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사기록-증거 언제든 쉽게 꺼내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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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기록 전자화 2024년 목표

트럭에 싣는 수사기록 2017년 3월 특검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기록을 트럭에 싣고 있는 모습. 수사 기록은 A4용지 6만 쪽 분량으로 박스 30개에 담겼다. 동아일보DB
트럭에 싣는 수사기록 2017년 3월 특검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기록을 트럭에 싣고 있는 모습. 수사 기록은 A4용지 6만 쪽 분량으로 박스 30개에 담겼다. 동아일보DB
법무부가 2024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는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가 이뤄지면 당장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비롯해 많게는 수만 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열람하고 복사하는 절차 등으로 방어권 행사가 쉽지 않던 사건 당사자들이 문서 전자화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전자소송이 보편화된 민사·행정 사건 등과 달리 종이기록에 의존하는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불만이 계속돼 왔다.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국정농단 사건처럼 수사기록이 수만 쪽인 경우 피고인과 변호인은 기록 복사에만 일주일 이상 걸렸다. 복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며 법원으로 보내는 수사기록이 트럭에 실어 보내야 할 정도로 방대한 양일 때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른바 ‘트럭 기소’라는 말까지 나왔다.

법무부는 올해로 도입 10주년을 맞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개편과 함께 60년 이상 이어온 종이기록 기반의 형사사법 절차를 전자문서 체계로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나 특별법 초안을 만든 뒤 올해 안에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최근 대검찰청과 대법원 등의 의견을 들은 법무부는 조만간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10년 전 전자정부 사업의 하나로 KICS가 도입됐다. 하지만 현행법상 수사 현장에서는 종이기록을 쓸 수밖에 없다. 형사소송법상 진술조서와 피의자 신문조서 등이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선 간인(함께 묶인 서류의 종잇장 사이에 걸쳐 찍는 도장)과 서명날인 등이 필요한데 모두 종이 조서를 전제로 한 규정이다. 효력 요건을 법 개정 없이 고치는 건 증거능력 인정을 엄격히 하는 법 취지상 적법절차에 어긋난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는 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을 통해 형사사법 절차를 전자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피의자나 참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다 받은 뒤 진술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서가 진술한 대로 작성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형사사법 절차가 전자화되면 이런 시비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자조서가 도입되면 검사와 피의자가 양방향으로 설치된 모니터로 조서가 작성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소 후 재판을 받을 때도 지금은 종이 원본이 하나밖에 없어 피고인 측이 수사기록을 신속하게 열람하고 복사하는 데 제약이 있다. 하지만 전자기록은 접근권한만 확인되면 언제든 기록을 보고 복사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법조계에선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로 수사기록 등에 담긴 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록이 전자파일로 제공되면 복사와 공유가 수월해져 사건 관련자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건 기록 등을 전자화할 때 개인정보를 익명으로 처리하고, 개인정보의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한 기술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법원도 지난해부터 형사전자소송 준비 차원에서 ‘전자사본 서비스’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4곳과 단독 재판부 3곳이 심리한 사건을 포함해 총 92건의 사건이 대상이었다. 검찰에서 넘어온 종이기록을 PDF파일로 스캔하는 걸음마 수준이었는데도 만족도가 높았다. 시범 재판부 법관 1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재판 진행과 기록 검토에 도움이 됐다는 의견은 각각 80%, 89%에 달했다. 참여 변호인들 역시 공판기록 열람이나 복사에 들이는 수고와 비용이 줄었다고 답했다.

김정훈 hun@donga.com·이호재·신동진 기자
#형사기록 전자화#수사기록#방어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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