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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달러-해외투자 열풍… 그 이면엔 글로벌경제 불안 심리[인사이드&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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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달러-해외투자 열풍… 그 이면엔 글로벌경제 불안 심리[인사이드&인사이트]

이건혁 기자 , 김자현 기자 , 김형민 경제부 기자 입력 2019-08-16 03:00수정 2019-08-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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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자산에 투자자 몰리는 이유는
#1. “요즘 자산가들의 목표 수익률이 얼마인지 아세요? 연 1%예요.”

시중은행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연 1%가 목표라는 것은 돈을 벌기보다 그저 잃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PB는 “어차피 돈을 벌기는 어려우니 금괴나 현금, 달러 현찰 같은 자산을 사서 묻어 두거나 아예 자녀에게 증여하는 게 남는 것이라는 분위기도 퍼져 있다”고 말했다.

#2. “더 이상 우리나라서 큰 수익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18년 차 직장인 곽모 씨는 지난해 국내 자산을 모두 처분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4년 전 지인을 통해 영국 현지의 부동산 투자를 제안 받았고 그해 영국을 두 번 다녀왔다. 곽 씨는 도심 중심가의 1층 상가를 지인들과 함께 매입했고 이제는 상가 두 채와 한국인 여행객 숙소로 쓸 수 있는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하게 됐다. 부동산 투자로 거둬들이는 연간 수익은 국내에서 받던 연봉의 배가 넘는다. 곽 씨는 “처음엔 나를 말렸던 친구들이 이제는 어떻게 하면 해외에서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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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예·적금을 들고 주식형펀드 한두 개 가입하는 게 재테크의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크게 불안해진 요즘은 이런 전통적인 투자 패러다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 특히 고액 자산가들은 미국 달러화나 금, 다른 나라 주식과 부동산 등 그동안 생소했던 투자처로 여유 자산을 대거 옮기고 있다. 물론 투자처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국내 경제에 이상 신호가 켜진 결과라는 경고도 보내고 있다.

○ 금 달러 등 안전자산 인기 고공행진

“어휴, 금이 진짜 금값이네.”

1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금은방을 찾아 손주 2명에게 줄 돌반지 가격을 알아보던 김모 씨(62·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해 1월 20만 원이었던 1돈(3.75g)짜리 돌반지 값이 현재는 27만 원으로 껑충 뛰어 있었다. 높은 가격에 잠시 흔들렸던 이 씨는 이내 마음을 굳히고 반지 네 개를 주문했다. 이 씨는 “손주 1명당 두 개씩 줄 거다. 금값은 앞으로 더 오를 테니 이만한 선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어려울 때는 금붙이만한 게 없다는 사람들의 믿음은 최근 들어 더욱 굳건해진 듯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금시장에서 14일 금값은 g당 6만880원까지 올랐다. 지난해 말 4만5970원이었지만 13일 사상 처음으로 6만 원 선을 돌파해 연간 상승률 32.4%를 기록했다. 국제 시장에서도 금값은 7일 6년 만에 온스(1온스는 약 31.1g)당 1500달러를 넘으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3일 기준으로 금 펀드의 최근 3개월평균 수익률은 24.38%다.

이 정도로 금값이 올랐다면 투자자들은 슬슬 차익 실현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금을 사두려는 투자자가 많다. 올해 들어 KRX금시장에서 개인들의 금 순매수 규모는 13일까지 824.81kg에 이른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 금값은 중장기적으로 온스당 171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달러화 인기도 금에 못지않다. 7월 말 기준 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한 달 전보다 4.1% 증가하며 390억6677만 달러로 늘었다. 연초 달러당 1110원 초반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이 꾸준히 오르며 이달 5일 1200원 선을 돌파하자 달러화 추가 강세를 기대한 투자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과 달러화는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힌다. 안전 자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현재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미중 무역전쟁 격화 등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요즘 은행과 증권 PB들의 사무실은 투자자들로 문전성시다. 정성진 KB국민은행 양재PB센터 PB팀장은 “시장에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금이나 달러화를 사들여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 해외 주식과 부동산으로도 쏠리는 눈

최근 국내 투자자의 또 다른 특징은 시선이 해외로 향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 비중이 높은 투자자들은 국내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큰 탓에 해외 주식과 부동산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하나금융투자 본사에서 열린 해외 주식 투자설명회장에는 500명이 넘는 투자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돋보기안경을 썼다 벗으며 안내책자 곳곳에 중국 주식 추천주를 받아 적는 백발의 할머니부터 반바지를 입고 휴대전화 메모장에 강연 내용을 받아 적는 청년들까지. 해외 주식을 향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뜨거웠다.

몇 해 전 은퇴했다는 박모 씨(63)에게 설명회에 참석한 이유를 묻자 “한국은 불안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약 15년 동안 국내 주식에 투자해 꽤 괜찮은 수익을 거둬 왔지만 요즘처럼 한국 증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 주식엔 희망이 없다. 해외의 괜찮은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설명회에 왔다”고 했다.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한 일반투자자들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건 5, 6년 전부터다. 이전에는 자산운용사의 해외 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수준이었다. 해외 기업에 대한 정보도 충분치 않았고 투자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애플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등 해외 기업들의 서비스가 국내 투자자들의 일상을 파고들면서 해외 기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덩달아 높아졌다. 마침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 주식 투자 인프라의 수준은 올라갔고 증권사들이 수수료 인하 경쟁을 벌이면서 비용 부담은 낮아졌다.

해외 부동산을 향한 관심도 크다. 한 건설사가 주최한 부동산 투자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갔다는 서울 거주자 김모 씨는 “요즘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베트남 부동산 투자 이야기만 한다. 서울 강남 부동산에 잠겨 있던 돈을 정리해서 베트남에 가면 원래 가지고 있던 부동산의 최대 4배까지 매입할 수 있다”고 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개인과 법인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기 위해 국외로 송금한 금액은 지난해 약 7430억 원에 이른다. 2017년 약 5660억 원보다 2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부동산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도 활황이다.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2012년 4조790억 원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 39조4700억 원으로 늘었다. 2015년부터는 매년 거의 10조 원씩 펀드 설정액 규모가 늘고 있다.

○ 한국 경제 신뢰 낮아진 투자자들…성장 잠재력 높일 방안 찾아야

금, 미국 달러, 국채, 해외 주식과 부동산 등은 사실 은행 정기 예·적금, 국내 주식과 펀드 및 부동산 등 익숙한 상품에 비하면 투자 난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금 투자는 국제 시세의 흐름은 물론이고 미국 달러화 움직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금괴를 사려면 세금 문제, 보관 비용 등도 살펴야 한다. 미국 달러화에 투자하려면 미국 경제 상황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결정하는 기준금리 움직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해외 주식은 국내 기업에 비해 투자 정보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 해외 부동산은 현지 규제와 세금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국내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자꾸 자산을 옮긴다. 국내 투자자들의 도전정신 때문일까. 최근 만난 국내 증권사 사장은 한 자산가가 사석에서 한 말이라며 “‘1500’을 마법의 숫자라고 하더라. 환율은 달러당 1500원으로 뛰고, 코스피는 1,500으로 미끄러질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보더라”며 씁쓸해했다.

이는 최근 안전 자산 및 해외 자산 선호 현상의 이면에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이 이번 위기를 과연 제대로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의 하락, 일본과의 갈등, 산업 구조 개혁의 지체 등이 중첩되면서 국내 자산의 매력과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가 투자자들 사이에 팽배하다.

국내 증권사의 한 리서치센터장은 “일본이 장기 불황에 들어가기 전이 딱 이랬다. 그때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에 돈을 묶어 두고 경기 침체 우려 탓에 해외로 분산 투자를 했다”며 “국내 투자자들도 예전 일본처럼 자신감을 잃고 있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 우려가 해소되고 대외 여건이 좋아져 시장에 화색이 돌면 언제 그랬냐는 듯 투자자들의 눈은 다시 국내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대외 충격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개선하고 2% 중반대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국내 투자자들은 경제가 불안할 때마다 지금처럼, 혹은 더 강도 높게 안전 자산이나 해외 자산을 향해 탈출할 수밖에 없다. 지금 재테크 시장의 트렌드가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건혁 gun@donga.com·김자현·김형민 경제부 기자
#해외투자#안전 자산#글로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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