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미래, 번영일까 불행일까[동아 시론/서순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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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 대도시 문명의 핵심이지만 이면에는 불평등, 난개발, 전염병
새로운 도시정책 접근법 고민해야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
어떤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인가? 갑자기 받아든 이 화두 덕분에 지난 며칠 동안 심사가 편치 않았다. 필자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도시에서 살았고 도시 관련 분야에서 30년 이상 강의하고 연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이론적이든 현실적이든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매년 선정되어 발표되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가 선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90%가 도시에 살고 있기에 도시에 대한 경험적 평가는 매우 다양할 것이다. 대도시의 빠른 삶의 속도와 치열한 경쟁이 싫어 전원적인 소도시에서 살고 싶다가도 막상 시골에서 살다보면 대도시만이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편익과 역동성이 그리워지는 양면성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도시민의 휴대전화 사용 통계를 수집하고 분석하면 어느 도시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쉽게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000만 대도시인 서울에서의 삶과 수십만 중소도시에서의 삶은 같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시의 크기는 도시민의 삶의 속도, 심지어 걷는 속도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시 규모가 클수록 도시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화하고 촉진시키는 기반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고 도시민의 생존과 활력에 필수적인 이동성이 강화된 데 기인한다. 최근 스마트폰 사용 인구 증가와 운송 수단의 발달로 상호작용이 증가하고 이동성이 확대되면서 사회경제적 시간의 수축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가면 평균 보행 속도가 2배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의 리버풀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빠른 보행통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은 왜 도시로 몰려드는가?’이다. 흔히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한다. ‘도시의 승리’의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의 역사를 볼 때, 도시야말로 인류의 번영을 이끈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도시는 도시민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을 촉진하고 강화함으로써 혁신의 성공과 부를 축적하는 공간이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진화시킨 독창적인 메커니즘이 바로 도시인 것이다. 그는 도시 거주인구 비율을 의미하는 도시화율이 높은 나라가 대체로 소득수준이 높고 영아 사망률이 낮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도시민의 삶을 통해 도시를 바라본 제인 제이컵스는 국가가 아닌 도시가 경제발전의 주된 추진력이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인재가 도시공간에 모여 협업하는 힘이 인류문명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수도 서울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문화융성을 견인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울은 이미 우수한 인적자원이 모여들어 혁신의 거점이 되어 왔으며, 지금은 전 세계의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케이팝과 같은 한류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이처럼 도시인구가 증가하면 소득과 혁신이 증가하고 인프라 효율이 높아지며 에너지 소비가 절약되는 반면, 도시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난개발이 성행하며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높은 지가와 주택가격 급등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범죄도 증가하고 전염병 확산 속도도 빨라지며 도시 불평등도 심화된다. 최근 여러 나라 도시의 생태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도시의 많은 특징과 문제가 단순히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발원지인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전례 없이 빨라진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도시민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많아지고 이동성이 크게 증가한 데 기인한다. 휴대전화 사용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상호작용과 이동성을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관계망의 구조와 동역학을 연구하고 전염병의 전파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도시를 복잡계로 보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도시가 2배로 커질 때마다 발병률이 체계적으로 15%씩 증가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도시는 그것도 대도시는 번영의 원동력이자 사회 불안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보편적 특성과 문제는 도시의 크기로부터 비롯된다는 인식과 함께 도시 연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의 성장 과정 및 메커니즘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이해는 다양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도시에 많은 정책적 시사점을 준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
#도시정책#난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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