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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人間 트로피’가 된 전직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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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人間 트로피’가 된 전직 대통령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9-01-30 03:00수정 2019-0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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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월드컵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선진국 진입이 성큼 다가왔다고 믿었으나 웬걸, 갈수록 뒷걸음질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핵됐고, 전직 대통령 한 명은 구속됐다. 또 다른 전직 대통령도 비리 혐의로 수사 대상이다. 전 정권 옹호와 현 정권 지지 등 두 쪽으로 갈라진 민심에 사회가 집단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 얘기다. 남미 좌파정권의 빛나는 별로 도덕성을 앞세워 집권한 룰라 전 대통령은 지난해 부패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후광으로 당선된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정부회계 조작을 이유로 2016년 탄핵됐다. 개혁을 외치던 이들이 되레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다. 최근 BBC가 보도한 ‘브라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면 이 나라의 혼란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룰라 전 대통령이 만든 좌파 노동자당 정권은 부정직함과 무능으로 마침내 극우 정권을 불러들였고 국민의 신뢰마저 잃었다.

그 와중에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TV토론을 거부한 대신에 소셜미디어에 주력하고 소수의 언론만 상대하는 등 지지층만 상대하는 전략으로 당선을 거머쥐었다. 과거 군부 정권에 저항했던 좌파 세력의 도덕적 흠결에 대중이 낙망한 데 따른 반사이익을 누렸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자원 부국 브라질에서는 2003∼2016년 좌파정권이 처음 집권했다. 원자재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으로 흥청망청 인심을 썼으나 좋은 시절은 길게 가지 못했다. 그나마 룰라는 “나라 안에 한 사람이라도 굶는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등 감성 언어와 달콤한 복지로 지지 세력을 늘릴 수 있었다. 한데 호세프 취임 이후 기초체력이 부실한 경제는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쳤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 칼럼에서 지적했듯 ‘사회 전체를 선진국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접근, 슬로건 또는 확신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보수주의 정치 철학의 태두인 에드먼드 버크도 일찌감치 예언했다. “위선의 약속은 얼마든지 장대할 수 있다”고. 약속 자체를 지킬 생각이 없기에 근사한 말들을 쏟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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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대통령’이 맞서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베네수엘라는 한층 비참하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뒤 나라 곳간을 털어 서민 환심을 사는 무상 시리즈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유가 하락을 계기로 경제는 파탄에 직면했고 그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무능한 데다 부패했다. 마두로 퇴진 시위에 핵심 지지층인 빈민과 노동계까지 참여하자 무력 진압이 시작됐고 35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두 집단의 경계선을 그은 뒤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아부하는 문제적 정치인은 좌우 어디에나 있다. 분열 전략이 먹혀드는 곳도 남미만은 아니다. 시사잡지 ‘타임’ 편집장 출신 이언 브레머의 책 ‘우리 대 그들’에서는 갈등을 부추겨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포퓰리스트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목한다. ‘그들’의 정체는 다양하다. 이념이 다른 정당이나 부유층, 난민 혹은 이민자일 수도 있다. 이런 식의 편 가르기에 편승하고 부화뇌동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헬조선을 비판한 청년과 장년들을 콕 집어 ‘아세안으로 가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은 것도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평소 생각의 발로이지 싶다.

룰라를 감옥으로 보낸 ‘세차작전’이란 이름의 부패청산 수사를 지휘한 모로 판사는 새 정권이 들어선 뒤 법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보은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11월 룰라는 법정에서 스스로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주장하며 이렇게 외쳤다. “나는 트로피였다. 세차작전이 전달해야만 했던 트로피였다.” 권력의 축이 이동할 때마다 ‘인간 트로피’가 양산되는 곳이 어디 브라질뿐이랴.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모든 문제를 단순화하고 힘으로 모든 것을 풀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한다. 최근 다보스포럼에서도 기업친화 정책을 강조한 그는 대선 공약으로 연금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을 약속했다. 남미 최대의 경제대국 브라질은 다시 일어설 것인가, 결코 오지 않을 미래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끝날 것인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분열과 포퓰리즘의 끝은 늘 총체적 파국이라는 사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보우소나루#브라질의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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