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

박민우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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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에서 자동차팀과 IT팀 데스크를 맡고 있습니다. 치우치지 않게 취재하고 쉽게 쓰겠습니다.

minwoo@donga.com

취재분야

2025-06-28~2025-07-28
칼럼51%
경제일반30%
금융10%
인사일반3%
기업3%
산업3%
  • [광화문에서/박민우]트럼프 관세-이재명 법인세… 안팎에서 날아든 이중청구서

    대미 상호관세 유예 기한이 딱 일주일 남았다. 미국 측은 당장 25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 2+2 통상 협의’도 돌연 취소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대로 협상이 공전하면 다음 달 1일부터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제품에 25% 상호관세 딱지가 붙는다. 이런 상황에 국내 기업들은 세금 청구서를 또 하나 받아들게 생겼다. 이재명 정부가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될 정부 세제 개편안에 담길 가능성이 높은데 기업들 입장에선 상호관세 부과를 목전에 두고 이재명발 ‘법인세 서한’을 받는 셈이다. 글로벌 관세전쟁 와중에 세수 기반을 확대하겠다며 법인세율을 올려 자국 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건 치명적인 자해 정책이 될 수 있다. 고율의 관세는 단순히 수출 감소에 그치지 않고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는 것처럼 미국 내 투자가 늘면 한국 내 생산 기반이 약화하고, 중소·중견 협력업체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과 달리 현지화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낙오되면 좀처럼 버티기 어렵다. 그간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해온 제조업 기반이 해체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로 경쟁력 있는 해외 기업들을 유인하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면서 국내 기업들을 밖으로 떠밀고 있다. 현행 국내 법인세 최고세율은 24.0%로 미국(21.0%), 일본(23.2%), 대만(20.0%)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5%)보다 높다. 구윤철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인세 인하 이후 세수 감소가 컸다”며 “감세가 반드시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구 부총리의 말처럼 지난 2년간 법인세 수입은 41조 원이나 급감했지만 그가 문제로 지적한 세수 결손은 경기 침체와 저수익 구조를 피하지 못한 대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근본 원인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3년 수조 원대 적자를 낸 탓에 지난해 3월 법인세로 ‘0원’을 신고했다. 재계에서는 ‘불황이 얼마나 심각하면 올해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내는 곳이 수출기업이 아닌 한국은행이겠느냐’고 자조한다. 정부는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연간 2조 원가량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기업의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새 정부가 목표로 하는 ‘코스피 5,000’ 시대 역시 기업 실적 회복과 가치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요원한 길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세율 복원’이 아니라 ‘기업 활력 복원’이다. 정부는 불필요한 면세, 감면제도를 정비해 세원을 넓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첨단 전략산업에 대해서는 생산세액공제 등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릴 만한 과감한 세제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은 기업의 구조적인 경쟁력을 회복하고 산업 재편을 가능케 할 첫 단추가 돼야 한다.박민우 경제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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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스테이블코인 기대로 언스테이블해진 시장

    요즘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변동성이 큰 기존 가상자산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안정적(stable)인 것이 특징이다. 달러화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1 대 1로 페깅(pegging·가치 고정)하는데 발행량만큼 현금이나 단기 국채 등 고유동성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쌓아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미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은 서울 명동이나 N서울타워에 설치된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와 서클(USDC) 등을 원화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금융 계좌가 없는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족에게 송금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으로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이미 일상으로 스며든 스테이블코인은 법제화를 앞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지니어스 법안’이 지난달 상원을 통과했고, 다음 주 하원에서 심의가 이뤄진다. 한국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포함된 데다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이 임명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율 등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문제는 시장의 과도한 기대감이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시장에서는 시중은행과 빅테크를 중심으로 관련 상표권 출원 경쟁이 잇따르고 있다. 수혜주로 주목받은 카카오페이는 5월 중순까지 3만 원 안팎에 머물던 주가가 지난달 9만 원을 넘어섰고 두 차례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대한 인프라나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이 묻지 마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급등락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본래 목적과 정반대인 불안정한 시장이 펼쳐진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정부와 통화당국의 엇박자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대로 약화될 수 있는 통화 주권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과 금융 안정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 화폐 기능을 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민간 은행이나 비금융회사가 무분별하게 발행하게 되면 한은 통화정책의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달러화와 달리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 거래에 있어 활용도가 낮고 환율 변동성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존재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을 더 쉽게 만들고 의도치 않게 통화 주권을 더 약화시킬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일각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이재명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부합하는 정책 수단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채를 담보로 손쉽게 발행할 수 있는 ‘소비 진작용 디지털 바우처’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혁신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무리하게 속도전으로 밀고 나간다면 시장을 안정시키기는커녕 또 하나의 투기 장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특히 금융 시스템은 정책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분별한 투기 심리가 가세하지 않도록 시장의 기대를 안정시키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의 편익과 위험의 균형을 찾는 제도를 설계해야 뒤탈이 없다.박민우 경제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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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슈퍼 추경만큼 급한 한계산업 구조개혁

    정부는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30조 원 규모의 ‘슈퍼 추경’을 발표하고 전 국민에게 1인당 최대 5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단기적으로 소비가 늘어 돈이 돌면 침체된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본 것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영양실조 상태인 가계에 보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체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증상을 잠시 완화하는 대증요법에 그칠 수밖에 없다. 추경만큼이나 급한 것이 한계산업의 구조 개혁이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건강한 새살이 돋게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철의 도시’로 불린 경북 포항의 포스코 1선재공장이 45년 만에 멈춰 섰다. 전남 여수 석유화학 산단의 굴뚝에선 연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중국의 무차별적인 저가 공세, 미국의 보호무역과 관세 장벽, 그리고 고비용 구조로 인한 국제 경쟁력 약화가 한꺼번에 덮치면서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 경제를 떠받쳐 온 제조업의 근간(根幹)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의 위기를 단순한 ‘다운 사이클’(침체기)로 치부해선 안 된다. 기술 생태계와 생산 인프라가 송두리째 붕괴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한번 사라진 뿌리 산업을 되살리긴 어렵다. 미국이 고율의 관세를 무기로 뒤늦게 제조업 부활을 꿈꾸고 있지만 이미 늙어버린 노동력과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할 공산이 크다. 국제 통상 질서가 국가 주도로 바뀌고 경쟁국들이 자국 산업에 대한 파격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런 글로벌 산업 정책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한국은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잃어버린 6개월’을 보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믿음직한 ‘집도의’가 돼야 한다. 때마침 산업 재편의 신호탄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여당이 석유화학 특별법을 발의했고, HD현대그룹과 롯데케미칼의 빅딜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설비 산업의 특성상 자율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은 단순히 돈을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간이 비효율적 자산을 과감히 도려내고 경쟁력 있는 핵심 자산을 살려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구조 개혁은 과감하면서 동시에 섬세해야 한다. 단순히 설비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핵심 기술과 인재의 끈을 잇고, 전후방 산업 생태계를 함께 재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배터리 등 첨단 산업도 여전히 ‘철’과 ‘화학’이라는 토대 위에 있다. 스마트공장도 철강 없이 세워지지 않고, 전고체 배터리도 석유화학 기술의 진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산업 재편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자동차와 반도체, 해운 등 과거 정부가 주도했던 빅딜 실패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다. 행정부 내에도 큰 그림을 그리고 과감하게 산업 정책을 수행할 만한 구조조정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계산업 구조 전환을 국가가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제 그 약속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가계에 주는 지원금과는 달리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구조개혁에는 고통과 저항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예리한 감각으로 산업의 맥을 짚고, 한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할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박민우 산업1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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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이대로 K브레인과 작별하면… ‘골든타임’ 영영 놓친다

    “그때 중국 학계의 제안을 받았을 때 갔어야 했나 봐요.”서울의 한 명문사립대 명예특임교수의 이 하소연에 오늘날 과학기술계가 마주한 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학은 이공계 석학으로 알려진 그가 정년을 마치고도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실질적인 연구 지원을 받지 못하는 허울뿐인 자리였다. 그는 한국에 남은 선택을 후회한다고 했다.과학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지금 해외에선 유능한 젊은 과학자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석학들에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연구비와 고액 연봉, 주택수당 등을 보장하겠다며 손짓하고 있다. 이에 적지 않은 국내 과학자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최근 동아일보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진행한 공동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석학 200명 중 61.5%가 최근 5년 이내 해외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 가운데 42%는 실제로 제안을 수락했거나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국내 과학기술계를 지탱해 온 굵은 뿌리들이 하나둘씩 뽑혀 해외로 떠나고 있는 셈이다. 제안을 받지 않은 학자들조차 80% 이상이 향후 제안이 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해외 영입 기관들은 연구자 맞춤형 조건을 제시하면서 한국 석학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젊고 유능한 과학자에겐 파격적인 연봉과 연구비를 제안하고, 정년을 앞둔 석학에겐 장기적인 연구 환경을 보장하는 식이다.반면 한국은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과 정년 후 활용 제도 부재, 불필요한 행정 절차로 연구자의 등을 떠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렁이는 R&D 정책은 연구자들에게 불안을 안기고, 연구비 계약조차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은 해외 이탈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논문 하나보다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제안서, 성과보고서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연구에 몰입할 수 있겠냐”며 한국을 등진 젊은 과학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해외로 떠나는 이들은 단순한 ‘개인’ 연구자가 아니다. 특히 석학들은 수십 년간 쌓아온 연구 역량과 노하우, 학계 네트워크를 통째로 갖고 떠난다. 이들의 성과는 영입 국가와 기관의 이름으로 논문에 실리고, 특허와 지식재산권도 타국에 넘어갈 공산이 크다. 결국 과학기술 패권 시대에 국가 경쟁력이 잠식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석학들을 ‘작은 연구소’이자 국가의 자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 바로 과학기술계의 ‘골든타임’이다. 인재를 지키지 못하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제 단기적 예산 배분이나 화려한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젊은 연구자든 정년을 앞둔 석학이든 ‘여기서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국가 경쟁력이며, 인재 유출을 막는 가장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이다.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과학기술 예산을 삭감하면서 미국 내 과학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는 지금이 한국에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인재와 작별하지 않으면서 역량을 갖춘 재미 과학자들과 해외 인재에게 손을 내밀어 과학기술 패권 국가로 도약할 든든한 패를 확보해야 한다.박민우 산업1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5-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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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를 위한 AI… ‘2025 동아 인공지능-혁신 아카데미’ 개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는 ‘2025 동아 인공지능·혁신(AI & INNOVATION) 아카데미’가 15일 개강식을 열었다. 동아일보가 국내 산업 및 금융계 리더들의 AI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올해로 2회째다.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개강식에는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 임직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화’ 저자인 김지현 SK경영경제연구소 부사장이 ‘AI를 활용한 비즈니스 혁신’을 주제로 첫 번째 특강을 진행했다. 원우들은 7월 중순까지 10주에 걸쳐 데이터 및 AI 전문가인 차경진 한양대 교수와 김대식 KAIST 교수, 알고리즘랩스 손진호 대표 등 AI 전문가들의 특강을 듣게 된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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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가성비 좋은 피지컬 AI’… 중국산 휴머노이드의 공습

    1984년 개봉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SF 영화 ‘터미네이터’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T-800’이 나온다. 보디빌더 출신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터미네이터의 피지컬(Physical)은 거의 완벽해 보였다. 근육질 몸매에 가죽재킷을 입고 선글라스까지 쓴, 인간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로봇이라니. 인공지능(AI) 컴퓨터 ‘스카이넷’이 만든 T-800은 2029년 미래에서 날아온 모델이다. 머지않아 터미네이터와 같은 수준의 피지컬 능력으로 무장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무섭도록 파괴적인 AI 혁신이 디지털에서 피지컬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조연설에서 “로봇의 챗GPT 모먼트가 다가오고 있다”며 ‘피지컬 AI’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피지컬 AI는 물리적인 세계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판단해 실제 환경에서 활용되는 AI 기술로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자율주행차와 같은 실물 하드웨어에 탑재된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만 갖췄을 뿐 걷기나 제한적인 작업만 가능했던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피지컬 AI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면서 데이터를 생성·축적하고 학습해 스스로 진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이미 각종 산업 현장에 침투해 있다. 특히 테슬라와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 부품 선택과 운반, 검사에 이르는 생산 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했다. 지난해 5월 자체 개발한 ‘옵티머스’ 2대를 공장에 시범 투입했던 테슬라는 올해 최대 1만 대를 생산하기로 했다. 또 매년 생산량을 10배로 늘려 내년에는 월 1만 대, 2027년에는 월 10만 대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당장 2년 후부터 수백만 대에 달하는 생산직 휴머노이드 로봇 군단이 노동시장을 점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달 “옵티머스가 연간 100만 대 이상 생산되는 시점에 대당 제조 원가는 2만 달러(약 2900만 원) 이하로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저비용 AI 모델 ‘딥시크 쇼크’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중국은 휴머노이드 상용화 부문에 있어서 만큼은 미국에 앞서 있다. 중국 로봇업체 유니트리가 내놓은 최신 모델 ‘G1’은 1만6000달러에 불과하지만 초속 2m로 달리고 용접이나 프라이팬 뒤집기 같은 고난도 작업도 할 수 있다. 지난달 중국중앙(CC)TV가 주최한 춘제 갈라쇼에서는 이전 모델인 ‘H1’ 16대가 무용수 16명과 합동 공연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 CEO가 지난달 CES 기조연설에서 공개한 14개 파트너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가운데 6개가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미국이 만든 건 4개뿐이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발표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53억 위안(약 1조 원)인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2029년에는 15배 수준인 750억 위안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년 뒤 중국의 휴머노이드 군단이 가장 먼저 취업할 곳은 한국이 될지도 모른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가 이뤄졌지만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노동력 부족이 어느 곳보다 심각한 탓이다. 그때 우리가 만든 로봇과 기술은 중국산 휴머노이드의 침공을 방어할 수 있을까. 박민우 산업1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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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소니의 ‘아이팟 모먼트’

    스마트폰이 없던 고등학교 학창 시절 가방 속에 늘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녔다. 그때만 해도 소니 워크맨이 풍미하던 시절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96학번 대학 새내기로 나왔던 배우 수지의 CD플레이어가 소니 D-E777. 당시 내가 썼던 모델은 2001년 나온 소니 D-EJ1000이었는데 그땐 몰랐다. 그해 처음 출시된 애플의 아이팟(MP3플레이어)이 소니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 한때 일본의 전자업계 그 자체로 불렸던 소니는 자만에 빠진 채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2003년 4월 25일과 28일 2거래일 동안 주가가 27%가량 폭락하는 ‘소니 쇼크’를 맞았다. 반면 애플은 2007년 ‘아이폰’까지 출시하면서 모바일 시대를 활짝 열었다. 소니는 애플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 ‘아이팟 모먼트’ 이후 소니가 부활하기까지 딱 20년이 걸렸다. 다시 태어난 소니는 더 이상 워크맨과 바이오(VAIO) PC, 트리니트론 TV 등 하드웨어를 팔던 가전업체가 아니었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관련 소프트웨어 매출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 소니는 일본 2위 완성차 업체 혼다와 만든 합작사 소니혼다모빌리티를 통해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전기차 ‘아필라1’를 공개하기도 했다. 소니뿐만이 아니다. 십수년간 와신상담한 일본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이번 CES에서 종합가전기업 파나소닉은 AI 기반 사업 비중을 2035년까지 30%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카메라 기업 니콘은 렌즈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식기를 세척하는 주방 로봇을 만들고, 섭씨 영하 180도의 극한 기온에 견딜 수 있는 달 탐사용 카메라를 공개했다. 일본 도요타그룹도 눈앞의 수익성보다 AI의 확장성에 베팅하고 있다. 이번 CES에서 AI 기반의 첨단 실험 도시인 ‘우븐시티(Woven City·그물망 도시)’의 1단계 준공 소식을 알린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은 “돈을 못 벌어도 괜찮다”며 인류에게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실험할 ‘테스트베드’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21세기 초반 아이팟과 아이폰 모먼트에 처참하게 실기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탓일까. 2022년 ‘챗GPT 모먼트’ 이후 일본 산업계의 대응은 어느 나라보다 더 절실해 보인다. 특히 지난해 12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기자회견을 열고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규모의 대미 AI 투자를 약속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눈빛에선 절실함을 넘어선 승부사적 기질이 느껴졌다. 앞서 손 회장은 2019년 7월 방한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 정부와 기업은 그리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안타까운 건 뒤늦게라도 AI에 집중케 할 국가 리더십마저 공백 상태라는 현실이다.박민우 산업1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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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불법사채, 또 사후약방문… ‘서민 급전창구’ 더 넓혀야

    “고 부장 40만 원, 조 대리 90만 원….” 싱글맘 박정미(가명·35) 씨가 남긴 8장짜리 유서에 빼곡히 적힌 채무 기록들. 처음 빌린 돈은 고작 40만 원이었다.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서울 성북구 ‘미아리텍사스’에서 일하던 그는 뇌졸중을 앓고 있는 70대 아버지를 대신해 유치원생 딸을 돌봐주던 육아도우미에게 줄 돈을 융통할 길이 없어 불법 사채에 손을 댔다. 동아줄인 줄 알았지만 끝내 숨통을 죄어 오는 올가미였다. 순식간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기한 내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자 ‘1분에 10만 원’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이자가 붙었고, 그때부터 악랄한 추심이 시작됐다. 박 씨의 지인은 물론이고 딸의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몸을 판다’는 내용의 문자를 수백 통씩 보냈다. 그 후 보름도 채 되지 않아 박 씨는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딸에게 남기고 홀로 세상을 떠났다. 박 씨의 소식이 전해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12일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경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 추심을 뿌리 뽑고, 금융당국은 서민 금융 지원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서민들이 불법 사채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수년째 사후약방문 데자뷔를 보는 느낌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불법 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도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라며 분노했다. 앞서 정부는 2022년 8월 불법 사채업자의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함께 목숨을 끊은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공분이 일자 ‘불법 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 바 있다. 정부의 거듭된 엄포에도 효과는 신통치 않다. 금융감독원이 접수한 불법 사금융 관련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2021년 9918건에서 2022년 1만913건, 지난해 1만3751건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10월까지 1만2398건이 접수돼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취약계층은 계속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떠밀린 저신용자만 최대 9만1000명으로 추산된다. 제도권 최후의 창구인 대부업체가 사실상 대출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법정 최고금리가 2021년 7월부터 20%로 묶인 상황에서 고금리 장기화로 조달 금리가 높아지고, 연체율은 치솟아 사업성이 크게 악화된 탓이다. 대부업체 신용대출 잔액은 2022년 7월 10조3786억 원에서 올해 9월 8조594억 원으로 22.3% 급감했다. 같은 기간 신규 신용대출을 내주는 대부업체도 64곳에서 37곳으로 쪼그라들었다. 저신용자에게 최대 100만 원 한도로 돈을 빌려주는 ‘소액생계비 대출’에 대한 홍보와 지원을 대폭 확대해 사회 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 지난해 3월 출시된 이후 소액생계비 대출자는 급증하고 있다. 연체율도 8월 말 기준 26.9%로 지난해 말(11.7%) 대비 2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금융당국이 대출 이용 횟수 제한을 없애면서 대출 수요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돼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추가 재원 마련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서민들의 급전 창구라는 취지에 맞게 현재 상담 예약 후 5일가량 걸리는 대기 시간도 가능한 한 축소해야 한다.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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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이름만 남은 존재감… 족보 없는 지역축제

    최근 일본 규슈 남부의 가고시마현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이 많다고 한다. 지인도 이곳에 다녀왔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쓰마번(가고시마현 일대)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가 주요 여행 테마다. 하급무사 출신으로 개혁가이자 사상가, 또 사업가였던 사카모토는 일본의 막부 체제를 끝내고 일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를 세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카모토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도쿄 미나토구 소프트뱅크그룹 본사에는 사카모토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풍운아 사카모토의 삶에 푹 빠진 지인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기리시마(霧島)에서 온천욕도 즐겼다고 했다. 에도 막부 말기인 1866년 사카모토가 부인 나가사키 료(楢崎龍)와 함께 허니문으로 다녀간 기리시마 온천은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여행담과 함께 가고시마에서 유명하다는 ‘이모조추’(고구마 소주)에 대해서도 듣다 보니 언젠가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매혹적인 스토리텔링에 이끌려 외국인도 찾는 기리시마 온천과 달리 대전 유성온천은 내국인들에게도 외면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처음 개발해 1913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유성온천은 1970년대 국내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각종 유흥시설이 난립하면서 휴양의 이미지는 퇴색됐고, 발길을 이끌 만한 스토리텔링도 부족했다. 결국 손님이 점점 줄면서 대표적인 숙박시설인 유성호텔마저 올해 3월 109년 만에 폐업하기에 이르렀다.지역 경제를 살리고 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줄 지역축제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역으로 갈수록 더 심각한 저출생, 고령화 때문이다. 1997년부터 열린 부산 ‘기장멸치축제’와 2009년부터 이어온 강원 속초시 ‘상도문마을 벚꽃 축제’는 올해 열리지 않았다. 관람객을 맞이할 마을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명맥이 끊긴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올해 8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주민의 지역축제 참가율은 2019년 대비 9.6% 줄었다. 같은 기간 외부 관광객의 1인당 소비액도 12.7% 감소했다.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지키고 알리던 주민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방 소멸은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단절시키고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애향심도 퇴색시킨다. 지역적 특색이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지자체가 과연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지역 소멸에 대응해 행정 통합이 이뤄지고 초광역권이 형성되면 지방 소도시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최근 경북 김천시는 설문조사 결과 김천이라는 지명이 ‘김밥천국’의 줄임말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시가 주도해 ‘김천김밥축제’를 기획했다. MZ세대들이 호응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한편으론 서글프다. 지역의 존재감을 특산물도 명소도 아닌 이름(지명)으로 규정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의 제안처럼 경남 진주시에서는 주얼리(보석), 충북 청주시에서는 청주(술) 축제를 여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김 한 장 나오지 않는 내륙도시 김천에서 족보 없는 김밥을 먹는 것보다 더 값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지역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요즘 국내 지방에선 찾기 힘든 관광객들이 왜 이름도 생소한 일본 소도시를 찾아다니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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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老老갈등 사각지대… 시골마을 경로당

    2년 전 가을, 스웨덴의 연금개혁 사례를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스웨덴 연금 수급자들을 만나러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서쪽으로 50km가량 떨어진 그네스타의 노인회관 ‘파워후세트’를 찾아갔다. 경로당에 가보는 건 30여 년 만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한 탓에 초등학교를 마치면 늘 경로당에 있는 할머니에게 가서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민화투나 점당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소일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봤다. 옆에서 종일 할머니가 화투 놀이하는 걸 지켜보는 게 어린 마음엔 지겹기도 했다. 노인 복지 강국이라는 스웨덴의 경로당은 무엇이 다를까 궁금했다.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건 똑같았지만 손에 든 건 화투장이 아니라 뜨개바늘이었다. 시설도 훨씬 크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경로당 주변 1km짜리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매주 금요일에는 디지털로부터 격리된 노인들에게 모바일과 컴퓨터 교육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경로당 운영 주체였다. 파워후세트는 스웨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인 조직인 스웨덴연금수급자단체(PRO)와 스웨덴노인협회(SPF)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PRO는 사회민주당 계열의 비영리조직이고, SPF는 사민당을 제외한 연합 조직이다. 연금 수급자 단체는 경로당만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PRO는 1986년 여행사인 ‘그랜드 투어’를 설립해 회원 연령대에 맞춘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성인 평생교육 시설인 공민학교(folkh¨Ogskola)도 운영한다. 심지어 복권 사업도 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연금 수급자 단체가 5곳이나 있다. 파워후세트에서 만난 마가레타 베리달 PRO 그네스타 지부 대표(72)는 “연금 수급자 단체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우리의 목적은 노년의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라며 “노인들의 활동과 만남을 주선하고 갈등은 중재하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한다”고 설명했다. 불현듯 스웨덴 경로당에서 취재한 기억이 떠오른 건 올해 초복인 7월 15일 경북 봉화의 한 경로당에서 발생한 ‘농약 커피’ 사건의 씁쓸한 뒷맛 때문일 거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숨진 80대 여성 A 씨를 피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지난달 30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경로당에서 주로 화투 놀이를 했는데 A 씨와 다른 회원들 사이 갈등과 불화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인했다”고 했다.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는데 한국의 경로당 문화는 수십 년째 화투 놀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인 간 세대 갈등이 커지고 고독과 빈곤,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이 늘면서 사소한 갈등이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5년 7월 경북 상주시 ‘농약 사이다’, 2016년 청송군 ‘농약 소주’, 2018년 4월 포항시 ‘농약 고등어탕’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의 경로당 6만8000여 곳의 운영을 사실상 독점하는 대한노인회가 초고령사회 노인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도 노인 공동체 서비스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인지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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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필리핀 이모에 아이 맡기고 야근하는 사회 바람직한가

    홍콩은 51년 전인 1973년 외국인 가사관리사(헬퍼) 제도를 도입했다. 가정에 입주해 보통 주 6일 근무하는 이들에겐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월 100만 원 안팎이면 고용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 덕분에 맞벌이 부부들의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홍콩의 맞벌이 부부들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선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가 최근 홍콩 현지에서 만난 켈빈 우 씨(35)는 외국인 헬퍼를 고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로펌에 다니는 아내가 출산 후 육아를 위해 회사에 재택근무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께 신세를 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우 씨 부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지 대신 돌봐줄 사람은 아니었다. 돌봄 서비스 이용 가격이 아무리 낮다 해도 가족도 아닌 낯선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홍콩의 이런 사례를 보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오히려 자녀 양육의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장시간 근로를 정당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비용에 돌봄을 외주화할 수 있다면 회사는 직원들의 육아 참여를 장려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굳이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유연근무를 허용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는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명확했다. 홍콩에선 1990년대 중산층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고용이 10년 새 3배로 증가했다. 그 결과 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5%포인트 이상 늘었다. 하지만 2012년 1.28명이었던 홍콩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 0.88명으로 1명 밑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5명까지 추락했다. 합계출산율 세계 꼴찌인 한국(0.72명)과 큰 차이가 없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한 싱가포르(0.97명)와 대만(0.87명) 등도 지난해 역대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한국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 같다. 인구 소멸의 위기를 함께 맞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의 말처럼 영감(inspiration)이 아닌 땀(perspiration)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전히 장시간 근로가 미덕으로 여겨지고, 또한 회사 내 지위와 승진과도 연결된다. 한국도 불필요하게 너무 오래 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1901시간으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칠레 다음으로 길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9.4달러로 1위인 아일랜드(155.5달러)의 32.8% 수준에 불과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자녀를 맡기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과 비용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본질적인 지향점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처럼 근무 효율을 높이고 자녀에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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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필리핀서 온 ‘육아 구원투수’, 강남에 쏠려서는 안 된다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구원투수’가 한국에 왔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4주간의 특화교육을 받은 뒤 다음 달 3일부터 국내 돌봄리그에 본격적으로 등판한다. 필리핀 이모들의 활약으로 합계출산율 0.6명대 초저출산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이들이 합숙한다는 장소에 눈길이 간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들은 시범사업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인근 공동 숙소에서 생활한다. 1인당 월세는 1인실 43만∼49만 원, 2인실 38만∼40만 원 수준이다. 왜 하필 서울에서도 땅값 비싼 강남일까 궁금했다. 서울시는 25개 구 가운데 강남구가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필리핀 이모들의 비싼 몸값이 떠오르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대부분 강남에서 일하게 될 분들이 아닌가. 필리핀 이모들의 시급은 최저임금(9860원)에 4대 보험료 등을 반영한 1만3700원꼴이다. 주 5일 8시간씩 일하면 월급으로 238만 원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 30대 가구의 중위소득이 509만 원인 걸 감안하면 소득의 절반가량 써야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가사와 돌봄을 부담할 시간은 없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가구가 필리핀 이모들을 독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나 ‘4세 고시’라고 불리는 영어유치원 입학 레벨테스트를 준비하거나 영유에 다니는 자녀를 둔 강남 부모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영어 교육까지 겸할 수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매력적일 수 있다. 이번 시범사업에 총 751가구가 신청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부모, 다자녀, 맞벌이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이용 가구를 선정하겠지만 그 전에 표본인 신청 가구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같은 일부 지역에 신청이 쏠리진 않았는지, 또 월평균 소득은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말이다. 필리핀 이모들이 고소득층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필리핀 이모들의 월급을 대폭 깎아야 할 수도 있다. 홍콩과 대만, 싱가포르에선 개별 가구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사적 계약 방식으로 직접 고용한다. 고용주가 이들에게 식사와 주거를 제공해야 하지만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시간당 평균 임금은 홍콩 2800원, 대만 2500원, 싱가포르 1700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지난해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을 대상으로 업무 만족도를 설문한 결과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홍콩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고용이 급증한 1990∼2000년 0∼5세 자녀를 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5%포인트 넘게 올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면 한국은 2022년 기준 20, 30대 여성의 82%가 월급이 가사 및 육아 도우미 비용의 120%(약 300만 원)에 미치지 못해 퇴직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한국도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사적 계약을 허용하고, 별도의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 인권 침해나 불법 이탈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 이모의 최저임금을 지키는 것보다 한국 젊은이들이 엄마 아빠가 되는 기회비용을 줄여주는 게 더 시급하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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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청년들의 로맨스 파괴하는 사회

    인생을 바꿀 기회는 누구에게나 세 번 주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배우자로 누굴 만나느냐, 그 배우자와 어떤 아이를 낳느냐. 이 중에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배우자 한 명뿐이다. 주로 기혼 꼰대들은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그만큼 결혼 상대가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똘똘한 한 채’가 답이 돼 버린 요즘 세상에는 같은 아파트 입주민 중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지난해 8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초고가 아파트 얘기다. 이곳 입주민들은 올해 4월 결혼정보회를 결성해 첫 정기모임을 가졌다. 입주민 당사자와 자녀 등 가족을 대상으로 가입비 10만 원에 연회비 30만 원을 받고 맞선을 주선해준다고 한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반포동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입주민끼리 사돈을 맺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된다. 이곳 전용 84㎡는 올해 4월 42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요즘같이 초저출산 시대에 이곳에 사는 외동딸과 외동아들이 만난다면 어떨까. 이들이 양가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게 될 수십 년 뒤 ‘똘똘한 두 채’는 얼마가 돼 있을까.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달 첫째 주까지 15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전셋값이 치솟는 가운데 하반기(7∼12월)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전면 개편 카드를 꺼내들면서 핵심 입지 부동산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 진입장벽이 낮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반면 가격 회복세가 더딘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수도권 및 지방 아파트는 침체가 지속되면서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결국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로맨스를 믿고 있지만, 강남 아파트 입주민과 결혼하는 시골 청년은 가뭄에 콩 나듯 할 것 같다. 개천에 나는 용보다 드물지 않을까. 청년들의 로맨스를 파괴하고 있는 건 정부의 똘똘치 못한 정책이라고 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문재인 정부 때 가만히 있다가 벼락거지가 된 청년들은 또다시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에 ‘영끌’ 매수에 나서고 있다. 말려도 모자랄 판국에 정부는 ‘빚내서 집을 사라’며 판까지 깔아줬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올해 4∼6월 석 달간 15조 원 넘게 늘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버팀목 대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 1%대 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신생아 특례대출은 출시 5개월 만에 6조 원 가까이 신청이 몰렸다. 이런 상황에 금융당국은 대출 한도를 수천만 원씩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2단계 시행(7→9월)을 불과 엿새 앞두고 두 달 연기했다. 정부는 소상공인 연착륙을 위한 조정이었다고 해명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혼란을 자초한 실책을 반성해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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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 1년 추가 연장

    전세사기 피해자가 주택 구입 목적으로 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의 규제를 완화해 주는 조치가 1년간 연장된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정례회의에서 ‘은행업 감독규정’ 등 5개 규정의 일부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안정 지원을 위해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조치를 내년 6월 말까지 1년 연장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거주 주택을 낙찰받거나 신규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완화된 LTV·DSR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LTV는 비규제지역에 한해 60~70%에서 80%까지 완화된다. 4억 원 한도 내에서 주담대에 대한 DSR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적용하지 않는다. DSR은 연소득 대비 연간 원리금 상환액 비율로 대출액이 1억 원을 넘으면 차주당 40%로 규제되고 있다. DTI는 연소득 대비 주담대 원리금 비중을 나타내는 수치로 DSR와 달리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이 포함되지 않는다. 금융위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한 규제를 적용해왔다. 다만 전세사기 여파가 이어지고 있어 피해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이같은 지원 조치를 연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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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요즘은 한국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지난달 한국 증시는 국제적인 왕따로 전락했다. 글로벌 주요 증시의 상승 랠리 속에서 유독 한국만 소외됐다. 미국 나스닥지수(6.88%)는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의 ‘깜짝 실적’에 힘입어 역대 최초로 1만7000 선을 넘어섰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2.30%)는 사상 처음으로 4만 선을 돌파했다. 지난달 대만 자취안지수(3.81%)와 홍콩 항셍지수(1.78%), 일본 닛케이평균주가(0.21%) 등도 상승세를 탔지만 코스피(―2.06%)만 홀로 추락했다. 글로벌 훈풍을 거스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에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건 악재가 아니라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내놓은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맹탕’이란 비판 속에 시장의 회의론만 키웠다. 강제성이 없어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세제 인센티브가 불확실한 탓에 기업들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한국 증시를 불확실성 속에 절뚝이도록 만든 책임이 적지 않다. 지난달 K증시 홍보차 미국 뉴욕을 찾은 그는 “개인적인 욕심이나 계획은 6월 중 공매도를 일부 재개하는 것”이라고 했다가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투자 기법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민생토론회에서 “확실한 부작용 차단 조치가 구축되지 않으면 (공매도를) 재개할 뜻이 전혀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는 듯한 이 원장의 발언에 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대통령실은 “이 원장의 개인적인 희망일 뿐”이라며 ‘6월 공매도 일부 재개’ 가능성을 일축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전면 금지된 공매도 재개 시점에 대해 ‘정책 엇박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하락했다. 이 원장은 이후 수차례 해명했지만 그마저도 모호했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인적 욕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단계적으로 일부 공매도 재개가 가능한지 검토가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의 공매도 전면 금지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공매도 재개는 필요하다. 하지만 금융시장을 감독하는 수장의 발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개인적 희망’을 전제로 운을 띄울 일은 결코 아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갖는 공직자의 사견은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나 정책 변경 가능성 등과는 명확하게 구분돼야 한다. 특히나 공식 석상에서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는 사견은 삼가는 게 맞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경제 페르소나’로 불린 이 원장은 정권 초기 ‘관치’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대표적인 실세 관료로 금융권에 상생 금융을 밀어붙였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으면서도 다선 국회의원에 대한 라임 펀드의 특혜성 환매 의혹을 제기하고, 총선 과정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양문석 의원(경기 안산갑)의 새마을금고 편법 대출 의혹 검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독립기관인 금감원에 대한 신뢰는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 원장도 레임덕(lame duck)을 걱정해야 할 때다.박민우 경제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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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박민우]중앙은행들의 新골드러시에 한국은행이 뛰지 못한 이유

    “남들 금(金) 사재기할 때 뭐 하셨습니까? 11년 넘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올해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게 이런 질책이 쏟아질 것 같다. 금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022년 11월 온스당 1618.3달러였던 금 선물 가격은 이달 12일(현지 시간) 2448.8달러까지 올랐다. 1년 5개월여 만에 51% 넘게 오른 셈이다. 실제로 이 기간 각국 중앙은행들은 공격적으로 금을 사들였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1082t(역대 최대), 1037t의 금을 사들였다. 2016∼2021년 연평균 매입량(457t)의 두 배 이상을 매년 사모은 것이다. 특히 중국은 2022년 11월 이후 17개월 연속 금을 매입하고 있다. 이 기간 사들인 금만 314t에 달한다. 이런 신(新)골드러시를 한은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픈 기억 때문이다. 2010년 국회 국감에서 김중수 한은 총재는 13년 넘게 그대로인 금 보유량(39.4t)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하면서 금값이 치솟던 시점이었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했다. 이후 한은은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금 90t을 집중 매입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국감장에서 ‘금을 사랑한 총재’로 불린 김 전 총재는 ‘뒷북 투자’를 했다며 또 한 번 탈탈 털렸다. 한은의 금 투자 이후 금값이 급락하면서 약 1조2000억 원의 평가손실(―21.5%)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한은이 금 가격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국가적 손실을 입혔다”고 몰아붙였다. 김 전 총재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10년 후를 보고 고민한 것”이라고 했다. 정말 수년이 흐르고 금값이 오르자 당시 한은의 금 투자가 재평가받긴 했다. 그렇지만 그때 입은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현재 한은의 금 보유량은 104.4t으로 11년째 그대로다.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1.52%에 불과하다. 중국(2235.4t)과 일본(846.0t)은 각각 4.33%, 4.37%이고, 경제 규모가 비슷한 대만(423.6t)도 4.32%에 달한다. 이런 탓에 작년부터 금 보유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그런데도 한은 외자운용원은 작년 6월 발표한 ‘보유 금 관리 현황 및 향후 운용 방향’에서 “금 보유 확대보다는 미 달러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며 듣지 않았다. 당시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 수준으로 전 고점에 근접해 향후 상승 여력이 불확실하다던 한은의 전망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게 오래된 트라우마 탓이 아니라면 부족한 실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자산 다각화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금 보유 비중을 일정 수준까지 확대해 환율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향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와 미 대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기조 강화 가능성, 그에 따른 달러화 평가 절하까지 고려해야 한다. 뒤늦게 금 사재기 행렬에 뛰어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격 변동성이 큰 만큼 전처럼 상투를 잡으면 트라우마만 더 악화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금 투자 원칙과 방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금 가격 흐름을 좀 더 정교하게 예측하고, 전략적으로 매입 시점을 판단해야 한다. 박민우 경제부 차장 minwoo@donga.com}

    •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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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잇단 사법 리스크에… 카카오페이, 美증권사 인수 무산

    카카오페이가 추진해온 미국 종합증권사 ‘시버트’에 대한 경영권 인수가 최종 무산됐다. 카카오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해외 인수합병(M&A) 계획이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19일 양 사 간 합의에 따라 시버트 지분 인수를 위한 2차 거래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20일 계약 변경사항을 공시했다. 카카오페이는 올해 4월 시버트 지분 51.0%를 두 차례에 걸쳐 약 1039억 원에 사들이기로 계약을 맺고, 5월 지분 19.9%를 취득하는 1차 거래를 마쳤다. 나머지 지분에 대한 거래는 내년 중 2차 거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었다. 카카오페이가 시버트 경영권 인수를 포기한 건 모기업 카카오에 대한 사법 리스크로 2차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주식 시세 조종 의혹으로 올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CIO)가 구속된 데 이어 김범수 창업자(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와 홍은택 당시 총괄 대표까지 같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카카오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자 시버트는 지난달 “2차 거래를 종결하기 어려운 ‘중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는 서신을 카카오페이에 보내왔다. 2차 거래를 위해서는 먼저 시버트 주주총회 승인과 미국 규제 당국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선행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카카오페이의 시버트 인수 계획이 좌초하면서 유럽 최대 차량 호출·택시 플랫폼 ‘프리나우’ 인수를 추진하는 카카오모빌리티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경영진뿐만 아니라 법인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돼 기존에 보유한 카카오뱅크의 1대 주주 지위도 위태로운 상황이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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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커머셜, 투자금융 자산 6000억 눈앞

    현대차그룹 금융 계열사 현대커머셜이 투자금융 시장 진출 4년 만에 자산 규모 6000억 원을 눈앞에 뒀다. 내부수익률(IRR)은 14.3%, 누적 투자수익은 1200억 원을 넘어섰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9월 말 기준 현대커머셜의 투자금융 자산은 5939억 원으로 집계됐다. 현대커머셜은 2019년 상반기(1∼6월) 투자금융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사모펀드(PEF)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기업투자를 취급하는 투자금융실을 신설했다. 당시 투자금융 자산은 30억 원 수준이었지만 전문가를 영입해 조직을 키우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4년 만에 6000억 원가량을 불렸다. 현대커머셜은 안정적 분산을 통한 수익률 11%+알파(α)를 투자 원칙으로 세웠다. 또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적극적인 글로벌 분산 투자전략을 수립했다. 투자 실적이 검증된 글로벌 운용사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해외투자 비중을 늘렸다. 국내에서 해외투자 비중이 절반을 넘는 여신전문금융사는 현대커머셜이 유일하다. 안정적인 현금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사모신용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수익률 보강과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기업인수와 성장자금 투자전략을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형 부동산 운용사(GP)와도 협업을 시작했다. 해외 유수의 자문사로부터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 전략에 대해 검증을 받으며 리스크 관리 수준도 높이고 있다. 현대커머셜 관계자는 “적극적인 글로벌 분산을 통한 차별화된 투자전략으로 시장에 다소 늦게 진입했는데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글로벌 운용사와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공동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통제된 리스크하에서 수익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도록 투자금융 사업을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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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한금융 핵심 서비스 한곳에”… ‘신한 슈퍼 솔’ 통합 앱 출시

    신한금융지주는 18일 신한금융의 핵심 서비스를 한곳에 모은 모바일 앱 ‘신한 슈퍼 솔(SOL)’을 선보인다. 이 앱은 신한금융의 은행·카드·증권·라이프(보험)·저축은행 등 5개 계열사 앱의 핵심 기능을 융합한 통합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출 또는 투자 금액을 입력하면 신한 계열사의 최적 상품과 금리·한도 등을 추천받아 상품 가입까지 할 수 있다. 신한금융 통합 멤버십 서비스(신한플러스)의 할인·제휴 혜택도 그대로 신한 슈퍼 솔 앱에서 받을 수 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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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워크아웃제 ‘3년 연장’…기촉법 개정안 정무위 소위 통과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이 법정관리로 가기 전 신속하게 자율적 회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제도를 2026년까지 3년 연장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채권단 75% 이상 동의로 일시적 유동성을 겪는 기업에 만기 연장과 자금 지원 등을 해주는 워크아웃 제도의 근거가 담긴 기촉법은 지난달 15일 5년 일몰 기한이 도래해 실효(失效)됐다. 기촉법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돼 실효와 재재정을 거쳐 6차례 운영됐다. 최근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국면에서 기촉법이 사라지면 한계기업들의 회생이 어려워져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정부·여당은 일몰 연장을 위한 재입법을 촉구해왔다.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자에 대한 재산권 침해 등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여야는 이날 극적으로 일몰 연장에 합의했다.정무위 법안소위는 기촉법 일몰 기한을 2026년 10월로 정했다. 다만 기촉법 반대 의견을 고려해 기존 발의안보다 기간은 단축하고, 기업 회생 과정에서 법원의 역할을 확대하는 개편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부대의견으로 넣었다. 기촉법 개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야 합의가 이뤄진만큼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9일 이전에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부로 이관돼 윤석열 대통령을 재가를 거쳐 이르면 연내 기촉법이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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