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화비는 나라를 지켜주지 못했다[동아광장/최재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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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강제징용 판결에 수출 규제… 자유무역 질서 근간 흔드는 잘못
미국 무역압박, 중러 영공 위협… ‘친일파’ 편 가르기 할 때 아냐
광복절·일왕 즉위, 한일갈등 풀 기회
냉정과 이성으로 해법 모색해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일본의 무역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법령 고시와 의견 수렴이 끝났고 각의에서 의결하면 발효된다.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삼성전자 등에 국한된 것이지만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전략물자 1112개 품목이 규제되어 우리 산업 전반에 생산 차질과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역사상 한일 무역 분쟁은 간간이 있어 왔다. 지금은 일본이 우리를 괴롭히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삼국시대 이래 선진 문물과 물산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려와 조선은 많은 양의 도자기와 인삼을 일본에 수출했고, 대가로 일본의 막대한 은이 반입되었다. 도자기는 당시 일본 기술로 만들 수 없는 첨단 제품이고, 인삼은 일본에서 자라지 않는 희귀 약재라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특히 인삼은 동의보감 전래 이후 일본에서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만병통치약으로 인기가 높아 수요가 폭증했다. 1680년대 일본의 인삼 수입량은 5000근, 인삼 한 근 값이 금 24냥, 현재 시세로 5000만 원에 달했기에 수입을 독점한 쓰시마번의 1691년 무역 이윤이 금 7만 냥(1500억 원)에 달할 정도라 일본의 은 유출이 심각했다.

조선의 도자기 및 인삼 수출 규제와 가격 독점으로 인한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도자기 산업 국산화와 인삼 재배 성공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였다. 끊임없이 고려삼 종자와 생삼 뿌리를 얻거나 훔쳐가서 연구했지만 재배에 실패했다. 영조 4년(1728년) 고려삼 종자를 6차례나 얻어가서 마침내 재배에 성공했고, 이후 은 유출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는 뭐라고 둘러대도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과 강제집행 절차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수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주권의 영역이다. 하지만 외교와 사법 문제를 무역 보복으로 대응하는 것은 자유무역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잘못이다.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사법재판소 등의 국제 분쟁 해결 절차나 양국 간의 외교 협상을 통해 해결할 일이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국회를 방문해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동반자 관계 구축’이라는 연설을 했다. “한일 양국은 길고 깊은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임진왜란 7년과 식민 지배 35년의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뜨거운 7월의 끝자락이다. 일본의 경제 도발에 더해 미국은 우리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재검토하겠다며 압박한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러시아와 중국은 함께 우리 영공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서 ‘친일파’, ‘매국노’ 등 시대착오적인 편 가르기 단어가 난무하고 갈등하는 상황은 걱정스럽다. 1871년 미국 함대의 강화도 침범 이후 흥선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웠다.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의 주장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 새겼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라가 망했다. 척화비에 강경한 문구를 새기는 대신, 일치단결해서 과감하게 선진 문물을 도입하고 국력을 키웠다면 여자들은 위안부로, 남자들은 강제징용에 끌려가는 비극의 역사를 겪었겠는가.

과거 한일 무역 거점인 부산의 초량왜관에 살던 일본인들과 인근 조선 청년들은 마주치면 돌을 던지며 싸웠다고 한다. 그런데 한 사건을 계기로 패싸움이 끝났다. 당시 영도(影島)는 나라의 말을 기르는 곳이었는데 말을 싣고 나오던 배가 뒤집혔을 때 초량왜관의 왜인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사람과 말을 구해냈고, 그때부터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거나 우연적 요소에 의해 방향을 바꾼다. 오는 8·15 광복절과 10월 22일의 일왕 즉위식은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를 풀어낼 전기가 될 수 있다. 서로 냉정한 판단과 이성적 대응으로 해법을 모색해서 대한해협의 격랑이 잦아들면 좋겠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척화비#일본 무역 압박#한일 무역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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