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항일 넘어 공존의 국제질서 추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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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1운동 100년, 2020 동아일보 100년]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3·1운동은 당대 세계 사조의 변화를 가장 첨단에서 반영해 일어났던 운동입니다. 독립선언서의 지향은 오늘날 세계질서가 지향할 바와도 같지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66·사진)을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이사장은 “3·1운동과 독립선언서, 이후의 민족운동을 단순히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반일(反日)운동으로만 보는 건 운동의 성격을 굉장히 낮춰 파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러시아혁명의 발발을 비롯한 20세기 초의 정세 변화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평화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념을 필요로 했다. 19세기 말부터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은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강대국이 약소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자연법칙에 비유함으로써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던 사상이었다.

그러나 ‘3·1독립선언서’에 이러한 사회진화론을 일거에 깨부수는 핵심 정신이 담겨 있다고 김 이사장이 지적했다. 그는 “1차 대전 종전 뒤 강자와 약자가 균등하게 존재하는 질서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의와 인도주의, 민족자결의 원칙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3·1독립선언서 속에 모두 담겨 있다”고 밝혔다. 중국 5·4운동도 3·1운동과 마찬가지로 당시 세계 사조의 변화를 반영해 일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3·1독립선언서에서 33인의 민족대표들은 “일본의 배신을 죄(罪)하려는 것이 아니다.…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때는 ‘일본을 탓하지 않는다’는 3·1독립선언서의 이 같은 표현을 두고 ‘무기력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 공부하며 그렇게 오해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민족대표들은 조심스러웠던 게 아니라 사회진화론을 극복하고 정의와 인도주의를 추구하는 세계 사조를 그대로 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3·1운동은 단순한 반일운동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고 김 이사장은 설명했다. “3·1운동은 제국주의 질서가 아니라 강대국과 약소국이 공존하는 국제질서를, 그것도 비폭력으로 구축하려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평화적 국제질서를 향한 노력은 사실상 3·1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죠.”

3·1독립선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지향한 민주공화제도 세계 사조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1차 대전 뒤 민족자결의 원칙 아래 새로 태어난 약소국들이 거의 공화주의를 택했다. 조선 독립운동 역시 1917년 ‘대동단결 선언’ 등에서 국민 주권을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3·1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의미를 지나치게 조선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시각 측면에서만 평가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운동은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 반전·반파시즘 운동의 성격을 지닙니다. 조선의 독립을 매개로 새로운 세계 평화질서와 민권 이념, 사회를 지향했던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동북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한 실마리도 3·1운동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해 11월 학술대회에 이어 올해 4월 개최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도 사회진화론의 극복과 민주공화제의 확산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3·1운동#공존의 국제질서 추구#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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