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색과 지혜로 빚어낸 인간 본연에 대한 통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묘지 위의 태양/이태동 지음/300쪽·1만2000원·동서문화사

초상화에는 결코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사람의 인상과 분위기가 담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제 얼굴과 초상화 사이에 놓여 있는 ‘미학적 거리’ 때문이다. 고흐의 자화상이 스스로 불타오르며 보는 이의 끝없는 물음과 탐색의 시선이 머물게 하는 이유는 “그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 얼굴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는 괴테가 말한 ‘예술 작업이 재창조하는 면’인 동시에 하이데거가 인생의 노동과 땀을 설명하려 했던 ‘나막신 그림’이다.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쓴 산문 50편을 모아 엮은 이 책에는 그가 깊은 사유와 관찰을 통해 얻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 있다. 문학과 비평, 사회과학 분야 저변을 두루 탐구해 온 학자이기에 선인들의 지혜와 학문적 지식도 쉬운 표현으로 녹아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법조인 친구,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수녀 제자 등 저자의 경험에서 얻은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본연에 대한 통찰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파스칼의 소설 ‘팡세’를 인용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즉 이성적인 존재 이상의 무엇이라고 설명한다. ‘우물가에서 수면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을 길어 올리려 두레박을 내리는 처녀’처럼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하지만 끝내 허무해지는 게 사람이다. 어느 미국 시인이 노래했듯이 ‘죽음이란 밤이 찾아와도 한 그루 나무를 보기 위해 창을 닫지 않는’ 게 사람이다. 저자의 문장은 무력하지만 무력하지 않은 우리 존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묘지 위의 태양#이태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