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그런 상황이라면 똑같이 했을 것”…불 속 인명 구한 50대 ‘의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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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자신이 창문을 깨고 인명을 구한 부산 동구 화재 현장에서 만난 장원갑 씨가 전날 구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2일 자신이 창문을 깨고 인명을 구한 부산 동구 화재 현장에서 만난 장원갑 씨가 전날 구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새해 첫날이 저물어가던 1일 오후 9시반 경 부산 동구의 주택가. 집 주변에서 산책하던 장원갑 씨(54)는 단층 주택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는 것을 목격했다. 스테인리스 방범창이 둘러쳐진 그 집 창문에 얼굴을 기대고 선 남성 A 씨(68)가 보였다. 연기를 마셨는지 곧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지면에서 약 1m 높이인 창문은 가로 1m 50㎝, 세로 1m 정도. 창 밑에는 높이 80㎝ 정도의 고무통 두 개가 뚜껑이 덮인 채 놓여 있었다. 장 씨는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길가에는 돌멩이 몇 개만 있을 뿐이었다. 적당하게 크고 길쭉한 돌멩이를 집어 든 장 씨는 고무통 위로 올라선 뒤 방범창과 창틀 사이를 내리쳤다. 힘을 가해 몇 차례 내리치자 모서리에 틈이 벌어졌다. 장 씨는 그 틈에 돌멩이를 끼워 넣어 더 틈새를 벌린 뒤 방범창을 손으로 잡아끌어 당겼다. 몇 차례 실랑이 끝에 방범창이 뜯겨졌다. 창문을 돌로 깨고 연 장 씨는 A 씨를 업고 밖으로 끌어냈다. A 씨는 의식은 있었지만 말할 기력은 없었다고 한다.

장 씨는 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당시 A 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구해달라는 소리를 내지도, 창문을 두드리지도 못했다”며 “거실 쪽에 불이 제법 났는데 방으로는 많이 번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직후 집안에서 뭔가 터지는 듯 ‘뻥’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늦었으면 나나 A 씨 모두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A 씨는 다른 주민이 119에 신고해 출동한 소방대원이 병원으로 옮겼다. 집에 혼자 살던 A 씨는 다리와 엉덩이 등에 2, 3도 화상을 입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집 내부 일부와 가재도구 등을 태워 150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내고 9시 50분경 진화됐다.

장 씨는 30여 년간 건설 현장에서 전기시공을 해왔다. 그는 “내가 무슨 의인인가. 이런(사람을 구조한) 일은 처음이지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그런 상황에 닥쳤다면 똑같이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손톱 끝에는 그을음이 끼어 있었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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