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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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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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여행54%
경제일반23%
문화 일반10%
사회일반7%
국제교류3%
종교3%
  •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주인공은 누구일까[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주인공은 누굴까? 필리핀 세부시티의 중심가에는 산페드로 요새에 가면 ‘마젤란의 세계일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마젤란의 통역사 엔리케1565년 세부의 해안가 방어를 위해 스페인 총독이 세웠던 산페드로 요새는 이후 필리핀 독립운동의 기지가 되고, 미국 통치기에는 병영이자 학교, 제2차 대전 중에는 일본군 포로수용소와 병원으로 쓰였던 곳이다. 요새의 아치형 돌문 통로에는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포르투갈 사람인 마젤란은 스페인 왕궁의 후원을 받아 1519년 9월20일 5척의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의 카디스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목표는 인도네시아 동부 향료제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마젤란은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항해한 끝에 1520년 11월 남미 아랫 부분 좁은 해협을 발견한다. 남극 주변의 엄청난 추위와 조류, 파도를 헤치며 38일만에 이른바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는 데 성공한다. 너무 험난하게 해협을 건넌 직후에 마주한 잔잔한 바다에 감격한 마젤란은 평화로운 바다란 뜻으로 ‘태평양(Pacific Ocean)’이란 이름을 붙였다. 1521년 괌을 지나 세부에 도착했던 마젤란은 현지 왕족을 비롯한 800명의 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십자가를 세우고 첫 미사를 봉헌했다. 산페드로 요새에서 멀지 않은 산토니뇨 성당 앞에 있는 팔각형 예배당 안에는 500년 세월을 버텨온 ‘마젤란의 십자가’가 서 있다. 천정 벽화에는 마젤란이 세부 해변에 십자가를 세우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 필리핀이 아시아 최대의 가톨릭 국가가 된 것은 바로 이 나무 십자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야자수와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나무들로 가득한 산페드로 요새의 안마당에는 세부 역사관이 있다. 마젤란의 세계일주 당시 세부의 주요 인물들의 초상화가 주요 전시품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마젤란과 친교를 맺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세부의 라자 후마본 왕과 왕비다. 마젤란은 왕비에게 세례 선물로 ‘산토니뇨(아기 예수)’ 상을 주었다. 산토니뇨는 필리핀을 수호하는 수호성인으로, 필리핀 전역의 성당과 집, 가게마다 모셔져 있다.  또다른 주인공은 세부 옆의 조그만 섬인 막탄의 술탄이었던 라푸라푸 장군이다. 마젤란은 막탄섬의 족장을 너무나 얕잡아봤다. 1521년 4월27일. 마젤란은 60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3척의 롱보트를 타고 막탄 섬에 건너갔다. 그런데 라푸라푸가 이끄는 1500명이 넘는 막탄섬의 용사들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마젤란은 비명횡사하고 만다. ‘세계일주’를 완성하지 못하고 41세의 나이에 막탄섬 갯벌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막탄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라푸라푸시는 마젤란에 맞서 싸웠던 족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동상도 세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라푸라푸를 숭배하는 필리핀인들이 마젤란도 숭배한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스페인 식민통치를 가져오게 한 주인공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세부 역사관의 초상화 중에 가장 큰 논란의 인물은 마젤란의 통역사다. 이름은 ‘말라카의 엔리케(Enrique of Malacca)’. 마젤란은 세계일주에 나서기 전인 25살에 포르투갈 해군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마젤란은 1511년 말레이반도 남단의 해안 도시국가인 말라카 점령전에도 참가해 큰 공을 세운다. 싱가포르 주변의 말라카해협은 현재도 원유와 가스 등 전세계 해상 운송량의 20%를 담당하는 전략적, 교통의 요충지다.  당시 마젤란은 청년 노예 한 명을 사들였는데, 그가 바로 ‘말라카의 엔리케’다. 마젤란은 엔리케를 포르투갈로 데려가 교육시켰다. 그리고 1519년 세계일주 여행에 나설 때 통역사로 데리고 갔다. 1521년 세부에서 마젤란이 죽자 엔리케는 “고향으로 가겠다”며 필리핀에 남았다. 마젤란은 세부에서 죽었지만 스페인 원정대는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가 선장이 되어 3년 만에 스페인 카디스로 귀환한다. 이 세계일주는 인류사를 뒤바꿔놓았다. 지구는 둥글다는 과학이론을 실제로 확인했고, 지구를 한바퀴를 돌면 날짜가 바뀐다는 것, 전세계가 하나의 바다로 연결돼 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등을 증명했다. 이후로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런데 마젤란 함대는 세계일주에 성공했지만, 마젤란 개인의 세계일주는 성공했을까? 스페인에서는 마젤란 사후 선장을 맡아 귀환했던 엘카노가 최초의 세계일주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는 통역사였던 ‘말라카의 엔리케’가 최초의 세계일주자라고 주장한다. 말라카에서 마젤란의 노예가 되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갔다가, 다시 대서양과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서 필리핀으로 왔기 때문이다. 엔리케가 고향인 말라카로 돌아갔다면, 마젤란-엘카노 주항이 끝마쳐지기 전에 세계 최초로 출발지점으로 돌아온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세부시티 즐기기세부 막탄섬 라푸라푸시에 있는 막탄-세부국제공항은 2019년 세계건축페스티벌에서 전세계 최고의 공항상을 수상한 바 있는 아름다운 공항이다. 수천 개의 작은 나무 갈비뼈들이 결합된 목재로 지어진 파도 모양의 지붕과 뒤집힌 배처럼 보이는 나무 아치 구조가 눈길을 끈다. 또한 공항 곳곳에는 마젤란의 세계일주 원정대와 세부인들의 만남을 상징하는 조각품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공항에서 세부와 막탄섬을 잇는 ‘세부-코르도바 고속화 대교(CCLEX)’를 건너 약 30분 정도면 세부시티에서 가장 큰 누스타(NUSTAR) 리조트에 도착한다. CCLEX는 막탄 해협을 가로지르는 길이 8.9km의 고속화도로로 필리핀에서 가장 긴 해상교량이다.ㅍ누스타 리조트는 호텔, 카지노, 명품 쇼핑몰, 레스토랑, 영화관, 공연장, 컨벤션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숙박 뿐 아니라 즐길거리와 업무까지 모두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올 인 원(All in One)’ 호캉스 전용 리조트다. 누스타 리조트 객실은 총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이 되는 5성급인 ‘필리 호텔’과 ‘누스타 리조트 타워’가 현재 운영 중이며, 4성급 비즈니스·마이스(MICE) 중심 호텔인 ‘그랜드 서밋’이 2027년 오픈 예정이다. 세 호텔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다르지만 모든 시설을 공유하기 때문에, 투숙객은 리조트 전체를 자신의 생활권처럼 누릴 수 있다. 리조트 로비에 들어서면 필리핀의 전통과 현대적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가 곳곳에서 눈길을 끈다. 라운지 천장에는 체코 예술가 페트라 소시타코바가 만든 수공예 유리 작품인 ‘산호의 꿈’이 전시돼 있다. 막탄섬과 보홀섬의 바닷 속에서 스킨스쿠버를 했을 때 보았던 총천연색 산호들이 생각나는 조형물 인테리어다. 호텔 총지배인 로엘 콘스탄티노는 “진정한 필리핀식 환대를 통해 따뜻함과 배려가 깃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모토”라고 소개했다. 4층 인피니티풀은 바다와 도시 스카이라인을 한 눈에 담는 경치를 즐길 수 있다. 5층에 있는 라운지형 야외 수영장은 커다란 원형풀장이 두개가 있다. 선베드에 누워 세부-코르도바대교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풀장이다. 23층에 있는 이그제큐티브 클럽 라운지에서는 숙박객 전용으로 애프터눈티, 저녁 칵테일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누스타몰에는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 한자리에 몰려 있고, 돌비 디지털 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춘 프리미어 시네마 극장이 있다. 가족 여행객에게는 실내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Break 100’이 특히 인기다. 스크린으로 즐기는 골프, 야구, 농구, 축구와 사격 시뮬레이터, 레이싱 드라이브 등 실내에서도 충분히 액티브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또한 홍콩식 북경오리 전문 레스토랑인 ‘모트(Mott) 32’를 비롯해 필리핀 전통요리 ‘FINA’,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프리모’, 한식당 ‘연화’ 등 미식 레스토랑이 있다. 일프리모에서는 열대 바다 속 무시무시한 포식자인 ‘바라쿠다’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세부는 바다와 산이 맞닿아 만들어낸 지형의 매력이 돋보이는 도시다. 그 아름다움을 가장 넓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알타비스타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이다. 세부 시티 남쪽 언덕에 자리한 이 클럽은 세부 해안가와 막탄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골퍼 게리 플레이어가 설계한 코스는 좁은 페어웨이와 굴곡진 지형이 어우러져 도전적인 라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해발 150m에 위치한 클럽하우스 테라스는 세부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로, 골프를 치지 않더라도 꼭 들러볼 만한 전망 포인트다. 파리안 지구에 있는 카사 고로르도 박물관(Casa Gorordo Museum)은 19세기 중엽 필리핀 상류층의 생활을 재현한 공간이다. 목제 발코니와 통풍창, 은식기와 찻잔, 성상과 장신구당시 가구와 생활 용품을 통해 세부의 과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세부 최초의 필리핀인 주교가 된 후안 고로르도 가문의 이 주택은 1980년 복원을 통해 박물관으로 개방됐다. 별실에 마련된 커피숍 야외 테이블에서는 푸른 잔디밭과 저택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세부(필리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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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호 세계일주’ 주인공, 필리핀 세부에 가면 알 수 있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주인공은 누굴까? 필리핀 세부시티 중심가에 있는 산페드로 요새에 가면 ‘마젤란의 세계일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 마젤란의 통역사 엔리케 1565년 세부 해안가 방어를 위해 스페인 총독이 세웠던 산페드로 요새는 이후 필리핀 독립운동 기지가 되고, 미국 통치기에는 병영이자 학교,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 포로수용소와 병원으로 쓰였다. 요새의 아치형 돌문 통로에는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포르투갈 사람인 마젤란은 스페인 왕궁 후원을 받아 1519년 9월20일 5척의 배를 이끌고 스페인카디스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목표는 인도네시아 동부 향료 제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마젤란은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항해한 끝에 1520년 11월 남미 아랫 부분 좁은 해협을 발견한다. 남극 주변의 엄청난 추위와 조류, 파도를 헤치며 38일 만에 이른바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는 데 성공한다. 너무 험난하게 해협을 건넌 직후에 마주한 잔잔한 바다에 감격한 마젤란은 평화로운 바다란 뜻으로 태평양(Pacific Ocean)이란 이름을 붙였다. 1521년 괌을 지나 세부에 도착한 마젤란은 현지 왕족을 비롯한 800명의 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십자가를 세우며 첫 미사를 봉헌했다.산페드로 요새에서 멀지 않은 산토니뇨 성당 앞에 있는 팔각형 예배당 안에는 500년 세월을 버텨온 ‘마젤란의 십자가’가 서 있다. 천장 벽화에는 마젤란이 세부 해변에 십자가를 세우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 필리핀이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가 된 것은 바로 이 나무 십자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야자수와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나무로 가득한 산페드로 요새 안마당에는 세부 역사관이 있다. 마젤란의 세계일주 당시 세부의 주요 인물들 초상화가 주요 전시품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마젤란과 친교를 맺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세부의 라자 후마본 왕과 왕비다. 마젤란은 왕비에게 세례 선물로 ‘산토니뇨(아기 예수)’ 상을 주었다. 산토니뇨는 필리핀을 수호하는 수호성인으로 필리핀 전역의 성당과 집, 가게마다 모셔져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세부 옆 조그만 섬 막탄의 술탄이던 라푸라푸 장군이다. 마젤란은 막탄섬 족장을 너무나 얕잡아봤다. 1521년 4월27일 마젤란은 부하 60여 명과 함께 3척의 롱보트를 타고 막탄섬에 건너갔다. 그런데 라푸라푸가 이끄는 1500명이 넘는 용사들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마젤란은 비명횡사하고 만다. 세계일주를 완성하지 못하고 41세에 막탄섬 갯벌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막탄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라푸라푸는 마젤란에 맞서 싸운 족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 족장의 동상도 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라푸라푸를 숭배하는 필리핀인들이 마젤란도 숭배한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스페인 식민통치를 가져온 장본인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세부 역사관 초상화 중에 가장 큰 논란의 인물은 마젤란의 통역사다. 이름은 말라카의 엔리케(Enrique of Malacca). 마젤란은 세계일주에 나서기 전인 25세에 포르투갈 해군으로 복무했다. 그는 1511년 말레이반도 남단 해안 도시국가 말라카 점령전에도 참가해 큰 공을 세운다. 싱가포르 주변 말라카해협은 현재도 원유와 가스 운반을 비롯해 전 세계 해상 운송량의 20%를 담당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교통 요지이다. 당시 마젤란은 청년 노예 한 명을 사들였는데 그가 말라카의 엔리케다. 마젤란은 엔리케를 포르투갈로 데려가 교육시켰다. 1519년 세계일주 여행에 나설 때 통역사로 데리고 갔다. 1521년 세부에서 마젤란이 죽자 엔리케는 “고향으로 가겠다”며 필리핀에 남았다. 마젤란은 세부에서 죽었지만 스페인 원정대는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가 선장이 되어 3년 만에 스페인 카디스로 귀환한다. 이 세계일주는 인류사를 뒤바꿔 놓았다.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을 실제로 확인했고 지구를 한 바퀴 돌면 날짜가 바뀐다는 것과 전 세계가 하나의 바다로 연결돼 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등을 증명했다. 이후 본격적인 대항해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런데 마젤란 함대는 세계일주에 성공했지만 마젤란 개인은 세계일주에 성공했을까? 스페인에서는 마젤란 사후 선장을 맡아 귀환했던 엘카노가 최초의 세계일주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는 통역사였던 말라카의 엔리케가 최초의 세계일주자라고 주장한다. 말라카에서 마젤란의 노예가 되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갔다가 다시 대서양과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서 필리핀으로 왔기 때문이다. 엔리케가 고향인 말라카로 돌아갔다면 마젤란-엘카노 주항이 끝마치기 전에 세계 최초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세부시티 즐기기세부 막탄섬 라푸라푸에 있는 막탄-세부국제공항은 2019년 세계건축페스티벌에서 세계 최고의 공항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공항이다. 수천 개의 작은 나무 갈비뼈들로 지어진 파도 모양 지붕과 뒤집힌 배처럼 보이는 나무 아치 구조가 눈길을 끈다. 공항 곳곳에는 마젤란 세계일주 원정대와 세부인들의 만남을 상징하는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공항에서 세부와 막탄섬을 잇는 세부-코르도바 고속화 대교(CCLEX)를 건너 약 30분이면 세부시티에서 가장 큰 누스타(NUSTAR) 리조트에 도착한다. CCLEX는 막탄 해협을 가로지르는 길이 8.9km 도로로 필리핀에서 가장 긴 해상 교량이다.누스타 리조트는 호텔, 카지노, 명품 쇼핑몰, 레스토랑, 영화관, 공연장, 컨벤션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숙박뿐 아니라 즐길거리와 업무까지 한자리에서 해결하는 ‘올 인 원(All in One)’ 호캉스 전용 리조트다. 누스타 리조트 객실은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이 되는 5성급 필리호텔과 누스타 리조트 타워가 현재 운영 중이며 4성급 비즈니스-마이스(MICE) 중심 호텔 그랜드서밋은 2027년 개장할 예정이다. 세 호텔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다르지만 모든 시설을 공유하기 때문에 투숙객은 리조트 전체를 똑같은 생활권처럼 누릴 수 있다. 리조트 로비에 들어서면 필리핀의 전통과 현대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라운지 천장에는 체코 예술가 페트라 소시타코바가 만든 수공예 유리 작품 ‘산호의 꿈’이 전시돼 있다. 막탄섬과 보홀섬 바닷속에서 스킨스쿠버를 했을 때 봤던 총천연색 산호가 생각나는 조형물이다. 호텔 총지배인 로엘 콘스탄티노는 “진정한 필리핀식 환대를 통해 따뜻함과 배려가 깃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모토”라고 소개했다. 4층 인피니티풀은 바다와 도시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담으며 경치를 즐길 수 있다. 5층에 있는 라운지형 야외 수영장은 커다란 원형 풀장이 두 개 있다. 선베드에 누워 세부-코르도바대교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풀장이다. 23층 이그제큐티브 클럽 라운지는 숙박객 전용으로 애프터눈 티, 저녁 칵테일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누스타몰에는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 몰려 있고 돌비디지털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춘 프리미어 시네마 극장이 있다. 가족 여행객에게는 실내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브레이크(Break) 100’이 인기다. 스크린으로 하는 골프, 야구, 농구, 축구와 사격 시뮬레이터, 레이싱 드라이브 등 액티브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홍콩식 북경오리 전문 레스토랑 ‘모트(Mott) 32’를 비롯해 필리핀 전통 음식점 ‘FINA’,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프리모’, 한식당 ‘연화’ 같은 미식 레스토랑이 있다. 일프리모에서는 열대 바다 속 무시무시한 포식자 바라쿠다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세부는 바다와 산이 맞닿아 만들어 낸 지형이 돋보이는 도시다. 그 아름다움을 가장 넓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알타비스타 골프 앤드 컨트리 클럽이다. 세부시티 남쪽 언덕에 자리한 이 클럽은 세부 해안가와 막탄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골퍼 게리 플레이어가 설계한 골프 코스는 좁은 페어웨이와 굴곡진 지형이 어우러져 도전적인 라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해발 150m에 위치한 클럽하우스 테라스는 세부 시내와 바다 전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다. 골프를 치지 않더라도 꼭 들러 볼 만한 전망 포인트다. 파리안 지구에 있는 카사고로르도 박물관(Casa Gorordo Museum)은 19세기 중엽 필리핀 상류층 생활을 재현한 공간이다. 목제 발코니와 통풍창, 은식기와 찻잔, 성상과 장신구 등 당시 가구와 생활용품을 통해 세부의 과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세부 최초 필리핀인 가톨릭 주교가 된 후안 고로르도 가문의 주택은 1980년 복원을 통해 박물관으로 개방됐다. 별실에 마련된 커피숍 야외 테이블에서는 푸른 잔디밭과 저택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글·사진 세부(필리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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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가 주목하는 한지는 미래 문화산업의 신소재”

    “책을 넘어 예술적 오브제로 느껴졌다. 한지는 단순한 인쇄 재료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가 담긴 문화 매체다.”(독일 출판인 크리스티안 슐츠)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서 ‘한지(韓紙)’로 만든 책과 가구가 새로운 예술과 디자인의 도구로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장동광)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적층(積層): 그날의 말꽃’이란 전시에서 한지로 제작된 특별판 시집 3종과 독립운동 관련 책자를 선보였다. 한지 특유의 자연스러운 결이 살아 있는 질감과 감성을 지닌 한지로 만든 책에 대해 유럽 관람객들은 ‘손끝의 예술’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현장을 찾은 작가와 예술가들은 출판, 디자인, 예술 분야에서 한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묻고 협업을 문의하기도 했다. 올 9월 파리에서 개최된 2025 메종&오브제에서도 한지로 만든 가구와 공예품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메종&오브제의 주제는 ‘웰컴 홈(Welcome Home)’으로 팬데믹 이후 삶의 중심이 된 ‘집’을 새롭게 해석하는 전시였다. 특히 친환경성과 감성이 결합된 소재들이 주목받았는데, 닥나무 섬유로 만들어지는 한지는 은은한 빛 투과성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지속 가능한 소재’로 주목받았다. 관람객들은 “한지는 종이면서도, 천의 감각을 지닌 특별한 재료”라며 놀라워했다. 같은 기간 파리에서 ‘일상의 유산, 한지’를 주제로 개최된 한지 문화 교류 세미나에서도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관객까지 몰려들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삶고 두드려 섬유를 고르게 만든 뒤 한 장 한 장 떠내는데, 백 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는 종이라는 뜻으로 ‘백지(百紙)’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지는 2026년 12월경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2024년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신청했다. 현재 바티칸 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 유럽 각국에서 한지를 문화재 복원 작업 용지로 활용하고 있다. 한지의 원료인 국내산 닥나무는 섬유의 길이가 길고, 강도가 높아 내구성과 안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관계자는 “한지는 이제 단순한 전통 공예품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감성을 품은 미래의 문화산업 소재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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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지는 미래문화산업의 신소재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브랜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문화재를 복원하는 재료로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 ‘한지(韓紙)’를 사용하는 박물관이라는 점입니다. 한지는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로부터도 문화재 복원 용지로 공식 인증을 받았으며, 바티칸 박물관,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 이탈리아 국립중앙도서관 등 주요 기관에서 한지가 실제 복원작업에 활용되고 있습니다.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서도 ‘한지(韓紙)’가 예술과 디자인의 새로운 도구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국가유산청은 2024년 ‘한지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신청해 2026년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인데요. 우리 전통 기술인 한지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지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의 한지지난 10월 독일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장동광)은 ‘적층(積層): 그날의 말꽃’ 전시를 선보였는데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한지로 제작된 특별판 시집 3종과 독립운동 관련 책자를 전시해 현지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한지로 만든 책은 더욱 차별화된 느낌을 주었는데요. 한지의 특유의 질감과 감성, 자연스러운 결은 ‘손끝의 예술’로 불릴 정도로 유럽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독일 출판인 크리스티안 슐츠 씨는 “한지는 단순한 인쇄 재료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가 깃든 문화 매체”라며 “책을 넘어 예술적 오브제로 느껴졌다”고 말했습니요. 현장을 찾은 작가와 예술가들도 한지로 책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 협업을 논의했는데요. 향후 출판·디자인·예술 분야로의 한지 활용 확장 가능성이 확인된 셈입니다. 이와 같은 호응은 프랑크푸르트에만 그치지 않았는데요. 지난 9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2025 메종&오브제의 주제는 ‘웰컴 홈(Welcome Home)’이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삶의 중심이 된 ‘집’을 새롭게 해석하는 전시였는데요. 특히 친환경성과 감성이 결합된 소재들이 주목받았습니다. 닥나무 섬유로 만들어지는 한지는 그 대표적인 예였지요. 은은한 빛 투과성과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전통적인 제작 과정이 결합된 한지는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한 소재’로 주목받았습니다. 관람객들은 “한지는 종이면서도, 천의 감각을 지닌 특별한 재료”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또한 파리에서 ‘일상의 유산, 한지’를 주제로 개최된 한지 문화 교류 세미나에는 유럽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관객 100여 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천년의 기술, 유네스코 등재 향한 발걸음우리의 전통 종이 한지의 뿌리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8세기경 신라의 종이인 계림지가 비단처럼 희고 매끄럽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도 한지는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주요 수출품목으로 선정됐지요.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삶고 두드려 섬유를 고르게 만든 뒤 한 장 한 장 떠내는 데, 백 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는 종이라는 뜻으로 ‘백지(百紙)’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섬세한 공정 덕분에 한지는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통기성이 뛰어나 ‘살아 숨 쉬는 종이’라 일컬어지지요. 이러한 특징을 가진 한지는 최근 전통의 뿌리와 현대적 창의성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종이를 넘어 예술, 공예, 문화재 보존, 인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인테리어 브랜드에서는 전등갓, 벽지, 가구 표면 마감재로 한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지의 자연스러운 결이 현대의 미니멀리즘 미학과 만나는 것이죠. ​이뿐 아니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복원 전문가들은 예술품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지의 원료인 국내산 닥나무는 섬유의 길이가 길고, 강도가 높아 내구성과 안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한지는 2026년 12월경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가 성사된다면 한지는 한국의 전통 종이에서 나아가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관계자는 “한지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기술의 산물이자, 세대를 이어 전승된 공동체 문화”라며 “지속 가능한 인류 유산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습니다.​한지는 여전히 수작업 중심의 공예품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한지가 산업화되기 위해서는 품질 균일화와 대량 생산 체계 마련, 그리고 기술 융복합이 필수적이죠. 다행히 일부 기업에서는 자동화 설비를 갖춘 산업용 한지를 개발하고 있으며, 한지 특유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내구성과 방수성을 높이는 기술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한지는 이제 단순한 전통 공예품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감성을 품은 미래의 문화산업 소재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손끝에서 이어온 전통이 기술과 만나 ‘과거의 종이’가 아니라, 미래를 써 내려갈 새로운 문화의 페이지가 되고 있는 셈이죠.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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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일본’ 보고싶다면 소도시로 오세요”

    “한국인들이 도쿄나 오사카에 많이 관광 오시는데, 정작 일본인은 없고 한국인들만 보고 왔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지방 소도시에 오시면 호젓한 분위기에서 일본의 참모습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아베 슈이치 나가노현 지사)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일본 전국지사회(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소속 10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의 지사와 부지사들이 방한해 ‘다음 여행은 #일본소도시로’를 홍보하기 위한 캠페인을 열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지방 관광 교류 활성화를 위해 미야자키현, 나가노현, 도쿠시마현, 오카야마현, 이와테현, 후쿠오카현 등 10명의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직접 한국을 찾아 관광 세일즈에 나섰다. 시미즈 유이치 일본정부관광국(JNTO) 서울사무소 소장은 “2024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약 887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3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일본 재방문 비율은 무려 70%에 이른다. 그러나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의 대도시는 관광객이 넘쳐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앓고 있는 반면, 소도시는 관광객이 부족한 편중된 현실에 10개 현 지사들이 나선 것이다. 이날 일본 지자체장들은 한국인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의 고향이라는 스타 마케팅도 치열하게 펼쳤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우승한 LA 다저스의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고향이 바로 오카야마현입니다.”(이바라기 류타 오카야마현 지사) “돗토리현은 ‘명탐정 코난’ 작가의 고향입니다.”(나카하라 미유키 돗토리현 부지사) 한편 오이가와 가즈히코 이바라키현 지사는 1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천∼이바라키 항공 노선 취항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청주를 기반으로 하는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는 지난해 청주∼이바라키 노선 취항에 이어, 12일부터 인천∼이바라키 노선에 주 3회(월, 수, 금요일) 일정으로 운항을 시작했다. 오이가와 지사는 “이바라키는 도쿄 북쪽에 있는 지방으로, 1시간가량이면 도쿄 중심지로 갈 수 있다”며 “이바라키에는 114개의 골프 코스가 있으며, 일본 3대 폭포로 꼽히는 후쿠로다 폭포, 물속에 서 있는 도리이가 있는 이소사키 신사 등 볼 것도 많은 관광지”라고 소개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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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광역지자체장들 “소도시로 여행오세요”

    “한국인들이 도쿄나 오사카에 많이 관광오시는데, 정작 일본인은 없고 한국인들만 보고 왔다고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지방 소도시에 오시면 호젓한 분위기에서 일본의 참모습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아베슈이치 나가노현 지사)지난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일본 전국지사회(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소속 10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의 지사와 부지사들이 방한해 ‘다음 여행은 #일본소도시로’를 홍보하기 위한 캠페인을 열었다.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지방 관광 교류활성화를 위해 미야자키현·나가노현·도쿠시마현·오카야마현·이와테현·후쿠오카현 등 10명의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직접 한국을 찾아 관광세일즈에 나섰다. 시미즈 유이치 일본정부관광국(JNTO) 서울사무소 소장은 “2024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약 887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3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일본 재방문 비율은 무려 70%에 이른다. 그러나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의 대도시는 관광객이 넘쳐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앓고 있는 반면, 소도시는 관광객이 부족한 편중된 현실에 10개 현 지사들이 나선 것이다. 이날 일본 지자체장들은 한국인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인물의 고향이라는 스타 마케팅도 치열하게 펼쳤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에서 우승한 LA다저스의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고향이 바로 오카야마현입니다.” (이바라기 류타 오카야마현 지사) “돗토리현은 ‘명탐정 코난’의 작가의 고향입니다” (나카하라 미유키 돗토리현 부지사) 한편 오이가와 카즈히코 이바라키현 지사는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인천~이바라키 노선 취항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청주를 기반으로 하는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는 지난해 청주∼이바라키 노선 취항에 이어, 지난 12일부터 인천∼이바라키 노선에 주 3회(월·수·금요일) 일정으로 운항을 시작했다.오이가와 지사는 “이바라키는 도쿄 북쪽에 있는 지방으로, 1시간가량이면 도쿄 중심지로 갈 수 있다”며 “이바라키에는 114개의 골프 코스가 있으며, 일본 3대 폭포로 꼽히는 후쿠로다 폭포, 물속에 서 있는 도리이가 있는 이소사키 신사 등 볼 것도 많은 관광지”라고 소개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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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설악, 선계(仙界)에 드니 찾아오는 경외감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가을 단풍하면 설악산이다. 오대산도 있고, 내장산도 있고, 지리산도 있지만 단풍의 대명사는 역시 설악산이다. 이상기후로 더이상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정취는 기대하긴 힘들다. 그래도 단풍은 가을의 전설이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남설악 최고의 단풍 비경을 자랑하는 오색지구 흘림골~주전골 트레킹을 떠나보았다.● 흘림골의 생강나무 노란단풍봄꽃놀이도 그렇지만, 가을 단풍놀이도 짧은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긴다. 특히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꽃과 단풍을 좋아한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아름다움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지는 간절한 마음에서일까?남설악 오색지구의 단풍은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백담계곡과 함께 ‘설악삼미(雪嶽三美)’로 꼽힌다. 오색지구 흘림골~주전골 탐방로는 총 6.27km 구간으로 단풍철이면 매년 80만명이 찾을 정도로 최고의 단풍명소다. 3시간 반이면 완주할 수 있는 평이한 코스인데도, 설악의 웅장하고 신비스런 내밀한 속살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라 초보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른 새벽 서울에서 출발한 차를 주전골이 있는 오색약수 주차장에 세운다. 그리고 택시(1만5000원 정액제)를 타고 산행의 출발지인 흘림골탐방센터으로 향한다. 흘림골로 치고 올라가 주전골로 회귀해야 긴 하산길에서 편안하게 단풍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흘림골은 1970~80년대에는 신혼여행지이자 수학여행지 명소로 각광을 받았다. 수려한 산세,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와 폭포를 구경하고, 오색약수를 마신 뒤 온천을 즐기는 관광코스가 인기였다. 그러다 환경 훼손이 심해져 1985년 자연휴식년제를 선언했고, 20년 뒤인 2004년 9월에 다시 개방됐다. 그런데 2015년에 8월 낙석사고로 다시 폐쇄됐고, 안전시설 보강공사를 마친 후 7년 만인 2022년 다시 개방됐다.흘림골은 흘림골탐방지원센터에서 용소폭포 삼거리까지 연결되는 3.1km 구간.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하루 5000명만 사전예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해발 700미터 지점에서 산행을 시작하자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최고봉인 등선대(해발 1002m)까지 숨가쁘게 오르는 구간이다. 입구에서부터 오른편에 칠형제봉이 가을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다. 이게 설악이지! 시작부터 눈호강을 한다. 육중한 바위덩어리로 된 일곱난장이가 아닌 일곱거인들이 오순도순 힘자랑을 하고 있다.한 20분쯤 올랐을까. 다리 전망대에서 잠시 경치를 구경하는데, 뒤쪽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봉우리 뒷편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폭포에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폭포의 생김새가 참 묘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차마 직접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아래로 까는 사람도 있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이 폭포의 이름은 ‘여심(女深)폭포’. 예전에는 신혼부부들이 찾아와 아기를 잘 낳게 해달라고 비는 폭포로 유명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가량. 신선이 하늘로 올랐다는 등선대 정상에 섰다. 설악산의 장쾌한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는 전망대다. 저 멀리 점봉산 앞으로 뾰족한 악어의 이빨같은 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서 있는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겨울에 흰 눈이 쌓여 있으면 더욱 장엄할 것 같은 풍경이다.그 옆으로 한계령 휴게소와 귀때기청봉(1576m), 끝청과 대청봉, 양양 송전해변까지 설악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방팔방으로 펼쳐진다. 한계령을 넘어 온 세찬 바람이 내 모자를 잡아채갈까봐 손으로 꼭 쥔 채, 설악의 파노라마를 가슴에 담았다. 등선대에서 내려와서 주전골 방향으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눈 앞에는 장엄한 봉우리들이 겹겹이 서 있다. 흘림골은 숲이 짙고 깊어서 늘 구름이 낀 것처럼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예전에는 ‘흐림골’이라고 불렸단다. 해발이 높은 흘림골 골짜기에는 붉은색 단풍은 벌써 지고, 노란색 생강나무 단풍이 산을 지키고 있었다. 생강나무는 봄에 일찍 노란색 꽃을 피우는 나무. 잎과 가지에서 생강 향기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서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노란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다. 그런데 하산길 주전골 계곡으로 내려갈수록 붉은색 단풍이 무성해졌다. 황금색, 초록색, 붉은색이 어우러지는 가을의 향연이다. 흘림골 탐방로 곳곳에는 터널처럼 둥근 철망 구조물이 있다. 2015년 낙석사고 이후 7년간 통제되면서 시설을 보수한 흔적이다. 철제 터널을 지나며 내려가다보니 등선(登仙)폭포가 나타난다. 신선이 등선대에서 하늘로 오르기 전에 몸을 정갈하게 씻었던 폭포라고. 수량이 많을 때면 물줄기가 신선이 하늘로 오를 때 백발이 휘날리는 것처럼 보인다고하는데 가을이라 수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하늘에서부터 30m의 낙차를 보이며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며 내려오는 폭포는 설악의 신비스런 정취를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등선폭포에서부터 시작된 주전골 계곡물 위로는 이리저리 건너다닐 수 있는 나무다리가 수없이 놓여져 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에 탄성이 터져나온다.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원경으로 밀당하듯 보여주는 흘림골의 단풍은 도도한 우아함과 품위가 넘쳐난다. 선계(仙界)에 발을 들여놓은 인간에겐 늘 경외감이 찾아온다. ●주전골의 불타는 계곡내려갈수록 점점 계곡의 물소리가 커져간다. 눈을 돌려 옆을 봤더니 탐방로와 나란히 있는 바위를 타고 ‘십이폭포’가 흘러내리고 있다. 흘림골 구간은 용소폭포 삼거리에서 끝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주전골 계곡이 시작된다. 사전예약없이도 들어올 수 있는 무장애 평지 탐방길이라 누구나 운동화 신고도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황금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진 단풍의 절정은 주전골에서 본격 시작된다. 용소삼거리에서 잠깐 길을 벗어나 용소폭포에 다녀온다. 사람의 얼굴처럼 코와 입이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가고, 현수교를 지나면 용소폭포를 볼 수 있다.용소폭포의 하얀색 물줄기가 떨어져 에머랄드빛 ‘소(沼)’를 만들어내고 있다.전설에 따르면 용소폭포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 부부가 살았다고 한다. 수백년 동안 수행한 끝에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기를 준비하던 부부. 수컷은 용의 비늘이 생기고 날개가 자라 하늘로 꿈틀하고 비상했는데, 암컷은 어찌된 일인지 아무 변화가 없고 지상에 남게 됐다. 결국 분함을 이기지 못한 암컷 이무기가 골짜기에서 요동을 치며 분노를 폭발했다. 이런 난리통에 주전골 주변에는 용비늘을 한 기암괴석이 수백개가 널브러졌다는 전설이다. 그래서인지 주전골에 불쑥 불쑥 솟아 있는 봉우리들은 공룡처럼 보이기도 하고, 코모도 섬의 왕도마뱀 머리를 닮기도 했다. ‘주전(鑄錢)골’이란 이름은 곳곳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한 실제로 조선시대 때 승려로 가장한 도적떼가 이 계곡으로 들어와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주전골’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천불동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주전골은 수억년간 계곡물로 빚어낸 오묘한 형상을 한 돌들의 전시장이다. 바위산의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뿌리내린 소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절벽 끝에 자리잡은 생강나무도 노랗게 물든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탐방로 옆으로 넓은 너럭바위에 비취색 물이 담긴 연못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선녀탕. 내설악 쪽에도 ‘12선녀탕’이 있는데, 설악에는 달밤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오는 목욕탕이 많았던 듯하다. 그런데 심술궂은 선관이 함께 내려와 선녀탕에서 천의를 벗어놓고 놀던 선녀 2명의 옷을 훔쳐갔다고 한다.그래서 결국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는 설악에 남아서 흘림골의 여심폭포와 옥녀폭포로 변했다고 한다. 흘림골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여심폭포가 바로 선녀탕에 내려왔던 선녀였다니…. 산행길 전설은 이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오색지구로 거의 다 내려오면 계곡의 바위에서 솟아나고 있는 ‘제2오색약수’를 만난다. 바위에 뚫려 있는 2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오색약수에서는 비릿한 철분이 느껴진다. 언젠가 내 아들이 약수를 마시고 “앗, 철봉 맛이야! 아니 10원짜리 동전맛”이라고 말했던 그 맛이다. 천연기념물 529호로 지정된 오색약수의 용출량이 급감해서 새로 발견했다는 ‘제2오색약수’는 누구나 휴대용 컵만 있으면 맛볼 수 있다.해마다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9월까지 덥고, 10월에는 가을장마까지 겹쳐 단풍이 늦어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갑자기 닥쳐온 급추위에 단풍은 물들기도 전에 얼어붙고, 메말라 떨어진다.그래서 해마다 선명한 단풍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런 이상기온 상황에서도 주전골에서 벌겋게 타오르는 단풍을 보며, 아름답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돌이켜보게 됐다. ‘나 자신을 완전히 주기를 원하네/사흘 동안 아낌없이/자신을 불태우고 또 불태우고/그리고 이틀을 더 불태우고는/모든 잎을 떨어뜨리는/이 단풍나무처럼’ (제인 허시필드 ‘호수와 단풍’)●맛집=설악산 오색지구에 있는 ‘각두골’ 식당 앞마당에는 토종닭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다. 약초능이백숙을 주문하면 주인이 방사해서 기르는 토종닭은 잡아서 백숙요리를 해준다. 도토리묵부터 산나물, 더덕 등 강원도 산골에서 맛볼 수 있는 진귀한 반찬이 한상 가득나온다. 감자와 능이버섯을 넣고 푹 삶은 닭백숙의 진한 국물에서는 한약재의 향긋한 향기가 난다. 가을 산행 후 토종닭으로 든든하게 몸보신할 수 있는 곳이다.설악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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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의 설악, 선계에 들어선 인간에겐 경외감이 찾아온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가을 단풍하면 설악산이다. 오대산도 있고, 내장산도 있고, 지리산도 있지만 단풍의 대명사는 역시 설악산이다. 이상기후로 더이상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정취는 기대하긴 힘들다. 그래도 단풍은 가을의 전설이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남설악 최고의 단풍 비경을 자랑하는 오색지구 흘림골∼주전골 트레킹을 떠나보았다. ● 흘림골의 생강나무 노란단풍 봄꽃놀이도 그렇지만, 가을 단풍놀이도 짧은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긴다. 특히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꽃과 단풍을 좋아한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아름다움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지는 간절한 마음에서일까? 남설악 오색지구의 단풍은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백담계곡과 함께 ‘설악삼미(雪嶽三美)’로 꼽힌다. 오색지구 흘림골∼주전골 탐방로는 총 6.27km 구간으로 단풍철이면 매년 8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최고의 단풍명소다. 3시간 반이면 완주할 수 있는 평이한 코스인데도, 설악의 웅장하고 신비스런 내밀한 속살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라 초보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른 새벽 서울에서 출발한 차를 주전골이 있는 오색약수 주차장에 세운다. 그리고 택시(1만5000원 정액제)를 타고 산행의 출발지인 흘림골탐방센터으로 향한다. 흘림골로 치고 올라가 주전골로 회귀해야 긴 하산길에서 편안하게 단풍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흘림골은 1970∼80년대에는 신혼여행지이자 수학여행지 명소로 각광을 받았다. 수려한 산세,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와 폭포를 구경하고, 오색약수를 마신 뒤 온천을 즐기는 관광코스가 인기였다. 그러다 환경 훼손이 심해져 1985년 자연휴식년제를 선언했고, 20년 뒤인 2004년 9월에 다시 개방됐다. 그런데 2015년에 8월 낙석사고로 다시 폐쇄됐고, 안전시설 보강공사를 마친 후 7년 만인 2022년 다시 개방됐다. 흘림골은 흘림골탐방지원센터에서 용소폭포 삼거리까지 연결되는 3.1km 구간.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하루 5000명만 사전예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해발 700m 지점에서 산행을 시작하자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최고봉인 등선대(해발 1002m)까지 숨가쁘게 오르는 구간이다. 입구에서부터 오른편에 칠형제봉이 가을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다. 이게 설악이지! 시작부터 눈호강을 한다. 육중한 바위덩어리로 된 일곱난장이가 아닌 일곱거인들이 오순도순 힘자랑을 하고 있다. 한 20분쯤 올랐을까. 다리 전망대에서 잠시 경치를 구경하는데, 뒤쪽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봉우리 뒷편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폭포에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폭포의 생김새가 참 묘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차마 직접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아래로 까는 사람도 있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이 폭포의 이름은 ‘여심(女深)폭포’. 예전에는 신혼부부들이 찾아와 아기를 잘 낳게 해달라고 비는 폭포로 유명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가량. 신선이 하늘로 올랐다는 등선대 정상에 섰다. 설악산의 장쾌한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는 전망대다. 저 멀리 점봉산 앞으로 뾰족한 악어의 이빨같은 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서 있는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겨울에 흰 눈이 쌓여 있으면 더욱 장엄할 것 같은 풍경이다. 그 옆으로 한계령 휴게소와 귀때기청봉(1576m), 끝청과 대청봉, 양양 송전해변까지 설악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방팔방으로 펼쳐진다. 한계령을 넘어 온 세찬 바람이 내 모자를 잡아채갈까봐 손으로 꼭 쥔 채, 설악의 파노라마를 가슴에 담았다. 등선대에서 내려와서 주전골 방향으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눈 앞에는 장엄한 봉우리들이 겹겹이 서 있다. 흘림골은 숲이 짙고 깊어서 늘 구름이 낀 것처럼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예전에는 ‘흐림골’이라고 불렸단다. 해발이 높은 흘림골 골짜기에는 붉은색 단풍은 벌써 지고, 노란색 생강나무 단풍이 산을 지키고 있었다. 생강나무는 봄에 일찍 노란색 꽃을 피우는 나무. 잎과 가지에서 생강 향기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서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노란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다. 그런데 하산길 주전골 계곡으로 내려갈수록 붉은색 단풍이 무성해졌다. 황금색, 초록색, 붉은색이 어우러지는 가을의 향연이다. 흘림골 탐방로 곳곳에는 터널처럼 둥근 철망 구조물이 있다. 2015년 낙석사고 이후 7년간 통제되면서 시설을 보수한 흔적이다. 철제 터널을 지나며 내려가다보니 등선(登仙)폭포가 나타난다. 신선이 등선대에서 하늘로 오르기 전에 몸을 정갈하게 씻었던 폭포라고. 수량이 많을 때면 물줄기가 신선이 하늘로 오를 때 백발이 휘날리는 것처럼 보인다고하는데 가을이라 수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하늘에서부터 30m의 낙차를 보이며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며 내려오는 폭포는 설악의 신비스런 정취를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등선폭포에서부터 시작된 주전골 계곡물 위로는 이리저리 건너다닐 수 있는 나무다리가 수없이 놓여져 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에 탄성이 터져나온다.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원경으로 밀당하듯 보여주는 흘림골의 단풍은 도도한 우아함과 품위가 넘쳐난다. 선계(仙界)에 발을 들여놓은 인간에겐 늘 경외감이 찾아온다. ● 주전골의 불타는 계곡내려갈수록 점점 계곡의 물소리가 커져간다. 눈을 돌려 옆을 봤더니 탐방로와 나란히 있는 바위를 타고 ‘십이폭포’가 흘러내리고 있다. 흘림골 구간은 용소폭포 삼거리에서 끝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주전골 계곡이 시작된다. 사전예약없이도 들어올 수 있는 무장애 평지 탐방길이라 누구나 운동화 신고도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황금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진 단풍의 절정은 주전골에서 본격 시작된다. 용소삼거리에서 잠깐 길을 벗어나 용소폭포에 다녀온다. 사람의 얼굴처럼 코와 입이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가고, 현수교를 지나면 용소폭포를 볼 수 있다. 용소폭포의 하얀색 물줄기가 떨어져 에머랄드빛 ‘소(沼)’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용소폭포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 부부가 살았다고 한다. 수백년 동안 수행한 끝에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기를 준비하던 부부. 수컷은 용의 비늘이 생기고 날개가 자라 하늘로 꿈틀하고 비상했는데, 암컷은 어찌된 일인지 아무 변화가 없고 지상에 남게 됐다. 결국 분함을 이기지 못한 암컷 이무기가 골짜기에서 요동을 치며 분노를 폭발했다. 이런 난리통에 주전골 주변에는 용비늘을 한 기암괴석이 수백 개가 널브러졌다는 전설이다. 그래서인지 주전골에 불쑥 불쑥 솟아 있는 봉우리들은 공룡처럼 보이기도 하고, 코모도 섬의 왕도마뱀 머리를 닮기도 했다. ‘주전(鑄錢)골’이란 이름은 곳곳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한 실제로 조선시대 때 승려로 가장한 도적떼가 이 계곡으로 들어와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주전골’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천불동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주전골은 수억년간 계곡물로 빚어낸 오묘한 형상을 한 돌들의 전시장이다. 바위산의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뿌리내린 소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절벽 끝에 자리잡은 생강나무도 노랗게 물든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탐방로 옆으로 넓은 너럭바위에 비취색 물이 담긴 연못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선녀탕. 내설악 쪽에도 ‘12선녀탕’이 있는데, 설악에는 달밤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오는 목욕탕이 많았던 듯하다. 그런데 심술궂은 선관이 함께 내려와 선녀탕에서 천의를 벗어놓고 놀던 선녀 2명의 옷을 훔쳐갔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는 설악에 남아서 흘림골의 여심폭포와 옥녀폭포로 변했다고 한다. 흘림골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여심폭포가 바로 선녀탕에 내려왔던 선녀였다니…. 산행길 전설은 이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오색지구로 거의 다 내려오면 계곡의 바위에서 솟아나고 있는 ‘제2오색약수’를 만난다. 바위에 뚫려 있는 2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오색약수에서는 비릿한 철분이 느껴진다. 언젠가 내 아들이 약수를 마시고 “앗, 철봉 맛이야! 아니 10원짜리 동전맛”이라고 말했던 그 맛이다. 천연기념물 529호로 지정된 오색약수의 용출량이 급감해서 새로 발견했다는 ‘제2오색약수’는 누구나 휴대용 컵만 있으면 맛볼 수 있다. 해마다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9월까지 덥고, 10월에는 가을장마까지 겹쳐 단풍이 늦어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갑자기 닥쳐온 급추위에 단풍은 물들기도 전에 얼어붙고, 메말라 떨어진다. 그래서 해마다 선명한 단풍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런 이상기온 상황에서도 주전골에서 벌겋게 타오르는 단풍을 보며, 아름답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돌이켜보게 됐다. ‘나 자신을 완전히 주기를 원하네/사흘 동안 아낌없이/자신을 불태우고 또 불태우고/그리고 이틀을 더 불태우고는/모든 잎을 떨어뜨리는/이 단풍나무처럼’ (제인 허시필드 ‘호수와 단풍’)맛집설악산 오색지구에 있는 ‘각두골’ 식당 앞마당에는 토종닭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다. 약초능이백숙을 주문하면 주인이 방사해서 기르는 토종닭은 잡아서 백숙요리를 해준다. 도토리묵부터 산나물, 더덕 등 강원도 산골에서 맛볼 수 있는 진귀한 반찬이 한상 가득나온다. 감자와 능이버섯을 넣고 푹 삶은 닭백숙의 진한 국물에서는 한약재의 향긋한 향기가 난다. 가을 산행 후 토종닭으로 든든하게 몸보신할 수 있는 곳이다.글·사진 설악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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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단신]앙카라 하우스에서 ‘튀르키예의 날’ 행사 外

    ■ 앙카라 하우스에서 ‘튀르키예의 날’ 행사튀르키예 문화관광부는 27∼28일 서울 여의도에 새로 단장한 ‘앙카라 하우스’에서 ‘튀르키예의 날’ 행사를 가졌다. 앙카라 하우스는 1992년 서울시와 자매도시인 앙카라시가 세운 튀르키예 전통 와이너리의 농가 주택으로, 올해 5월 새 단장을 마치고 재개장했다. 목조 2층 건물로 구성된 이곳에는 오스만 시대 전통 의상, 은거울, 생활 도구 등 800여 점의 전통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튀르키예식 아침 식사 체험(사진)과 함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튀르키예 커피 시음회가 진행됐다.■ 佛 관광청, 제7회 ‘프렌치 데이즈 인 서울 2025’프랑스 관광청이 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프렌치 데이즈 인 서울 2025’(사진)를 열었다. 올해로 제7회를 맞은 행사는 프랑스에서 내한한 27개 관광업계 관계자들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프랑스 관광청 코린 풀키에 한국 지사장은 “2024년 프랑스는 국제 관광객 1억 명을 돌파하고, 관광 수입 710억 유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한 2026년은 인상파 화가 모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아비뇽 연극제는 2026년 공식 초청 언어를 한국어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 세부퍼시픽항공,‘ 세부퍼시픽 해피 스토어’ 행사 필리핀 세부퍼시픽항공은 24∼2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틸테이블에서 ‘세부퍼시픽 해피 스토어(Cebu Pacific Happy Store)’ 행사를 열었다. 방문객들은 해피 스토어에서 클라크, 팔라완, 보라카이, 세부, 마닐라 등 필리핀의 대표적인 5개 여행지를 테마로 한 체험형 공간을 즐기며 필리핀 여행을 간접 체험했다. 24일 개막식 행사에는 버나뎃 테레즈 C. 페르난데스 주한 필리핀 대사, 어윈 페르난데스 발라네 필리핀관광청 한국지사장, 강혁신 세부퍼시픽항공 한국지사장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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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디자인 이렇게 아름답고도 편리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휘영)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장동광)과 함께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전국 206곳에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5’를 연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하는 이번 행사는 ‘공존: 내일을 위한 공공디자인’을 표어로 내세웠다. 저출생·고령화·기후변화 등 사회 변화에 대응하며 세대 간 조화와 공존을 실현하는 공공디자인의 역할을 조명한다. 2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개막식에서는 ‘2025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으로 선정된 14개 작품을 시상하고, ‘공공디자인 진흥 유공자’로 선정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2명에 대해 표창했다.‘2025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대통령상은 서울 서초구가 2022년부터 시행해 온 흡연자-비흡연자 공존을 위한 공공서비스가 받는다. 문체부 장관상은 △국가보훈부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네이버 해피빈 ‘투명 올레드(OLED) 기부 키오스크’ △‘공공장소에서 프라이버시와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디자인 가이드라인 연구’가 선정됐다. 올해의 지역협력도시는 ‘광주폴리’ ‘별밤미술관’ 등 지역 정체성을 살린 공공디자인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온 광주가 선정됐다. 28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영국 정부 정책디자인 총괄 앤드루 나이트, 헬싱키 디자인 위크 창립자 카리 코르크만, 뉴욕 타임스스퀘어 개선 연합 대표 팀 톰킨스 등 해외 전문가 3명과 국내 전문가 12명이 참여하는 ‘내일을 위한 공공디자인’ 토론회가 열린다. ‘공공디자인 거점’ 행사에는 공공디자인을 우수하게 구현한 지자체, 민간기업, 기관·단체 등으로 총 206곳이 참여한다. 이 중 홍성군, 청주시 등 33곳에서는 지역 주민이 공공디자인을 체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밖에도 △대만디자인센터와 공공소통연구소 라우드, 네이버 해피빈, 국제공공디자인포럼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학술행사(28일∼11월 2일 문화역서울284 알티오) △스위스와 한국의 디자이너가 ‘공공’과 ‘디자인’ 주제 발표(27일 서울 스위스한옥) △2000년 이후의 공공디자인 아카이브 전시(24∼31일 디자인하우스) 등이 진행된다. 서울 구로, 부산 강서, 제주 서귀포 등 전국 10곳의 ‘기적의 도서관’에서는 공공디자인 체험 행사와 전시, 연수회를 진행한다. 공주대, 광운대, 국립한경대 등 6개 대학이 참여한 ‘공공디자인 실험실’에서도 열린다. 신은향 문체부 예술정책관은 “공공디자인은 사회 변화에 대응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그 인식을 넓힐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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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아시아-영국을 잇는 문화외교,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 10주년 맞아

    “지난 10년은 한국과 아시아가 ‘문화 외교’의 언어로 영국과 소통해온 기간이었습니다.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는 아시아의 헤리티지를 잇는 영국 내 최대·최장수 아시아 영화제로 성장해왔습니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 London East Asia Film Festival)가 10월 23일(목)부터 11월 2일(일)까지 런던 시내 영화관과 박물관 등에서 열린다. 지난 10년간 LEAFF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의 예술성과 다양성을 영국 사회에 소개하며, ‘문화 외교의 언어로 아시아와 영국을 잇는 다리’로 자리매김해 왔다. 올해 영화제는 그동안의 여정을 기념하며 전통과 미래, 예술과 기술이 공존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0주년을 맞아 ‘미래 프레임’을 신설해 AI영화 시대를 여는 새로운 도전에서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개막식은 런던의 대표 상영관 오데온 럭스 레스터 스퀘어(ODEON Luxe Leicester Square) 에서 열린다. 영국 대표 아시아축제가 된 런던아시아영화제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 국립초상화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 시네마뮤지엄, 일렉트릭 시네마(Electric Cinema) 등 런던의 주요 문화기관과 협력해 총 45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개막작은 홍콩 느와르의 거장 오우삼(John Woo)감독의 대표작 ‘하드보일드’(Hard Boiled·1992)가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영국 최초 상영을 통해 LEAFF의 역사를 기념한다. 주윤발과 양조위의 전설적인 연기가 다시 한번 런던 스크린을 수놓는다. 폐막작은 일본의 이상일(Lee Sang-il) 감독 신작 ‘국보’(Kokuho, 2025)로, 섬세하고 서정적인 드라마를 통해 10주년의 여정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GALA & 오피셜 셀렉션 스페셜 갈라에서는 배우이자 감독 하정우의 신작 ‘윗집 사람들’이 국내 개봉 전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일상의 사소한 갈등이 진실과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는 세밀한 심리극으로, 하정우 감독이 직접 런던을 찾아 관객과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인도네시아의 거장 가린 누그로호는 발리 신화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구원을 탐구한 시적 판타지 ‘삼사라’(Samsara)로 초청됐다. 이 외에도 연상호, 욘판(Yonfan), 가와세 나오미(Naomi Kawase), 차이상쥔(Cai Shangjun) 등 아시아 대표 감독들과 작품들이 참여해 현실과 환상,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동아시아 영화의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마스터즈 오브 시네마(Masters of Cinema)’ 섹션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특별 상영된다. 촬영감독 김형구와 미술감독 신보경이 직접 참석해 시각적 연출과 글로벌 협업에 대한 깊이 있는 대담을 진행한다. 또한 홍콩의 두기봉(Johnnie To) 감독의 느와르 걸작 ‘PTU’(2003) 4K 복원판을 비롯해, 대만 시청각연구소(TFAI) 협력 복원작과 한국영상자료원의 전후 여성영화 3부작이 상영된다. 이들 복원작은 아시아 영화사의 유산과 예술적 계보를 재조명하는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Stories of Women’ 섹션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여성의 삶과 연대를 조명한다. 허가영 감독의 칸 수상작 ‘첫여름’, 이환 감독의 ‘프로젝트 Y’, 말레이시아·홍콩 합작 ‘Pavane for an Infant’ 등은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선택과 생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새롭게 신설된 ‘Future Frames: AI’ 섹션은 영화와 기술의 융합을 탐구한다. 한국 최초의 AI 제작 장편영화 ‘런 투 더 웨스트’(강윤성 감독) 이 섹션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서울국제AI필름페스타, 제주국제AI필름페스티벌과의 공동 프로젝트 단편 컬렉션도 함께 공개된다. AI를 통한 창작 실험이 영화의 미래를 열어가는 새로운 세대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5년 런던아시아영화제를 만들어 유럽 전역에 아시아 영화와 문화를 소개해온 전혜정 LEAFF 집행위원장은 “지난 10년은 한국과 아시아가 영화를 통해 세계와 나눈 가장 아름다운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경계를 넘어 공감의 언어를 만들어 왔다”며 “이번 10주년은 그 시간들이 피워낸 신뢰와 예술적 연대의 결실이며, 앞으로도 LEAFF는 아시아 영화의 목소리가 세계와 만나는 진정한 문화의 장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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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폰으로 밤 하늘 별사진 찍어 보실래요?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이번 추석 연휴에는 줄기차게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날이 많았습니다. 가을장마, 아니 ‘추석 장마’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한가위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시간은 갖지 못했죠. 지난 여름에 동해바다에서 초저녁 별을 찍다가, 우연히 달이 뜨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적이 있습니다. 경북 울진 망양해수욕장에서 갤럭시 S25 휴대폰 ‘천체사진’ 모드로 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카시오페아가 보이고, 은하수가 흘러가고 있더군요. 여름의 밤하늘은 은하수가 있어서 더욱 화려합니다. 삼각대가 없어서 카메라를 모래사장에 박아놓고, 셔터를 열어놓고 4분을 기다리니 밤하늘 별이 많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너무 하늘의 별만 찍어서 여기가 동해바다인지, 설악산 정상인지 구분이 안가더군요. 그래서 바닷가 갯바위가 나오도록 좀더 아랫쪽으로 화각을 잡은 후에 별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화면에 모래사장도 있고, 바위도 잘나왔습니다. 그런데 바닷가 수면 위로 뭔가 붉은 빛이 찍혔네요! 오~! 바로 달이 떠오르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진에는 밤하늘 흰구름 사이로 은하수가 흘러가는 모습까지 찍혔습니다. 어선의 불빛과 달이 떠오르는 월출의 붉은빛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동해바다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던 바로 그 자리. 밤이 되면 달이 떠오른다는 평범한 진리! 왜 이걸 몰랐을까요! 바다에서 해뜨는 장면은 많이 봤어도, 수면 위로 달이 떠오르는 장면은 평생 처음 보네요.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번 추석에도 초저녁 별과 함께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르는 장면을 휴대폰으로 꼭 찍고 싶었는데…. 비구름이 많이 껴서 별도 달도 찍지 못했네요. ● 고흥 우주천문과학관여행에 가서 찍고 싶은 사진 중의 하나가 밤하늘의 별 사진입니다. 밤하늘 별사진은 전문가가 삼각대에 DSLR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진 요즘, 휴대폰으로도 간편하게 멋진 별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밤하늘 별을 제대로 찍으려면 인공적인 불빛이 없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산 속이나 바닷가 같은 곳이죠. 전남 고흥에 있는 우주천문과학관에서도 별사진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고흥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나로호 발사대가 있는 곳이죠. 그래서 우주, 천문과학 관련 시설이 많습니다. 또한 도심의 불빛도 상대적으로 적어서 별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는 천체망원경을 통해 달의 표면도 볼 수 있고, 목성과 토성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천체망원경도 좋지만, 제 휴대폰으로 야경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밤 하늘 별을 찍을 때는 반드시 그 지역이 어떤 곳인가를 알 수 있는 지형지물을 넣어서 찍어야 합니다. 그냥 밤하늘 별만 찍는다면,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매번 똑같은 사진만 얻게 되지요. 장소를 알 수 있는 산세나 나무, 건물 등을 살짝 걸쳐서 찍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고흥우주천문과학관이니 망원경과 천문과학관 건물을 배경으로 밤하늘 별을 찍어보았습니다. 아이폰은 카메라 앱에서 ‘야간 모드’를 활성화하고, 노출시간을 최대 30초로 설정해서 찍습니다. 화면을 길게 눌러 별에 초점을 맞추고, ISO는 100~400 정도로 낮게 유지하면 노이즈가 줄어듭니다. 삼각대에 아이폰을 고정하고, 리모트 셔터로 촬영하면 흔들림 없이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리모터 셔터가 없을 경우 타이머를 10초로 설정하면, 셔터를 누른 후 10초 뒤에 찍히기 때문에 흔들림이 줄어듭니다. 갤럭시 휴대폰도 ‘야간모드’가 있지만, ‘천체사진 모드’를 활용하면 더 좋은 별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갤럭시 휴대폰 카메라 앱에서 ‘더보기’로 들어간 다음에, ‘Expert Raw’를 선택하고, 약병 플라스크 모양의 아이콘을 누르면 ‘천체사진 모드(별자리 모양)’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천체사진 모드에서 화각을 ‘울트라 와이드(UW)’로 설정합니다. 광활한 밤하늘의 별을 더욱 더 많이 담기 위해서입니다. 촬영시간은 ‘짧게, 보통, 길게’가 있는데요. 셔터를 개방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깜깜한 밤하늘에서는 길게할 수록 더많은 별이 찍히겠죠. 도시 불빛이 있는 밤하늘에서는 셔터 개방을 길게 하면 화면이 타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비교적 짧게 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으로 찍어보았습니다. 셔터가 눌러진후 찍히기 시작하는 타임을 10초로 설정합니다. 셔터를 누를 때 휴대폰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하늘 별을 찍을 때 카메라는 1~4분 정도 셔터를 개방하면서 오래 찍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셔터를 누르면 흔들리던 카메라도 10초 후에는 정지하게 됩니다.또한 휴대폰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삼각대가 필수죠. 삼각대나 셀카봉은 다리를 최대한 짧게 해서 바람에도 안 흔들리게 해줍니다. 삼각대나 셀카봉이 없을 때는 나뭇가지나 의자, 돌멩이 등 자연지물을 이용해 카메라를 잘 세워둡니다. 다 찍고 난 후에는 보정을 약간해줘야 합니다. 사진 앱 보정에 들어가서 먼저 대비를 100으로 올려줍니다. 또한 선명도와 명료도도 100으로 올려줍니다. 이렇게 되면 깜깜했던 화면에서도 더 많은 별들이 나타납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던 흐릿한 별에서 오는 빛도 카메라가 잡아냈던 것입니다. ● 배경 속 지형지물 이용하기재작년 겨울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 보홀섬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딸과 아들. 온가족이 모두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보홀섬의 고투다이브(Go2dive) 리조트에서 저녁을 먹고나니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떠 있더군요. 해변에는 간조라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는데요. 낮에 손님을 실어나르던 필리핀 전통 어선인 방카(Bangka) 배가 모래사장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랜턴 불빛을 켠 필리핀 아저씨는 바닷가를 돌면서 해루질을 하고 있었죠. 별사진을 찍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이 ‘현재의 장소를 알려주는 특징적인 사물’을 사진 한 구석에 넣어줘야 한다는 점인데요. 밤하늘 별 사진만 보여주고, ‘여기가 보홀의 밤하늘’이라고 주장한다면 믿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야자수 나무를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바로 해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카 배였습니다. 방카 배에는 ‘Go2dive’라는 다이빙샵의 이름까지 써 있었으니 현장을 증명하는 좋은 사물인 셈입니다. 배를 피사체로 넣기 위해 해변으로 내려갔습니다. 물이 빠진 해변에는 배를 묶어놓는 쇠고리가 박혀 있는 납작한 콘트리트 돌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는데요. 돌덩어리 위 쇠고리에 휴대폰을 기대 놓고 밤하늘의 별을 촬영했습니다. 방카배가 화면의 아래쪽에 자리잡고 최대한 밤하늘의 별이 많이 보이는 각도를 설정해 세워두었습니다. 컴컴한 바닷가에서 별사진 한 컷을 촬영하는데 4분을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집니다. 어두운 곳에서 파도소리만 들으며 홀로 있기엔 무섭죠. 그래서 리조트 안에 있던 가족들을 촬영장소까지 불러냈습니다. 아내와 나, 딸과 아들이 물빠진 모래사장의 콘크리트 돌덩어리 위에 옹기종기 앉아서 4분을 기다렸습니다. 배가 제대로 안나와서 다시 4분을 기다렸습니다. 더 많은 별빛을 담기 위해 울트라 광역 촬영 모드로 놓고 또 4분을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30분 이상 가족끼리 어두운 바다에서 밤하늘 별자리 야경을 촬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죠. 별자리 사진 촬영은 동영상이 아니라 크게 떠들어도 상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까지 사진에 담길까 두려워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때도 한참 별사진을 찍다보니 동쪽 하늘에서 둥근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인 정월 대보름 즈음이었기 때문이죠. 대보름달은 구석이 약간 찌그러졌지만, 그래도 넉넉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못 본 보름달을 필리핀 보홀에서 보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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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서울역 준공 100주년 특별전

    옛 서울역 준공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한다. 1925년 경성역으로 준공된 옛 서울역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건축물이다. 전시에서는 옛 서울역의 100년을 상징하는 주요 사진·소장품·영상과 더불어 김수자, 신미경, 이수경 등 현대 예술작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옛 서울역사의 기억을 더듬는다. 관람객들은 그릴준비실에서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원본과 서울역에서 발견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약 50m 길이의 지하 플랫폼 복도도 2011년 이후 처음 공개됐다. 이 복도는 서울역의 100년 역사를 실질적으로 증명하는 곳으로, 복도는 고속철도(KTX) 서울역사와 이어져 있다. KTX 이용 승객은 연결 통로를 거쳐 역사 내에서 ‘문화역서울284’로 진입해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전시 관람객 또한 문화역서울284 내부에서 서울역으로 이동해 열차를 탈 수 있다. 문화역서울284는 옛 서울역사의 원형을 복원하여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30일 문을 연 이 전시는 11월 30일까지 문화역서울284 전관과 커넥트플레이스 서울역점 야외 공간에서 진행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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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깨진 유리조각에서도 아름다움을 봐, 상처는 내 일부야”[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2012년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았을 때 파리의 뒷골목을 걷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빠졌다. 2016년 영화 ‘라라랜드’가 개봉했을 때도 관광객들은 남녀 주인공이 탭댄스를 추던 할리우드 언덕에 오르고, 허모사 비치 해변 재즈바를 찾아갔다.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은 누적 시청 3억 뷰를 돌파한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을 본 세계인은 이제 ‘서울에 가 보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들고 있다.● Take Down! 뚝섬한강공원26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지하철 위에 푸른색 호랑이 ‘더피’가 올라가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테마존’이 개장했다. 세계 최초로 넷플릭스와 손잡고 문을 연 테마파크다. 케데헌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소다팝’과 ‘골든’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관람객들은 케데헌 세계관을 맘껏 즐겼다. 헌트릭스가 비행기에서 먹던 김밥과 라면 떡볶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청담대교를 건너는 지하철에서 악귀와 싸우며, 붉은 불꽃 피어 오르는 악령의 세계에서 사자보이즈 갓을 쓰고 포즈를 취했다.케데헌은 외국인의 서울 관광 패턴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은 경복궁 청계천 종로 홍대 같은 구도심과 젊은 상권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잠실주경기장과 롯데타워, 뚝섬한강공원과 청담대교, 경동시장, 낙산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등 케데헌에 나온 곳을 성지순례하듯 여행한다.14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뚝섬한강공원. 오후 8시 예정된 서울드론라이트쇼를 보러 낮부터 인파가 밀려들었다. 앞서 7일 케데헌 OST에 맞춰 드론 2000대가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 캐릭터로 밤하늘을 수놓은 이후 주말마다 장관을 이룬다.평일에도 많은 외국인이 뚝섬한강공원을 찾는다. 국내 유일 복층 교량인 청담대교는 케데헌에서 헌트릭스 3명이 지하철을 타고 악귀들과 싸우던 장소다. 관광객들은 청담대교 아래 한강 둔치 계단에 앉아 지하철이 위로 지나갈 때마다 휴대전화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었다.청담대교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는 ‘테이크다운(Take Down)’. 강렬한 박자에 카리스마 넘치는 가사가 압권이다. ‘이제 너희를 걷어차 밤으로돌려 보낼 시간이야’ ‘고통 속에서 산산이 조각낼 거야!’ ‘너희들은 울며 애원하겠지만 결국 다 쓰러질 거야!’그러나 헌트릭스 리더 루미는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악귀를 제거하는 헌터이면서 악귀 문양을 몸에 지닌 이중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악을 소멸시켜야 한다면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루미는 아팠다. 중요한 신곡 발표를 앞두고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헌트릭스 멤버들이 루미의 목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HAN의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인근 서울한방진흥센터는 HAN의원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조선 시대 백성을 구휼하고 진료한 보제원(普濟院) 터에 지은 한방진흥센터은 벽돌 콘크리트 건물이 목조 한옥을 이고 있는 모습인데 케데헌 속 HAN의원과 흡사하다.안경을 쓴 HAN의사는 루미에게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 법”이라며 “벽을 겹겹이 쌓았군요”라고 말한다. 루미가 목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속 비밀’ 때문에 벽을 쌓은 사실을 간파한 것. 김호산 서울한방진흥센터장은 “HAN의원 에피소드는 부분적 증상 보다는 몸의 균형이 깨져 병이 생기는 근본 원인을 찾고, 개인에 맞는 치료를 하는 한의학의 본질을 세계에 알렸다”고 말했다.이곳 한의약박물관에서는 조선 궁중 내의원 의관과 의녀 복장으로 갈아입고 한방 역사를 담은 전시를 볼 수 있다. 외국인에게는 약초를 넣은 족욕 체험이 가장 인기다. 한방 마사지, 한방 뷰티, 약선 음식, 한방 카페도 빼놓을 수 없다. 스트레이키즈와 트와이스 팬이라는 일본인 미하루 씨는 “간호학을 전공하는데, 케데헌을 보고 한의학에 관심이 생겨 찾아왔다”고 했다.● 낙산공원, 한양을 지키는 ‘황금 혼문’‘우리 노래 부르리라. 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케데헌 오프닝에서는 국악이 흐른다. 무속인 복장의 세 여성이 태극 문양을 연상케 하는 춤선을 선보이며 악귀를 무찌른다. 케데헌은 한국 문화와 동양철학에 현대인의 외로움까지 담아 어른도 사로잡는다. 세계 시청자 반응을 담은 유튜브 중에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해 눈물 짓는 사람이 많다. 도대체 케데헌을 보고 왜 성인들은 울까?그 해답을 찾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낙산공원까지 성곽 길을 걸었다. 흥인지문에서 한양도성으로 오르는 길, 솜털이 보송보송한 수크렁이 바람에 흔들린다. 성곽 길 이화마을의 전망 좋은 카페도 특수를 누린다. 프랑스에서 온 뱅상 씨(27·엔지니어)는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걷는 성곽 길은 다른 해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낙산공원은 케데헌 스토리의 중요한 변환점이기도 하다. 서울을 감싼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잇는 한양도성이 서울을 외적에게서 지키는 ‘혼문’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케데헌 속 낙산공원 성곽 길은 해 질 녘 어스름한 햇빛을 받아 첫 데이트에 나선 사자보이즈 리더 진우와 루미의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 낸다.루미는 ‘테이크다운’에서 사자보이즈로 분장한 악령에 대해 ‘추악한 껍데기에 갇힌 무너진 영혼’ ‘감정 없는 악마’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루미는 성곽 길을 걸으며 진우의 깊은 상처와 아픈 기억을 듣는다. 악령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남산에서 ‘테이크다운’을 부르다 루미는 수만 관중 앞에서 자신이 헌터이면서도 악마 문양을 가진 괴생명체라는 사실이 폭로된다. ‘산산이 부수어 버리겠다’는 노랫말의 화살이 거꾸로 자신에게 돌아왔다. 인생 절정의 무대에서 나락으로 떨어진다.루미는 마지막 노래 ‘What It Sounds Like’에서 ‘나는 수백만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뜻밖의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제는 깨진 유리조각에서도 아름다움을 봐. 상처는 내 일부야.’ 부서진 유리조각이 반짝반짝 빛나며 아름다울 때가 있다. 크리스털이나 다이아몬드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많은 상처를 품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는 과정 아닌가. 그는 ‘우리는 영웅은 아니지만, 아직 살아남은 자들이야’라고 노래한다. 두려움과 상처에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승리자다.한양도성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조선을 지켜 주지 못했듯, ‘황금(golden) 혼문’이 모든 악을 물리치고 평화로운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 불과했다. 희망은 혼문이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케데헌의 메시지다.● ‘통(通)’의 상징, 푸른 호랑이케데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까치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다. 호랑이는 조선 민화에서 신성시되면서도 친근하게 그려진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는 황호(黃虎)였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은 백호(白虎)였다. 더피는 푸른색 청호(靑虎)다. 청색은 방위로 따져 동쪽. ‘해뜨는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한류의 기세에 올라 탄 호랑이다.더피는 진우의 반려 동물. 진우와 루미를 오가며 ‘만날래?’ 같은 소식을 전한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선과 악,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두 세계를 통(通)하게 하는 메신저 같은 존재다.까치호랑이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이기도 하다. 토요일이던 20일, 개장 30분 전인 오전 9시반부터 중앙박물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문이 열리자 일부 관광객은 인기 ‘뮷즈(뮤지엄+굿즈)’를 사러 기념품 매장으로 뛰엇다. 올 상반기(1~6월) 중앙박물관 뮷즈 매출은 지난해보다 34% 증가해 역대 최대 115억 원에 이르렀다. 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 1~8월 관람객은 432만8979명. 지난해 같은 기간 243만9237명보다 무려 77.5% 늘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500만 명을 넘게 돼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 톱 5에 들 수 있다.미국 CNN 방송은 최근 미국 어린이 사이에서 케데헌을 50~100번 시쳥하는 현상을 보도했다. 처음엔 자녀가 보던 케데헌을 엄마아빠도 함께 보며 골든을 부르고 소다팝 춤을 춘다. 전문가들은 케데헌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20~30년 후 이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까지 문화적 지배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프랑스 서부 최대 일간지 ‘웨스트 프랑스’는 “한류는 파도나 물결을 넘어 세계를 뒤덮는 거대한 문화 쓰나미”라고 표현했다.●가 볼 만한 곳=서울 종로구 관철동 청계천 변 서울컬쳐라운지는 외국인 관광객이 다양한 한류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캘리그라피, K-뷰티, 민화, 자개공계, K팝 댄스, 민화-낙산공원 그리기 같은 프로그램이 요일마다 펼쳐진다. 서울관광재단 이수택 관광사업본부장은 “한국 문화를 즐기는 체험형 관광이 최신 트렌드”라며 “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고 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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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영웅은 아니지만,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야”[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2012년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았을 때 파리의 뒷골목을 걷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빠졌다. 2016년 영화 ‘라라랜드’가 개봉했을 때도 관광객들은 남녀 주인공이 탭댄스를 추던 할리우드 언덕에 오르고, 허모사 비치 해변 재즈바를 찾아갔다.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은 누적 시청 3억 뷰를 돌파한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을 본 세계인은 이제 ‘서울에 가 보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들고 있다.● Take Down! 뚝섬한강공원26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지하철 위에 푸른색 호랑이 ‘더피’가 올라가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테마존’이 개장했다. 세계 최초로 넷플릭스와 손잡고 문을 연 테마파크다. 케데헌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소다팝’과 ‘골든’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관람객들은 케데헌 세계관을 맘껏 즐겼다. 헌트릭스가 비행기에서 먹던 김밥과 라면 떡볶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청담대교를 건너는 지하철에서 악귀와 싸우며, 붉은 불꽃 피어 오르는 악령의 세계에서 사자보이즈 갓을 쓰고 포즈를 취했다. 케데헌은 외국인의 서울 관광 패턴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은 경복궁 청계천 종로 홍대 같은 구도심과 젊은 상권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잠실주경기장과 롯데타워, 뚝섬한강공원과 청담대교, 경동시장, 낙산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등 케데헌에 나온 곳을 성지순례하듯 여행한다.14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뚝섬한강공원. 오후 8시 예정된 서울드론라이트쇼를 보러 낮부터 인파가 밀려들었다. 앞서 7일 케데헌 OST에 맞춰 드론 2000대가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 캐릭터로 밤하늘을 수놓은 이후 주말마다 장관을 이룬다. 평일에도 많은 외국인이 뚝섬한강공원을 찾는다. 국내 유일 복층 교량인 청담대교는 케데헌에서 헌트릭스 3명이 지하철을 타고 악귀들과 싸우던 장소다. 관광객들은 청담대교 아래 한강 둔치 계단에 앉아 지하철이 위로 지나갈 때마다 휴대전화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었다. 청담대교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는 ‘테이크다운(Take Down)’. 강렬한 박자에 카리스마 넘치는 가사가 압권이다. ‘이제 너희를 걷어차 밤으로돌려 보낼 시간이야’ ‘고통 속에서 산산이 조각낼 거야!’ ‘너희들은 울며 애원하겠지만 결국 다 쓰러질 거야!’ 그러나 헌트릭스 리더 루미는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악귀를 제거하는 헌터이면서 악귀 문양을 몸에 지닌 이중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악을 소멸시켜야 한다면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루미는 아팠다. 중요한 신곡 발표를 앞두고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헌트릭스 멤버들이 루미의 목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HAN의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인근 서울한방진흥센터는 HAN의원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조선 시대 백성을 구휼하고 진료한 보제원(普濟院) 터에 지은 한방진흥센터은 벽돌 콘크리트 건물이 목조 한옥을 이고 있는 모습인데 케데헌 속 HAN의원과 흡사하다. 안경을 쓴 HAN의사는 루미에게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 법”이라며 “벽을 겹겹이 쌓았군요”라고 말한다. 루미가 목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속 비밀’ 때문에 벽을 쌓은 사실을 간파한 것. 김호산 서울한방진흥센터장은 “HAN의원 에피소드는 부분적 증상 보다는 몸의 균형이 깨져 병이 생기는 근본 원인을 찾고, 개인에 맞는 치료를 하는 한의학의 본질을 세계에 알렸다”고 말했다. 이곳 한의약박물관에서는 조선 궁중 내의원 의관과 의녀 복장으로 갈아입고 한방 역사를 담은 전시를 볼 수 있다. 외국인에게는 약초를 넣은 족욕 체험이 가장 인기다. 한방 마사지, 한방 뷰티, 약선 음식, 한방 카페도 빼놓을 수 없다. 스트레이키즈와 트와이스 팬이라는 일본인 미하루 씨는 “간호학을 전공하는데, 케데헌을 보고 한의학에 관심이 생겨 찾아왔다”고 했다.● 낙산공원, 한양을 지키는 ‘황금 혼문’‘우리 노래 부르리라. 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 케데헌 오프닝에서는 국악이 흐른다. 무속인 복장의 세 여성이 태극 문양을 연상케 하는 춤선을 선보이며 악귀를 무찌른다. 케데헌은 한국 문화와 동양철학에 현대인의 외로움까지 담아 어른도 사로잡는다. 세계 시청자 반응을 담은 유튜브 중에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해 눈물 짓는 사람이 많다. 도대체 케데헌을 보고 왜 성인들은 울까? 그 해답을 찾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낙산공원까지 성곽길을 걸었다. 흥인지문에서 한양도성으로 오르는 길, 솜털이 보송보송한 수크렁이 바람에 흔들린다. 성곽길 이화마을의 전망 좋은 카페도 특수를 누린다. 프랑스에서 온 뱅상 씨(27·엔지니어)는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걷는 성곽길은 다른 해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낙산공원은 케데헌 스토리의 중요한 변환점이기도 하다. 서울을 감싼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잇는 한양도성이 서울을 외적에게서 지키는 ‘혼문’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케데헌 속 낙산공원 성곽길은 해 질 녘 어스름한 햇빛을 받아 첫 데이트에 나선 사자보이즈 리더 진우와 루미의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 낸다. 루미는 ‘테이크다운’에서 사자보이즈로 분장한 악령에 대해 ‘추악한 껍데기에 갇힌 무너진 영혼’ ‘감정 없는 악마’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루미는 성곽길을 걸으며 진우의 깊은 상처와 아픈 기억을 듣는다. 악령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남산에서 ‘테이크다운’을 부르다 루미는 수만 관중 앞에서 자신이 헌터이면서도 악마 문양을 가진 괴생명체라는 사실이 폭로된다. ‘산산이 부수어 버리겠다’는 노랫말의 화살이 거꾸로 자신에게 돌아왔다. 인생 절정의 무대에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루미는 마지막 노래 ‘What It Sounds Like’에서 ‘나는 수백만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뜻밖의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제는 깨진 유리조각에서도 아름다움을 봐. 상처는 내 일부야.’ 부서진 유리조각이 반짝반짝 빛나며 아름다울 때가 있다. 크리스털이나 다이아몬드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많은 상처를 품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는 과정 아닌가. 그는 ‘우리는 영웅은 아니지만, 아직 살아남은 자들이야’라고 노래한다. 두려움과 상처에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승리자다. 한양도성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조선을 지켜 주지 못했듯, ‘황금(golden) 혼문’이 모든 악을 물리치고 평화로운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 불과했다. 희망은 혼문이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케데헌의 메시지다.● ‘통(通)’의 상징, 푸른 호랑이 케데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까치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다. 호랑이는 조선 민화에서 신성시되면서도 친근하게 그려진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는 황호(黃虎)였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은 백호(白虎)였다. 더피는 푸른색 청호(靑虎)다. 청색은 방위로 따져 동쪽. ‘해뜨는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한류의 기세에 올라 탄 호랑이다. 더피는 진우의 반려 동물. 진우와 루미를 오가며 ‘만날래?’ 같은 소식을 전한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선과 악,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두 세계를 통(通)하게 하는 메신저 같은 존재다. 까치호랑이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이기도 하다. 토요일이던 20일, 개장 30분 전인 오전 9시반부터 중앙박물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문이 열리자 일부 관광객은 인기 ‘뮷즈(뮤지엄+굿즈)’를 사러 기념품 매장으로 뛰엇다. 올 상반기(1∼6월) 중앙박물관 뮷즈 매출은 지난해보다 34% 증가해 역대 최대 115억 원에 이르렀다. 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 1∼8월 관람객은 432만8979명. 지난해 같은 기간 243만9237명보다 무려 77.5% 늘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500만 명을 넘게 돼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 톱 5에 들 수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최근 미국 어린이 사이에서 케데헌을 50∼100번 시쳥하는 현상을 보도했다. 처음엔 자녀가 보던 케데헌을 엄마아빠도 함께 보며 골든을 부르고 소다팝 춤을 춘다. 전문가들은 케데헌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20∼30년 후 이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까지 문화적 지배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프랑스 서부 최대 일간지 ‘웨스트 프랑스’는 “한류는 파도나 물결을 넘어 세계를 뒤덮는 거대한 문화 쓰나미”라고 표현했다.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가볼 만한 곳서울 종로구 관철동 청계천 변 서울컬쳐라운지는 외국인 관광객이 다양한 한류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캘리그라피, K-뷰티, 민화, 자개공계, K팝 댄스, 민화-낙산공원 그리기 같은 프로그램이 요일마다 펼쳐진다. 서울관광재단 이수택 관광사업본부장은 “한국 문화를 즐기는 체험형 관광이 최신 트렌드”라며 “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 202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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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밤, 영산강변에서 펼쳐지는 담빛파크콘서트

    전남 담양의 한복판에는 영산강의 물줄기인 담양천이 흐른다. 담양천 주위에는 강물이 넘치지 않도록 높이 쌓은 둑인 ‘관방제림(官防堤林)’이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관방제림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낸다. 200~350년 된 느티나무, 팽나무 등 노거수 총 43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관방제를 따라 1.2km 이어져 있는 숲에서 바라보는 영산강의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관방제림의 끝부분에는 담빛예술창고가 자리잡고 있다. 버려진 옛 쌀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복합문화시설. 미술전시도 열리고, 카페에서는 대나무 관으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도 연주되는 곳이다.그리고 담빛예술창고에서 관방제림 맞은편에 있는 담양천변에는 넓은 야외음악공원이 펼쳐진다. 이 곳에 있는 담빛음악당에서는 가을이 되면 별빛 아래에서 낭만적인 파크 콘서트가 열린다. 19(금)~20일(토) 이틀간 열리는 ‘2025 담빛 파크콘서트’다.올해로 2회째를 맞는 이번 콘서트는 자연·음악·체험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축제다. (재)담양군문화재단의 주최로 오후 3시부터 부대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저녁 무대에는 국내 최정상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19일 오후 6시부터는 작가 방경은 씨가 자신이 쓴 책 ‘생에 한 번은, 로컬’을 중심으로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로컬과 문화’를 주제로 담양의 공간과 사람, 이야기를 엮어낼 예정이다. 북콘서트가 끝난 뒤에는 ‘담빛버스킹데이’ 입상자인 현악밴드 모마드와 포크 듀오 마이배리앤드가 무대에 오른다.이어 밤 시간대에는 하이라이트인 ‘라벤타나’와 호란의 합동 공연이 펼쳐진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상을 수상한 라벤타나 특유의 세련된 탱고 선율에, ‘클래지콰이’ 출신 보컬리스트 호란의 감각적인 목소리가 어우러져 담양의 밤을 절정으로 끌고간다. 둘째날인 20일은 한국 블루스 음악을 대표하는 강허달림이 호소력 짙은 보컬로 무대를 연다. 이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 수상자인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서정적인 목소리로 가을밤의 여운을 느끼게 해줄 예정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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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관광청, 역대 최대 아시아 세일즈 미션 개최

    캐나다관광청이 8∼16일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아시아 지역 세일즈 미션 2025’를 열고 한국과 중국, 일본 등 3개국 여행업자 관계자들과 만나 상호 협력을 확대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아시아 지역 세일즈 미션은 9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9월 9∼10일 오사카, 11∼12일 서울, 15∼16일 중국 상하이까지 이어지는 일정으로 캐나다 지역 관광청과 호텔, 여행 업체 17곳이 참석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글로리아 로리 캐나다관광청 최고마케팅책임자는 “최근 한중일 여행시장에서 캐나다에 대한 열정이 높아지고 있고, 캐나다 각 지역의 파트너들도 아시아 지역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9월 9∼1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세일즈 미션에는 한중일 여행사 및 미디어 관계자들이 지역별로 12명씩 참가했다. 10일 오사카 엑스포 캐나다 파빌리온에서는 캐나다 여행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는 ‘캐나다 토크’가 진행됐다. 11일에는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 풀만호텔에서도 ‘캐나다 세일즈 미션 2025’가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계인 스탄 조 온타리오주 관광장관은 “오늘날 K컬처가 캐나다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앞으로 한국과 캐나다가 한류를 매개로 활발히 교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오사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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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관광청, 팬데믹 이후 최대 아시아 세일즈 미션 개최

    캐나다관광청이 8~16일 팬데믹 이후 최대규모의 ‘아시아 지역 세일즈 미션 2025’를 열고 한국과 중국, 일본 등 3개국 여행업자 관계자들과 만나 상호 협력을 확대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아시아 지역 세일즈 미션은 9월8일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9월9일~10일 오사카, 11일~12일 서울, 15일~16일 중국 상하이까지 이어지는 일정으로 캐나다 지역 관광청을 비롯해 호텔, 투어 업체 17곳이 참석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캐나다 지역 파트너사들과 3개국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각 국가에서 1대1 비즈니스 미팅을 가졌다. 글로리아 로리 캐나다관광청 최고 마케팅 책임자는 “최근 한‧중‧일 여행시장에서 캐나다에 대한 열정이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하는 가운데 캐나다 각 지역의 여러 파트너들이 아시아 지역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세일즈 미션을 통해 각 시장에 대한 상호 이해도를 높여 더욱 돈독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특히 9월9일~1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세일즈 미션에는 한·중·중일 여행사 및 미디어 관계자들이 지역별로 12명씩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캐나다 여행과 관광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오사카 엑스포에서 캐나다 파빌리온을 방문하기도 했다. 10일 오사카 엑스포 캐나다 파빌리온에서는 캐나다와 한국, 중국, 일본 각국의 영향력 있는 인물 4명이 참가하는 ‘캐나다 토크’가 진행됐다. 발표자들은 모두 캐나다 여행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문화를 존중하며,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여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손대지 않은 자연, 따뜻한 공동체 문화, 글로벌 협력, 그리고 자기 발견이라는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언급된 가운데 캐나다가 앞으로도 ‘마음을 움직이는 여행지’로서 세계 각국 여행자에게 깊은 감동을 전할 것이라는 데에도 공감대가 모였다. 오사카 엑스포에 설치된 캐나다 파빌리온은 ‘재생(Regeneration)’을 주제로 봄, 희망, 새로움, 돌파구, 그리고 따뜻한 환대의 정신을 담아 몬트리올 건축가들과 크리에이티브 팀이 설계했다. 특히 캐나다 파빌리온은 캐나다 전역을 가로지르는 빙하 위 여정을 증강현실로 구현하했다. 파빌리온 곳곳에 숨어 있는 CN 타워, 나이아가라 폭포, 로키 산맥, 오로라 등 캐나다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흥미로웠다. 11일에는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 풀만호텔에서 ‘캐나다 세일즈 미션 2025’이 열렸다. 이 행사에는 앨버타와 온타리오를 비롯해 캐나다 전역 10개 주의 관광청 관계자들이 참석해 한국 관광업계와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 관광업계가 준비한 5개 상품 가운데 3개를 현장 투표로 선정, 캐나다관광청 차원의 주력 상품으로 육성하는 특별 이벤트도 진행됐다. 또한 풀만호텔 신종철 총괄 셰프는 배우 김강우와 함께 앨버타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방문해 현지 식자재와 문화를 체험한 경험을 공유했다.행사에 참석한 한국계인 스탄 조 온타리오주 관광장관은 “오늘날 K-컬처가 캐나다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앞으로 한국과 캐나다가 한류를 매개로 활발히 교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이번 ‘아시아 지역 세일즈 미션 2025’는 에어캐나다가 후원했다. 에어캐나다는 얼라이언스 파트너십을 통해 186개국 1,200여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올해 한국에서 캐나다로 향하는 직항은 밴쿠버, 토론토, 캘거리, 몬트리올 등 네 도시로 확대 운항 중이다. 또 장거리 노선에 투입하는 항공기는 비즈니스클래스, 프리미엄이코노미클래스, 이코노미클래스까지 세 가지 타입의 좌석을 운영하며, 각 지역별 유명 셰프와 소믈리에와 협업한 기내식, 기내 와이파이, 4590시간 이상의 콘텐츠 등도 선보이고 있다. 캐나다관광청 한국사무소 이영숙 대표는 “팬데믹 이후 캐나다 파트너가 가장 많이 참여한 행사라는 점에서 한국 시장의 회복력과 성장 가능성이 확인됐다”며 “한국 업계가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테마 상품을 꾸준히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오사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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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곳에 서면 누구나 그림이 된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높은 산이 있으면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간다. 그러나 바다까지 지척에 있긴 어렵다. 경남 하동은 산과 강, 바다의 정취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게다가 산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요, 강은 ‘서정 1번지’인 섬진강이요, 바다는 점점이 흩뿌려진 수채화같은 섬들이 펼쳐지는 남해 한려수도니 말 다했다. ‘하동학개론’의 저자인 조문환 시인과 함께 박경리 ‘토지’의 주무대인 평사리를 여행했다. ● 악양 들판을 달리다“무덤의 팻말을 향해 앞뒤 걸음을 하는 눈물감춘 희극배우, 웃음참는 비극배우의 일상.” 학창시절 박경리의 대하장편소설 ‘토지(土地)’를 읽다가 노트에 적어놓았던 구절이다. 인생을 어떻게 이렇게 짤막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리를 툭치는 기분이었다. 삶이란 슬픈 데도 미소지어야 하고, 웃긴데도 눈물 흘려야 하는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 그러나 그런 모든 노력도 결국은 무덤의 팻말을 향해 앞뒤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니….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이 있다. 박경리 ‘토지’의 배경이 바로 평사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참판이라는 인물이 살았던 곳은 아니지만,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으로 재현해놓은 마을이다. ‘토지’는 최참판 댁의 최서희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 시대, 이 땅을 딛고 살아간 수많은 민초들이 주인공인 작품. 서희와 길상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시작된 최참판댁은 한옥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길상이가 살던 초가집 마당에는 악양의 특산품인 대봉감이 익어가고 있다. 박경리의 고향은 통영이고, ‘토지’를 집필한 곳은 원주다. 그런데 하동에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하동 평사리를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이곳을 찾았을 때 눈앞의 들녘이 자신이 상상하고 묘사한 소설 속 모습과 매우 흡사해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최참판댁 한옥호텔에서 묵으면서 ‘하동학개론’의 저자이자 전 악양면장이었던 조문환 시인을 만났다. 밤하늘 총총한 별빛 아래에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하동에서 꼭 한번 가봐야할 곳은 어디냐고. 그는 섬진강 백사장을 가보라고 권했다. 박경리 선쟁이 ‘토지’ 3부에서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백사(白沙)는 또 얼마나 정결한가”라고 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다음날 아침. 최참판댁 한옥호텔을 나서니 새벽에 비가 왔는지 지리산 자락의 구름이 안개처럼 마을을 덮고 있다. 동네를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섬진강까지 뛰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서희와 길상이’ 카페를 지나 마을 입구를 벗어나니 곧바로 평사리 들판이었다. 들판 한가운데 부부처럼 늙어가고 있는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다. 조문환 시인이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캔버스의 그림이 되는 곳”이라 바로 평사리 들판이다.“그곳에 서면 누구나 그림이 되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농로를 달리거나, 출렁거리는 청보리밭에 서서 물끄러미 바람을 잡으려 하거나, 제방에 앉아 평사리 들판과 형제봉을 응시하거나, 트랙터를 몰고 논을 장만하거나, 그 뒤에 수백마리의 학이 날아가거나, 괭이나 삽을 어깨에 메고 물고를 보러 가거나, 모내기하다가 막걸리를 한잔 하거나, 가을 황금들판에 콤바인이 길을 만들거나 그가 누구이든 무엇을 하든…. 모든 이곳에서의 인간의 동작은 그림이 된다.” (조문환 ‘하동학개론’) 평사리 들판은 산봉우리가 둥그렇게 말발굽 형상으로 둘러싸고 있다.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인 분지형태다. 그러나 웅장한 양구 펀치볼과 달리 하동 평사리는 아늑한 분위기다. 조문환 시인은 평사리 들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동작이 그림이 되는 이유에 대해 “이 산과 저 산 사이의 ‘이상적 거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평사리 들판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의 거리는 약 2km.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상적 거리’ 때문에 악양의 들판은 이상향(理想鄕)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악양의 들판을 달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쪽 봉우리 마을에서 들판을 건너 저쪽 봉우리 마을까지 약 2km. 느릿느릿 걸으면 20∼30분이고, 뛰면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들판을 달려가는 나도 분명 그림이 되고 있으리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끝에 뚝방을 만난다. 제방 도로 너머가 바로 섬진강이다. 대나무가 우거진 숲 속길을 달리다보니 드디어 섬진강 백사장이 나타났다. 사하라 사막처럼 광막한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이런 백사장이 강변에 있을 일인가.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넘어서 섬진강에 손을 담가 물을 만져보았다. 섬진강은 전북 임실에서 시작해 구례 오산과 노고단을 휘감아 돌고 방향을 바꾸면서 600리를 달려온 끝에 하동에서 남해바다와 만나기 전, 너른 백사장을 만들어낸다. 바로 평사리 백사장이다. 이 곳에는 11월이 되면 시베리아에 살던 독수리들이 날아든다. 비슷한 시기에 백사장 섬진강물에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그물망이 쳐진다. 북태평양 연어들의 회귀량을 조사하는 시설물이다. 춘삼월이 돌아오면 북태평양으로 연어는 새로이 떠나고 독수리들도 시베리아 벌판으로 돌아간다. 조문환 시인은 “연어처럼, 독수리처럼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 내 마음이 셔틀 운행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준다면 난세를 이겨내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묻는다. “연어와 독수리들처럼, 그대에게도 평사리 백사장 하나쯤은 있는가?”라고. ● 재첩의 고향“언어 있어요?” “예, 튀김도 있고, 구이도 있어요.” 하동 화개장터 인근에 있는 설송식당을 찾았을 때 손님과 주인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언어란 어떤 물고기일까. 연어인가? 알고 봤더니 ‘은어’의 사투리 발음이었다. 설송식당 주인은 직접 섬진강에 고무옷을 입고 들어가 걸갱이 낚시로 은어를 잡는다. 은어가 갈 길을 미리 파악한 뒤 은어의 등에 낚싯바늘을 걸어서 잡는 방식이다. 가게 벽에는 주인장이 오래 써왔던 걸갱이 낚시가 상패처럼 걸려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은어튀김에 화개장터 막걸리를 한잔하고, 뽀얀국물의 재첩국으로 밥을 먹는다. 하동에서는 재첩을 ‘갱조개’라고 부른다. ‘강조개(강에 사는 조개)’의 사투리 버전이다. 섬진강 모래바닥에서 바닷물과 민물이 몸을 섞으며 품어낸 재첩의 싱싱한 맛이 국물에서 느껴졌다. 전북 진안에서 임실, 순창, 곡성, 구례를 지나면서 수많은 협곡 6백리를 달려온 섬진강은 마침내 하동에서 바다와 만난다.하동송림 앞 강변은 재첩의 주산지다. 곧 바다와 만나게 될 섬진강변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거북이 등처럼 쫙쫙 갈라진 껍질을 가진 소나무는 한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낸다. 하동송림에서는 부드러운 모래길을 맨발로 걸어야 한다. 기왕 신을 벗었으니 백사장까지 걸어본다. 강변에는 체로 모래를 걸러 재첩을 잡는 어부가 있었다. 조문환 시인은 “숫물(섬진강)과 암물(바닷물)이 적절한 비율로 만나 서로 사랑을 하는 지점에서 최고의 우량 재첩이 탄생되는 데 하저구부터 하동 송림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하류로 더 내려가면 금오산(849m)이 나온다. 지리산이 동남쪽으로 뻗은 줄기로, 섬진강 망덕포구로 빠져들기 직전 우뚝 솟은 둘레 약 30km의 웅장한 산이다. 바닷가에 있는 산 치고는 제법 높다. 등산도 할 수 있지만 하동 플라이웨이 케이블카를 탑승하면 다도해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악양의 밤하늘을 별이 수놓았던 것처럼 남해 한려수도의 섬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인다. 사천만과 비토섬, 하동화력발전소, 광양만, 여수까지 남해안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동 바로 앞에는 남해도가 있다. 하동과 남해는 고작 480m에 불과한 노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그 위를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지나간다. 이 해협이 바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격전지였던 노량해전 전장터였다. 하동은 차의 본향(本鄕)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에 서기 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 공이 차 씨를 가져와 쌍계사 인근 대나무 밭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어 국내 차의 시배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에 있는 ‘한밭제다’는 차의 정원이다. 산세를 따라 심어진 둥글둥글한 차밭을 거닐며 오두막과 정자에서 쉬면서 평화로운 차밭을 즐길 수 있다. 차밭 바로 앞에는 다원이 있다. 하동의 녹차인 ‘잭살’(작설의 방언)과 잭살 홍차를 주인장의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시음할 수 있다. 봄에는 찻잎을 따는 체험도 한다. 돌아오는 길에 ‘하동학개론’ 조문환 시인에게 받은 명함을 지갑에 넣다가 뒷면에 글귀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행은 타인이 된 나를 연인으로 맞아들이는 일이다.’ 일상에서 나는 점점 스스로에게 잊혀져가는 존재. 여행은 나를 일깨우고 사랑하게 만드는 데이트의 시간임이 분명했다.글·사진 하동=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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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 음악이 듕귁에 달아’… 세계로 나아가는 박연의 꿈[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세종대왕은 중국과 다른 우리말을 한자로 기록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그래서 한글을 창제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나라 음악이 중국과 달랐던’ 것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는 세계에서 각광받는 K팝의 뿌리가 고대 무속에서 시작된 한국 음악과 춤에 있음을 알렸다. 다음 달 12일부터 한 달 간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2025 영동 세계국악엑스포’가 열리는 충북 영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 난계 박연이 사랑한 옥계폭포영동을 찾으면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봉우리와 폭포, 정자와 시냇물이 흐르는 정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진다. 특히 월류봉과 옥계폭포는 수묵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풍경이다. 영동 한천팔경(寒泉八景)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월류봉 아래로는 물 맑은 초강천(草江川)이 휘감아 흐르고 있다. 달이 떠오르는 밤에 물에 비친 달빛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른 새벽 초강천에 피어나는 물안개가 월류봉 주변을 감싸는 모습도 신비롭다.영동 심천면 월이산 깊은 골짜기 천손고개를 넘으면 옥계폭포가 나온다. 절벽 사이 20여 미터 높이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소리는 가슴을 뻥 뚫어준다. 옥계폭포 위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연못인 예저수가 있다. 오색 물보라를 일으키는 옥계폭포의 다른 이름은 박연폭포다. 고려 말 우왕 때 태어나 조선 세종 때 왕을 도와 궁중음악을 정비한 천재 음악가 난계 박연(1378∼1458). 그는 어릴 적부터 옥계폭포에서 풀피리를 즐겨 연주했다. 그는 폭포 옆 절벽 바위틈에서 피어난 난초에 매료돼 자신의 호를 난초 난(蘭), 시냇물 계(溪)를 써 난계라고 했다. 박연은 고구려 왕산악, 신라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으로 꼽히는 인물. 박연의 피리 소리에는 신묘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시묘(侍墓)를 살 때 피리를 불자 호랑이가 그를 잡아먹지 않고 지켜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다. 세종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의식인 종묘제례를 하면서 중국에서 수입한 ‘당악(唐樂)’이나 ‘아악(雅樂)’을 연주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음악인 ‘향악(鄕樂)’이 있는데도 중국 음악을 따르는 건 국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세종은 영동 출신 박연을 불렀다. 박연은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교리까지 역임한 사대부였지만,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인물임을 세종은 알아보았다. “조선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는 우리 음악을 듣고, 죽은 뒤 장례나 제사를 지낼 때 중국 음악을 듣게 되니 이 어인 일이냐.” 박연은 “우리 악기로 우리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기준음을 찾을 수 있는 율관(律管)을 만들어 소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요즘에도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할 때 먼저 율관에 맞춰 조율하는 것처럼, 음에 대한 기준점이 명확해야 했다. 박연은 직접 대나무를 깎아 12율관을 만들었다. 율관은 음높이를 정하기 위해 지름은 같고 길이를 달리해서 제작됐다. 12율관이 구비돼야 음정에 맞춰 편경(編磬)이나 편종(編鐘) 같은 악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 12율관은 6개의 양율(陽律), 6개의 음려(陰呂)가 있다. ‘악학궤범’에서는 12율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12월, 별자리, 지지(地支), 절기 등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율관은 도량형의 기본까지 아우르는 왕권의 상징이 됐다. 옥계폭포에서 차로 7분 거리에 영동국악체험촌, 난계국악박물관, 난계국악기제작촌, 난계사 등이 있다. 국악체험촌에는 300석 규모 공연장을 갖춘 우리소리관, 숙박하며 자연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국악누리관이 있다. 난계국악박물관에는 박연이 만든 율관과 편경이 전시돼 있다. 조선은 그동안 중국에서 보내온 편경을 썼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매달린 옥돌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음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우리 기준음에 맞춘 편경을 새로 만들 옥돌이 필요했다. 때마침 경기 남양에서 옥의 일종인 경석(磬石)이 발견되고, 충북 청주 초수리(현 초정리)에서도 옥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세종은 기뻐했다. 장신구를 만드는 보석이 아니라, 우리 음악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소리 나는 돌’이었기 때문이다. 편경을 만드는 옥돌은 추위나 더위, 건조함이나 습함의 영향을 잘 받지 않아 음의 기준으로 삼기에 좋았다. 박연은 직접 만든 편경을 세종 앞에서 수차례 시연했다. 그런데 세종은 절대음감을 갖고 있었다. ‘임금이 이칙(夷則·12율의 하나) 1매(枚)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고 물으니 연(박연)이 즉시 살펴보고 아뢰기를, ‘가늠한 먹이 아직 남아 있으니 다 갈지 아니한 것입니다’하고 물러가서 이를 갈아 먹이 다 없어지자 소리가 곧 바르게 되었다’(세종실록 15년 1월1일) 세종과 박연은 초수리 옥으로 만든 편경 소리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박연은 10년 동안 세종에게 39번이나 상소를 올린 끝에 ‘조선의 기준음’을 가진 율관과 악기를 만들고 수많은 악보를 정리하는 대업을 완성했다.●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 ‘정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데, 온 나라 백성이 크게 모여서 며칠을 두고 마시고 먹으며 춤추며 노래를 불렀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길목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으며, 늙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노래를 불러 그 소리가 날마다 그치지 않았다.’ ‘후한서(後漢書)’에는 고대 국가 부여에서 해마다 음력 12월에 행하던 제천 행사 ‘영고(迎鼓)’를 이렇게 설명한다. K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에서 각광받는 K팝 스타들의 뿌리를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전통에서 찾은 것은 흥미롭다. 인구 약 4만의 소도시 영동에서는 다음 달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가 열린다. 국악을 테마로 한 최초의 엑스포다. 세계 30개국 공연단이 참가해 퍼레이드를 펼치고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공연과 체험, 전시가 이어진다. 국악엑스포 주 행사장은 영동 레인보우힐링관광지(과일나라테마공원, 레인보우힐링센터, 영동와인터)다. 한국관광공사 ‘강소형 잠재 관광지’로 선정된 영동의 특산품을 활용한 체험형 복합 치유 공간이다. 강소형 잠재 관광지는 한국관광공사가 지역 유망 관광지를 선정해서 지방자치단체와 힘을 합쳐 인기 관광지로 성장시키는 사업이다. 레인보우힐링센터는 영동의 빛 물 바람 돌을 테마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린이 힐링뮤지엄, 릴렉스 룸, 명상의 연못, 힐링 풋 스파, 힐링 숲 정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영동에서 나는 점토 광물 일라이트(illite)를 활용한 족욕과 온열 베드 체험도 해 볼 수 있다.포도가 유명한 영동은 와인을 생산하는 농가가 많다. 길이 420m 영동와인터널는 와인 시음장, 전시장, 레스토랑, 문화공연장이 갖춰져 있다. 서울역에서 영동으로 떠나는 무궁화호 열차를 개조한 ‘영동 국악와인열차’도 운행된다. 와이너리인 ‘샤토마니 와인 코리아(Chateau Mani Wine Korea)’에서는 와인을 곁들인 오리구이와 와인 족욕을 즐길 수 있다. 국악엑스포 기간에는 영동포도축제와 대한민국와인축제도 열린다.국악엑스포의 또 다른 무대는 박연의 묘소와 사당이 있는 영동국악체험촌이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국악체험교실에서는 해금 장구 북 꽹과리 가야금 등을 배워 볼 수 있다. 기자도 가야금을 배운 지 30분 만에 아리랑을 연주할 수 있었다. 물론 농현(弄絃·왼손으로 줄을 눌러 높낮이가 다른 음을 번갈아 내는 주법) 같은 고난도 기술은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쉽게 줄을 튕겨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영동국악체험촌 천고각(天鼓閣)에서는 지름 5.5m, 무게 7t인 세계 최대 북을 쳐 볼 수 있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천고를 두드리면 웅장한 소리가 하늘에 닿아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라고 빈 후 천고를 두드렸다. 너무 세게 쳤더니 ‘쿵’ 하고 울릴 뿐 잔향이 별로 없다. 적당한 힘으로 다시 한 번 ‘둥!’ 치니 천고 소리가 온몸을 전율시키며 울려 퍼졌다.글·사진 영동=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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