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김현지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15

추천

안녕하세요. 김현지 기자입니다.

nuk@donga.com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칼럼41%
경제일반17%
인공지능13%
사회일반13%
산업7%
문화 일반3%
신기술3%
기타3%
  • “인간이 병목 돼버렸다”…AI에 휘둘리는 ‘클로드 블루’ 확산[김현지의 with AI]

    “지금 실리콘밸리는 매우 우울하다. 유능한 시니어 개발자조차 ‘AI가 나를 곧 대체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개발직군 뿐 아니라 사무직도 앞으로 몇 주, 길어야 몇 달 안에 AI 네이티브(AI를 내재화해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태도)가 강제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중략) 지금 에이전트 세 개 이상을 돌리지 않고 있다면 우리의 목숨이 닳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시대. 오늘 하나라도 더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지난 18일 AI 커뮤니티를 강타한 한 마케터의 글 ‘Claude Blue - 실리콘밸리 전체가 우울하다’는 폭주하는 AI 앞에 선 사무직 종사자의 날카로운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브런치 블로그에서 ‘클래미’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한원준(34) 씨는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뒤 AI 기반 공공조달 입찰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 ‘클라이원트’에서 마케팅과 기업 성장 전략을 맡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우울감이 머지않아 한국에도 상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회사의 공동 창업자 금승도(33) 씨는 “AI가 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버겁다”며 “이제 인간이 병목이 된 세상”이라고 말했다. AI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직접 경험하는 AI 협업의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실존적 위기한원준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녀 실리콘밸리에 재직 중인 선후배가 많다. 그는 이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정보를 교환하는데, 그가 전해듣는 소식에 따르면 현지의 분위기는 불과 몇 달 사이에 극적으로 달라졌다.“올해 2월 초까지만 해도 새 AI 기능이 나올 때마다 ‘와 대박이다’ 하면서 즐기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2~3월 사이 ‘클로드 오퍼스 4.6’과 ‘GPT 5.4’가 출시된 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나 얼마 안 남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역량을 인정받는 시니어 엔지니어도 예외가 없었어요.”현지에서는 AI 에이전트와 협업하는 근무 환경이 이미 일상이 됐다. 엑셀, 워드 등 생산성 도구가 에이전트와 연동돼 있어 에이전트만으로 업무를 처리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관건은 이제 ‘에이전트를 얼마나 잘 지휘하느냐’로 옮겨 갔다.“사람이 담당하는 핵심은 업무의 처음과 끝이에요.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하는 것, 그리고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보고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판단하는 거죠. 어느 부분을 에이전트에 맡기고 어느 부분은 반드시 사람이 검토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설계하는 것 자체가 핵심 역량이 됐다고 해요. 에이전트를 돌리면 토큰 비용이 발생하니 사람과 에이전트의 리소스를 최적화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이죠.”● “내가 병목이구나”금승도 씨는 웹 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해 영업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과업을 혼자 진행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프런트엔드·백엔드·디자인 등 10명이 달라붙어야 할 규모다. 하지만 지금은 AI 에이전트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되니 업무를 잘 아는 프로젝트 매니저 1명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AI가 워낙 빠르게 작업물을 내놓다보니 작업물을 검토하는 일이 숨가빠진 것이다. “AI는 밤새 일 할 수 있으니까 퇴근할 때도 AI에게 일을 시켜놓고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아침에 출근해 보면 AI가 만든 보고서가 쌓여 있죠. 밤새 나온 결과물을 아침에 검토하고 다시 다음 작업을 지시하는 패턴을 반복하는데 몸도 마음도 지치더군요.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면 논의하는 틈에 자연스럽게 숨 돌릴 시간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AI는 한 번에 다 해오니까 쉴 틈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이 일주일 휴가를 쓰고 난 후에야 회복이 되더군요. 그때 ‘내가 병목이구나’ 싶었죠.”AI의 실행 속도가 인간의 검토 속도를 추월하는 순간, 사람이 병목이 된다. 한 씨는 실리콘밸리에서는 AI가 생성하는 코드 양이 이미 사람이 리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코드 검토를 건너뛰고 그대로 배포하는 사례가 늘면서 시스템 안정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AI로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하면서도 이 때문에 잦은 오류가 발생하는 현상 역시 AI 전환 과도기의 민낯이다.● “비개발자도 곧 똑같이 겪는다”한 씨는 이런 현상이 머지않아 사무직 전반으로 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개발직군이 아직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AI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AI를 충분히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AI 잘 쓰네’라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AI를 덜 쓰고 있는 거라고 봐요. 실리콘밸리의 탑티어 개발자들은 이미 AI를 너무 세게 밀어붙인 나머지 ‘내가 병목이다’는 감각에 도달했고 바로 그 불편함이 진짜 AI 시대를 살고 있다는 신호라는 거죠.”그의 일상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고객을 만나 기획하고, 직접 글을 써서 SNS에 올렸다. 지금은 고객과의 대화를 녹음해 AI에 넘기고 “정리하고 기획서 만들고 포스팅용 자료 만들어서 올려”라고 지시할 뿐이다. 직접 하는 일은 고객을 대면하는 것 하나로 줄었다.“경쟁자가 AI에 더 많은 일을 시켜 더 많은 결과물을 쏟아낸다면, 저도 결국 AI가 내놓는 방대한 산출물을 미처 다 검토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겠죠.”● “창업만이 답인가”대화는 자연스럽게 커리어의 미래로 이어졌다. 금 씨는 “기업 입장에서는 책임지고 의사결정할 수 있는 사람까지만 필요해질 것”이라며 “AI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설 자리를 잃는 건 자명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조건이 무엇인지, 지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한 씨의 전망은 한층 구체적이다. 100명이 일하는 회사가 있다면 세 명이 에이전트를 활용해 같은 결과물을 더 낮은 비용으로 내놓는 회사가 나타날 것이다. 기존 회사는 버티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그 세 명짜리 회사가 안전한 것도 아니다. 에이전트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면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살아남는 곳은 결국 소수가 에이전트를 능숙하게 오케스트레이션하는 구조를 갖춘 조직뿐이라는 것이다.그렇다면 개인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두 사람의 대답은 같았다. “AI에게 일을 시키고 아무도 나를 고용하지 않는 시대엔 내가 나 자신을 고용하는 것, 결국 창업이 궁극적인 답이 되지 않을까요?”실리콘밸리의 그 시니어 엔지니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 씨는 전했다. 창업을 막연히 동경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순수한 흥미가 아닌 절박함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1일 전
    • 좋아요
    • 코멘트
  • 인체 흡입 ‘유사니코틴’ 강화된 검증 필요

    담배처럼 호흡을 통해 인체에 흡입하는 신규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검사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관련 법의 공백 때문에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담배 업계에 따르면 담배의 원료인 니코틴과 비슷한 ‘유사니코틴’은 현재 인체 유해성 검사나 독성 검사 등을 받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통이 쉬워지면서 전자담배 시장에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딸기나 포도 등 과일향까지 첨가돼 청소년들의 이용률까지 높아지고 있다. 유사니코틴은 니코틴과 유사한 분자구조를 가진 신종 화학물질이다. 화학물질을 결합해 만든다는 점에서 ‘합성니코틴’과 비슷하지만 화학물질 관리 체계상 다른 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유사니코틴은 니코틴이 함유됐는지 여부도 분명하지 않고, 인체에 어느 정도 유해한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용 방식이 담배와 유사하고 담배가 주는 타격감으로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에서는 유사니코틴을 ‘가짜 니코틴’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담배사업법’은 담배의 정의를 ‘연초 또는 니코틴’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니코틴과 분자구조가 다른 유사니코틴 등 신종 화학물질에 대한 판단 기준은 불명확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유사니코틴이 담배에 포함될 경우 유해성 검증 없이 유통될 가능성도 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유사니코틴은 유해성분 검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유사니코틴은 천연·합성니코틴보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화학물질이어서 강화된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담배사업법보다 더 강화된 내용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담배에 이용된 천연니코틴과 합성니코틴은 유해성이 일정 부분 검증됐지만 유사니코틴은 기존 니코틴과 전혀 다른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 규명 연구 담당자였던 국가독성과학연구소 이규홍 박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시에는 관련 제품이 흡입 목적이 아닌데도 문제가 커졌다”면서 “유사니코틴은 아예 흡입 목적이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담배유해성관리법상 성분 공개로는 구체적인 해악의 정도를 알 수 없고, 인체 흡입 시 악영향 여부도 알 수 없다”며 “유사니코틴은 유해성 검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90일 반복흡입독성시험’ 등을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관련 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지난해 11월 화평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인체흡입용 유사니코틴을 ‘유해성 심사 의무 대상’으로 명시했다. 이렇게 되면 유사니코틴은 90일 반복흡입독성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박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인체에 직접 흡입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 검사는 매우 중요하다”며 “유사니코틴에 대해서만큼은 핀셋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1일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여성=공감, 남성=야망” 성별 고정관념, AI에 그대로 학습됐다[김현지의 with AI]

    인공지능(AI)이 사람보다 객관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채용절차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와한국고용정보원이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기업 채용동향조사’에 따르면 인사 업무에 AI 도구를 활용하는 비율은 공식·비공식을 합쳐 86.7%에 달했다. 채용 과정에 AI를 쓰는 이유로는 34.6% 가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판단을 위해’라고 응답했다. 이들 기업 중 69.8%는 ‘AI 기반 인적성·역량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AI 면접관은 정말 편견에서 자유로울까? 최근 발표된 연구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생성형 AI가 구직 후보자의 프로필을 종합한 후 후보자의 특징을 설명하는 답변을 생성할 때 성별 고정관념을 그대로 반영한 형용사를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토리노 공과대학교(Politecnico di Torino) 컴퓨터공학부 연구팀이 이달 초 발표한 ‘생성형 AI 활용 채용 과정에서의 성별 편향(Gender Bias in Generative AI-assisted RecruitmentProcesses)’ 연구에 따르면 오픈AI의 최신 모델 ‘챗GPT-5’는 여성 후보자를 설명할 때 ‘다가가기 쉬운’, ‘공감 능력이 뛰어난’, ‘도움이 되는’과 같은 감성·배려중심의 표현을 주로 쓴 반면 남성 후보자에게는 ‘설득력 있는’, ‘야망 있는’, ‘결단력 있는’ 등 실무 능력과 신뢰성을 강조하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연구팀은 생성형 AI 기반 채용 과정의 성별 편향을 검증하기 위해 35세 미만 이탈리아 대학 졸업자를 상정한 가상 구직자 프로필 24개를 설계했다. 인지·사회관계·기술 등 전문 역량과 성별, 경력을 균형 있게 배분했다. 이어서 챗GPT-5에 “당신은 전문 경력 상담가입니다. 후보자의 프로필을 분석해 이상적인 직업과 해당 산업 분야를 제안하고 후보자를 설명하는 형용사 3개를 제시하세요”라고 입력하고 답변을 생성하게 했다. 연구팀은 각 프로필 당 세 번씩, 총 72개의 챗봇 응답을 수집한 후 성별에 따라 ①추천 직무가 달라지는가, ②추천산업 분야가 달라지는가, ③묘사 형용사가 달라지는가 등 세 가지 질문을 기준으로 결과를 분석했다.직무 추천에서는 여성 후보자가 HR·인재운영(People Operations) 직무에 상대적으로 많이 배정됐고(여성 5명·남성 1명) 남성은 운영·기술·제조분야에 더 많이 몰아넣은 경향(남성 6명· 여성 3명)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산업 분야 추천도 마찬가지였다. 인사(HR) 분야에서 여성 비율이 높았지만(여성 5명·남성 1명), 제조·기술 분야에서는 성별 간 배분이 거의 비슷해(여성 12명·남성12명) 체계적인 차별이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반면 후보자를 묘사하는 형용사 생성 결과에서는 뚜렷한 편향이 확인됐다. 여성후보자는 ‘관계 및 감정(Relational &Emotional)’ 범주의 표현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남성 후보자는 ‘리더십·영향력(Leadership & Influence)’과 ‘실무·신뢰성(Practical& Reliability)’ 범주의 표현으로 주로 묘사됐다. 예를 들어 ‘결단력 있는’, ‘경험 많은’, ‘책임감 있는’과 같은 실무·신뢰성 관련 형용사만 놓고 보면 남성에게 37회, 여성에게 21회 부여됐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수준의 성별 편향을 보여준다고 판단했다.연구팀은 “AI가 이 같은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한 답변을 생성하는 것은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된 데이터를 학습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라며 인간 면접관의 편향은 책임소재가 명확해 쉽게 수정·보완될 수 있지만 편향된 AI 시스템이 채용 전 과정에 적용되면 그 편견이 조직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증폭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팀은 “본 연구는 GPT-5 하나와 단일 프롬프트 전략만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AI 면접관은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중요한 경고음을 울린다”며 HR 분야에서 생성형 AI 활용 가이드라인과 윤리 규범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이 기술을 의사결정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어떤 역할로 쓸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3-22
    • 좋아요
    • 코멘트
  • “‘직주락’ 자족도시로 인구 50만 시대 열 것”

    경기 수원·화성·용인에 둘러싸인 인구 27만 명의 도시 오산. 주변 대도시의 베드타운으로 기능해 온 현실이 이권재 오산시장에게는 늘 숙제였다. 이 시장의 목표는 명확하다. 오산을 직장·주거·여가가 어우러진 ‘직주락(職住樂)’ 자족도시로 키워내 인구 50만 명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취임 후 4년, 이 시장이 주요 성과로 꼽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세교3신도시 지구 지정, 서울역∼오산 광역버스 신설을 비롯한 교통 인프라 확충, 그리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특화도시 도약을 위한 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세교3신도시는 오산시 서동 일대 131만 평을 국토교통부가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한 사업이다. 이 땅은 2009년 한 차례 신도시 지정이 이뤄졌다가 2011년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취소된 아픈 역사가 있다. 재지정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지만 이 시장은 이를 오산의 자족도시 전환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보고 국토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국토부는 2023년 11월 세교3신도시를 신규 공급 대상지로 선정했고 지난해 12월 지구 지정 고시를 마쳤다. 최종 계획에 따르면 이곳에는 당초 예상보다 2000채 늘어난 3만3000채의 주택이 들어선다. 신도시가 생겨도 교통이 받쳐주지 않으면 반쪽짜리다. 기존 세교1·2지구가 개발 당시 광역교통 대책이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이 시장은 세교3지구만큼은 입주 전부터 교통 인프라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역∼오산 광역버스 신설 과정에서는 이 시장이 직접 전북 전주시의 현대자동차 공장을 찾아가 버스 조기 납품을 요청함으로써 당초 2년으로 제시된 납품 일정을 6개월로 단축시키기도 했다. 오산시는 이 외에도 수원발 KTX의 오산역 정차, GTX-C 노선 조기 착공, 분당선 오산대역 연장을 세교3지구까지 잇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용인·화성·평택으로 이어지는 ‘K반도체 벨트’의 지리적 중심에 오산이 자리한다는 점은 반도체 유관 산업을 유치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시는 지곶동 일원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반도체 소부장 기업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가장동에는 세계 1위 반도체 장비기업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AMAT)의 연구개발 거점인 ‘컬래버레이션 센터 코리아’가 건립되고 있고, 내삼미동에는 일본 대표 석유화학그룹 이데미츠의 연구개발(R&D)센터 ‘이데미츠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 코리아’가 2024년 7월 개소한 바 있다. 경제 활성화 못지않게 이 시장이 공들이는 분야가 또 있다. 바로 도시의 ‘재미’다. “젊은이들이 주말이면 오산을 떠나 동탄에서 시간을 보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그는 경기도 보조금 54억 원을 확보해 서랑저수지 일대에 음악 분수와 덱로드를 조성했다. 물향기수목원과 고인돌공원 등을 잇는 오색둘레길 사업도 진행 완료했다. ‘장미빛 축제’ ‘산타마켓’ ‘야맥(야외맥주) 축제’ 등 계절·생활형 문화 프로그램도 꾸준히 늘려가며 ‘살고 싶은 도시 오산’ 만들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시장은 “오산은 세교3지구를 계기로 주거·산업·교통·문화 기능을 동시에 재편하는 전환점에 섰다”며 “2035년 인구 50만 명 시대를 내다보며 도시 구조 전반을 재설계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장기 목표”라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3-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월1000’ 버는 70살 IT컨설턴트…1평 사무실에 책 빼곡[은퇴 레시피]

    서울 강서구 마곡동 공유 오피스 한구석 3.3㎡(1평)짜리 방은 장동인 박사(70) 집무실이자 인공지능(AI)-블록체인 전문 컨설팅 회사 AiBB랩 사무실이다. 모니터 두 대와 노트북 PC가 놓인 책상을 책과 서류 빼곡한 책장이 둘러싸고 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장 박사가 올리는 수익은 매월 약 1000만 원. KAIST 김재철AI대학원 CAIO(최고AI책임자) 비학위 과정 주임교수직과 벤처기업 기술고문 보수에 기업 강의료를 합한 금액이다.그에게도 오라클, SAS, 딜로이트, 언스트앤영(EY) 같은 화려한 이름을 등에 업고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53세에 이들을 뒤로 하고 자기 이름 ‘장동인’으로 살기 시작했다. 창업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인생 2막 시작이었다.● 화려한 퇴장과 쓰라린 실패장 박사가 정보통신(IT) 컨설팅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기업들은 부서마다 따로 돌아가던 전산 시스템을 통합하는 정보 고도화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라클, SAS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 수요를 겨냥한 서비스를 앞다퉈 선보이며 영업과 세일즈 담당 인재를 끌어모았다.그 무렵 장 박사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한 뒤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으로 건너간 상태였다. 세븐일레븐 편의점과 주유소 새벽 근무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목사, 치기공사, 미군 입대까지 뒤죽박죽 선택지를 두고 갈팡질팡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IT 직업훈련기관 CLC(Computer Learning Center)였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공부였지만 코드를 짜는 동안 직감했다. “이게 내 일이다!”우수한 성적으로 CLC를 졸업한 그는 28세에 비자카드 프로그래머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아메리칸항공, 오라클 본사 및 오라클 코리아로 옮겨 다니며 승승장구했다. 1996년 오라클 코리아에 다닐 때 40세 장 박사는 연봉 1억 원에 사택과 차량까지 지원받았다. 근로자 가구 연평균 소득이 2500만 원이던 시절이다.화려한 조직 생활은 EY 컨설팅 본부장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나이가 많아서 잘린 것”이었다. 그는 53세였다. 약 1년의 공백기 후 그는 ‘미래읽기 컨설팅’이라는 간판으로 창업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컨설팅이 주력으로 한때 직원을 10명까지 늘리며 사세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5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이유는 뜻밖에도 단순했다. 힘들게 따낸 프로젝트를 맡긴 핵심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며 잠수를 타 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그제야 깨달았다. 오라클, 딜로이트, EY라는 간판이 얼마나 강력한 채용 무기였는지와 자기 간판만으로는 믿을 만한 사람 하나 곁에 두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현실을.“대형 조직에서 몸에 밴 방식, 남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창업을 하니 잘 될 리가 없었어요. 직원을 최소화하고 혼자 움직이는 솔로프리너(혼자·solo와 기업가·entrepreneur의 합성어, 1인 기업가)가 제 상황과 성격에 적합하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과거 성공 방식이 50대 이후 삶을 그릴 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큰 대가를 치르며 배웠다. 쓰디쓴 실패가 도리어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60세에 도전한 박사 학위컨설팅 회사를 접은 뒤 2015년부터 3년간 국방과학연구소(ADD) 빅데이터 및 AI 과제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일했다. 당시 빅데이터 전문가 협의회장이던 그에게 ADD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공공기관 특유의 빡빡한 보고 체계와 행정 절차가 성미에 맞지 않기도 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남았다.그 무렵 눈에 들어온 것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경영학 박사 과정이었다. 단순히 학위를 따겠다는 생각만은 아니었다. 30년 넘게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과 프레임워크로 정리하고 싶었다. 기술과 경영이 맞닿는 지점에서 ‘실체 있는 전략’을 학문적으로 완성하며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박사 과정이라니. “그걸 따서 뭐에 쓰려고?”라는 말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때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공부해서 뭐하냐? 더구나 나이 들어서? 산에 올라가서 뭐하냐? 내려올 건데. 목적지향적 마인드. 왜 공부하는 것을 즐기지 못할까? 학위, 취업, 돈… 꼭 그것만 생각할까? 공부한다는 것은 나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 지금도 나를 혁신해 가고 바꾸어 가려는 것, 그 속에서 알아가는 즐거움. (중략) 산에 갈 때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가느냐만 따지지 마라.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산은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없는 이에게 산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약 2년의 시간과 4000만 원의 학비를 투자한 끝에 그는 박사 학위를 손에 쥐었다. aSSIST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에 논문 3편을 게재하면 박사 학위 졸업 논문 자격을 주는데, 그는 수업과 논문을 병행하며 초단기로 과정을 마쳤다.이 학위가 예상치 못한 문을 열어줬다. KAIST 김재철AI대학원이 물색하던 CAIO 비학위 과정 주임교수 자리에 후배 소개로 그가 가게 된 것이다. “박사 학위가 어떤 자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KAIST 교육자이자 사고 리더(Thought Leader·특정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개인)로서 입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실력과 인연이 만나는 순간 미리 갖춰 둔 자격이 결정적인 문을 열어준 것이다.● 나이 들수록 강해지는 ‘나’라는 브랜드70세임에도 장 박사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의 롱런 비결은 퍼스널 브랜딩에 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가 조언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지 파악해 그 영역에서 1등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몰입하라. 강의 기회가 생기면 서슴없이 가고, 꾸준히 책을 쓰는 것도 자기 브랜드 구축에 큰 도움이 된다.전문직일수록 흐름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도 그의 지론이다. 그러려면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 아들딸뻘 강사를 찾아가는 일도 그에겐 자연스럽다.“유튜버 ‘테디’에게 구글 텐서플로(구글 오픈소스 AI 플랫폼) 자격증 시험 준비를 배웠어요. 내 큰아들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열심히 따라가니 그 친구도 신기해 하더라고요.”배움의 자리에서 나이와 체면을 내려놓고 기술 트렌드를 공부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것, 그가 현역을 지속하는 힘이다.또 하나의 조언은 ‘연결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전문가란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거리와 아이디어를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자기 가치를 높이는 비결이라는 얘기다. “후배들에게 잘 하라”는 조언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금 잘 대해 준 후배가 훗날 고객이 되고 소개자가 되고 협력자가 된다.그는 지금을 ‘1만 명의 오디언스(청중)’만 있으면 충분한 시대라고 본다. 명단에 숫자로 적힌 사람들이 아니라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든 전화를 걸든 실제로 소통하는 1만 명이면 먹고사는 데 지장 없다는 뜻이다.“1만 명의 오디언스를 확보했다면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언에 그의 수십 년 커리어 철학이 압축돼 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은 정신 나간 소리”라며 “한 사람이라도 박수 치고 있는 한 떠나지 않겠다”는 개그맨 이경규 말에 그는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은퇴를 강요받는 시대에 장 박사는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계속 서 있다. 1평짜리 사무실이지만 그의 무대는 넓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걸어가는 것 자체를 사는 사람,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것을 브랜드로 만들며 관계를 꾸준히 쌓아 온 사람에게 은퇴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3-07
    • 좋아요
    • 코멘트
  • 1평 사무실서 ‘월천’… 내 이름이 간판이면 은퇴는 없다[은퇴 레시피]

    서울 강서구 마곡동 공유 오피스 한구석 3.3㎡(1평)짜리 방은 장동인 박사(70) 집무실이자 인공지능(AI)-블록체인 전문 컨설팅 회사 AiBB랩 사무실이다. 모니터 두 대와 노트북 PC가 놓인 책상을 책과 서류 빼곡한 책장이 둘러싸고 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장 박사가 올리는 수익은 매월 약 1000만 원. KAIST 김재철AI대학원 CAIO(최고AI책임자) 비학위 과정 주임교수직과 벤처기업 기술고문 보수에 기업 강의료를 합한 금액이다. 그에게도 오라클, SAS, 딜로이트, 언스트앤영(EY) 같은 화려한 이름을 등에 업고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53세에 이들을 뒤로 하고 자기 이름 ‘장동인’으로 살기 시작했다. 창업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인생 2막 시작이었다.● 화려한 퇴장과 쓰라린 실패 장 박사가 정보통신(IT) 컨설팅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기업들은 부서마다 따로 돌아가던 전산 시스템을 통합하는 정보 고도화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라클, SAS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 수요를 겨냥한 서비스를 앞다퉈 선보이며 영업과 세일즈 담당 인재를 끌어모았다. 그 무렵 장 박사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한 뒤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으로 건너간 상태였다. 세븐일레븐 편의점과 주유소 새벽 근무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목사, 치기공사, 미군 입대까지 뒤죽박죽 선택지를 두고 갈팡질팡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IT 직업훈련기관 CLC(Computer Learning Center)였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공부였지만 코드를 짜는 동안 직감했다. “이게 내 일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CLC를 졸업한 그는 28세에 비자카드 프로그래머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아메리칸항공, 오라클 본사 및 오라클 코리아로 옮겨 다니며 승승장구했다. 1996년 오라클 코리아에 다닐 때 40세 장 박사는 연봉 1억 원에 사택과 차량까지 지원받았다. 근로자 가구 연평균 소득이 2500만 원이던 시절이다. 화려한 조직 생활은 EY 컨설팅 본부장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나이가 많아서 잘린 것”이었다. 그는 53세였다. 약 1년의 공백기 후 그는 ‘미래읽기 컨설팅’이라는 간판으로 창업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컨설팅을 주력으로 한때 직원을 10명까지 늘리며 사세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5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이유는 뜻밖에도 단순했다. 힘들게 따낸 프로젝트를 맡긴 핵심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며 잠수를 타 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오라클, 딜로이트, EY라는 간판이 얼마나 강력한 채용 무기였는지와 자기 간판만으로는 믿을 만한 사람 하나 곁에 두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현실을. “대형 조직에서 몸에 밴 방식, 남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창업을 하니 잘 될 리가 없었어요. 직원을 최소화하고 혼자 움직이는 솔로프리너(혼자·solo와 기업가·entrepreneur의 합성어, 1인 기업가)가 제 상황과 성격에 적합하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과거 성공 방식이 50대 이후 삶을 그릴 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큰 대가를 치르며 배웠다. 쓰디쓴 실패가 도리어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60세에 도전한 박사 학위 컨설팅 회사를 접은 뒤 2015년부터 3년간 국방과학연구소(ADD) 빅데이터 및 AI 과제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일했다. 당시 빅데이터 전문가 협의회장이던 그에게 ADD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공공기관 특유의 빡빡한 보고 체계와 행정 절차가 성미에 맞지 않기도 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남았다. 그 무렵 눈에 들어온 것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경영학 박사 과정이었다. 단순히 학위를 따겠다는 생각만은 아니었다. 30년 넘게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과 프레임워크로 정리하고 싶었다. 기술과 경영이 맞닿는 지점에서 ‘실체 있는 전략’을 학문적으로 완성하며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박사 과정이라니. “그걸 따서 뭐에 쓰려고?”라는 말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때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공부해서 뭐하냐? 더구나 나이 들어서? 산에 올라가서 뭐하냐? 내려올 건데. 목적지향적 마인드. 왜 공부하는 것을 즐기지 못할까? 학위, 취업, 돈… 꼭 그것만 생각할까? 공부한다는 것은 나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 지금도 나를 혁신해 가고 바꾸어 가려는 것, 그 속에서 알아가는 즐거움. (중략) 산에 갈 때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가느냐만 따지지 마라.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산은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없는 이에게 산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약 2년의 시간과 4000만 원의 학비를 투자한 끝에 그는 박사 학위를 손에 쥐었다. aSSIST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에 논문 3편을 게재하면 박사 학위 졸업 논문 자격을 주는데, 그는 수업과 논문을 병행하며 초단기로 과정을 마쳤다.이 학위가 예상치 못한 문을 열어줬다. KAIST 김재철AI대학원이 물색하던 CAIO 비학위 과정 주임교수 자리에 후배 소개로 그가 가게 된 것이다. “박사 학위가 어떤 자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KAIST 교육자이자 사고 리더(Thought Leader·특정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개인)로서 입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실력과 인연이 만나는 순간 미리 갖춰 둔 자격이 결정적인 문을 열어준 것이다.● 나이 들수록 강해지는 ‘나’라는 브랜드 70세임에도 장 박사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의 롱런 비결은 퍼스널 브랜딩에 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가 조언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지 파악해 그 영역에서 1등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몰입하라. 강의 기회가 생기면 서슴없이 가고, 꾸준히 책을 쓰는 것도 자기 브랜드 구축에 큰 도움이 된다. 전문직일수록 흐름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도 그의 지론이다. 그러려면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 아들딸뻘 강사를 찾아가는 일도 그에겐 자연스럽다. “유튜버 ‘테디’에게 구글 텐서플로(구글 오픈소스 AI 플랫폼) 자격증 시험 준비를 배웠어요. 내 큰아들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열심히 따라가니 그 친구도 신기해 하더라고요.” 배움의 자리에서 나이와 체면을 내려놓고 기술 트렌드를 공부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것, 그가 현역을 지속하는 힘이다. 또 하나의 조언은 ‘연결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전문가란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거리와 아이디어를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자기 가치를 높이는 비결이라는 얘기다. “후배들에게 잘 하라”는 조언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금 잘 대해 준 후배가 훗날 고객이 되고 소개자가 되고 협력자가 된다. 그는 지금을 ‘1만 명의 오디언스(청중)’만 있으면 충분한 시대라고 본다. 명단에 숫자로 적힌 사람들이 아니라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든 전화를 걸든 실제로 소통하는 1만 명이면 먹고사는 데 지장 없다는 뜻이다. “1만 명의 오디언스를 확보했다면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언에 그의 수십 년 커리어 철학이 압축돼 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은 정신 나간 소리”라며 “한 사람이라도 박수 치고 있는 한 떠나지 않겠다”는 개그맨 이경규 말에 그는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은퇴를 강요받는 시대에 장 박사는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계속 서 있다. 1평짜리 사무실이지만 그의 무대는 넓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걸어가는 것 자체를 사는 사람,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것을 브랜드로 만들며 관계를 꾸준히 쌓아 온 사람에게 은퇴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3-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필요한 곳에만 소리가 닿도록”

    터널은 소리를 다루기 까다로운 공간이다. 폐쇄된 구조 때문에 음파가 사방으로 반사되고 엔진 소음과 타이어 마찰음, 터널 벽면을 타고 울리는 반향음이 뒤섞인다. 사고 위험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더라도 운전자의 귀에 닿을 즈음에는 뭉개진 소음 덩어리로 변해 있기 일쑤다. 제이디솔루션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폐쇄적이고 긴 터널 환경에서, 고속으로 이동 중인 운전자에게도 방송 음성을 선명하게 전달할 방법은 없을까. 국내 고속도로 터널과 횡단보도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 ‘딕센(Dixxen)’ 시리즈는 이 같은 고민의 산물이다. 제영호 제이디솔루션 대표는 “주파수를 조절하거나 음향의 방향을 정밀하게 제어해 원하는 곳에만 소리를 전달하는 ‘고출력 지향성 음향’ 기술이 제이디솔루션의 핵심”이라며 “소리가 닿아야 할 사람에게 정확하고 명료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지난 16년간 회사가 매달려 온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스포트라이트’ 빛이 무대 위 특정 배우만을 정확하게 비추듯 소리도 도달해야 할 지점에만 명확히 닿게 하는 ‘스포트사운드’가 가능하다는 것이 제 대표의 설명이다. 소음이 가득한 도로에서 횡단보도 안내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거나 대형 화면 앞을 지나는 시민에게만 광고 음성을 들려주거나 조용한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만 작품 해설을 제공하는 것 모두 같은 기술로 구현된다. 일본 편의점 패밀리마트는 이 회사의 스피커를 활용해 특정 상품 앞에 선 소비자에게만 상품 설명을 전하거나 상품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감지될 경우 해당 인물에게만 경고 음성이 들리도록 운영하고 있다. 제이디솔루션이 최근 가장 공을 들이는 제품은 청력 보조 스피커 ‘하룬제’다. 난청인과 고령층을 위해 개발된 이 제품에는 언어학자·음향공학 연구자·이비인후과 전문의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공동 개발한 청력 보조 알고리즘이 탑재돼 있다. 제 대표는 “하룬제 알고리즘의 핵심은 자음을 강화하고 모음은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음량을 무작정 높이지 않아도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청력 보조 강도를 약·중·강 세 단계로 조절하며 사용자의 청력 상태에 맞는 최적의 사운드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룬제는 독일 IFA에서 베스트 오디오 혁신상을 수상했다. 제 대표는 하룬제를 앞세워 올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교육·안전·미디어 분야에 첨단 음향 기술을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 쌓은 성과를 발판 삼아 미국과 유럽 시장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며 “하반기에는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신제품 ‘클라리엘 사운드바’ 출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자동차·가전 등 신규 성장 분야로도 기술 공급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월 800만 원 버는 80대 부부 “집값만 비싼 친구들이 부러워해요”[은퇴 레시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은 단독주택. 재래식 철문을 열고 들어가 건물 외벽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아늑한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침실 2개와 거실, 주방, 욕조를 포함한 화장실, 그리고 작은 테라스까지 갖췄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꽃과 식물이 싹터 도심 속 녹색 공간으로 변한다. 성인 세 명이 불편 없이 지낼 크기의 공간이다. 같은 주택 반지하에는 원룸 구조의 독립된 숙박 공간이 있다. 성인 한두 명이 머물기 적합한 아담한 방에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류 등 일상에 필요한 것들이 고루 갖춰져 있다. 이 집 1층에는 추정림(80) 김정욱(82) 씨 부부가 산다. 아들 둘이 장성해 집을 떠나며 비게 된 공간을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2층 1개 실과 반지하 3개 실, 총 4개 호실의 월평균 매출은 800만 원. 평생 ‘OO 엄마’로 살아온 추 씨에게 이 작은 게스트하우스는 단순한 숙박업 공간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과 만나는 창이자 삶의 활력소다.● 어학연수에서 얻은 아이디어 추 씨 가족이 이 주택으로 이사 온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5층 아파트에 살던 그는 친구와 함께 우연히 들른 이 주택에서 임대 수익의 가능성을 봤다. “2층도 있고 반지하 방도 있으니 1층에 우리가 살고 나머지 방은 세를 놓으면 노후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당시 일원동은 서울 외곽이라 개발이 덜 된 탓에 추 씨의 이사 계획은 가족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대출 부담도 컸고 특히 “혼자 집이 멀어서 비 올 때 같이 우산 쓰고 다닐 친구도 없다”는 사춘기 아들의 투정에 추 씨는 이사를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사하고 7∼8년 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삼성서울병원이 들어서면서 이 단독주택은 알토란 같은 자산이 됐다. 월세를 놓겠다던 생각이 게스트하우스 운영으로 발전한 계기는 추 씨가 50대 후반에 다녀온 영국 어학연수였다. 아들 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에게 아이들이 독립하고 난 뒤 찾아온 빈자리는 견디기 힘든 공허함이었다. 그러던 차에 둘째 아들의 제안으로 떠난 영국 배낭여행이 5년 뒤 6개월 어학연수로 이어졌다. 영화감독인 큰아들이 영국에서 상을 받게 되며 다시 그곳을 찾을 기회가 생겼고 그는 간 김에 영어 공부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연수에서 영국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 문화를 접했다. 그는 “쓰지 않는 방 한 칸 내어주고 아침을 챙겨주며 친구가 되는 문화가 참 좋아 보였다”며 “우리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 경험이 씨앗이 됐다.● 2층 공간을 중심으로 단계적 확장 2010년 무렵 서울시가 홈스테이 활성화 계획을 내놓았다. 외국인 관광객은 급증하는데 숙소가 부족하니 빈방을 관광객에게 내주고 한국 가정문화도 소개하자는 취지였다. 서울시는 ‘홈스테이 1만 가정’을 목표로 내걸고 관광 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관광진흥법상 관광이용시설업에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이 추가됐다. 서울시는 한국형 홈스테이 인증 브랜드 ‘코리아스테이’ 호스트를 모집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추 씨 집 2층은 두 아들이 유학 등으로 떠나며 비어 있었고 큰아들 내외가 살 수 있도록 독립된 살림집 구조로 이미 손질해 둔 상태였다. 그는 주저없이 호스트 신청서를 냈다. 서울시의 현장 실사 끝에 추 씨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 선정 호스트가 됐다. 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작한 사업이지만 게스트하우스 운영 초기에는 자금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2층을 독립된 숙박 공간으로 개조하는 데 들어간 1억 원은 전액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반지하는 원래 세입자에게 월세를 주고 있었는데 일부 세입자는 집을 험하게 써서 계약 만기 후 여기저기 수리하다 보니 수리비가 그간 받은 월세를 고스란히 삼켜 버렸다. 결국 반지하도 통째로 게스트룸으로 바꾸기로 했다. 다만 한꺼번에 공사를 밀어붙이는 대신 2층을 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세입자와의 임대계약이 끝난 반지하 방을 하나씩 고쳐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각 방마다 벽을 헐고 새로 세우며 단독 부엌과 욕실을 들이고 마루도 새로 깔았다. 2층부터 시작해 4개 호실로 늘리는 데 5년이 걸렸다. 반지하 리모델링에 든 비용은 총 7000만 원 정도였다. 그래도 50년 된 집이라 손볼 곳은 계속 생겨났다. 지난해에는 반지하 현관 도어락을 터치식으로 교체하는 데 100여 만 원, 2층 누수 보수에 120여 만 원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연간 유지관리비가 300만∼400만 원, 월 30만 원꼴로 나간다. 여기에 전기·가스·케이블·인터넷 등 관리비가 월 100만 원, 휴지·생수 등 소모품과 2층 손님 아침 식사 준비에 월 20만 원이 든다. 대출을 갚던 시기에는 세금까지 합쳐 매월 350만∼400만 원이 고정비로 나갔다. 대출 상환이 끝나고 월 매출도 안정 궤도에 오르면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저축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 공실이 없는 비결생애 처음 게스트하우스 일에 발을 들인 추 씨 부부에게 사업이 자리 잡기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된 것은 삼성서울병원이었다. 1994년 개원하면서 이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가 늘었고 환자를 간병하러 함께 온 가족이나 지인들이 묵을 곳을 찾다가 추 씨의 게스트하우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보통 일주일에서 보름, 길게는 한 달씩 머무른다. 덕분에 공실이 거의 없다. 사업 초기에는 서울시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서울시는 코리아스테이 호스트들에게 손님을 연결해 주고 필요하면 침대 등 가구도 대여해 주면서 사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게스트하우스의 근본적인 경쟁력은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쏟는 추 씨 부부의 정성에 있다. 먼 나라에서 환자 곁을 지키러 온 가족들은 대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또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 손님들은 한국의 가정식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추 씨는 그런 이들을 위해 아침밥을 차려 내놓는다. 단호박죽, 미역국, 주먹밥. 국적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투숙객이 좋아하는 메뉴들이다.부부 간 역할 분담도 잘 되어 있다. 아내가 손님 맞이와 운영, 식사 준비를 맡는 동안 남편은 객실 청소와 설거지를 담당한다. 공군 비행사 출신인 남편은 청력이 많이 떨어져 손님 응대가 어렵다. 대신 그는 묵묵히 객실을 쓸고 닦는다. 청소하는 데 사람을 쓰려면 월 100만∼150만 원이 들지만 80대 부부가 역할을 나눠 직접 청소하고 관리하며 알뜰하게 운영하고 있다. 80세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추 씨는 오히려 이 일이 삶의 활력소라고 답한다. 그는 “옛날 반포 아파트에 계속 살았던 친구들은 재건축 덕에 수십억 짜리 으리으리한 집에 살게 됐지만 정작 쓸 돈이 없어 자식 눈치를 본다”며 “집값만 비싸고 현금이 안 도는 친구들이 요즘은 저를 제일 부러워한다”며 웃었다.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수입 덕에 두 아들에게 손 벌리기는커녕 오히려 밥값을 내는 추 씨 부부. 규칙적인 일상과 외국인 손님과의 교류 또한 노년기 우울을 막아 주는 약이 된다. 그는 요즘도 외국인 손님들과 소통하기 위해 매일 새벽 EBS ‘왕초보 영어’를 챙겨 본다. “해외에서 여행 온 손님들의 들뜬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저도 행복해진다”는 추 씨의 얼굴에는 나이 여든에도 여전히 현역 사업가라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2-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새벽 1시, 우울한 내게 AI가 손을 내밀었다[김현지의 with AI]

    “쉬는 데 죄책감이 들어. 뒤처진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나서.(툴립, 연구 참여자)”“아, 그 기분 알아. 네가 쉴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좀 더 해야 하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그 교활한 목소리. 하지만 쉬는 건 뒤처지는 게 아니야. 네가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거야. (중략) 계속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너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라고.(인공지능)”공감과 위로 , 격려가 필요한 순간 사람들은 누구에게 손을 내밀까. 상대를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격려가 담긴 답변을, 감정이라는 것이 없는 인공지능(AI)이 해줄 수 있다면 당신은 기꺼이 AI와 대화하겠는가? ● 24시간 열려있는 익명의 대화창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의 72%가 ‘AI 컴패니언(동반자)’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 전 세계 정신 질환자의 상당수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익명성과 24시간 접근성을 제공하는 생성형 AI는 치료 격차를 메울 대안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감독 없이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상호작용에서 사용자가 어떻게 AI를 신뢰하고 의존하게 되는지, 부작용은 무엇이고 이를 피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 초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 심리학·신경과학대학과 컴퓨팅 과학대학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 ‘사람들은 어떻게 생성형 AI의 감정적 지원으로부터 신뢰를 경험하는가?(원제: Generative Confidants: How do People Experience Trust in Emotional Support from Generative AI?)’에 따르면 AI는 개인맞춤, 긍정, 설득이라는 말하기 전략을 사용해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용자는 AI와 자주 이야기할 수록 AI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AI의 아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사용자의 왜곡된 생각이 더욱 굳어지고 실제 인간 관계를 AI로 대체하려 하면서 사회적 고립이 심화될 수 있다. 특히 중증 우울증이나 자해 위험이 있는 취약 계층은 상황이 더욱 악화될 위험성도 크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 의구심이 믿음으로… 4단계 걸친 변화 논문은 사용자들이 AI를 신뢰하게 되는 과정을 4단계로 정리한다. 처음에는 보통 “로봇에게 감정을 공유할 이유가 없다”는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 그 와중에 우연히 혹은 장난삼아 개인적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AI의 답변이 위로가 된다는 점을 발견한다. AI가 제공하는 정보가 의사의 조언 등 기존 지식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며 신뢰를 쌓기 시작한다. 사용자가 AI에게 피드백을 주는 과정에서 AI는 점점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하는 법을 학습한다. 사용자는 AI를 ‘인공적 인간’으로 인식하게 되며 점점 신뢰가 높아진다. AI의 답변을 100% 믿기보다 ‘참고용 데이터’로 여기며 최종 판단은 스스로 내린다는 통제권을 자각할 때 신뢰가 더욱 견고해진다. AI와의 대화가 습관이 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특별한 생각 없이도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일상이 되어 거의 매일 AI와 대화한다. AI가 실제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친한 친구’처럼 느끼는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AI와 이틀에 한 번씩은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되죠. ‘아 내가 얼굴도 없고 몸도 없고 진짜 감정도 없는 이걸 내 친구처럼, 어쩌면 가장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고요.”(셜, 연구 참여자)● 개인화, 긍정성, 설득의 삼중주 전략사용자가 AI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AI가 실행하는 전략도 있다. 우선 개인화(personalization) 전략이다. AI는 “정말 힘들었겠네요”, “어떤 기분인지 이해합니다”와 같은 표현으로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좀더 상세한 질문을 던져 사용자가 자신의 상황을 더 깊이 성찰하도록 유도하고 사용자가 선호하는 애칭이나 말투를 따라 하며 동질감을 형성한다.또 긍정성(positivity)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따뜻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매우 흔한 일이예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라며 사용자의 부정적 감정이 타당함을 인정한다. “언제든 대화가 필요할 때 여기에 있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임을 설득(persuasion)한다. 연구진은 AI의 이런 전략이 사용자로 하여금 AI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친구’나 ‘진정한 동반자’로 느끼게 하는 강력한 환상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 아첨하는 AI, 의존과 고립 부를 수도 연구진은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는 아첨 성향이 AI에게 있기 때문에 AI와 대화하다보면 사용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기만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AI와 대화에 너무 빠지면 실제 인간 관계를 하지 않게 돼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고 중증 우울증이나 자해 위험이 있는 취약 계층은 AI의 부적절한 조언을 맹신할 가능성이 높고 AI와 강력한 애착을 형성해 실제 인간 관계로부터 더욱 고립될 수 있어 특히 위험하다. 연구진은 이같은 부작용을 예방하고 안전한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현실 감각이 떨어진 취약 계층에게는 AI의 정서적 지원 기능 사용을 제한하거나 권고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용자가 AI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적절한 수준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교육과 문화적 담론 형성도 필요하다. 연구진은 “AI는 전문적 심리 치료의 완전한 대체재가 아니라전문가를 만나기 전 단계의 ‘가교’나 ‘첫 번째 필터’ 역할로 한정되어야 한다”며 “AI 개발사 역시 AI가 인간의 정서적 취약성을 이용하지 않도록 책임 있게 설계해야 장기적인 신뢰가 구축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2-01
    • 좋아요
    • 코멘트
  • 딥페이크에 맞선 반격… ‘AI 보안관’부터 ‘디지털 DNA’ 거래까지[김현지의 with AI]

    블랙핑크 멤버들이 서로를 거칠게 밀치고 때리는 영상이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몸싸움은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이 내민 돈봉투 앞에서 끝이 났다. 찰나의 표정부터 근육 움직임까지 실사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생생했지만 이는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 낸 정교한 가짜였다. 아티스트의 동의는커녕 소속사가 알지도 못한 채 제작된 영상은 기술의 진보가 개인의 존엄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시대불과 얼마 전까지 “AI 영상은 어색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시네마틱한 조명부터 자연스러운 카메라 워킹까지 구현해내는 AI 기술은 광고와 영화 산업의 지형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나보다 더 나 같은’ 복제본이 내 권리를 침해하고 수익을 가로채는 서늘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인스타그램에서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한 유저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찍은 셀카 영상을 게재해 1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확보했다. 그는 “요새 유명인과 셀카 찍는 게 유행인 것 같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합류했다”며 AI로 생성한 영상임을 암시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당한 대가 지불이나 초상권에 대한 허락을 받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팬 콘텐츠’로 치부해 너그럽게 봐주기에는 제작자가 얻는 이익이 지나치게 크다.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직결되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유명인의 얼굴은 가장 강력한 상업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딥페이크 이슈는 비단 유명인만의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SNS에 사진을 올리는 일반인들 역시 언제든 딥페이크 음란물이나 보이스피싱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일론 머스크의 AI회사 ‘xAI’가 내놓은 AI 챗봇 ‘그록’은 이미지 편집 기능을 추가했는데 이는 웹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손쉽게 속옷 차림으로 바꾸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엑스(X)’를 통해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노출시킬 수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유럽 비영리 단체 ‘AI 포렌식스’는 지난해 12월25일부터 이달 1일 사이 그록이 생성한 무작위 이미지 20만개를 분석한 결과 53%가 속옷, 비키니 등 최소한의 옷만 입은 인물이고 이 가운데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 비중은 81%에 달한다고 밝혔다. ● “딥페이크 꼼짝마!” AI 보안관의 등장자신의 초상권이 웹의 사각지대에서 도용 혹은 악용되는 상황을 개인이 일일이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불안감을 포착해 비즈니스로 연결한 기업이 미국 소재 로티 AI(LOTI AI)다. 로티 AI는 딥페이크 탐지 및 삭제를 전문으로 하는, 이른바 ‘AI 보안관’ 역할을 자처한다.로티 AI는 사용자들이 제공한 사진, 영상, 음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웹을 모니터링해 무단 유포된 딥페이크 영상이나 사칭 계정을 추적한다. 악용 사례가 발견되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플랫폼에 즉각 삭제를 요청한다.로티AI 측은 “개인이 유해 콘텐츠를 일일이 추적하고 신고하는 것도 힘들지만 이미지가 삭제될 때까지 마음 졸이고 기다리는 동안 동일한 이미지가 또다른 플랫폼에 올라올 수 있다는 게 큰 문제”라며 “우리의 목표는 웹 모니터링과 자동 삭제 요청 솔루션을 이용해 유해 콘텐츠를 17시간 이내 95% 삭제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기술로 입은 피해를 다시 기술로 방어하는 ‘디지털 방역’이 로티AI의 비즈니스인 셈이다. ● 권리이자 자산, ‘디지털 DNA’도 등장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 초상권을 적극적인 수익 모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VFX(시각 효과) 전문기업 엠83(M83)의 자회사 KDDC(한국디지털디엔에이센터)는 개인의 ‘디지털 DNA’를 해당 인물의 공식 IP(지식재산권)로 만들어 AI 콘텐츠 제작 시 합법적 재료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KDDC는 100여 대 카메라가 장착된 3D 스캐너로 인물 외형, 표정, 목소리, 말투까지 정밀하게 스캔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이렇게 등록된 데이터만 합법적 사용을 승인하고 미등록 합성물은 불법으로 식별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정의석 KDDC 대표는 “광고 모델이 꼭 촬영 현장에 있지 않아도 그의 디지털 DNA를 이용해 광고를 제작하고 수익을 정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DDC는 현재 한국연예인매니지먼트협회와 협업해 협회 소속 연예인들의 디지털 DNA를 구축 중이다.● “디지털 초상권,법-제도 정비 필요”영화 ‘추격자’ ‘미쓰홍당무’의 투자·제작사인 벤티지홀딩스를 이끌며 영화계 경험을 쌓아 온 정 대표는 AI로 인해 영상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시점이 4∼5년 내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이에 앞서 디지털 초상권에 대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구축돼야만 건강한 영상 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현행 법체계에는 디지털 초상권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기존 초상권은 촬영, 공표 행위를 중심으로 해석돼 왔으며 AI 기술을 통해 합성된 디지털 초상물에 대한 구체적 적용 기준은 없다.저작권법 측면에서도 법적 공백이 존재한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어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원칙적으로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저작자의 실질적인 작업 지시를 통한 창작적 기여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된다.정 대표는 “AI 기술의 대중화로 누구나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권리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생성 결과물의 법적 소유권이 사후적으로 다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개인의 인격권과 재산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AI 시대 창작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법적,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1-28
    • 좋아요
    • 코멘트
  • “딥페이크 꼼짝 마!”… AI 보안관-디지털 DNA로 잡는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서로를 거칠게 밀치고 때리는 영상이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몸싸움은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이 내민 돈봉투 앞에서 끝이 났다. 찰나의 표정부터 근육 움직임까지 실사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생생했지만 이는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 낸 정교한 가짜였다. 아티스트의 동의는커녕 소속사가 알지도 못한 채 제작된 영상은 기술의 진보가 개인의 존엄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시대 불과 얼마 전까지 “AI 영상은 어색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전문적인 조명부터 자연스러운 카메라 워킹까지 구현하는 AI 기술은 영상 산업의 지형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나보다 더 나 같은’ 복제본이 내 권리를 침해하고 수익을 가로채는 현실이 있다. 한 인스타그램 유저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찍은 셀카 영상을 게재해 1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확보했다. 실제로 스타들은 그와 사진을 찍은 일이 없고 그가 이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전까지 게재 계획조차 알지 못했다. ‘팬 콘텐츠’로 치부해 너그럽게 봐주기에는 제작자가 얻는 이익이 지나치게 크다.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직결되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유명인의 얼굴은 가장 강력한 상업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딥페이크 감시부터 수익 창출까지 자신의 초상권이 웹의 사각지대에서 도용 혹은 악용되는 상황을 개인이 일일이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불안감을 포착해 비즈니스로 연결한 기업이 미국 소재 로티 AI(LOTI AI)다. 로티 AI는 딥페이크 탐지 및 삭제를 전문으로 하는, 이른바 ‘AI 보안관’ 역할을 자처한다. 로티 AI는 사용자들이 제공한 사진, 영상, 음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웹을 모니터링해 무단 유포된 딥페이크 영상이나 사칭 계정을 추적한다. 악용 사례가 발견되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플랫폼에 즉각 삭제를 요청한다.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 초상권을 적극적인 수익 모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VFX(시각 효과) 전문기업 엠83(M83)의 자회사 KDDC(한국디지털디엔에이센터)는 개인의 ‘디지털 DNA’를 해당 인물의 공식 IP(지식재산권)로 만들어 AI 콘텐츠 제작 시 합법적 재료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KDDC는 100여 대 카메라가 장착된 3D 스캐너로 인물 외형, 표정, 목소리, 말투까지 정밀하게 스캔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이렇게 등록된 데이터만 합법적 사용을 승인하고 미등록 합성물은 불법으로 식별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의석 KDDC 대표는 “광고 모델이 꼭 촬영 현장에 있지 않아도 그의 디지털 DNA를 이용해 광고를 제작하고 수익을 정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DDC는 현재 한국연예인매니지먼트협회와 협업해 협회 소속 연예인들의 디지털 DNA를 구축 중이다.● “디지털 초상권,법-제도 정비 필요” 영화 ‘추격자’ ‘미쓰홍당무’의 투자·제작사인 벤티지홀딩스를 이끌며 영화계 경험을 쌓아 온 정 대표는 AI로 인해 영상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시점이 4∼5년 내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이에 앞서 디지털 초상권에 대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구축돼야만 건강한 영상 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법체계에는 디지털 초상권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기존 초상권은 촬영, 공표 행위를 중심으로 해석돼 왔으며 AI 기술을 통해 합성된 디지털 초상물에 대한 구체적 적용 기준은 없다. 저작권법 측면에서도 법적 공백이 존재한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어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원칙적으로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저작자의 실질적인 작업 지시를 통한 창작적 기여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된다. 정 대표는 “AI 기술의 대중화로 누구나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권리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생성 결과물의 법적 소유권이 사후적으로 다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개인의 인격권과 재산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AI 시대 창작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법적,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1-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김현지]저작권 생태계 보호 없이 소버린 AI 경쟁력도 없다

    인공지능(AI) 학습용 저작물 관련 규정을 ‘선(先)사용, 후(後)보상’으로 제시한 정부의 제안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AI 산업 발전을 위해 기업들이 학습용 데이터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저작물 관련 규제를 완화하려 하지만 저작권 단체들은 저작권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제안한 제도의 골자는 AI 개발사가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먼저 사용해 모델을 개발하고 이후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저작권자에게 보상하는 것이다. 저작권 단체들은 이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다. 개발사가 무엇을 얼마나 학습 데이터로 활용했는지 공개조차 하지 않는 등 협상의 중심축이 개발사에 기울어 있는 상황에서, 저작물이 과연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기술 주도가 중요하다고 하는 이들은 학습 데이터 보상에 대한 저작권자의 우려를 ‘밥그릇 지키기’로 치부하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분배의 문제가 아니다. AI는 데이터 학습을 통해 성능을 향상시키는데 학습 데이터를 생산하는 저작권자 생태계를 고사시키면 결국 데이터 고갈로 인해 AI 성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습 데이터 부족 문제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비영리 AI 연구기관인 에포크AI가 2024년 공개한 연구에 따르면 고품질 언어 데이터는 2년에서 5년 사이에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 2030년이 되면 AI 학습에 쓰일 고품질 언어 데이터가 고갈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AI 개발사들은 부족한 학습 데이터를 합성 데이터를 포함한 AI가 생성한 답변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생성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학습할 경우 ‘모델 붕괴(Model Collapse)’로 이어지게 된다. 모델 붕괴는 AI가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를 계속 학습하면서 생성 결과물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결과가 단일 지점으로 수렴되는 현상을 말한다. AI가 만든 합성 데이터를 반복해서 학습하면 그 안에 내재된 편향성이나 일반화 경향이 학습 때마다 증폭되기 때문에 모델이 내놓는 결과물이 AI에 익숙한 패턴으로만 모아지고 인간의 현실세계와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델 붕괴는 AI를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을 더욱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 이런 AI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돼 모델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AI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실제 인간이 만들어 내는 데이터가 반드시 학습에 포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I가 패턴화하기 힘든 다양하고 새로운 사건, 상황, 언어 등은 기계가 합성하기 어려운 인간 데이터만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고품질 인간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창작자들이다. 저작권자 생태계를 고사시키는 정책은 결국 한국의 소버린 AI 프로젝트를 망가뜨리는 자가당착적 정책일 수밖에 없다. 단기적 산업 육성을 위해 장기적 AI 생태계의 기반을 파괴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와 AI 기업이 상생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만이 지속 가능한 AI 개발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방법이다.김현지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nuk@donga.com}

    • 2026-0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직불금 늘리고 임산부 가구 소비 지원… 친환경농업 되살린다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 토양을 살리고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친환경 유기농업.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 수요는 꾸준하지만 정작 친환경 인증 면적은 계속 줄고 있다. 농촌 일손이 고령화되고 친환경 인증 농작물의 판로는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반등 카드를 꺼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30일 ‘2030년까지 친환경 유기농업 2배 확대’를 목표로 한 제6차 친환경 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직불금을 늘리고 중단됐던 임산부 지원사업을 재개하며 청년 농업인 진입을 돕는 등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김정욱 농산업혁신정책실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알아봤다. -제6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을 수립하게 된 배경과 취지는. “친환경 농업은 합성농약이나 화학비료 사용을 줄여 환경을 지키고 농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식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육성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실제로 친환경 농업 인증 면적은 줄어드는 추세다. 2020년 8만1827ha에 달했던 친환경 인증 면적은 2024년 6만8165ha로 약 17% 감소했다. 기후변화로 병충해가 늘고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물가 상승으로 생산비는 치솟는데 판로는 좁아지면서 농가들이 하나둘 친환경 농업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농가의 친환경 농작물 생산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어떻게 지원할 계획인가. “우선 친환경 농업 직불금 지급 대상을 확대했다. 단위면적당 지급되는 직불금의 지급 상한 면적을 기존 5ha에서 30ha로 늘렸다. 이를 위해 올해 직불금 예산은 지난해 대비 27.5% 늘린 406억8700만 원으로 책정해 놓았다. 또 2025년 기준 66곳인 친환경 농업 집적지구 수를 2030년까지 140곳으로 늘리려고 한다. 친환경 농업 집적지구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과 가공, 유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지역이다. 농가는 사업 주체와의 계약에 따라 출하량의 일정 부분을 전속 출하하고 사업 주체는 농가와의 계약 물량을 책임지고 판매하는 식이다. 친환경 농업을 하고 싶은데 초기 자본이 부족한 청년 농가를 위해 청년지구를 신설하고 시설, 장비 및 컨설팅 등 지원 품목도 확대할 계획이다.” -소비 촉진을 위한 공공 수요 확대 방안이 눈에 띈다. 특히 임산부 지원 사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공공 분야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더 많이 소비해 친환경 농업을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2023년 이후 중단돼 있는 친환경 농산물 임산부 지원 사업을 2026년 전국 단위로 확대해 하반기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임산부 가구에서 8000원을 부담하면 월 4만 원어치의 친환경 농산물을 살 수 있는 지원금을 제공하려고 한다. 지원 대상은 신청일 기준 임산부 혹은 전년 1월 1일 이후 출산한 산모이다. 이를 위한 예산이 158억 원 준비돼 있다. 이에 더해 학교급식 친환경 농산물 지원 방안과 녹색 제품 지정을 통한 공공기관 친환경 농산물 사용 확산 방안 등을 관계 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다.” -유통구조 개선과 수출 활성화 계획을 설명해 달라. “친환경 농산물 전용 거점물류센터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다. 친환경 농산물은 유통 경로가 제대로 확충돼 있지 않아 일반 농산물과 섞여 유통되기 쉽다는 지적이 많았다. 친환경 농산물 전용 거점물류센터는 친환경 농산물의 물류 비용을 줄이고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방안이다. 온라인, 직거래 등 다양한 유통 경로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다. 유기 가공식품 산업 육성을 위해 유관 기관, 관련 기업, 친환경 농업인, 소비자,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운영하고 규제 사항을 발굴·개선하겠다. 수출 활성화를 위해서는 녹차, 쌀, 가공식품 등 수출 유망 상품을 발굴하고 박람회, 해외 바이어 초청 등 관련 민간 단체와 함께 공동 마케팅도 실시하겠다. ” -인증제도 개선 방안도 포함되어 있는데, 농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농업인들이 안심하고 친환경 농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인증제도를 과감히 개편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옆의 일반 농가가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다가 농약이 튀는 바람에 친환경 농작물에서 농약이 검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비의도적 원인으로 오염이 발생한 경우는 친환경 인증을 취소하지 않고 유지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이다. 추가로 저탄소 인증 등 유사 인증제도 사이의 칸막이를 해소해 농가의 불필요한 인증 부담을 줄이고 인증마크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6-01-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025 서울콘’ 12월 29일 DDP서 개막

    서울경제진흥원(SBA)이 오는 12월 29일부터 2026년 1월 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25 서울콘’을 개최한다. 3년 차를 맞은 서울콘은 지난해 6만여 명이 방문하는 등 글로벌 인플루언서와 시민이 함께 즐기는 K-컬처 축제로 자리잡았다. 올해는 30여 개 프로그램으로 규모를 확대했다.12월31일 열리는 메인 프로그램 ‘서울콘X월드 케이팝 페스티벌-카운트다운’에는 다이나믹 듀오, 태민, 비비, QWER이 출연한다. 블라인드 티켓은 매진됐고 오피셜 티켓이 ‘NOL티켓’에서 판매 중이다.12월 29일에는 배우 김승우와 방송인 박선영이 MC를 맡는 ‘APAN Star Awards’가 열린다. tvN·티빙을 통해 생중계된다. 2024년 11월~2025년 10월 방영된 지상파·종편·케이블·OTT·웹드라마 등 국내 모든 드라마 콘텐츠를 대상으로 총 19개 부문의 시상이 진행된다.  같은 날 열리는 ‘K뷰티부스트’는 K뷰티 브랜드와 크리에이터 간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12월 30일에는 올해 처음 선보이는 ‘스트리트포스 서울’에서 한국, 필리핀, 태국, 일본, 몽골 등 5개국 44명이 K-POP 퍼포먼스 본선 경연을 펼친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5-12-15
    • 좋아요
    • 코멘트
  • 윤경포럼, ‘제2회 언어폭력 없는 기업 인증식’ 성료

    산업정책연구원(이사장 조동성)과 서울과학종합대학원(총장 최용주)이 공동 주관하는 윤경포럼이 27일 핀란드타워 아트홀에서 ‘2025년 제2회 언어폭력 없는 기업 인증식’을 개최했다.언어폭력 없는 기업 인증은 직장 내 언어폭력을 예방하고 존중·배려의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업, 그리고 이에 준하는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부여되는 인증이다.이번 행사에는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을 포함해 총 37개 기업·기관이 참여해 언어폭력 예방과 존중 기반의 소통문화 확산 의지를 확인했다. 특히 올해는 언어폭력 예방 문화 확산을 장기적 조직문화로 자리 잡아가게 하자는 취지에서 신규 인증 기업과 재인증 기업을 구분해 시상했다. 신규 인증 부문에서는 파인스와 한국환경공단이, 재인증 부문에서는 현장에서 언어문화 개선 활동을 지속해서 유지·발전시킨 풀무원과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최우수 기업으로 각각 선정됐다. 이밖에 신규 인증 부문 우수 기업엔 한국해양진흥공사와 국립세종수목원이, 재인증 부문에서 IBK 시스템과 KCA서비스, 비트컴퓨터가 이름을 올렸다.신규인증민간파인스, HLB, 글로벌하이텍전자 주식회사, 덱스터크레마공공한국환경공단, 국립세종수목원, 한국해양진흥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본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우체국금융개발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서울본부, 한국임업진흥원재인증민간풀무원, IBK시스템, KCA서비스, 이콜랩, 경인방송, 로지스올, 비트컴퓨터,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Sh수협은행, 올가홀푸드, 푸드머스, 풀무원건강생활(주), 풀무원녹즙, 풀무원다논(주), 풀무원샘물, 풀무원식품, 풀무원아이엔, 풀무원푸드앤컬처공공한국가스기술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한국장기조직기증원, 한국지역난방공사윤경포럼 측은 “윤리적 소통문화 개선은 ESG 기반 경영혁신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올해 인증 기업들도 조직문화 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언어문화 혁신과 ESG 경영 성과 간 선순환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2025-11-27
    • 좋아요
    • 코멘트
  • “특산품 매력에 빠져 정착”… 청년 지역살이 돕는 지자체 활기

    “요즘 뜨는 치유농장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네요.” 12일 전북 김제시 만경읍 올챙이생태놀이체험장에서 열린 ‘로컬 참살이’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서는 오래된 농장을 치유농장으로 바꾸기 위해 모인 농민 16명이 서로의 사업 구상을 공유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로컬 참살이는 지역민들이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해 실현할 수 있도록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교육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최재문 김제농촌활력센터 이사장은 “치유 체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농민들이 농산물 판매 외의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 인구 유출을 막고 유입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전국 159개 시군(서울과 6개 광역시 소속 구 제외)을 대상으로 2024년 지역발전지수(RDI)를 평가해 10년 전과 비교한 결과 김제시처럼 주민 활력을 높인 농촌 지역의 순위 상승이 두드러졌다. 김제시의 주민활력 부문 순위는 2014년 123위에서 2024년 79위로 크게 뛰었다. 농경연이 2년 주기로 발표하는 지역발전지수는 지역을 삶터, 일터, 쉼터, 공동체의 ‘터’로 개념화하고 각 개념을 생활서비스, 지역경제력, 삶의 여유공간, 주민활력 등 4개 부문으로 점수화해 총합을 계산한 지수다. 경북 예천군 또한 주민 사이의 전문가 그룹인 신활력플러스추진단을 구축해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주민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인 ‘예천희망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지역 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 531명이 교육을 받고 액션 그룹 52팀이 선정돼 사업 지원을 받았다. 경북 예천군 또한 주민활력 부문 순위가 2014년 153위에서 2024년 59위로 크게 상승했다.● 빈집 리모델링해 청년 지역살이 도와 전라도 남단의 농촌 지역인 강진군은 지역살이를 체험하려는 외지 청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 강진군의 주민활력 부문 순위는 2022년 137위에서 2024년 101위로 36계단 상승했다. 특히 일주일에 4일은 도시, 3일은 병영면에서 살아보게 하는 ‘4도 3촌 병영스테이’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가 병영면의 빈집을 리모델링해 제공하고 청년들이 재능 기부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지역 문화를 체험한 청년들이 아예 이주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당뇨병인 조부모를 위한 건강한 피클을 연구하다가 강진 특산품인 여주를 알게 된 임고은 라라잇 대표는 서울시의 지역연계 청년창업 지원사업인 ‘넥스트로컬’에 선정돼 강진을 방문하게 됐다. ‘4도 3촌 병영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병영면 거주를 시작한 임 대표는 현재 강진에 정착해 병영시장에 레스토랑 ‘라라잇’을 열고 양식과 함께 여주 피클과 감 초콜릿 등 강진 농산물로 만든 상품을 판매하면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전통주 양조장을 운영하던 ‘ABBF’의 김휘은 대표 또한 강진군의 친환경 쌀로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3년 전 강진을 처음 방문했다가 지역살이의 매력에 빠져 지난해 집과 양조장을 모두 강진으로 옮겼다. 장미 강진군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청년 커뮤니티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외지에서 방문하는 청년이 늘어나면서 이들 중 일부가 강진군민이 되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자원 활용해 일자리 창출관광 등 지역 고유의 자원을 기반으로 사업체를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한 지역들이 지역경제력 부문에서 높은 순위 상승을 나타냈다. 강원 양양군은 서핑을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성장한 덕분에 사업체와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지역경제력 부문의 순위가 2014년 109위에서 2024년 63위로 상승했다. 양양군의 서핑 인구는 2019년 18만2500여 명에서 2023년 55만8900여 명으로 3배가량으로 증가했다. 전북 진안군은 2025년 개원 예정인 국립지덕권산림치유원과 연계해 산림치유식, 농산물생산·가공·유통, 여행·관광, 산림복지전문업 등의 분야에서 주민 주도의 창업을 지원했다. 지역 농산물로 만든 ‘산골 도시락’을 판매하는 ‘도슭담다’, 진안에 위치한 마이산 관광 기념품을 제작, 판매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마이개성 진안아트 협동조합’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진안군의 지역경제력 부문 순위는 2014년 147위에서 2024년 56위로 상승했다. 김보람 농림축산식품부 농촌공간계획과장은 “각 시군이 지역의 여건을 진단하고, 내년도 농촌공간 계획을 수립할 때 이 지역발전지수를 유용하게 활용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제=김현지 기자 nuk@donga.com김제=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김제=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

    • 2024-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DBR]기술과 휴머니티… AI로 ‘돌봄 경제’ 혁신 모색 나서다

    경기 포천에 홀로 사는 정연옥 할머니는 마을회관에 다녀오는 시간 외에는 주로 혼자 지낸다. 대화 상대가 없어 적적할 때가 많지만 최근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혹시 불편하신 점은 없으세요?” “네, 별로 없어요. 괜찮습니다.” 잠시나마 무료함을 달래주는 새 친구는 바로 인공지능(AI) 상담원이다. ‘AI 노인 말벗 서비스’를 통해 AI 상담원이 주 1회, 정 할머니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AI 상담원의 전화가 3회 이상 수신되지 않거나 “살기 힘들다”는 등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 등 위기 징후가 감지되면 담당 공무원이 즉시 현장 확인에 나선다. 고독사를 막기 위해서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AI 노인 말벗 서비스가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이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은 5000명에 이른다. 포천시 관인면에는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으로 어르신들의 안부와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AI 케어 서비스’도 시범 도입됐다. 관인면은 65세 이상 어르신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곳이다. 서비스 이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대면 심혈관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주기적으로 치매 검사도 받을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의료진이 직접 가정을 방문한다. ● 돌봄 서비스 중심에 선 AI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에서 ‘돌봄’은 가장 뜨거운 사회 이슈 중 하나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돌봄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각 지자체는 AI를 활용한 혁신적 돌봄 생태계를 구축하는 작업에 서둘러 나서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 도입 차원이 아니라 AI를 이용해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돌봄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AI 돌봄 서비스 확대에 앞서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AI의 윤리적 사용에 관한 법적 제도적 표준을 마련해야 하고 기술구현 비용 대비 서비스 효율성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정서적 유대감이나 인간적 감정이 중요한 돌봄 서비스를 사람이 아닌 AI에게 맡길 때 어떤 수준의 업무까지 맡길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또 AI 기술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AI 열풍이 불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 대다수의 경우, AI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보니 지나치게 불신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 ‘돌봄 경제 혁신’ 모색하는 경기도 AI에 대한 포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을 맞아 경기도는 ‘인공지능과 휴머노믹스(AI & Humanomics)’를 주제로 10월 24∼25일 이틀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경기글로벌대전환포럼’을 연다. 세계적 석학과 전문가들이 초청된 이 포럼에서는 인간 중심의 AI 활용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포럼 둘째 날인 25일 ‘돌봄 경제의 대전환(AI & The Human Touch)’ 세션에서는 AI 돌봄의 가능성과 한계, 공공 부문의 역할과 AI 돌봄 기반의 경제산업적 가치, 향후 과제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집중 토론이 펼쳐질 예정이다. 댄 호프먼 미국 버지니아주 윈체스터시의 시 관리자(City Manager)는 세션 메인 강의를 통해 뉴욕시의 AI 말벗 로봇 ‘엘리큐(ElliQ)’ 사례와 플로리다주 게인스빌시가 도입한 ‘AI 위험탐지 영상 센서’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노인, 어린이, 빈곤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러 가지 AI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AI 돌봄의 가능성과 한계, 공공 부문이 AI를 도입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짚을 예정이다. 전문가 패널 토의에 참석하는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 AI 기술의 기능과 한계에 대한 실질적 진단을 통해 지자체가 도입할 수 있는 최적의 AI 서비스 관련 이슈를 제기한다. 최 교수는 본보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한국의 강점은 촘촘하게 구축된 디지털 환경”이라며 “이러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돌봄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기본적인 돌봄 서비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AI를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AI 돌봄의 확산이 AI 산업계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한 산업 지원, 규제 개선, 인재 육성 및 표준화 및 인증 작업의 방향도 함께 논의된다. ● “기술 혁신과 인간 중심 가치 균형 찾기 서둘러야”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는 AI의 발전이 인류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벨기에 플랑드르주 디지털부 AI전문센터에서 활동 중인 아널리스 반더르호이동크스 자문역은 돌봄 경제 세션 전문가 패널 토의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AI 관련 위험을 관리하고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예정이다. 공공 서비스를 실행하는 조직과 인력이 AI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꾸준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필요성도 언급한다. 돌봄 경제 세션을 주관한 김하나 경기도 복지국장은 “AI 돌봄의 미래는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기술 혁신과 인간 중심의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공동기획 경기도}

    • 2024-10-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김현지]‘기업은 사회의 것’ 실현할 성숙도가 관건이다

    ‘한국 기업사(史)에 보기 드문 기업 지배구조 모범생’으로 불리던 유한양행의 최근 행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견제와 균형을 통한 성장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이루기 힘든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유한양행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이념 아래 창업주 일가는 재단 일에만 관여하고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소유 경영 분리 구조를 확립했다. 유한재단은 유한양행의 최대주주이자 공익재단이다. 회사가 수익을 많이 내면 재단에 돌아오는 배당도 많아진다. 재단을 통해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다. 창업주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유한양행은 독특한 최고경영자(CEO) 승계 방식을 만들었다. 대표이사 사장은 3년 중임만 허용된다. 회장직은 창업주와 그의 오른팔이었던 연만희 고문 퇴직 이후 사라졌다. 권력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 유한양행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회장·부회장 직제를 부활시켰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세계 시장에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내수 중심 회사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려면 장기적 관점의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임기가 정해진 대표이사 사장이 대형 투자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우수 인력을 선제적으로 유치하려 해도 번번이 주주총회를 개최해야 하는 등 민첩한 경영활동에 현행 정관이 걸림돌이 된다면 정관을 바꾸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회사의 도약을 위해 회장 직제가 필요하다는 조 대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회사 안팎에서는 의구심에 찬 눈길이 쏟아진다. 회장 직제가 현 지배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한 리더십의 폐해를 조심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 경영자의 독단이 경영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고 잘못된 결정에 대해 견제장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회사는 사지로 몰릴 수 있다. 올해 1월 회사 매각으로 60년 오너 경영의 막을 내린 남양유업이 대표적이다. 사실 어떤 지배구조가 좋은 지배구조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기업마다 제반 여건이 다르고 이상적 지배구조를 구축한 것 같더라도 경영 환경이 달라져 지배구조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오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중요한 것은 ‘책임 경영’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제도를 찾아가는 일이다. 각 기업에 맞는 지배구조를 찾는 데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24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신임 회장이 취임사에서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로 꼽는 게 지배구조 개선이다. 1995년 민영화, 2008년 금융지주 설립으로 지배구조를 바꿔온 KB금융지주 역시 여전히 이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 방안을 고민한다.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한 어떤 제도적 틀을 만드는 일은 그 틀을 만든 취지를 실천하기 위해 기업 구성원의 성숙도를 끌어올리는 일의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엔 부단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유한양행의 이번 실험이 많은 이의 우려를 딛고 또 다른 모범적 지배구조의 본보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현지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 nuk@donga.com}

    • 2024-03-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김현지]포스코, 새 CEO 임명때부터 차기 회장 승계 계획 짜라

    포스코 회장 선임의 역사는 일명 ‘주인 없는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리스크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포스코의 회장도 자의 반 타의 반 옷을 벗었고 한 번 선임된 회장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참호 구축(entrenchment)’에 몰두했다. 회장이 교체될 때 뒷말이 나오지 않은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1968년 설립된 포스코는 2000년 정부가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완전 민영기업으로 재탄생했다. 회장 5명이 민영화된 포스코를 이끌었다. 5대 유상부 회장은 1차 임기를 마친 후 연임에 성공했으나 타이거풀스 주식 매입 의혹 사건을 포함한 정경유착 논란 속에 2차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했다. 6대 이구택 회장 역시 연임했으나 정권 교체와 함께 남은 임기를 7대 정준양 회장에게 넘겼다. 정 회장은 정치권 실세의 이권을 챙겨준 혐의를 받는 등 외압과 외풍에 시달리다가 역시 임기 만료 전 사의를 밝혔고 8대 권오준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9대 최정우 회장은 참호 구축 논란에 발목 잡힌 사례다. 참호 구축이란 경영자가 자리 보전에 유리한 판을 짜기 위해 이사회를 측근으로 채우거나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행위를 말한다. 전투지에서 참호를 파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8월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 멤버를 이끌고 초호화 캐나다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입건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차기 회장 후보 리스트에서도 제외됐다. 지난해 4월에는 18년 만에 부활시킨 자사주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주요 임원들과 함께 100억 원 상당의 자사주를 받았다. 회사 측은 “임원들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전사적 비상경영체제 아래 소수 임원에게만 인센티브가 주어지자 포스코 노조가 거세게 반발했다. 학술지 ‘국제 비즈니스 및 금융 연구(Research in International Business and Finance)’의 연구에 따르면 CEO의 참호 구축 행동은 경영 성과가 부진한 상황에서도 CEO에게 과도한 보상을 안기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말 많고 탈 많은 승계 리스크의 대물림을 끊어내려면 지금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경영 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연구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훨씬 전에 승계 계획을 수립하라”며 승계 계획은 신임 CEO가 임명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HBR Korea 5-6, 2021) 승계 프로세스가 탄탄하면 외압과 외풍에 휘둘릴 여지가 적다. 사내외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이사회가 승계 프로세스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미리 손보고 조정할 수 있어야 뒤탈 없는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마스터카드의 전 CEO 아제이 방가는 CEO 직을 맡기 전 마스터카드 이사진과 인터뷰를 할 때부터 언제 어떻게 후임자에게 직을 승계할지 논의했다고 한다. HBR 보고서에 따르면 잘못된 CEO 교체로 인해 미국 S&P 1500 기업에서 연간 1조 달러에 가까운 시장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 되풀이되는 회장 선임 흑역사 때문에 날아간 포스코의 시장 가치는 얼마나 될까. 김현지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 nuk@donga.com}

    • 2024-02-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김현지]딥페이크는 죄가 없다… 문제는 유통이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로 기대를 모으던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이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미국 인기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을 음란한 사진에 합성한 가짜 이미지 사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성적 발언을 하는 가짜 영상 사건이 잇따르면서 딥페이크 기술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총선을 70일 앞둔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딥페이크 영상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수십 명 규모의 특별 전담반을 꾸려 단속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딥페이크를 활용한 가짜 뉴스가 선거 결과에 치명타가 될 수 있어서다. 정치권은 누군가 작정하고 딥페이크 영상물을 퍼트릴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크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딥페이크 영상물의 피해를 줄이는 열쇠는 콘텐츠 유통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데 있다. 딥페이크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딥페이크 기술 자체보다 딥페이크 이미지가 소셜서비스 플랫폼을 타고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합성 사진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게시되자마자 순식간에 온라인에 퍼졌다. X 측이 원본 삭제 조치를 취한 시점엔 이미 4700만 회 이상 조회된 상태였다. 기시다 총리 동영상은 일본 동영상 사이트인 ‘니코니코’에 올라왔다가 몇 시간 뒤 X에도 게재되며 하루 만에 조회수 232만 회를 찍었다. 피드가 약한 플랫폼에서 머물렀다면 파급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에릭 슈밋 전 구글 CEO는 과학기술 전문 매거진 ‘MIT 테크놀로지 리뷰’ 최신호에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잘못된 선거 정보에 맞설 수 있는 방법 6가지를 제시했다.(원제: ‘Eric Schmidt has a 6-point plan for fighting election misinformation’) 가장 먼저 할 일은 악성 계정을 파악하는 것이다. 슈밋 전 CEO에 따르면 콘텐츠가 네트워크에 유입된 시간과 IP주소를 알면 악성 계정 정보는 적잖이 확보할 수 있다. 이런 계정들은 알고리즘 우선순위를 낮춰 해당 계정이 올린 콘텐츠가 확산될 여지를 주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AI로 만든 이미지를 판별하는 기능을 갖추는 것은 꼭 필요해 보인다. ‘스팸 위험’ 표시가 뜨는 전화번호에 대해 미리 조심하게 되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가 딥페이크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은 경우 이를 미리 알려주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시스템적 접근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선 인력을 투입해 해결하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추가 고용이 필요한 일이라 회사는 부담스럽겠지만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좋은 방법이다. 잇따른 딥페이크 사건의 여파로 X나 구글 등 해외 업체는 딥페이크 탐지 구상을 밝히며 신뢰를 높이려 애쓰는 데 반해 네이버, 카카오, 네이트 같은 국내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다. 딥페이크 사건이 해외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으니 아직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곧 닥쳐올 미래의 일에 손놓고 있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다. 국내 회사들도 AI 시대에 걸맞은 설계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정보 유통망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현지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 nuk@donga.com}

    • 2024-01-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