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잘자요, 엄마’ 출연 모녀배우 윤소정-오지혜씨

  • 입력 2004년 5월 12일 18시 46분


코멘트
연극배우 윤소정(위) 오지혜씨 모녀. 윤씨는 “내 나이쯤 되는 여배우에겐 다들 연기 지적을 하길 꺼려하는데, 건방지고 대범한 딸의 지적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고 말했다. 오씨는 “가족들이 객석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다. 꽃다발보다 더 무서운 연기평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사진제공 이다
연극배우 윤소정(위) 오지혜씨 모녀. 윤씨는 “내 나이쯤 되는 여배우에겐 다들 연기 지적을 하길 꺼려하는데, 건방지고 대범한 딸의 지적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고 말했다. 오씨는 “가족들이 객석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다. 꽃다발보다 더 무서운 연기평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사진제공 이다
“내 삶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듣기 싫은 라디오를 끄듯 내 인생을 꺼버리는 거야. 잘 자요, 엄마.”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연극 ‘잘 자요, 엄마’ 연습장에서 만난 배우 윤소정씨(60)는 딸 오지혜씨(35)의 대사를 듣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뒤에도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모녀는 다음달 4일부터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잘 자요, 엄마’(연출 심재찬)에서도 엄마와 딸로 출연한다. 오씨는 윤소정씨와 연극배우 오현경씨(68) 부부의 딸. 모녀가 한 연극에 출연한 것은 1991년 ‘따라지의 향연’ 이후 처음이지만 당시는 두 사람이 무대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없었다.

이 연극(원제 ‘Night, Mother’)은 1983년 미국의 극작가 마냐 노먼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나 오늘 밤 자살하겠다”는 딸의 대사로 시작한다. 엄마는 딸에게 삶의 열정을 심어주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딸의 뿌리 깊은 외로움과 모녀관계의 속내가 고통스럽게 드러난다.

“처음엔 대본을 읽다가 목이 메여 제대로 읽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리 극중이라도 딸이 자살하겠다는데…. 그러나 진정한 배우라면 거기서 빠져나와 객관적 연기를 펼쳐야죠.” (윤소정)

모녀배우의 출연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살릴 수는 있지만, 자칫 ‘신파’로 흐를 위험도 있어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오씨는 “15년 전 박정자 윤연경씨의 공연을 보고 나도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와 공연하고 싶어 엄마에게 출연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오씨의 외할아버지는 영화배우였던 윤봉춘씨. 3대째 배우 가족인 오씨의 연기욕심은 유명하다. “데뷔 초기 한창 기대주란 평을 받고 있을 때, 음식점에서 누군가 ‘나도 저 집안 딸이라면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받은 칭찬의 8할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시도 나태할 수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두 사람에게 연기자로서 서로에 대한 평을 부탁했더니 거침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지혜는 발성이 좋고, 연기공부를 끝없이 하는 노력파다. 단지 좀 더 예뻤으면 잘 팔아먹었을 텐데 아쉽다(웃음).”(윤소정) “엄마는 내게 없는 섹시함과 여성스러움을 타고 났다. 그러나 연기는 너무 구닥다리다.”(오지혜)

그들은 엄마와 딸을 넘어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이자 멋진 친구처럼 보였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