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北선박 표류” 거짓말 브리핑때 靑행정관도 현장서 지켜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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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어선 삼척항 노크귀순 파문]
軍관계자 “靑과 브리핑 내용 조율”… 오락가락 해명 방치 논란

해양경찰청이 ‘해상 노크 귀순’ 사건 신고를 접수한 15일 오전 7시 9분 청와대 및 군 당국에 전달한 상황보고서. 북한 어선이 자체 동력으로 삼척항 방파제에 접안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실 제공
해양경찰청이 ‘해상 노크 귀순’ 사건 신고를 접수한 15일 오전 7시 9분 청와대 및 군 당국에 전달한 상황보고서. 북한 어선이 자체 동력으로 삼척항 방파제에 접안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어선의 ‘해상 노크 귀순’ 파문에 대해 20일 군의 은폐 및 축소 발표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지시했다. 사실상 군을 강하게 질타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15일 사건 발생 직후부터 북한 어선이 삼척항 부두에 정박한 사실 등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받았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군의 축소·은폐를 결과적으로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군 일각에선 “군의 발표는 청와대와 조율된 내용인데도 군으로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건 억울하다”는 반발까지 나오고 있다.

○ 靑, 해상 노크 귀순 당일 보고 받아

북한 어선이 삼척항 방파제 부두에서 발견된 15일 해양경찰청 상황센터가 청와대와 합동참모본부, 국가정보원 등에 첫 상황보고서를 전파한 것은 오전 7시 9분경. 이 보고서에는 어선 발견 장소가 ‘삼척항 방파제’라고 적혀 있다. 해경 상황센터가 오전 10시 8분까지 모두 세 차례 전파한 상황보고서에는 ‘삼척항 방파제’ ‘주민 신고’ ‘자력 입항’ 등 축소·은폐 논란의 핵심이 된 사안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17일 첫 공식 브리핑에서 어선 발견 위치에 대해 ‘삼척항 인근’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목선이 가까이 있으면 탐지가 용이하고 멀리 있으면 탐지가 안 된다”는 말로 어선이 최소 수 km 떨어진 해상에서 발견된 것으로 해석하게 하는 발언도 했다. 또 “기동하지 않고 계속 떠내려 오다 보니 발견하지 못했다”며 기관이 계속 고장 나 있는 상태였던 것처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사 결과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청와대, 합참 등은 (15일) 해경으로부터 최초 보고를 받았다”며 “그리고 당일 여러 정보를 취합해 해경이 보도자료를 내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으로부터 선박 및 인원이 내려올 경우에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그 이유는 신변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해경에서 최초의 발표를 했고, 공유를 했던 사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있었던 사실을 숨겼다가 17일 발표한 것 아니냐는 것은 전혀 틀린 말”이라며 “유감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어 고 대변인은 “국방부가 (17일 첫 발표에서)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말을 바꿨다고 보는 것은 틀린 말이다. ‘항’은 보통 방파제, 부두 등을 포함하는 말이며 인근이라는 표현도 군에서 많이 쓰는 용어”라고 했다. 다만 고 대변인은 ‘국방부가 17일 발표에선 경계에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가 19일 추가 발표 때는 말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경계작전에 대해서는 분명 안이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軍 일각 “군에 책임 몰아가는 것 이해 못해”


하지만 청와대는 북한 어선 남하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받고도 축소·은폐 논란이 일었던 군 당국의 발표에 대해 별다른 문제 제기나 수정 지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이를 방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가 북한 어선 남하 당일 모든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받고도 군 당국이 17일 브리핑에서 마치 어선이 해상 한가운데서 기동하지 않고 표류하는 바람에 레이더 등의 감시자산으로 이를 식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처럼 발표한 것을 그냥 두고 본 것 아니냐는 얘기다.

더욱이 17일 국방부에서 실시된 첫 브리핑 현장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이 있었던 사실도 뒤늦게 드러나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방부 브리핑 내용이 청와대로 곧바로 보고된 것으로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은폐 의혹을 불러일으킨 군 당국의 발표 내용을 청와대가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20일 군의 대처를 강하게 질타한 데 대해 군 일각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실제로 군의 17일 첫 브리핑 내용이 사실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친 것이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왔다.

군 관계자는 “군이 경계작전에 실패한 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은폐 및 축소 논란의 책임을 군이 모두 지는 건 매우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마치 군이 17일 브리핑 내용을 알아서 만든 것처럼 하는데 우리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군이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게 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북한 어선#삼척항#노크귀순#청와대#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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