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百里者半九十(행백리자반구십)’이라는 말이 있다.
行(행)은 원래 ‘네거리’라는 뜻이다. 네거리는 반듯하게 일정한 방향으로 열을 지은 길이다. 여기에서 ‘行列(행렬)’ 혹은 ‘行列(항렬)’이라는 의미가 나온다. 네거리에는 또한 상점이 많았으므로 ‘가게, 상점’이라는 뜻도 갖게 된다. 오늘날의 ‘銀行(은행)’은 ‘銀(은)을 사고 파는 상점’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 물건은 銀 몇 냥짜리다’와 같이 銀이 가격의 기준이었다. ‘洋行(양행)’은 ‘서양식 상점, 신식 상점’이라는 뜻이다. ‘네거리’에는 또한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므로 ‘行’은 ‘가다, 돌아다니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가운데 ‘行百里者半九十’의 ‘行’은 ‘가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行百里者’는 ‘백 리를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半(반)’은 원래 ‘절반’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절반으로 여기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九十’의 뜻은 ‘구십’이지만 앞에 ‘백 리’라는 말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구십 리’가 된다. 그러므로 ‘半九十’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여기다’라는 의미가 된다.
의미를 모으면 ‘行百里者半九十’은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 나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가 된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면 백 리를 다 갈 때까지 꾸준한 노력이 이어질 것이며, 눈앞의 결과에 초조하지 않을 것이다.
자라는 다리가 짧아서 엉금엉금 기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라도 천리를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한자뿌리읽기’는 294회로 마치며 올해부터 허성도(許成道) 서울대 중문과 교수가 ‘한자이야기’를 집필합니다.
▽필자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동 대학원 석사 박사 △서울대 중앙도서관장 △한국중어중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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