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 검은 것은 아름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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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1819년 그의 고향인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 대학을 세웠다. 버지니아대가 바로 그 대학이다. 그런데 그 대학 도서관에는 가장 위대한 미국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랭스턴 휴스의 편지와 원고 일부가 보관돼 있다. 묘하게도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수백 명의 노예를 소유했던 노예주가 세운 ‘제퍼슨 대학’에 노예의 후손인 재즈시인의 편지와 원고들이 있으니 그렇다. 역사는 그렇게 상처와 화해하며 흘러가는 것일까.

그런데 상처는 그리 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처는 유령처럼, 보이지 않다가도 여차하면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에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사건은 좋은 예이다. KKK를 비롯한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이 벌인 과격한 시위와 난동은 다시 한 번 노예제도의 망령을 불러들였다. 노예제도를 찬성하며 군대를 일으켰던 남부군 장군 로버트 리의 동상을 철거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일이다. 노예의 후손을 여전히 노예라고 생각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동상 철거를 방관할 리는 만무하다.

바로 이것이 도서관 속 휴스가 밖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대학 도서관이 아니라, 여전히 불의가 계속되는 삶의 현장이다. 그는 흑인들의 것인 재즈와 블루스를 닮은 시를 쓴 ‘민중시인’이었으니까. 그래서 누구보다도, 흑인들을 위한 시인이었으니까.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밤은 아름답다/내 민족의 얼굴도 그렇다./별들은 아름답다/내 민족의 눈도 그렇다./태양도 아름답다/내 민족의 영혼도 아름답다.’ 흑인들을 얼마나 냉대했으면 이렇게 애타는 시가 나왔을까. 불행하게도, 흑인들의 상처는 이 시가 쓰인 1920년대에도, 그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검은 것은 아름다워’ 운동을 전개하던 1960년대에도, 샬러츠빌 사건이 일어난 2017년 여름에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증오와 광기는 휴스가 ‘나도’라는 시에서 ‘나도 미국을 노래하고’ ‘나도 미국이다’라고 했던 절규를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절규로 만든다.

시인이 ‘어머니가 자식에게’라는 시 속에서 노래한 것처럼, 흑인들의 삶은 여전히 ‘수정계단’이 아니라 ‘못과 나뭇조각과 쪼개진 판자’가 널려 있고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어두운 계단이다. 버지니아의 공원만이 아니라 미국 국회의사당에도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이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가해의 역사와 상처는 치유되기는커녕 대물림되기도 한다. 이것이 샬러츠빌 사건의 본질이요, 역설이다. 시인의 말대로, 상처의 치유는 자꾸만 뒤로 ‘미뤄지는 꿈’일지 모른다.

왕은철 번역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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