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대입제도-수능 최악… 사교육 시장만 돈 버는 구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사교육의 대부’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메가스터디교육 사옥에서 만난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와 사교육 시장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손 회장은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급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고교생, 학부모, 사교육 종사자들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메가스터디교육 사옥에서 만난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와 사교육 시장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손 회장은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급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고교생, 학부모, 사교육 종사자들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평가에 사교육 시장은 수능 이후부터 들썩이고 있다. ‘사교육의 대부’로 불리는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57)은 지난달 27일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대입 제도와 수능은 최악”이라고 혹평했다.

1987년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시작한 손 회장은 2004년 메가스터디를 코스닥에 상장시키고 2008년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올린 사교육 시장의 산증인이다. 그는 “공부가 학생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르쳤는데 학생들의 꿈은 꺾이고 나만 돈을 번 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2년 전 사재 300억 원을 들여 윤민창의투자재단을 설립했다.

―이번 수능 이후 사교육에 변화가 있나.

“수능이 어려워 예비 고3이 좀 더 빨리 움직이고 있다. 예비 고3의 ‘패스 상품’(메가스터디의 모든 온라인 강의를 1년간 들을 수 있는 상품) 매출이 전년보다 신장했다. 사교육 시장이 커지는 건 근본적으로는 대입 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수시 비중이 70∼80%에 이르는 대입 구조 말인가.

“사교육 종사자들은 현재 8 대 2인 ‘수시 정시 비율’이 (돈 벌기에) 황금 비율이라고 말한다. 수시 비중이 높으면 사교육을 잡을 것이라는 정부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다. 수시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논술 △적성고사 등 전형별로 각각 사교육이 생겼다. 수능을 최저학력기준으로 삼는 대학이 있으니 수능 준비는 기본이다. 또 정시 문이 좁아지면서 재수 삼수를 하는 학생이 많다. 1등급 받기가 어려우니 오프라인 학원이나 재수 기숙학원이 성행한다.”

―그럼 정시를 늘리면 사교육 시장이 작아지나.

“정시가 늘면 재수생은 줄어든다. 재수 기숙학원 한 곳의 매출이 시내 학원 4, 5개 매출과 맞먹는다. 기숙학원이 보통 한 달에 300만 원 정도다. 현재는 입시학원 메이저 3사가 ‘용인벨트’에 재수 기숙학원을 계속 늘리고 있다. 메가스터디교육도 내년에 기숙학원 하나를 더 연다. 한두 문제만 실수해도 1년이 헛고생이니 학생들이 억울하지 않겠나. 게다가 수시 원서를 6장이나 쓰니 많은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 대학에 붙으면 반수를 한다.”

―수시 지원 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뜻인가.


“현재 대입 구조는 딱 두 그룹에만 유리하다. 상위 15개 대학은 전형료 수입 왕창 올린다. 또 사교육 기업은 많은 돈을 번다. 수시 지원 횟수를 2회로 줄여 학생들이 모든 전형을 다 준비하지 않게 해야 사교육이 줄어든다.”

―수능 문제는 왜 최악이라는 건가.

“사교육비를 줄이려 정부가 ‘EBS 연계율 70%’ 정책을 도입한 이후 수능 문제가 이상해졌다. EBS 교재와 연계하면서도 그 문제를 그대로 출제할 수 없으니 해괴망측하게 변형하고 지문이 길어진 것이다. 사고 능력 테스트가 아니라 빠른 시간에 문제 푸는 기술을 측정하는 시험이 돼버렸다. 최근 수능 사회탐구 중 ‘사회·문화’ 과목을 학생과 시험 치듯 풀어봤다. 내가 사회탐구를 오랫동안 가르친 천하의 ‘손사탐’인데 45분 동안 총 20문항 중 15번까지밖에 못 풀었다. 빛의 속도로 문제 푸는 기술을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 고득점을 할 수 없다.”

손 회장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난도에 유감을 표한 국어 31번 문제와 서울 강북 한 고교의 국어 시험 문제를 보여주며 말했다. “31번을 풀려면 한 페이지에 달하는 지문을 읽어야 하는데 문제에 달린 ‘보기’가 너무 어렵다. 유명 국어 강사도 도무지 모르겠다고 한다. 반면 학교 시험은 문제가 한두 줄밖에 안 된다. 학교에서 대비하지 못하는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것이냐.”

―국어는 특히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데….


“EBS 교재와 연계한 문제로 구성된 ‘봉투 모의고사’ 시장이 엄청 커졌다. EBS 지문이 어떻게 연계될지 연습해야 하니 국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모의고사를 연습하는 거다. 봉투 모의고사는 일반 문제집에 비해 페이지당 가격이 5배 이상 비싸다. 수험생 한 명이 50만 원 이상은 쓸 거다.”

―정부가 대입 정책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EBS 연계 정책, 수시 확대 등 사교육을 억제하려는 대증요법은 역효과만 났다. 정부가 공급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고교생, 입시를 경험해 본 대학생, 학부모, 사교육 종사자들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 이전 정부까지는 장차관과 사교육 관계자들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물론 만난다고 변한 건 없지만….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정부 관계자를 만난 적이 없다.”

인터뷰를 마친 손 회장은 윤민창의투자재단 사무실에서 청년 사업가들을 만났다. 대학을 휴학하고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이들이 많다. 손 회장은 투자금(5000만 원)뿐 아니라 공간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 젊은 세대가 ‘나만의 독특한 능력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은 바뀐다”고 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대입제도#수능#사교육#메가스터디그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