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폭력, 징계 수위 높여야[현장에서/이소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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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사회부 기자
이소연 사회부 기자
“글러먹은 ××야” “야 너 이리로 와, 이 ××”.

실업팀 소속 운동선수 A 씨는 감독과 코치로부터 이런 폭언을 자주 듣는다. A 씨는 “(지도자들이) 선수를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생각한다”며 “선수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말했다. 20대인 운동선수 B 씨는 “대화를 하다가 (감독이) 물건을 집어던졌다”며 “평생 경험하지 못한 모욕감을 이때 처음 느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수감 중)의 심석희 선수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선수들의 인권 실태를 들여다봤다.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올 7∼8월 실업팀 소속 선수 1251명을 대상으로 소속팀 내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선수 3명 중 1명(33.9%)은 언어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비율도 26.1%에 달했다.

선수들은 일상의 곳곳에서 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다. 소속팀 내 폭력의 88.7%는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폭력은 선수들의 휴식 공간인 숙소(47.6%)에서도 이어졌다.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 등 지도자뿐 아니라 같은 팀 선배한테서도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선수 중 8.2%는 ‘거의 매일 맞고 있다’고 답할 정도였다.

이 같은 만성적인 폭력에 노출된 선수들은 정신적인 고통까지 호소한다. 신체폭력을 당한 선수 중 51.1%는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졌다’고 했다. 25.8%는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이런 무기력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20대 후반 운동선수 C 씨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기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대개는 ‘내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며 “나도 우울증인 걸 몰랐다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C 씨는 지금도 매일 수면제에 의지하고 있다.

인권위는 21일 ‘실업팀 선수 인권 보호방안 원탁토론회’를 열고 스포츠 선수들의 인권실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운동선수 인권교육 및 정기적 인권실태조사 실시 △가해자 징계 강화와 징계정보시스템 구축 △직장운동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등이 개선책으로 제시됐다.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이고 이를 데이터베이스(DB)에 차곡차곡 기록해 나가는 징계정보시스템 구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올 1월 심석희 선수는 조 전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며 “(조 전 코치와) 마주친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면 선수들이 겪는 폭력 피해는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렵다. 가해자에게 강력한 징계가 내려질 때 더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다.
 
이소연 사회부 기자 always99@donga.com
#국가인권위원회#체육계 폭력#실업팀 선수 인권 보호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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