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백신 국산화 실패가 ‘비소 백신’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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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 섞인 BCG 접종, 그 이면엔
백신공장 짓고도 기술이전 못받고 자체개발 종균은 부적합 판정 쓴맛
日 비소 백신 10년간 233만명 접종…9세 이하 아동 3분의 2가 맞은 셈

지난 10년간 230만 명이 넘는 영아가 1군 발암물질인 비소가 섞인 BCG(균으로 만든 결핵 백신)를 접종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정부가 국산 BCG 개발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영아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본 셈이다. ‘백신 주권’을 잃은 대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제약사 일본비시지제조(JBL)에 따르면 경피용(도장형·피부에 주사액을 바른 뒤 그 위를 바늘로 눌러 주입) BCG에 비소가 섞여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2009년 4월이다. 도장형 BCG는 JBL사가 전 세계적으로 독점 공급한다.

질병관리본부가 국내 접종 이력을 분석한 결과 2009년 4월 이후 생산된 도장형을 맞은 영아는 232만9972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도장형의 대체품인 덴마크산 주사형(주사액을 피부에 주입) BCG를 접종한 영아는 139만2132명이었다. 현재 만 9세(초등학교 3학년) 이하 전체 아동의 3분의 2가 ‘비소 오염 BCG’를 맞은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달 5일 자국 내에 유통 중인 제품에서 나온 비소의 최대량이 한 제품당 0.26ppm이라고 발표했다. 국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매일 이보다 38배 많은 양을 평생 동안 주사해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절판된 옛 제품에 비소가 더 많이 들어있을 가능성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JBL사에 재고 샘플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현행 약사법상 우리 정부는 해외 제약사에 자료 제출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이를 보완한 개정법이 이달 23일 국회를 통과했고 내년 12월 시행된다.

미국과 일본 등은 오래전부터 해외 제약공장을 시찰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수입을 중단해왔다. 하지만 이런 권한이 없는 식약처는 유통 중인 JBL사 제품(14만2125명분)을 회수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해외 제약사에 휘둘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덴마크 제약사가 공장 리모델링을 이유로 주사형 BCG 공급을 완전히 중단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이의 제기도 하지 못했다.

근본 해결책은 ‘BCG 국산화’다. 우리나라는 2011년 15억 원을 들여 BCG 공장을 지었지만 해외 제약사가 기술이전을 돌연 거부해 예산만 날렸다. 2013년엔 2년간 매달린 자체 개발 종균(種菌)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인 결핵 발병률(인구 10만 명당 77명)을 낮추려면 백신 주권을 찾는 게 필수”라고 지적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백신#b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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