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친’과 ‘인친’ 사이… 당신의 친구는 어디 있나요[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대기업 회계팀 과장인 권모 씨(36)는 소셜미디어 친구가 2000명에 이른다. 인스타그램에 400여 명, 페이스북에 900여 명, 트위터에 500여 명 있다. 출근길에 이들의 게시물을 먼저 보고 사무실에서도 종종 댓글을 단다. 때때로 쪽지나 메신저도 주고받는데, 오프라인에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주기적으로 보는 학교 동창이 네댓 명 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 그는 “기존 친구를 보면 감정적으로 지친다”며 “소셜미디어 친구들과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내용만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라도 다 같은 친구가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며 인친(인스타그램 친구), 페친(페이스북 친구), 트친(트위터 친구) 등으로 세분화되다 보니,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친구는 ‘실제 친구’ 즉 실친으로 불리게 됐다.

인친과는 트렌드나 취향을, 페친과는 새로운 이슈를 나눈다. 트친과는 정치·사회적 의견을 짧고 굵게 쏟아 내거나 비계(비밀 계정)를 통해 주변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덕질’을 함께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실친을 대체할 수 있을까.

소셜미디어 친구가 실친보다 좋다는 사람들은 ‘질척거림이 없다’ ‘무리하게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답할 의무가 없고 시간 맞춰 말하면 된다’ ‘밥값 걱정 없다’ ‘안 맞으면 끊으면 된다’ 등을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한 인간이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최대 150명이라고 한다.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함께 술 한잔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친밀감을 지닌 사람들로 보면 된다. 과거 부족사회 20개를 조사해 보니 씨족 집단은 평균 153명이었다는 것이다. 로마군의 기본 전투 단위인 보병 중대 역시 약 130명이었고 아직까지도 중대 단위는 130∼150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목할 부분은 150명도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라는 것.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적극 공감해주는 ‘친한 친구’는 15명, 매우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적극 요청할 수 있는 ‘진짜로 친한 친구’는 3∼5명(가족 포함)으로 줄어든다.

내가 선망해 마지않는 인친, 나와 함께 덕질 하는 트친, 내게 뉴스를 알려주는 페친이 내가 아플 때, 내가 슬플 때, 내가 외로울 때 얼마나 내게 힘이 될지, 나의 약한 모습이나 못난 모습까지 이해해줄지 알 수 없다. 던바는 이렇게 말한다.

“소셜미디어로 친구를 쉽게 늘릴 수 있게 됐지만 인간이 유지할 수 있는 친구 규모 150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직접 만나지 않는다면, 소셜미디어 친구도 그냥 아는 사람(acquaintance)일 뿐이다. 이들과는 경험을 공유할 수 없다.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건 친구를 만나 웃고 떠들고 음식을 먹고 돌아다니는 등 이야깃거리(anecdotes)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만큼은 못하다.”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에 한계가 있기에 소셜미디어 친구에 쏟는 자원은 실친에게 들일 기회비용일 수 있다. 새해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수 있는 소셜미디어 친구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대신 마음 써주고 싶던 실친들과 좋은 시간(quality time)을 보내길 기원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일은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한 일이라고.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실친#인친#소셜미디어#친한 친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