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추상으로 부활한 書畵同體 전통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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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書’ 온라인 전
서예 포함 전각-회화-조각 등 작품 300점 자료 70점 선봬
서양의 추상미술 동양적 재해석… 남관과 이응노 화백 작품 눈길

남관 ‘겨울 풍경’(1972년), 캔버스에 유채 신문지 은박지 종이, 114×146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남관 ‘겨울 풍경’(1972년), 캔버스에 유채 신문지 은박지 종이, 114×146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주름진 천에 무채색 물감을 얇게 칠해 거친 질감을 살렸다.
그 위에 신문지 은박지 종이를 잘라 만든 문자를 붙였다.
덧칠된 물감 사이로 신문지에 적힌 프랑스어와 사진이 보인다.
화면 아래의 푸른빛과 반짝이는 은박지의 빛이 부딪쳐 차가운 풍경을 만든다.
한국과 프랑스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한국 추상화의 선각자’로 평가받는 남관 화백(1911∼1990)의 ‘겨울 풍경’(1972년)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관의 올해 첫 기획전이자 MMCA 개관 후 첫 서예 단독 전시인 ‘미술관에 서(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 지난달 30일 온라인으로 문을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술관이 휴관 중이어서다. 그럼에도 이날 오후 유튜브로 공개된 90분짜리 학예사 전시투어 영상은 1만4118명이 관람할 정도로 인기였다.

서예는 물론 전각 회화 조각 등 작품 300여 점, 자료 70여 점을 선보인 종합전이다. 온라인 공개에 앞서 언론에 지난달 26일 하루 공개된 덕수궁관 전시장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건 남관과 이응노 화백(1904∼1989)의 문자추상(文字抽象)이었다.

○ 서구 추상의 한국적 재해석

신사임당의 ‘사친(思親)’, 이이의 ‘화석정(花石亭)’을 담은 이응노의 ‘율곡과 신사임당의 시’(1975년). ⓒUngno Lee/ADAGP. Paris-SACK, Seoul, 2020.
신사임당의 ‘사친(思親)’, 이이의 ‘화석정(花石亭)’을 담은 이응노의 ‘율곡과 신사임당의 시’(1975년). ⓒUngno Lee/ADAGP. Paris-SACK, Seoul, 2020.
“(프랑스 파리의) 인상파 미술관을 보니 일본에서의 공부가 모두 허사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곳에서 가르친 서양화는 기교뿐이었습니다. 이를 마흔에 깨달았으니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1955년 배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남관의 말이다. 1935년 도쿄 태평양미술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1942년 후나오카(船岡)상, 1943년 미쓰이(三井)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파리에서 서양미술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과 미국에선 추상 미술이 다수 그려지고 있었다.

남관 이응노 같은 작가들은 서양미술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했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 전통의 서예를 차용했고 그 결과물로 문자추상 시리즈가 탄생했다.

○ 서화동체(書畵同體) 전통과 현대미술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MMCA의 서예전 개최를 ‘소외 장르 챙기기’로 설명한다. 그는 이번 전시 도록(圖錄) 인사말에서 “동아시아의 독자성을 이룬 서화동체 사상의 전통이 근대 들어 급격하게 변화해 미술과 거리를 두게 됐다”고 했다.

잊혀진 문화를 되새기기 위해 전시는 한국 근·현대 1, 2세대 서예가들의 작품서부터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디자인까지 방대한 양을 소개한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시화전(詩畵展)이나, 많은 사람이 취미로 하는 캘리그래피를 함께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 전통문화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짚어볼 수 있다.

다만 서울서예박물관처럼 해당 장르를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전시품의 절반이 넘는 서예 작품을 새로운 해석 없이 내놓은 것에 대해 미술계의 의견이 갈린다. 이를테면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이 서예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차용했는가’같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조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배원정 MMCA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의 섹션별 주제는 또 하나의 기획전으로 깊이 있게 조명해야 할 만큼 여러 담론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립현대미술관#미술관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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