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활약’ 소방관, 신분은 지방직…무슨 사정 있길래

  • 뉴시스
  • 입력 2019년 4월 9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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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해방 이후 한때 국가직 시절도
70년대 경찰과 분리되면서 지방직으로
과거엔 화재 규모 작았다는 이유 작용
"불 끄는 일은 지역서 처리할 일" 판단
지금은 재난급 화재 등 상황 크게 변해
'소방관, 국가직으로' 靑국민청원 폭발

역대급 화재인 ‘강원 산불’ 재난 당시 소방관들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지방 공무원 신분인 이들의 국가직 전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재 발생 하루 만인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사흘 만인 지난 8일 정부가 답변해야 하는 기준인 2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그런데 소방관은 애초에 왜 ‘지방직’으로 분류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과거에는 법적으로 소방업무를 ‘지방 사무’로 봤기 때문이다. 한번 불이 나면 피해가 커질 위험이 높은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건물이 대부분 작고 가연성 물질이 많지 않아 불이 나도 확산 위험도가 낮았다. 즉, 불 끄는 것을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만한 일로 판단한 것이다.

9일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직도 해방 이후 한때 국가직이었다. 미군정 시절인 1946년에서 1948년 사이 우리나라는 지금의 소방청 기능을 하는 소방위원회를 중앙기관으로 두고, 지방에는 도 소방위원회를 뒀다.

6·25 전쟁 이후에 경찰 조직과 소방 조직이 통합됐다. 소방 조직은 지금의 경찰청인 내무부 치안국 산하로 들어갔고, 소방관들은 경찰공무원법을 적용받았다. 경찰이 소방 업무를 함께 한 것이다.

1973년 지방소방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소방 조직은 경찰 조직에서 분리됐다. 소방 업무도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는 정부의 판단이었지만 경찰공무원은 국가직으로, 소방공무원은 지방직으로 신분이 갈렸다.

1992년 이후부터는 시·도 소방본부가 설치되는 등 시·도 책임으로 일원화 됐고, 소방관들의 신분도 1995년부터는 시·도 지방직으로 구체화됐다.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지방직 분리 당시 법과 제도 등을 손질하던 전문가들은 소방 업무를 ‘지방 사무’로 봤다. 범죄자들은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경찰공무원은 국가직으로 볼 수 있지만, 화재의 경우 한 곳에서만 불이 나는 것이라는 판단 하에 소방 업무를 해당 지역만의 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한 지역의 소방관들로는 부족할 정도의 대형 화재가 발생하고, 가연성 물질이 생활 곳곳에서 쓰이는 등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는데도 여전히 법은 그대로인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건물이 하나 타면 피해가 조금 나고 말았는데, 지금은 여러 건물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복합 건물이 많아져서 수십명,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과거에는 불이 나면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아도 확산될 위험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다르다”면서 “예를 들어 집에 있는 매트리스 하나에 불이 붙으면 3분이면 다 탄다”고 덧붙였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정부가 당초 지난 1월 시행을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소위 문턱에 막혀 현재 계류 중인 상태다.

소방청 측은 이번 강원 산불을 계기로 소방관 국가직 전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강원도 산불 관계장관회의에서 “소방관의 국가직화는 대규모 화재의 조기 진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이번에도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전남 지역 일선 소방서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한 소방관은 “소방교부세 같은 세금이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에게는 큰 부분인데, 이 세금이 100% 소방 조직으로 들어오진 않고 다른 안전 관련 업무 등에도 사용된다”면서 “이런 부분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소방관들의 지방직 시스템을 안 놓치려고 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여야는 강원 산불 피해 관련 정부 현안보고를 받기 위해 개최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무산을 놓고 ‘네탓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지난해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반대로 국가직 전환이 무산됐다고 공격한 반면, 야당은 관계 당국 간 의견 조율이 미흡했다며 정부와 여당에 책임을 돌렸다.

현재 여당은 소방관 국가직 여론이 높아진 이달을 관련 법안 통과의 적기로 보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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