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 교회' 박조준 목사 "교회가 제몫 못해 사회 혼란"

  • 입력 2002년 5월 24일 18시 33분


경기 성남시 분당의 갈보리 교회. ‘갈보리’는 라틴어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루살렘 교외의 골고다 언덕을 의미한다.

2000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이 교회는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는 ‘초교파 교회’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도 등록 신자 수는 1만여명에 이른다.

갈보리 교회와 박조준 담임 목사(68·사진). 둘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 목사만큼 성직자로서 영광과 오욕을 함께 겪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1973년 38세 때 고(故)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한국 ‘개신교의 장자(長子)교회’로 불리는 영락교회의 당회장이 됐다. 그는 보수적인 교회 분위기 속에서도 진보적인 사회적 발언과 정열적인 설교로 개신교의 ‘새로운 얼굴’이 됐지만 84년 외화밀반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락교회를 떠난 그가 1년 뒤인 85년 개척한 교회가 바로 갈보리 교회였다. 젊은 목회자 시절부터 좀처럼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를 최근 만났다. 84년 ‘사건’이후 일간지 인터뷰는 처음이다. 그는 최근들어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는 ‘세계 지도력 개발원’ 주최의 ‘제9차 목회자 리더십 세미나’를 마쳤다.

-이번 세미나의 취지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성경 말씀에 따르면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와 성직자, 신자가 많다고 이뤄지지 않습니다. 중세는 온 세상이 교회와 성직자, 신자로 가득했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교회가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자각이 중요합니다. 이 세미나는 성직자를 깨우자는 작은 운동입니다.”

-교회가 외형적인 성장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가 물질 문명의 유혹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본래 ‘교회는 세상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와 같습니다. 배는 물이 있어야 뜰 수 있고 존재할 수 있지만,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면 가라앉죠. 배로 들어오는 그 물을 계속 퍼내는 개혁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장로 교단에 오랫동안 계셨는데 초교파 교회를 표방하신 이유는 뭡니까.

“영등포 영은교회에서 6년, 영락교회에서 19년간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가 어느 교단 소속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제도와 조직에 얽매이지 않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습니다.”

-그 말의 상징적인 형태가 갈보리 교회입니까.

“갈보리 교회는 내 목회 생활에서 보면 일종의 ‘실험 코스’입니다(웃음).”

-그동안 독립교회의 모임인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기관연합회’를 주도하셨습니다. 이 연합회의 결성은 기존 교단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자는 것 아닙니까.

“정확하게 협의회입니다. 1년에 한번 모여 친목을 다집니다. ‘정치적’인 뜻은 전혀 없습니다. 참여하는 교회는 자유롭게 활동합니다. 그래서 독립교회 아닙니까.”

-과거 목회 활동을 한 영은교회, 특히 영락교회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전 담임목사 임기가 끝나면 그 교회와의 관계를 끝냅니다. 첫 목회를 한 영은교회나 영락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키운 교회라고 들락날락하면 새 담임목사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시대가 바뀌면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의 역할은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라는 것이고, 소금은 썩지 말라는 겁니다. 값나가는 게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것 아닙니까. 난 그 빛을 네거리의 ‘신호등’에 비유합니다. 신호등 자체는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신호를 지키면 사고없이 질서가 유지되지만, 따르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납니다. 교회는 고비가 있을 때마다 청신호와 적신호를 내야 합니다.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다면 교회가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겁니다.”

-과거 영락교회를 떠나게 된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구절절 밝히긴 그렇습니다.”

-79년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의 장례식을 집전하시기도 했는데요.

“차 실장과는 이상스럽게도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차 실장 어머니가 영락교회 권사이셨고 그 인연으로 차 실장이 죽었을 때 예배를 집전했습니다. 또 어디에서도 시신을 받아주지 않아 영락교회 묘지에 묻어줬습니다. 84년 ‘사건’은 군정과의 악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였습니다. 대통령을 수행하고 미국 대통령을 예방하자는 청와대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저도 이북 사람입니다만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이 왜 후방에 내려옵니까. 몇차례 거절한 뒤 한 호텔에서 열리는 국가를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목사들 표현입니다만 ‘영감이 없습니다’고 다시 거절했죠. 그 사건은 그 결과입니다.”

박 목사에게 외화밀반출사건은 ‘그 사건’이었다. 그는 자세한 언급을 피하면서 군정의 보복임을 강조했다.

“그 사건 이후 미국으로 가라는 권유를 여기저기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 뺏아라. 이제부터 내가 일어선다. 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나를 믿어주는 교인들에게 실망을 끼치기 싫었고 그 노력이 갈보리 교회가 된 겁니다.”

그는 인터뷰 중 마치 설교라도 하듯 상황에 딱 들어맞는 특유의 비유와 정열적인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교회가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에서 교회까지 매일 걷는 게 건강 유지의 비결이라고 했다. 기자가 집무실 뒤쪽 사진을 가리키면서 “젊었을 때 ‘미남 목사님’이셨겠다”고 묻자 그는 “10여년전 사진”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지 이제 머리가 하얗게 셌다.

-아드님이 대를 이어 목회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은 없었습니까.

“1남2녀를 뒀고 손자가 다섯입니다. 설령 내 아들이 목사가 됐어도 교회의 세습은 말도 안되는 겁니다. 한때 아들이 목회 공부를 했습니다만 잘 안 맞았습니다. 목회는 사명감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아들이 지금 비즈니스 쪽 일을 하는 데 그 일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친손자가 청각 장애가 있었는데 치료를 잘 받아 상태가 좋아졌습니다.애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맘 속에 정해둔 후계자가 있지만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한 평생 목회자로 사셨는데요.

“6·25전쟁 때 전투 중 우리 부대가 완전히 포위됐습니다. 그때 기도했죠. 목회자가 되기로 ‘웬만큼’ 결정했는 데 이번에 살려주신다면 ‘완전히’ 결정하겠다고…(웃음). 그 뒤 목사가 됐습니다. 남들은 이제 나를 ‘늙다리’ 목사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지금 ‘목회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갈보리교회 '리더십 세미나'▼

13, 14일 갈보리 교회에서 열린 ‘리더십 세미나’는 국내 개척교회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패널토의. 박조준, 이필재(미국 로스앤젤레스 토런스제일교회), 홍성개(서울 청량리 동도교회), 강일용(미국 로스앤젤레스 오렌지한인교회) 목사와 다양한 교단에 소속된 전국 67개 개척교회의 목사 107명이 참석했다.

이들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발언은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없이 초대형 교회가 많은 국내 개신교계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줬다.

“10년전 사고로 장애인이 됐고 목사까지 됐습니다. 목회자도 처와 자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세미나 휴식시간 중 다단계 사업을 하자는 전화 제의가 왔습니다. 내가 ‘어떻게 목사가 그런 일을 합니까’라고 했더니 목사님, 선교사님도 많다고 하더군요.”

한 목사(경기 용인)의 하소연이다.

10년간 목회 활동을 했다는 경기 이천시의 한 목사는 “현재 신자가 100여명인 데 그만 목회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하나님이 나를 제대로 부르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는다”고 토로했다.

토의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은 물론 목사로서의 자질과 효과적인 설교 방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뤄졌다.한편 이필재 목사는 답변 중 “한인 교회의 한 목사가 여신자의 이혼을 만류하다 그 신자가 거꾸로 이혼당해 재산상의 피해를 보자 고소를 당한 사례가 있다”면서 “한국 사회도 이혼이 급증하고 있는만큼 이혼 상담에 관한 적절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특수사역을 하고 있는 ‘새능력교회’(경남 거제군 하청면)의 김바울 목사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개척교회의 고통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갑식 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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