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약-백신 없어… 멧돼지-조류 통한 유입 총력 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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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접경지역 돼지열병 방역 비상
감염땐 고열-출혈뒤 모두 폐사… 中서도 1년새 113만마리 살처분
정부, 北과 합동대책 마련 추진

정부는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올 게 왔다’는 분위기다. 전파 속도가 빠르고 백신도 없어 중국에 이어 한반도도 ASF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가축 질병을 막을 방역 역량이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ASF가 한국 농가로 전염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3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수의학계에 따르면 ASF는 최대 20일간 잠복기를 거친 뒤 고열, 피부 출혈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일단 감염되면 치사율은 100%다. 급성형의 경우 돼지가 아무런 증상 없이 1∼4일 뒤 갑자기 폐사하기도 한다.

문제는 ASF를 치료할 약도, 예방할 백신도 없다는 것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홈페이지에 “승인된 백신이 없어 감염된 돼지나 돼지고기가 넘어오지 않도록 하는 게 예방을 좌우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접경지역의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한 번에 끌어올리고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높은 전염성을 우려해서다. 중국에선 지난해 8월 이후 총 134건의 ASF 발생 사례가 OIE에 접수됐다. 지금까지 돼지 113만 마리가 도살처분된 것으로 알려졌다. ASF 감염이 시작되면 사실상 도살처분 외에는 처리 방법이 없는 만큼 한국에서도 2010∼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350만 마리의 소·돼지가 도살처분됐던 ‘재앙’이 재현될 수 있다.

정부가 특히 우려하는 건 멧돼지에 의한 전염이다. ASF에 감염된 멧돼지가 접경 지역을 넘어 한국 농가와 접촉할 경우 순식간에 국내로 확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야생에 먹이가 부족해지는 11월경부터 멧돼지들이 농가로 내려와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시나리오를 우려하고 있다. 유한상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예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대한 방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멧돼지 포획을 확대하고 울타리 설치를 늘려 우선 멧돼지로 인한 전파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맹금류, 사람 등 모든 접촉 경로에 대한 사전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독수리가 감염된 돼지 사체를 먹으면 몸에 바이러스가 묻은 피와 살점이 붙게 된다”며 “멧돼지보다 이동 속도가 빠른 맹금류가 몸에 바이러스를 묻힌 채 한국으로 넘어와 돼지와 접촉할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는 북한과 협의해 합동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북한 내 돼지열병 확산 방지를 위한 남북 협력을 추진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측과 협의가 진행되는 대로 구체적인 준비를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북한이 협의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4월 말 북한에 ASF 사전 방역 협력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황인찬 기자
#아프리카돼지열병#북한 돼지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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