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년 전 이란 출장을 갔을 때다. 수도 테헤란에서 목적지까지는 차로 7시간 거리. 한국의 지방도로 같은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중간에 주유소에 들렀다. 기름값은 우리 돈으로 L당 100원 안팎. 하지만 에어컨도 없는 버스는 꼬박 한 시간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유류탱크에서 기름을 뽑아 올릴 전기가 끊긴 때문이었다. 이란은 1908년 중동에서 상업적 유전이 처음 발견된 곳이다. 그러나 거대 산유국은 그렇게 빈곤했다.
#2. 중국 연수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이란인 A가 갑자기 베이징의 한국국제학교에 대해 물어왔다. 해외에 계속 눌러앉을 생각으로 아들 둘을 보낼 국제학교를 찾다 학비가 제일 싼 한국국제학교가 눈에 들어왔단다. 한국국제학교는 국제학교라고는 하지만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한국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곳이다. 사정을 설명해줬더니 난감한 기색이었다. A는 독실한 무슬림이었지만 귀국할 생각이 없었다. 이란을 제재하는 미국도 싫지만 부패한 혁명세력은 더 싫다고 했다.
최근 이란에서 민간 여객기 격추를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그 이면에는 경제난이 자리하고 있다는 소식이 내겐 ‘정해진 미래’처럼 들렸다. 신정(神政)국가도 결국엔 먹고사는 문제로 평가 받는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전제왕조가 전복된 자리에 신정일치국가가 들어선,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우다. 이는 이란의 시아파 교리 때문이기도 하다. 시아파는 수니파와 달리 ‘일반 신도는 선악 판별을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성직자의 언행을 따라 배워야 한다’는 타클리드(모방)에 근거한다. 성직자의 언어가 곧 율법이다. 군인이나 정치인 대신 국외추방 조치로 파리 근교에서 칩거 중이던 호메이니가 혁명 지도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서쪽(미국)에서도 동쪽(옛 소련)에서도 구하지 마라”며 물질과 금전이 아닌 도덕적 위신을 갖춘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하자고 했다. 이랬던 신정국가가 지금은 도덕적 위신이 아닌 물질과 금전 때문에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란이 혁명이라는 터널의 출구 근처에 있다면 요즘 우리는 그 입구에 막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민주화 이후로 집권세력이 입법과 사법까지 장악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권력지형은 ‘촛불혁명’의 결과물이고, 다음 총선은 촛불혁명의 완성이라고들 한다. 여당 원내대표는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적 패권 교체까지 이룩하겠다고 했다.
혁명을 완성하든, 패권을 바꾸든 방법이야 상관없다. 국가가 지금보다 부강해지고 생활형편이 나아진다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혁명 운운하며 오래된 신념체계로 현실을 가리려는 것 같아 불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인사회에서 “우리는 조금 느리게 보이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일부 통계에서 소득5분위 배율이 개선됐고, 고용률이 높아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하위계층의 생활고가 심화됐고 부의 불평등 정도가 악화하고 있으며 고용시장은 뭔가 단단히 고장 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함께 가지도 못했고, 더 빠른 길을 택하지도 않은 채 그냥 느리게만 간 게 아니었을까. 청와대의 온갖 회의에 다 참석하며 국정 현안을 꿰뚫고 있는 정무수석이 난데없이 주택거래허가제를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거나, 애초에 경제철학이 부재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현 집권세력을 지지했다가 이 정부 들어 등을 돌린 사람들은 ‘진보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자유로워졌다고들 한다. 신념이 아닌 현실의 잣대로 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신정국가 이란에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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