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과학자들, 외국 학자 만날땐 허가 받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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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지침 거부” 반발하자… 당국 “권고안에 불과” 발뺌

러시아 정부가 자국 과학자들이 2월부터 외국인 과학자를 만날 때 반드시 사전 허가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침을 시행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구소련 KGB(옛 소련 정보기관)에나 있을 법한 검열”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모스크바타임스 등에 따르면 러시아 과학교육부는 ‘과학인 해외교류 권고안’을 만들어 과학자들을 제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 과학자들은 최소 5일 전에 외국 과학자와의 만남을 정부에 알려야 한다. 또 해당 모임에 참석한 모든 과학자의 여권 사본도 제출해야 한다. 외국 과학자를 혼자 만나서도 안 되며, 꼭 다른 러시아 과학자가 동행해야 한다. 회의 때 무슨 말이 오갔는지를 이중으로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안은 저명 과학자 알렉산드르 프랏코프 박사가 13일 공개서한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이메일을 쓰거나 화상통화를 이용한 외국인 동료 과학자와의 대화도 보고해야 한다. 해외 과학자를 초대하면 그들의 휴대전화까지 검열하라는 논리다. 말도 안 된다”고 정부를 규탄했다.

생명정보학 전문가 미하일 겔판드 박사는 아예 “이 지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과학자들도 “국가 간 기술 유출이나 안보도 중요하지만 세계 과학인들 사이의 창의적이고 사적인 접촉은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속속 표명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러시아 당국은 “권고안에 불과하다”고 발뺌했다. 최근 최신 과학기술 유출 및 산업 스파이 문제 등이 심각해져 국제 관례에 따랐다고도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냉전 후 미국과 러시아의 군비 경쟁을 막아주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2일 폐기되자 러시아가 극초음속 미사일 등 최신 군사 기술의 서방 유출을 막기 위해 앞으로도 강도 높은 검열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14일에도 미국 알래스카주 바로 맞은편 극동 러시아 지역에 단거리 핵미사일을 최대 12발을 투하할 수 있는 핵폭격기 TU-160 2대를 비행시켰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 정부#외국인 과학자#사전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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