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더 나은 환경서 키우고 싶어”… 짐싸는 30대 부모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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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서울 엑소더스… 무너진 1000만 시대]
그들은 왜 서울을 떠났나

4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버스정류장 주변. 석양과 함께 직장인들의 퇴근 행렬이 시작되자 경기도행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점점 늘어나더니 급기야 인도의 절반을 차지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강모 씨(53)는 “3년 전만 해도 바로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는데 요즘은 버스 두 대 정도는 보내야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28년간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던 ‘1000만 서울’이란 공식이 올해 5월 깨졌다. 서울살이를 접고 경기·인천 지역으로 이동하는 ‘엑소더스(대탈출)’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떠나고, 누군가는 복잡하고 낡은 서울이 아닌 여유롭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고 있다.

서울을 떠난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왜 서울을 떠났고 어디로 갔을까. 동아일보가 국토연구원과 함께 ‘2013∼2015년 수도권 인구이동’을 분석해 ‘서울 엑소더스 지도’를 그려봤다.

○ Where: 지하철 노선 따라 밖으로

회사원 권모 씨(40·여)는 올해 2월 회사 인근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빌라에서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두 살배기 아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갖춰주고 싶었던 차에 전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리며 반전세 전환을 요구해서다. 권 씨는 “오전 6시에 집을 나서면서도 지각할까 마음 졸일 땐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아이를 위해 깨끗한 집으로 옮긴 점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2013∼2015년 ‘탈서울’ 주민이 가장 많이 옮겨간 곳은 남양주시였다. 이 기간 서울시민 5만5125가구가 남양주시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3만9527가구)와 성남시 분당구(3만6286가구) 김포시(2만9412가구) 의정부시(2만8824가구)가 뒤를 이었다.

이 지역들에는 최근 대규모 택지가 공급되면서 주거 인프라가 구축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빠져나갈 곳’이 생기니 계곡에서 물이 흐르듯 인구 이동이 생긴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택지지구가 조성되고 있는 남양주에는 다산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며 고양시 덕양구에서도 향동·원흥·삼송 택지지구가 조성되고 있다. 전성제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기 신도시, 보금자리지구 등 대규모 택지가 수도권 외곽을 중심으로 공급되면서 경기도의 주택 수가 수도권 전체의 57%에 이르게 됐다”며 “신규 택지지구 공급은 ‘탈서울’을 이끄는 주요 계기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주자들은 서울을 벗어나더라도 기존 주거지와 가까운 곳을 선호했다. 시군구 단위의 이동은 서울 은평구에서 고양시 덕양구(1만1742가구)로의 이동이 가장 많았다. 노원구(8016가구) 중랑구(7995가구)에서 남양주시로 옮긴 사람들이 그 다음이었다. 이 밖에 △강동구→하남시(7352가구) △강서구→김포시(6621가구) △강남구→성남시 분당구(5999가구) △노원구→의정부시(5676가구) △구로구→광명시(5107가구) 등의 이동도 활발했다. 지하철 노선도를 펴놓고 서울 밖으로 몇 정거장 물러서는 패턴을 보인 셈이다.

다만 탐색 범위는 예전보다 넓어졌다. 지하철 노선이 확대된 덕분이다. 남양주에서 분양 중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주로 노원, 중랑구 위주로 문의가 왔다면 최근에는 그 범위가 확대돼 강동, 송파, 광진구 등에서도 연락이 늘었다”고 전했다.

1년 전 은평구에서 고양시 덕양구 아파트로 이사한 박재훈 씨(38)는 “상대적으로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을 넘지 않게 하려고 집을 구할 때 이동 거리부터 체크했다”며 “주변에도 지하철 3호선 라인에서 이사해 온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상대적으로 강북권 자치구에서 경기도로 많이 이동하고,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는 서울을 떠나는 사람이 적은 것도 눈에 띈다. 특히 강남·서초구의 경우 성남시 분당구, 용인시 수지구 정도만 빼면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다. 서울 내에서 이동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남 3구 안에서 서로 전·출입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전세금 1억3500만∼2억2300만 원의 경우 서울을 떠난 가구가 많은 반면 그 이하의 다세대·다가구주택이나 그 이상인 중·고가주택의 전세 이동은 주로 서울 안에서만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에서 경기로의 광역 이동이 활발한 중산층과 달리 신도시 아파트로 가기에는 돈이 모자란 서민과 굳이 경기도로 옮길 필요가 없는 고소득층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동이 적었던 것이다.

○ Who: 아이 생긴 30대 ‘탈서울’ 주도

“전에 살던 곳은 회사하고는 가까웠지만 너무 낡고 좁았어요. 여기는 새 아파트라 유아용 놀이터도 잘 갖춰져 있고 키즈카페도 많아요. 주변에도 또래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 마음이 놓여요.”(임모 씨·39·여·서울 마포구→경기 김포시 아파트 전세 이주)
 


▼ 기존 주거지 가까운 곳으로… 서울 은평→고양 덕양 가장 활발 ▼

 
서울 엑소더스를 이끈 것은 30대 젊은 부모들이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서울을 떠나 경기·인천으로 옮긴 순이동인구(전출―전입) 중 30∼39세(10만4596명)가 전체(33만1785명)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여기에 0∼4세(3만4211명)까지 고려하면 30대 부모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서울을 떠난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에서 경기 고양시 덕양구로 이사한 박연희 씨(36·여)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이사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경기·인천으로 이동하는 순이동인구는 40대에 주춤하다가 50대에 다시 증가하는 패턴을 보였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30대에 주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서울 밖으로 이동하지만 아이가 중학생쯤 되면 ‘교육을 위해 서울로 들어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은퇴한 장년층이 전원생활을 누리기 위해 수도권 외곽에 단독주택을 짓는 현상도 눈에 띈다. 2013∼2015년 수도권에서 단독주택 공급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 양평군(43만8337m²)이었다. 양평군은 이 기간 순유입 인구 중 절반(50%)이 50세 이상이며, 65세 이상 노인은 16%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 Why: 집값·보육·환경 때문에

서울 엑소더스의 가장 큰 원인은 주거비 부담이다. 1%대 저금리 기조로 전세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집값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중위전세금(전체 아파트 전세금의 중간값)은 2013년 1월 2억5206만 원에서 2015년 12월 3억4893만 원으로, 3년 새 1억 원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경기 아파트 중위전세금은 1억5236만 원에서 2억1350만 원으로 올랐다. 2013년 서울 아파트 전세금으로 3년 뒤에는 경기도로 옮겨갈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하지만 서울을 떠나는 이유가 집값 때문만은 아니다. 탈서울 경기 주민들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강조한다. 실제로 2014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와 인구이동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가 40대 미만인 가구가 서울에서 경기로 이주할 경우 보육 및 교육환경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하남시 미사지구 아파트를 분양받아 내년 2월 입주를 앞둔 이모 씨(41)는 “지금 사는 서울 광진구의 20년 된 79m² 아파트를 팔아 미사지구 129m²짜리 새 아파트로 입주한다”며 “지역이 신도시라 환경이 좋고 애들 학군도 지금보다 낫다”고 했다.

서울 엑소더스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외곽 지역의 집값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데다 서울에 새롭게 공급되는 아파트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7년까지 서울 입주물량은 5만 채 정도지만 재건축 등으로 인한 멸실 주택 수를 감안하면 공급이 거의 없는 것에 가깝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세입자들이 매매로 전환해 경기도로 이전해 나가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 연구원은 “서울 내에서 주거비 격차가 더 커지지 않도록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유도하는 한편 도심 내 수요가 높은 지역에 지속적으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어떻게 조사했나 ::

전세거래 45만건 전수 조사… 脫서울 이동패턴 처음 분석


동아일보와 국토연구원은 탈서울 인구 이동의 원인과 경로를 규명하기 위해 △수도권 인구이동 현황 △주택공급 현황 △전세 거주 가구 이동의 트렌드에 대한 입체적 분석을 시도했다.

이번 조사에서 기본이 된 데이터는 통계청의 주민등록상 인구이동 자료와 건설행정시스템의 준공실적 통계(2013∼2015년), 국토교통부의 전세 실거래 데이터, 국토부가 격년으로 발행하는 주거실태조사 자료(2014년) 등이다.

동아일보와 국토연구원은 특히 전세 실거래 데이터를 통해 2014년 발생한 전세 거래량 45만 건을 전수 분석해서 탈서울 인구 이동의 실제 패턴을 밝혀냈다. 이런 시도는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이다.
 
구가인 comedy9@donga.com·김재영·강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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