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성 시인과 신인의 콜라보…독립 출판사 ‘아침달’의 성공 비결은?
더보기

기성 시인과 신인의 콜라보…독립 출판사 ‘아침달’의 성공 비결은?

이설 기자 입력 2019-07-08 12:32수정 2019-07-08 13:54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지난해 8월. 텀블벅 후원으로 9권이 시집이 동시에 독자와 만났다. 모양은 같되 색상과 디자인은 제각각. 시집 주인은 유희경 유진목 오은 서윤후 김소연 등 유명 시인부터 미등단 신인으로 다양했다.

#최근 출간된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는 반려견을 키우는 시인 20명이 함께 썼다. ‘삽화+반려견에 관한 시 2편+반려견 사진+조각 산문글’로 구성됐다. 각 글의 제목은 ‘시인 이름X반려견’이다.

시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아침달’이 화제다. 규격화된 크기, 기성 시인, 대형 출판사….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문법을 깨부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지난 2일 ‘아침달 서점’을 찾아 시 전문 독립 출판사의 성공 비법을 들여다봤다.

○9권 동시 출간 ‘시집 쇼’

주요기사

지난 2일 찾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의 ‘올 화이트’ 주택 2층. ‘아침달 서점’과 ‘아침달 출판’이 함께 둥지를 튼 곳이다. 서점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을 메운 ‘아침달 시집선’이 눈에 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간한 9권의 시집을 동시 출간하며 ‘아침달’ 브랜드를 알렸다. 그 뒤로 2권을 더 펴내 모두 11권의 라인업을 갖췄다 .

디자인·편집 회사를 운영하던 손문경 대표가 출판사를 연 건 2013년. 의욕적으로 기성 시인과 계약을 맺고 신인을 발굴했지만 2016년 ‘미투 사태’를 맞았다. 신생 독립 출판사, 미등단 시인…. 지난해 전열을 가다듬고 출간에 시동을 걸었지만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 손 대표는 ‘텀블벅 후원’과 ‘기성 시인과 신인의 콜라보’로 상황을 돌파했다.


“7명은 기성 시인, 2명은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이었어요. ‘아침달’도 독립 출판이라 존재감이 없었죠. 한번에 ‘짠’ 하고 동시에 출간하면 출판사와 신인 시인의 낮은 인지도를 극복할 수 있겠다 싶었죠.”

○“무기명 원고 놓고 난상토론”

“매달 한 번 큐레이터 회의가 열려요. 곧 시인들이 방문할 겁니다.”

손 대표와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 출판사 기획자로 일하는 송승언 시인이 부지런히 서점 책상을 치우며 이렇게 말했다. 아침달 시집의 맨 뒷장엔 모두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큐레이터 김소연 김언 유계영’이다.


아침달의 모토는 ‘등단이라는 장벽과 별개로 좋은 원고를 세상에 소개하기’. 좋은 원고를 캐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김소연 시인의 제안으로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했다. 송 시인이 1차 심사한 원고를 놓고 큐레이터 3인방이 ‘○(합격) △(보류) X(불합격)’으로 투표를 한다.

‘미니 신춘문예’를 닮은 방식. 어떤 부분이 새로운 걸까. 유계영 시인은 “30~50편 이상의 시를 읽은 뒤 3명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시집이 출간된다. 3~5편의 완결성만 보는 등단제도보다 오히려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김소연 시인은 큐레이터라는 용어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다. 그는 “권력구조가 묻어나는 편집위원 대신 사용하는 호칭이다. 출간 여부를 결정하고, 원고에 특히 애정을 보인 큐레이터가 조력자로서 저와 소통한다”고 했다.


소통 중심의 편집 과정은 기성 시인을 이끄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김언 시인은 “아침달에 참여한 기성 시인들이 적지 않다. 기존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면 안정적일 테지만, 직접 시집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아침달의 저력은 ‘즐거움’

미등단 시인이 시집을 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시집을 펴내는 출판사는 곳간이 넉넉한 대형 출판사 4,5군데 정도. 이마저도 등단을 해야 차례가 돌아온다. 아침달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시집 출판 방식을 개척한 것.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로 데뷔한 조해주 시인은 민음사와 계약을 맺었다. ‘책’을 펴낸 이호준 시인은 각종 계간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선 디자인. 오은 시인의 ‘나는 이름이 있었다’는 1쇄 초록에서 2쇄 오렌지로 표지 색을 갈아입었다. 유희경 시인은 1쇄 때 눈으로 표지를 가득 채웠다가 2쇄 부터는 여백을 많이 뒀다.

시 선별 기준도 자유롭다. 이호준 시인의 ‘책’은 한 권 전체가 하나의 장시로 구성됐다. 시 동인 ‘뿔’의 공동 시집과 절판된 최정례 시인의 ‘햇빛속에 호랑이’(1998) 도 다시 출간할 계획이다.

시 전문 출판사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시집만 12권 냈다. 평균 판매량은 2000~4000부. 독립 출판사로서는 ‘대박’을 친 셈이다. 손 대표는 “큐레이터를 비롯해 시의 생태계에 애정을 지닌 기성 시인들의 힘이다”고 했다.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활동하는 ‘시인 3인방’은 이 말에 손사래를 쳤다.

“순수하게 즐거워서 하는 일이에요. 원고를 놓고 토론하는 일 자체가 문학의 즐거움과 비슷합니다.”(김소연)

“출판사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좋은 시집이 묻혀서는 안 되겠지요. 신인은 아침달에서 좋은 출발을, 기성 시인은 좋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김언)

이설 기자 snow@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