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강 공기업 노조에 큰 칼 쥐여주는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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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자원공사 등 9개 공공기관이 노조 대표가 이사회에 배석해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상정되는 안건과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를 이달 중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석유공사 등 5개 기관도 노사 간 막바지 조율 중이라고 한다. 참석한 근로자 대표에게 어디까지 발언권을 부여할지는 미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근로자 대표 1, 2명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를 공공부문부터 도입하고 민간기업으로 확산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야당의 반대에 부딪힌 정부가 노동계와 재계 입장을 절충해 제시한 것이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다. 이 제도를 놓고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대선 공약 위반이라는 노동계 불만도 있다.

근로자 참관제가 도입돼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안건과 진행 과정을 들여다보면 방만한 공기업 운영에 견제가 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로도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은 막강 공기업 노조에 간접적인 경영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철밥통 공기업 개혁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이사회는 경영계획, 인사, 노무 등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고 사실상 결정하는 자리다. 우리나라처럼 걸핏하면 파업을 반복하는 투쟁적 대립적 노사관계가 만연한 분위기에서 근로자 참관제, 나아가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소지가 적지 않다. 독일 등 협조적 노사관계가 구축된 나라에서 경영진이 먼저 노조대표를 이사회 멤버로 끌어들이는 경우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이 경우도 대개는 경영계획 수립, 집행 등은 경영이사회가 맡고 근로자 대표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한다.

어떤 제도도 자체만 놓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운영하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 역시 기본적인 노사 간 신뢰 바탕이 깔려 있는지가 가장 큰 관건이다. 정부는 공기업들에 서둘러 제도 도입을 강제하기보다는 제도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장단점을 살핀 다음 제도를 확대 또는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수자원공사#문재인 대통령#노동이사제#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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