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 교수 피살, 정신과 레지던트 “믿음 무너지는 절망적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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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2일 0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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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임세원 교수 죽음에 “안전하지 못한 우리나라 진료 환경에 무기력해져”

사진=대한전공의협의회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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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전공의협의회 게시물
사진=대한전공의협의회 게시물
지난해 12월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도중 정신질환자의 흉기에 숨진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장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2일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러분은 혹시 환자가 진료실에서 흉기를 꺼낸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승우 회장은 “며칠 전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에 새해부터 마음이 너무 무겁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게 된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위로를 전한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를 수련하고 있는 한 명의 전공의로서 스승을 잃은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며 故 임세원 교수를 언급했다.

이 회장은 “저는 무섭고 두렵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 3년 차인 제가 겪는 일상을 떠올려본다. 지난주, 제가 진료하던 일반의 외래를 통해 환자 한 분이 내원하였다”라며 “처음에 보호자와 함께 들어온 환자는, 제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부모님을 욕하며 때리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격양된 목소리로 ‘내가 자살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죽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대답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행동 조절이 되지 않는 경우, 외래보다는 응급실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위험 상황의 경우는, 보안요원 등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반면 외래 진료실에는 이조차도 없다. 저도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 3년 차가 끝나는 지금까지, 응급실에서나 보호 병동에서 환자에게 맞았던 경험이 꽤 있었다. 물론 외래에서도 전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적어도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소명에 집중해, 저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고려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에 저는 몇 가지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환자와 둘만 있는 외래 진료실 안에서 환자가 흉기를 꺼내어 공격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응급벨을 눌렀다면 괜찮았을까. 내가 아닌 간호사나 직원들, 아니면 다른 환자들을 공격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며 “지금까지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며 의사-환자 간의 치료적 관계가 가능하다 믿고 수련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믿음이 무너지는 절망적인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전하지 못한 우리나라 진료 환경에 한없이 무기력해진다”라고 호소했다.

끝으로 이 회장은 “제가 감히 유가족의 심경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나. 또한 함께 일해 왔던 동료들과 교수님께 배우고 있던 제자들 마음은 어떠하겠나. 이번만큼은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이 아닌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로서, 故 임세원 교수님을 잃고 크나큰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 동료, 제자들과 함께 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종로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 박모 씨(30)에 대해 1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병원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박 씨는 전날 오후 진료실에 들어간 지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미리 준비한 흉기를 임 교수에게 휘두르고, 임 교수가 진료실 밖으로 피해 뛰쳐나오자 계속 뒤쫓아가 다시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박 씨가 범행에 쓰인 흉기를 미리 준비해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점 등으로 미뤄 계획적인 살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 씨는 범행 당시 날 길이 33cm의 칼을 갖고 있었다.

박 씨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2일 중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은향 동아닷컴 기자 eunhy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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