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수십차례 폭발음… 마감공사중 페인트-시너 연쇄 발화 추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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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
6월 완공 목표 마무리작업 한창, 지하2층 엘리베이터 인근서 발화
순식간에 건물 전체에 연기 꽉차 진화 난항… 5시간 넘게 걸려
용접 안전무시 책임론 나올수도

29일 경기 이천시 모가면에 있는 신축 물류센터 건물 밖으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신축 공사 중이던 이 건물 지하 2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오후 11시 현재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29일 경기 이천시 모가면에 있는 신축 물류센터 건물 밖으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신축 공사 중이던 이 건물 지하 2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오후 11시 현재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29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물류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는 ‘펑’ 하는 폭발음이 수십 차례 터져 나왔다. 불꽃과 검은 연기에 휩싸인 건물은 수백 m 밖에서 폭발음과 연기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29일 오후 11시 기준 최소 38명이 목숨을 잃은 이번 화재 현장에서는 5시간 넘게 불길이 잡히지 않아 혼란이 극에 이르렀다.

○ “동료 구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역부족”


소방청 등에 따르면 화재는 이날 오후 1시 32분경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발생했다. 관계기관의 현장조사 보고에 따르면 불이 처음 시작된 곳은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의 냉동 창고 겸 사무동 지하 2층. 여기서 작업했던 하청업체 직원들은 “지하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인근에서 우레탄폼과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을 하던 중 엘리베이터 안에서 불이 났다고 들었다”고 했다.

함께 지하 2층에서 작업하다가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있던 A 씨는 폭발음을 듣자마자 동료를 구하러 다시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급하게 엘리베이터 인근 기계실에서 일하던 동료에게 전화하니 “형님, 불길 때문에 못 나가니 벽 좀 깨주세요”라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A 씨는 다른 동료 1명과 서둘러 내려가려 했지만, 이미 전기가 끊기고 연기가 가득 차 진입이 불가능했다. A 씨는 “미로처럼 공사 현장이 복잡하다. 연기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동료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구조를) 부탁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당시 지상 4층, 지하 2층에 연면적 1만1043m²(약 3340평) 규모의 건물 공사 현장에선 올 6월 완공을 목표로 직원 78명이 투입돼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옆 건물 창고동에서 작업하던 건설근로자 강성태 씨(52)는 “폭발음을 듣자마자 ‘사고가 났구나’ 직감하고 바깥으로 뛰어나왔다. 사무동에 온통 불길이 번져 있었고 새까만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고 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 약 150m 떨어진 체육공원에서 근무하던 이모 씨(51)도 “폭발음과 연기가 상상을 초월했다”고 전했다. 이 씨는 “길 건너편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들려 뛰어나갔다. 건물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화산처럼 뿜어져 나오는 걸 봤다”고 했다. 폭발음 직후 건물에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몇몇은 온몸이 연기에 검게 그을린 채 콜록댔다고 한다.

○ 연쇄 인화와 맞바람 탓에 진화 어려워

사고 발생 약 11분 뒤인 오후 1시 43분경 이천소방서 선발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건물 안에 여러 명이 고립돼 있는 걸 파악했지만, 불길과 연기가 거세 곧장 구조에 착수하지 못했다. 54분경 후발대가 도착하고 이어 지원대도 가세하며 동원된 소방인력은 335명으로 늘어났다. 구조대는 오후 2시 12분경 인부 2명을 처음으로 구했다. 중경상을 입은 10여 명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 와중에도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인근 주민은 “첫 폭발음 이후에도 크고 작은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고 했다. 마감공사 중인 건물에 있던 페인트와 시너 등 인화성 물질에 연쇄적으로 불이 옮겨붙으며 불길이 더욱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이 난 직후 지하 2층을 가득 채운 연기는 빠르게 건물 전체로 퍼졌다. 건물 2층 이상에서 작업하다 숨진 이들만 26명이었다. 공교롭게도 건물 쪽으로 맞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유독가스가 창문으로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연기가 건물 안에 가득 찼다고 소방당국은 진단했다. 처남이 3층에서 우레탄폼 작업을 하던 도중 숨졌다는 60대 김모 씨는 “같은 층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며 망연자실했다.

소방당국이 초기 진화에 성공한 것은 불이 난 지 2시간 56분 만인 오후 4시 31분이었다. 이후에도 건물 모든 층의 잔불을 잡는 작업을 벌여 오후 6시 42분 불은 모두 꺼졌다.

○ “용접 전 환기-커버 안 한 듯”


소방당국과 경찰은 지하 2층에서 용접 도중 불꽃이 튀어 인화성 물질인 우레탄폼에 옮겨붙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화재 원인을 정밀 조사하고 있다. 현장의 증언을 종합하면 지하 2층에선 우레탄폼 발포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지침에 따르면 우레탄폼 작업을 할 땐 화재 예방을 위해 건물 안 유증기(기름 성분이 많이 섞인 공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환기 장치를 완비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인근에서 용접 작업을 할 땐 불꽃 방지 커버를 씌워야 한다. 만약 공사업체가 이를 감안하지 않고 용접 작업을 실행했다면 관리감독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천=이경진 lkj@donga.com·한성희 / 조건희 기자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마감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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