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호 예비역 병장 “자살 생각했지만…전신화상에 움직일 수조차 없어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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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0월 25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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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찬호 병장 소셜미디어
사진=이찬호 병장 소셜미디어
K-9 자주포 사격훈련 중 발생한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던 이찬호 예비역 병장이 25일 사고 당시를 회상하며 “자살 생각 했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어 자살도 할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찬호 병장은 이날 KBS1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생존자 중에서는 제가 제일 많이 다쳤고 겨우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병장은 “아직도 병원에 입원 중이면서 재활치료 받으면서 수술을 몇 차례 앞두고 있다. 화상은 다들 알다시피 최고의 극한의 고통을 동반하고 치료과정도 길고 고되지 않나.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고. 그래서 저는 절망감, 자살시도, 자살 생각으로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면서 “더 비참했던 것은 움직일 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면서 자살을 할 수조차 없었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앞서 이 병장은 지난해 8월 철원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몸 대부분에 화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배우의 꿈을 접고 치료에 전념해오던 이 병장은 지난 5월 페이스북에 “보상과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 없이 9개월이 지났다. 전역 시 한 달에 500만~700만원 드는 (병원) 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역을 미룬 사정을 공개했다.

이에 ‘자주포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장병을 치료해 주시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이 청원글은 3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후 청와대는 “이 병장의 국가유공자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유공자로 지정되면, 치료비 전액과 교육·취업 지원, 월 보상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답변했으며, 국가보훈처는 지난 9월 이 병장을 국가유공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병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던 상황에 대해 “일단 저는 기절해 있어서 어떤 상황인지 몰랐는데, 부모님은 아들을 나라에 맡긴 입장에서 국가에서 해결할 줄 알았는데 부모님과 형은 정보를 찾기 위해 발로 뛰고 조사를 하고 다녔어야만 했다”라며 “사고 직후에 바로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 사고 몇 시간 후에 위급하다고 연락 오고. 대체 매뉴얼이 미비한 거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또 치료비 문제로 군대를 연기했지만 연기신청도 6개월밖에 안 된다. 나라에서는 이중배상금지법 때문에 보상금을 받을 수가 전혀 없었다. 또 K-9 자주포라는 한화 제조업체에서는 기계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면서 저한테 아무런 보상금을 준 게 없다”라고 부연했다.

‘전역 직전에 훈련하다가 다쳤는데, 전역 후에도 치료비를 지급해줘야 했지 않나’라는 질문에는 “저희가 힘든 일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을 부탁하는 건데도, 이게 개선된 게 전역 후 6개월밖에 지원이 안 된다는 거다”라며 “외부병원은 개인사비로 부담해서 치료를 받아야 되고, 전역 후 또 보훈처로 넘어가면 보훈병원에서만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게 외부병원은 위탁승인이라는 과정과 절차를 밟아야 허가가 떨어져야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런데도 많은 장병들은 개인사비로 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청와대 청원이 순식간에 20만 명을 넘겼다. 국가가 미루는 일을 시민들이 도와줬다’라는 말에는 “진짜 너무 감사드렸다. 다들 남 일 같지 않게 생각해 주신다고 느꼈고, 저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이런 사건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항상 묻혀왔기에 국민청원을 통해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것 같다. 사실 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병장은 이달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라며 자신의 사진을 게재했다. 해당 사진은 이 병장의 화상 자국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그대들의 흉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겠죠. 마음의 상처든 뭐든 그 상처가 잘 아물길.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증거니까요”라고 말했다.

김은향 동아닷컴 기자 eunhy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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