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 교수, 환자 사랑 SNS 글 ‘뭉클’… 동료 의사 “좋은 의사이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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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2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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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임세원 교수. 사진=동아일보DB
고(故) 임세원 교수. 사진=동아일보DB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가 조울증을 앓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가운데, 남궁인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 임상조교수는 “그는 좋은 의사이자,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라며 추모했다.

앞서 발생한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치료한 후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글을 남겨 주목을 받았던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 씨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세원 교수가 생전 쓴 글을 공유하며 그를 애도했다.

남궁 씨는 “그는 환자들의 말이 참혹했다고 썼다. 피와 살이 튀지 않아도, 누군가 내 앞에서 인생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잔인한, 이 사람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지옥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인간사의 일이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생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각자 다른 이유로 자기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라며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며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의 삶을 돕게 될 것”이라고 남겼다.

이에 남궁 씨는 “그는 그가 돌보는 환자들의 이야기에 감응했고, 기억했으며, 같이 고통스러워했고, 참혹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글을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너무 어처구니없고, 너무 끔찍한 것이기에, 도저히 내가 더 붙일 수 있는 말이 없다”며 “나는 나의 연말과 새해, 신년의 모든 소원과 축원과 희망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훌륭한 선배이자, 동업자이자, 참혹한 전방에서 일생을 바쳤던 그의 영원한 명복과 안식, 깊은 애도를 위해 바치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한편 서울 종로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인 박모 씨(30)에 대해 1일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전날 오후 5시 45분경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이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 교수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다.

병원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박 씨는 진료실에 들어간 지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미리 준비한 흉기를 임 교수에게 휘둘렀고 임 교수가 진료실 밖으로 피해 뛰쳐나오자 계속 뒤쫓아가 다시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은 고(故) 임세원 교수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전문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 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었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 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 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김혜란 동아닷컴 기자 lastlea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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