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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이래서 명작]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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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이래서 명작]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입력 2000-09-04 11:20수정 2009-09-2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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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자유인이고 해협을 건너면 6시간 만에 노예가 된단 말인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1667-1744)는 '드레이피어의 편지'에서 그렇게 썼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감각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어떤 삶이었길래 그가 이렇게 탄식해야 했을까? 스위프트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시기는 더블린에서 출생하여 대학교육을 마칠 때까지 아일랜드에서 보낸 22년 동안(1667-1689)의 삶이요, 두 번째는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에서 살면서 지적 성숙을 이루고 문학과 정치 양면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25년간(1689-1714)의 삶이며, 세 번째는 영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식민지 아일랜드의 척박한 현실과 거기서 비롯된 문제들에 치열하게 부딪치면서 문학적, 정치적 대응에 몰두한 시기(1714-1745)다. 스위프트의 삶은 이처럼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를 오간 내력을 통해 정리될 수 있고 그 내력에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서 두 나라 사이에서 겪은 정체성의 갈등과 두 나라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밑그림으로 자리한다.

◇아일랜드의 영웅, 아일랜드에 대한 절망

스위프트는 자신은 엄연히 영국인이며 다만 우연히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18세기 영국은 정치와 문학이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던 시기였다. 양쪽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당시, 스위프트에게는 영국 국교회의 주교 자리를 얻어 영국에서 살아야겠다는 일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치 않았다. 열정적으로 협력했던 토리당 정부가 그에게 수고의 대가로 제공한 것은 더블린의 성패트릭 대성당 주임사제직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바람과는 달리 아일랜드인으로 자기매김되었음을 깨닫고 그는 '비참한 아일랜드 속의 구질구질한 더블린'으로 돌아간다. 아일랜드로 돌아온 그는 주임사제로 봉직하면서도 한동안 원래의 소망, 영국의 가까운 친구들, 런던 중심부에서의 분주한 생활에 대한 깊은 회한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스위프트에게 새로운 중대한 일거리를 제공했다. 식민지로 수탈당하는 아일랜드의 참담한 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1720년대에 그는 아일랜드 사태에 대한 일련의 팜플렛을 썼다.

1724년은 이런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이 극적으로 정치적 승리를 엮어낸 해였다. 휘그당의 수상 월폴이 투기업자 우드를 내세워 아일랜드에 새로운 화폐로 우드의 동전을 사용하기를 강요하자 스위프트는 단순, 솔직한 더블린의 포목상 드레이피어를 가장해 '드레이피어의 편지'를 발표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이 글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자에게 현상금을 준다고 나섰다. 대다수 아일랜드인은 스위프트가 저자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고발해 현상금을 타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인들의 적극적인 동조에 힘입어 일약 아일랜드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에 대한 스위프트의 태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크게 변한다.〈겸허한 제안〉에는 아일랜드인들의 나태, 사치 및 도덕적 방종에 절망한 나머지 자신이 어떤 합리적인 제안을 하든 소 귀에 경 읽기일 것이라는 절망적인 체념이 낭자하게 배어 있다. 한 살된 아이를 잡아먹자는 끔찍한 제안은 그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사나운 주임사제

또한 스위프트는 국교회 성직자이면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지독한 풍자가였다. 설교문의 스위프트와 풍자문을 쓴 스위프트는 너무 달라서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공적으로 주장하고 옹호한 바를 그는 풍자문을 통해 훼손하고 모독하는 야릇한 성향을 내보였다. 공적인 글이 구심적, 권위주의적, 독백적이라면 풍자문은 원심적, 회의적, 대화적이다. 그가 '패러디를 이용한 풍자'를 애용한 것은 상반되는 두 면모를 관계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공인되지 않은 기이한 견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그 견해를 패러디하는 전통적이며 확립된 견해를 제시한다. 요컨대 스위프트는 자신의 불온하고 유해한 생각을 표출할 때 위험한 적을 가장해 마치 적이 그런 생각을 토로하는 것처럼 만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 표현에 따르는 위험을 피하거나 최소한 발뺌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든 것이다. 스위프트의 풍자가 갖는 특유의 힘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자기 내부의 이 같은 갈등과 모순을 익히 알았던 스위프트는 자신의 이미지를 '사나운 주임사제'로 표현한 바 있다. 이렇듯 삶을 모순덩어리로 체험하고 인식했던 그가 사물을 두 겹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한데 그는 모순을 조화시키거나 초월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것을 우려내 예술로 빚어내는 쪽이었다.

전매특허처럼 간주되는 아이러니 또한 이와 같은 이중적 비전에서 비롯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스위프트는 분열된 존재였다. 그의 풍자스타일 또한 분열의 단면이었다.

◇Gulliver's Travels

걸리버는 낯선 세계를 구경하고픈 욕망을 억누를 수 없어 항해에 나선다. 그의 여행은 네 나라를 거치고 장장 16년 7개월이라는 긴 세월에 이르는 험난한 것이다. 먼저 자신보다 12배나 작은 릴리펏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거창한 야욕과 교활한 음모에 휘말리면서 그는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럽고 야비한 유럽인을 생각한다. 반면에 자신보다 12배나 큰 브롭딩낵 사람들을 보고서는 인간 육체의 추악한 면들을 새삼 깨닫는다.

떠다니는 섬 라퓨타에서는 현실의 필요에 근거하지 않고 사변과 공상에 빠져든 과학자들의 허망한 삶을 목도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애국자를 자처하던 걸리버는 변한다. 마지막 방문국 휘늠의 나라에서 그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즉, 이성에 따르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휘늠족을 연모한 나머지 영국으로 돌아갈 것을 단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휘늠족 사이에서 휘늠처럼 살기를 열망하던 걸리버는 결국 이상한 야후로 판정되어 추방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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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번< 한림대학교 영어영문학 교수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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