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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설계-공법… 코리아 ‘스마트 건설’, 싱가포르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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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설계-공법… 코리아 ‘스마트 건설’, 싱가포르 사로잡다

황재성 기자 입력 2018-11-21 03:00수정 2018-11-21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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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비상하는 한국 건설<3>삼성물산-쌍용건설
삼성물산이 드론을 띄워 찍은 ‘지하철 T307’ 공사 현장 모습. 싱가포르 동남부 머린퍼레이드 지역에 위치한 ‘T307’ 현장은 바다를 매립한 지역이어서 첨단 기술을 요한다. 삼성물산 제공
2014년 스마트네이션(Smartnation)으로 거듭나겠다고 선포한 싱가포르는 최근 쏟아내는 각종 공사 입찰 조건에 최첨단 기술과 관리기법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현장은 제조업 공장에서나 사용할 만한 설비를 갖추도록 조건을 내걸 정도다. 그 결과 공사를 따낸 건설사들의 고민도 크다. 하지만 국내 건설사들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고 있었다.

○ 매립지 연약지반에 놓이는 도심 지하철

바닷물을 메운 땅에 건물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하를 파고, 철도를 건설한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공사 구간 일대는 노선버스 25대가 쉼 없이 지나고, 도로변에는 호텔과 대형 복합상가, 아파트 단지 등이 밀집돼 있다. 한국이라면 공사 계획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삼성물산이 현재 싱가포르 동남부에 위치한 머린퍼레이드 지역에 짓고 있는 ‘지하철 T307’ 공사 현장 얘기다.


싱가포르 정부는 2030 지하철 노선 확장계획을 세우고 톰슨 라인과 다운타운 라인 등 2개 노선을 건설 중이다. 이 가운데 삼성물산은 톰슨 라인 T307과 T313 구간을 맡아 짓고 있다. T307은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이 발주한 공사로 삼성물산이 4500억 원에 단독 수주했다. 싱가포르 북부지역 우들랜드와 남쪽 창이국제공항 인근 지역을 연결하는 총길이 43km의 톰슨-이스트코스트 라인 지하철 공사 구간 중 하나다. 이곳에는 터널을 만들 때 사용하는 대형굴착기(TBM) 3대가 투입돼 2684m를 뚫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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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장이 바다를 매립한 곳이어서 지반이 연약하다는 점이다. 흙을 파내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커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홍정석 삼성물산 T307 현장소장이 제시한 해법은 ‘지하철이 지나갈 구간 양측에 60m 길이의 콘크리트와 철골로 만든 벽체를 짓는 것’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선 벽체가 들어설 공간 확보용 흙 퍼내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벽체에 들어갈 철골 구조물 등이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 첨단 설계로 난관을 극복하다

쌍용건설 컨소시엄이 시공 중인 ‘우들랜드 헬스 캠퍼스(WHC)’ 조감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경지대 인근에 위치한 WHC는 전체 건물을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방식이어서 첨단 기술을 요한다. 쌍용건설 제공
공사 구간에 아파트 호텔 상가 등이 밀집돼 있고, 이 건물들에 공급될 전기, 수도, 통신, 상하수도 관련 설비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지하에 숨겨져 있는 점도 난관이었다. 지하철 역사 길이가 일반 지하철(평균 230∼250m)보다 훨씬 긴 650m에 이르는 것도 고민거리였다. 싱가포르 발주처는 역사시설의 절반 정도를 지하상가로 활용할 계획이다. 공사 난도가 그만큼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물산은 빌딩정보시스템(BIM)을 활용한 공사 설계를 도입했다. 이는 공사 입찰 당시에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삼성물산이 자체 개발한 BIM은 공사 기간별 공사 단계가 표시된다. 특정 지역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해당 지점에 대한 공사 진행 유무와 필요 자재 등 주요 정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표시된다.

삼성물산은 BIM을 운영하기 위해 자체 팀을 만들어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입찰에 참가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처음으로 발주처인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에 BIM을 활용해서 공사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 BIM 사용이 계약조건에 아예 반영됐다.

또 T307 사업자 선정 입찰에 참여한 6개 회사 중 유일하게 삼성물산만 대안설계를 제시했다. 도로를 옮기고 다시 복구하는 단계가 12단계였지만 이 과정을 7단계로 줄여 응찰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격 점수는 바닥이었지만 설계 점수는 1등을 받아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다.

삼성은 주변 민원 해소를 위해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세심한 현장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 홍 소장은 “전담팀을 중심으로 민원인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 사안이 생길 때마다 설명회를 열었다”며 “현지인들이 합리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공사를 일정대로 진행해 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첨단 공법의 시험장, 우들랜드 헬스 캠퍼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경지대 인근에 위치한 우들랜드. 이곳에서 쌍용건설은 올해 3월 국제입찰을 통해 따낸 ‘우들랜드 헬스 캠퍼스(Woodland Health Campus·WHC)’ 건설공사를 진행 중이다. WHC는 싱가포르 보건부가 발주한 것으로 8000억 원을 투입해 18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너싱홈(노약자 보호시설), 호스피스 등의 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엄경륜 쌍용건설 WHC 현장소장은 “병상 규모로만 보면 싱가포르 최대 규모”라고 소개했다.

건축물 공사에서 시공 난도는 ‘병원>호텔>아파트’ 순이다. 아파트에는 방이나 거실 등에 들어가는 시설물이 전기, 난방 배관 등으로 단순하다. 반면 호텔이나 병원은 방마다 들어가는 시설이 훨씬 복잡하다. 특히 병원은 방마다 수술실, 병실, 진료실 등 목적이 다르다. 그에 필요한 시설도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싱가포르 정부는 이 병원을 미래형 병원으로 만든다는 방침을 세우고, 최첨단 의료장비를 들여놓을 방침이다. 병원 각 방에 들어갈 설비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선 콘센트 위치 하나도 정하기가 어렵다. 싱가포르 정부가 ‘악몽(nightmare)이 될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설계 변경이 많이 이뤄질 수 있다. 새로운 장비가 나올 때마다 이를 반영해 설계를 바꿀 수밖에 없어서다.

문제는 또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병원 건축물 대부분을 사전 제작한 뒤 공사 현장에서는 레고 블록을 맞추듯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사 현장에는 40억 원을 투입해 100개가 넘는 병원 전체 건축물의 각 부분을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mock-up)들이 별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형을 만들기 어려운 부분은 가상현실(VR)로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와 WHC 병원장 내정자 등이 방문해 각 방의 디자인과 자재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엄 소장은 “‘공업화 공법’이라고 불리는 이런 건축 방식은 미리 만들어진 설계도대로 레미콘을 쏟아부어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보다 건축비가 30% 이상 비싸진다”며 “국내에선 삼성전자 공장 등 일부 특수 건축물을 빼곤 적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 특수 건축 ‘어벤저스’가 뭉치다
게다가 장비가 새로운 제품이 나와 변경될 경우까지 고려하면 건축물의 사전제작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도 공사 관계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밖에도 지하 2, 3층에 전쟁 등 위험 상황을 대비한 대규모 벙커(civil shelter)를 설치해야 하는 등 공사 현장에는 시공사를 괴롭힐 요소들이 끊임없이 자리 잡고 있다. 엄 소장은 “도전하는 심정으로 공사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싱가포르 정부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물 ‘마리나베이샌즈(MBS)’ 건설 주역이다. MBS는 50층 높이의 50도가량 기울어진 건축물 3개동 머리 위에 건물 2층 높이 규모의 배를 얹은 독특한 외관으로 세계 건축사에 남을 명작으로 꼽힌다. 엄 소장 이외에도 WHC 현장에는 MBS 건설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대거 참여해 있다. 엄 소장은 “특수건축물 공사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이 뭉친 셈이다. 반드시 계획 기간에 건설을 끝내 싱가포르에 한국 건설사의 시공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 보이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싱가포르=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첨단 설계-공법#코리아 스마트 건설#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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