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묵시적 청탁 인정하면 정적 제거 천하의 보검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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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재판-법치주의 흔드는 것”, ‘박근혜 항소심’ 재판부 논리 비판
“朴이 이재용 만난게 강요죄라면 文대통령이 기업인 만나도 강요죄”

“대법원이 ‘묵시적 청탁’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정적(政敵)을 처단하는 데 천하의 보검이 될 것이다. 증거 재판주의와 법치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다.”

최순실 씨(62)의 1심과 항소심을 변호했던 이경재 변호사(69)는 4일 서울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항소심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여 원을 받은 것을 뇌물로 판단했다. “부정한 청탁으로서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명시적으로도, 묵시적으로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을 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했던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 변호인으로서 소회를 밝히겠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 변호사는 90분 발언 시간 중 30여 분을 항소심 재판부의 묵시적 청탁 논리를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이 사건에서 유일한 증거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독대했고,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이뤄졌다는 것”이라며 “이것만 가지고 어떻게 형량 10년이 넘는 뇌물죄를 인정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단독 면담에서 청탁이 오갔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이심전심’으로 마음 속 청탁을 했다고 판단한 재판부 논리를 비판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검찰은 옛날의 권력관계 그림에 갇혀 있다.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 세무기관을 손에 쥔 폭력기관의 장이고, 기업들은 늘 (돈을) 뜯기는 사람처럼 본다. 기업은 아무 활동을 못하는 관계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체육과 문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한 것을 기업이 ‘응하지 않으면 기업에 해로울 것’이라는 협박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박 전 대통령이 강요죄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기업 총수를 만나도 강요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진 2016년 9월부터 최 씨를 변호해 왔던 그는 최 씨의 대법원 상고심은 맡지 않기로 했다. 이 변호사는 “법리를 살피는 대법원에서는 변호사 역할이 많지 않고, 항소심에서 가능한 법리를 모두 주장했다. 상고심에서 (최 씨에게) 조언은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최태민·최순실·정윤회 씨는 현대 정치사에서 부정적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돈을 좇는 ‘악덕 변호사’로 비칠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진상이 무엇인지 알아볼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으로 (사건 의뢰를) 받아들였다”며 최 씨 변호를 맡은 이유를 공개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이경재#묵시적 청탁 인정#박근혜 항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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