 밖에 없죠. 그걸 대비해서 ‘포스트 한류’를 예술로 잡았습니다. 파리와 런던, 뉴욕의 공통점은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자리하고 있어 매년 수많은 방문객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국내 예술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공연시장 규모는 사상최초로 1조 2000억 원을 넘어섰고, 한국 미술 시장은 3배로 커졌습니다. 서울도 미술과 뮤지컬, 오케스트라 등 예술을 감상하는 관광으로 재방문율을 크게 높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공연, 전시, 관광 분야 총 83개사가 참여하는 국내 최대 예술관광 민관협의체인 ‘서울예술관광얼라이언스(SATA)’를 발족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협력해 화랑 투어를 진행했고, 10~11월에는 외국인 대상으로 예술 투어인 ‘ARTS IN SEOUL’을 15회, 외국인 200여 명 대상으로 시범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안동에서는 술이 유명하다. 도수가 높은 안동소주다. 그런가하면 고택에서는 어르신들이 지금도 최고급 품질의 안동포를 짜고 있다. 1년에도 수차례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이해 온 선비들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전통이 낳은 안동의 독특한 문화다. 코레일관광개발이 농림축산식품부, 안동시, 한식진흥원과 함께 기획한 ‘K-미식 전통주 벨트 팝업열차’를 타고 안동의 미식을 체험했다. ● 조선판 ‘사랑과 영혼’경북 안동에서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는 월영교다. 길이 387m의 월영교는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교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 찾아가니 더욱 감동적이다. 천연색 조명으로 빛나는 분수가 곡사포처럼 쏘아지는 호수 위로 초승달 모양 문보트(Moon Boat)가 떠다닌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월영교는 미투리를 형상화한 모습이라고 한다. 미투리가 무엇일까? 볏짚으로 만든 짚신처럼 생겼는데, 좀 더 질겨 품질 좋은 신이다. 대마 껍질로 만든 삼(麻)줄로 짰다. 1998년 안동 택지개발지구에서 고성 이 씨 이응태(1556~1586)의 무덤이 발견됐다. 31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시신 위에는 한글로 쓴 편지와 미투리가 놓여 있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아내가 넣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두 사람이 머리 희어지도록 같이 살다가 죽자’고 하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찾아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세요.”가로 58.5cm, 세로 34cm 종이에는 빽빽하게 한글이 쓰여져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내 ‘원이 엄마’의 편지였다.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했을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라는 구절은 조선 시대 부부 사랑이 요즘 MZ세대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기 때문에 황토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미투리는 검은 실처럼 보이는 것이 엉켜져 있었다. DNA를 검사한 결과 삼과 머리카락을 엮어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아내가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이 신을 신고 내게 돌아와 달라’는 염원을 담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은 것이다. 이튿날.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마을의 고택 ‘금곡재(金谷齋)’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청마루에 하얀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 세 분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들은 대마 속껍질을 가늘게 쪼개 삼실을 꼬아내며 ‘베틀가’를 불렀다. “베틀 놓세 베틀 놓세 옥난간에 베틀 놓세~ 옆집이야 김 선비야 뒷집이야 이 선비야. 다른 선비는 다 오는데 우리 선비는 왜 안 오노. 오기사야 온다마는 칠성판에 실려 온다. 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 나오는 할머니들처럼 나지막한 목소리에 반복되는 가락과 리듬. 구성진 노동요를 듣다가 500년 전 황망하게 죽은 남편에게 편지를 썼던 원이 엄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만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다.과거를 보러간 남편. 앞집의 김 선비도, 뒷집의 이 선비도 돌아오는데, 우리 집 남편은 왜 안 돌아오는 것일까. 결국 남편은 칠성판(관 바닥에 까는 널조각)에 실려 오고야 말았다. 금소마을은 고택이 즐비한 골목길 사이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예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안동포 짜기 마을’이란 간판이 서 있다. 한때는 이 마을에서 안동포 짜는 사람이 8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 든 주민 40여 명이 삼베 짜는 일을 하고 있다. 삼베 원료는 대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있는 대마밭에는 ‘경찰이 폐쇄회로(CC)TV로 감시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환각성분이 들어 있는 대마 잎을 따 갈 경우 적발된다는 경고문이다. 안동포전수관 앞마당 빨랫줄에 갈색 삼줄이 길게 늘어져 마르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긴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갈색 삼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유교식 봉제사(奉祭祀) 전통을 잘 지켰던 안동 선비들은 부모가 돌아가실 경우 삼베옷을 입고 삼년상을 치렀다. 3년 동안 입어도 잘 해지지 않는 안동포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대마민국’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금소마을은 대마를 테마로 한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다. 농협 창고를 개조한 카페에서는 ‘대마씨(햄프씨드) 차’와 목련차를 마실 수 있다. 볶은 대마씨앗을 우려낸 차는 구수한 숭늉이나 현미차 맛이 난다.대마의 환각성분은 대마 잎과 꽃에 고농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환각성분이 없는 씨앗을 볶아서 만든 차는 영양성분이 많은 슈퍼푸드로 알려져 있다.금소마을에서는 대마밭에서의 명상, 대마 뿌리를 넣은 닭백숙 식사, 대마 줄기로 만든 소원등(燈) 띄우기를 비롯해 대마를 테마로 한 여러 체험도 할 수 있다. ● 안동소주를 찾아서 “이 투명한 술을 눈으로 먼저 음미한 뒤, 흔들어서 향을 맡아 봅시다. 그리고 입술을 한번 적셔 보세요. 달짝지근함은 쌀의 단맛이예요. 술 한 모금을 3초 동안 천천히 삼키면서 코로 숨을 내쉬어 보세요. 뜨듯한 온기가 착 내려가면서 코로 향이 싹 나오죠?” (명인안동소주 박춘우 본부장)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 박재서 명인의 ‘명인 안동소주’에는 가문의 500년 술 빚는 전통을 보여 주는 안동소주역사관이 있다. 반남 박 씨 25대손 박재서 명인의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해 안동소주를 빚는 공간이다. 체험장에서는 21도, 35도, 45도 소주를 맛볼 수 있다. 막 증류돼 흘러나오는 78도짜리 소주 원액을 잔에 받아서 마셔 볼 수도 있다. 살짝 탄 누룽지 같은 쌀의 향이 남아 있는 78도짜리 소주는 높은 도수에도 ‘발렌타인 30년’ ‘로열살루트’ 부럽지 않을 정도로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그런데 목을 지나 몸속으로 들어간 소주가 식도와 위를 지나 장 속으로 흐르며 뱃속이 뜨듯해진다. 그래서 안동소주를 ‘내장 확인주’라고 부르는가 보다. ‘안동소주 하이볼’도 만들어 본다. 얼음을 넣은 잔에 45도 안동소주와 탄산수, 레몬 슬라이스를 섞고 블루 퀴라소 시럽을 더하면 푸른색 하이볼이 완성된다. 안동소주 하이볼은 위스키 하이볼보다 깔끔한 맛으로, 몰디브에서 마시는 모히또 한잔처럼 청량했다. 명인의 손에서 탄생한 안동소주 한잔에는 500년의 세월이 오롯이 담겨 있지만, 마시는 방법은 현대인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었다. 농암 이현보 종택 근처에 있는 맹개마을에서는 직접 재배한 밀로 진맥소주를 빚는 귀농 부부가 산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학소대 앞을 휘돌아나가는 낙동강 상류를 트랙터를 타거나 징검다리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이다.부부는 이곳 9만9000㎡(3만 평) 땅에 밀을 심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음식 조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보물 제2134호)에서 밀로 빚는 ‘진맥(眞麥)소주’ 제조법을 찾아 재현해 냈다.“안동소주는 몽골 지배의 산물입니다. 고려 왕실은 태자를 볼모로 몽골로 보내 몽골 공주와 결혼시켜 부마국이 되지요. 이때 들여온 것이 몽골 증류주였죠. 안동은 고려말 충렬왕, 공민왕 때 2번에 걸쳐 임시 수도가 됐기 때문에 소주 문화가 자리잡게 됩니다.”진맥소주를 만드는 맹개마을 박성호 이사는 책 ‘안동소주’를 썼다. 박 이사는 “본래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 연금술사가 발명한 증류주가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 과정에서 전파돼 고려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몽골이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로 탐라총관부를 둔 제주에서도 ‘고소리술’이라는 증류주 문화가 발달한 것처럼, 고려 임시 수도 역할을 한 안동에서도 소주 문화가 정착하게 됐다는 얘기다.●안동찜닭 골목=안동 구시장에 가면 안동찜닭 원조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안동찜닭 골목’이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찜닭’ 간판을 내건 30여 가게들이 양쪽으로 이어진다. 집집마다 외부에 화로를 내놓고 섭씨 400도의 강한 불에서 닭을 졸여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안동찜닭은 안동 반가(班家)의 접대 음식인 ‘닭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안동 장 씨(장계향)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어린 닭을 이용한 닭찜 조리법이 자세하게 나온다. 안동 전통 닭찜은 비교적 맑은 간장 국물로 담백하게 조리했다. 그런데 현대적인 맛과 비주얼의 안동찜닭은 1980년대 후반 안동 구시장 닭 골목에서 탄생했다. 구시장 상인들은 서양식 프라이드 치킨에 맞서기 위해 닭조림(닭찜)에 굵게 썬 감자와 당근, 당면을 넣고 간장소스로 맛을 낸 요리를 개발했다. 좀 더 맵고, 달고, 양도 풍부한 안동찜닭이 현대 안동의 향토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안동=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안동에서는 술이 유명하다. 도수가 높은 안동소주다. 그런가하면 고택에서는 어르신들이 지금도 최고급 품질의 안동포를 짜고 있다. 1년에도 수차례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이해 온 선비들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전통이 낳은 안동의 독특한 문화다. 코레일관광개발이 농림축산식품부, 안동시, 한식진흥원과 함께 기획한 ‘K-미식 전통주 벨트 팝업열차’를 타고 안동의 미식을 체험했다. ● 조선판 ‘사랑과 영혼’경북 안동에서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는 월영교다. 길이 387m의 월영교는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교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 찾아가니 더욱 감동적이다. 천연색 조명으로 빛나는 분수가 곡사포처럼 쏘아지는 호수 위로 초승달 모양 문보트(Moon Boat)가 떠다닌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월영교는 미투리를 형상화한 모습이라고 한다. 미투리가 무엇일까? 볏짚으로 만든 짚신처럼 생겼는데, 좀 더 질겨 품질 좋은 신이다. 대마 껍질로 만든 삼(麻)줄로 짰다. 1998년 안동 택지개발지구에서 고성 이 씨 이응태(1556∼1586)의 무덤이 발견됐다. 31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시신 위에는 한글로 쓴 편지와 미투리가 놓여 있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아내가 넣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두 사람이 머리 희어지도록 같이 살다가 죽자’고 하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찾아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세요.” 가로 58.5cm, 세로 34cm 종이에는 빽빽하게 한글이 쓰여져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내 ‘원이 엄마’의 편지였다.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했을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라는 구절은 조선 시대 부부 사랑이 요즘 MZ세대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기 때문에 황토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미투리는 검은 실처럼 보이는 것이 엉켜져 있었다. DNA를 검사한 결과 삼과 머리카락을 엮어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아내가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이 신을 신고 내게 돌아와 달라’는 염원을 담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은 것이다. 이튿날.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마을의 고택 ‘금곡재(金谷齋)’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청마루에 하얀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 세 분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들은 대마 속껍질을 가늘게 쪼개 삼실을 꼬아내며 ‘베틀가’를 불렀다. “베틀 놓세 베틀 놓세 옥난간에 베틀 놓세∼ 옆집이야 김 선비야 뒷집이야 이 선비야. 다른 선비는 다 오는데 우리 선비는 왜 안 오노. 오기사야 온다마는 칠성판에 실려 온다. 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 나오는 할머니들처럼 나지막한 목소리에 반복되는 가락과 리듬. 구성진 노동요를 듣다가 500년 전 황망하게 죽은 남편에게 편지를 썼던 원이 엄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만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다. 과거를 보러간 남편. 앞집의 김 선비도, 뒷집의 이 선비도 돌아오는데, 우리 집 남편은 왜 안 돌아오는 것일까. 결국 남편은 칠성판(관 바닥에 까는 널조각)에 실려 오고야 말았다. 금소마을은 고택이 즐비한 골목길 사이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예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안동포 짜기 마을’이란 간판이 서 있다. 한때는 이 마을에서 안동포 짜는 사람이 8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 든 주민 40여 명이 삼베 짜는 일을 하고 있다. 삼베 원료는 대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있는 대마밭에는 ‘경찰이 폐쇄회로(CC)TV로 감시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환각성분이 들어 있는 대마 잎을 따 갈 경우 적발된다는 경고문이다. 안동포전수관 앞마당 빨랫줄에 갈색 삼줄이 길게 늘어져 마르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긴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갈색 삼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유교식 봉제사(奉祭祀) 전통을 잘 지켰던 안동 선비들은 부모가 돌아가실 경우 삼베옷을 입고 삼년상을 치렀다. 3년 동안 입어도 잘 해지지 않는 안동포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대마민국’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금소마을은 대마를 테마로 한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다. 농협 창고를 개조한 카페에서는 ‘대마씨(햄프씨드) 차’와 목련차를 마실 수 있다. 볶은 대마씨앗을 우려낸 차는 구수한 숭늉이나 현미차 맛이 난다. 대마의 환각성분은 대마 잎과 꽃에 고농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환각성분이 없는 씨앗을 볶아서 만든 차는 영양성분이 많은 슈퍼푸드로 알려져 있다. 금소마을에서는 대마밭에서의 명상, 대마 뿌리를 넣은 닭백숙 식사, 대마 줄기로 만든 소원등(燈) 띄우기를 비롯해 대마를 테마로 한 여러 체험도 할 수 있다. ● 안동소주를 찾아서 “이 투명한 술을 눈으로 먼저 음미한 뒤, 흔들어서 향을 맡아 봅시다. 그리고 입술을 한번 적셔 보세요. 달짝지근함은 쌀의 단맛이예요. 술 한 모금을 3초 동안 천천히 삼키면서 코로 숨을 내쉬어 보세요. 뜨듯한 온기가 착 내려가면서 코로 향이 싹 나오죠?” (명인안동소주 박춘우 본부장)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 박재서 명인의 ‘명인 안동소주’에는 가문의 500년 술 빚는 전통을 보여 주는 안동소주역사관이 있다. 반남 박 씨 25대손 박재서 명인의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해 안동소주를 빚는 공간이다. 체험장에서는 21도, 35도, 45도 소주를 맛볼 수 있다. 막 증류돼 흘러나오는 78도짜리 소주 원액을 잔에 받아서 마셔 볼 수도 있다. 살짝 탄 누룽지 같은 쌀의 향이 남아 있는 78도짜리 소주는 높은 도수에도 ‘발렌타인 30년’ ‘로열살루트’ 부럽지 않을 정도로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그런데 목을 지나 몸속으로 들어간 소주가 식도와 위를 지나 장 속으로 흐르며 뱃속이 뜨듯해진다. 그래서 안동소주를 ‘내장 확인주’라고 부르는가 보다. ‘안동소주 하이볼’도 만들어 본다. 얼음을 넣은 잔에 45도 안동소주와 탄산수, 레몬 슬라이스를 섞고 블루 퀴라소 시럽을 더하면 푸른색 하이볼이 완성된다. 안동소주 하이볼은 위스키 하이볼보다 깔끔한 맛으로, 몰디브에서 마시는 모히또 한잔처럼 청량했다. 명인의 손에서 탄생한 안동소주 한잔에는 500년의 세월이 오롯이 담겨 있지만, 마시는 방법은 현대인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었다. 농암 이현보 종택 근처에 있는 맹개마을에서는 직접 재배한 밀로 진맥소주를 빚는 귀농 부부가 산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학소대 앞을 휘돌아나가는 낙동강 상류를 트랙터를 타거나 징검다리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이다. 부부는 이곳 9만9000㎡(3만 평) 땅에 밀을 심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음식 조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보물 제2134호)에서 밀로 빚는 ‘진맥(眞麥)소주’ 제조법을 찾아 재현해 냈다. “안동소주는 몽골 지배의 산물입니다. 고려 왕실은 태자를 볼모로 몽골로 보내 몽골 공주와 결혼시켜 부마국이 되지요. 이때 들여온 것이 몽골 증류주였죠. 안동은 고려말 충렬왕, 공민왕 때 2번에 걸쳐 임시 수도가 됐기 때문에 소주 문화가 자리잡게 됩니다.” 진맥소주를 만드는 맹개마을 박성호 이사는 책 ‘안동소주’를 썼다. 박 이사는 “본래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 연금술사가 발명한 증류주가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 과정에서 전파돼 고려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몽골이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로 탐라총관부를 둔 제주에서도 ‘고소리술’이라는 증류주 문화가 발달한 것처럼, 고려 임시 수도 역할을 한 안동에서도 소주 문화가 정착하게 됐다는 얘기다.● 안동찜닭 골목 안동 구시장에 가면 안동찜닭 원조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안동찜닭 골목’이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찜닭’ 간판을 내건 30여 가게들이 양쪽으로 이어진다. 집집마다 외부에 화로를 내놓고 섭씨 400도의 강한 불에서 닭을 졸여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동찜닭은 안동 반가(班家)의 접대 음식인 ‘닭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안동 장 씨(장계향)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어린 닭을 이용한 닭찜 조리법이 자세하게 나온다. 안동 전통 닭찜은 비교적 맑은 간장 국물로 담백하게 조리했다. 그런데 현대적인 맛과 비주얼의 안동찜닭은 1980년대 후반 안동 구시장 닭 골목에서 탄생했다. 구시장 상인들은 서양식 프라이드 치킨에 맞서기 위해 닭조림(닭찜)에 굵게 썬 감자와 당근, 당면을 넣고 간장소스로 맛을 낸 요리를 개발했다. 좀 더 맵고, 달고, 양도 풍부한 안동찜닭이 현대 안동의 향토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글·사진 안동=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펀드 수익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나눔을 실천해온 권준하 신익산화물터미널 대표(81)가 중앙고 계원장학회에 유언대용신탁기금으로 5억원을 기탁했다. 권 대표는 지난 12월 4일 앰버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열린 ‘2025 중앙교우회 정기총회 및 송년회’ 자리에서 이 같은 뜻을 밝혔다. 그는“민족사학으로서 나라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 온 중앙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교 후배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기탁의 취지를 전했다.이에 계원장학회 조소현 이사장은 “지속 가능한 발전기금의 모범이 될 유언대용신탁기금으로 기탁해 주신 만큼, 그 뜻에 따라 계원장학회가 중앙고의 새로운 100년을 책임질 인재를 키우는 데 소중하고 투명하게 활용하겠다”고 밝혔다.권 대표가 시작한 ‘유언대용신탁기부’는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다. 유언대용신탁 방식을 활용해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기부가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생전에 기부를 약정하고, 사후에도 기부가 지속될 수 있도록 기부금을 신탁 형태로 남긴 것이다. 기부금은 펀드로 운용되며,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은 중앙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중앙고 54회 졸업생인 권준하 대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자동차 관련 사업과 펀드 투자 분야에서 일해왔으며, 2013년 부부가 함께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이후 꾸준히 지속가능한 기부를 실천해왔다. 부부는 서울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에 각각 10억원, 20억원을 기부했으며, 사랑의열매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6억원(펀드형 30억원, 부동산 6억원)을 쾌척했다. 현재까지 이들이 기부한 금액만 총 111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런 기부 철학을 실천한 권씨 부부의 공로를 인정해 지난해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사랑의열매에서도 ‘2024 사랑의열매 대상’에서 기부 부문 공헌장을 수여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