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민족과 김일성 민족[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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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박산 단군릉에는 북한이 단군이라고 주장하는 유골이 전시돼 있다. 사진 출처 우리민족끼리
평양 대박산 단군릉에는 북한이 단군이라고 주장하는 유골이 전시돼 있다. 사진 출처 우리민족끼리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남쪽에 와서 새로 익힌 공휴일 중 하나가 개천절이었다. 북에 있을 때 노동신문을 통해 가끔 남북이 단군릉에서 개천절 공동 기념행사를 열었다는 뉴스를 보기는 했지만 이날이 휴일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노동신문도 직책이 높은 간부들에게나 보급되기 때문에 한국에 온 탈북민 중에는 개천절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적잖다. 지금도 북한 달력에는 개천절이 따로 표시돼 있지 않다.

만약 김일성이 100일만 더 살았다면 개천절은 남북이 함께 쉬는 공휴일이 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김일성이 생전 말년에 단군 복원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1993년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단군을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태어난 신화 속 인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1993년 10월 노동신문에 평양 중심에서 약 40km 떨어진 평안남도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에서 단군과 그의 부인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단군을 실존 인물로 재탄생시킨 것은 전적으로 김일성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일성은 1992년 9월 단군 전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듬해 1월에는 강동에 있는 단군릉이란 묘비가 세워진 무덤을 파보라는, 보다 구체적인 과제를 주었다. 북한 매체들은 이런 상황들을 두고 김일성의 ‘천리혜안의 예지’였다고 주장한다. 또 파라는 곳을 팠더니 86점의 남녀 유골이 발견됐으며, 뼈를 측정한 결과 5011년(±267년) 전 사람이었는데 시기로 볼 때 단군이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을 나는 전혀 믿지 않는다. 한국 학계에서도 북한의 유골 연도 측정 방법의 과학적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나는 다른 여러 이유로 북한의 주장이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수령님이 지시한 곳을 팠는데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직언할 간 큰 역사학자가 북에는 없다. 게다가 김정일까지 여기에 개입했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고령의 수령님 기대를 실망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커 북측 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단군을 발굴하지 못했다고 하면 처벌을 면하기 어렵고, 발굴했다고 하면 인생이 바뀔 포상을 받을 판인데 어용학자들이 무슨 짓인들 못했을까.

단군 유골을 발견했다는 보고에 김일성은 무척 흥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일성은 사망하기 전까지 1년 반 동안 단군릉 복원과 관련해 무려 40여 차례에 걸쳐 지시를 쏟아냈다. 1993년 9월에는 현장에 직접 나가 단군릉 복원 장소를 낙점해 주기도 했다. 사망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에도 김일성은 단군릉 설계 수정안에 직접 사인했다. 그 결과 복원 단군릉은 1994년 10월 11일에 1.8km² 크기의 방대한 면적에 가로 50m, 높이 22m로 준공된다. 북한은 이후 평양이 우리 민족의 발상지라며 민족사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대동강 유역은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심지로서 이 지역에서 발전한 ‘대동강 문화’는 세계 5대 문명의 하나로 당당히 꼽히고 있다”는 황당한 논리까지 만들어냈다.

이처럼 김일성이 말년에 단군신화에 보인 관심과 이후 북측이 ‘대동강 문화’까지 주창하고 나선 것을 봐선 김일성이 조금만 더 살아 있었다면 개천절을 북한의 공휴일로 지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은 타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정일은 단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김정일은 단군릉 복원식이 열린 지 불과 닷새 뒤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족보는 ‘김일성 민족’ ‘태양 민족’ ‘김정일 민족’으로 정리됐으며 1996년 ‘주체’ 연호까지 도입하게 된다. 김정일은 단군보다는 김일성을 활용하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단군릉 복원 뒤 북한엔 대기근이 닥쳐와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단군의 아버지라는 환웅 신의 진노 때문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1994개의 무거운 대리석을 쌓아 만든 단군 묘는 일부러 허물지만 않으면 최소 수천 년은 그 자리에 ‘썰렁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먼 훗날 후손들이 김일성이 만든 그 웅장한 피라미드에 어떤 설명을 붙일지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개천절#단군릉#단군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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